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의 모든 챕터: 챕터 41 - 챕터 50

1206 챕터

제41화

”엄마.”임진숙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진료실에서 한 여자아이가 불쑥 나왔다. 아이의 목소리에 의기양양하던 진숙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윤아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눈에 봐도 그의 딸 조보아임을 알 수 있었다. 보아는 손에 검사표를 들고 있었고 얼굴은 유난히 창백했다. 언뜻 보기에도 건강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도 콧대를 세우며 윤아를 조롱하던 진숙은 재빨리 몸을 돌려 아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뭐에 쫓기기라도 하는듯한 그녀의 행동에서 윤아는 뭔갈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남의 사적인 일에 별 관심이 없는 윤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잠시 후, 딸은 어디에 두고 왔는지 홀로 다시 돌아온 임진숙. 그녀는 윤아의 앞으로 다가와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말했다.“윤아 아가씨, 넌 똑똑한 사람이니 알겠지. 쓸데없는 말들은 입에 올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윤아는 그가 다시 돌아올걸 예상하고 있었다. 윤아는 입꼬리를 가볍게 올린 채 여유롭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아줌마, 제가 똑똑한 사람일지 아닐지는 제 기분에 따라 바뀌는 거라서요. 누가 제 심기를 건드린다면 저도 제 정신상태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정신이 홱 돌아버려서 무슨 말을 뱉을지는 저도 모르는 일이죠.”이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뭘 하려는 건지 둘 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윤아의 말에 임진숙은 표정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임윤아. 너 감히 날 협박해?”“제가 어떻게 감히 협박하겠어요. 그저 거래를 하는 거죠.”분노로 치를 떠는 임진숙.“네 일이 우리 보아보다 훨씬 커.”“그런가요?”윤아는 코웃음을 쳤다.“확실해요? 제 기억이 맞았다면 당신 딸은 아직 대학교도 가지 않았죠?”윤아의 말 한마디에 임진숙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윤아의 저 여유만만한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임진숙은 안 그래도 모든 걸 다 가진 이선아가 못마땅하던 차에 큰 건수 하나 잡아 진씨 가문을 풍비박산 낼 생각이었으나 하필이면 그때 딸이 나오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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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그들은 이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윤아는 더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식을 한 아름 사 들고 돌아오는 현아.“윤아야. 샌드위치랑 우유 그리고 사탕들도 샀어. 여기 매점엔 뭐가 많이 없더라고 이거라도 얼른 먹어.”현아는 포장을 일일이 까주며 말했다.“얼른 먹어. 배고프겠다.”윤아는 그런 현아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마워.”어찌 보면 현아가 윤아의 친엄마보다 더 마음 써주는 사람이었다.“고맙긴 뭘!”역시나 이번에도 현아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이 필요해? 고마운 거로 따지면 내가 너보다 더하지. 그때 네가 아니었으면 난 대학교도 못 다녔어.”윤아는 말없이 그저 웃었다. 윤아와 현아는 고등학교 때 처음 알게 돼 대학교까지 같은 곳에 붙게 된 끈끈한 인연이었다.그러다 어느 방학 때 현아의 아버지가 도박에 손을 대면서 현아의 집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별수 없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던 현아를 도와준 사람이 바로 윤아였다. 그는 현아의 사정을 알게 된 후 그녀를 대신해 빚을 갚아주고 직접 현아를 학교까지 데려다줬었다.오랜만에 옛 생각에 잠기기는 현아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추억에 잠겨있다고 말을 떼는 현아.“그거 알아? 나 그때 엄청 고마웠어. 네가 없었으면 난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몰라. 진작에 빚쟁이들에게 쫓겨 죽어버렸을지도 모르지. 넌 내 절친을 넘어 내 은인이야. 평생 잊지 못할.”현아의 고백에 기쁘기도 잠시, 그의 말을 들은 윤아는 저도 모르게 진수현을 떠올렸다. ‘그도 현아처럼 강소영을 평생 잊지 못할까?’이런 생각이 들자 윤아는 현아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내가 만약 남자라면 너 나한테 시집올 거야?”그 말의 속내를 알 리 없는 현아는 단번에 대답했다.“당연하지 자기야. 네가 남자였다면 난 너한테 흠뻑 빠져있었을걸? 아쉽게 여자라 절친밖에 못 하지만.”윤아는 그 말에 고개를 떨궜다.‘그렇구나. 진수현도 그럼 그렇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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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윤아는 입맛이 전혀 없었지만 현아의 닦달에 별수 없이 꾸역꾸역 우유와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현아는 윤아가 더는 못 먹겠다 하자 더는 강요하지 않고 주섬주섬 물건들을 정리했다.