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환의 카리스마에 어르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본 것처럼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지환 씨.”이서는 곧장 지환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그는 이서에게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심씨 가문의 어르신에게 시선을 옮겼다. “당신이 하지환 대표님...?”어떤 사람은 승복할 수 없는 듯했다.“당신이 하지환 대표님이라면, 나는 옥황상제일 겁니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을 찢어 죽일 듯한 지환의 눈빛에 말문이 막혔다. “하지환 대표님이 맞습니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심근영이었다.이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제가 하 대표님을 만난 적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심근영이 지환을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게다가 그 자리에는 소씨 가문도 함께였습니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소씨 가문의 가주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지요!” ‘하긴, 심 대표가 하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우리는 엄청나게 흥분했었지.’어떤 이는 지환의 외모에 호기심을 느끼고 약속 장소에 찾아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이서는 진작에 지환의 진짜 신분을 알 수 있었을 터였다.옛일을 다시 꺼내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생각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윤 대표의 남편이 YS그룹의 대표인 데다가, 하은철의 둘째 삼촌일 줄은 누가 알았겠어?’“그러면 하은철은... 정말로 세상을 떠난 겁니까?”어르신은 다른 사람이 묻고 싶은 말을 뱉어냈다. “못 믿겠다는 겁니까?”지환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어르신은 그 눈빛에 덜덜 떨며 말했다.“나는...”“애초에 심씨 가문이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한 건, 제가 나서서 벌인 일입니다.”“불만이 있다면 제게 오시면 될 일이지, 어린 여자를 상대로 할 필요는 없는 일이죠.”“아, 그저 윤씨 그룹을 적대시하고, 제 아내를 적대시하고
“분명히 말씀드렸는데요.”“어르신들께서 제 딸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저는 심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포기하겠다고요!” 어르신은 그제야 소희의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재빨리 말했다.“심 대표,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은... 다 농담이었어, 농담. 소희가 윤 대표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하 대표님인 걸 알고 우리를 도왔으니, 우리 심씨 가문의 훌륭한 딸인 셈이야. 그런 아이를 어떻게 내쫓을 수 있겠나?”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강경숙과 심유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맞아요, 맞아요, 다 오해였어요!” 소희는 그 와중에도 군중 속에 숨어 있는 강경숙과 심유인을 노려보았다.두 사람은 이를 갈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소희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강경숙은 곧장 안색을 바꾸고 웃음을 띠었다. 게다가 곁에 있는 심유인의 팔을 꼬집으며 표정 관리에 집중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소희는 차갑게 웃으며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어르신과 눈을 마주쳤다.“오해요? 이전의 일은 확실히 오해였지만, 제가 게임 회사의 기밀을 훔친 일은요? 그건 증거가 확실한 일이었어요. 경찰조차도 제가 벌인 짓이라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어르신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그... 그것도 오해야...”“무슨 오해요?”“그... 그건...” “증거가 경찰서에 떡하니 있는데, 저와 이서 언니의 관계 때문에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시려는 건 아니겠죠? 제 생각엔, 제가 스스로 심씨 가문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 말이 끝나자, 소희는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갔다.이지숙은 이 모습을 보자마자 소희를 붙잡으려 했지만,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심근영에게 가로막혔다. 그녀가 의아해하던 찰나, 심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소희를 가로막는 것이 보였다. “소희야, 이러지 마. 우리는 너를 믿어. 너는 절대 회사의 기밀을 훔치지 않
‘만약 그 일의 배후가, 조작된 증거를 만든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심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사람은 우리 모녀가 될 거야!’강경숙의 남편은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녀는 심씨 가문에서 의지할 데가 없었다.만약 모든 사실이 밝혀진다면, 아무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을 터.소희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강경숙은 마음이 불안해졌다.“오해가 풀렸으니 다행입니다.”어르신이 지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모처럼 심씨 가문을 방문해 주셨지만, 지금 저희 상황이...” 어르신이 시계를 한 번 보았다.“10시 반이네요. 하 대표님, 남아서 식사라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환도 시계를 힐끗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이천, 여기 남아서 상황을 수습해.”“대표님...”지환은 이천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다.“대체 왜...”어르신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이천은 어르신의 말에 대답하기 귀찮아 빠른 걸음으로 지환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아직 몇 걸음을 떼지도 않았을 때, 한 그림자가 그보다 빨리 지환에게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이천은 그 그림자의 주인공이 이서라는 것을 확인하고 멍해졌다.