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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의 모든 챕터: 챕터 1511 - 챕터 1520

1552 챕터

제1511화

그녀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아마도 송사월이 서유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바라보면서였을 것이다.서유가 그에게 일어서길 원했기 때문에, 이미 삶을 포기하고 싶었음에도 그는 이를 악물고 모든 치료의 고통을 견디며 의사에게 협조했고, 마침내 휠체어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이들은 진작 삶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송사월은 서유가 느끼는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며 살아갔다.심지어 깊은 밤, 자살을 시도할 만큼 괴로웠던 순간도 수없이 많았지만, 정신을 차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되뇌었다.이지민은 그런 송사월을 보며 그가 정이 깊은 사람임을 느꼈고, 점점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토록 순수한 사랑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인지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그녀가 송사월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을 때, 단이수는 늘 조용히 이지민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오늘 밤, 비가 내렸다. 맞은편 건물에 살고 있던 단이수는 커튼을 살짝 열고,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흐르는 사이로 혼자서 창가에 앉아 국수를 먹고 있는 이지민을 바라보았다.그녀가 자신을 알아챌까 두려워 불을 켜지 못한 단이수는, 어둠 속에서 구원의 손길조차 닿지 않는 쥐처럼 숨죽이며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았다.그도 자신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곁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뿐이었다.사실 단이수는 이지민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면, 밤낮으로 잠들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할 정도였다.결국 위암에 걸리고 말았지만, 남은 시간을 그녀 곁에서 보낼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가 모른다고 해도, 그는 그저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이지민은 국수를 다 먹고 난 후 잠시 창가에 앉아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의 불이 꺼지면서 단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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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2화

이지민은 이 소송을 단이수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미 표절 가해자의 도발로 뉴스에까지 오르내리고 있었고, 여론은 그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며 몰아갔다. 사정을 모르는 수많은 네티즌이 그녀를 ‘표절범’이라고 욕했고, 심지어 이씨 집안의 명성까지 얼룩지게 했다.네티즌과 실랑이를 벌이기 싫었던 이지민은 변호사를 통해 법원의 판결을 공개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오직 단이수만이 그녀의 편에 섰다.그녀는 이게 단이수의 작은 술수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법조계에서 영향력이 큰 그가 이런 일쯤은 충분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속임수를 드러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한 끝에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명함을 집어 들었다.“이번 소송이 끝나면... 우리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해.”단이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숨기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걱정 마. 이번 소송이 끝나면, 정말로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그가 다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겠다는 말은,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떠난 후, 이지민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길 바랐다. 더 이상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그런 마음으로 그는 아쉬운 눈빛을 애써 숨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소송 중에는 네가 증거를 제공해야 할 테니, 자주 찾아오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줘.”이지민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고, 단이수는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힘겨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그녀의 사무실을 떠났다.문밖으로 나가는 그의 비쩍 마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지민은 문득 머지않은 미래에 그가 이 세상을 떠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그 생각은 한순간 스쳐 지나갔을 뿐, 그녀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눈앞의 공예품 작업에 집중했다.단이수는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그녀의 스튜디오를 드나들었다. 그는 매번 조금씩 증거를 수집했지만,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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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3화

