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방시운은 싸늘한 얼굴로 병실 옆방에 앉아 있었다. 늘씬한 손가락 사이에 시가가 끼워져 있었고, 뿌연 연기가 피어올라 그의 잘생긴 얼굴을 가렸는데 이목구비가 흐릿해 보였다.다만 연기를 뚫고 전해지는 냉기는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이성준이 대체 어디가 좋아? 애가 벌써 몇 살이야? 그리고 툭하면 백아영과 애정행각을 벌이며 꽁냥거리는데 하지연은 왜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거지?”시가가 무참히 두 동강이 났고, 이내 화가 난 얼굴로 서원을 쏘아보았다.“내가 이성준보다 못한 게 뭐야?”서원은 아연실색하며 재빨리 대답했다.“당연히 없죠.”이내 방시운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자 서둘러 말을 바꿨다.“이성준은 도련님의 발끝에도 못 미치죠.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능력도 별로 뛰어나지 않고, 그렇게 큰 이씨 가문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게 말이 돼요? 정말 남자로서 최악이에요. 게다가 사람 보는 눈도 없어서 한때 자기 아내마저 잘못 알고 있었다니까요? 만약 도련님이라면 지연 씨가 잿가루로 변한다고 한들 그 속에서 정확하게 찾아내지 않겠어요? 지연 씨를 향한 도련님의 사랑은 가히 비교할 수조차...”서원이 청산유수로 칭찬을 늘어놓는 와중에 방시운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호통쳤다.“감히 하지연을 저주하는 거야!?”순간 어안이 벙벙한 서원은 입을 다물었다. 대체 어디가 하지연을 저주했냐는 말이다.물론 감히 저주할 용기도 없었다.“제가요? 아니, 전...”“네가 잿가루로 변하면 몰라도, 설령 이 세상이 멸망한들 하지연은 살아 있을 거야.”방시운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자기 자식을 감싸는 맹수처럼 잔뜩 날이 섰다.서원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손을 번쩍 들어 스스로 뺨을 내리쳤다.“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했어요. 도련님이 지켜주시는데 지연 씨가 어찌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방시운의 안색이 그제야 좋아졌다. 하지만 곧이어 옆 병실에서 큰 충격음이 들려왔다.쿵! 쿵! 쿵!연달아 몇 번 울리는
“별일 없으면 호들갑 떨지 마. 괜히 소리 질러서 닭 손질하는데 깜짝 놀랐잖아.”하지연은 눈을 흘기면서 그를 노려보고는 뒤돌아서 주방으로 들어가 다시 닭을 자르기 시작했다. 식칼을 내려칠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닭은 금세 토막토막이 났다.식칼에 잘려서 반동으로 튀어 오른 닭고기를 지켜보는 서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렇게 잔인할 수가...곧이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시운을 쳐다보았다.“도련님, 일단 밖에 있을까요?”다칠지도 모르는데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그러나 방시운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고, 닭고기와 옆에 놓인 야생 버섯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흠칫 놀랐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조마조마하면서도 은근한 기대가 배어 있었다.“버섯 찜닭 하려고?”하지연이 눈을 흘겼다. 한쪽 어깨를 다친 바람에 한 손으로 요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 그래도 짜증이 스멀스멀 나는데 옆에서 쓸데없는 소리까지 해대니 열받아서 대답조차 하기 싫었다.하지만 방시운의 눈빛이 점점 빛이 나기 시작했다.“나한테 해주려고?”“당연한 거 아니야?”하지연은 참다못해 씩씩거리며 식칼을 도마에 힘껏 꽂았고, 칼날에 금세 깊숙이 박혔다.“나 바쁜 거 안 보여? 한마디만 더 하면 너도 토막 내서 같이 요리해줄 거야!”방시운이 잽싸게 주방에서 나왔다.“참.”하지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버섯 찜닭 먹고 나서 선우 일가 도와주는 거다?”비록 표정은 험상궂었지만, 속으로는 확신이 별로 없었다. 어쨌거나 방시운처럼 까다로운 사람은 고작 밥 한 끼로 시중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기에 그녀를 골탕 먹일 다른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하지만 무슨 일이든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혹시 모를 경우도 있을 테니까.“알았어.”너무 쉽게 허락하는 바람에 하지연은 깜짝 놀라 경악을 금치 못했고,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잘못 들은