“어때? 좀 나아졌어?”“응.”현아는 목을 가다듬고 슬쩍 물었다.“그럼 오늘은 일단 돌아갈까?”윤아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현아는 그런 윤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돌아가자.”“그래.”윤아는 지금 안개 속을 거니는 듯 혼란스러웠다. 누군가가 나타나 그녀를 어딘가로 끌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느 쪽이든 말이다.윤아는 몸을 일으켜 현아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마침 코너를 돌던 그때, 윤아는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을 느꼈다.“하지만 엄마, 전 그 사람을 좋아해요.”한 여자아이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닥쳐!”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건 한 여자의 냉랭한 목소리였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니? 넌 그놈한테 홀딱 넘어간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엄마...”“이번 일이 지나면 너 다시는 그놈과 만날 생각 하지 말아라. 그딴 놈은 어차피 너와 어울리지 않았어. 누가 알게 되기라도 하면 앞으로 네 혼삿길은 는 거야.”여자의 호통 속에서 아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저 유리알 같은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윤아는 그 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현아도 잠시 눈길을 주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병원을 빠져나와서야 입을 떼는 현아.“아까 그 여자애 말이야. 아직 학생 같던데 참, 아직 어려서 그런가. 참 어리석네.”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리가 멀었지만, 윤아는 그 아이가 조금 전에 봤던 조보아임을 알아봤다.그때, 윤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 소리에 바짝 다가오는 현아.“너 전화 오는데 혹시 진수현? 벌써 후회하는 거 아냐?”진수현이 아니다. 발신 미상의 번호였다.“누구야?”왜인지 모르게 윤아는 이 낯선 번호를 보며 불쾌한 예감이 들었다. 머뭇거리다 전화를 받은 윤아.“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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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윤아는 진수현을 욕하는 현아에게 무어라 해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해명?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무슨 해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윤아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입을 꾹 다물었다.“됐어 가지 마. 만나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 해. 문자로 주소 하나 보내면 네가 갈 줄 알고?”화가 머리끝까지 난 현아를 오히려 윤아가 위로해줬다.“응. 나갈 생각 없어. 화 가라앉혀.”“내가 화내는 거로 보여? 난 네가 안쓰러운 거야.”그러던 중 현아는 불현듯 뭔가 떠오른 듯 가자미눈을 하며 말했다.“강소영이 자기 친구를 시켜서 널 만나게 한 걸 보니 어지간히 급한 게 아닌가 보네. 설마 네가 낙태를 하지 않고 진수현을 빼앗으려 할까 봐 두려운 거 아니야? 쯧, 그쪽도 완전 자신 있는 건 아닌가 봐?”윤이라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현아가 말리지 않아도 윤아는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일은 그녀와 진수현 사이의 일이지 다른 사람과는 관련이 없었다. 강소영의 친구든 강소영 본인이든.윤아는 현아와 헤어진 후 곧장 집으로 향했다. 연차가 꽤 길어 시간이 넉넉한 덕에 윤아는 요 며칠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정리할 심산이었다. 도대체 자기가 진정 뭘 원하는지를 말이다.한 편, 시내의 한 카페,강소영은 커피를 마시다 말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안 오는 거 아냐?”강소영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올 거야. 이 일을 해결하고 싶다면 말이지. 분명 지금쯤 엄청 무서워하고 있을걸? 넌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다 거의 다 오는 것 같으면 재빨리 숨어있기만 하면 돼.”모든 건 강소영의 친구가 세운 꾀였다. 소영은 불안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물었다.“뭘 어떻게 하려고? 아마 윤아 씨도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닐 거야. 이따가 얘기할 때 너무 세게 말하진 말아줘. 보상금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내가...”“소영아, 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뭘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니야. 임신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겠어? 진수현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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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그날 밤, 진수현에게 온 윤아의 문자를 몰래 지운 후부터 강소영은 내내 불안 속에서 살았다. 