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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왕의 비밀: Chapter 361 - Chapter 370

382 Chapters

제361화 자책

연일은 예를 취하며 옆으로 비켜섰다.연일을 향하던 강현우의 장풍은 그가 옆으로 비켜서면서 그 뒤에 있는 강현준을 향해 갔다.뒤에 사람이 있는 것을 몰랐던 강현우는 당황했지만 이미 멈추기에는 늦었다.그가 정신이 팔린 사이 장풍은 강현준의 가슴에 정통으로 맞았다.강현준은 가만히 서서 피하지도 않았다.위력이 강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내상을 입은 강현준의 창백한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형님!”놀란 강현우가 당황하며 비명을 질렀다.강현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손을 들어 입가의 피를 닦더니 고월영에게로 다가갔다.고월영은 고여추를 부축한 채로 자신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오는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어쩐 일인지 이 순간 그의 모습이 지옥에서 온 수라처럼 보였다.“전하… 전하… 다른 뜻은 아니옵고 언니는… 안 되옵니다! 전하! ”고여추는 비명과 함께 다시 감옥으로 끌려갔다.고월영이 다가가려고 했지만 강현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감옥 바깥으로 질질 끌고 갔다.“전하, 부탁드리옵니다. 언니는 척추를 다쳐서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반신불수가 될지도 모르옵니다!”고월영은 끌려가면서 간절히 애원했다.“전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치료만 끝내고 바로 감옥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제발요!”하지만 강현준은 아무것도 못들은 사람처럼 음침한 얼굴로 그녀를 질질 끌었다.감옥 문이 쾅 하고 닫힌 뒤, 강현준은 혐오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내치며 말했다.“다시 감옥에 발을 들이는 사람 있으면 포기할 때까지 쳐라! 여왕도 포함이다!”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가버렸다.연일은 비장한 표정으로 입구를 막아섰다.고월영은 아픈 손목을 문지르며 꽉 닫힌 대문을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라보았다.조용히 치료만 하고 돌려보내려 했는데 오히려 그런 행동이 현왕의 심기를 자극한 것 같았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연일에게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연일, 이따가 약을 달여서 보낼 테니 제발 약이라도 언니한테 먹여주거라.”연일은 착잡한 마음을 달래며 담담히 말했다.“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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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둘 만의 시간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와서 고월영을 덮쳤다.놀란 그녀는 품에서 비수를 꺼내 휘둘렀지만 상대는 그대로 그녀를 어깨에 둘러메고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너무 빨라서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고 제대로 된 반항도 할 수 없었다.나중에 점점 정신이 들면서 익숙한 향이 풍겨오자 그녀는 그제야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그에게 반항한다는 건 불가능했다.귓가에서 싸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그녀는 뭐라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하지만 손을 뻗은 순간에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그대로 제압했다.남자의 서늘한 입술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현왕…”그녀가 버둥거릴수록 그는 점점 더 거칠게 그녀를 참했다. 보드라운 입술을 열고 사내의 뜨거운 혀가 입안을 침범했다.“흡….”그녀가 아무리 고개를 돌리며 피하려고 해도 그의 입술은 집요하게 그녀를 파고들었다.저고리 끈이 어느새 풀어지고 서늘한 바람과 사내의 뜨거운 손길이 그녀의 옆구리를 쓰다듬었다.고월영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의 힘을 당해 내기엔 역부족이었다.점차 싫다고 반항하던 소리가 그의 침략으로 인해 달뜬 신음소리로 변해갔다.고월영은 깊은 절망과 무기력감을 느꼈다.사내의 입술은 목덜미를 타고 점점 아래로 향했다.곧이어 그의 입술은 가장 민감한 곳을 머금었다.고월영은 울음 섞인 신음을 내질렀다.“강현준! 이 나쁜 자식! 이거 놔… 흣! 하지 말라고….”알싸한 아픔과 짜릿한 쾌감이 동시에 전해지자 눈빛이 몽롱해지고 전율이 찾아왔다.강현준은 고개를 들고 뜨거운 신음을 토해내는 그녀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에서 뜨거운 정염이 불타올랐다.그는 팔에 힘을 주어 이 아름다운 여인을 꽉 껴안았다.정신을 차린 고월영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쳤다.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머리 위로 들려왔다.“여기서 나랑 밤을 보내기 싫으면 그만 움직여.”겁에 질린 고월영은 움찔하며 동작을 멈추고 비참한 얼굴로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그를 밀어내던 하얀 손은 어느새 그의 옷섶을 꽉 쥐고 있었다.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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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곡조라도 불러주거라