방시운의 눈에 비친 모습과 달리 하지연은 옷을 푼 적도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 적도 없다. 행여나 그가 선택을 번복하지는 않을까 조바심 어린 눈길로 경계하며 쳐다봤을 뿐인데 방시운은 사뭇 다른 장면을 본 듯 착각했다.하지연은 마치 활짝 핀 장미처럼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좋아해, 처음부터 내 마음은 변한적 없었어.”방시운은 하늘을 나는듯한 기분이 들면서 너무 기쁜 나머지 믿을 수 없었다.기대감으로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렸으나 늘 그렇듯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거짓말하지 마.”그 시각 하지연은 방시운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듯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봤다.‘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뭐라는 거야?’자세히 보면 표정도 평소와 다르고, 얼굴도 빨개진 걸 알 수 있다.“방시운, 너 왜 그래?”하지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의 이마를 만졌고 불타는듯한 느낌에 걱정스럽게 물었다.“열나? 의사 불러줄게.”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방시운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아 끌어당겼고 순식간에 그의 품에 안겼다.하지연을 바라보는 그의 흐릿한 눈빛에서는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의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쉰 듯한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단호했다.“네가 먼저 날 건드린 거야. 난 거절할 줄 몰라.”말이 끝나는 동시에 그는 하지연에게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속박된 감정은 마치 우리에 갇힌 짐승이 자유를 되찾은 후 야성을 드러내며 자신이 원하는 달콤함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듯 거칠었다.웁!하지연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굳어졌다.‘방시운이 드디어 미친 건가? 왜 이래?’저항하고 몸부림쳤지만, 이 모든 건 방시운에게 그와 하고 싶어 한 시도 지체할 수 없는 안달 난 사람처럼 비춰졌다.순간 욕망이 불타오른 그는 하지연을 안아 침대에 눕혔다.5시간 후.하지연은 지친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쉰 듯한 연약한 목소리에서 그녀의 피곤함이 느껴졌다.“미친놈, 그만해...”처음으로 달콤함을 맛본 남자는 만족을 모르는 듯 또다시 그녀의 볼을 타고내리
방시운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병실 천장이 보였고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손에 주삿바늘이 꽂혀있다는 것이다.‘뭐지?’머리가 아픈 듯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누르자 뒤죽박죽된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르면서 어렴풋이 여러 장면이 생각났다.“서원아!”방시운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졌다.“나한테 무슨 일 있었어?” 서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정말 기억 안 나세요?”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독버섯을 먹고 중독되어서 정서불안 증세가 찾아왔는데... 독소는 제거 되었으니 이틀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겁니다.”아무리 감추려고 애를 써도 방시운은 그의 말에서 관건적인 단어를 캐치했다.“정서불안?”뒤죽박죽된 기억의 조각 속에서 어렴풋이 한 장면이 떠올랐고, 하지연과 함께...‘아니야, 그건 꿈일 거야.’꿈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순간 관자놀이가 튀어나올 듯 두통이 더 심해졌다.“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서원은 뒤로 물러나 몸을 덜덜 떨며 땅바닥만 주시했다.“제가 들어갔을 땐 도련님이 벌거벗은 채로... 바닥에 누워계셨습니다.”서원은 기어들어 갈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지연 씨는 이불 감싸안고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입지 않았...”방시운은 머릿속에 있던 시한폭탄이 터진 것만 같았고 신경 하나하나가 곤두섰다.중독된 틈을 타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가장 사악한 욕망을 풀었다. 하지연을 성폭행했다.“지연은...”그는 불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지금 어때?”서원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도련님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아마도 지연 씨가 침대에서 내려오기 불편한 상황이라서...”그는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도련님이 혼수상태에 있는 동안, 지연 씨가 떠나려는 걸 저희가 최선을 다해 막았습니다. 그런데 아마 더 버티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방시운은 미간을
