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장례식이 끝난 뒤, 서유는 연이를 데리고 김초희를 보러 갔다. 두 사람이 김초희의 무덤으로 다가가 제사를 지낼 때, 하늘에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이하준을 차에 홀로 남겨둔 채 검은 우산을 들고 두 사람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었다.차에 홀로 남은 이하준은 차창 옆에 기대어 턱을 괴고는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에 또 제사를 지낼 기회가 생긴다면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마구 뛰어다닐 생각이다. 아빠가 뭐 어쩌겠어?서유는 연이를 데리고 김초희와 지현우를 위해 제사를 지낸 뒤, 주서희를 보러 파미란으로 향했다.매년 주서희의 기일이면 늘 이곳에 찾아왔었다. 하준이가 두 살이 되던 해, 서유는 아이한테 주서희의 무덤 앞에서 인사를 건네라고 하였다. 현재 다섯 살이 된 하준이는 이미 제사 절차에 익숙해진 듯 국화꽃을 무덤 앞에 놓고는 주서희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건넸다.그러더니 이승하가 한눈을 판 사이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뒤돌아서서 도망쳤다. 멀리 가기도 전에 큰손이 아이의 옷깃을 잡았고 아이의 작은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씩씩거리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던 윤주원이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제사가 끝나면 나랑 같이 서재에 갈래? 의학 지식을 가르쳐줄게.”하준이는 파미란에 오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이곳에 오면 의학 지식을 가르쳐주는 윤주원 삼촌이 있었으니까. 나이가 어려서 아직 잘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하준이는 흥미를 느끼고 더 많이 가르쳐달라고 윤주원을 졸랐다.윤주원이 서재로 데리고 가겠다는 말에 하준이도 순간 얌전해졌다. 하준이는 말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 있는 사람이나 일이어야 인내심을 갖고 몇 마디 할 뿐 평소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들은 하나하나 다 배웠었다. 김선우의 게임 실력, 육성재의 부하를 관리하는 능력, 상연훈의 총을 다루는 기술 그리고
Last Updated : 2024-12-1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