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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성아연의 제안에 고은서는 꽤나 당황스러웠다.지난번 경찰서에서 성아연은 고은서를 지독히 미워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민아야, 너는 먼저 회사로 돌아가. 나는 잠시 볼일 있어.”고은서가 송민아에게 말했다.송민아가 물었다.“급한 일이야? 같이 가줄까?”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야. 개인적인 일이라서 그래. 맞아. 이제 친구로 지내기로 했으니 하나만 물어봐도 돼?”송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뭔데?”“당시 넌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거야?”고은서는 조금 의아했다.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호텔로 돌아오기까지 기껏해야 두 시간 남짓이었다.하지만 송민아가 어떻게 그 소식을 알게 된 것인지 너무 궁금했다.그 말을 듣고 송민아는 약간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누가 나한테 문자로 네가 병원 산부인과에 갔다고 알려줬어. 반신반의하면서 사람을 시켜 알아봤는데 정말 병원에 간 게 맞더라고. 임신 3주라는 사실까지 확인돼서 화도 나고 무서워서 호텔로 찾아가서 아이를 지우라고 협박했지.”말을 끝낼 무렵 송민아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비록 진숙희가 너를 해친 게 내 의도는 아니었지만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집에 가서 큰 소리를 지르며 화냈는데 아주머니가 내 편을 들어줫어. 하지만 난 절대로 아주머니가 너를 직접 해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고은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고 물었다.“누가 너한테 그 문자를 보냈는지 알아봤어? 번호는 있어?”송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번호는 있는데 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없는 번호라고 되어있더라고.”“그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그 문자를 보냈는지는 의심해 보지 않았어?”“시후 오빠를 좋아하는 어떤 여자가 산부인과에서 너를 보고 나한테 알린 것 같아. 시후 오빠를 좋아하는 여자가 워낙 많아서 그들 중 몇몇은 다른 여자들을 몰아내려고 나를 이용하거든.”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너 말고는 나랑 민시후 사이를 오해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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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특별히 날 보자고 했다던데 무슨 일이야?”고은서가 싸늘하게 물었다.성아연이 답했다.“엄마가 꽃에 물을 주다가 실수로 넘어져서 머리를 다쳐서 지금 병원에 있어. 병원에 가서 돌봐주고 싶지만 지금은 나갈 수가 없어. 고소를 취하해 주면 안 될까? 경제적인 보상도 좋고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도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고은서가 콧방귀를 뀌었다.“성아연, 나한테 이런 부탁 한다는 게 우습다고는 생각 안 해? 네가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 봐. 내가 용서할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성아연이 뭔가를 떠올린 몸을 떨고는 다시 간청했다.“은서야. 내가 잘못했어! 이번 한 번만 나를 용서해 줘. 앞으로 절대 너를 건드리지 않을게. 네 말만 들을게. 네가 무릎 꿇으라면 꿇고 발등에 키스하라고 하면 그것도 할게.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난 부하도 내 말만 듣는 사람도 필요 없어. 할 말이 이것뿐이라면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고은서가 자리를 뜨려 했다.“고은서!”성아연이 황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나도 너나 고씨 가문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뭐가 어쩔 수 없었는데? 백유미가 칼을 네 목에 들이대기라도 했어?”고은서가 싸늘하게 되물었다.성아연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은서야, 도와줘. 부탁이야. 정말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성아연, 내가 널 도와줄 리 없잖아. 네가 백유미와 손을 잡기로 했으면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든지 아니면 문제가 생기면 그 여자를 찾아가야지. 내가 아무리 만만해 보인다고 해도 네 멋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야.”말을 마친 고은서는 인내심을 잃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백유미가 우리 아빠의 불법 행위 증거를 가지고 있어.”성아연이 크게 외쳤다.고은서는 걸음을 멈추고 성아연을 돌아보았다.성아연은 얼굴을 감싸 쥔 채 말을 이었다.“아빠가 다른 사람이 금융 업계에서 돈을 버는 것을 보고 친구들과 의논해 업종을 바꿨는데 잘되지 않았어.