한편, 이미 입구에 도착한 지환도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쫓는 것을 느꼈다.발걸음을 멈춘 그는 이서를 보고 잠시 넋을 놓았다.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서는 지환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고, 직접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지환은 그제야 시간을 한 번 보았다.‘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그도 이내 차 안으로 들어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중에 두 사람은 모두 말을 하지 않았는데, 차는 곧 한 별장 앞에서 멈추었다.지환이 차에서 내리자, 이서도 따라 내렸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별장으로 걸어갔다.이서는 별장 안에서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하하, 제가 그랬죠? 절대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보세요, 12시까지 30초밖에 안 남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계속해서 땅에 발을 굴렸다.어엿한 어른이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지환아, 네가 어서 방법 좀 생각해 봐. 나는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 그는 곧장 문 쪽으로 걸어갔다.거실에는 곧 지환과 이서만이 남았고, 어둠의 호리병의 시선이 이서에게 떨어졌다. “하하, 그쪽이 바로 윤이서 씨? 그쪽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는 덕분에 제가 내기에서 이겼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 대표님을 물러나게 할 방법은 없었을 거예요. 당신은 제 은인입니다.” 이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계속해서 어둠의 호리병을 쳐다보았다.어둠의 호리병은 그녀의 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이서는 어둠의 호리병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어둠의 호리병이 지환에게 물었다.“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저를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거죠?” “설마, 저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겠죠?”어둠의 호리병은 점점 더 과장되게 말했다.지환이 눈썹을 찌푸리고 막 앞으로 나아가려던 찰나, 이서가 몸을 곧게 펴며 외쳤다.“이제 알겠네요!” 지환과 어둠의 호리병은 이해하지 못한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가 말했다.“왜 억지를 부리시는지 알겠다고요. 하도훈 쪽에 대단한 고수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해서, 하지환 씨와 협력하고 싶지 않으신 거죠?” “뭐라고요?!”어둠의 호리병은 화가 나서 몸에 묶인 그물을 풀어냈다.지환은 이 장면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서의 앞을 막아섰다.“벗어날 수 있었군요?”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헛소리! 내가 누군데, 하도훈이 고용한 그 고수들을 두려워한다는 겁니까?” “저는 다크웹의 3위를 차지하는 킬러라고요!” “허세는 누구나 부릴 수 있어요. 저도 제가 다크웹의 1위를 차지하는 고수라고 말할 수 있다고요!”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당신!”어둠의 호리병은 이서의 말에 분노하며 피를 토할 뻔했다.“됐습니다, 더
이서가 말했다.“저야 모르죠. 오빠가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상언은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역시 훌륭한 여동생이라니까.”상언이 떠나자, 어둠의 호리병이 말했다.“저도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네요. 이미 약속한 이상, 의사를 번복하진 않을게요.”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한 어둠의 호리병은 조급해했다.“약속한 건 지킬 건데, 그 표정은 뭡니까? 과연 부부답네요. 표정까지 똑같으니까요.” 이서와 지환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어둠의 호리병이 비아냥대기 시작했다.“보세요, 얼굴색은 물론이고, 표정까지 똑같잖아요.” “됐어요, 됐어.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네요. 여기에 더 있다가는 눈칫밥만 먹을 것 같다고요.” “저희는...”이서가 막 입을 열었는데, 어둠의 호리병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참, 하 대표님, 보수는 두둑이 챙겨주실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한 값을 드릴 테니까요.”지환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어둠의 호리병은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하며 떠났다.별장 안에는 이제 이서와 지환만 남았다. 이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무엇이든 말하지 않고 가버리면 지환에게 항복하는 것 같아서 계속 망설였다. “먼... 먼저 가볼게요.”이서가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이서야.”지환이 이서를 부르자,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날의 일은 내가 잘못했어.”지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용서해 줘.”이서는 고개를 돌렸으나, 지환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언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네가 소지태를 만났던 날 말이야. 내 질투로 네가 상처받게 해서 미안해. 나는 몇 번이고 너한테 내 진짜 신분을 말할 기회가 있었어. 내가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우리 사이도 오늘처럼 되진 않았을 거야.”“하지만...” “내 분노마저 너한테 풀었으니, 나는 용서받을 수 없겠지.” 그 순간,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게다가 그 일에는 하지환 씨뿐만 아니라,
