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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전화를 마친 연성훈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이건 주서진과 백아현의 약혼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백씨 가문에서 백아현과 주서진의 혼인을 추진하는 것은 주씨 가문의 사업 때문이다. 백씨 가문의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혹은 주씨 가문과 충돌이 생겨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주씨 가문과 합작해야 했다. 그리고 혼인은 가장 확실한 합작 방법이다.하지만 주씨 가문의 사업이 은행과의 합작에서 큰 문제가 생긴다면, 그들은 여전히 이 약혼식을 진행하려고 할까? 대답은 아니다, 였다.백씨 가문이 어떻게 방법을 찾을 것인지는 연성훈과 상관없는 일이다. 연성훈은 이미 판을 다 짜놓았으니 이제 주씨 가문이 밤새 바삐 돌아 챌 일만 남았다. 그러고 나면 내일 약혼식을 올릴 생각도 없을 것이다.약혼식이 급하게 취소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백씨 가문 사람들이 주씨 가문의 사업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되면 백아현을 주서진에게 시집 보내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화가 나도 아무것도 못 하는 주서진의 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연성훈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주서진 일가족이 홍연과 관계가 있으니 홍연 쪽에서는 주씨 가문이 몰락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홍연이 있는 곳에는 연성훈이 꼭 따라붙을 것이다. 주씨 가문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다. 코를 매만진 연성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현재의 연성훈이 할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2번의 행적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다.연성훈이 학교에서 떠나려고 할 때 갑자기 여덟, 아홉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연성훈을 향해 걸어왔다.대부분 사람들이 경비원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다른 한 사람은 안경을 낀 대머리 남자였고 적어도 사, 오십 대처럼 보였다.“교장 선생님, 이 자식입니다. 아까 운동장에서 싸우려던 놈이요!”한 경비원이 연성훈을 가리키며 얘기했다.순간 놀란 연성훈의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리고 속으로 욕설을 가볍게 내뱉었다. 백기현은 차를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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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중년 여자는 그제야 핸드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연성훈을 쳐다보았다. 미간을 살짝 좁힌 여자는 연성훈이 눈에 익다고 생각했지만 또 누구인지 떠올리지 못하는 듯했다.이곳에서 장사하면서 매일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9년 전의 사람을 떠올리기는 힘든 일이었다. “얼마 벌지는 못해요. 가격을 인상하면 학생들이 사지 못하니까.”중년 여자가 대답했다.연성훈이 고민하더니 얘기했다.“하나 주세요.”연성훈이 말을 마치자 옆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울렸다.“이모, 호떡 하나 주세요.”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연성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옆의 사람을 확인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놀라서 굳어버렸다.검은 드레스를 입은 예쁜 여자가 책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연성훈을 본 여자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서 굳어버렸다.“당신이 왜 여기에...?”...강성. 정원 아파트. 임설아의 집.백연아, 임설아와 임시아 세 여자는 소파에 누워서 벌벌 떨었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임설아와 임시아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거실 텔레비전 앞에는 백훈이 누워있었다. 백훈은 자기 허벅지를 끌어안고 계속해서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게다가 허벅지에서는 피가 심하게 흘러내렸다.그리고 그들 앞에 서 있는 롱코트의 남자는 비수를 손에 들고 여전히 온화한 표정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아직도 이 검을 어떻게 가진 것인지 안 알려줄 겁니까?”남자는 눈을 예쁘게 접으며 물었다.임설아의 집에 온 남자는 백연아를 포함한 네 사람에게 이 검을 어디서 가진 것이냐고 물었다.백연아는 돈을 갖기 위해서 연성훈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그저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중년 남자가 비수를 꺼내 들어 눈 깜빡할 사이에 백훈의 몸에 칼자국을 여러 개 놓았다.임설아 등 세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비명을 지르자 남자는 또 백훈을 찔렀다.백연아는 벌벌 떨면서 얘기했다.“이 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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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인해에 있는 연성훈은 강성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알 리가 없었다.사실 현재의 백훈에게 있어 연성훈에게 연락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성대 그룹의 하성국을 찾아갔다.전에 성대 그룹에 가서 그들을 방해한 탓에 하성국은 그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그 시각 연성훈은 분식집 앞에 서서 검은 드레스의 여자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당신이 왜 여기에...”이 여자는 바로 그가 전에 클럽에서 만났던 진비비였다.진비비는 교과서를 안고 말했다.“난 이 학교의 선생님이에요. 당신이야말로 여기서 뭐 해요?”연성훈은 마른기침을 하고 미간을 찌푸리고 대답했다.“전에 이 고등학교에 다녔거든요. 한번 와본 것뿐입니다.”진비비는 연성훈 옆에 서서 어색하게 그를 쳐다보며 얘기했다.“그, 전에 저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건 죄송하게 생각해요.”전에 클럽에서 진비비가 연성훈을 찾아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주지훈의 오해를 사 유화 클럽의 사람들과 모순이 생기지 않았던가. 그 당시의 진비비는 연성훈이 크게 다칠까 봐 걱정했다.연성훈은 손을 저었다. 그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진비비는 이를 꽉 물고 물었다.