고월영은 더 이상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남자가 일부러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현준의 몸에서 진한 술 냄새가 느껴졌다.“또 술을 드신 겁니까?”성하지도 않은 몸으로 매일 술을 달고 사는 그의 행위가 그녀는 못 마땅했다.냄새를 맡아 보니 적지 않은 술을 마시고 온 것 같았다.“걱정해 주는 것이냐?”강현준은 시선을 내려 탐스럽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고월영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돌렸다.“술 마시고 주정이라도 부릴까 봐 그럽니다.”물론 지금 그가 한 행위도 술 주정이라면 술 주정이었다.강현준은 말없이 그녀를 빤히 보다가 풀숲에 그대로 누워버렸다.“아니….”고월영은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그와 함께 쓰러져 버렸다.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남자의 단단한 팔이 허리를 껴안고 있어서 벗어날 수 없었다.“옷이라도 제대로 입게 해주시지요.”그녀는 그의 가슴에 손을 대고 말했다.더 이상 안 좋은 말로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기분이 안 좋아.”강현준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너무하십니다! 전하께서는 현우 오라버니의 형님이잖습니까!”“하도 들어서 귀에 피딱지가 앉을 것 같으니까 그만하거라.”그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무슨 말을 해도 그는 안고 있는 팔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계속 이러시면 현우 오라버니랑 멀리 떠나겠습니다.”그녀는 당장이라도 그의 통제가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떠나고 싶었다.아니나 다를까, 그 말에 분노한 강현준은 그대로 몸을 뒤집어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뜨거운 입술로 다시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그만… 그만해요. 이거 놓으라고요!”고월영은 그제야 더 이상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이거 놓아주세요! 전하, 이러지 마세요! 다시는 전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사 옵니다!”알싸한 고통에 그녀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하지만 그는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이 신경도 쓰지 않았다.이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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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나는 괜찮다

고월영은 순간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기괴하게 변형되어 버린 이 관계에서 그녀는 더 이상 바로잡을 힘이 없었다.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도망가는 일밖에 없었다.멀리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는 것.허리춤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고월영은 긴 한숨을 내쉬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이 모든 게 끝이 있을 거라는 것을 믿어요….”강현준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그는 옷섶을 열어 맨살을 드러낸 뒤, 자신의 가슴 위에 그녀의 머리를 기대게 했다.남자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온도에 으슬으슬 춥던 느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고월영은 아는 노래가 몇 없었기에 대충 기억나는 대로 흥얼거렸다.강현준은 말없이 노래를 듣고만 있었다.잠든 줄 알고 흥얼거리는 것을 멈추면 손이 몸을 더듬기 시작했기에 노래를 멈출 수 없었다.그렇게 흥얼거리다가 피곤에 지쳐 하품이 나왔다.얼마나 흘렀을까. 졸고 있던 그녀의 귓가에 허전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들 내가 죽기를 바라는데 내가 죽으면 너는 행복해질까.”“유치하옵니다.”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몰려온 그녀는 불만스럽게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다시 잠에서 깼을 때 고월영은 자신의 침상에 누워 있었다.가장 먼저 보인 건 침상 옆에서 서책을 읽고 있는 강현우의 모습이었다.“깼느냐?”그녀가 깬 것을 본 강현우가 서책을 내려놓고 물었다.그는 병법서를 읽고 있었다.“현왕 전하는요?”고월영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잠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형님은 아침 일찍 나가셔서 안 돌아왔어.”강현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부군이 앞에 있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다른 남자를 물어보는 건 좀 너무한 것 아니냐.”고월영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기분은 좀 나아지셨나요?”어제까지 자책하며 힘들어하던 강현우였다.그 얘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스쳤지만 잠깐이었다.“아침을 형님이랑 같이 했는데 기분이 좋아보이더라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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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보상일까

