두 사람은 차를 탈 생각이 없었고 계속 이렇게 손잡고 걷고 싶었다.정안이 나지막이 대답했다.“네. 가야 해요.”“언제 가?”남하준이 묻자 정안은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졌지만 덤덤하게 말했다.“Z국은 이미 사람을 보내 나 데리러 왔어요. 그 사람이 내 앞에 온 순간이 바로 내가 떠나는 날이에요.”남하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어두워진 하늘가를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괴로움이 느껴졌다.정안이 계속 말을 이었다.“오빠가 계속 우리 부모님 행방을 찾아주셨으면 해요.”“그건 걱정 마.”“Z국에도 우리 부모님을 찾아달라고 요청할 거예요.”남하준은 또 침묵에 빠지고 발걸음도 무거워졌다.“오빠, 혹시 시간 나면 할아버지랑 할머니 뵈러 가줄 수 있어요? 두 분 모두 연세가 드셨고 가족도 없으셔서...”정안은 말할수록 괴로운 감정이 가슴에 차올라 목에 메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두 분 모두 내 일에 대해 잘 모르셔서 내가 왜 자주 연락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내가 M국에 돌아와서 뵐 수도 없고... 두 분한테 너무 미안해요.”남하준은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릴까 봐 두려워 그녀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다.그는 괴로움을 참고 짐짓 덤덤하게 말했다.“10년 전, 네가 M국을 떠날 때 이미 평생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한 거잖아.”“그래서 M국의 모든 인연을 끊었고. 친구들과 나를 포함한 모두와 연락을 단절했지”“백인호가 아니었으면 넌 M국에 오지 않았을 거야.”남하준은 희미한 눈으로 먼 곳의 불빛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물었다.“이번엔 얼마나 떠나 있을 거야? 5년? 10년? 아니면 15년?”정안은 마음이 찡하고 괴롭고 슬퍼 견딜 수 없었다. 머나먼 땅에서 한 남자가 그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는 어떤 약속도 미래도 줄 수 없으니 괴로워 울고 싶었다.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고 울먹이며 말했다.“오빠, 나 기다리지 말고 좋은 여자 만나요. 이제 달콤한 연애도 하고 결혼해서
밤은 아름답고 거리 풍경은 어슴푸레했는데 그날 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금원으로 돌아온 후, 남하준은 일이 바빠서 서재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다음 날 아침, 그는 그룹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일찍 금원을 떠났다.남하준은 그녀를 군전 그룹으로 데려가지 않았다.소탈하고 평온한 작별 인사였다.두 사람은 속으로 알고 있었다. 이번에 서로 헤어지면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아프고 섭섭한 마음으로 정중히 작별 인사를 하기보다는 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게 나았다.그는 군전 그룹에 가서 일하고 그녀는 Z국으로 돌아가 그녀의 연구를 계속하며 서로 낯선 사람이 되는 거였다.정안은 금원의 남은 물건을 정리하고 아쉬운 듯 이 집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그 거대한 책장, 따뜻한 장식,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디테일로 넘쳤다.가짜 백하린이 돌아왔을 때, 남하준은 지체 없이 이 집을 꾸미며 오랫동안 사랑한 여자와 결혼하기를 꿈꿨을 것이다.대체 어떤 힘이 이 남자를 십여 년 동안이나 그녀를 사랑하고, 결국 그녀의 모든 것을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결연히 그녀를 떠나보낼 수 있게 했을까?정안은 남하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다.자신이 이 남자의 깊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정안은 눈물을 훔치고 가방을 들고 금원을 떠났다.밖에서 기다리던 지윤이 정안이 나오는 걸 보고 급하게 가방을 받다가 그녀의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보고 안쓰러워하며 물었다.“언니 눈이 엄청 부었어요. 밤새 울었어요?”정안은 두 손을 눈에 대고 아픈 눈을 쉬게 하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괜찮아.”“언니 며칠 후면 떠나는데 도련님은 갑자기 그룹으로 돌아가셨어요. 설마 언니 가는 거 마중도 안 해요?”“나 갈 때 알리지 말라고 했어.”정안은 말하다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나 못 떠나게 하려고 어디 꼭꼭 숨겨둘까 봐 무섭대.”지윤은 마음이 아파서 다가가서 그녀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울지 말아요. 도련님은 언니를 너무 사랑해서 언
