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어젯밤 몽롱하게 잠들었던 성혜인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이었다.성혜인은 고개를 들어 머리 위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씨는 좋고 이쯤이면 어르신의 장례식도 끝이 났겠다.반승제는 어떻게 되었지?정말 배현우의 말대로 어딘가에 숨었을까?성혜인은 문득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렇게 괴로울 순간에 자신이 곁에서 지켜줘야 하는데.방문이 누군가에 의해 곧장 열리더니 배현우가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보더니 아니나 다를까 빈정대기 시작했다.“승제 걱정하는 거야?”성혜인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배현우를 대할 때 그녀는 철옹성처럼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이를 알아챈 배현우도 기분이 상해 눈살을 찌푸렸다.“뭐야, 나랑 대화하기도 싫어? 아쉬워라. 앞으론 계속 나랑 있어야 할 텐데.”그가 짜증스럽게 컵라면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차갑게 말했다.“먹어. 이따 출발할 거야.”성혜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즘 성혜인은 식사가 매우 불규칙적이었다. 배현우는 마치 의도적으로 괴롭히기라도 하듯 가끔은 음식을 제공해 주고 가끔은 배를 곯게 했다.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으로 본인에게 굴복시키려는 것도 같았다.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컵라면을 다 먹은 성혜인이 갑작스럽게 위에 통증을 느꼈다. 성혜인은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죄다 토하기 시작했다.그녀의 괴로운 모습에도 배현우는 감정 없는 로봇처럼 밖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했다.“임신한 거야? 누구 애야? 나야, 반승제야?”그의 말은 성혜인을 더욱 구역질 나게 했다. 구토가 끝난 뒤 성혜인은 입을 헹구고 위를 손으로 감싸며 괴로워했다.그러나 아직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한 배현우는 여전히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몇 개월 됐는지 검사라도 해볼래? 마침 우리가 잤던 날 임신한 걸 수도 있잖아. 그날 난 피임 안 했는데, 네가 돌아가서 피임약을 먹었을지는 나도 모르니까.”그의 말에 성혜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날 그녀는
최신 업데이트 : 2024-04-04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