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791 - 챕터 800

916 챕터

제791화

하지연이 한바탕 소동을 부린 탓에 공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백아영이 보낸 사람들은 혼란을 틈타 손쉽게 이미 얻은 키로 선우 일가 경호원을 구출했다.백아영은 구급상자를 들고 차 안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무자비하기로 소문 난 온씨 가문에게 붙잡혔으니 잔인한 대우를 받았을 게 분명한데, 어쩌면 온몸이 상처투성이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구출된 사람들을 보자 깜짝 놀라 넋을 잃고 말았다.옷이 좀 흐트러진 것 빼고 다들 멀쩡해 보였고, 눈에 띄게 다친 곳도 없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온씨 가문이 갑자기 마음이 약해진 이유라도 있는 건가?“아영 씨.”차에 올라타자 선두에 선 사람이 재빨리 설명했다.“비록 포로 신세가 되었지만, 공장장이 성준 도련님께서 뽑은 직원이라서 그동안 받은 은혜 때문에 별로 저희를 힘들게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주며 살갑게 대했죠. 딱히 고생한 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백아영은 깜짝 놀랐다. 온시혁이 권력을 빼앗은 이상 첫 번째로 할 일이 이성준의 측근부터 공격하고 제거해야 하지 않겠는가?게다가 꽤 중요한 공장 중 하나로서 더더욱 압박을 가해야 할 텐데? 상식을 벗어나는 일은 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백아영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그런 사람들이 살뜰히 챙겨줬는데 온씨 가문에서 불평불만이 없었어요?”공장을 지키고 있는 온씨 가문 인력은 감시는 물론 진정한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처음에는 고문을 시도하려고 했다가 성준 도련님의 직원들이 제지하면서 마찰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한발 물러섰거든요. 기존 임직원이 간절히 필요한 듯 그들을 붙잡으려고 승진도 시켜주고 연봉도 올려줬어요.”“다들 없어서는 안 되는 기술직 담당자잖아요. 반면 온씨 가문은 무식한 놈들뿐이니 자기네끼리는 공장 가동도 힘들지 않겠어요? 당연히 오냐오냐 양보해야죠.”잠자코 듣고 있던 백아영은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준이 뽑은 직원들이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유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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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2화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어차피 요리하는 김에 아영 씨가 먹고 싶은 음식도 하려고 마침 문을 열고 물어보던 참이었어요.”선우경진이 콧방귀를 뀌었다.“아영은 개인 도우미가 알아서 챙겨주니까 신경 안 써도 돼요.”말을 마치고 나서 문을 잠그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심보라를 노려보았다. 마치 그녀가 떠나기 전까지 꿈쩍도 하지 않을 기세였다.결국 심보라는 마지못해 자리를 떠났다.방 안, 이성준이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백아영은 공장에 있었던 일을 이성준에게 털어놓았다. 이때, 이성준의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자는 하지연이었다.“지연 씨야, 얼른 받아.”하지연이 방시운의 손에 있는 이상 백아영은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성준보다 더 빨리 움직여 통화 버튼을 눌렀다.휴대폰 너머로 하지연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준아.”그제야 이성준에게 걸려 온 전화를 함부로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이내 서둘러 휴대폰을 건네주면서 뒤로 물러섰다.그러나 시선만큼은 휴대폰에서 떠나지 않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이성준은 백아영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아영아, 난 너한테 비밀이 없어.”말을 마치고 나서 스피커 모드로 변경했다.흠칫 놀란 백아영은 귓불까지 빨개졌다. 이내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딸도 같이 있는 건가?”하지연이 농담을 건넸다.“성준과 불륜이나 하려고 찾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사위한테 관심 가질 정도로 굶주리진 않았거든요.”백아영은 발끈하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제가 뭐라고 했나요?”“아영은 낯가림이 심하니까 그만 놀려. 본론부터 얘기해. 시답잖은 말이면 그냥 끊어.”이성준은 백아영을 품에 끌어안으며 명령조로 말했다.하지연은 짜증 난 얼굴로 혀를 찼다.“젠장, 자기 여자만 챙기고 친구는 뒷전이야? 뭐, 중요한 일은 아니고, 여자 친구가 뭘 해줬을 때 제일 기분이 좋았는지 묻고 싶었어.”이성준과 방시운은 하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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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3화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는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백아영이 물었다.“시운 씨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아요?”“알죠.”“그럼 요리해서 대접해 봐요.”“내가 요리하라고요?”하지연은 의아한 듯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고작 요리 갖고 되겠어요?”백아영이 미소를 지었다.“시중을 들고 챙겨준다는 게 결국은 일상생활 속 사소한 일부터 시작하잖아요.”방시운의 요구가 과연 이렇게 간단한 것일까?하지연은 당최 믿음이 안 갔다. 하지만 당분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방시운이 워낙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서 아무리 별거 아닌 요리일지라도 대충 얼버무리거나 방심할 수 없었다. 결국, 사람을 시켜 산에서 갓 따온 야생 버섯과 원시림에서 잡은 야생 닭을 공수하여 최고급 식자재로 버섯 찜닭을 만들어 주려고 했다.용병 부대에 있을 때부터 갈고 닦은 요리 솜씨를 몇 년 만에 선보일 기회가 다시 오다니!물론 방시운이 버섯 찜닭을 좋아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어느 날 임무를 수행하던 중 위험이 닥쳐 도망치던 와중에 방시운과 단둘이 낙오된 그녀는 깊은 산속 농가로 피신했다.원래는 두 사람을 챙겨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방시운은 음식이 먹을 게 없다며 험상궂은 모습으로 무려 알을 낳아주는 고마운 암탉을 잡으라고 강요했다.당시 너무 심하게 다쳐 침대에서 꼼짝달싹 못하지 않았더라면 하지연은 그를 발로 뻥 차서 내쫓았을 것이다.결국 농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버섯 찜닭을 만들어줬고, 방시운은 맛있다며 특히 좋아하는 요리라고 강조하면서 그녀에게 억지로 세 그릇을 먹였다.어쩌면 농부의 자산일지도 모르는 암탉을 잡아먹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하지연은 떠나기 전 몸에 지닌 값있는 물건을 몽땅 남겨두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나중에 부대에서 하지연이 요리할 차례가 되어 방시운에게 먹고 싶은 요리를 물어보면 항상 버섯 찜닭이라고 대답했다.다만 그녀와 사이가 틀어져 하루가 멀다고 하게 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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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4화

