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는 감히 찍소리도 못하고 씁쓸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대충 얼버무렸다.“이수 촌에서 셋째 도련님을 해코지한 사람은 큰 도련님일 가능성이 크니까 조심하세요.”이는 백아영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한태윤에게 다가가 휠체어를 밀고 떠났다.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호는 눈살을 찌푸렸고, 초조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한씨 일가.이수 극장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덕에 한태윤은 버림받은 자식에서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한건우도 약속대로 그에게 부사장 자리를 내주었다.한태윤이 본채에 일 보러 갔을 때 백아영은 별장에 남아서 이곳저곳 둘러보았다.여태껏 주방과 한태윤의 방만 왔다 갔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지라 이곳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갑자기 여유가 생기니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결국,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랫동안 비워둔 서재에서 책장에 진열된 사진을 발견했다.총 4장으로서 한 장은 가족사진, 다른 한 장은 한태윤과 이나연이 찍은 사진, 그리고 혼자 찍은 사진이 있었다. 한태윤은 한결같이 무표정이며, 기를 펴지 못하는 느낌이 사진을 뚫고 전해질 정도였다.한씨 일가에서 갖은 괴롭힘을 당한 한태윤이 매사에 신중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은 백아영도 알고 있다.하지만 네 번째는 한태윤과 젊은 여성이 나란히 찍은 사진인데, 여성은 한태윤의 어깨에 기대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한태윤의 입꼬리도 한껏 올라갔고, 반달처럼 휘어진 눈꼬리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이렇게 행복하고 기쁜 모습은 한씨 일가에서 절대로 볼 수 없었다.사진 속 여성은 그의 소꿉친구이자 약혼녀가 분명할 것이다.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백아영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먹먹했다. 행여나 싶었던 일이 눈앞에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이세운의 말이 사실이었다....한원그룹, 대표 사무실.이성준을 노려보는 한태성의 모습은 흡사 입을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한 마리의 독사를 연상케 했
Last Updated : 2023-12-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