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의 모든 챕터: 챕터 1081 - 챕터 1090

2286 챕터

제1081화 반승우, 나에겐 다 생각이 있어

성혜인은 지금 어딘가에 갇혀있다. 방 내부에 창문이 없고 지붕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으므로 하늘을 제외한 바깥의 풍경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성혜인은 자신이 있는 곳이 대략 어디쯤인지도 짐작할 수 없다.물론 언제부터 쓰러졌었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지 못했다. 깨어나 보니 이곳이었으니까.성혜인은 반승제를 물었던 뱀이 떠올라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독성이 강한 뱀은 사람에게 치명적이다.반승제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배현우는 또 무슨 목적이지?“문 열어! 문 열라고!”두 시간이 넘도록 문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결국 지친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았고 곧이어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문이 열리고 배현우가 걸어들어왔다.방 안에 있는 것은 오직 벽에 걸린 시계뿐이었다. 시계는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한 성혜인이 배현우의 눈에 들어왔다. 성혜인은 바닥에 웅크려 앉아 팔로 무릎을 꼭 껴안고 있었다.배현우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성혜인의 턱을 받치고 좌우로 얼굴을 살펴보았다.성혜인이 혐오감을 느끼며 그의 손을 쳐냈다. 옛날의 부드럽고 다정하던 배현우 선배가 도대체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배현우와 어르신의 관계도 궁금했다.배현우가 혼자서 계획했다고 하기에 어제의 일은 스케일이 컸다. 어르신은 그중 가장 주요한 일환일 것이다.어르신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르신은 독뱀이 들어있는 상자를 직접 건네준 사람이었다.그녀가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너무 많이 밀려오는 생각에 두통까지 느꼈다. 그 계획에서 어르신이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셨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하필 그녀가 단검을 들고 있을 때 반승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녀의 상자에서 독뱀이 나왔다.문득 어제의 장면이 떠올랐다. 뱀에게 물린 순간 그녀를 바라보던 반승제의 충격받은 얼굴이.그 얼굴을 보는 성혜인은 고통스러웠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졌다.지금 그녀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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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2화 절대 해치지 않아

배현우는 잔에 담긴 술을 다 마신 후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밤 12시, 잠에서 깬 그는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더니 이것저것 먹을 것을 만들어 성혜인이 갇혀있는 방으로 향했다.성혜인은 여전히 두 무릎을 안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성혜인은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단번에 얼굴을 구겼다.그는 성혜인을 일으키고는 식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일단 뭐라도 좀 먹어.”부드러운 말투와 의자까지 당겨주는 매너 있는 모습에 성혜인이 수상쩍게 바라보았다. 심지어 미친 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다.반승우가 그녀를 바라보더니 씁쓸하게 눈을 피했다.“설명하자면 복잡해서 지금 내 상황을 알려줄 수가 없어. 그냥 내 몸에 성질 더러운 사람 하나가 살고 있다고 생각해.”성혜인은 대답이 없다.반승우가 위안해 주고 싶은 마음에 등을 토닥이려다가, 배현우의 일로 그럴 자격조차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손을 내려놓았다.“밖에 사람들이 감시하고 있어서 아직은 나갈 수 없어. 일단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어. 나중에 도와줄 테니까. 난 내 몸속에 있는 이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아볼게.” 성혜인은 그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몸속에 있는 사람?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반승우가 성혜인의 앞에 와서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마주치며 진실하게 말했다.“절대 널 해치지 않을 거야. 물론 반승제도.”그의 말이 끝나기에 바쁘게 머릿속에 배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착한 척 위선 떨지 마. 만약 내가 네 두 번째 인격이라면 내가 형성된 이유는 네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야. 네 동생이 네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네가 사랑하는 여자까지 가졌으니까.”그러나 반승우는 들려오는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성혜인을 바라볼 뿐이었다.성혜인 역시 고개 숙여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에야 그녀는 배현우가 자신이 알던 다정한 선배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왜 이 모든 일에 휘말려 든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반승우가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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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3화 두 사람 헤어져