“오늘 저녁 시간 돼요? 그날 일 때문에 죄송해서요, 물론 당신은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불편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제가 밥이라도 한 끼 살게요.”“그저 지나가는 일일 뿐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연성훈이 담담하게 얘기했다.주지훈과 연애하는 여자니 연성훈은 그녀와 너무 많은 접촉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진비비는 그 대답을 듣고 굳어버렸다.예전에 학교를 다닐 때도, 선생님이 된 지금도 항상 많은 남자들이 진비비에게 매달렸다. 모든 남자들은 진비비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래서 진비비가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면 거절한 사람이 없었다.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처음 클럽에서 만났을 때부터 진비비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애당초 클럽에서 진비비는 거의 자기를 잡아먹어달라고 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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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연성훈은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뒤돌아봐요!”전화기 너머로 섹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성훈이 몸을 돌려 뒤를 보자 멀지 않은 곳에 붉은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긴 다리와 완벽한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바로 빨간 장미였다!연성훈의 표정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그쪽으로 걸어간 연성훈이 빨간 장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나를 미행한 겁니까?”연성훈의 눈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을 본 빨간 장미가 급하게 해명했다.“당신이라는 남자는 정말 분위기를 못 읽네요. 마침 이 주변에 일이 있어서 온 거라고요.”“아.”그제야 연성훈은 경계심을 풀었다. 또 호떡을 한입 베어 물고 물었다.“무슨 일인데요? 그 노인네가 나오기라도 하겠대요?”“그를 꾀어내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에요.”빨간 장미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아까 전화를 받았는데, 당신이 흥미를 가질 만한 소식이 있어요.”“음?”연성훈의 눈썹이 까딱였다.“홍연은 장미의 색깔로 킬러의 등급을 매겨요. 옐로우 킬러가 가장 낮은 등급이에요. 그다음은 블루, 레드, 골드 순서예요. 그 외에 우리처럼 색을 정하지 않는 킬러들은 더욱 뛰어난 최고급 킬러라는 뜻이죠.”빨간 장미가 얘기했다.연성훈은 흘깃 빨간 장미의 가슴께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장미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매우 이목을 끄는 장미였다.빨간 장미는 연성훈의 표정을 눈치채고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어때요? 예뻐요? 촉감이 어떤지 만져보고 싶지 않아요? 꽤 좋을 거예요.”그렇게 말한 그녀는 입술을 천천히 핥으며 연성훈을 유혹했다.놀란 연성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호떡을 한입 베어 물어 그 충동을 가라앉혔다.이 여자는 매우 위험한 사람이다.“독이 있을까 봐 못 만지겠네요. 만지고 죽고 싶지는 않거든요.”연성훈은 한편으로 호떡을 씹으며 얘기했다.“홍연의 등급 제도에 대해서는 잘 알아요. 그런데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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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연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빨간 장미가 입을 열고 물었다.“그곳으로 가려는 이유가 당신의 검 때문인가요, 아니면 전처를 구하기 위해서인가요?”묵묵히 있던 연성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결과는 같잖아요.”말을 마친 그는 빨간 장미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얘기했다.“다른 일이 없으면 저는 먼저 가볼게요.”사실대로 얘기하면, 빨간 장미는 매우 유혹적이었다. 게다가 계속 연성훈을 유혹하니 그는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정말 참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만약 빨간 장미가 연성훈의 신분을 모른다면 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빨간 장미는 연성훈의 신분을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은 명목상으로는 합작이지만 사실 연성훈은 홍연의 사람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홍연의 사람이 진심으로 합작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배신하고 자기를 죽이려는 것인지, 어떻게 알 방법이 없으니까! 만약 유혹에 넘어가 버리면 침대 위에서 죽을지도 몰랐다. 그 상태로 죽는다면 연성훈은 죽어서도 부끄러워하며 후회할 것이다.하여튼, 연성훈은 말을 마치고 빨간 장미가 입을 열기 전에 몸을 돌려 도망쳤다.빨간 장미는 그런 연성훈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삐죽였다.“괜히 사람을 달아오르게 만들어 놓고 뭐 하는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또 섹시하게 붉은 입술을 혀로 적셨다.두 사람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진 후에야 연성훈의 미간이 펴졌다.그는 자기의 검이 임설아 집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3년 동안 전혀 발견하지 못한 일이다.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임정문이 돌아간 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그 후에 연성훈은 집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다.연성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구해주는 거야. 임정문 씨가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이번 일을 마치면 나도 모든 빚을 다 갚는 거야.”따르릉.연성훈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진미영이 걸어온 것이었다.전화를 받은 연성훈이 얘기했다.“여보세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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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저기, 잠깐만요!”오혁은 큰 소리로 외쳤다.연성훈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자연스레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곧바로 기사에게 을지로 하이디로를 말한 후 훌쩍 떠났다.