그래서 지금 그녀가 떠나려고 하는데, 그는 그녀를 배웅할 용기도 없고, 그녀가 언제 어디서 떠나려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그녀의 뒷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만 보지 않는다면 덜 아플까?운전에 열중하던 지윤은 눈물범벅이 된 정안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백씨 저택에 도착하고 정안은 무거운 걸음으로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고 다가갔다.백진과 여은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일어나 그녀를 반겼는데 그녀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 화를 참지 못했다.백진이 화가 나서 물었다.“하준이가 너 괴롭혔어?”여은수는 마음이 아파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준이 녀석 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왜 우리 완자를 울리고 그래? 지금 하준이 어디 있어? 내가 당장 가서 혼내주마!”정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였다.“하준 오빠 나 괴롭히지 않았어요.”여은수는 정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가슴이 아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런데 왜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거냐? 어제 한숨도 못 잔 거야?”정안은 그들을 소파에 앉히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백진과 여은수는 당황해서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정안이 그들의 부축을 밀어냈다.“할아버지, 할머니. 앉아 계세요.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할 말 있으면 하면 되지. 왜 무릎을 꿇어?”정안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못한 채 죄책감 가득 말했다.“죄송해요. 손녀가 불효를 저지르려고 해요. 앞으로 두 분 옆에 남아서 노후를 돌볼 수 없을 것 같아요.”여은수는 크게 당황하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정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얼굴이 어두워진 백진은 그윽한 눈동자로 말없이 정안을 바라보며 그녀의 뜻을 짐작하는 듯했다.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며 말했다.“저 Z국으로 돌아가 원래 일을 계속해야 해요. 다시 출근하면 또 10개월 동안 연락할 수 없고 매년 설 연휴 전후로 한 달 동안만
한참을 운 후에야 여은수는 결국 정안을 너무 사랑해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정안을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이미 네가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할머니가 아무리 아쉬워도 강요하지 않으마. 너만 행복하고 즐거우면 된다.”정안은 숨도 못 쉴 정도로 가슴이 아팠고 감사했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몸이 떨릴 정도로 울면서 할머니를 꼭 껴안고 울먹였다.“고마워요. 할머니.”백진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일어서서 정안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어렸을 때부터 정안은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살았다. 이 사랑은 그녀를 연약하지만 또 완강하게 보호해 주었고, 또한 그녀가 원하는 미래로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남은 시간 동안 정안은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남태준도 자주 보러 갔다.그녀는 M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하고 친한 친구 지우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남태준에게도 떠나는 일을 말했다.그녀는 모든 것이 잘 처리되었다고 느꼈지만 심장은 오히려 텅 비어있는 것 같았고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마음이 괴로웠다.그녀는 그 텅 빈 부분이 남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요즘 남하준은 마치 그녀를 잊은 듯 연락도 없었다.세월이 흘러 일주일이 지난 밤, 정안은 Z국에서 학생 때부터 직장생활까지 함께 한 선배 진도훈을 만났다.남자는 정장 차림에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뿔테 안경을 쓴 문인 학자의 우아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Z국 과학연구원에서 정안을 데려오라고 파견한 인물이었다.정안은 그를 본 순간 마음이 괴로웠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선배, 오랜만이에요.”진도훈은 안경을 부축하더니 흥분한 감정이 깃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지난 3년 동안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살아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야.”정안은 씁쓸하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내가 이번에 왜 왔는지 알지?”“알아요