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의 말만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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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은서야, 제발 날 좀 도와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을게.”성아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빌었다.그녀는 미세하게 몸을 떨었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은서야, 널 배신하고 사람을 시켜 널 납치하게 한 건 정말 내 잘못이야. 이번 한 번만 날 용서해 줘. 마지막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정말 맹세할게!”고은서는 성아연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대체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누가 널 이렇게 만들어서 나한테 와서 이러는 거야?”‘백유미는 아닐 거야. 백유미가 협박했다면 성아연이 두 사람의 관계까지 나한테 털어놓지는 않았겠지.’그 말을 들은 성아연은 더는 숨길 수 없다는 듯 울면서 말했다“며칠 전에 곽승재가 사람을 보내 나한테 경고했어.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그리고 단 이틀 만에 엄마가 다쳤어.”“그래서 네 말은 곽승재가 시켰다는 거야?”고은서가 놀라며 물었다.성아연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나한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는 하지 않았어. 하지만 곽승재가 그러는 게 널 위해서라는 건 알아.”성아연은 고은서에 대한 곽승재의 태도가 변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하지만 몇 년 전 일을 생각하면 성아연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지난번에 곽승재가 좋아해서 결혼했다고 말했을 때도 반신반의했다.좋아한다면서 몇 년 동안 냉담하게 굴고 심지어 결혼하고도 따로 방을 썼기 때문이다.하지만 성아연의 아버지가 아무리 인맥을 동원해도 그녀를 빼내지 못한다고 했을 때, 또한 이번 판결로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그제야 곽승재가 정말 화났음을 알 수 있었다.오늘 어머니의 예상치 못한 사고를 듣고 성아연은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곽승재가 고은서를 대신해 처벌을 내리고 있음을 말이다.그녀에게 제일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는 것을 말이다.그래서 성아연은 고은서에게 빌 수밖에 없었다.고은서가 얘기해야 곽승재가 그만둘 것 같았다.“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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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그리고 고씨 가문은 너희들 때문에 치명타를 입을 뻔했어!”고은서가 싸늘하게 일갈했다.“네 아빠에게 불법 행위를 자수하라고 설득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너희가 관용을 받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지.”“우리더러 죽으라는 거랑 뭐가 달라!”성아연이 울며 외쳤다.“집안이 망하면 우린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고은서가 답했다.“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해. 처음에 그 길을 선택했을 때부터 이런 결과도 예상했어야지.”“무슨 대가! 무슨 결과!”성아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고은서! 여기서 잘난 척하며 설교하지 마. 곽승재가 아니었으면 너희 고씨 가문이 뭐라도 될 것 같아? 지난 2년 동안 너희 가문에서 곽승재 덕을 봤다는 거 모르는 사람 있어? 네가 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척해? 우리는 너보다 운이 나빴을 뿐이야!”성아연의 독설을 들으면서도 고은서는 화내지 않았다.그녀는 차분하게 웃으며 답했다.“운도 내 시력이야. 너도 반성해 봐. 왜 하늘은 너에게 그 운을 주지 않았을지 말이야.”“너!”“성아연, 앞으로 날 찾지 마. 다시 널 만나는 일은 없을 거야.”말을 마친 고은서가 자리를 떴다.성아연은 뒤에서 소리 질렀다.“고은서! 이 못된 계집애야! 네가 곽승재를 부추켜 엄마를 괴롭게 만들었으니 너도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고은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답했다.“증거 있으면 신고해. 경찰은 악행을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니 나한테 죄가 있다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겠지.”“건방지게 굴지 마! 내가 널 어쩔 수 없다고 해서 백유미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성아연은 여전히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너는 나보다 천 배, 만 배 더 비참해질 거야! 하하하!”누군가 들어와 성아연을 제지했고 고은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경찰서를 나섰다.밖에는 여전히 밝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지만 고은서의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쓸쓸함이 스며들었다.10년간의 우정이 한낱 거짓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것이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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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회의실 밖으로 나온 곽승재가 연락을 받으며 담담히 물었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어딘가 설렘이 묻어 있었다.