문자로 말한 걸 보아 직접 말할 용기는 없었을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소영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불안한 마음에 그날 바로 진수현을 불러내려고 했지만, 하필 그날 야근이 있어 나오지 못한다던 수현. 소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굳이 수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친구들 모임에까지 끌고 갔었다. 술을 진탕 먹고 뻗어버린 수현. 소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윤아와 직접 통화까지 했다. 소영은 어느새 불안함은 잊고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윤아의 반응을 보아 그녀는 이미 수현에게 실망한 듯 보였고 소영은 그저 진수현이 그에게 낙태를 권유했다는 소식만 슬쩍 전하면 되었다. 그리고 적당한 보상으로 입막음을 한다면 더는 망상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직접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수현에게 들켰다간 자기가 모든 죄명을 덮어쓸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소영은 은근슬쩍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흘려 자신을 대신해 모든 일을 해주길 바랐다. 예상대로 그의 친구들은 움직여줬고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하지만 심윤아가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을 줄이야. 소영은 생각이 많아졌다.‘대체 뭘 하려는 거지? 설마 정말 그 아이로 수현 씨를 협박하려는 건가?’소영은 비록 그 아이가 진수현의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수가 떠오른 소영이 입을 뗐다.“오지 않으려 하면 우리가 찾으러 가면 되잖아?”“찾으러 가자고? 이딴 일을 벌인 여자를 뭣 하러 찾으러 가?”“그래 소영아. 이렇게 뻔뻔한 여자는 자기 발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해.”소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쨌거나 일은 해결해야지.”간신히 웃어 보이는 소영을 보며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찬성했다.“그래. 우리가 찾으러 가자.”한 편, 집에 돌아간 윤아는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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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생각할 필요도 없다. 분명 강소영의 친구였을 테니까. 전화를 끄려고 했으나 뭔가 퍼뜩 떠올랐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건 쪽도 마침 침묵을 유지했다.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강소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윤아 씨, 나 소영인데...”친구가 안 먹히니까 본인이 나서겠다는 건가?윤아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대답했다.“네.”“저기, 우리 한번 만날래요?”이 말을 끝내고 소영은 그녀가 거절이라도 할까 봐 금방 말을 이었다.“주소 보내 줘요. 내가 찾아갈게요.”윤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지금 집에 있는데요.”저쪽에서는 한참 동안의 침묵이 맴돌다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그, 그게 무슨 뜻이에요?”“집에서 만나죠.”“...”또 침묵이 흐른다.“오늘 제가 좀 힘들어서요. 나가기 싫네요.”이 말을 듣자, 소영은 그제야 답했다.“알겠어요. 내가 윤아 씨 집까지 찾아갈게요.”전화를 끊은 뒤, 윤아는 갑자기 결심이 섰다. 이 아이를 낳겠다고.강소영이 왜 하필 이때 그녀를 찾아오겠는가. 진씨 집안 본가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런데도 오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그 하나뿐이겠지.-강소영은 생각보다 제법 일찍 도착했다. 십오 분도 되지 않아서 도우미가 그녀에게 도착 소식을 알렸다.“알겠어요.”윤아는 카디건을 걸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아가씨, 차 드세요.”도우미가 차를 강소영 앞에 놓자, 그녀는 도우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머리를 들었는데 마침 윤아가 아래층에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요 며칠간, 윤아는 제법 마른 것 같았다. 연하늘색 원피스에 새하얀 카디건까지 걸치니 평소보다 더 청순해 보였다.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투명하리만치 하얗고 언뜻 보기엔 창백한 입술에는 연한 분홍빛이 돌았는데, 아파 보이면서도 또 예뻤다.그저 한눈 쳐다봤을 뿐인데, 소영은 손가락을 몇 번이나 꼼지락거렸다.이런 여자가 매일 수현 씨 곁에 붙어있다니...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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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또 이런 말.윤아는 예전에 소영이 아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 여겼다. 타인을 대할 때에도 시원시원했고 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가 귀국한 요 며칠 동안, 소영은 이런 말을 두 번이나 했다.