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입으로는 혁이라고 내뱉으면서 마음속으로는 ‘그는 강지혁이다.’를 계속해서 외쳤다.“네 앞에서 나는 그저 혁이일 뿐이야.”강지혁은 이 말과 함께 두 팔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그녀의 몸은 그의 향기로 감싸졌다. 임유진의 눈은 어둡게 가라앉았다.강지혁은 더 이상 혁이가 될 수 없다. 헤어짐을 입 밖으로 냈을 때 그녀의 혁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으니까....호텔 방 안.이경빈은 지금 공수진과 통화를 하고 있다.“내일 갈 거야. 인터넷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경빈 씨, 대체 무슨 일인데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요? 따지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무슨 일인지는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공수진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줘야 할 것처럼 가녀렸다.“돌아가면 다 얘기해줄게.”이경빈은 전화를 끊은 뒤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그는 요즘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탁유미와의 과거 추억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녀의 미소, 그녀의 눈물, 임신했다며 외치던 그녀의 모습과 그에 자신이 어떻게 답했는지 그리고 얼마 전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애를 낳으라고 했을 때 날카로운 유리잔으로 망설임 없이 배를 찌르던 모습까지...그녀에게는 이미 그의 피가 흐르는 아이가 있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이, 윤이.윤이와 처음 만났을 당시를 떠올리자 이경빈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았다.그때 그는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에 윤이는 그와 닮은 두 눈으로 멀뚱히 바라만 보다가 열심히 손으로 휘적거리며 애써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나오는 건 옹알이와 비슷한 말뿐이었다.아이가 청각장애인 걸 알아채자마자 밖에서는 냉혈한이라 불리던 그가 어쩐 일인지 동정이라는 걸 했다.하지만 그 아이가 자기 아들이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이경빈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외투를 들고 방을 나섰다.거실에 있던 부하는 그가 나가려고 하자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대표님, 이 시간에 어디 가시려고요?”
Last Updated : 2024-05-0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