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831 - 챕터 840

916 챕터

제831화

약은 금방 가져왔고 백아영은 에릭의 입술을 강제로 벌려 약을 먹였다. 하지만 약을 절반 정도 먹였을 때 에릭이 갑자기 눈을 떴고 그는 약을 뱉고는 소리를 질렀다.“누가 당신더러 날 구해달라고 했어? 오지랖 부리지 말고 저리 꺼져!”사리 분별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봤어도 이토록 배은망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백아영은 싸늘한 얼굴로 약을 강제로 입에 쑤셔 넣고는 삼키도록 하였다.에릭은 다시 기절해버릴 듯 연신 기침을 해댔다.이윽고 그는 눈을 희번덕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이건 당신이 개입할 일이 아니에요. 빨리 떠나세요. 안씨 가문을 떠나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에릭은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백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에릭이 한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목숨을 살렸을 뿐인데 무슨 일에 개입했단 말인가?아직 그녀가 사색에 잠겨있을 때 에릭은 누군가에 의해 들려져 방으로 옮겨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지도 않아 에릭이 갑자기 세차게 몸을 떨더니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왜, 왜 이러는 거예요? 조금 전까지 멀쩡했잖아요!”사람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고 백아영마저 순식간에 발생한 일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비록 평소에 혈 자리를 자주 만지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절대 의료사고를 낼 리는 없을 것이다. 에릭에게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날 리도 없다.백아영이 다급히 달려가 에릭의 상태를 살폈다. 이렇게 보니 에릭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버렸다.병세가 바뀌었다!조금 전 발작했던 증상은 그저 표면적인 증상이었을 뿐 그 증상이 호전되었기에 진정한 병인이 드러난 것이다.게다가 이건 일반적인 급성 질병이 아니라 바이러스였다.심지어 생화학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에릭이 왜 그녀더러 빨리 도망가라고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백아영은 에릭을 구하다가 이런 치명적인 일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생화학 바이러스는 엄연히 국제적으로 금지되어있다.그렇다면 에릭은 대체 어디에서 감염됐단 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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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2화

제이슨 백작이 보증을 섰으니 김범준도 달갑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잠시 이를 악물고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다.백아영은 실려 가는 에릭을 바라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제이슨에게 물었다.“당신과 안씨 가문은 한패인 겁니까?”줄곧 히죽히죽 웃고 다니던 제이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이곳에서 생존하려면 꼭 기억하세요. 알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해 묻지 마세요. 당신의 호기심이 결국 당신을 죽이는 칼날이 될 겁니다.”호기심이 날 죽인다고?하지만 백아영은 그저 궁금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에릭 몸에 있는 생화학 바이러스가 온씨 가문이 진행하던 연구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정말 그녀의 추측이 맞았다면 안씨 가문과 온씨 가문이 한패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게다가 이성준은 이미 안가연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는데 그녀의 추측대로라면 그건 결국 온시혁에게 신분을 들킨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준은 지금 온시혁의 손아귀 안에 있다.아무리 이성준이 그녀에게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백아영은 반드시 이 사건에 대해, 그리고 안씨 가문과 온씨 가문 사이에 정말 연관이 있는지 제대로 조사해봐야 한다.마음속으로 이미 결정을 하고 난 백아영이 겉으로는 제이슨의 말에 수긍하는 듯 연기했다.“오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어요.”“자기야, 오늘은 내가 자기 목숨을 구한 것과도 같은데 어떻게 보답할래요?”제이슨은 다시 평소의 장난기 가득하고 가벼운 모습으로 돌아와 그녀를 도발했다.그러자 백아영이 되물었다.“어떻게 보답했으면 좋겠어요? 돈으로 사례하는 거라면 차용증을 쓸 수도 있어요.”백아영은 제이슨에게 빚지기 싫었기에 먼저 차용증을 써두고 훗날에 다시 갚을 계획이었다.“전 공수표를 원하지 않아요. 당장 눈앞에 있는 보답을 원해요.”이윽고 제이슨이 갑자기 허리를 숙여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백아영의 얼굴에 훅 다가왔다.“저와 함께 밥 먹어요.”백아영은 갑자기 다가온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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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3화