소송이 끝났다는 건 더는 그와 만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단이수는 두 손을 변호사석의 책상에 짚고, 사람들로 가득 찬 법정을 가로질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지민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열어 저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지민아, 이번이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인사라도 하자.’ 하지만 목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단이수는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토록 사랑했던 법정에서 쓰러졌지만 후회는 없었다. 단 하나, 뼛속 깊이 사랑했던 그녀가 끝까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것만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몸을 버텨내지 못한 단이수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온몸에 각종 관이 꽂혀 있었지만, 그는 제자들에게 절대 이지민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학생이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힘들잖아요.” 단이수는 창밖의 희미하게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내가 먼저 지민이를 밀어냈는데, 어떻게 지민이가 먼저 돌아보길 바랄 수 있겠어.”그러나 의사에게 삶이 단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은 단이수는, 몸에 꽂힌 관을 모두 뽑아냈다. 무너져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깨끗한 정장을 입고 면도를 했다. 그리고 학생에게 부탁해 차를 몰고 이지민의 작업실로 향했다.며칠 밤을 새워가며 디자인에 몰두하던 이지민은, 정교한 예술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너무 소진한 나머지 나무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어버렸다.단이수가 들어섰을 때, 작업실에 있던 다른 공예가들은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건 단이수가 소송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감사와, 그와 이지민을 이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그러나 그들 모두는 몰랐다. 단이수에겐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햇살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이지민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그녀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반면, 그녀와 대비되는 단이수는 어두운 그늘에 서 있었다. 빛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과, 어둠 속에 갇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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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4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단이수의 가슴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왔다. 손을 떨며 입을 틀어막아 보았지만, 멈출 수 없는 피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눈물도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암의 고통이 심장을 억누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그가 느끼는 심장의 고통이 오히려 그를 더 무너뜨리고 있었다.의사는 그에게 3일이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계속 꼽혀 있던 관을 뽑고 마지막으로 이지민을 보기 위해 몸을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그의 생명은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그는 죽기 전에 이지민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지민이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 그에게 남은 건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힘을 짜내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화면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이지민의 번호는 정확히 찾을 수 있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세 글자를 천천히 눌렀다.[사랑해.]그는 메시지를 제대로 보냈는지도 모른다. 단지 가슴이 갑자기 막히는 듯한 느낌에 숨을 쉴 수 없었고, 목구멍 깊숙이부터 피가 역류해 올라왔다. 순간, 피가 쏟아져 화면을 적셨다.핏물이 번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그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채 소파에 기대어 쓰러졌다.눈이 흐려지는 마지막 순간, 단이수는 어린 시절의 이지민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모습을 보았다.“이수 오빠, 졸업하고 나면 나랑 결혼해 줄 거지?”단이수는 ‘그래, 졸업하면 너와 결혼할게’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는 단지 입술을 움직이며 속삭일 뿐이었다. ‘그래... 졸업하면... 널... 꼭...’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환영은 서서히 사라졌다. 환영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그는 허공을 향해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지민아... 이번 생엔 너랑 결혼하지 못했어. 다음 생에 해도...돼?”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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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5화

이지민은 고개를 숙이고, 숨결마저 사라진 그 야윈 얼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눈물방울들은 미친 듯이 단이수의 얼굴 위로 떨어졌지만 더는 그 어떤 미동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죽었다. 이지민이 그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며 내뱉은 독한 말 속에서, 냉정하게 그를 거절하던 차가운 태도 속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그를 잊어버린 슬픔 속에서 죽어갔다. 이지민과의 결혼 약속을 이루지 못한 채, 평생의 후회 속에서 그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던 이지민은 경찰에 의해 밀려났고, 흰 천이 다시 단이수의 몸 위로 덮였다. 시신이 운구차에 실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이지민은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차가워진 몸을 감싸안았다. 눈앞에서 점점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며 그녀는 깨달았다. 단이수는 이제 영원히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아무런 소리도 없이 떠나버린 그의 사랑은 이제 바이러스처럼 이지민의 기억 속을 휘몰아치며 그녀를 잠식해 갔다.“소송만 끝나면 너랑은 아무런 관계도 없을 거야.”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정말로 그녀를 놓아주려 했던 걸까? 아니었다. 그는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법정에 섰던 날, 이지민이 느낀 피비린내는 단순한 환기 부족이 아니라, 단이수가 흘린 피의 냄새였다. 그가 야위어갔던 것은 과로 때문이 아니라, 암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녀를 키스하며 흘렸던 눈물은 용서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쉬워서였다. 그리고 키스 후, 문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것도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단이수는 순수한 사랑을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었다. 이지민은 순수한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정작 뒤돌아보지 않았다. 단이수는 언제나 순수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사랑해’라는 세 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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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6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분명 그녀의 어머니였고, 억울한 사람은 분명 단이수였다. 보상해야 할 사람 역시 그녀였음에도, 과거에 얽매여 단이수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았다.결국, 너무도 냉정했던 건 그녀 자신이었다.화장터 입구에 앉아 있던 이지민은 곧 후회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를 평생토록 사랑해 준 그 남자는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는 그녀를 품에 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지민아, 이건 그냥 악몽일 뿐이야. 눈을 뜨면 내가 곁에 있을 거야...’그 생각에 이지민은 가슴이 찢어질 듯 오열했고, 결국 미친 사람처럼 화장터 안에서 단이수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돌아오기를 외쳤다. 그러나 그녀의 외침에 응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단지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만이, 모든 것이 끝났음을 그녀에게 속삭일 뿐이었다. 이지민은 결국 울다가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유나희의 걱정 어린 얼굴이었다.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단이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눈가가 붉어지며 그녀는 물었다.“엄마, 또 엄마가 이수 오빠를 떠나게 한 거죠? 그래서 오빠가 사라진 거죠?”유나희는 이지민의 부은 눈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지민아, 단이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이지민은 순간 고개를 홱 돌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엄마 때문이에요. 우리를 갈라놓은 것도, 오빠를 죽게 만든 것도...”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진짜 죄인은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유나희는 이미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권했지만 끝까지 돌아서지 않은 건 그녀 자신이었고, 결국 그로 인해 단이수의 몸은 버텨내지 못했다.모든 책임은 그녀에게 있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그녀는 책임을 어머니에게 떠넘겼다. 유나희는 그런 그녀의 비난을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말했다.“맞아, 내 잘못이야. 내가 그 아이를 죽인 거야. 하지만 지민아, 지금 이수에게 서명해 줄 사람이 없잖니.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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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7화