병원.방시운은 싸늘한 얼굴로 병실 옆방에 앉아 있었다. 늘씬한 손가락 사이에 시가가 끼워져 있었고, 뿌연 연기가 피어올라 그의 잘생긴 얼굴을 가렸는데 이목구비가 흐릿해 보였다.다만 연기를 뚫고 전해지는 냉기는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이성준이 대체 어디가 좋아? 애가 벌써 몇 살이야? 그리고 툭하면 백아영과 애정행각을 벌이며 꽁냥거리는데 하지연은 왜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거지?”시가가 무참히 두 동강이 났고, 이내 화가 난 얼굴로 서원을 쏘아보았다.“내가 이성준보다 못한 게 뭐야?”서원은 아연실색하며 재빨리 대답했다.“당연히 없죠.”이내 방시운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자 서둘러 말을 바꿨다.“이성준은 도련님의 발끝에도 못 미치죠.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능력도 별로 뛰어나지 않고, 그렇게 큰 이씨 가문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게 말이 돼요? 정말 남자로서 최악이에요. 게다가 사람 보는 눈도 없어서 한때 자기 아내마저 잘못 알고 있었다니까요? 만약 도련님이라면 지연 씨가 잿가루로 변한다고 한들 그 속에서 정확하게 찾아내지 않겠어요? 지연 씨를 향한 도련님의 사랑은 가히 비교할 수조차...”서원이 청산유수로 칭찬을 늘어놓는 와중에 방시운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호통쳤다.“감히 하지연을 저주하는 거야!?”순간 어안이 벙벙한 서원은 입을 다물었다. 대체 어디가 하지연을 저주했냐는 말이다.물론 감히 저주할 용기도 없었다.“제가요? 아니, 전...”“네가 잿가루로 변하면 몰라도, 설령 이 세상이 멸망한들 하지연은 살아 있을 거야.”방시운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자기 자식을 감싸는 맹수처럼 잔뜩 날이 섰다.서원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손을 번쩍 들어 스스로 뺨을 내리쳤다.“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했어요. 도련님이 지켜주시는데 지연 씨가 어찌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방시운의 안색이 그제야 좋아졌다. 하지만 곧이어 옆 병실에서 큰 충격음이 들려왔다.쿵! 쿵! 쿵!연달아 몇 번 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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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5화

