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841 - 챕터 850

916 챕터

제841화

“그래서요? 설령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거예요. 과연 누가 날 구해줄까요? 힘들어하는 사람은 결국 나뿐이에요.”“내가 구해줄게요.”백아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당신이요?”여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절망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한 줄기의 빛 때문에 되레 환각처럼 느껴졌다.“혹시 성형외과 의사예요?”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백아영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침 따스한 햇볕이 비추자 등 뒤로 후광이 비치는 듯싶었다.“맞아요.”5성급 호텔.여자는 바짝 긴장한 채 침대에 앉아 초조한 얼굴로 방금 사서 가져온 메스를 정리하는 백아영을 바라보았다.비록 그동안 얼굴 때문에 크든 작든 합법이든 불법이든 가리지 않고 성형외과란 성형외과는 다 돌아다녔지만, 아무리 허술하다고 해도 최소한 수술방 정도는 갖춰져 있었다.호텔에서 수술한다는 자체만으로 이미 황당하기 그지없는데, 심지어 방금 구해온 도구로 진행한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저... 난...”결국 두려움과 불안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안 할래요!”백아영은 아직 메스 사용법을 익히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의사는 도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편이었다.하지만 여자의 말에도 고개를 숙인 채 느긋하게 대답했다.“수술 안 하고 밖에 가서 아무 데서나 자살하려고요?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해요. 괜히 후회해서 절 다시 찾아오지나 말고.”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던 여자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벽에 걸린 거울에 추악한 얼굴이 비쳤고, 마치 악령처럼 눈에 들어오는 순간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이 문을 나서면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려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신세밖에 더 되지 않겠는가?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그게 수술대이든 밖이든 무슨 차이가 있냐는 말이다.겁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여자는 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백아영은 예상이라도 한 듯 시종일관 태연했다.곧이어 메스를 들고 침대로 다가가 말했다.“비용 지급을 제외하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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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2화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받는 건 아니었다.백아영은 몇 명을 골라 시술해준 다음 더 큰 명성을 얻었고, 별안간 진료를 보지 않았다.첫 번째로 성형했던 여자의 이름은 안젤라였고, 그 뒤로 백아영의 곁에 남아 도와주고 있는 중이다.그녀는 의혹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선생님, 지금이 한창 잘나가는 때란 말이에요. 성형수술 받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오잖아요. 심지어 기꺼이 대가를 치른다고 하는데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겠어요? 왜 갑자기 진료를 안 보겠다고 하는 거죠?”“예약이 어려울수록 더 조바심이 나는 법이죠. 어쩌면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먼저 나타날지도 몰라요.”말을 마친 백아영은 새로 산 휴대폰 두 개를 들고 안씨 일가로 돌아갔다.백아영과 이성준이 도중에 짐을 잃어버린 탓에 돈도 휴대폰도 없기에 서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휴대폰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다.백아영은 안가연의 별장 앞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리고 나서야 마침내 귀가한 이성준을 만났다.그녀를 발견하자 이성준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싸늘한 눈동자 속에 언뜻 다정함이 엿보였다.안가연은 적나라한 적의를 드러내며 이성준에게 경고했다.“우리 거래를 잊은 건 아니지?”백아영과의 만남은 자제하고, 설령 그녀가 먼저 찾아오더라도 일부러 쌀쌀맞게 거리를 두어야 했다.“성준아.”백아영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왜 나 보러 안 와?”이는 뻔히 알면서도 묻는 말이었다.이성준이 그녀의 연기에 가담했다.“바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자, 얼른 별채로 돌아가.”그녀를 떼어내기 위해 급급한 이성준은 백아영에게 매달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이내 옆을 스쳐 지나가 본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안가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이성준의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걸어갔다.그 모습은 사뭇 도발적이며 마치 소유권을 과시하는 듯싶었다.백아영은 속상해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남자의 쌀쌀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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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3화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얼굴에 혈색이 돌았고, 피부도 하얗고 탱탱해서 이목구비마저 또렷하니 겨우 20대 후반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한층 더 젊어졌을 뿐만 아니라 예뻐지기까지 했다.그야말로 환골탈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운 좋게 백 선생과 수술 날짜를 잡았거든요. 정말 대단한 분이셨어요.”귀부인들은 입이 떡 벌어진 채 도로시를 에워싸서 훑어보기 바빴다. 다들 부러움과 질투를 감추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백 선생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찾아가고 싶었다.한편, 소파에도 30대처럼 보이는 여자가 우아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차분한 표정으로 잔뜩 흥분해서 호들갑 떠는 여자들 사이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그러나 시선만큼은 몰래 도로시 얼굴에 머물렀다.이내 아무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만졌다. 39세, 곧 40이 되는 나이는 아무리 애를 써도 10~20대 청춘을 쫓아가기에 역부족이다.그리고 남편도 더는 이 얼굴에 관심이 없었고, 곁에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설령 5대 가문 중 일원인 임씨 일가 사모님처럼 존귀한 분이라 할지언정 속수무책이다.몰래 마음을 먹은 박주미는 모임 장소에서 나와 도우미한테 백 선생과 예약을 잡으라고 시켰다.호텔 스위트룸.안젤라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새로운 예약 차트를 넘기는 백아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선생님, 오늘도 예약 안 받을 거예요?”매일 매일 예약 문의하고 그녀를 찾는 사람이 수두룩했지만, 얄짤 없이 전부 다 거절당했다.만약 정말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아니요.”백아영은 예약서 한 장을 꺼내 박주미의 정보를 훑어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이미 제 발로 찾아왔거든요.”박주미는 유로가 잔뜩 담긴 커다란 007 가방 두 개를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우선 계약금부터 드릴게요.”가방 안에 가득한 현금을 보자 안젤라는 숨을 헉하고 들이키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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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4화