연결음 소리와 함께 정안의 심장은 기복이 심했고 긴장하여 위가 경련하는 것처럼 호흡마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남자의 쉰 목소리는 힘이 빠진 듯, 영혼이 빠진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와 가슴을 아프게 했다.정안은 남자의 목소리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일순간 소용돌이치고 가슴 끝을 조이며 아파졌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입을 막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그녀의 손바닥 안에 방울방울 떨어졌다.그녀는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따가워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손을 놓으면 목 놓아 울 것 같았다.그녀는 지금까지 이 정도로 감정에 연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늘 이성적이고 사업 욕심도 컸는데 자신이 이렇게까지 나약할 줄은 몰랐다.전화기 너머로 남하준은 오랫동안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조용하고 긴 침묵이었다.그는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얼었다.“완이 맞지? 왜 말이 없어?”정안은 온 힘을 다해 입을 틀어막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미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남하준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재치있게 말했다.“전화할 수 있다는 건 아직 M국에 있다는 거네? 영상통화 가능해? 보고 싶네.”너무 괴로운 정안은 휴대폰을 쥐고 울먹이는 입을 가리고 힘없이 털썩 내려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움츠렸다.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면 남하준이 전화를 끊을까 봐 무서웠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코를 훌쩍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이거 마지막 통화예요.”남하준의 목소리도 떨리고 목이 메었지만 그는 덤덤한 척 말했다.“그래. 마지막 통화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앞으로 너 TV에 나오고, 더 위대한 무기를 개발하고, 미래에 노벨상을 따기를 바랄게.”정안이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요.”“그게 네 꿈이잖아.”정안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없어요? 오빠가 이러면
지금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것이 아쉬운 감정이든 죄책감 때문이든 남하준은 기꺼이 만족했다.한 번도 그녀를 가져본 적이 없으므로 지금 그녀가 떠난다고 해서 잃을 것도 없었다.그런데도 그는 가슴에서 뜨거운 물이 끓어오르고 화끈거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그녀에게 할 말이 많지만 다시는 말할 기회가 없었다.“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그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통제 불능이 되기 전에 통화를 끊어버리려고 애썼다.더 이상 전화를 끊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 참을 수 없을까 봐, 즉시 비행기를 타고 그녀 곁으로 달려가 그녀를 강제로 붙잡아 둘까 봐 두려웠다.남하준은 먼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동댕이쳤다.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눈을 감고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는 두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쥔 채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너무 아프고 괴로웠다.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주먹이 가늘게 떨리고 힘줄이 불끈 솟았다.요즘 꿈에서 그녀를 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팠다. 감정에서 그는 조금도 강인하지 않았다.남하준의 눈가에 넘쳐흐르던 눈물이 차츰차츰 흘러내리면서 뺨을 타고 귓전으로 흘러내렸다.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남하준은 의자를 돌려서 들어온 사람에게 등을 돌렸고 입을 약간 벌리고 심호흡을 하며 몰래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류청이 들어와 긴장한 채 말했다.“도련님, 안보국에서 정보를 보내왔는데 그 배신자와 백인호가 배를 타고 몰래 M국으로 입국한 후 종적을 감췄답니다.”남하준이 덤덤하게 물었다.“정호가?”“네. 그 배신자요.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도련님까지 배신한 짐승이요. 제 손에 잡히기만 하면 반드시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줄 거예요.”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M국에 온 것은 분명 정안을 찾기 위해서였다.남하준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지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곧 연결되었다.“도련님, 무슨 일이세요?”“백인호와 정호가 밀입국해 지금 M국에 잠입했어요