부상이 낫지 않은 상황에서 한바탕 싸웠기에 상처들이 더 악화됐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고 의사는 신속하게 붕대를 다시 감아줬다.의사가 막 떠나려고 할 때 하지연이 물었다.“혹시 피임약 있나요?”“있긴 한데...”의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시운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먹지 마.”그는 하지연이 몸에 해로운 약을 먹게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하지연은 고개를 들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먹지 말라고? 그러다 임신하면 어쩌라고? 애 지우러 갈까?”임신이라는 두 글자는 마치 전류처럼 그의 심장에 타고 들었고 갑자기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만약 둘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절대 끊을 수 없는 관계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그는 지그시 하지연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한 글자씩 내뱉었다.“임신하면 낳아야지.”‘뭐라고?’하지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충격과 분노 속에서 목소리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미쳤냐?”“미친 건지 아닌 건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방시운은 비꼬는 말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주의 깊게 그녀의 배를 바라봤는데 어찌나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하지연은 방시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도 앓고 있다. 지나친 편집증과 집착은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자기가 생각하는 건 막무가내로 끝까지 고집하는 억지스러움과 원칙 따윈 안중에도 없는 무자비함을 가졌다.“내 아이는 아무도 해칠 수 없어. 당연히 너도 안돼. 그러니까 오늘밤에 나랑 같이 유럽으로 가서 태교하자.”방시운이 명령했다.“서원아, 얼른 짐 싸고 헬기 준비해.”“안 가!”하지연은 정신이 나간 듯한 방시운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솔직히 관계를 한번 맺었다고 임신할 가능성은 극히 작었기에 그저 그의 행동이 우습게 느껴졌다.“하지연, 네가 평소에 어떻게 놀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아이에 관련된 일은 무조건
밤 12시, 선우 일가의 서재는 여전히 밝았다.이현무는 손에 우유 한잔을 든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발을 뻗자마자 바닥에 널브러진 서류를 밟자 재빨리 작은 발을 뒤로 거뒀다.한참 동안 꼼꼼히 둘러본 끝에 발 디딜 곳을 찾았고, 그제야 조심스럽게 우유를 들고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엄마, 눈이 엄청 빨개요. 얼른 자러 가요.”지난 며칠간 백아영은 밤낮으로 단서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고 24시간을 48시간으로 쪼개어 쓰면서 3일 동안 두 시간을 잤다.눈에 띄게 창백한 안색과 판다처럼 짙은 다크써클을 보니 극도로 피곤한 상태인 게 분명하다.그러나 이현무를 마주하자 곧바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신을 차렸다.“엄마는 일 조금만 더 하다가 금방 잘 거야. 현무야, 벌써 12시인데 왜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그게...”이현무는 할말 있는 사람처럼 우유컵을 손에 들고 눈을 깜빡이며 한참을 망설이더니 끝내 말을 삼켰다.백아영은 곧바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이현무를 무릎에 앉혔다.“현무야, 무슨 일 있어? 엄마한테 얘기해 봐.”강한척하던 이현무는 백아영의 품에 안기자마자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커다란 두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그는 괴로운 듯 입을 삐죽거리더니 울먹이며 말했다.“아빠랑 자고 있었는데...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깨서 눈떠보니까 아빠랑 아줌마가 화장실 앞에서...”이현무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안고 있었어요.”백아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성준과 심보라가 껴안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다.“아줌마가 우리 아빠 뺏어가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일 그만하고 빨리 가서 아빠 데려와요. 네?”이현무는 백아영의 손가락을 잡고 다급하게 끌어당겼는데 당장이라도 안방으로 끌고 갈 기세였다.그러나 백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표정만큼은 여전히 차분했고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현무야, 자다가 일어나서 잘못 본 거야. 아빠랑 보라