꼼짝없이 잡혔다.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정면승부이다.백아영의 눈빛은 극도로 싸늘했고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상대를 향해 은침을 내리꽂았다.백아영을 건드리기 위해 상대도 처참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그녀의 은침이 상대의 눈동자에 박히기 직전 백아영의 귀 뒤에서부터 익숙한 남성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백아영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멈췄다.“성준아?”백아영이 고개를 홱 돌리자 이성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는 그제야 안심한 듯 팽팽해진 온몸의 신경이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상대는 이성준이었다. 만약 그가 아니라면 오늘 밤 격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여기에는 어쩐 일이야?”백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요 며칠 대체 안가연과 무슨 꿍꿍이를 계획하고 있는 거야?”그러나 이성준은 백아영의 그 어떤 물음에도 답하지 않은 채 팔을 벌려 그녀를 확 껴안았다.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 꽉 끌어안았다.“아영아,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이성준의 낮은 목소리에는 억울하고 슬픈 감정이 역력했다.하지만 그가 무슨 자격으로 억울해한단 말인가?백아영은 이성준을 확 밀어내 버렸다. 최근에 계속 꾹꾹 억눌러 담았던 서러움과 억울함이 순식간에 폭발해버렸다.“내가 보고 싶다면서 그렇게 안가연과 꽁냥거렸어? 그것도 모자라 안가연과 밤을 보내고! 안가연과 온천 리조트에서 연애질하면서 날 무시하고!”말을 할수록 백아영의 서러움은 점점 커졌고 이윽고 손을 들어 이성준의 가슴팍을 때리며 분풀이를 하였다. “퍽퍽퍽”하는 소리가 이성준의 가슴팍에서 울려 퍼졌다.이성준은 백아영이 마음껏 화풀이할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둔 채 그저 고개를 숙여 인내심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의 모습을 담을 뿐이었다.한참 동안 화풀이를 끝내고 한 글자의 대답도 못 들은 백아영은 더욱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화를 냈다.“지금 묵인한 거야? 너...”말을 마치기도 전에 백아영은 고개를 들어 이성준이 웃음기가 가득한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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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4화

“안가연이 SATJ의약에 관한 권력을 가지려는 건 단순히 의약 쪽 판도를 확장하기 위함은 아닐 거야.”이성준도 낌새를 눈치채긴 했지만 그 뒤에 감춰진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녀를 찾아온 것도 이 기회에 물어보기 위함이었다.“아영아. 뭘 발견했어?”성준이 물었다.아영도 숨기지 않고 에릭에 관한 얘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안씨 가문에서 정말 생화학무기를 만드는 거라면 이건 큰 재앙이야. 분명 우리한테도 그 피해가 갈 거라고.”만일 안가연이 온시혁과 한 배를 탄 거라면 지금 이성준에게 손을 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그의 능력을 이용해 SATJ 소유권을 틀어쥐려는 거겠지. 그리고 쓰임을 다 하면 버릴 것이다.이성준의 검은 눈동자에 어느새 살기가 어렸다.이윽고 그는 시선을 올려 철조망을 보고는 말했다.“들어가 보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백아영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는 건 한 칸, 또 한 칸의 전문 연구실이었다. 앞쪽의 연구대상은 주로 작은 동물들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그 동물은 원숭이가 되고 또... 사람이었다.백아영은 서늘한 공기를 들이쉬고는 입을 틀어막았다.“어떻게 인간을 상대로 실험을 할 수가 있어!?”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광경에 백아영은 살이 떨리는듯한 공포를 느꼈다. 이런 미친 짓이 이곳 일국의 수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니.안가연은 정말 미친 게 분명하다.“저 사람...”백아영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한 응급실 쪽으로 다가가더니 말했다.“에릭이야!”그는 정신을 잃고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는데 건강하고 훤칠하던 몸은 단 하루 만에 말라비틀어진 송장처럼 되어 골격까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그뿐만 아니라 그의 피부는 비정상적인 청회색을 띠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한 점, 또 한 점의 궤양이 나 있었다. 상처는 대부분이 곪아 역겨운 진물이 나오고 있었다.주위엔 방호복을 입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그를 치료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이 치료하는 속도는 새로운 궤양이 나오고 곪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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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5화

