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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1화

이하준이 다섯 살이 되던 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김선우가 카지노에서 타짜를 만나게 되었는데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 결과 처참히 패배했고 결국 속옷 차림으로 김종수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이승하가 하준이를 혼내던 것처럼 김종수도 몽둥이를 들고 김선우를 호되게 때렸다. 너무 창피해서 그 후로 김선우는 다시 카지노에 가지 않았다. 문제는 이걸 이하준한테 몰래 가르쳐준 것이다.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던 이하준은 김선우의 가르침을 받고 도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도박 자체인 놀음이 아니라 암호 풀이에 더 관심을 가졌다. 매번 그가 암호 풀이 장난감을 가져올 때면 이하준은 아무 말도 없이 서재의 카펫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그 모습을 보면서 김선우는 이승하한테 호되게 매를 맞은 것 때문에 아이가 저리된 거라고 이승하의 탓을 했다. 하준이 일에는 참견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 이승하의 말도 듣지 않고 그는 계속 블루리도에 남아있었다. 결국 이승하한테 뺨을 얻어맞은 뒤 집으로 돌아갔고 집에 가서 김종수한테 일러바치니 또다시 뺨을 얻어맞았다. 허구한 날 놀고먹기만 하는 아들이 빨리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김종수는 가문에서 가장 험한 일을 아들한테 맡겼다. 해외에서 패거리들과 몇 번 크게 싸우고 반쯤 죽도록 맞고 나니 김선우도 많이 얌전해졌다. 더 이상 횡포를 부리지도 않고 사람들과 싸우지도 않고 김씨 가문의 정규 사업들을 맡기 시작했다. 그럼 최소한 얻어맞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한편, 육성재는 지난 2년 동안 LK 그룹을 이끌고 북미 시장의 진출에 힘을 썼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씨 가문의 넷째 이동하도 북미 시장을 넘보고 있었고 이승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상씨 가문에서는 이동하에게 프로젝트를 많이 넘겼다. 이동하가 북미 프로젝트를 많이 따낸 것을 보고 육성재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고 직접 K국까지 가서 상연훈을 만났다. 5년이 지난 지금, 상연훈은 큰 형의 자리를 이어받아 서광그룹의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상씨 가문의 권력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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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2화

서유의 미모에 반해 점차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 여자가 잘되기를 바라니 그게 사랑 아니겠나?지금처럼 서유가 출산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남편과 아들,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진심으로 기뻤다. 가끔 이승하와 싸우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영원히 할 수가 없었다. 이번 생에는 말하지 못할 이 사랑을 가슴속 깊이 파묻은 그가 술잔을 들고 상연훈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예쁜 여자 좋아합니다. 서유 씨보다 더 예쁜 여자분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마음을 감쪽같이 속인 것인지 그를 한참 동안 쳐다보던 상연훈은 결국 단서를 찾지 못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죠. 그러나 육 대표님 안목이 워낙 높아서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런 여자를 만난다면 육 대표님한테 소개해 주죠.”피식 웃던 육성재는 술잔을 들어 상연훈과 건배했다.“예쁜 여자도 좋지만 좋은 프로젝트도 나한테 남겨주시죠. JS 그룹 혼자만 크게 성장하면 서광그룹도 발밑에 밟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난 상관없습니다. JS 그룹이라면 얼마든지요.”그 말에 육성재는 또다시 화를 벌컥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두 사람이 말다툼할 때, 레스토랑에서 귀청이 찢어질 듯한 뺨 소리가 들려왔다. 뺨 소리와 함께 한 여인이 바닥에 쓰러지더니 한참 동안 일어나질 못하였다. “상윤별, 똑똑히 들어. 내가 누구를 만나든 그건 내 마음이고 널 때리고 싶으면 때릴 거야. 상씨 가문의 수양딸이라고 네가 날 우습게 봐?”별 관심이 없었던 상연훈은 상윤별이라는 이름에 고개를 돌렸고 마침 그녀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자를 짚고 일어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 반쪽이 빨갛게 부어오른 그녀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앞으로 다가가 남편 앤드류의 팔을 잡아당겼다.“할 말 있으면 돌아가서 해. 밖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앤드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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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3화