이하준은 원래 ‘꼬마 대장’ 같은 성격이었다. 남을 괴롭히는 것도 좋아했지만, 이승하에게 혼난 이후로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다.그렇다고 이승하와 완전히 똑같아진 것은 아니었으나, 어린 나이에도 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또 말수가 적어서, 서유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묵묵히 듣기만 할 뿐, 대답도 하지 않고 반박도 하지 않았다.서유는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더 내성적으로 변할까 걱정되어 심리 상담사를 불렀다.“세 살 전에는 정말 활발했어요. 가끔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 지금은 웃는 얼굴조차 볼 수가 없어요.”그녀는 혹시 2년 전 이승하가 아이를 혼낸 것이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준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하지만 이하준이 강자를 동경하는 성향을 보면, 심리적 트라우마를 가질 만한 아이는 아닌 듯했다. 그는 오직 강자를 존경하고 따르나, 약자에게는 비웃음만 보낸다. 아이의 기본 상황을 들은 심리 상담사 한은석은 서유에게 물었다.“평소에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서유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그림책이나 퍼즐, 암호 해제 장난감, 그리고 과학이나 의학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자기가 궁금했던 걸 알게 되면 금세 흥미를 잃어요. 말하자면 ‘삼분 열정’ 정도랄까요.”한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말했다.“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 나눠보며, 그 아이가 단순히 지능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심리적 문제가 있는 건지 판단해 보죠.”서유는 손을 들어 성을 가리키며 말했다.“보통 서재에 있어요. 카펫 위에 앉아 벽에 기대어 하루 종일 책을 읽곤 하죠.”한은석은 서유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며 살짝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다섯 살짜리 아이가 벌써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있나요?”서유는 어렸을 때 언어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어 아이의 언어 교육에 특히 신경을 썼다.“국제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정교사를 불러서 글자를 가르쳤어요. 신기한 점은 책에 있는 글자를 한 번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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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8화

한은석은 자폐 아동을 많이 상담해 왔기에 그들이 대개 말을 잘 잇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하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말을 이어갔다.“네 어머니께서 네가 자폐가 아닐까 걱정해서 내게 너의 심리를 상담해 보라고 하셨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넌 자폐가 아니라, 오히려 지능이 너무 높아서 그런 것 같아. 얼마나 높은지는 테스트를 해봐야 알겠는데, 협조해 줄 수 있겠니?”한은석은 이하준을 완전히 어른 대하듯이 말했다. 그제야 이하준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테스트라니, 어떻게 하는 걸까?’라는 듯이. 이하준의 눈에 담긴 갈망 어린 호기심을 본 한은석은 확신했다. 이 아이는 지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강자에게 끌리는 심리가 생긴 것이다.이런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 방법을 찾기 어려워 책이나 강자에게서 무작위로 배워나간다. 혼자만의 고립된 세계 속에서 몰입하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다.한은석은 확신이 들자 스마트폰을 꺼내 IQ 테스트 문제를 열어 이하준 앞에 놓았다.“여기 꽤 어려운 문제들이 있어. 많은 어른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들인데, 너는 할 수 있을까?”이하준은 원래 별로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어른들도 못 푸는 문제’라는 말에 눈길을 스마트폰으로 돌렸다.첫 번째 문제를 본 순간, 이하준은 참지 못하고 작은 손을 뻗어 한은석의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곧바로 고개를 숙인 채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한은석은 이하준을 방해하지 않고 아이의 맞은편에 앉아 서재에 놓인 책과 첨단 기술 모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얼마나 지났을까? 한은석은 스마트폰이 자신의 팔에 톡톡 닿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리자, 눈앞에는 고개를 치켜든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하준이 있었다.“테스트를 통과한 것 같네?”이하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한은석은 개의치 않고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화면을 확인하니 이하준이 IQ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 보였다. 정확한 결과를 확인하려면 전문 기관의 정밀 검사가 필요했지만, 이미 그의 지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확실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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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9화