“하지만, 1위와 2위는 오랫동안 주문을 받지 못했어.”지환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이서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녀는 모처럼 지환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지환은 이 기회를 틈타 허튼소리를 하기 시작했다.“그건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사람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 이서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요? 하지환 씨는 다른 사람의 소문을 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지환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어쨌든 전설적인 인물들이잖아. 어때, 들어볼래?” 이서도 지환과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지환은 표정을 풀고 이야기를 엮기 시작했다.“다크웹의 1등과 2등은 부부 사이이고,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대. 하지만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결국은 도둑질에 발을 들인 거야.” “하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고, 남자는 반죽음이 되어 목숨까지 잃을 뻔했대.”“그 후에 강해져야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훈련을 시작한 거래.” “결국은 다크웹의 거물급 인물이 돼서 소문만으로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게 된 거지.”이서가 이 말을 듣고 잠이 밀려오는 듯했다.“아, 그래요? 진부한 무협 이야기 같은데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 지환이 무의식적으로 말했다.“미안해.”“사실 내가 지어낸 이야기야. 이서야,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어.” 그 순간, 옆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지환은 고개를 한쪽으로 치우친 채 두 눈을 꼭 감은 이서를 보자, 긴장된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그는 손을 들어 이서의 뺨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럼에도 이서가 눈을 뜨지 않자, 그제야 안심한 지환은 그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익숙한 촉감에 지환은 심장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다음날.잠에서 깨어난 이서는 자신이 병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서가 이상하다는 듯 고이서를 바라보았다.“저는 단지... 고 팀장님, 아무래도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넋이 나간 고이서는 그제야 자신의 반응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급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면 다행이네요. 외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상사분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거든요.”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에는 반감을 보이기도 하셨어요.”“죄송합니다. 윤 대표님, 제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하신다면, 언제든지 숨기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저는 고 팀장님이 다정히 대해주시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인간미 있어 보이잖아요.”이서의 표정에 확실히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고이서는 그제야 몰래 한숨을 돌리고 살짝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나섰다.하지만 이서는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순간 생각에 잠겼고,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 다시금 고이서의 자료를 살폈다.하지만 그 어떠한 문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까 그 표정은...’‘그 당황한 표정은 절대 꾸며낼 수 없는 거였어.’‘왜 그렇게 당황한 거지?’ 이서는 하루 종일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느라 소희가 걸어온 전화를 못 받을 뻔했다.“나한테 밥을 사주겠다고?”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심 대표님이 윤씨 그룹의 대표인 나와 결탁했다고 오해할까 봐 두렵진 않아? 다른 심씨 가문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 사람들은 형부가 YS 그룹의 대표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절대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어요. 오히려 매일 같이 언니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고요.][게다가 저희 아빠는 언니가 우리를 도와줬다고, 언니와 형부가 아니었으면 제가 얄짤없이 심씨 가문에서 쫓겨났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두 분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으시대요.]“이제야 호칭을 바꿨구나.”이서가 웃으며 물었다.“어때, 새 부모님을 받아들인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소희는 다소 쑥스러워했다.[예전에는 왜 저를 잃어버렸는지 원망했었는데, 지금
점심부터 마음이 흐트러져 있던 이서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섰다.부하 직원들은 정말이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윤 대표님이요,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네요.”“그러게요, 데이트 가시는 건 아니겠죠?”“데이트는 무슨요, 대표님은 이미 결혼하셨잖아요.” “결혼이라뇨, 이미 이혼한 것 같던데요? 그렇지 않으면, 윤 대표님의 남편분이 이렇게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을 리 없잖아요.” “참, 요즘 윤 대표님의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아 보였잖아요. 어쩌면 정말 이혼을 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지 않을까요? 윤 대표님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지셨잖아요.” “지금도 평범한 직장인과 어울리는 건, 윤 대표님께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말도 마세요.”