배현우는 그토록 담담하게 그동안 겪은 일들을 알려주고 있었다.“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던 손자는 짐승처럼 실험대에 누워있었어요. 그 사람들의 눈에 저는 그저 해부당할 토끼 한 마리 정도로 보였겠죠. 이 모든 게 그때 할아버지께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동의해서 생긴 일이에요.”“이러고 보면 승제는 얼마나 운이 좋은 아이예요? 지금 승제는 가문의 후계자인 동시에 할아버지께서 애지중지하시는 가문의 보물단지가 되었죠. 오직 저만이 가장 최전선에서 이 모든 걸 감당해 내고 있어요. 제가 만약 형이 아니었다면 승제를 보호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몸도 좋지 않은 반태승이 어떻게 이러한 말들을 멀쩡하게 들을 수 있겠는가.그토록 훌륭하고 사랑받던 아이가 차가운 실험대에서 실험당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피를 토하며 고통을 호소했다.젊었을 적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그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었다.반태승이 가장 아끼는 두 손자가 바로 반승제와 반승우다.이 몇 년간 반승우가 죽었다고 확신한 이후 그는 반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반승제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지금, 아끼던 손자가 끌려가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을까. 사람답지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얼마나 수치스럽고 슬펐을까. 이 모든 건 절대 반승우 혼자서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온순한 부잣집 도련님이 어쩌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배현우는 태연한 얼굴로 할아버지께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반태승은 충격으로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깨어났을 때는 몸무게마저 줄어있었다.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면서도 반승우는 배현우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반승우는 최근 자신의 무능함을 점점 더 느끼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배현우의 힘은 점점 더 강해졌고 반승우는 몸의 통제권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배현우는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이용하고 협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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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4화 그는 너무 냉정한 사람이야

“할아버지...”손을 꼭 잡고 내뱉은 평온한 말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했다.두 사람의 손이 서로를 위로하듯 더욱 꼭 맞잡았다. 순간 어르신의 눈에 잠시나마 빛이 돌았다.“혜인... 혜인이랑 헤어지려무나.”“승제야, 내 마지막 바람이다...”어르신이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얼마 일어나지도 못한 채 침대 위로 털썩 누웠다. 반승제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어르신의 혼탁한 눈에서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다. “대답해...”힘들게 세글자를 내뱉은 그의 탁한 눈동자가 반승제를 향했다. 1분간 침묵을 지키던 반승제가 그제야 대답했다.“왜요...”이 모든 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대답해, 대답하란 말이다...”어르신이 고통스러운 듯 괴로워하기 시작하자 반승제가 얼른 그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그럴게요.”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밖에서 의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어르신의 눈이 여전히 손자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가 망설이더니 어렵게 한마디를 내뱉었다.“미안하다...”맞잡은 주름진 손에서 갑자기 힘이 빠졌고 곧이어 의사들이 급하게 응급처치를 실행했다. 그러나 반승제는 그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가짜 같았다. 병실을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의료진들도 그들의 대화 소리도 눈에 들어오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그의 시선이 할아버지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어르신의 얼굴에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그제야 반승제는 그동안 어르신이 눈에 띄게 초췌해졌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사정없이 떨리는 손을 어렵게 내밀어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손을 뻗지 못했다. 한 시간이 흐른 후 의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반 대표님. 우리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반승제는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손을 꼭 맞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의사들도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묵묵히 마스크를 벗었고 밖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을 들어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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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5화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겠다?