고은서가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그녀와 한 번 만나기보다 어려웠다.그런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으니 곽승재의 기분은 좋지 않을 리 없었다.“성아연한테 사람을 보냈어?”전화 너머에서 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만났어?”“그래. 엄마가 다쳤다던데 그것도 당신이 한 일이야?”곽승재가 차분히 답했다.“나는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업가야. 대화하러 사람을 보낸 건 맞지만 그 외의 일은 나랑 상관없어.”잠시 생각을 마친 고은서가 그 일에 집착하는 대신 물었다.‘곽승재의 행보를 떠올려 봐도 그래. 직접 나서서 성아연의 어머니에게 해를 끼칠 만한 일은 하지 않았을 거야.”“언제부터 성아연과 백유미가 고씨 가문을 상대로 뭔가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았어?”“나도 최근에 알게 된 거야.”곽승재가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고은서, 네 말이 맞았어. 성아연과 백유미는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 왔고 전에는 내가 널 오해했어.”곽승재의 말을 듣고 고은서는 드디어 병원에서 곽승재가 왜 주민기에게 그녀를 납치한 사람이 백유미와 관련되었는지 물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또한 어제 중국집에서도 고은서가 백유미에게 물을 뿌린 뒤 평소와는 달리 자신을 걱정하며 백유미를 무시했던 곽승재도 이해할 수 있었다.‘곽승재는 이미 백유미와 성아연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알아차렸던 거야. 그리고 백유미가 나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곽승재, 오해했다는 말 이제 무슨 의미가 있을까?”고은서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성아연에 했던 일로 나를 얼마나 몰아세웠었는지는 잊었어? 내가 괜한 문제를 일으키며 백유미를 괴롭힌다고 했지. 아무리 성아연의 행동이 나와는 관련 없다고 해도 믿지 않았잖아. 네가 보기에는 성아연은 내 절친이었고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내 의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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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고은서에게서 먼저 온 연락이 좋은 시작인 줄 알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다지 좋지도 않은 듯했다.‘하아... 이번 달 보너스는 물 건너갔구나.’곽승재는 직접 운전해서 육현석의 집에 도착했다.육현석은 캐주얼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헤어스타일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를 보자 육현석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형이 여긴 어쩐 일이야?”곽승재는 육현석 집 소파에 앉으며 꽃단장한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물었다.“어디 가려고?”육현석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더 활동적이고 밝고 멋지게 보이도록 했다.“지연이가 얘기했는데 다음 주에 시내 병원 몇 군데에서 배구 혼성 경기를 한다더라고. 그런데 지연이네 병원에 배구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외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대. 마침 시간도 있고 해서 구경도 할 겸 참여하려고.”곽승재는 그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지연이? 네가 언제 지연 씨랑 그렇게 친했냐?”육현석은 손을 휙휙 휘저으며 웃었다.“그냥 평범한 호칭일 뿐이야! 지연이가 친구 사이에 굳이 지연 씨 하면서 생소하게 부를 필요 없대. 그래서 서로 이름 부르기로 했어.”“그래서 성까지 빼고 부르냐?”“성까지 붙이면 딱딱해 보이잖아.”육현석은 말하며 곽승재를 향해 불평하기 시작했다.“형, 형은 늘 형수님 이름을 성까지 붙여서 부르는데 좀 더 애정이 담긴 호칭으로 부를 수는 없는 거야?”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난번 숙부가 주최한 집안 연회에서 친척들의 칭찬에 답하며 그는 고은서를 은서야라고 불렀었다.고은서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남몰래 눈을 흘기며 몹시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그 후로 그는 호칭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어차피 고은서도 그를 이름으로만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육현석은 곽승재의 생각을 눈치채곤 말했다.“형, 이건 자존심을 세울 일이 아니야. 친근하게 부르다 보면 형수님도 익숙해지실 거야.”