저번엔 수현 씨에 대해 말했고, 이번엔 집안 도우미였다.겉면으로 보기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내 것이라 정정하고 있었다. 이럴 자격이 없음에도 말이다.전에 수현 씨와 사귀는 사이였으면 그나마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니었잖아? 그래서 소영이 어떤 자격으로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강소영은 전에 그녀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윤아는 입술을 앙다문채 가슴에 얹혀있는 불편함을 가리앉히고 옅게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쾌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 윤아를 보니 소영은 솜뭉치에 주먹질한 듯 시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좌절감마저 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 소영은 윤아에게 웃으며 물었다.“우리 정원에 가서 얘기 좀 할까요?”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전에 윤아가 자기 친구들을 무시하던 태도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살짝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얼른 목소리를 낮게 깐 채 입을 열었다.“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 대화할 수 있는 좋은 곳이 아니에요.”윤아는 머리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하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만약 가능하다면 윤아는 정말 소영과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갚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신세가 아닐지 싶다.정원,윤아는 소영을 데리고 한적하고 고요한 곳으로 갔다.소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드디어 시름을 놓았다. 여기에서 말하면 문제없을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여긴 엿듣는 사람 없겠죠?”이 말을 듣자, 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이곳엔 도우미들이 잘 안 와요. 정원사들은 보통 오전에 와서 물을 주거나 다듬고요.”지금은 벌써 점심시간에 가까웠다.“다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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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이러면 안 되는데...윤아를 찾아오기 전, 소영은 그녀가 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만약 진짜 만만했으면 임신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소영은 앞으로 다가가 윤아 대신 봉투를 열었다.10억 원짜리 수표였다.소영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년간 수고했어요. 회사에서 수현 씨 많이 도왔잖아요. 그 사람도 나에게 윤아 씨 칭찬 많이 했어요. 능력도 좋고 착실히 일한다고 말이에요. ““내가 보기엔, 윤아 씨 심 씨 집안 장녀로부터 오늘처럼 되기까지 되게 힘들게 살아온 것 같아요. 이 액수는 너무 많지 않지만 내 성의니까 받아줬으면 해요. 좋아하는 것도 사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그러면서 몸보신 잘 해요.”몸보신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 소영은 윤아의 손목을 꼭 붙잡고, 손 끝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가볍게 눌렀다.윤아는 시선을 바로잡으며 소영과 눈을 마주쳤다. 자신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다가 안 됐다는 듯 머리를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며 더는 말할 수 없다는 뜻으로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소영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어제 사무실에서 수현 씨가 그녀에게 휴가를 내어주며 소영과 같은 말을 했었다. 몸보신을 잘 해라는 뜻이었다.얼핏 보기엔 자기 자존심을 지켜주느라 이런 암시하는 방식으로 말한 듯싶었다.윤아의 분홍 빛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그들의 배려에 고맙다고?몸 걱정 해줘서 고맙다고? 휴가도 내주고 돈도 주면서 건강 챙기라고 암시해 줘서 고맙다고?이걸 받지 않는다면 그들의 지극한 성의를 짓밟는 격이 되겠지.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혼자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했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자신이 앞으로 걸어야 할 길마저 다 정해놓은 것도 모르고......소영이 윤아의 눈에 비치는 분노를 보고 마침 입을 열려고 했을 때, 윤아가 수표를 밀어내는 것을 보았다. “윤아 씨...”돈을 안 가진다고? 왜? 소영은 잠시 당황했다.“혹시 액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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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소영은 윤아가 돈을 받지 않겠다는 말을 한 후, 눈에 띄게 당황했다.