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531 - 챕터 540

916 챕터

제531화

어쩌면 낯익은 옆모습을 본 순간부터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정신을 못 차렸을 수도 있다.선우경진은 한숨을 내쉬더니 곧이어 화를 내는 척하며 입을 열었다.“이름 듣기만 해도 열받으니까 이름 꺼내지도 마. 어제 앤니랑 맨빌로 돌아갔다더라.결혼하러 갔겠지 뭐”비수처럼 꽂힌 말에 백아영은 자리에 얼어붙었고 늘 그렇듯 가슴이 미어졌다.앤니는 이성준 생명의 은인이다. 어쩌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게 마음이 생겼고 술김에 관계를 맺어 ‘자연스레’ 함께하게 되었다.백아영은 그들이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잊은 채 병으로 죽어가는 남자를 이성준으로 착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전화를 끊은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둠에 휩싸인 바다를 바라봤고 마치 그 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밤새 마음을 가다듬은 끝에 마침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숨 막힐 듯한 느낌에서 벗어났다.백아영은 남자의 방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노크했다.“누구세요?”곧이어 남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예요. 아침 주려고 왔어요.”“필요 없어요.”남자는 매몰차게 거절했으나 백아영은 떠나지 않았다.백아영은 그가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걸 웨이터를 통해 알게 되었고 평범한 사람도 배가 고플 텐데 하물며 아픈 그는 더 말할 것도 없다.“움직이기 불편한 상황이면 제가 카드 찍고 안으로 들어갈게요.”말을 마친 후 카드 찍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자 휠체어에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고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듯하다.창가를 마주하고 앉은 그는 걸어오는 백아영을 보며 기분 언짢은 티를 냈지만 가면 아래 숨겨진 눈은 여전히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백아영은 환자에게 맞는 죽과 반찬을 식탁에 올려놓고선 웃으며 말했다.“이거라도 좀 먹어요.”“필요 없다고 했잖아요.”백아영은 남자의 뒤로 다가가 휠체어를 식탁 옆으로 밀었다.“제 행동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환자가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걸 의사로서 지켜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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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백아영은 또 하루 종일 경매를 지켜봤다. 비록 좋은 물건도 있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아니었다.백아영은 오프라인 경매에 괜히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울적했다.이제는 세 번째 경매에서 좋은 약재가 나와 신약 연구할 기회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50조라는 막대한 빚을 갚을 수 없게 된다.경매가 끝난 후 백아영은 주방으로 가서 환자에게 맞는 음식을 주문하고 남자에게 가져다주었다.그러나 도착하려던 순간, 남자의 방문 앞에 서 있는 앤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순간 눈빛이 흔들리면서 충격에 휩싸였다.‘이성준이랑 같이 맨빌로 떠난 거 아니었어? 왜 여기 있는 거지? 그것도 저 사람 방문 앞에?’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서로 아는 사이가 확실하다.순간 이성준과 닮은 남자의 옆모습이 떠올라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뛰었다.바로 그때 곁눈질로 백아영을 발견한 이성준은 눈빛이 어두워졌고 따라서 고개를 돌린 앤니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누가봐도 뭔가를 숨기는듯한 수상함이다.백아영은 의심이 더 커진 채로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당신이 왜 여기에 있죠?”간신히 크루즈에 올라탄 앤니는 이성준을 찾자마자 백아영과 마주쳤고 죄책감을 느끼는 듯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백아영에게 정체를 들킨 순간 전에 숨겨왔던 모든 비밀이 물거품이 된다. 앤니는 자신을 비난하는 이성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화해하는 걸 보고싶지 않았다.“그... 그게...”적당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자 앤니는 말을 더듬었고 그녀가 이렇게 행동할수록 백아영은 더욱 의심스러웠다.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혹이 점점 더 커지며 초조함에 저도 모르게 손을 뜯더니 착잡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다.“아는 사이에요?”남자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함께 짜증 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이 여자가 계속 귀찮게 하는데 아영 씨가 대신 얘기해줘요.”말을 마친 그는 싸늘하게 문을 닫았고 앤니는 어색하게 문밖에 서 있었다.“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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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앤니와 이성준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감정이 앞서 슬프고 괴로웠다.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앤니가 방을 잘못 찾은 게 가면 쓴 남자와 연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이성준과 닮은 남자의 옆모습이 떠오르면 또다시 심장이 떨렸다.백아영은 주먹을 불끈 쥔 후 카드를 찍어 방으로 들어갔다.그녀가 방으로 들어서자 ‘떠난’ 앤니가 다가와 원망과 질투의 눈빛으로 방문을 바라봤다.간신히 크루즈에 올라탔건만 이성준을 찾자마자 백아영에게 가로막혔다.들키지 않기 위해 앤니는 가면 쓴 남자를 모른척 해야만 했다.이성준의 곁에서 그를 돌보려면 반드시 두 사람을 갈라놓을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방으로 들어서자 남자는 여전히 창가에 앉아 전처럼 창밖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인기척을 듣고도 돌아보지 않았다.백아영은 ‘악마’ 가면을 자세히 바라봤다. 그의 얼굴형과 맞지 않는 가면을 보니 임시로 찾은 게 분명했다.신분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쓴 사람이라면 이렇게 허술하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백아영은 식탁에 음식을 내려놨다.“식사하세요.”“고마워요.”식탁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바로 식사를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백아영을 바라봤다.