곽승재는 그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너한테 가르침을 받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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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육현석이 곽승재와 함께 가고 싶어 하지 않은 이유는 박지연이 화낼 까봐 걱정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오히려 육현석은 박지연이 고은서의 일로 곽승재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미리 알리지 않고 곽승재를 데리고 나타난다면 박지연은 분명 참지 못하고 그를 향해 쏘아붙일 것이다.설령 박지연이 억지로라도 냉랭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곽승재처럼 도도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얼음장처럼 서 있는다면 분위기도 얼려버릴 게 뻔했다.그렇게 되면 누가 기분 좋게 배구를 할 수 있겠는가?‘형은 안 가는 게 나아.’곽승재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본 육현석은 억지로라도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내 웃으며 말했다.“형, 지연이한테서 연락 왔을 때 형수님도 그 자리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가도 도움 되지 않을 거야. 그냥 회사로 돌아가서 일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요즘 바쁘잖아.”곽승재는 그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그는 냉랭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육현석보다 먼저 문을 나섰다.“형, 걱정하지 마. 형수님 보면 바로 연락할게!”육현석이 서둘러 말했다.하지만 곽승재는 그를 무시한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걸어갔다.육현석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위로를 얻고자 일부러 나를 찾아온 것일 텐데 형과 함께 갈 용기조차 내지 못했어.’그러나 병원에 도착해 박지연과 그녀의 동료들을 본 순간 그는 곽승재가 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곽승재가 왔다면 갑과 을이 맞닥뜨리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을 테니 말이다.그랬다면 분위기가 완전히 깨졌을 것이다.“육현석! 여기야!”박지연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자 육현석은 멋지게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박지연은 병원 동료들을 소개해 주었고 육현석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훈련에는 상대 팀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번 배구 훈련에는 병원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도 참석해 다소 활기찬 분위기였다.첫 훈련은 가볍게 팀을 나눠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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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육현석은 자신의 배경과 외모를 이용해 여자를 꼬시지 않았는데 그 점은 존중받아 마땅했다.“시합에 도움 달라고 부탁하긴 했는데 바쁜데 괜히 온 거 아니야?”박지연이 물었다.육현석은 웃으며 답했다.“그럴 리가 없지. 너랑 다른 사람이랑 같아? 너는 형수님의 제일 절친일 뿐만 아니라 내 친구이기도 하잖아. 친구를 위해서라면 시합은 물론이고 목숨 거는 일도 마다하지 않지.”그 말에 박지연도 장난스럽게 답했다.“목숨 거는 건 어렵지 않아? 넌 피만 봐도 기절하잖아.”육현석은 박지연이 자신의 약점을 지적하자 멋진 얼굴에 순간적으로 붉은 기운이 돌았다.“나도 매번 그런 건 아니야! 전투력도 꽤 강해서 혼자서 세 명 상대해도 거뜬하다고!”“그래그래! 알았어. 믿어.”박지연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박지연의 모습을 보고 육현석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어색함이 조금 사라진 듯한 느낌에 그는 멋쩍게 코를 매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피만 보면 어지러워. 사람들은 내가 위험을 피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아.”박지연은 다정하게 위로를 건넸다.“괜찮아. 큰 병도 아니고 치료와 약물 복용을 병행한다면 훨씬 빨리 나아질 거야.”육현석 주위 사람들은 괜히 그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이 증상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도 스스로 창피하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치료받은 적도 없었지만 육현석은 굳이 이 사실들을 박지연에게 얘기하지 않았다.그는 박지연의 위로를 받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몇 시간 동안 운동 해서 피곤하지? 도와준 게 고마우니까 내가 밥 살게!”박지연이 제안하자 육현석은 흔쾌히 승낙했다.식사는 박지연이 좋아하는 한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두 사람이 주문을 끝낸 후 육현석은 박지연에게 곽승재가 며칠 전에 위장염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꺼냈다.“형은 어릴 때부터 위장이 약해서 자극적인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었어. 그런데 왜 갑자기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건지 병원에서 이틀 동안 링거를 맞았다니까 좀 안쓰럽더라.”