반씨 가문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어르신이 워낙 유명한 인물이었던지라 상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기에 절대 조촐하게 보낼 수 없었다.입관 날, 반승제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상부의 명망 높은 사람들이 속속 들어왔고 문 앞에는 붉은 깃발을 꽂은 차들이 가득했다.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빼지 않고 참석했다. 모두 반씨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그들은 종종 반씨 가문과 의례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중 누구도 반승제의 행방은 알지 못했다.어르신의 부고 소식에 업계 내부가 떠들썩했지만 외부로 새 나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씨 가문 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렴풋이 눈치챘을 것이다.성혜인은 여전히 작은 방에 갇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이틀 동안 이 작은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여러 차례 성격이 바뀌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다정한 사람이, 어떤 날은 괴팍한 사람이 문을 열었다.다정한 사람은 항상 노크 후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괴팍한 사람은 거침없이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이러한 이유로 성혜인은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 건지 미리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발소리가 멈추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그의 붉게 충혈된 눈이 성혜인을 향했다. 손에는 술 여러 병을 어수선하게 든 채로였다.성혜인이 뒤로 살짝 물러나며 인상을 찌푸렸다.배현우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오더니 술잔 두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술잔을 가득 채웠다.“혜인아, 나랑 술 한잔하자.”성혜인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침착하게 그를 응시했다.배현우가 단숨에 석 잔을 비우더니 과격하게 성혜인의 턱을 받쳐 들었다. 그녀가 얼굴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세게 고정한 뒤 술잔에 담긴 고농도의 술을 그대로 입안에 들이부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성혜인이 사레에 들려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다. 다른 사람에게 술을 이렇게 무작정 들이붓는 것은 정말이지 위험한 행동이다.그러나 다행이라고나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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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6화 반승우의 시

성혜인이 배현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다.하지만 싸울 기력마저 없었기에 그저 배현우가 한잔 또 한잔 마시는 모습을 응시할 뿐이었다.무언가 그런 착각이 들었다. 어르신의 부고에 대해 배현우도 슬퍼하고 있다는 이상한 착각 말이다.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르신의 죽음이 누구 때문에 초래된 건데.성혜인은 눈이 시린 느낌만 들었다. 그간 발생한 일들이 마치 이상한 가상공간에 들어온 듯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하지만 어르신이 임종 전 어떻게 행동하셨든 살아생전엔 그녀를 극진히 대해준 사람이다.그토록 업적 있고 대단한 분이 그토록 초췌한 모습으로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떠나셨다.심지어 무언가 고뇌에 시달린 것 같다. 임종 직전까지도 불안하고 지친 모습이었다.*반승제가 홀로 포레스트에 앉아 있다. 그 앞에는 할아버지의 흑백사진이 놓여있다.포레스트는 할아버지께서 성혜인에게 물려준 혼전 재산이고 포레스트 내의 고용인들도 직접 교육하셨었다.어르신의 부고 소식을 들은 이후 별장 전체는 슬픔에 빠졌다.게다가 성혜인도 실종되었으니 별장 안은 거의 인기척조차 없다.그저 이따금 겨울이가 주인을을 그리워하며 대문을 향해 짖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다.반승제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어르신의 입관 일이므로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지만 그는 한 통도 받지 않았다.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할 때까지도, 그는 멍하니 있었다.배현우는 감정 동요 없이 차분하게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한 후 성혜인의 체향이 남아있는 그녀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가끔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웠다.반승제가 이불을 돌돌 말아 꼭 안았다.장장 이틀간 밤을 새운 그는 그제야 가까스로 잠에 들 수 있었다.그러나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성혜인이 자기 아내라는 사실을 몰랐던 배현우가 할아버지께 이혼하겠다는 청을 올렸다가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그때는 이 여인과 얽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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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7화 좋아하는 감정은 얄팍한 것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서주혁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승우 형은 그런 사람 아닌 거 같은데.”승우 형이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의 이름이 담긴 시 한 구절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숨기려는 노력도 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절대. 그럴 리가.반승제는 눈을 내리깔고 주먹을 쥔 채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좋아한다는 감정 자체가 원래 얄팍한 거야. 만약 그 사람이 정말 성혜인이라면 지금까지의 일들이 설명돼. 여태 우리는 방향을 잘못 잡았던 거야. 그래서 결과도 부진했던 거고.”“그런데 성혜인이 만약 정말 그 여자라면 네 곁에 나타난 것도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아닐까? 게다가 우리가 여태 승우 형을 찾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형이 좋아하는 사람이 본인이라는 말은 절대 한 적이 없어. 이번에 어르신께서 승우 형 따라가시고 마침 성혜인도 종적을 감췄는데, 그럼 그때 절벽에 있었던 사람들도 전부 승우 형네 사람들인 거야?”이 말은 곧 반승우와 성혜인이 일을 꾸미고 어르신을 살해했다는 것이다.반승제에게 큰 타격을 줄 만한 사실이었다. 어르신은 반승제가 가장 아끼고 존경하던 가족이고, 그를 속인 사람들이 그의 친형과 사랑하는 아내이기 때문이다.더 이상 깊이 생각하다간 이성마저 잃을 것 같았다.반승제는 입술을 짓씹으며 사색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성큼성큼 위층으로 향했다.반승제는 거침없이 걸어가 성혜인의 캐비닛 앞에서 멈춰 섰다. 캐비닛은 잠겨 있었고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 수 있었다.그가 망설임 없이 성혜인의 생일을 입력했다.캐비닛은 열리지 않았다.곧이어 그가 자신의 생일을 입력했다.여전히 열리지 않았다.반승제가 차갑게 조소하더니 반승우의 생일을 입력했다.“딸깍.”캐비닛이 우습게도 문을 열어주었다.비밀번호를 입력하던 손이 잠시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는 할 말을 잃었고 상자를 이대로 부숴버리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었다.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캐비닛을 열자 보이는 건 작은 노트와 인장뿐이었다.서주혁이 처음 조사할 때 얻은 일기장과 색도 무늬도 같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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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8화 혜인 씨 찾아볼까요?

