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 고작 이런 허술한 수갑으로 언제까지 날 붙잡아 둘 거로 생각해?”걸걸한 목소리는 귀에 거슬릴 지경이었고, 말투에는 배 째라는 식의 자포자기가 담겨 있었다.깜짝 놀란 백아영은 입구에 서서 넋을 잃었고,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갔다.하지연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연락이 안 닿을 거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했지만, 이렇게 처참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방시운은 정녕 피도 눈물도 없는 건가?!“나도 이 정도로 하고 싶지는 않았어. 기어코 아이를 지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방시운이 수갑 열쇠를 백아영에게 건네주었다.“잘 설득해 봐. 아니면...”이내 하지연을 바라보았고, 그녀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너랑 아이 둘 중에서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백아영은 죽었어.”그는 하지연이 백아영의 목숨까지 끌어들이지 않을 거로 확신했다.열쇠를 건네받은 백아영은 서둘러 다가가 하지연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방문을 닫고 둘만의 공간을 확보했다.백아영은 안쓰러운 얼굴로 하지연의 손목을 어루만졌고,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비록 큰 상처는 없었지만, 컨디션이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은데, 현재 상황에서는 스스로 단식을 택했을 가능성이 컸다.“지연 씨,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죠?”하지연은 착잡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았고, 여유가 철철 흘러넘치던 자신만만한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이내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아영 씨를 도와주기 힘들 것 같아요.”“제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백아영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그래도 만신창이인데, 어찌 그런 사람한테 빌붙어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겠는가?지금은 오히려 하지연을 먼저 도와주고 싶었다.“지연 씨도 시운 씨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 아이도 생겼고, 시운 씨도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적어도 서로를 위해, 더욱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그럴 일은 없어요.”하지연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방시운은 고개를 돌려 백아영을 바라보았다.“하지연 설득했어?”백아영이 대답했다.“아직 고민 중이래요.”방시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고려한다는 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역시나 백아영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우리 집에 남아서 계속 설득해.”그러고 나서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 안가희를 향해 다가갔다.“여기 왜 왔어?”“요 며칠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하던데 또 무리하게 일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안가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얼굴색이 그게 뭐예요? 컨디션 안 좋죠?”이내 가져온 약을 꺼내 손바닥에 덜어서 건네주었다.“새로 개발한 약이에요. 건강에 좋으니까 얼른 먹어요.”애교 섞인 말투로 질책하는 여자의 모습은 방시운처럼 무뚝뚝한 남자에게 쥐약일 텐데,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약을 꿀꺽 삼키더니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뭔 걱정이 그리 많은지, 참.”“이게 다 오빠를 위해서잖아요.”안가희는 방시운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지연 언니 아직도 싫대요?”방시운은 입을 굳게 다물더니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언젠간 동의할 거야.”안가희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지만, 화사한 미소를 지은 얼굴에는 오로지 부러움뿐이었다.“언니는 좋겠어요. 아이도 가질 수 있고, 저도 아이를 갖고 싶은데...”당시 안가희는 방시운을 구해주기 위해 두 다리를 잃었을뿐더러 임신도 못 하게 되었다.결국 죄책감과 안쓰러움 때문에 방시운은 그녀의 부탁이라면 항상 들어주곤 했다.“너도 가질 수 있어.”“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사랑해요~”활짝 웃으며 그의 손등에 얼굴을 대고 마치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처럼 비비적거리는 안가희의 모습은 사랑스러우면서도 귀여웠다.백아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눈앞의 장면을 지켜보았고, 방시운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하지연이 괜히 괴로워하는 게 아니었군.“나 정했어요.”허스키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나지막이 들려왔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방시운은 어안이 벙벙했다.이내 눈살을 찌푸리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되물었다.“확실해?”“응.”붕 떠 올랐던 기분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낳게 했더니 정작 그와 결혼할 생각은 없었고, 설령 임신했을지언정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녀는 원래 매정한 편이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현재 상황에서 아이를 살린 것만으로도 방시운은 만족했다.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안가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시운 오빠, 결혼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큰일인데...”방시운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난 이미 결정했어.”안가희가 다시 설득하려는 찰나 방시운의 싸늘한 옆모습을 보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연에 관한 일은 한번 결정한 이상 그녀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방씨 일가를 나서는 순간 여성스럽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표독하고 싸늘하게 변했다.하지연의 도발을 어찌 모르겠는가?방시운에게 평생 혼자 살라고 했던 것도 일부러 그녀를 겨냥한 것이다.