“오늘 밤은 일단 이곳을 떠나고 내가 돌아가서 이곳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아볼게.”백아영은 이성준을 끌고 가려고 했으나 이성준은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안 했다.그의 눈동자는 뭐든 집어삼킬 듯한 깊은 어둠에 휩싸여있었다.그의 눈빛을 본 백아영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SATJ 소유권이 이제 곧 우리 손에 들어오는데 지금 그걸 포기하면 안가연 좋은 노릇이나 시켜주는 꼴이 될 거야.”그의 말에 백아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안가연이 SATJ 소유권을 손에 넣으려는 건 의약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야. 바이러스를 퍼뜨린 후 그 해독약을 대량 생산해 돈을 벌려는 거지. 안가연은 지금 사람을 해치고 있어. 거래를 계속하는 건 그 일을 돕는 거라고. 성준아. 일단 떠나자. 넌 분명 안가연이 SATJ 소유권을 얻지 못하게 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그러나 이성준의 표정은 더더욱 어두워졌다.“그렇다 해도 그 대가가 너무 커. 우리 정체가 들통날 뿐만 아니라 유럽에 더 있지 못하게 될 거야. 복수 계획은 더더욱 불가능 해질 거고. 아영아. 너 정말 힘없이 평생 도망만 다니면서 살고 싶어?”유럽은 그들이 온시혁을 상대할 유일한 방법이다.그녀는 지하 실험실의 정체를 세상에 밝히고 SATJ의약에 대한 권리를 그녀에게 빼앗기지 않고 그 이후에 벌어질 큰 재앙도 막을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위험해질 것이다.그 이후엔 분명 온시혁과 안가연이 그녀를 죽이려 할 것이다.이성준에게 이는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대가였다.하지만 그녀에게 눈 뜬 채 이 모든 걸 모른 체하고 그가 안가연과 협업하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녀는 절대 남의 아픔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일은 할 수 없으니.반드시 두 경우를 모두 헤아린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백아영은 간신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이성을 되찾았다.“바이러스에 관한 일은 절대 그냥 놔둘수 없어. 하지만 손을 쓰기 전에 안가연과 적대시하는 세력을 파악하는 게 먼저야. 방시운을 찾아가자.”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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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6화

다음날, 백아영은 안씨 일가를 떠나 걸어서 방시운의 별장으로 향했다.그러나 대문의 경비원에게 가로막히고 마는데, 얼마 안 가 경비원이 전화를 끊더니 차갑게 말했다.“아가씨. 죄송하지만 시운 도련님이 만나길 거부하셨습니다. 이만 돌아가 주시죠.”백아영이 미간을 찌푸렸다.“제 이름도 알렸나요?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다는 건요?”“말했어요.”경비원이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아가씨더러 도움을 줄 일은 없을 테니 이만 포기하라고 하셨어요.”단칼에 거절했구나.일전에 하지연이 얘기해준 방시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그동안 하지연과 방시운 사이에 뭔가 변화가 있었던 건가?하지연과 연락이 안 닿으니 백아영도 그들의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조바심을 내며 대책을 세우는 수밖에.“제가 만나게 해드릴게요.”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제이슨이 빨간 레이싱카에 걸터앉은 채 멋진 척을 하며 말을 건넸다.그를 보자 백아영은 반사적으로 두통이 생겨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일전에 ‘이혼’에 관한 일로 그를 거절한 뒤로 그도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냥 이틀 정도 쉰 거였다.게다가 이젠 전략을 바꿨는지 무작정 귀찮게 하는 게 아니라 무작정 도움을 주고 있다.에릭의 일로 백아영은 그에게 밥 한 끼를 빚졌다. 그리고 지금 그의 도움까지 받고 나면 또 뭘 빚지게 될지 모르겠다.백아영은 그의 신세를 지기 싫었다. 그에게 진짜 정체를 들키기는 더더욱 싫었고.“괜찮아요. 여기서 기다리죠 뭐.”백아영은 대문 옆의 화단으로 가 길을 비켜줬다.제이슨은 그런 백아영을 흥미롭게 바라보다 씩 웃으며 말했다.“그럼 같이 기다려줄게요.”백아영은 고개를 들어 제이슨을 보며 침묵했다. 그를 그렇게 거절했는데 매번 소용이 없으니 이젠 입을 열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제이슨은 어느새 차로 돌아가 이따금 그녀를 쳐다보며 앉아있었다. 가끔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자 핸드폰을 보거나 낮잠을 잤다.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에취!”백아영이 재채기를 하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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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7화