반승제는 더 이상 말 얹지 않고 방문을 열고 자리를 떴다.반씨 저택으로 돌아가니 빈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는 홀에 있는 사람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야 할아버지의 유골을 받으러 떠났다.이 모든 과정 동안 그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고 유골함을 조수석에 올려놓은 뒤 관련 인원에게 전화를 걸어 매장할 준비를 했다.점심에 매장하기로 되어있었고 반승제를 포함한 기타 반씨 가문 가족들은 산소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의 햇빛은 강렬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마지막 남은 흙까지 모두 관을 덮고 나서야 반승제는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세 번의 절을 한 후 어르신의 영정사진을 한동안 보더니 자리를 떴다.자리에 남은 사람들이 그가 냉혈한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입관 일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더니 이 며칠간도, 오늘까지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역시 승우에 비해 인간미가 너무 없어.”“이제 반씨 가문이 승제 손에 쥐어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참.”“이제 큰아버지도 작은아버지도 모두 떠나보냈으니, 누가 더 이상 승제를 이겨 먹겠어. 승우가 살아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그만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 돌아와.”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한군데에 모여 쑥덕거리고 있다.반승우가 얼마나 좋았었느니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들을 보는 임경헌은 다소 가소롭기까지 했다.사촌 형이 살아있을 때는 그렇게 시기 질투하더니. 그때는 한 집에 어떻게 천재가 둘이 나오냐며 뭐라 하지 않았던가.당시 어르신이 일찌감치 반승우를 후계자로 삼았을 때도 불만이 가득했었다. 그런데승우 형이 이미 떠나간 지금에 와서야 그들은 그리워하고 있었다.임경헌이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외할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큰 슬픔이었지만 더 걱정되었던 것은 사촌 형의 앞으로의 행보였다.외할아버지의 죽음에 성혜인이 한몫했다고 생각하는 업계 내의 사람들은 모두 반승제가 이후에 그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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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9화 누구 아이야?