“생각 좀 해보세요, 누가 대표님의 남편분이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비아냥댄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한창 열띤 이야기가 오가던 찰나,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뭐가 기분 나쁘다는 거죠? 어차피 윤 대표님은 조만간 그분을 본인과 같은 위치로 올려놓으실 텐데요.”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떨어졌다. 그녀는 고이서였는데,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고 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표님께서 남편 분을 도와 회사를 차리게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고이서는 영문을 모르는 바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했다.“와, 윤 대표님의 남편분이 정말 부러워요. 가진 것도 없이 돈줄과 결혼해서 인생이 편 거잖아요.” “그러게요, 윤 대표님께서 회사를 차려주신다니,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네요!”“저도 그런 와이프를 얻고 싶습니다!” “...”고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 우스워졌고, 이미 차에 오른 이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곧 숨길 수 없는 광기가 드러났다.‘다 내가 가져야 했던 것들이야!’ ‘네 것이 아닌 내 것!’‘저
운전기사는 놀라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아직 의식이 남아 있던 이서는 잠시나마 그 남자의 눈동자를 응시했다.‘날 노리는 거구나.’ 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어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문을 열기도 전에 남자의 차가운 손이 목덜미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뼈를 깎는 고통이 밀려오자, 이서는 눈을 크게 뜨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커다란 손을 뻗어 이서의 눈을 가렸다.“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나도 너처럼 보기 드문 미인을 죽여야 하는 게 너무 안타깝거든? 그런데 어쩌겠어? 그게 내 임무인걸. 임무는...”이서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뜨거운 선혈이 자기 얼굴과 목, 그리고 온몸에 튀는 것을 느꼈다. 그 선혈은 뜨겁고 끈적거리기 그지없었다.하지만 분명히 이서의 피는 아니었다.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쿵!잠시 후, 그 남자가 굉음을 내며 그녀의 곁에 쓰러졌다. 이서는 그제야 남자의 손을 떨쳐내고 세상의 빛을 마주했다. 차량 지붕에는 굽은 칼을 현란하게 돌리고 있는 어둠의 호리병이 있었다. 그가 쥔 칼에 검붉은 선혈이 묻어 있는 것을 본 순간, 이서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당신이 죽인 거예요?!”이서는 자신이 보기에도 매우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하지만 어둠의 호리병은 개의치 않고 거들먹거리며 말했다.“왜요, 문제 있어요?” 이서는 재빨리 좌우를 살폈는데,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녀는 어둠의 호리병을 보며 말했다.“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라고요!!” 어둠의 호리병은 의외라는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이런 일을 처리해 본 적이 있는 겁니까?”이서가 말했다.“그럴 리가요.”“아주 능숙해 보이는데요?”어둠의 호리병은 이서의 말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라는 말, 정말입니까?” 이서는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다만, 이번에는 망설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화 연결음이 이어지던 찰나
점심부터 마음이 흐트러져 있던 이서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섰다.부하 직원들은 정말이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윤 대표님이요,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네요.”“그러게요, 데이트 가시는 건 아니겠죠?”“데이트는 무슨요, 대표님은 이미 결혼하셨잖아요.” “결혼이라뇨, 이미 이혼한 것 같던데요? 그렇지 않으면, 윤 대표님의 남편분이 이렇게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을 리 없잖아요.” “참, 요즘 윤 대표님의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아 보였잖아요. 어쩌면 정말 이혼을 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지 않을까요? 윤 대표님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지셨잖아요.” “지금도 평범한 직장인과 어울리는 건, 윤 대표님께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말도 마세요.”“생각 좀 해보세요, 누가 대표님의 남편분이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비아냥댄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한창 열띤 이야기가 오가던 찰나,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뭐가 기분 나쁘다는 거죠? 어차피 윤 대표님은 조만간 그분을 본인과 같은 위치로 올려놓으실 텐데요.”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떨어졌다. 그녀는 고이서였는데,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고 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표님께서 남편 분을 도와 회사를 차리게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고이서는 영문을 모르는 바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했다.“와, 윤 대표님의 남편분이 정말 부러워요. 가진 것도 없이 돈줄과 결혼해서 인생이 편 거잖아요.” “그러게요, 윤 대표님께서 회사를 차려주신다니,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네요!”“저도 그런 와이프를 얻고 싶습니다!” “...”고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 우스워졌고, 이미 차에 오른 이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곧 숨길 수 없는 광기가 드러났다.‘다 내가 가져야 했던 것들이야!’ ‘네 것이 아닌 내 것!’‘저