거실에 들어선 백아영은 심상치 않은 위압감을 느꼈다.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심각하고 마음이 무거워 보였다.연락 두절이 된 하지연을 떠올리자 백아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몰래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자 2층에서 걸어 내려오는 방시운을 문득 발견했다.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살이 쏙 빠졌고,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은 핏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며 다크서클마저 무릎까지 내려왔다.이는 누가 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시운 씨.”박주미는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방시운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스쳐 지나가 백아영 앞에 섰다.큰 키에 삐쩍 마른 남자는 피지컬만으로도 그녀를 압도했고, 머리 위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이내 숨이 막히는 압박감이 전해져 왔다.“백아영.”그녀의 정체가 곧바로 탄로 났다.백아영은 도우미 유니폼뿐만 아니라 분장도 했기에 절대로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그러나 방시운이 곧장 그녀를 찾아왔다는 자체가 진작에 조사를 마쳤다는 사실을 증명했다.어쩌면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속으로 뻔했을 가능성이 컸다.누군가의 앞에서 홀딱 까발린 느낌에 백아영은 등골이 오싹했다. 결국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집에 들어설 때까지 아무 조처하지 않았다는 건 저랑 대화할 생각이 있다는 뜻인가요?”방시운은 대답하는 대신 박주미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사모님 모셔다드려.”집에 들어서자마자 궁둥이를 붙이기도 전에 쫓겨나는 신세라니? 여태껏 살면서 이런 대우는 처음이었다.박주미는 화가 났지만 서늘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방시운을 마주하자 차마 티는 못 내고 오히려 백아영을 걱정했다.“아영 씨도 저랑 같이 가지 않을래요?”백아영이 활짝 웃었다.“시운 씨와 전 친구예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하지만 양옆으로 늘어뜨린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불끈 들어갔다.설령 압박감과 위기감이 느껴지더라도 이제 물러설 곳은 없기에 정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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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5화

