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811 - 챕터 820

916 챕터

제811화

‘재능 기부’한 이성준 덕분에 두 사람은 여행 경비를 무사히 마련할 수 있었고, 버스를 타고 A 국으로 향했다.다만 갑작스러운 지진 때문에 가방이 땅속에 묻혀 분장용 화장품도 잃어버리게 되어 이미 분장을 지운 이성준이 다시 메이크업할 방법이 없었다.따라서 얼굴 공개할 때만 빼고 모자와 마스크로 가리고 최대한 노출을 피했지만, 길 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자연스럽게 끌었다.간혹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저분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 훈훈함이 모자랑 마스크를 뚫고 나올 것 같아.”“눈만 예쁠 수도 있지, 같이 걸어가는 여자 못 봤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을 법한 흔녀잖아. 얼굴도 그냥 그런데?”“하긴, 훈남 오빠가 저런 흔녀를 좋아할 리가 없지. 마기꾼이라 마스크를 벗으면 환상이 깨질지도 몰라.”여자들의 잡담을 듣자 백아영은 무슨 리액션을 취해야 할지 몰랐다.속으로는 A 국에 도착하는 순간 하지연을 찾아가 이성준의 얼굴을 분장시켜 괜한 주목을 받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백아영과 이성준은 지진에서 휴대폰도 잃어버려 하지연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 A 국에 도착하면 미리 약속했던 장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A 국 버스 터미널에서 나오자마자 누군가 그들을 가로막았다.검은색 가죽옷과 가죽바지를 입은 여자는 10cm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는데, 글래머한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흠 잡을 데 없는 메이크업과 타오르는 불꽃처럼 새빨간 입술은 촌스럽기는커녕 오히려 도도하고 카리스마가 넘쳐 보였다.그녀는 이성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당신이 5유로에 얼굴을 파는 사람인가?”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백아영은 일부러 사람이 별로 없는 작은 마을 위주로 타깃을 삼았고, 사진 촬영도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음날이면 바로 다음 장소로 움직여 크게 이슈가 될만한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현지 사람도 단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재미난 해프닝으로 여길 뿐, 한번 즐기고 나면 잊어버릴 게 뻔했다.하지만 눈앞의 여자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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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2화

그녀를 따라온 남자는 안색이 순식간에 험상궂게 변했다.“욕심이 과한데? 2억도 양에 안 차는 거야? 얼굴만 믿고 부르는 게 값이라고 깝죽대지 마. 누님이 널 마음에 들어 한다는데 고마운 줄 알아야지. 사리 분별도 못하면 되겠어? 다른 남자에게 2억은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지금 자기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다고 이성준을 질투하는 건가?백아영은 눈앞의 남녀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유럽답게 별 희한한 사람이 다 있군.기생오라비 같은 남자의 말에 이성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백아영의 손을 잡고 스쳐 지나갔다.남자가 발끈하며 외쳤다.“누님, 체면을 세워줘도 제 발로 뻥 걷어차는데요?”안가연은 이성준의 쌀쌀맞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를 내기는커녕 흐뭇하게 웃고 있었고, 흥분으로 가득한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성깔이 있는 게 오히려 내 입맛에 딱이야.”이내 비아냥거리며 이성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하룻밤에 5백만 유로는 어때?”“원나잇인데, 5백만 유로요???”기생오라비 같은 남자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찰나의 충격을 끝으로 얼굴에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부러움이 서서히 대체되었다.“너무 높이 쳐주는 거 아니에요? 이런 금액은 처음이에요.”고작 원나잇에 5백만 유로라니, 보통 사람이 인생 역전하기에는 충분했다.하지만 이성준은 예외였다.전혀 동요하지 않고 점점 멀어지는 이성준을 보자 안가연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내 손을 번쩍 들자 길가에 줄지어 있던 고급 승용차에서 십여 명의 건장한 유럽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살기등등한 기세로 이성준과 백아영을 둘러쌌다.“난 무력 행사는 기피하는 사람인데...”하이힐을 신은 안가연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다시 이성준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아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대체 얼마를 원하는데?”다들 딱 봐도 한 주먹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물론 정작 시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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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3화

