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가 말했다.“저야 모르죠. 오빠가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상언은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역시 훌륭한 여동생이라니까.”상언이 떠나자, 어둠의 호리병이 말했다.“저도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네요. 이미 약속한 이상, 의사를 번복하진 않을게요.”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한 어둠의 호리병은 조급해했다.“약속한 건 지킬 건데, 그 표정은 뭡니까? 과연 부부답네요. 표정까지 똑같으니까요.” 이서와 지환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어둠의 호리병이 비아냥대기 시작했다.“보세요, 얼굴색은 물론이고, 표정까지 똑같잖아요.” “됐어요, 됐어.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네요. 여기에 더 있다가는 눈칫밥만 먹을 것 같다고요.” “저희는...”이서가 막 입을 열었는데, 어둠의 호리병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참, 하 대표님, 보수는 두둑이 챙겨주실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한 값을 드릴 테니까요.”지환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어둠의 호리병은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하며 떠났다.별장 안에는 이제 이서와 지환만 남았다. 이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무엇이든 말하지 않고 가버리면 지환에게 항복하는 것 같아서 계속 망설였다. “먼... 먼저 가볼게요.”이서가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이서야.”지환이 이서를 부르자,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날의 일은 내가 잘못했어.”지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용서해 줘.”이서는 고개를 돌렸으나, 지환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언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네가 소지태를 만났던 날 말이야. 내 질투로 네가 상처받게 해서 미안해. 나는 몇 번이고 너한테 내 진짜 신분을 말할 기회가 있었어. 내가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우리 사이도 오늘처럼 되진 않았을 거야.”“하지만...” “내 분노마저 너한테 풀었으니, 나는 용서받을 수 없겠지.” 그 순간,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게다가 그 일에는 하지환 씨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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