서유는 더 이상 남편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 그때 정가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침 대화 상대가 없던 서유는 그녀를 집으로 초대해 오후 차 한 잔을 함께하기로 했다.잠시 후, 정가혜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바로 블루리도의 후정으로 향했고, 멀리서부터 서유가 파라솔 아래에 앉아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디자인 도면을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아이를 낳고도 서유는 여전히 날씬하고 우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피부도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뒷모습만 보면 스무 살 아가씨와 다를 바 없었다.평생을 아름답게 살아온 서유를 본 정가혜는 마치 가을의 산들바람을 맞는 듯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서유야, 우리 작은 천재는 어디 갔어? 얼른 나와서 우리 애들이 예배라도 드리게 해줘!”정가혜의 목소리를 듣고 서유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은 정가혜의 화사한 얼굴에서 두 아이로 옮겨갔다. 남자아이는 하얀 셔츠에 체크무늬 조끼를 입고, 뒤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카락 아래 하얗고 깨끗한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외모와 옷차림 모두가 마치 이연석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했다.반면 여자아이는 블링블링한 공주 드레스에 머리를 동그랗게 묶고, 머리 위에 은빛 왕관까지 얹고 있었다.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작은 공주 같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늘 무표정인 자신의 아들과는 달리 정가혜의 아이들은 볼 때마다 사랑스러워서 서유는 설계 도면 따위는 내팽개치고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활짝 벌렸다.“하율아, 서아야, 이리 와! 큰엄마가 안아줄게!” 두 아이는 큰엄마를 보자마자 정가혜의 손을 뿌리치고 다리 힘껏 달려왔다. 특히 이하율은 마치 풍화륜을 단 듯 쏜살같이 달려와 서유의 품에 뛰어들었다.“큰엄마!”이하율은 새로 받은 장난감 자동차를 서유에게 자랑하며 말했다.“이거 우리 아빠가 새로 사준 거예요! 누나도 없는 건데, 멋지죠?”서유는 아이를 꼭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네 아빠가 사준 거라면 당연히 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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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0화

서유의 하소연을 듣고, 정가혜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눈썹을 찡그렸다.“아주버님은 꽤 똑똑해 보이던데. 머리도 좋을 테니 그분이 아이를 이끌면 되잖아.”그 말에 서유는 어쩐지 쑥스러워 고개를 숙였다.“그이야 회의 끝나면 돌아와서 신경 쓰겠다고는 했지만, 몇 년째 마음을 아이에게 쏟은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아마 크게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아.”정가혜는 서유의 셔츠 아래로 드러난 목과 어깨에 남은 짙은 흔적들을 보고 굳이 묻지 않아도 이승하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알 수 있었다.“참 대단하다. 하루하루 어떻게 그렇게 정력이 넘치지?”정가혜가 최근 이연석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이런 농담을 서슴없이 하게 된 덕에, 서유는 더더욱 얼굴이 붉어졌다.“나만 붙잡고 있는 건 아니야. 회사 일도 어느 정도 신경을 쓰고 있어.”정가혜는 그녀를 힐끔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결정이 어려운 일이나 재무 회의 같은 걸 제외하고는 거의 집에만 있던데?”서유는 얼굴의 절반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아 가혜야, 넌 나를 도우러 온 거야? 아니면 날 놀리러 온 거야? 제발 다른 이야기 좀 하자.”정가혜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난 너를 도울 방법이 없어. 내 머리로는 오뚝이와 깡순이를 간신히 상대할 정도지, 네 천재 아들은 도저히 감당이 안 돼.”정가혜가 숙모로서 이하준의 신임을 얻은 건 그가 어릴 적 그녀의 모유를 먹은 적이 있어서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격 까칠한 이하준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그래도 걱정하지 마. 이 대표가 있잖아. 하준이가 잘못된 길로 갈 리 없을 거야.”사실 이승하가 아이에게 무심했던 건, 머릿속에 심어진 칩 때문에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온 신경을 서유에게 쏟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서유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그이가 아이를 가르친다 해도 선생님 몇 명을 붙여서 공부만 시키고 끝나버려. 정작 아이와 소통은 전혀 하지 않아.”정가혜는 웃음을 터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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