이서가 이상하다는 듯 고이서를 바라보았다.“저는 단지... 고 팀장님, 아무래도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넋이 나간 고이서는 그제야 자신의 반응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급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면 다행이네요. 외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상사분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거든요.”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에는 반감을 보이기도 하셨어요.”“죄송합니다. 윤 대표님, 제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하신다면, 언제든지 숨기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저는 고 팀장님이 다정히 대해주시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인간미 있어 보이잖아요.”이서의 표정에 확실히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고이서는 그제야 몰래 한숨을 돌리고 살짝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나섰다.하지만 이서는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순간 생각에 잠겼고,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 다시금 고이서의 자료를 살폈다.하지만 그 어떠한 문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까 그 표정은...’‘그 당황한 표정은 절대 꾸며낼 수 없는 거였어.’‘왜 그렇게 당황한 거지?’ 이서는 하루 종일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느라 소희가 걸어온 전화를 못 받을 뻔했다.“나한테 밥을 사주겠다고?”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심 대표님이 윤씨 그룹의 대표인 나와 결탁했다고 오해할까 봐 두렵진 않아? 다른 심씨 가문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 사람들은 형부가 YS 그룹의 대표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절대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어요. 오히려 매일 같이 언니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고요.][게다가 저희 아빠는 언니가 우리를 도와줬다고, 언니와 형부가 아니었으면 제가 얄짤없이 심씨 가문에서 쫓겨났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두 분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으시대요.]“이제야 호칭을 바꿨구나.”이서가 웃으며 물었다.“어때, 새 부모님을 받아들인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소희는 다소 쑥스러워했다.[예전에는 왜 저를 잃어버렸는지 원망했었는데, 지금
“하지만, 1위와 2위는 오랫동안 주문을 받지 못했어.”지환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이서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녀는 모처럼 지환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지환은 이 기회를 틈타 허튼소리를 하기 시작했다.“그건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사람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 이서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요? 하지환 씨는 다른 사람의 소문을 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지환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어쨌든 전설적인 인물들이잖아. 어때, 들어볼래?” 이서도 지환과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지환은 표정을 풀고 이야기를 엮기 시작했다.“다크웹의 1등과 2등은 부부 사이이고,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대. 하지만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결국은 도둑질에 발을 들인 거야.” “하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고, 남자는 반죽음이 되어 목숨까지 잃을 뻔했대.”“그 후에 강해져야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훈련을 시작한 거래.” “결국은 다크웹의 거물급 인물이 돼서 소문만으로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게 된 거지.”이서가 이 말을 듣고 잠이 밀려오는 듯했다.“아, 그래요? 진부한 무협 이야기 같은데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 지환이 무의식적으로 말했다.“미안해.”“사실 내가 지어낸 이야기야. 이서야,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어.” 그 순간, 옆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지환은 고개를 한쪽으로 치우친 채 두 눈을 꼭 감은 이서를 보자, 긴장된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그는 손을 들어 이서의 뺨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럼에도 이서가 눈을 뜨지 않자, 그제야 안심한 지환은 그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익숙한 촉감에 지환은 심장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다음날.잠에서 깨어난 이서는 자신이 병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서가 말했다.“저야 모르죠. 오빠가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상언은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역시 훌륭한 여동생이라니까.”상언이 떠나자, 어둠의 호리병이 말했다.“저도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네요. 이미 약속한 이상, 의사를 번복하진 않을게요.”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한 어둠의 호리병은 조급해했다.“약속한 건 지킬 건데, 그 표정은 뭡니까? 과연 부부답네요. 표정까지 똑같으니까요.” 이서와 지환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어둠의 호리병이 비아냥대기 시작했다.“보세요, 얼굴색은 물론이고, 표정까지 똑같잖아요.” “됐어요, 됐어.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네요. 여기에 더 있다가는 눈칫밥만 먹을 것 같다고요.” “저희는...”이서가 막 입을 열었는데, 어둠의 호리병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참, 하 대표님, 보수는 두둑이 챙겨주실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한 값을 드릴 테니까요.”