사실 상연훈은 그녀가 미웠다. 분명히 그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그녀는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것도 집안을 제외하고는 전혀 내세울 것이 없는 날라리 재벌 2세. 그녀가 앤드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지금껏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놀 줄 알고 여자를 달래줄도 알고 때릴 줄도 아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지금 이런 꼴을 당하게 된 걸 누구를 탓하겠는가? 자업자득인 것이지... 다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날 밤,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상윤별이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채 그를 찾아와 애원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그는 한밤중에 이불을 젖히고 창가에 서서 마당 건너편 그녀가 이 집에 살았을 때 머물렀던 방을 보며 넋을 잃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꿈속의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아당기며 끊임없이 소리치는 장면이었다.“오빠, 나 좀 구해줘요. 죽을 것 같아요...”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투신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그녀가 지금껏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앤드류와의 결혼 생활 내내 그녀는 끊임없이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때면 상씨 가문으로 돌아와 하소연했었다. 그러나 상연훈의 어머니는 다 그렇게 산다며 참고 이혼하지 말라고 그녀를 설득했고 이 일을 절대 상연훈에게 알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어쩔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혼자 모든 일을 짊어져야 했고 최근 들어 앤드류의 여자관계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남편의 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앤드류는 그녀가 사사건건 관여한다고 그녀를 모욕했다. 욕설을 퍼부으며 그녀에게 손지껌을 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맨주먹이었다가 나중에는 무기까지 들었다.반쯤 죽도록 그녀를 때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여덟 살이 된 딸아이한테까지 손을 댔다.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딸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반항했다. 서로 밀고 당기는 사이 그녀는 차라리 같이 죽자라는 생각에 앤드류를 잡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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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4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던 그가 용기를 내어 옆에 있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로 마주친 시선, 피할 수 없는 시선에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애써 그를 보려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나한테 올래?”자신의 손 위에 놓인 커다란 그의 손을 보며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렇게 초라해진 자신을 싫어하기는커녕 그에게로 오라고 하다니...오랫동안 지옥에서 살아온 그녀가 어찌 감동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그녀가 어찌 스캔들조차 하나 없는 좋은 남자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오빠.”그녀는 웃으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 “난 오빠 여동생으로 사는 게 좋아요.”자신이 부족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그를 거절했다. 그를 좋아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가볍게 툭 내던진 한마디 말. “오빠한테 딴 마음 같은 거 없었어요. 오빠 어머니가 날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오빠랑은 함께할 수 없어요.”웃고 있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확인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맑고 깨끗한 두 눈은 진심을 얘기하듯 잔잔하기만 했다.한참 동안 쳐다보던 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 양복을 정리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방금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그가 떠난 뒤, 그녀는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연훈 같은 남자는 훨씬 더 좋은 여자가 어울리니까.얼마 후, 병원에서 퇴원한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딸과 함께 둘이 지냈다. 다행히 주하늘을 따라다니며 일을 하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마음을 빨리 정리할 수가 있었다. 그녀와 상연훈 사이에는 영원히 교차하지 않는 평행선이 있는 듯했다.그러다가 어느 파티에서 한 여인이 상연훈을 노리고 그의 술잔에 약을 탔다. 그 파티에 상윤별도 참석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고 의사가 올 때까지 버틸 수가 없었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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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5화

청첩장을 받은 서유는 그 위에 적힌 신부의 이름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셋째 오빠가 드디어 소원을 이루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달빛이 쏟아지는 눈부신 밤, 으리으리한 성당 안에서 상연훈의 초호화 결혼식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고급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그가 가슴에 하얀 장미꽃 한 송이를 달고는 맞은편 신부를 바라보는데 그의 시선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상윤별이 입고 있는 하얀 웨딩드레스 위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수없이 박혀 있었고 불빛에 드레스가 더욱 반짝반짝 빛이 났다. 결혼식장은 세계 각지에서 온 하객들로 붐비었고 떠들썩한 분위기, 맛있는 음식, 귀한 술 등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은은한 음악에 맞춰 그가 신부의 손을 잡고는 천천히 무대 가운데로 걸어갔다.두 사람은 결혼반지를 교환하고 결혼 서약을 낭독하고...그가 신부의 뒤통수를 감싼 채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그녀에게 진한 키스를 했다. 오래 이어진 키스는 지난 몇 년간의 기다림에 대해 보상받으려는 것 같았다. 키스를 마친 그가 다시 손을 뻗어 옆에 있던 상윤별의 딸을 어루만졌다.“이제부터 삼촌이 아니라 네 아빠가 될 거야. 허락해 줄 거지?”상윤별의 딸 제시카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폭행을 지켜보면서 아빠라는 존재가 무서웠다. 그러나 상연훈이 아빠가 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억 속에 상연훈은 엄마랑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만날 때마다 잘해주었고 몰래 용돈도 주고 학교에 보러도 왔었다. 삼촌이 표현에 서툴렀을 뿐, 엄마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아이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삼촌의 바람대로 엄마와 결혼했으니 딸로서 당연히 기쁜 일이었다. 제시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제부터 아빠라고 불러도 돼요?”아이의 말에 행복한 미소를 짓던 그가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늘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을 때, 성당 밖에서는 불꽃이 현란하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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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6화