순식간에 느껴진 굉장한 기운에 오혁은 깜짝 놀라며 어리둥절했다.그는 자기 뺨을 세게 내리치며 자책했다.‘미친놈, 왜 핸드폰만 보고 있었어! 저 남자와 함께 스승님을 만나러 가면 난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건데. 젠장!’게임을 할 마음이 사라진 오혁은 주민등록증을 주머니에 넣은 후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와 곧장 자신의 아파트 단지로 뛰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방에 도착했다.들어가자 소파에는 단발머리의 아름다운 여자가 앉아있었고 테이블에는 간식이 가득 놓여있었다. 그녀는 TV를 보며 간식을 먹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인 오혁은 헛기침을 하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스승님, 조금만 드세요. 여자는 이렇게 많이 먹으면 무조건 살쪄요.”“3년 동안 이렇게 먹었는데 내가 살찌는 거 봤어?”여자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오혁은 울상을 짓고 있다. 물론 살은 찌지 않겠지만 이렇게 먹다가는 지갑이 텅텅 비어 홀쭉해질 지경이었다.“PC방 간다며?”여자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고 그녀의 질문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오혁은 급히 답했다.“스승님, 그분을 만났습니다.”막 과자를 입에 넣은 여자는 멈칫하더니 눈빛이 싸늘하게 돌변했다.“홍연을 말하는 거야?”“아니요, 사진 속 그 남자요. 그분 등에 엎드려 있었잖아요. 방금 PC방 입구에서 마주쳤어요.”오혁은 재빨리 말했다.“뭐라고?”여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차 타고 떠났어요.”오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제 앞으로 지나갔어요. 머리가 너무 길어서 처음에는 못 알아보고 신경 안 썼는데 어딘가 왠지 모르게 낯익어서 다시 보니까 그분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차 타고 가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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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연성훈은 말문이 막혔다. 연정환이 내뱉은 말이 곧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연정환의 곁에는 장건도 있었는데, 그는 마치 인해 최고의 재벌 2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개와 다름없었고 자신이 재벌들의 개가 된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그는 웃는 듯 마는 듯 경멸하는 표정으로 연성훈을 바라보더니 다시 진희에게 말했다.“진희야, 이 사람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얘 강간범인 걸 몰라? 가깝게 지내면 안 돼.”그 말을 들은 진희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무덤덤하게 장건을 보며 말했다.“제가 어떤 사람이랑 밥 먹든 그쪽이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은데요?”“좋은 마음으로 신경 써서 얘기해줘도 난리네.”장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연성훈은 장건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변화 없이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진희를 의아하게 바라봤다.강미주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강간범이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며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고 한동안은 어떻게 대화를 이어갈지 갈피는 못 잡는 경우가 일쑤였다.그러나 진희는 달랐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차분하다.“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연정환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래도 결혼 직전까지 갔던 사이인데 나한테만큼은 상냥하게 대해줘. 이참에 결혼도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난 널 좋아하고, 우리 아빠가 네 엄마를 좋아하니까 결혼하면 겹경사잖아!”“꺼져요!”화가 치밀어 오른 진희는 분노를 뿜어내며 소리쳤다.연성훈도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고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어디선가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정환아, 이제 그만해.”말한 사람은 방금 입구에서 들어온 진미영이다!옅은 화장에 프로페셔널한 옷차림의 진미영은 손에 가방을 든 채 싸늘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성숙하고 지성미가 넘치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겨우 30대 초반처럼 보였다.연정환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더니 얼굴에 꺼림칙한 기색을 띠며 입을 열었다.“솔직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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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곧이어 연성훈을 보며 말했다.“고마운 마음으로 식사 대접하려고 만든 자리인데 일 얘기는 그만하죠.”“9년 전에 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계신 거죠?”연성훈의 질문에 진미영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진희를 바라봤고 진희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엄마, 저 이번에는 진짜 아무 말도 안 했어요!”연성훈은 설명을 덧붙였다.“연정환이 그 일을 꺼냈을 때 다들 별 반응이 없어서 대충 예상했어요.”진미영은 고작 말 한마디를 통해 고려하지 못한 부분까지 연상하는 연성훈의 모습이 신기한 듯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진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솔직히 말하면 알고 있어요. 지난번 공항에서 만났을 때 인해 출신이고 몇 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고 얘기했잖아요. 진희가 많이 궁금했는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다가 성훈 씨에 관한 기사들을 보게 됐어요.”진미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갔다.“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엄청 정확하거든요. 물론 모든 건 제 추측에 불과하겠지만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 성훈 씨가 저희를 도와준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런 일을 저지를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잖아요.