“아직은 가면 안 돼요.”힘겹게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듯한 백아영의 목소리는 잔뜩 떨고 있었다.“신보라가 손을 썼다는 건 온시혁도 곧 움직일 거란 뜻이에요.”백아영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배후의 세력과 그들 간에 얽힌 복잡한 관계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고 눈빛마저 단호해졌다.“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그녀는 심호흡하고 서재 앞에 앉더니 엄청난 집중력으로 다시 일에 전념했다.위정은 충격과 감탄이 가득 찬 눈으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눈앞의 백아영은 연약하기만 하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이제는 훨씬 더 성숙해지고 강해졌다.가녀린 어깨에 큰 짐을 짊어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컸다.위정은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며 그저 이성준이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다음날.심보라는 방금 만든 아침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헤드셋에 대고 속삭였다.“이성준 지금 완전히 저한테 통제됐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무조건 들으니까 이제 슬슬 움직여도 될 것 같아요.”“20분 안에 선우 일가에 도착한다.”심보라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부탁이 있어요.”온시혁은 짜증 내며 물었다.“뭔데?”심보라는 안방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더니 붉은 입술로 더없이 잔인하고 악랄한 말을 했다.“백아영은 시혁 씨가 가져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성준이 직접 죽였으면 좋겠어요. 물론 아들까지.”심보라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그토록 사랑하던 남자가 자기 가족을 죽이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 백아영은 어떤 기분일까요? 전 백아영이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을 죽인 이성준은 평생 어둠 속에 숨어서 살겠죠? 그럼 나만 의지하고 바라보게 될 거예요.”“너처럼 독한 여자는 처음이야.”온시혁은 단지 그녀의 악랄함에 혀를 내둘렀을 뿐 크게 개의치 않았다.“네 뜻대로 되길 바랄게.”통화를 마친 후 심보라는 기분 좋게 아침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여느 때와 다
선우경진은 얼떨떨해져서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성준 씨, 미쳤어요?”그에게 돌아오는 답은 자비 없는 이성준의 주먹뿐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허둥지둥 대응하던 선우경진은 이내 이성준의 발에 밟혀 허리가 부러졌고 순간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동시에 강제로 우유를 마신 이현무는 중독된 듯 입에서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힘없이 심보라의 품에 안겨 의식을 잃었다.“현무야!”선우경진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발악하며 소리쳤다.“이성준!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요?”이성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의 허리를 세게 짓밟았고 싸늘한 눈빛에서는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선우경진의 질문에도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했다.“당연히 알겠죠. 달라진 게 있다면 이성준은 이제 당신들에게 관심이 없거든요.”심보라는 쓰레기를 버리듯 이현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곧이어 우아하게 티슈 뽑아 손에 묻은 우유를 닦으며 이성준에게 다가가더니 다정하게 그의 팔짱을 꼈다.힘 풀고 몸을 이성준에게 맡기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성준이의 눈에는 이제 저밖에 없거든요.”“그게 무슨 개소리야?”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선우경진은 소리 지르며 몸부림쳤고 그럴 때마다 쉴 틈 없이 피가 뿜어져 나왔다.심보라는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성준아, 뽀뽀해 줘.”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린 이성준은 싸늘함이란 온 데 간 데 찾아볼 수 없었고 애정어린 눈빛으로 심보라를 바라보더니 허리를 굽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그 모습을 보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 선우경진은 화가 나서 또 피를 토했다.“이성준, 당신 미쳤어요? 아영이가 이걸 알게 되면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이성준이 움찔하자 심보라의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사라지며 싸늘하게 돌변했다.“성준아!”마치 마법을 쓴 듯 심보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망설임은 눈 녹듯 사라졌고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한편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방문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