제시카가 자리에 앉아마자 연이는 바로 케이크를 들고 제시카에게 건네주었다.“인형 친구, 무대에 오래 서 있어서 배고프지? 얼른 이거라도 좀 먹어.”혼혈 아이였던 제시카는 푸른 눈에 하얀 피부, 오뚝한 콧날을 가지고 있었고 푸른 눈동자는 반짝이는 별을 담고 있는 호수 같았다. 그런 여자아이는 연이의 눈에 그저 인형처럼 보였다. 연이는 자신도 제시카처럼 날씬하고 예쁘게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모와 이모부의 정성 어린 보살핌에 연이는 점점 더 뚱뚱해졌고 나중에 크면 진짜 뚱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생각에 케이크를 손에 들고 있던 연이는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걸 모두 제시카에게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이제부터 난 다이어트할 거니까 네가 나 대신 다 먹어.”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예의상 연이가 건네주는 케이크를 건네받았다.“하나도 안 뚱뚱한데. 되게 귀여워.”연이가 싱글벙글 웃으면 대답했다.“제시카, 귀엽다는 말은 뚱보한테 쓰는 말이야.”어색한 웃음을 짓던 제시카가 손을 저었다.“미안,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내가 한국어가 서툴러서...”천진난만한 연이보다 4살 어린 제시카는 뭐든 조심스러워 보였다. 열등감이 있는 건지 어린 나이에 말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줄도 알았고 상대가 기분 나빠하면 안절부절못하고 미안해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한테 매를 맞은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제시카의 얘기를 듣고 연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제시카의 어깨를 토닥였다.“농담이야. 뚱보라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미안해하지 마.” 여전히 미안하다고 하는 제시카를 보며 연이는 그녀와 함께 불꽃놀이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승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모부, 불꽃놀이 폭죽 가지러 갔다 올게요”이승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하준도 핑계를 대며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이내 이승하의 큰 손에 몸이 짓눌리게 되었다.“연이 누나는 아무 데나 돌아다니지 않지만 넌 아니잖아.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입을 삐죽거리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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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7화

상연훈의 결혼식이 끝난 뒤, 서유는 두 아이를 데리고 며칠 동안 상씨 가문에서 머물다가 귀국했다. 모든 것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두 부자간에 별로 말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름 평안한 생활이었다. 조지와 심이준 그리고 심혜진 세 사람은 가끔 연이를 보러 왔고 몇 번 마주치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짝을 지어 같이 연이를 보러 왔다. 심이준은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고 금 모으기를 좋아했고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보기에는 날라리 같아 보여도 지현우와 김초희가 남긴 회사를 꽤나 잘 관리하고 있었다. 두 나라를 오고 가는 게 불편했던 그는 아예 두 회사를 합병했고 김초희와 지현우가 만나 사랑한 곳에서 회사를 설립하고 우희건설이라고 회사 이름까지 개명했다. 두 정상급 디자이너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회사는 그의 홍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김초희를 안타까워했고 어떤 사람은 지현우를 안타까워했다. 쌍방에서 끊임없이 말다툼이 오갔지만 어느 누구도 어긋난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다. 한편, 나이가 든 조지는 더 이상 메스를 들지 않았고 자신의 능력을 학생들에게 다 가르쳐주었다. 그는 낚시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자연을 만끽하는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오직 하나 변하지 않은 건 매년 심이준, 심혜진과 함께 연이를 만나러 오는 것이었다. 인생의 배우자를 찾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세 사람 중 심혜진은 유일하게 행복한 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암에 걸린 그녀는 연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항암치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심씨 가문과 지씨 가문의 재산을 모두 연이에게 넘긴 탓에 연이는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돈이 많은 여자가 되었고 평생 먹고 입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심혜진이 죽던 날 서유는 연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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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8화

심혜진의 장례식이 끝난 뒤, 서유는 연이를 데리고 김초희를 보러 갔다. 두 사람이 김초희의 무덤으로 다가가 제사를 지낼 때, 하늘에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이하준을 차에 홀로 남겨둔 채 검은 우산을 들고 두 사람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었다.차에 홀로 남은 이하준은 차창 옆에 기대어 턱을 괴고는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에 또 제사를 지낼 기회가 생긴다면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마구 뛰어다닐 생각이다. 아빠가 뭐 어쩌겠어?서유는 연이를 데리고 김초희와 지현우를 위해 제사를 지낸 뒤, 주서희를 보러 파미란으로 향했다.매년 주서희의 기일이면 늘 이곳에 찾아왔었다. 하준이가 두 살이 되던 해, 서유는 아이한테 주서희의 무덤 앞에서 인사를 건네라고 하였다. 현재 다섯 살이 된 하준이는 이미 제사 절차에 익숙해진 듯 국화꽃을 무덤 앞에 놓고는 주서희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건넸다.그러더니 이승하가 한눈을 판 사이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뒤돌아서서 도망쳤다. 멀리 가기도 전에 큰손이 아이의 옷깃을 잡았고 아이의 작은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씩씩거리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던 윤주원이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제사가 끝나면 나랑 같이 서재에 갈래? 의학 지식을 가르쳐줄게.”하준이는 파미란에 오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이곳에 오면 의학 지식을 가르쳐주는 윤주원 삼촌이 있었으니까. 나이가 어려서 아직 잘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하준이는 흥미를 느끼고 더 많이 가르쳐달라고 윤주원을 졸랐다.윤주원이 서재로 데리고 가겠다는 말에 하준이도 순간 얌전해졌다. 하준이는 말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 있는 사람이나 일이어야 인내심을 갖고 몇 마디 할 뿐 평소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들은 하나하나 다 배웠었다. 김선우의 게임 실력, 육성재의 부하를 관리하는 능력, 상연훈의 총을 다루는 기술 그리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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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9화