한편.어젯밤 몽롱하게 잠들었던 성혜인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이었다.성혜인은 고개를 들어 머리 위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씨는 좋고 이쯤이면 어르신의 장례식도 끝이 났겠다.반승제는 어떻게 되었지?정말 배현우의 말대로 어딘가에 숨었을까?성혜인은 문득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렇게 괴로울 순간에 자신이 곁에서 지켜줘야 하는데.방문이 누군가에 의해 곧장 열리더니 배현우가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보더니 아니나 다를까 빈정대기 시작했다.“승제 걱정하는 거야?”성혜인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배현우를 대할 때 그녀는 철옹성처럼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이를 알아챈 배현우도 기분이 상해 눈살을 찌푸렸다.“뭐야, 나랑 대화하기도 싫어? 아쉬워라. 앞으론 계속 나랑 있어야 할 텐데.”그가 짜증스럽게 컵라면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차갑게 말했다.“먹어. 이따 출발할 거야.”성혜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즘 성혜인은 식사가 매우 불규칙적이었다. 배현우는 마치 의도적으로 괴롭히기라도 하듯 가끔은 음식을 제공해 주고 가끔은 배를 곯게 했다.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으로 본인에게 굴복시키려는 것도 같았다.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컵라면을 다 먹은 성혜인이 갑작스럽게 위에 통증을 느꼈다. 성혜인은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죄다 토하기 시작했다.그녀의 괴로운 모습에도 배현우는 감정 없는 로봇처럼 밖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했다.“임신한 거야? 누구 애야? 나야, 반승제야?”그의 말은 성혜인을 더욱 구역질 나게 했다. 구토가 끝난 뒤 성혜인은 입을 헹구고 위를 손으로 감싸며 괴로워했다.그러나 아직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한 배현우는 여전히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몇 개월 됐는지 검사라도 해볼래? 마침 우리가 잤던 날 임신한 걸 수도 있잖아. 그날 난 피임 안 했는데, 네가 돌아가서 피임약을 먹었을지는 나도 모르니까.”그의 말에 성혜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날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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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0화 성혜인과 연관된 소원

곧이어 의사가 수액 바늘을 성혜인의 손등에 꽂으려 했다.그러나 이에 반승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그리고 무언가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린 듯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의사는 조금 놀랐지만 그저 수액 바늘을 보면 일시적으로 어지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겪는 일이니까.“수액 바늘이 무서우시면 보지 마세요.”반승우는 눈을 내리깔고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견디기 힘든 괴로운 감정이 거미줄처럼 그를 옥죄여왔다.점차 숨을 쉬기 힘들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아 숨을 쉬려 해도 거미줄이 점점 더 단단하게 감겨오는 기분이었다.의사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았고 성혜인의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았다.반승우는 손이 떨리지 않도록 세게 주먹 쥐었다.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수액이 끝나면 꼭 주삿바늘 빼주세요.”반승우가 막막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으나 눈치채지 못한 의사는 예의 있게 인사를 남긴 뒤 떠나버렸다.성혜인을 지극히 아끼는 그로서는 당연히 떠나지 않고 그녀의 곁을 지켜야 했다.그런데 지금 그는 성혜인이 있는 곳이 맹수 천지이기라도 한 듯 혼자서 싱글 소파에 멀리 떨어 앉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혜인의 신음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피가 역류하기 시작했다.그는 서둘러 성혜인에게로 가서 주삿바늘을 빼주려 했다. 그러나 머릿속에 괴로운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손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떨려와 주삿바늘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그는 마치 이상한 병에 걸린 것처럼 주삿바늘을 향해 손을 뻗어도 다른 엉뚱한 곳을 헛잡았다.계속해서 여러 번 시도했으나 여전히 무용지물이었고 그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반씨 가문의 천재라 불리던 반승우는 자신이 어느날 주삿바늘 때문에 이렇게 난감해질 줄은 절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문득 성혜인이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뜨인 것은 얼굴에 긴장감과 초조함이 가득한 반승우였다.성혜인의 시선이 위로 향했고 곧이어 수액 병 안으로 역류하고 있는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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