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이 되자 백아영은 일부러 조금 시간을 끌다가 떨리는 마음으로 주방으로 갔다.현무는 고분고분하게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이성준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뚱보 아줌마는 겸연쩍은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도련님은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네요. 두 분이 먼저 드세요.”백아영의 마음은 삽시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줘도 못 받아먹는 놈을 봤나, 굶으면서까지 나를 내버려둘 작정인가?백아영은 식탁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쭈뼛거리는 현무를 보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였다.“아빠는 배가 안 고프다니까, 우리끼리 먹자.”백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현무는 따라서 웃을 수 없었다. 솔직히 엄마의 이 억지 미소는 우는 얼굴보다 보기 힘들었다.저녁 식사 때에도 이성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백아영은 화도 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발 두발 물러서며 이성준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밤이 되어 백아영은 이성준이 서재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물을 버리러 가는 척 물컵을 들고 그를 마주 향해 걸어갔다. 물컵을 꼭 잡은 백아영은 화난 표정으로 입술을 감쳐물고 그가 말을 건네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쳤으면 뭐라도 말해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이성준은 입도 꿈쩍하지 않고 그대로 백아영을 지나쳐갔다. 차가운 눈빛에는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무심함이 깃들어있었고 몹시도 시큰둥했다. 백아영은 화가 치밀어 가슴까지 아파왔다. 그녀도 도도하게 자리를 떠났다. ‘ 무시할 테면 무시하고 냉전 할 거면 냉전하라지 뭐, 다시 뒤로 물러서면 내가 개다 개!’백아영은 화가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등 뒤에서 이성준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쨍그랑컵이 바닥에 세게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화가나 눈이 빨개진 백아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성준, 너 도대체 왜 이래?” 순간 굳어지며 곧게 펴진 그의 등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한참의
최신 업데이트 : 2024-02-26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