이제 가도 된다는 뜻이다.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를 보고있으니 당장이라도 벗겨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아직 친하지 않은 사이에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백아영이 아니었다.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레 물었다.“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이성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제경에서 왔어요. 성은 한이에요.”제경에서 재벌로 유명한 한씨 일가는 백아영도 들어본 적 있었다.방으로 돌아온 백아영은 재빨리 제경 한씨 일가에 대한 정보를 알아봤다. 고상하고 우아한 그의 겉모습을 보면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할 거라고 추측했다.만약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대표님, 제경 한씨 일가 셋째 도련님이 두 달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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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식탁 위의 음식은 손을 댄 흔적이 남아있었고 남자는 이제 막 식사를 마친 듯 가면을 쓰고 있었다.백아영은 가면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봤지만 이목구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백아영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지금 뭐 하는 거죠?”갑작스러운 백아영의 방문에 남자는 기분 나쁜 듯 언짢은 티를 내며 그녀를 바라봤다..이성준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의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하나둘씩 들어맞는 상황에 설명할 수 없는 의심과 불안감이 크게 밀려왔다.백아영은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으나 이를 악물고 태연하게 말했다.“아까 보니까 옷이 많이 더러워졌는데 갈아입기 불편하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낯선 남자를 도와 옷을 갈아입히려는 백아영의 행동에 이성준은 저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다.불쾌한 척 거절하려 했으나 의심하는듯한 그녀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부탁할게요.”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투덜거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흔쾌히 승낙하자 긴장감이 풀렸다.백아영은 옷을 갈아입히며 ‘실수로’ 그의 가면을 벗겨볼 계획이었다.모든 게 원하는 대로 흘러갔지만 정작 옷을 갈아입히려 남자를 마주하자... 백아영은 문득 부끄러워졌다.남자에게 옷을 갈아입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물며 아무 관계 없는 낯선 남자를 마주하니... 백아영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 잠시나마 후회했다.이성준은 그녀의 당혹스러움을 못 본 척하며 그윽하게 바라봤다.“왜 그래요?”“아니, 아니에요...”백아영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다가갔다. 기필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해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고 수치심보다 더 큰 걱정과 조바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일단 옷부터 벗으시죠.”“알겠어요.”이성준은 침착하게 행동했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셔츠 아래로 드러나는 그의 하얀 피부를 보고 있자니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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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백아영은 새 셔츠를 꺼내 그에게 다가가서 침착하게 입혀주었다.셔츠를 입은 후 바지를 갈아입을 차례가 되자 백아영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백아영의 어깨를 짚고 일어섰다.“귀찮겠지만...”말하던 중 그는 중심을 잃으며 앞으로 쓰러졌고 백아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를 안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은 채 간신히 서 있었고 이성준은 여세를 몰아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미련으로 가득 찬 그의 두 눈에서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이 순간만큼은 백아영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마지막이니까...백아영은 간신히 그를 붙잡았고 껴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자세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물러나려던 그때 남자는 이미 그녀를 놓았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다시 휠체어에 앉아 평소와 같은 말투로 얘기했다.“아무래도 남자가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아영 씨, 마음은 고마운데 여기까지만 하죠.”백아영은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뿐이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어 한발 물러섰다.“도와줄 남자 웨이터를 부를까요?”이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백아영이 떠난 후 곧바로 남자 웨이터 한 명이 들어왔다.이성준은 휠체어에 앉아 그녀가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며 슬픔에 젖어있었다.크루즈에서의 셋째 날.백아영은 평소처럼 아침 식사를 들고 남자를 찾아갔지만 아무리 노크해도 응답이 없었다.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그의 몸 상태가 떠오른 백아영은 걱정스러운 듯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하지만 어제와 달리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방은 그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텅 비었다.‘갔나?’오늘이 경매 마지막 날이니 밤에 크루즈는 정착하게 된다. 하여 지금 짐을 챙겨 나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이라 이별이 당연했지만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백아영은 마음을 가다듬은 후 경매장으로 향했다.오늘이야말로 경매의 하이라이트다. 좋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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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혈삼은 천년에 한 번 나타날 정도로 만나기 힘든 귀중한 약재입니다. 