그동안 방시운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인 척 연기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결국 철석같이 믿은 하지연은 마음을 접고 약혼식 전날에 도망쳤다.만약 하지연이 아이를 빌미로 방시운을 붙잡아둔다면 언젠간 빼앗기기 마련이다.하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방시운은 그녀의 남자니까.두 다리를 잃고 불임까지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방시운을 얻기 위해서인데 어찌 하지연에게 밀려나겠냐는 말이다.“어떻게든 하지연을 쫓아내야 해. 시운 오빠 곁에서 사라지게 할 거야.”안가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러나 하지연의 막강한 배경과 세력을 떠올리면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었다.“아가씨, 하지연이 갑자기 생각을 바꾼 이유가 혹시 곁에 있는 여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도우미가 문득 말했다. 순간, 방안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이 안가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록 처음 보긴 했으나 낯익은 느낌이 들어 어디선가 만난
백아영이 비록 분장해서 방씨 일가에 찾아갔지만, 박주미라는 단서를 통해 정체를 조사해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그 사람이 백영미라고?”안가희는 깜짝 놀랐다.“언니 남자친구를 두고 방씨 일가에 가서 뭐한대?”백영미를 처음 봤을 때 평범한 얼굴과 달리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긴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녀의 걸림돌이 확실했다.안가희는 곧장 안가연을 찾아갔다.“언니, 백영미의 정체가 따로 있다는 거 알았어? 대체 누구야?”안가연은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아직 성준의 진면모를 모르지?”안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안가연이 태블릿을 꺼내자 그녀가 찍은 이성준의 사진이 나타났다. 가면을 쓰지 않은 얼굴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생겼다.준수한 외모에 안가희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이럴 수가, 이성준이잖아?”안가희는 아연실색하며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지금 온씨 가문과 협력 중인데 이성준을 끌어들인다는 자체가 화를 자초하는 꼴이지 않아?”안가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다 계획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넌 방시운이나 관리 잘해.”방시운을 언급하는 순간 안가희는 의기소침한 얼굴로 말했다.“그때 하지연이 떠난 이유도 시운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인 줄 알고 착각했단 말이야. 스스로 포기한 덕분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기회라도 있었지만, 이제 선제공격을 날렸을뿐더러 시운 오빠의 아이까지 가졌으니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바보야, 네가 원하는 게 물건이든 남자든 언니가 그 소원을 다 이뤄줄게.”안가연이 안가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며칠 뒤에 백아영의 목숨을 노릴 생각인데, 가족처럼 끔찍하게 아끼는 하지연은 절대로 백아영이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어차피 두 사람은 같이 죽게 될 운명이다.그때가 되면 자매의 장애물은 동시에 사라질 테니까.“백아영은 이성준의 아킬레스건인데 죽이고 나서 이성준을 어떻게 감당하려고?”그가 막대한 자산과 권력을 흔쾌히 포기한 이유도 오로지 백아영을 위해서였다.안가
“끊을 거면 확실하게 끊던가. 밖에서 살아남기 힘드니까 괜스레 다시 찾아오지나 말고.”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에 하지연의 안색이 싸늘해졌다.아버지란 사람은 딸이 잘 지내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항상 가족의 체면과 이익만 따졌다.“그만!”방시운은 하지연을 뒤로 끌어당기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인 거 같은데 이만 가볼게요. 집에서도 기분전환이 안 되는데 굳이 남아 있을 필요는 없죠.”하지연이 흠칫 놀라면서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방시운이 나서서 그녀를 감싸주다니?하지만...자신을 끌고 가는 방시운의 손을 뿌리치며 하지연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아빠,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하승주는 깜짝 놀랐다. 황소고집은 물론 피도 눈물도 없던 딸이 먼저 사과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러나 잘못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만족했다.“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철저하게 반성해. 그리고 방시운과 결혼...”“아빠.”하지연이 불쑥 끼어들었다.“그동안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본 적이 없잖아요. 이번에 생각 좀 해봤는데 아빠랑 단둘이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꼬리를 내린 딸의 모습에 아직 심취해 있는 하승주는 의심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데리고 서재로 향했다.방시운이 따라가려는 찰나 백아영이 제지했다.“부녀 사이에 응어리가 있은 지 오래되었을 텐데 지연 씨가 어렵게 마음을 열었잖아요. 단둘이 풀게 놔두세요.”백아영은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도처에 깔린 경호원을 훑어보았다.“하씨 가문을 이미 겹겹이 에워쌌는데 지연 씨가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도망칠 수도 없잖아요. 게다가 인질도 아직 남아 있고.”밖에서 하지연이 시야에서 단 1초라도 벗어나면 방시운은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렇다고 딱히 백아영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경고했다.“난 인질을 봐줄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야.”자칫 수작을 부리는 순간 백아영부터 죽일 생각이었다.물론 그는 하지연이 백아영을 내팽개