아니, 이성준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재난을 당해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 한들 자존심과 체면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모욕감을 주는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하여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거로 확신했다.어쩌면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괜히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벌여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 우선 대답하고는 나중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인기척이 별로 없는 골목에서 손을 쓸 수도 있다.머리를 빠르게 굴린 백아영은 서서히 냉정함을 되찾고 고분고분 뒤따라 안가연의 차에 탔다.널찍한 내부 공간은 룸처럼 생겼고, 테이블 위에는 과일 접시와 값비싼 와인병이 줄지어 있는데 하나같이 프리미엄 라인에 속했다.기생오라비 같은 남자가 아무렇게나 한 병 집어서 잔에 와인을 따랐다.백아영은 약물이 첨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도 안 댔다.물론 딱히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고, 안가연은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아 우아하게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시선은 이성준에게서 떠나지 않았고, 상대를 꿰뚫어 볼 듯한 눈빛을 보자 발가벗은 기분마저 들었다.적나라하고 공격적인 느낌에 백아영은 괜스레 신경이 거슬렸다.이내 몸을 숙이며 이성준을 등 뒤로 살짝 가렸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이제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시작해?”비록 싸움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안가연을 한 대 패주고 싶었다.이성준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딱히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내가 콜 사인 주기 전까지 가만히 있어.”아직 너무 외곽이 아니라서 그러는 건가?백아영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이성준의 말대로 잠자코 기다렸다.그러나 고급 저택 앞에 차가 멈춰 설 때까지 이성준이 꿈쩍도 안 할 줄이야!백아영은 차창 밖으로 동선을 주의 깊게 살폈고, 별장 입구를 지키는 완전 무장 경비원 8명을 발견했다. 그리고 입구를 지나 저택까지 향하는 길에는 경비망이 쫙 깔려 있었다.밖이면 몰라도 별장 안에서 액션을 취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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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4화

그녀는 마음이 사뭇 무거웠다.당장 쫓아가서 안가연을 밀어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면서 이성준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이성은 마치 보이지 않은 싸늘한 철벽처럼 그녀를 가로막아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했다.이성준을 믿어야만 했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백아영은 묵묵히 김범준을 따라 별채로 향했고, 가는 길에 주변 환경과 동선, 그리고 경호원들까지 몰래 관찰하며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본채 바로 옆에 위치한 별채는 3층짜리 유럽식 건물인데, 캐슬처럼 생긴 저택은 한 채가 아니라 적어도 다섯 채가 나란히 붙어있다.“여기가 다 별채야.”김범준이 말했다. 그의 말투는 뿌듯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백아영은 여섯 번째 건물로 향했고, 안에 들어서자 으리으리한 거실에 앉아 있는 20~30명의 젊은 사내를 발견했다.다들 외모면 외모, 몸매면 몸매,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아무나 데리고 밖에 나간다면 여자들의 감탄을 자아냈을 것이고,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 절세 미남 도감이 따로 없다.그동안 잘생긴 남자를 꽤 많이 봐온 백아영도 지금은 눈 앞에 펼쳐진 ‘장관’ 때문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충격적인 비주얼에 어안이 벙벙했고, 꽃미남의 향연이 이처럼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놀란 기색이 역력한 백아영의 얼굴을 태연하게 쳐다보며 김범준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다들 누님의 컬렉션이야.”안가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자를 밝힌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거실에 있는 20~30명뿐만 아니라 2층, 3층 복도에서도 새로운 미남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눈에 얼핏 보이는 사람만 해도 100명에 가까웠다.백아영은 더듬거리며 물었다.“설마... 앞에 있는 다른 다섯 채 별채에도...”김범준이 끼어들었다.“꽉 찼어.”그래서 자신을 여섯 번째 건물로 안내한 건가?백아영은 충격을 금치 못해 입이 떡 벌어졌다.“김범준, 왜 여자를 데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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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5화