“사람이 짐승일 때 짐승보다 더 무서운 법이니까.”남하준은 탄식하며 말했고 류청은 그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보고 또 정호의 행동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을 생각하며 한 걸음 나아가서 진지하게 말했다.“전 절대 정호처럼 한낱 돈 때문에 도련님을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 전 무조건 도련님께 충성하니 걱정 마십시오!”남하준은 가슴에 감동이 일었다.“너 믿어.”“감사합니다.”류청이 엄숙한 표정으로 답했다.어둠이 짙어가는데도 그룹 사무실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이튿날 아침.정안이 깨어났을 때 눈이 빨간 복숭아처럼 빨갛고 부어 있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잠을 잘못 잔 탓에 얼굴도 퉁퉁 부었다.그녀는 일어나서 깨끗이 씻고 평범한 원피스에 검은색 숄더백을 메고 포니테일을 하고 집을 나섰다.아래층에서 지윤과 진도훈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지윤이 일어나서 인사도 하기 전에 정안의 소리에 묻혔다.“잠깐 남씨 본가에 들를 거야. 지윤아 너 나랑 같이 가.”지윤은 의혹스러웠고 진도훈이 일어나 긴장하며 물었다.“완자야, 오후 비행기 타고 출발해야 하는데 어디 가려고?”정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매우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태준 오빠 설득해서 우리랑 함께 Z국에 가서 치료받게 할 거예요.”지윤이 경악했다.“왜요?”“현대 의학으로 치료되지 않는 골질환을 Z국은 전통 의술로 치료할 수 있어. 요 며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례를 조사했는데,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평생 장애를 선고받은 환자들이 침술과 물리 치료로 다시 일어섰어.”지윤은 화들짝 놀랐다.“만약 그렇다면 시도해볼 만 하네요. 저도 같이 설득해 볼게요.”“나도 같이 가.”진도훈도 따라나섰고 세 사람은 나란히 백씨 저택을 나왔다.지윤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진도훈이 정안을 몇 번 흘끗 보더니 말했다.“설득하지 못하더라도 제시간에 출발해야 해. 비행기 시간 놓치면 안 돼.”정안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만약
정안 일행이 남씨 본가에 도착해 남태준을 데리고 출국하겠다는 의사를 부모에게 말하자 두 사람 모두 지지했다.아들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모두 시도해 볼 의향이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이 Z국 치료에 협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이 일을 정안에게 맡겼다.단풍잎 숲속 저택.정안이 다시 남태준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완전히 새롭게 변했다.턱수염을 깨끗이 깎고 머리도 짧게 깎았고 캐주얼한 화이트 옷차림으로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이었다.다만 이건 겉모습의 변화일 뿐 그의 몸은 여전히 야위고 퇴폐적이며 마치 산송장처럼 영혼이 없었다.지우가 남태준을 베란다로 밀고 가 햇볕을 쬐게 하자 그는 눈을 감고 뒤로 기대어 꼼짝도 하지 않았고 정안이 그에게 인사를 해도 대꾸조차 없었다.정안은 지우에게 진도훈을 소개했고 그들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번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지우는 정안의 생각을 듣더니 경악했다.“Z국에 보내 치료한다고? 오늘 바로? 왜 이렇게 서둘러?”“미안해, 지우야. 나도 갑자기 결정한 거야. 태준 오빠를 외국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싶은데 너도 같이 가줄 수 있어?”“나야 괜찮지.”지우는 한참을 머뭇거렸다.“하지만 태준 씨는 절대 쉽게 따라가지 않을 거야.”정안이 돌아보니 남태준은 햇빛 아래서 시든 나무처럼 음울한 냉기가 온몸을 뒤덮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정안은 거실을 나와 남태준 곁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차가운 큰 손을 천천히 잡고 수척해진 얼굴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오빠, 나랑 외국에 치료하러 가요. 오빠 다리 반드시 치료할 수 있고 눈도 머리를 다쳐서 실명했을 뿐 완전히 가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계속 이렇게 자포자기해서는 안 돼요. 오빠, 정말 이 세상에 미련을 둘만 한 일이 하나도 없어요? 부모님도 있고 형제도 있잖아요. 가족분들이 오빠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낫기를 바라고 있어요.”“만약 두 다리도 움직일 수 있고 눈도 볼 수 있다면 열심히 살래요?”정안이 끊임없이 설득 했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