“별일 없으면 호들갑 떨지 마. 괜히 소리 질러서 닭 손질하는데 깜짝 놀랐잖아.”하지연은 눈을 흘기면서 그를 노려보고는 뒤돌아서 주방으로 들어가 다시 닭을 자르기 시작했다. 식칼을 내려칠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닭은 금세 토막토막이 났다.식칼에 잘려서 반동으로 튀어 오른 닭고기를 지켜보는 서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렇게 잔인할 수가...곧이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시운을 쳐다보았다.“도련님, 일단 밖에 있을까요?”다칠지도 모르는데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그러나 방시운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고, 닭고기와 옆에 놓인 야생 버섯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흠칫 놀랐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조마조마하면서도 은근한 기대가 배어 있었다.“버섯 찜닭 하려고?”하지연이 눈을 흘겼다. 한쪽 어깨를 다친 바람에 한 손으로 요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 그래도 짜증이 스멀스멀 나는데 옆에서 쓸데없는 소리까지 해대니 열받아서 대답조차 하기 싫었다.하지만 방시운의 눈빛이 점점 빛이 나기 시작했다.“나한테 해주려고?”“당연한 거 아니야?”하지연은 참다못해 씩씩거리며 식칼을 도마에 힘껏 꽂았고, 칼날에 금세 깊숙이 박혔다.“나 바쁜 거 안 보여? 한마디만 더 하면 너도 토막 내서 같이 요리해줄 거야!”방시운이 잽싸게 주방에서 나왔다.“참.”하지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버섯 찜닭 먹고 나서 선우 일가 도와주는 거다?”비록 표정은 험상궂었지만, 속으로는 확신이 별로 없었다. 어쨌거나 방시운처럼 까다로운 사람은 고작 밥 한 끼로 시중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기에 그녀를 골탕 먹일 다른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하지만 무슨 일이든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혹시 모를 경우도 있을 테니까.“알았어.”너무 쉽게 허락하는 바람에 하지연은 깜짝 놀라 경악을 금치 못했고,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잘못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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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6화

방시운의 눈에 비친 모습과 달리 하지연은 옷을 푼 적도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 적도 없다. 행여나 그가 선택을 번복하지는 않을까 조바심 어린 눈길로 경계하며 쳐다봤을 뿐인데 방시운은 사뭇 다른 장면을 본 듯 착각했다.하지연은 마치 활짝 핀 장미처럼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좋아해, 처음부터 내 마음은 변한적 없었어.”방시운은 하늘을 나는듯한 기분이 들면서 너무 기쁜 나머지 믿을 수 없었다.기대감으로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렸으나 늘 그렇듯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거짓말하지 마.”그 시각 하지연은 방시운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듯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봤다.‘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뭐라는 거야?’자세히 보면 표정도 평소와 다르고, 얼굴도 빨개진 걸 알 수 있다.“방시운, 너 왜 그래?”하지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의 이마를 만졌고 불타는듯한 느낌에 걱정스럽게 물었다.“열나? 의사 불러줄게.”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방시운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아 끌어당겼고 순식간에 그의 품에 안겼다.하지연을 바라보는 그의 흐릿한 눈빛에서는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의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쉰 듯한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단호했다.“네가 먼저 날 건드린 거야. 난 거절할 줄 몰라.”말이 끝나는 동시에 그는 하지연에게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속박된 감정은 마치 우리에 갇힌 짐승이 자유를 되찾은 후 야성을 드러내며 자신이 원하는 달콤함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듯 거칠었다.웁!하지연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굳어졌다.‘방시운이 드디어 미친 건가? 왜 이래?’저항하고 몸부림쳤지만, 이 모든 건 방시운에게 그와 하고 싶어 한 시도 지체할 수 없는 안달 난 사람처럼 비춰졌다.순간 욕망이 불타오른 그는 하지연을 안아 침대에 눕혔다.5시간 후.하지연은 지친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쉰 듯한 연약한 목소리에서 그녀의 피곤함이 느껴졌다.“미친놈, 그만해...”처음으로 달콤함을 맛본 남자는 만족을 모르는 듯 또다시 그녀의 볼을 타고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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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7화