지환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어둠의 호리병은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하며 떠났다.별장 안에는 이제 이서와 지환만 남았다. 이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무엇이든 말하지 않고 가버리면 지환에게 항복하는 것 같아서 계속 망설였다. “먼... 먼저 가볼게요.”이서가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이서야.”지환이 이서를 부르자,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날의 일은 내가 잘못했어.”지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용서해 줘.”이서는 고개를 돌렸으나, 지환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언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네가 소지태를 만났던 날 말이야. 내 질투로 네가 상처받게 해서 미안해. 나는 몇 번이고 너한테 내 진짜 신분을 말할 기회가 있었어. 내가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우리 사이도 오늘처럼 되진 않았을 거야.”“하지만...” “내 분노마저 너한테 풀었으니, 나는 용서받을 수 없겠지.” 그 순간,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게다가 그 일에는 하지환 씨뿐만 아니라,
어둠의 호리병은 계속해서 땅에 발을 굴렸다.어엿한 어른이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지환아, 네가 어서 방법 좀 생각해 봐. 나는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 그는 곧장 문 쪽으로 걸어갔다.거실에는 곧 지환과 이서만이 남았고, 어둠의 호리병의 시선이 이서에게 떨어졌다. “하하, 그쪽이 바로 윤이서 씨? 그쪽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는 덕분에 제가 내기에서 이겼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 대표님을 물러나게 할 방법은 없었을 거예요. 당신은 제 은인입니다.” 이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계속해서 어둠의 호리병을 쳐다보았다.어둠의 호리병은 그녀의 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이서는 어둠의 호리병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어둠의 호리병이 지환에게 물었다.“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저를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거죠?” “설마, 저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겠죠?”어둠의 호리병은 점점 더 과장되게 말했다.지환이 눈썹을 찌푸리고 막 앞으로 나아가려던 찰나, 이서가 몸을 곧게 펴며 외쳤다.“이제 알겠네요!” 지환과 어둠의 호리병은 이해하지 못한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가 말했다.“왜 억지를 부리시는지 알겠다고요. 하도훈 쪽에 대단한 고수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해서, 하지환 씨와 협력하고 싶지 않으신 거죠?” “뭐라고요?!”어둠의 호리병은 화가 나서 몸에 묶인 그물을 풀어냈다.지환은 이 장면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서의 앞을 막아섰다.“벗어날 수 있었군요?”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헛소리! 내가 누군데, 하도훈이 고용한 그 고수들을 두려워한다는 겁니까?” “저는 다크웹의 3위를 차지하는 킬러라고요!” “허세는 누구나 부릴 수 있어요. 저도 제가 다크웹의 1위를 차지하는 고수라고 말할 수 있다고요!”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당신!”어둠의 호리병은 이서의 말에 분노하며 피를 토할 뻔했다.“됐습니다, 더
‘만약 그 일의 배후가, 조작된 증거를 만든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심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사람은 우리 모녀가 될 거야!’강경숙의 남편은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녀는 심씨 가문에서 의지할 데가 없었다.만약 모든 사실이 밝혀진다면, 아무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을 터.소희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강경숙은 마음이 불안해졌다.“오해가 풀렸으니 다행입니다.”어르신이 지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모처럼 심씨 가문을 방문해 주셨지만, 지금 저희 상황이...” 어르신이 시계를 한 번 보았다.“10시 반이네요. 하 대표님, 남아서 식사라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환도 시계를 힐끗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이천, 여기 남아서 상황을 수습해.”“대표님...”지환은 이천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다.“대체 왜...”어르신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이천은 어르신의 말에 대답하기 귀찮아 빠른 걸음으로 지환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아직 몇 걸음을 떼지도 않았을 때, 한 그림자가 그보다 빨리 지환에게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이천은 그 그림자의 주인공이 이서라는 것을 확인하고 멍해졌다.한편, 이미 입구에 도착한 지환도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쫓는 것을 느꼈다.발걸음을 멈춘 그는 이서를 보고 잠시 넋을 놓았다.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서는 지환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고, 직접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지환은 그제야 시간을 한 번 보았다.‘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그도 이내 차 안으로 들어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중에 두 사람은 모두 말을 하지 않았는데, 차는 곧 한 별장 앞에서 멈추었다.지환이 차에서 내리자, 이서도 따라 내렸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별장으로 걸어갔다.이서는 별장 안에서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하하, 제가 그랬죠? 절대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보세요, 12시까지 30초밖에 안 남았는데...”