“미친놈, 고작 이런 허술한 수갑으로 언제까지 날 붙잡아 둘 거로 생각해?”걸걸한 목소리는 귀에 거슬릴 지경이었고, 말투에는 배 째라는 식의 자포자기가 담겨 있었다.깜짝 놀란 백아영은 입구에 서서 넋을 잃었고,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갔다.하지연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연락이 안 닿을 거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했지만, 이렇게 처참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방시운은 정녕 피도 눈물도 없는 건가?!“나도 이 정도로 하고 싶지는 않았어. 기어코 아이를 지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방시운이 수갑 열쇠를 백아영에게 건네주었다.“잘 설득해 봐. 아니면...”이내 하지연을 바라보았고, 그녀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너랑 아이 둘 중에서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백아영은 죽었어.”그는 하지연이 백아영의 목숨까지 끌어들이지 않을 거로 확신했다.열쇠를 건네받은 백아영은 서둘러 다가가 하지연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방문을 닫고 둘만의 공간을 확보했다.백아영은 안쓰러운 얼굴로 하지연의 손목을 어루만졌고,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비록 큰 상처는 없었지만, 컨디션이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은데, 현재 상황에서는 스스로 단식을 택했을 가능성이 컸다.“지연 씨,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죠?”하지연은 착잡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았고, 여유가 철철 흘러넘치던 자신만만한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이내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아영 씨를 도와주기 힘들 것 같아요.”“제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백아영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그래도 만신창이인데, 어찌 그런 사람한테 빌붙어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겠는가?지금은 오히려 하지연을 먼저 도와주고 싶었다.“지연 씨도 시운 씨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 아이도 생겼고, 시운 씨도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적어도 서로를 위해, 더욱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그럴 일은 없어요.”하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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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6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방시운은 고개를 돌려 백아영을 바라보았다.“하지연 설득했어?”백아영이 대답했다.“아직 고민 중이래요.”방시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고려한다는 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역시나 백아영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우리 집에 남아서 계속 설득해.”그러고 나서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 안가희를 향해 다가갔다.“여기 왜 왔어?”“요 며칠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하던데 또 무리하게 일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안가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얼굴색이 그게 뭐예요? 컨디션 안 좋죠?”이내 가져온 약을 꺼내 손바닥에 덜어서 건네주었다.“새로 개발한 약이에요. 건강에 좋으니까 얼른 먹어요.”애교 섞인 말투로 질책하는 여자의 모습은 방시운처럼 무뚝뚝한 남자에게 쥐약일 텐데,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약을 꿀꺽 삼키더니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뭔 걱정이 그리 많은지, 참.”“이게 다 오빠를 위해서잖아요.”안가희는 방시운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지연 언니 아직도 싫대요?”방시운은 입을 굳게 다물더니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언젠간 동의할 거야.”안가희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지만, 화사한 미소를 지은 얼굴에는 오로지 부러움뿐이었다.“언니는 좋겠어요. 아이도 가질 수 있고, 저도 아이를 갖고 싶은데...”당시 안가희는 방시운을 구해주기 위해 두 다리를 잃었을뿐더러 임신도 못 하게 되었다.결국 죄책감과 안쓰러움 때문에 방시운은 그녀의 부탁이라면 항상 들어주곤 했다.“너도 가질 수 있어.”“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사랑해요~”활짝 웃으며 그의 손등에 얼굴을 대고 마치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처럼 비비적거리는 안가희의 모습은 사랑스러우면서도 귀여웠다.백아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눈앞의 장면을 지켜보았고, 방시운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하지연이 괜히 괴로워하는 게 아니었군.“나 정했어요.”허스키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나지막이 들려왔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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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7화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방시운은 어안이 벙벙했다.이내 눈살을 찌푸리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되물었다.“확실해?”“응.”붕 떠 올랐던 기분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낳게 했더니 정작 그와 결혼할 생각은 없었고, 설령 임신했을지언정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녀는 원래 매정한 편이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현재 상황에서 아이를 살린 것만으로도 방시운은 만족했다.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안가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시운 오빠, 결혼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큰일인데...”방시운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난 이미 결정했어.”안가희가 다시 설득하려는 찰나 방시운의 싸늘한 옆모습을 보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연에 관한 일은 한번 결정한 이상 그녀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방씨 일가를 나서는 순간 여성스럽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표독하고 싸늘하게 변했다.하지연의 도발을 어찌 모르겠는가?방시운에게 평생 혼자 살라고 했던 것도 일부러 그녀를 겨냥한 것이다.그동안 방시운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인 척 연기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결국 철석같이 믿은 하지연은 마음을 접고 약혼식 전날에 도망쳤다.만약 하지연이 아이를 빌미로 방시운을 붙잡아둔다면 언젠간 빼앗기기 마련이다.하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방시운은 그녀의 남자니까.두 다리를 잃고 불임까지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방시운을 얻기 위해서인데 어찌 하지연에게 밀려나겠냐는 말이다.“어떻게든 하지연을 쫓아내야 해. 시운 오빠 곁에서 사라지게 할 거야.”안가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러나 하지연의 막강한 배경과 세력을 떠올리면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었다.“아가씨, 하지연이 갑자기 생각을 바꾼 이유가 혹시 곁에 있는 여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도우미가 문득 말했다. 순간, 방안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이 안가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록 처음 보긴 했으나 낯익은 느낌이 들어 어디선가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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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8화

백아영이 비록 분장해서 방씨 일가에 찾아갔지만, 박주미라는 단서를 통해 정체를 조사해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그 사람이 백영미라고?”안가희는 깜짝 놀랐다.“언니 남자친구를 두고 방씨 일가에 가서 뭐한대?”백영미를 처음 봤을 때 평범한 얼굴과 달리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긴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녀의 걸림돌이 확실했다.안가희는 곧장 안가연을 찾아갔다.“언니, 백영미의 정체가 따로 있다는 거 알았어? 대체 누구야?”안가연은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아직 성준의 진면모를 모르지?”안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안가연이 태블릿을 꺼내자 그녀가 찍은 이성준의 사진이 나타났다. 가면을 쓰지 않은 얼굴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생겼다.준수한 외모에 안가희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이럴 수가, 이성준이잖아?”안가희는 아연실색하며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지금 온씨 가문과 협력 중인데 이성준을 끌어들인다는 자체가 화를 자초하는 꼴이지 않아?”안가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다 계획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넌 방시운이나 관리 잘해.”방시운을 언급하는 순간 안가희는 의기소침한 얼굴로 말했다.“그때 하지연이 떠난 이유도 시운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인 줄 알고 착각했단 말이야. 스스로 포기한 덕분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기회라도 있었지만, 이제 선제공격을 날렸을뿐더러 시운 오빠의 아이까지 가졌으니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바보야, 네가 원하는 게 물건이든 남자든 언니가 그 소원을 다 이뤄줄게.”안가연이 안가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며칠 뒤에 백아영의 목숨을 노릴 생각인데, 가족처럼 끔찍하게 아끼는 하지연은 절대로 백아영이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어차피 두 사람은 같이 죽게 될 운명이다.그때가 되면 자매의 장애물은 동시에 사라질 테니까.“백아영은 이성준의 아킬레스건인데 죽이고 나서 이성준을 어떻게 감당하려고?”그가 막대한 자산과 권력을 흔쾌히 포기한 이유도 오로지 백아영을 위해서였다.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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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9화