그 말을 끝으로 강현우는 얼굴을 붉히며 가버렸다.고월영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울상을 지었다.강현우는 분명 오해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고도 할 수 없었으니 더 이상의 해명은 불필요했다.어차피 그녀와 강현우는 처음부터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고월영은 대충 씻고 아침도 거른 채, 고여추가 있다는 방으로 찾아갔다.“연일이 데려온 것 맞나요? 설마 또 싸운 건 아니죠?”침상에 엎드려 있는 언니를 확인한 고월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강현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런 일은 없었어. 어제 그런 일이 있고 내가 어찌 또 그래.”죄책감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는 경험은 평생 더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차라리 자기가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 형님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월영은 침상으로 다가가서 언니에게 물었다.“언니, 괜찮아요?”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고여추의 상태는 심각했다.고여추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깨물고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괘… 괜찮아. 조금… 불편한 것뿐이야.”“등이 많이 아프죠?”고월영은 의약품 상자를 내려놓았다.고여추가 주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좀 많이… 아프긴 하네.”“걱정 말아요. 지금부터 탈골된 뼈를 다시 맞추고 염증을 가라앉게 하는 침을 맞으면 괜찮아질 거예요.”말을 마친 고월영은 침구를 꺼냈다.안에는 특제 침관이 몇 개 남아 있었다.무 공자의 신분을 알 수는 없지만 그에게서 많은 도움을 준 건 사실이었다.고월영은 이곳에 온 뒤로 약물을 배합하고 침으로 많은 질병을 치료했지만 주사기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언니, 침으로 골조를 다시 맞출 테니 엎드려 계세요. 현우 오라버니는 시녀에게 뜨거운 물 대야를 가져다 달라고 하고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세요.”“그래.”여왕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고여추가 말했다.“여왕 전하는 정말 너에게 자상하신 분이구나.”“그래요.”고월영은 별말 없이 담담하게 대꾸했다.시녀가 뜨거운 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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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무례한 년

그 말을 끝으로 강현우는 3일 동안 왕부로 돌아오지 않았다.3일 뒤, 무안희가 성밖에 있는 마을에서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월영은 고여추와 함께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몸은 좀 괜찮아지셨나요?”고여추는 몇 걸음 앞장서 걷다가 고개를 돌려 고월영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등도 안 아프고 걸음걸이도 많이 수월해졌어. 거의 다 나은 것 같구나.”그녀는 동생의 의술에 못내 감탄하면서도 대체 누구에게서 배운 것인지 궁금증이 들었다.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면서 그녀가 의술을 배운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대체 얼마나 위대한 스승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우연히 의술에 관한 서책을 얻게 되었는데 한가할 때 몇 번 들추어 보면서 연습을 했었어요.”이 화제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던 고월영이 담담히 말했다.“아린 아씨를 보고 올게요. 아씨도 아마 많이 좋아졌을 거예요.”고여추의 표정도 순식간에 밝아졌다.“같이 가자꾸나.”무안희가 거주하는 침소로 도착했는데 등 뒤에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같은 년 때문에 여왕이 매일 밖으로 돌면서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 악랄한 년!”안비였다.고월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고개를 돌리자 안비가 씩씩거리며 이곳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앞에서 걷던 고여추는 다짜고짜 고월영을 향해 손을 치켜드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월영아!”하지만 이번에 고월영은 가볍게 손을 들어 안비의 손목을 잡았다.“무례한 년!”안비는 힘껏 바둥거렸지만 고월영의 손아귀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역시 무공을 습득한 년이야! 전에는 내 앞에서 병약한 양갓집 규수 티를 내더니!’가장 화가 나는 건 사람을 시켜 알아낸 결과, 현왕을 꼬셔서 밤새 산 정상에서 둘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용비는 비록 황궁에 머무르고 있지만 현왕부의 사정을 알려고 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아직까지 뻔뻔하게 현왕부에 붙어 있는 것도 못 마땅한데 오빠와 언니까지 왕부로 데려왔다는 건 왕부에서 자신의 세력을 침투시키려는 의도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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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모자 갈등