이번에도 정말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됐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경매인은 흥분하며 혈삼을 소개했고 한참을 말한 후에야 마침내 경매 방식을 설명했다.“혈삼은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기에 판매자께서 물물교환 입찰 방식을 제안했습니다.”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떠들썩해졌다.워낙 희귀한 보물이니 욕심내는 사람이 많았고 높은 금액으로 낙찰될걸 짐작했지만 물물교환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아예 예상하지 못했다.물물교환이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물건을 꺼내어 판매자와 교환하는 것인데, 상대방이 어떤 걸 원하는지 정보가 없으니 모든 게 불확실하다.“갑자기 이러면 안 되죠! 무조건 입찰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가능성이 희박해졌네요... 혈삼은 성준 오빠가 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데 이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뺏기면 어떡해요...”룸안에 있던 앤니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노발대발했고 옆에 있던 위정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성준을 바라봤다.“사장님, 이제 어떡하죠?”이성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입찰해야지.”그렇게 물물교환 경매가 시작됐다.이성준을 포함한 응찰자들은 모두 자신의 귀중한 보물을 내놓았다. 모든 물건이 올라오면 판매자는 그중에서 원하는 걸 선택한다.“제발 우리 성준 오빠를 선택해야 할 텐데... 제발...”앤니는 초조하게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그때 경매인은 활짝 웃으며 결과를 발표했다.“혈삼 거래가 성사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입찰에 성공하면 룸안의 모니터에 소식이 뜨기에 앤니는 긴장한 마음으로 재빨리 고개를 들었지만 「실패」라는 두 글자가 나타났다.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목소리마저 떨렸다.“어떡해... 이제 끝이야...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성준 오빠...”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성준을 바라봤다.“죽지 마요. 오빠 죽으면 난 어떡하라고!”위정의 표정도 말이 아니었고 1m 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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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모든 건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어쩌면 이게 이성준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그는 창백하고 힘없는 손가락으로 휠체어의 방향을 제어하면서 천천히 룸을 빠져나갔다.경매가 끝나자 크루즈는 부둣가에 닿았다.이성준은 제일 먼저 크루즈를 떠났고 그의 뒷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같은 시각 백아영은 재빨리 크루즈 선실에서 뛰쳐나와 출구에 이르렀다.그러나 이성준은 마침 코너를 돌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빗겨나갔다.백아영은 높은 곳에 올라서서 크루즈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애타게 그 남자를 찾고 있었다.경매에서 백아영은 자신의 침술로 혈삼을 따냈다.신약 연구에 쓰려고 했으나 혈삼이 생명 연장 효과가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고 순간 남자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경매가 종료되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찾을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기에 재빨리 뛰어나와 출구에서 그를 기다렸다.어찌됐든 일단 만나기만 한다면 남은 일사천리로 해결된다.그러나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크루즈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고 어느덧 모든 사람이 내렸다. 백아영은 텅 빈 출구를 바라보며 공허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내가 제일 먼저 나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휠체어 속도가 느려서 아직 못 나온 건가? 사람 많은 게 싫어서 나중에 내리려고 기다리는 중인가?’백아영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30분 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누군가 크루즈에서 내렸는데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위정과 앤니였다.그들을 발견한 백아영은 기분이 착잡했다.“아영 씨...”위정은 그녀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분명 이성준과 함께 왔을텐데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왜 이성준은 없지?’이제 이성준이 어떻게 지내든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백아영의 호기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얼른 가요. 성준 오빠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잖아요.”마치 모르는 사람인 듯 앤니는 백아영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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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두 시간 후 크루즈 직원들은 출구를 폐쇄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그 남자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백아영은 초조한 마음으로 다급하게 다가가서 물었다.“왜 벌써 닫아요? 제 친구 아직 안에 있어요.”“크루즈의 곳곳을 다 확인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아무도 없다는 말에 백아영은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네다섯 시간을 기다렸는데 놓쳤다니?제일 먼저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심지어 그 남자는 물론이고 이성준도 보지 못했다.출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끝내 놓쳐버렸다...허무함이 밀려온 백아영은 사람 없는 텅 빈 통로를 바라보며 말할 수 없는 초조함과 불안함을 느꼈다.남자의 건강 상태를 매우 잘 알고 있었고 생명 연장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그는 죽을 게 분명했다.하지만 이제는 살릴 방법을 찾았으나 남자를 찾을 수 없다.싸늘한 바닷바람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밀려오자 다시 슬퍼졌고 무력감에 휩싸인 채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웅웅웅’백아영의 핸드폰이 울렸다.