“그렇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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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육현석의 반응을 본 박지연도 뭔가 눈치챈 듯 말을 이었다.“혹시 그날 식당 이벤트 곽승재가 기획한 거야? 은서가 당첨된 것도 곽승재의 계획이고?”육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지연아, 형은 정말 진심으로 형수님을 다시 잡고 싶어 해. 그러니까 이 일은 형수님께 말하지 말아줘. 응?”이 여행이 곽승재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고은서는 열에 아홉을 가지 않을 것이다.“곽승재는 어떻게 은서랑 가려고? 2인 여행권이었는데 당시 은서가 나랑 아름 언니한테 물었는데 둘 다 시간 없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 찾겠다고 하더라고.”“누구?”육현석이 물었다.박지연은 바로 답하지 않고 테이블 위의 하얀 도자기 찻잔을 들어 육현석에게 권하며 말했다.“일단 차부터 마셔”육현석은 박지연의 말에 따라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히고 한 모금 마신 뒤 재촉했다.“그래서 누군데? 애태우지 말고 형수님이 누굴 불렀는지 빨리 말해줘.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단 말이야.”박지연은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했다.“민시후.”쨍그랑!육현석의 찻잔이 테이블 위로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동시에 그의 얼굴도 얼어붙었다.“민시후?”육현석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말했다.“형수님은 어떻게 민시후를 데려갈 생각을 할 수 있어!”‘승재 형이 이 사실을 알면 큰일이야.’곽승재는 안 그래도 민시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게다가 얼마 전 민시후와 고은서 사이에 스캔들이 돌았고 곽승재는 아이가 민시후의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이 상황에서 고은서가 민시후와 함께 판다 기지에 간다는 걸 알게 된다면 곽승재가 얼마나 화를 낼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형수님은 언제 민시후랑 사이가 그렇게 좋아진 거야? 여행까지 같이 갈 정도야?”아직도 믿기 힘든 육현석이 재차 물었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지연아, 넌 분명 알고 있을 거야. 솔직히 말해줘. 형수님 마음속엔 이제 정말로 승재 형은 없는 거야?”“정말 몰라.”박지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하지만 한 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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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육현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도 이렇게 큰 노력을 들여 준비한 일을 그냥 날리고 싶지는 않을 거야. 민시후는... 형이 알아서 하겠지!’“그래!”육현석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형한테는 말하지 않을게. 형수님이 다른 남자랑 같이 있는 걸 보면 형도 자극을 받을 거야. 그러면 형도 자기 마음을 더 잘 알게 되겠지!”박지연은 곽승재가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보다 이전에 그가 고은서를 앞에 두고 다친 백유미를 안고 가면서 그녀를 무시한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이번에 만나게 된다면 그때 은서의 기분도 알게 되겠지! 한번 겪어보라지.’하지만 박지연은 그런 생각을 굳이 육현석에게 전하지 않았다.그녀는 육현석에게 다시 차 한잔을 따라주며 말했다.“자, 우리의 비밀을 위해 건배!”“건배!”...고은서가 ZY 그룹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시후가 그녀를 사무실로 불렀다.“점심은 송민아랑 먹은 거야?”민시후는 사무실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는 느긋하게 물었다.“그래. 왜?”“혹시 민아한테 남자 다루는 법 같은 거 가르쳐준 거 아니지?”민시후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민시후가 집착하는 곽승재를 우회적으로 비웃고 있다는 걸 알아챈 고은서가 그를 향해 눈을 흘기며 답했다.“민 도련님. 자뻑도 병이야. 시간 있으면 병원에 한 번 가봐. 민아도 일에만 몰두하고 있지 너한테 집착할 생각은 없어 보여.”민시후는 고은서의 답에도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송민아가 진짜 나를 놓아준다면 너한테 배당 더 해줄게. 감사의 표시로 말이야.”고은서는 그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대꾸했다.“그것 때문에 불렀어? 그렇게 민아한테 신경 쓸 거면 좀 잘해. 민아도 네가 그냥 그런 남자인 줄 알면 더 이상 쫓아다니지도 않을 거라고. 네가 쫓아다녀도 잡혀 줄지 모르겠고.”“뭐라는 거야!”민시후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흘겨보고는 반쯤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민아를 쫓아다닐 거면 널 쫓아다니는 게 나아. 적어도 네 얼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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