“마마.”고월영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안비를 바라보며 조용히 불렀다.“제가 마마라면 어떻게 두 아들의 마음을 돌릴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저와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게 아니고요.”“저를 그렇게 꺾어서 뭐하나요? 마마의 인생 목표가 며느리를 짓밟는 거라니.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궁중에 사는 여자들은 필생을 암투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고월영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사람이 살면서 비열한 수단을 통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면 그 마지막은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저를 꺾으면 두 아들이 마마만 사랑할 것 같나요?”고월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마마의 계획은 시작했을 때부터 승부가 이미 나 있는 판이었습니다. 마마는 결국 지고 말았고 이제 아무도 마마를 사랑해 주지 않을 겁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뒤돌아서 가버렸다.고여추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옆에 있던 지언이 다급히 말했다.“저… 전하. 왕비께서 안비 마마께 무례하긴 했지만… 왕비 전하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안비가 중간에서 시비를 걸지 않았다면 고월영은 평생 왕부에서 서책이나 읽으며 세월을 보낼지는 언정 지금처럼 속고 속이는 전쟁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강현준은 말없이 가녀린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바람이 불어와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아련하게 흩날렸다.어쩌면 그녀는 이미 황족의 생활에 질렸을지도 모른다.친족끼리도 서로 의심하고 모함하고 설계하는 삶.그는 갑자기 그녀의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더럽고 추하게 느껴졌다.유독 그녀만 혼자 햇빛 아래에서 걷고 있었다. 다만 그 걸음은 그에게서 점점 멀어지고만 있었다.안비는 뭔가 의식한 듯, 뒤를 돌아보다가 문 앞에 서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궁녀의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며 강현준에게로 다가갔다.“현준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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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무안희가 잡히다

“현준아!”안비의 얼굴이 분노로 하얗게 질렸다.강현준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안비가 뒤쫓아가려고 했지만 걸음이 너무 빨라 뒤따라갈 수 없었다.그녀가 정신을 파는 사이 아들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안비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는 두 아들이 순식간에 낯설게 느껴졌다.고월영의 수단이 고명해서가 아니라 신변에 믿을만한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 같았다.“무안희가 잡힌 것이냐!”그녀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궁녀에게 말했다.“당장 가서 알아보너라!”그녀는 무안희를 옆에 두어야 했다.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무안희밖에 없었다.안비는 두 아들이 절대 자신을 내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고월영이 중간에서 이간질해서 이렇게 된 게 분명했다.무안희만 돌아오면 그녀의 계략으로 손쉽게 고월영을 꺾을 수 있을 것이다.그날 오후, 무안희가 포로로 잡혀서 돌아왔다.돌아온 강현우의 몸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지만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월영아, 내가 그 여자를 잡아왔어!”왕부로 들어선 순간 그는 고월영을 찾아가서 칭찬을 조르는 강아지처럼 해맑게 말했다.무아린의 치료를 마친 고월영은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강현우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그 여자 정말 교활하더라. 글쎄 시장 장사꾼들 속에 숨어들었지 뭐니.”사람이 많은 곳에 숨어드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 같았다.“어제 단서를 잡았는데 그만 놓쳐버렸다가 오늘 겨우 잡아왔어.”강현우가 무안희를 잡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뻔히 보였다.고월영은 손수건을 들고 그에게 다가가서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었다.“일단은 목욕부터 하시는 게 어떨까요?”그녀가 물었다.“괜찮다. 지금 나랑 같이 그 여자를 만나러 가자꾸나. 화가 안 풀리면 실컷 캐도 돼. 내가 묶어놔서 도망 못 가!”강현우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무안희는 강현준의 정원에 묶여 있었다.“그 여자를 때려서 뭐 하나요.”너무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에 감화된 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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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충독