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연성훈은 깜짝 놀랐다. 인해에 돌아온 후, 이 일을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이 그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강위를 제외하면 진미영 모녀가 그에 대해 편견이 없는 유일한 사람들이다.그렇게 마음속으로 두 사람에 대한 호감이 한층 더 커졌다.“실은 억울하게 모함을 당했어요.”연성훈은 말을 덧붙였다.“제 결백을 증명하고 싶어서 이번에 인해로 돌아왔어요. 솔직히 저는 이제 대수롭지 않은데 부모님이 친척이나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눈총을 받는 게 너무 싫거든요.”진미영은 흠칫 놀라더니 붉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저도 인해에 인맥이 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연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같은 시각 인해의 어느 오피스빌딩 안의 큰 회의실에는 무려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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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주서진이 입을 열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주헌이 말했다.“그러니까 구윤아가 강성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인해로 오게 되었고, 그런 다음 신해 은행 다이아몬드 카드 소유자를 대신해서 우리 회사와의 모든 협력을 중단했다. 이 말이야?”그는 잔뜩 어두워진 표정으로 주서진을 보며 물었다.“넌 강성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주서진은 생각에 잠겼다. 강성에서 백아현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남건우와 함께 밖에서 여자를 꼬시며 논 게 전부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굳이 미움을 산 사람을 따지자면 연성훈밖에 없는데... 그가 신해 은행 다이아몬드 카드의 주인이라기에는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다. 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 불과하고 우연히 강진혁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그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된 게 전부였다.이런 사람이 어찌 신해 은행의 다이아몬드 카드를 가지고 있겠는가.카드는 주서진뿐만 아니라 주씨 가문 그 누구도 소유하지 못했다.“전 정말 아무 짓도 안 했고 미움 산 사람도 없어요. 기껏해야 연성훈이랑 다툰 게 다예요. 전에 백채령을 강간했던 연씨 가문 그 사람 알죠?”주헌은 미간을 찌푸렸다.주서진이 식사 중에 여러 번 언급했었기에 주헌도 연성훈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매번 웃음거리로 여겨졌을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연성훈이 연씨 가문 직계 가족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던 덕분에 자연스레 그가 다이아몬드 카드를 가진 사람일 리 없다며 단정 지었다.주헌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모르겠으면 구윤아를 찾아가서 도대체 누가 우리를 저격하고 있는지 물어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돈 문제에 그치지 않아.”그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신해 은행에서 협력을 중단하면 단기적인 자금 공백이 생기겠지만 이건 우리가 메울 수 있어. 지금은 한유 그룹에서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알아내는 게 제일 중요해. 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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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연성훈이 웃으며 말했다.“실은 한유 그룹 다니고 있어요.”진미영은 깜짝 놀란 듯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한유 그룹이요? 거기 대기업이잖아요.”“운 좋게 입사하게 됐어요.”그들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멀지 않은 곳에서 연정환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주스 한잔을 손에 든 채 연성훈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그는 연성훈의 곁을 지나며 술에 취한 사람처럼 몸을 비틀거렸고 그 탓에 손에 들린 주스는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었다.“조심해요!”진희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바로 그 순간 앉아있던 연성훈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몸을 피했고 아무도 못 본 사이에 발로 연정환의 다리를 걸었다.넘어지는 척하려던 연정환은 순식간에 중심을 잃더니 의자 쪽으로 몸이 쏠렸다.‘쿵!’그의 머리는 의자 위에 세게 부딪혔고 의자가 뒤로 밀려나는 바람에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쨍그랑!’주스가 담긴 유리컵이 바닥에서 산산조각 났고,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 파편이 오른손바닥에 박히자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아!”연성훈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진미영과 진희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연성훈이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조차도 몰랐다.“아이고, 우리 정환 도련님 괜찮은가?”연정환이 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봤음에도 연성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바닥에 웅크리고 걱정스럽게 물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장건은 표정이 어두워졌다.넘어지는 척하며 연성훈에게 주스를 쏟으려 했던 건 처음부터 두 사람이 계획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연성훈이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달려왔다.장건은 재빨리 달려와 연정환을 부축하며 연성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이 개자식아, 감히 우리 형을 다치게 하다니 넌 이제 끝장이야.”주위에서 식사하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연정환은 장건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섰지만 그 모습은 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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