백아영은 곧장 다가가 에릭의 손목을 잡고 맥박을 짚으려고 했다.이제 같은 약은 그녀에게 소용이 없었다.그러나 확인한 결과 예상을 뛰어넘었다. 에릭은 몽환제는커녕 그 어떠한 마음을 조종하는 독약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그렇다면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이지? 설마 세뇌당했나?“뭐야? 의사였어?”김범준이 피식 웃었다.“괜히 헛수고하지 마. 어차피 중독되거나 최면 걸리거나 세뇌당한 거 아니니까. 누님이 남자를 사로잡는데 무슨 수법이 필요하겠어? 누님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다들 정신을 못 차리거든.”말을 이어가는 김범준의 두 눈에 미련이 가득했다.“너 같은 평범한 여자는 아마 평생 모를 거야. 이 세상에는 매력을 타고난 사람이 있지. 특히 침대 위에서 말이야. 누님은 상대방의 정신을 쏙 빼놓아 극락이란 무엇이지 느껴주게 해. 그 맛을 본 남자라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야. 앞으로 몸이든 마음이든 다른 여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거든.”다시 말해서 밤일을 잘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특별한 것도 아닌데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찬양하는 모습이라니.백아영은 당최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얼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남자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생각이 바뀌었다.그들은 안가연에게 푹 빠져 진심을 넘어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었다.“오늘 밤이 지나면 네 오빠도 예외는 아니야.”김범준은 그녀를 동정하듯 바라보았다.“너도 이제 자기 앞날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겠어?”안가연이 하룻밤에 500만 유로를 주겠다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르자 백아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목적은 원나잇이 아니라 완벽한 통제였다.하지만 이런 황당한 일이 사실이라고 할지언정 이성준은 절대로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생판 모르는 여자와 몸을 섞다니? 절대로 불가능했다.김범준은 마치 백아영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한 마디 보탰다.“누님의 매력을 거부할 수 있는 남자는 없어. 방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경계심을 내려놓게 될 테니까. 만약 믿기지 않는다면 오늘 밤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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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6화

그러고 나서 몰래 은침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이때 김범준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경호원 8명이 일렬로 늘어섰는데, 장벽처럼 그녀를 가로막았다.이건 누가 봐도 절대 보내지 않을 기세였다.비록 싸움을 못 하는 편은 아니지만, 정식 트레이닝을 받은 8명의 경호원을 혼자 상대하기에 버거운 건 사실이다. 아니면 독 가루를 사용해야 하는데...하지만 독 가루를 꺼내는 순간 정체가 탄로 나기 마련이다.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와중에 김범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님께서 아직 어젯밤의 피로를 풀지 못해서 주무시고 있을 거야. 뵙고 싶으면 오후에 가.”이미 날이 밝은 이상 어떤 상황이 되었든 다시 돌이킬 수는 없었다.어차피 지금 가든 오후에 가든 결과는 똑같았다.백아영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초조함과 짜증을 애써 억누르고 이를 악물고 동의했다.점심을 먹고 나서 잽싸게 본채로 향했는데, 약 10m를 남겨두고 나란히 밖으로 나오는 이성준과 안가연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오픈카에 잇달아 올라탔다.차에 시동이 걸리더니 그대로 별장을 벗어났다.“성준아!”차는 그녀와 반대 방향으로 달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20m가 넘었다.백아영은 큰소리로 이성준의 이름을 부르며 후다닥 쫓아갔다.하지만 오픈카가 훨씬 더 빨랐고,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서 그녀의 목소리도 서서히 닿지 않았다.결국 멀어져가는 차를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성준의 옆에 앉은 안가연은 웃음꽃을 활짝 피운 채 무언가 말하고 있었고, 늘 쌀쌀맞고 매정하기로 소문난 이성준도 지금은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마치 대화하듯, 귀를 기울이고 차분히 들어주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이는 그동안 유일하게 그녀에게만 보여주던 모습이었고, 다른 여자는 곁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헐레벌떡 차 뒤를 쫓아가며 안가연과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이성준을 바라보는 신세였다.뒤바뀐 입장에 그녀가 오히려 ‘다른 여자’가 되어버린 느낌마저 들었다.백아영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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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7화