“그래?”고월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오라버니가 눈앞이 흐려져서 네 본모습을 보지 못해서 그러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똑똑히 보게 해줄 테니까.”잠시 후, 연일이 고용기를 끌고 왔다.“안희야.”무안희를 본 순간 고용기는 무작정 달려가려고 했지만 연일이 그의 손목을 묶은 쇠사슬을 잡아당겼다.무안희는 그의 손발을 묶은 쇠사슬을 보고 눈가에 실망이 스쳤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강현준을 바라보며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전하, 왜 저한테 이리도 모질게 대하시는 겁니까? 이 모든 건 고월영 때문에 벌어진 거예요. 믿기지 않으면 안비마마께 가서 여쭤보세요.”강현준은 조용히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오늘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니 구경만 할 생각이었다.“전하, 저는 전하를 위해 운조에서 천리를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전하를 위하다가 어머니 손에 목숨을 잃을 뻔하기까지 했어요.”“옛정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전하의 목숨을 구해준 저에게 이리 대하실 수는 없습니다!”무안희는 힘껏 몸을 비틀었지만 단단히 묶인 줄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전하, 제 마음은 언제나 전하에게….”“오라버니, 잘 들으셨지요?”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고용기에게 한마디 했다.무안희의 입에 물린 재갈을 뺀 것도 오라버니에게 그녀의 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조금 전까지 기대에 찬 얼굴로 고용기를 기다리던 그녀는 고용기에게 자신을 구해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 강현준에게 절절한 고백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고용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여자의 본모습을 하나씩 오라버니의 앞에서 까발릴 것이다.“월영아, 침상 가져왔어.”고여추가 내전으로 들어오며 강현준과 강현우에게 예를 취했다. 그녀의 뒤로 하인들이 작은 침상을 들고 들어왔다.한 사람만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침상이었다.“오라버니, 지금부터 충독을 해제할 거예요. 올라가서 누우세요.”고월영은 연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연일, 부탁할게.”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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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내가 한 게 아니야!

안비는 이 상황이 지독히 불만스러웠다.비록 안으로 들어오라는 허락은 받았지만 고월영의 허락이었다니.왕부의 안주인이 벌써 바뀌었단 말인가!그녀는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왔지만 두 아들의 시선은 고월영을 향하고 있었다.“오라버니, 지금부터 충독을 해제할 거예요. 그 시간 동안 뭘 보았든 뭘 들었든, 절대 움직이거나 발버둥치면 안 돼요. 알겠죠?”고용기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다가와 그의 혈자리를 봉인했다.고월영은 못 말린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참 성질 급하고 야만적인 것이 그의 평소 방식이었다.하지만 혈자리를 봉인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고용기는 말을 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저 여자는 일으켜 세우거라.”고월영이 무안희를 빤히 보며 말했다. 연일이 다가가서 바닥에 주저앉은 무안희를 억지로 일으켜세우고 기둥에 묶었다.“고월영, 허튼짓 하지 마!”무안희가 일그러진 얼굴로 울부짖었다.조급해진 안비도 입을 열었다.“고월영 네 이년….”“마마, 여기 남아서 계속 보고 싶으면 조용히 하세요.”고월영은 안비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벌떡 일어선 안비가 화를 내려던 찰나, 강현준의 싸늘한 시선이 날아왔다.결국 안비는 하려던 욕설을 목구멍으로 삼켜야 했다.아들의 성격을 아는 안비였기에 그가 한다면 하는 성격인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어쨌든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꼭 알아야만 했다.결국 앙비는 이를 악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고월영은 옥으로 된 그릇을 가지고 무안희의 앞으로 다가갔다.사지가 묶여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무안희는 그릇을 보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고월영, 더러운 수작부리지 마! 이러는 거 나를 없애려고 이러는 거잖아! 다들 속고 있는 거예요….”품에서 비수를 빼든 고월영은 주저 없이 무안희의 팔을 찔렀다.선혈이 팔목을 통해 방울방울 떨어졌다.충분한 선혈을 취한 뒤, 고월영은 고용기의 앞으로 돌아갔다.“현우 오라버니, 옷섶을 열어주세요.”“그래.”강현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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