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영은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이를 바드득 갈았다.“지금 몸 상태로 김치 먹으면 안 돼요!”“그래요?”나정숙은 마치 그제야 알았다는 듯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김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못 먹으면 버리죠, 뭐.”말을 마치고는 백아영을 스쳐 지나가 다시 위로 올라갔다. 심지어 손에는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희멀건 죽만 들고 있었다.“고작 죽만 먹으면 영양실조 와요.”“아영 씨! 오지랖이 너무 넓은 거 같은데요?”나정숙은 짜증 섞인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영양실조요? 도련님에게 영양이란 단어 자체가 사치인 거 알아요? 병 치료한답시고 이미 돈을 싹싹 끌어다 썼죠. 이 쌀도 본채에서 겨우 얻어온 건데,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이에요.”백아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태윤의 처지가 딱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무려 재벌가 도련님이 이 정도로 초라한 지경에 이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어찌 밥도 제대로 못 먹냐는 말이다.반면, 본채에서는 매일 같이 진수성찬에 산해진미를 먹고 있으면서 한태윤의 생사 따위 안중에도 없다.“참, 아영 씨, 여긴 먹을 게 별로 없어서 아영 씨까지 대접하기 힘들어요. 배가 고프면 본채에 가서 먹어요.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놓치지 말고요.”나정숙은 은총을 베푸는 식으로 말하더니 우쭐거리며 2층으로 걸어갔다.백아영은 주먹을 꽉 쥐었고,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덕분에 본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고,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밀려왔다.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본가 사람들과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백아영은 배달 어플을 켜고 음식을 주문했다. 한태윤에게 먹이려고 그나마 영양가 있는 전복죽과 반찬을 시켰고, 본인은 우육면을 선택했다.배달이 도착하자 한약도 마침 준비되어 쟁반에 담아 2층으로 들고 올라갔다.방에 들어서자 침대맡에 놓인 죽이 보였고, 그는 한 입도 대지 않았다.백아영은 가슴이 짠했다. 지난 두 달 동안 한태윤은 병고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사느니 죽느니만 못한
Last Updated : 2023-12-1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