“도련님! 백아영이 도망쳤어요.”“잡아!”방시운이 싸늘한 얼굴로 명령했다.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우뚝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서재를 바라보았다.“다들 서재로 가.”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한 예감이 서재 문을 여는 순간 입증이 되었다.하승주는 기절했고, 하지연은 감쪽같이 사라졌다.하지연이 도망쳤다.방시운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고, 주먹을 꽉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집어삼켜 심연 속으로 끌어당겼다.“찾아! 전 세계를 이 잡듯이 뒤져서라도 무조건 찾아내.”...픽업하는 사람과 무사히 접선한 하지연은 비밀통로를 벗어나자마자 차에 올라타 유유히 빠져나갔다.반면, 백아영은 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임씨 일가로 향했다.박주미는 일찌감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영 씨가 부탁한 일은 이미 마쳤어요. 여왕님께서 직접 뵙고 싶대요.”백아영은 박주미를 따라 궁전으로 가서 여왕을 만났다.그리고 안씨 일가의 만행을 직접 까밝혔다.A 국에서 안가연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만큼 설령 생화학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악행을 공개한다고 한들 공분을 일으켜 그녀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왕실에서 직접 개입해야만 철저히 짓밟을 수 있다.또한, 생화학 바이러스는 왕실에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아영 씨와 대동할 친위대를 파견해줄게요. 만약 거짓말이 아니라면 포상을 받을 거예요.”그저 쓸모없는 포상일 뿐이라니.백아영은 미소를 짓더니 여왕 친위대와 함께 궁전을 나섰다.대문을 나서는 순간 멀리서 급히 뛰어오는 제이슨을 마주쳤다.그는 백아영을 막아섰다.“영미 씨, 안가연을 건드린 결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안씨 일가는 워낙 막강한 가문이라 설령 유죄 판결을 받아 연구실이 통제되더라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죠. 안가연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는 유럽에서 퇴출당하는 거예요.”백아영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저도 알아요.”결과가 어떻게 되든 험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죄송하지만 궁전에 다시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백아영은 이를 악물고 마음을 굳게 먹고는 지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잡아!”친위대가 재빨리 뒤쫓았다.백아영은 도망가면서 이성준에게 연락했다. 이 지경이 된 이상 즉시 유럽을 떠나야만 했다.데리러 온 사람이 이미 안씨 일가 별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지하실을 벗어나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고, 백아영이 서둘러 말했다.“성준아, 시간 없어. 후문에서 봐.”“아쉽게도 성준은 못 가.”휴대폰 너머로 안가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아영은 흠칫 놀라더니 등골이 오싹하며 식은땀이 났다.“왜 당신이 성준 휴대폰을 갖고 있어?”설령 이성준이 거래 때문에 발목이 붙잡혔다고 한들 절대로 휴대폰을 넘겨주지는 않았을 것이다.텅 빈 연구실이 문득 머릿속으로 떠오르자 백아영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안가연!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야?”“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든지?”안가연은 영상통화로 바꾸었다. 화면에는 유리 벽으로 이루어진 연구실에 갇힌 이성준이 나타났는데 손발이 수술대에 묶여 있었고, 주위에 뿌연 독가스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이성준의 안색은 극도로 창백했고, 설령 강철처럼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언정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 듯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성준아!”백아영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당장 멈춰! 감히 성준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널 죽여버릴 거야!”“방금 막 연구에 성공한 생화학 바이러스라서 아직 인체 실험은 못 해봤거든? 이대로 계속 독가스에 노출되면 10시간 뒤에 장기부전으로 목숨을 다할 테니까 되살릴 방법은 없어.”안가연은 마치 만반의 준비를 마친 사냥꾼처럼 느긋하게 사냥감이 덫에 걸려들기를 기다렸다.“이제 3시간 남았네? 백아영, 구하러 올 거야? 말 거야?”이내 주소를 불러주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백아영은 온몸이 싸늘해지며 저도 모르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치 휴대폰을 부술 기세로 꽉 움켜쥐었고, 난생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잠식당할
며칠 전, 방시운이 백아영 대신 온씨 가문을 공격한 탓에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닌지라 두 가문은 이미 원수지간이 되었다.이제 공통의 목표인 백아영을 노리기 위해 이유 불문하고 대뜸 싸움이 벌어졌다.곧이어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다.백아영은 간신히 차에 기대어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는 그녀가 이미 예견한 상황이다.안씨 일가를 나서는 순간 그녀는 온시혁이 찾아오도록 자신의 위치를 일부러 노출했다.그리고 두 세력이 다투는 틈을 타서 도망칠 기회를 엿볼 심산이었다.이제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얼른 이성준에게 가야만 했다.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유심히 관찰한 끝에 백아영은 드디어 허점을 발견했다. 비록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잡아! 절대 놓치지 마.”온시혁이 큰 소리로 명령했다.싸늘한 눈빛으로 백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방시운은 흡사 저승사자를 연상케 했다.“어차피 도망치지 못할 거야.”왜냐하면 그녀는 죽은 목숨과 다름없었다.이때, 치명타를 향해 백아영의 등 뒤로 단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바닥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보닛에 걸터앉은 방시운은 단검에 묻은 피를 여유롭게 닦아냈다.이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하지연은 이미 도심을 벗어났을 거야. 수사 범위를 넓혀서...”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입이 떡 벌어졌다.쏜살같이 달려오던 차가 우뚝 멈춰서더니 하지연이 내려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꿈속에서라도 그리던 아름다운 광경에 마치 환각인 듯싶어 방시운은 리액션하는 것조차 잊었다.“백아영은?”하지연은 조급한 나머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내 방시운의 손에 든 단검에 피가 잔뜩 묻은 걸 보자 목소리마저 떨렸다.“백아영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그녀는 이미 멀리 도망갔지만,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격렬한 전투 현장을 가로지르며 뛰어가는 백아영은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등 뒤로 단검이 날아왔으나 본인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