주서희의 기일이 지나면 택이의 기일이 다가왔고 서유와 이승하는 아이를 데리고 Y국으로 향했다. 검은색 고급 차량이 멈추는 순간, 이하준은 숲속에서 사슴 한 마리가 뛰쳐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슴을 쫓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이승하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인지 어른들이 한눈을 판 사이 그가 차 문을 열고 숲속으로 달려갔다.그 모습에 서유는 얼른 차에서 내려 아이의 뒤를 쫓아갔고 차 안에 앉아 있던 이승하가 손을 흔들자 소수빈과 소지섭이 바로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을 뒤따라갔다. 묘원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이승하는 차에서 내려와 트렁크를 열고 국화꽃 한 다발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택이의 무덤 앞에 가서 허리를 굽히고 꽃을 내려놓았다. “택이야, 하준이랑 같이 너 보러 왔어.”매년 똑같은 말로 시작해 비석에 새겨진 택이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택이가 살아있었다면 소수빈과 소지섭처럼 하준이를 많이 예뻐했겠지... 어쩌면 그들보다 더 예뻐하지 않았을까? 택이라면 하준이를 안아 목말을 태워주고 하준이가 제멋대로 괴롭혀도 그냥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택이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택이가 하준이의 손을 잡고 석양이 쏟아지는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그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크고 작은 그림자가 머릿속에 희미하게 그려졌다. 현실이 아닌 모습이라 할지라도 이승하는 너무 그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택이의 얼굴도 점차 흐릿해졌다. 점점 택이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고 마치 영화가 끝난 것처럼 모든 것이 허무하게 변하고 사람의 얼굴마저도 세월의 흐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택이의 묘비를 잡고 과거를 회상하며 택이의 모습을 점차 잊어가고 있는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때, 검은색 코트에 베레모를 쓴 그림자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묘원의 다른 입구로 들어왔다. 이승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육성아가 자신을 보면 화를 내고 자신 때문에 아픈 기억이 되살아날까 봐 그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묘비를 한번 쓰다듬고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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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0화

한편, 나이가 꽉 찼는데도 아직까지 결혼을 안 한 이지민 때문에 유나희는 속이 타들어 갔다. 딸이 최적의 출산 시기를 놓칠까 봐 유나희는 명문 가문의 자제들 중에서 신랑감을 고르기에 바빴고 중매인을 통해 선 자리를 알아보았다. 선을 보러 가서 이지민은 상대를 정중히 거절하였고 자꾸만 늘어나는 선 자리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본가로 달려가 유나희한테 이런 쓸데없는 짓은 이제 그만하라고 하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지민이 본가에 돌아온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매번 이진철이 꾀병을 부리며 연락해야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 아직도 그 당시의 일을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유나희를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후회가 된 유나희는 그녀를 볼 때마다 고양이가 호랑이를 마주보듯 조심스럽게 행동했다.“나이가 들어서 아이가 없으면 많이 외롭고 아쉬울 거야...”그 말에 소파에 앉아 있던 이지민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어떤 부모가 있으면 어떤 자식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난 내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리 모질게 대하는 악덕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아요. 그 피가 어디 가겠어요? 굳이 자식들 괴롭히지 말고 나 혼자 사는 게 낫지.”가시가 박힌 말을 평생 재벌가 사모님으로 살아온 유나희가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 당시의 일은 확실히 그녀가 잘못한 것이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지민아. 엄마는 죽기 전에 네가 결혼하는 걸 꼭 보고 싶어서 그래.”이지민은 피식 웃었다.“이수 오빠랑 날 그렇게 반대하고 온갖 방법으로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더니. 이제는 결혼을 하라고요? 어떻게 그 말이 그리 쉽게 나올 수 있어요?”유나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잘못은 저지르면 언젠가는 벌을 받게 될 거라더니 그 업보가 이리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 상대가 친딸이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고 차가운 얼굴의 이지민을 쳐다보던 그녀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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