그 와중에 백아영의 옆으로 고용인 두 명이 풍성한 아침을 들고 식당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식당까지 오기 싫어하는 남자들에게 전해주려는 모양이다.그 모습에 백아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다른 사람들은 방에서도 먹잖아요?”“다른 사람은 돼도 그쪽은 안됩니다.”적의를 감추려는 노력도 없는 그 말에 백아영은 화가 치밀어 가슴이 갑갑했다.결국 그녀는 또 맨손으로 세 시간 거리를 걸어 방시운의 집까지 찾아갔다.이틀.사흘.닷새...그녀는 단 한 번도 방시운을 만날 수 없었다.이제는 방시운이 저 안에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니면 일부러 그녀와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건가.아무리 기다려도 진전이 없자 백아영은 하지연의 집에 다시 찾아가 아줌마에게 정황을 묻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아줌마도 지연을 못 본 지 오래고 완전히 연락 두절이 됐다는 소식이었다.길이 하나둘 끊기고 있었다.백아영은 다시 길을 떠났다.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길 위에서 그녀는 끝도 안 보이는 어둠 속을 정처 없이 걸었다. 마치 까마득한 짐승의 입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기분이었다.S7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지금,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하지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 현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그쪽이 시운을 찾아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방시운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는데.”제이슨이 운전석에서 백아영을 바라보며 또다시 그녀를 유혹했다.“제가 돕고 해줘요. 네?”백아영은 말없이 거절했다.그녀는 또 한 번 제이슨이 건넨 동아줄을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별채에 돌아갔다.끈질기게 기다리는 게 안 통하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는 수밖에.그러나 얼마 못 가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어느새 그녀의 상반신을 흠뻑 적셨다.어중간한 길 위라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백아영은 하는 수 없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뛰기 시작했다.숨을 헐떡이며 별채에 도착했을 땐 이미 비에 홀딱 젖은 뒤였다. 차가운 빗물에 백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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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8화

결국 이성준은 나가지 않았다.안가연이 의미심장하게 그를 바라보며 사악한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있잖아. 네가 언젠간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날이 올까?”...뜨거운 김으로 뿌연 욕조, 누군가의 손이 백아영의 어깨에 툭 올려졌다.막 일어난 백아영은 순간 이성이 확 돌아오며 그 손을 잡아 홱 던졌다.팍!그 사람은 손 쓸 틈도 없이 욕조로 곤두박질치며 커다란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백아영은 몸을 일으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운을 집어 몸에 둘렀다.백아영은 서늘한 시선으로 욕조 속의 사람을 노려보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털이 곤두선 채 당장이라도 공격할 준비를 하는 한 마리의 호랑이 같았다.“아...”그때 물 위로 홀딱 젖은 여자 도우미가 두려움에 휩싸인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가씨. 전 그냥 아가씨께서 비에 홀딱 젖어 오셔서 따뜻한 물에 몸을 씻겨주려던 건데요.”여자였네.백아영은 순간 멈칫했지만 그래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여긴 어디죠? 난 그쪽을 본 적 없어!”“여긴 제이슨 백작님 댁이에요.”도우미가 백아영에게 설명했다.“아가씨께서 열이 펄펄 난 채 쓰러져 계신 걸 저희 백작님이 도우려는 마음에 안고 돌아오신 거예요. 아가씨를 위해 의사도 불러주시고요.”도우려는 마음에?백아영의 눈빛엔 서늘한 기운이 서렸다. 그녀는 자신이 별채에서 쓰러진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구해준대도 굳이 집까지 데려와 구할 필요가 있었을까.의도는 뻔하지.백아영은 욕실을 둘러보며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아니나 다를까 문밖엔 제이슨이 있었다.그는 여유 있고 우아한 자세로 소파에 앉은 채 말했다.“따뜻한 물에 씻으니 좀 낫죠?”여유 속엔 은근한 기대가 섞여 있어 괜히 백아영이 죄지은 것처럼 매정해 보이게 만들었다.하지만 백아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아무리 노력해도 저한텐 쓸모없어요.”말을 마친 백아영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얼마 못 가 제이슨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백아영의 표정은 살얼음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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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9화