“끊을 거면 확실하게 끊던가. 밖에서 살아남기 힘드니까 괜스레 다시 찾아오지나 말고.”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에 하지연의 안색이 싸늘해졌다.아버지란 사람은 딸이 잘 지내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항상 가족의 체면과 이익만 따졌다.“그만!”방시운은 하지연을 뒤로 끌어당기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인 거 같은데 이만 가볼게요. 집에서도 기분전환이 안 되는데 굳이 남아 있을 필요는 없죠.”하지연이 흠칫 놀라면서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방시운이 나서서 그녀를 감싸주다니?하지만...자신을 끌고 가는 방시운의 손을 뿌리치며 하지연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아빠,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하승주는 깜짝 놀랐다. 황소고집은 물론 피도 눈물도 없던 딸이 먼저 사과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러나 잘못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만족했다.“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철저하게 반성해. 그리고 방시운과 결혼...”“아빠.”하지연이 불쑥 끼어들었다.“그동안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본 적이 없잖아요. 이번에 생각 좀 해봤는데 아빠랑 단둘이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꼬리를 내린 딸의 모습에 아직 심취해 있는 하승주는 의심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데리고 서재로 향했다.방시운이 따라가려는 찰나 백아영이 제지했다.“부녀 사이에 응어리가 있은 지 오래되었을 텐데 지연 씨가 어렵게 마음을 열었잖아요. 단둘이 풀게 놔두세요.”백아영은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도처에 깔린 경호원을 훑어보았다.“하씨 가문을 이미 겹겹이 에워쌌는데 지연 씨가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도망칠 수도 없잖아요. 게다가 인질도 아직 남아 있고.”밖에서 하지연이 시야에서 단 1초라도 벗어나면 방시운은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렇다고 딱히 백아영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경고했다.“난 인질을 봐줄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야.”자칫 수작을 부리는 순간 백아영부터 죽일 생각이었다.물론 그는 하지연이 백아영을 내팽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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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0화

“도련님! 백아영이 도망쳤어요.”“잡아!”방시운이 싸늘한 얼굴로 명령했다.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우뚝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서재를 바라보았다.“다들 서재로 가.”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한 예감이 서재 문을 여는 순간 입증이 되었다.하승주는 기절했고, 하지연은 감쪽같이 사라졌다.하지연이 도망쳤다.방시운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고, 주먹을 꽉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집어삼켜 심연 속으로 끌어당겼다.“찾아! 전 세계를 이 잡듯이 뒤져서라도 무조건 찾아내.”...픽업하는 사람과 무사히 접선한 하지연은 비밀통로를 벗어나자마자 차에 올라타 유유히 빠져나갔다.반면, 백아영은 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임씨 일가로 향했다.박주미는 일찌감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영 씨가 부탁한 일은 이미 마쳤어요. 여왕님께서 직접 뵙고 싶대요.”백아영은 박주미를 따라 궁전으로 가서 여왕을 만났다.그리고 안씨 일가의 만행을 직접 까밝혔다.A 국에서 안가연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만큼 설령 생화학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악행을 공개한다고 한들 공분을 일으켜 그녀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왕실에서 직접 개입해야만 철저히 짓밟을 수 있다.또한, 생화학 바이러스는 왕실에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아영 씨와 대동할 친위대를 파견해줄게요. 만약 거짓말이 아니라면 포상을 받을 거예요.”그저 쓸모없는 포상일 뿐이라니.백아영은 미소를 짓더니 여왕 친위대와 함께 궁전을 나섰다.대문을 나서는 순간 멀리서 급히 뛰어오는 제이슨을 마주쳤다.그는 백아영을 막아섰다.“영미 씨, 안가연을 건드린 결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안씨 일가는 워낙 막강한 가문이라 설령 유죄 판결을 받아 연구실이 통제되더라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죠. 안가연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는 유럽에서 퇴출당하는 거예요.”백아영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저도 알아요.”결과가 어떻게 되든 험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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