정신을 차린 그녀는 전화를 받았고 곧이어 선우경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영아, 왜 아직도 안 나와? 무슨 일 있어?”선우경진은 보안검색대에서 백아영을 기다리다가 크루즈 직원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고 마지못해 전화를 걸었다. 백아영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금방 나갈게요.”백아영은 닫힌 크루즈를 바라보더니 힘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같은 시각 보이지 않는 모퉁이에는 이성준이 있었고 그는 휠체어에 앉은 채 애틋하게 백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가 출구에 서 있는 시간동안 이성준도 줄곧 지켜보고 있었고 백아영의 모든 순간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이성준은 보안검색대로 향하는 백아영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마침내 시선을 거두었다.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백아영, 이젠 안녕.”말을 마치자마자 힘이 풀리면서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보안검색대에 이른 백아영은 무언가에 이끌려 무의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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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운 좋으면 찾을 수도 있으니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다.그 시각 에나멜 호텔의 어느 VIP룸.침대 옆 카펫은 피로 물들었고 이성준은 다크서클이 가득한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금방이라도 죽을 듯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허약함이 가득했다.“헛수고할 필요 없어요. 전 어차피 죽을 거예요.”이성준의 곁에는 선우경진이 앉아있었는데 괴로움에 연신 침대를 내리쳤다.그는 절친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탓했다.“아영이는 아직도 여기 있어요?”이성준은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선우경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행여나 그가 속상할까 백아영이 이곳에 머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며칠 쉬고 싶대요.”“그래요.”이성준의 눈은 미련으로 가득했고 목소리에서는 슬픔이 느껴졌다.“마침 잘됐네요. 남원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하면 너무 슬퍼하지는 않을 거예요.”이성준은 교통사고로 위장하려고 이번에 돌아온 것이다. 교통사고로 죽는 건 의심할 바가 없었다.선우경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언제요?”“내일이요.”이성준의 몸은 며칠밖에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선우경진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이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이성준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시신 화장하고 나서 얘기해줘요.”그는 떠나기 전에 백아영의 미래를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쳤다.선우경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낮게 흐느꼈다.“잘 돌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이성준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던 선우경진은 눈물을 흘리며 방에서 나왔고 밖에는 위정과 앤니가 있었다.그는 울먹이며 물었다.“오프라인 경매에서 원하던 약재는 얻었어요?”선우경진은 이성준이 병든 몸을 이끌고 이원의 오프라인 경매에 참석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위정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다른 사람이 가져갔어요.”생명 연장할 약재를 판매자의 일방적인 경매 규칙 때문에 눈앞에서 놓친 셈이다. 안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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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방 번호를 묻고 백아영은 서둘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같은 시각 일 층에 도착한 1번 엘리베이터가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고 안에는 휠체어를 밀고 있는 위정과 앤니가 있었다.그들은 이성준과 함께 남원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앤니가 위정을 도우려고 돌아서는 순간,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백아영을 발견하고선 깜짝 놀랐다.‘젠장, 여긴 왜 또 온 거야!’이성준이 가면을 쓰지 않았고 옆에 위정까지 있으니 아무리 숨겨도 들킬 상황이었다. 백아영이 이 모든 걸 알게 된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간다.당황함에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누르며 백아영을 향해 걸어갔다.백아영은 급히 엘리베이터로 다가갔고 그녀의 시선에는 엘리베이터의 안쪽이 보였다.확인하려 하던 찰나에 앤니가 갑자기 시야를 가리더니 백아영을 세게 밀치며 큰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아영 씨,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죠? 설마 미행했어요? 이제 우리 성준 오빠한테 그만 집적거려요.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죠.”말 몇 마디에 순식간에 내연녀가 되었다.백아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혐오스러운 눈길로 앤니를 바라봤다.백채영을 제외하고 그녀에게 앤니는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자 마주치고 싶은 않은 사람이 됐다.앤니의 존재는 시시각각 실패한 이성준과의 사랑을 상기시켰다.또한 주위에 이성준이 있다는 걸 의미했기에 백아영은 주먹을 불끈 쥐고 싸늘하게 앤니를 바라봤다.“앤니 씨, 이성준과의 관계를 끝낸 건 저예요. 계속 만나고 있었더라면 앤니 씨한테 눈길조차 안 줬을걸요? 그러니까 앞길 막지 말고 꺼져요.”백아영은 망설임 없이 앤니를 밀어냈다. 계속하여 욕설을 퍼부었지만 아무런 타격 없는 백아영의 모습에 앤니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그래도 덕분에 1번 엘리베이터가 닫히면서 2번이 열렸다.백아영이 2번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앤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쌓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쳤다.“백아영 씨, 알고 있겠지만 성준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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