귀국한 뒤, 그녀는 수현이 윤아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수현은 아직 윤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만약 그가 알게 된다면...소영도 수현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몰랐다.하지만, 그녀의 촉이 알려주기를, 수현이 이 사실을 안다면 절대 그리 쉽게 윤아를 놓지 않을 것이다.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소영은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아 씨, 혹시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까 봐 두려워서 그래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 돈은 내 사비라 다른 이들이 아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도 윤아 씨 걱정돼서 그래요. 어쨌든 윤아 씨 형편...”“강소영 씨.”윤아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어갔다.“우선, 걱정해 준 거 고마워요. 우리 집 망한 건 맞지만 이 몇 년간 계속 노력하고 있다 보니 예전 같진 않아도 나와...”잠시 멈칫한 윤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날 먹여 살리는 건 문제 없어요. 그리고 소영 씨 예전에 나 많이 도와줬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이 돈을 더 받겠어요.”“괜찮아요. 이건 내가 윤아 씨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아뇨. 정말 못 받아요.”윤아는 봉투를 다시 소영의 손에 쥐여주고는 뒤로 물러서서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이 모습을 본 소영은 순간 뭔가를 알아챘다.윤아가 그녀의 돈을 거절한 것과 아까 말하다 멈칫한 것,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소영은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다.‘자신과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다 했어... 설마 아이를 낳겠다고?’이렇게 생각하자, 소영의 얼굴엔 핏기가 가시면서 창백하게 변했다.선한 이미지를 깨기 싫었지만 더는 입가의 웃음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소영은 서늘하게 물었다.“진심이에요?”윤아는 큰 반응을 보이는 소영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소영은 그녀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으니까.“네. 미안하게 됐어요. 소영 씨가 오기 전에 이미 마음 먹은 일이었거든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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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이런 마음가짐은 그녀가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윤아는 손을 들어 조심스레 아랫배를 만졌다. 그녀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이젠 그녀의 세상엔 또 한 명의 가족이 생기는 거였다.‘아가, 아빠 몫까지 엄마가 다 해줄게.’-어느덧 밖이 어둑어둑해졌다.물건을 정리하면서 오늘 밤 수현이 돌아올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별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차의 전조등이 대문을 비추는 것을 보자, 윤아는 난간에 걸친 손을 움츠렸다.진수현의 차였다.마침 잘 됐다. 윤아는 오늘 저녁에 그와 모든 얘기를 끝낼 예정이었다.결정을 내리고 그녀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짐 정리를 했다.평소에 쇼핑을 즐기지 않아서인지 물건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정리가 빠르게 진행되리라 여겼지만 정작 정리하다 보니 참 힘들었다.여기에서 보낸 이년이란 시간 동안, 그녀의 생활과 습관은 이미 이 방 곳곳에 스며들었다. 옷장, 침대, 화장대, 세면대, 소파 심지어 티 테이블에 놓인 여러 가지 물건 그리고 선반 위의 장식품들... 이 모든 것들에 그녀의 자취가 남겨졌다.결국 윤아는 옷 몇 벌과 일용품만 간단히 챙겼다.찰칵-밖에서 문고리를 비틀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윤아는 멈칫 동작을 멈추었다. 곧이어 차분하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윤아는 끝까지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수현은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마 그녀가 평생을 다 해도 갚지 못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수현에게 불쾌한 기색을 나타낼 수 없었다. 하지만 수현과 소영의 여러 번의 암시는 그녀를 난감하게 했다.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가 갑자기 우뚝 멈췄다.윤아는 길게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억눌렀다.세상엔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도망가서는 안 될 그런 것들.수현은 미간을 좁힌 채 눈앞의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두 개 옅은 색의 캐리어가 가지런히 침대 옆에 놓여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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