A 국에 온 이상 당연히 미리 공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덕분에 백아영은 어느 정도 정보를 파악했다.A 국은 여전히 군주제를 고집하는 국가로서 왕실이 1순위, 그 아래로 귀족과 군주가 있으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5대 세력이 존재했다.방시운, 하씨 가문, 그리고 안가연이 속한 안씨 일가도 각각 5대 세력 중 하나였다.즉, A 국에서 안가연은 무려 2인자에 해당한 만큼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기에 아무리 방탕하고 건방지더라도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셈이다.심지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A 국 정세에도 영향을 미치는 정도였다.A 국 최대 규모의 온천 리조트 KUC가 바로 안가연이 만든 곳이다. 이는 가장 번화한 지역에 지어진 건물로서 압도적인 면적을 차지했고, A 국에서 가장 크고 합법적인 유흥업소였다.사람들은 오로지 쾌락을 맛보기 위해 리조트를 찾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수위 높은 서비스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현지인들은 떼를 지어 모여들었고, 유흥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며 포용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안가연이 이성준을 데리고 이런 곳에 왔다는 자체가 속셈이 뻔하지 않은가?백아영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갔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김범준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이내 애써 이성을 유지한 채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 냈다.“리조트로 데려다줘.”KUC까지 거리가 꽤 있는지라 차가 필요한 상황이었다.설령 목숨의 위협이 느껴질지언정 김범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네가 찾아가면 누님이 심기 불편해질 테니 절대로 안 돼. 너도 이만 포기하는 게 어때? 성준 씨도 좋으니까 KUC에 이틀이나 머물러 있는 게 아니겠어? 어차피 만나러 가봤자 굴욕을 자초하는 꼴인데.”“성준을 직접 보기 전까지 난 아무것도 안 믿어.”백아영의 표정은 차갑고 단호했다. 날카로운 바늘 끝이 김범준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자 새빨간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김범준의 얼굴은 고통으로 하얗게 변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악! 아프다고!”그런데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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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8화

마치 길가에 버려진 고양이와 강아지를 동정하는 느낌이었다.백아영은 괜스레 심기가 불편했고, 설령 친절함에서 비롯된 말일지라도 왠지 모르게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KUC에 입장하려면 VIP 멤버십이 필요하지만 백아영에게는 없다. 이때, 안가희의 부탁을 받은 김범준이 적절한 타이밍에 멤버십을 건네주었다.“가연 누님의 손님입니다.”웨이터가 즉시 공손하게 맞이했다.“손님, VIP 탈의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김범준이 말했다.“난 들어가기 불편해서 이만 가볼게.”제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 김범준을 보자 백아영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비록 수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아무 말 없이 웨이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김범준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가희 씨, 들여보냈어요.”안가희는 한숨을 푹 쉬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탄식했다.“멀쩡한 아가씨를 또 망치게 되겠네.”“다 본인 탓이죠, 뭐.”김범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누님께서 성준 씨를 마음에 들어 했을 때부터 알아서 떨어졌어야지, 눈치가 저리 없는데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어요?”탈의실에 들어선 백아영의 눈앞에는 대부분 섹시하고 노출이 심한 고급 수영복들이 사물함에 줄지어 걸려 있었다.이내 눈살을 찌푸리고 뒤돌아서 밖으로 나갔다.“전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만나면 바로 갈 거니까 옷은 갈아입지 않아도 되죠?”웨이터는 단호하게 말했다.“손님, 죄송하지만 온천 리조트의 운영 방침이라 수영복으로 갈아입어야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백아영이 물었다.“모든 사람이 다요?”웨이터가 대답했다.“네.”설마 이성준도?머릿속에 수영복 바지만 입은 이성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자 갑자기 기분이 급 다운되었다.다시 탈의실로 돌아온 그녀는 옷을 바로 갈아입는 대신 벽에 매립된 콘센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는데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이내 저벅저벅 걸어가 콘센트를 뜯어냈는데, 안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발견했다.몰래 촬영하는 건가? 모든 탈의실에 다 있는 건지, 아니면 여기에만 있는 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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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9화