백아영은 갑자기 나타난 맹수에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그때 유유히 걸어 나오는 제이슨. 그는 곤란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이 세 녀석이 또 도망쳐 나왔나 보네. 우리 애들 때문에 놀랐죠?”놀라고말고.백아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애써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그쪽이 기르는 거라면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있죠?”“안돼요.”제이슨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금방 나왔으니 배가 부르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배가 불러?뭘 먹고?침을 줄줄 흘리며 그녀를 주시하는 맹수들을 보며 백아영은 소름이 끼쳤다. 제이슨은 분명 일부러 이런 짓을 벌인 것일 거다.제이슨은 여유롭게 백아영을 바라보며 그녀가 타협하기를 기다렸다. 원해서 이곳에 있는 건지 어쩔 수 없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한 번의 타협이 있다는 건 두 번도, 세 번도 있을 거란 말이다.백아영은 손을 꽉 움켜쥐며 생각 끝에 몸을 돌려 식탁으로 향했다.제이슨은 득의양양해서 입꼬리를 올렸다.“역시 베이비가 제일 예쁘고 똑똑하네. 자기한테 유리한 선택을...”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그는 통양구이를 반으로 나눠 사자들에게 나눠주는 백아영을 보며 경악했다.사자는 흥분하며 양구이를 향해 달려들었고 백아영은 그 틈에 밖으로 뛰쳐나갔다.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백아영의 뒷모습을 보며 제이슨은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아주 오랫동안.제이슨이 백아영을 데리고 온 이곳은 도시 중심의 저택이 아닌 교외의 산골이다.백아영이 밖으로 나갔을 때 보이는 풍경은 길고 험난한 산길이란 말이다.비 온 뒤의 서늘한 공기는 불쾌하기 그지없었다.그러나 백아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덤덤하게, 차분하게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지치고 허기짐의 연속이었다. 백아영은 어떻게든 바로 서려 했으나 휘청대는 다리는 바람 속 갈대같이 위태로웠다.그런데도 그녀는 어떻게든 이겨내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 악을 썼다.그녀에게 이제 퇴로란 없으니까.그렇게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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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0화

차 안,불량배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손까지 덜덜 떨었다.그는 공포에 휩싸인 얼굴로 뒷좌석을 힐끗 보았는데 그의 두 친구는 뒤쪽의 좁은 통로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들은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진 얼굴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백아영에게 빌고 있었다.“선생님. 저희가 못 알아보고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저희를 놔주세요.”“저희 앞으로 절대 혼자 다니는 여자들 건들지 않겠습니다.”길가에 혼자 있는 아가씨 하나 잡아 재미 좀 보려고 했을 뿐인데 남자 세 명을 이겨버리는 사람일 줄 알았겠는가.그녀는 기이한 수법을 썼는데 어느 부위를 누르니 아파 죽을 뻔했다.백아영은 서늘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시끄러워.”그녀의 말에 차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백아영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셋 모두 잠자코 있었다.차는 어느덧 시내에 들어섰는데 역시 걸어서 가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안씨 일가 별채에 거의 도착해갈 무렵 백아영은 길에 있는 포장마차를 보고는 다급히 차를 세웠다.“나 밥 사주는 사람은 두 시간 안 아프게 해줄게.”“저요. 저요!”셋은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백아영에게 먹을 것을 대령했다.온종일 굶었던 백아영은 밥을 먹으니 온몸의 피로가 순식간에 가시는 기분이었다.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의 성형병원에서 갑자기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선생님. 부탁이에요. 수술 좀 해주세요. 제 얼굴 좀 살려주세요.”“얼굴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제가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대도 이건 못합니다. 다른 집 알아보세요.”“벌써 열 번째 병원이에요. 여기가 마지막 희망이라고요. 여기서 안 고쳐주면 저 정말 갈 데 없어요. 저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가요.”“아가씨. 사정은 안타깝지만 저 정말 이 수술 못 합니다.”의사와 간호사 몇 명이 그 여자에게 얘기하며 병원 밖으로 내보냈다.성형병원에서 환자를 마다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 백아영은 그 여자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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