방시운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병실 천장이 보였고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손에 주삿바늘이 꽂혀있다는 것이다.‘뭐지?’머리가 아픈 듯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누르자 뒤죽박죽된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르면서 어렴풋이 여러 장면이 생각났다.“서원아!”방시운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졌다.“나한테 무슨 일 있었어?” 서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정말 기억 안 나세요?”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독버섯을 먹고 중독되어서 정서불안 증세가 찾아왔는데... 독소는 제거 되었으니 이틀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겁니다.”아무리 감추려고 애를 써도 방시운은 그의 말에서 관건적인 단어를 캐치했다.“정서불안?”뒤죽박죽된 기억의 조각 속에서 어렴풋이 한 장면이 떠올랐고, 하지연과 함께...‘아니야, 그건 꿈일 거야.’꿈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순간 관자놀이가 튀어나올 듯 두통이 더 심해졌다.“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서원은 뒤로 물러나 몸을 덜덜 떨며 땅바닥만 주시했다.“제가 들어갔을 땐 도련님이 벌거벗은 채로... 바닥에 누워계셨습니다.”서원은 기어들어 갈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지연 씨는 이불 감싸안고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입지 않았...”방시운은 머릿속에 있던 시한폭탄이 터진 것만 같았고 신경 하나하나가 곤두섰다.중독된 틈을 타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가장 사악한 욕망을 풀었다. 하지연을 성폭행했다.“지연은...”그는 불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지금 어때?”서원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도련님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아마도 지연 씨가 침대에서 내려오기 불편한 상황이라서...”그는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도련님이 혼수상태에 있는 동안, 지연 씨가 떠나려는 걸 저희가 최선을 다해 막았습니다. 그런데 아마 더 버티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방시운은 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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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8화

부상이 낫지 않은 상황에서 한바탕 싸웠기에 상처들이 더 악화됐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고 의사는 신속하게 붕대를 다시 감아줬다.의사가 막 떠나려고 할 때 하지연이 물었다.“혹시 피임약 있나요?”“있긴 한데...”의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시운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먹지 마.”그는 하지연이 몸에 해로운 약을 먹게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하지연은 고개를 들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먹지 말라고? 그러다 임신하면 어쩌라고? 애 지우러 갈까?”임신이라는 두 글자는 마치 전류처럼 그의 심장에 타고 들었고 갑자기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만약 둘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절대 끊을 수 없는 관계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그는 지그시 하지연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한 글자씩 내뱉었다.“임신하면 낳아야지.”‘뭐라고?’하지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충격과 분노 속에서 목소리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미쳤냐?”“미친 건지 아닌 건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방시운은 비꼬는 말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주의 깊게 그녀의 배를 바라봤는데 어찌나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하지연은 방시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도 앓고 있다. 지나친 편집증과 집착은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자기가 생각하는 건 막무가내로 끝까지 고집하는 억지스러움과 원칙 따윈 안중에도 없는 무자비함을 가졌다.“내 아이는 아무도 해칠 수 없어. 당연히 너도 안돼. 그러니까 오늘밤에 나랑 같이 유럽으로 가서 태교하자.”방시운이 명령했다.“서원아, 얼른 짐 싸고 헬기 준비해.”“안 가!”하지연은 정신이 나간 듯한 방시운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솔직히 관계를 한번 맺었다고 임신할 가능성은 극히 작었기에 그저 그의 행동이 우습게 느껴졌다.“하지연, 네가 평소에 어떻게 놀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아이에 관련된 일은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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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9화