그가 나타났다.이성준과 10m 정도 떨어진 백아영은 다른 입구에서 유유히 걸어 들어오는 그의 모습 바라보았다. 몸에는 가운을 걸치고 얼굴에는 반쪽짜리 가면을 쓰고 있었다.물론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반쪽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싸늘했다.아무리 추악하고 불결한 환경일지라도 그는 마치 한 마리의 고고한 학처럼 고결하고 티끌 하나 묻지 않았다.가슴이 조마조마하던 백아영도 비로소 한시름을 놓았다. 이때, 같은 디자인의 실크 가운을 입은 안가연이 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팔짱을 꼈다.얼굴에는 봄비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고, 이성준과 함께 인파를 지나쳐 VIP석을 향해 걸어갔는데 이내 병풍에 가려졌다.시야가 차단되자 눈에 들어오는 거라고는 두 사람의 인영뿐이었다.그리고 자리에 앉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백아영은 서둘러 VIP석을 향해 다가갔다.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노출이 심한 비키니 차림의 몇몇 여자들에게 가로막혔다.다들 한 미모를 자랑하는지라 공들인 메이크업까지 더해 예쁜 편에 속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같이 고개를 치켜들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백아영을 내려다보았다.“그런 얼굴로 감히 VIP석에 가려고? 제 분수도 모르는 거야?”분장한 백아영은 외모가 수수한 편에 속하지만, VIP석에 출입하는 것과 생김새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이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안가연의 손님이야.”“가연 씨 손님이라고?”여자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짓말이라고 단정 짓더니 백아영을 향한 적의와 비웃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눈치가 꽝일뿐더러 대놓고 거짓말까지 해? 어떻게 가연 씨를 끌어들일 생각하지? 못생긴 주제에 꼴값 떠네.”“VIP 구역은 당신 같은 흔녀가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 얼굴이면 저쪽이나 가서 놀아.”한 여자가 손가락으로 저 멀리 반대 구역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살이 피둥피둥 찌고 머리가 듬성듬성한 중년 아저씨들이 수두룩했다.양팔에 이미 여자를 한 명씩 끼고 있으면서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다른 비키니녀를 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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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0화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이성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자 마침 병풍에 가려진 그림자가 보였다.남자는 움찔했지만, 남녀의 팔이 곧 한데 겹치더니 더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이내 제자리에 앉아 멀리서 이 해프닝을 지켜보기만 했다.심지어 그녀인 거 뻔히 알면서도 다가오지 않았다.단지 가운을 챙겨 자신을 감싸고 물 밖으로 나가면 되는데 말이다.백아영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나서야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외모는 별 보잘것없는데 꽤 대담한걸?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중 스트립쇼라니? 성격이 화끈한 편인가 본데, 혹시 마음에 드는 분 있으신가요? 얼른 대시하세요!”“내 스타일이야! 정말 혹하는데? 다들 건드리지 마.”대머리 뚱보 아저씨가 커다란 배를 내밀며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백아영을 향해 헤엄쳐갔다.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고, 온천탕 옆에 수많은 사람이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대머리 아저씨는 백아영의 상대가 안 되는지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몸싸움을 벌이는 순간 노출 범위가 늘어나기 마련이다.물론 이는 풀장 밖에 서 있는 여자들이 제일 보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다.또한...병풍에 가려진 가녀린 그림자를 보자 백아영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안가연의 목적도 이것이란 말인가?그녀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고 수모를 당하게 하려고 리조트까지 유인한 다음 이성준에게 온갖 더러운 꼴을 지켜보게 하려는 심산인가?만약 사실이라면 그 어떤 남자도 견디기 힘들 것이며 두 사람의 관계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지 않겠는가!꽤 지독한 수법이었다.하지만 백아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눈빛은 싸늘함을 넘어서 냉랭할 지경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설령 최악의 상황이 닥칠지라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그녀는 더 이상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면 옴짝달싹 못하는 백아영이 아니었다.“다들 심심한 것 같은데,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봐?”이내 가장자리로 헤엄쳐가더니 물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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