“분명히 말씀드렸는데요.”“어르신들께서 제 딸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저는 심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포기하겠다고요!” 어르신은 그제야 소희의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재빨리 말했다.“심 대표,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은... 다 농담이었어, 농담. 소희가 윤 대표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하 대표님인 걸 알고 우리를 도왔으니, 우리 심씨 가문의 훌륭한 딸인 셈이야. 그런 아이를 어떻게 내쫓을 수 있겠나?”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강경숙과 심유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맞아요, 맞아요, 다 오해였어요!” 소희는 그 와중에도 군중 속에 숨어 있는 강경숙과 심유인을 노려보았다.두 사람은 이를 갈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소희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강경숙은 곧장 안색을 바꾸고 웃음을 띠었다. 게다가 곁에 있는 심유인의 팔을 꼬집으며 표정 관리에 집중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소희는 차갑게 웃으며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어르신과 눈을 마주쳤다.“오해요? 이전의 일은 확실히 오해였지만, 제가 게임 회사의 기밀을 훔친 일은요? 그건 증거가 확실한 일이었어요. 경찰조차도 제가 벌인 짓이라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어르신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그... 그것도 오해야...”“무슨 오해요?”“그... 그건...” “증거가 경찰서에 떡하니 있는데, 저와 이서 언니의 관계 때문에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시려는 건 아니겠죠? 제 생각엔, 제가 스스로 심씨 가문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 말이 끝나자, 소희는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갔다.이지숙은 이 모습을 보자마자 소희를 붙잡으려 했지만,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심근영에게 가로막혔다. 그녀가 의아해하던 찰나, 심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소희를 가로막는 것이 보였다. “소희야, 이러지 마. 우리는 너를 믿어. 너는 절대 회사의 기밀을 훔치지 않
“당신은...” 지환의 카리스마에 어르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본 것처럼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지환 씨.”이서는 곧장 지환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그는 이서에게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심씨 가문의 어르신에게 시선을 옮겼다. “당신이 하지환 대표님...?”어떤 사람은 승복할 수 없는 듯했다.“당신이 하지환 대표님이라면, 나는 옥황상제일 겁니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을 찢어 죽일 듯한 지환의 눈빛에 말문이 막혔다. “하지환 대표님이 맞습니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심근영이었다.이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제가 하 대표님을 만난 적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심근영이 지환을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게다가 그 자리에는 소씨 가문도 함께였습니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소씨 가문의 가주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지요!” ‘하긴, 심 대표가 하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우리는 엄청나게 흥분했었지.’어떤 이는 지환의 외모에 호기심을 느끼고 약속 장소에 찾아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이서는 진작에 지환의 진짜 신분을 알 수 있었을 터였다.옛일을 다시 꺼내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생각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윤 대표의 남편이 YS그룹의 대표인 데다가, 하은철의 둘째 삼촌일 줄은 누가 알았겠어?’“그러면 하은철은... 정말로 세상을 떠난 겁니까?”어르신은 다른 사람이 묻고 싶은 말을 뱉어냈다. “못 믿겠다는 겁니까?”지환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어르신은 그 눈빛에 덜덜 떨며 말했다.“나는...”“애초에 심씨 가문이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한 건, 제가 나서서 벌인 일입니다.”“불만이 있다면 제게 오시면 될 일이지, 어린 여자를 상대로 할 필요는 없는 일이죠.”“아, 그저 윤씨 그룹을 적대시하고, 제 아내를 적대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