밤 12시, 선우 일가의 서재는 여전히 밝았다.이현무는 손에 우유 한잔을 든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발을 뻗자마자 바닥에 널브러진 서류를 밟자 재빨리 작은 발을 뒤로 거뒀다.한참 동안 꼼꼼히 둘러본 끝에 발 디딜 곳을 찾았고, 그제야 조심스럽게 우유를 들고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엄마, 눈이 엄청 빨개요. 얼른 자러 가요.”지난 며칠간 백아영은 밤낮으로 단서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고 24시간을 48시간으로 쪼개어 쓰면서 3일 동안 두 시간을 잤다.눈에 띄게 창백한 안색과 판다처럼 짙은 다크써클을 보니 극도로 피곤한 상태인 게 분명하다.그러나 이현무를 마주하자 곧바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신을 차렸다.“엄마는 일 조금만 더 하다가 금방 잘 거야. 현무야, 벌써 12시인데 왜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그게...”이현무는 할말 있는 사람처럼 우유컵을 손에 들고 눈을 깜빡이며 한참을 망설이더니 끝내 말을 삼켰다.백아영은 곧바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이현무를 무릎에 앉혔다.“현무야, 무슨 일 있어? 엄마한테 얘기해 봐.”강한척하던 이현무는 백아영의 품에 안기자마자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커다란 두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그는 괴로운 듯 입을 삐죽거리더니 울먹이며 말했다.“아빠랑 자고 있었는데...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깨서 눈떠보니까 아빠랑 아줌마가 화장실 앞에서...”이현무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안고 있었어요.”백아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성준과 심보라가 껴안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다.“아줌마가 우리 아빠 뺏어가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일 그만하고 빨리 가서 아빠 데려와요. 네?”이현무는 백아영의 손가락을 잡고 다급하게 끌어당겼는데 당장이라도 안방으로 끌고 갈 기세였다.그러나 백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표정만큼은 여전히 차분했고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현무야, 자다가 일어나서 잘못 본 거야. 아빠랑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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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0화

“아직은 가면 안 돼요.”힘겹게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듯한 백아영의 목소리는 잔뜩 떨고 있었다.“신보라가 손을 썼다는 건 온시혁도 곧 움직일 거란 뜻이에요.”백아영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배후의 세력과 그들 간에 얽힌 복잡한 관계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고 눈빛마저 단호해졌다.“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그녀는 심호흡하고 서재 앞에 앉더니 엄청난 집중력으로 다시 일에 전념했다.위정은 충격과 감탄이 가득 찬 눈으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눈앞의 백아영은 연약하기만 하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이제는 훨씬 더 성숙해지고 강해졌다.가녀린 어깨에 큰 짐을 짊어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컸다.위정은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며 그저 이성준이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다음날.심보라는 방금 만든 아침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헤드셋에 대고 속삭였다.“이성준 지금 완전히 저한테 통제됐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무조건 들으니까 이제 슬슬 움직여도 될 것 같아요.”“20분 안에 선우 일가에 도착한다.”심보라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부탁이 있어요.”온시혁은 짜증 내며 물었다.“뭔데?”심보라는 안방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더니 붉은 입술로 더없이 잔인하고 악랄한 말을 했다.“백아영은 시혁 씨가 가져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성준이 직접 죽였으면 좋겠어요. 물론 아들까지.”심보라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그토록 사랑하던 남자가 자기 가족을 죽이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 백아영은 어떤 기분일까요? 전 백아영이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을 죽인 이성준은 평생 어둠 속에 숨어서 살겠죠? 그럼 나만 의지하고 바라보게 될 거예요.”“너처럼 독한 여자는 처음이야.”온시혁은 단지 그녀의 악랄함에 혀를 내둘렀을 뿐 크게 개의치 않았다.“네 뜻대로 되길 바랄게.”통화를 마친 후 심보라는 기분 좋게 아침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여느 때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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