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521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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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그가 아무리 ‘삐딱하게’ 굴어도 백아영이 끄덕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자 허탈감이 밀려왔다.그렇다면 왜 굳이 서로를 힘들게 하냐는 말이다.“아영아.”이성준의 목소리에 다정함이 섞여 있었다.“새로 주문한 웨딩드레스가 도착했으니까 내일 별장으로 와서 피팅해 봐.”갑작스러운 변화에 백아영은 적응이 안 될 지경이라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 밖에 나갔더니 왜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지?설마...허씨 일가와 계약을 파기한 덕분에 갈등이 해소되어 기분이 좋아진 걸까?조금만 달래주면 넘어오는 쉬운 남자였다니?그녀는 기쁜 마음에 이현무를 재우러 갔고, 내일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어둠 속에 있던 앤니는 신이 나서 떠나가는 백아영을 보며 두 눈에 질투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이내 이를 악물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선우경진은 이성준을 별장으로 데려갔다.술에 취한 모습을 백아영에게 보인다면 위경련을 앓고 있는 그를 걱정할 게 뻔하므로 일단 별장으로 돌아가 내일 술이 깬 다음 만나기로 했다.그때 가서 이성준은 그녀에게 직접 웨딩드레스를 입혀줄 생각이었다.지난번에 앤니는 위정에게 아무거나 사 오라고 했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즉, 이 웨딩드레스야말로 그가 직접 고르고 장인에게 부탁하여 백아영을 위해 특별 맞춤 제작한 것이다.또한, 백아영과 결혼할 때 그녀에게 입히고 싶었던 웨딩드레스이기도 했다.안방 침대에 누워 옆에 놓인 순백색 웨딩드레스를 바라보자 이성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눈빛은 꿀이 뚝뚝 떨어졌다.마지막으로 아름다운 꿈을 기대하며 서서히 단잠에 빠졌다.이성준이 잠이 든 후 앤니는 서늘한 달빛을 등지고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왔다.사심이 담긴 시선은 침대에 누운 남자의 얼굴에서 떠나질 않았다.“성준 오빠가 원하는 건 내가 다 이뤄줄게요.”이내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고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백아영은 간만에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요즘 이성준과 다투는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괜스레 마음이 울적하고 속상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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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곧이어 백아영도 침대 시트의 핏자국을 발견했는데, 선홍빛으로 물든 부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행여나 싶은 마음이 순간 우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어젯밤 정말 앤니와 관계했다는 건가?“이건 실수였어.”찰나의 충격을 끝으로 이성준은 냉정함을 되찾았다.그러고 나서 옆에 있던 가운을 몸에 걸치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백아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숙취로 인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는 듯 허스키했다.“아영아, 신경 쓰지 마. 어젯밤은 그냥 기억 속에서 지워버려. 앞으로 앤니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우리의 관계는 물론 결혼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어.”이성준의 무덤덤한 태도를 보자 백아영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그에게 원나잇 스탠드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우고 싶으면 지우는 존재란 말인가?하지만 그녀는 그냥 넘어갈 만큼 마음이 넓지 않았다.이성준과 침대에 누워 있는 앤니를 번갈아 보며 어젯밤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자 백아영은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괴롭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왜...? 성준아, 넌 술에 취해도 의식은 있잖아. 대체 왜... 왜 앤니랑...”눈가에 눈물이 점점 차올랐고, 백아영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성준 바라보았다. 주먹을 너무 꽉 쥔 탓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듯싶었다.술에 취해 그녀를 어루만지던 손길과 다정한 눈빛이 떠오르자 마치 심장에 비수를 꽂은 듯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결국 가장 행복하던 기억마저 산산조각이 났고, 점점 더럽혀졌다.이성준은 얼굴을 찡그리며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해명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이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백아영의 손을 잡았다.“어차피 지나간 일이니까 이만 잊어줘. 난 단지 남자라면 당연히 저지를 법한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야.”그는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다.하지만 변명조차 없는 그를 보자 백아영은 배신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비록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과 태도에서 어젯밤은 결코 의도치 않은 실수가 아니라 마음 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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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앤니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그를 부축했다.“오빠, 괜찮...”“꺼져!”이성준은 앤니를 확 밀쳤다. 힘이 어찌나 센지, 그녀는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선 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시뻘게진 두 눈은 분노가 이글이글 타올랐고, 마치 칼로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누구 마음대로 내 침대에 올라오래?”그는 술에 취해도 의식은 절대 잃지 않았다.침대 시트에 묻은 핏자국은 그가 토해낸 것이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이성준은 앤니를 건드린 적이 없었다.바닥에 넘어진 앤니는 아프기도 하지만, 버럭 화를 내는 이성준을 보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이내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거렸다.“전 단지 성준 오빠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이게 아영 씨를 단념시키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지 않겠어요? 오빠도 결국 연기에 동참했잖아요.”물론 연기에 동참한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바람 피는 현장’을 들킨 이상 해명하면 할수록 점점 산으로 갈 게 뻔했기에 어쩔 수 없이 시인한 척했을 뿐이다.지금까지 이성준이 마음만 먹는다면 불륜 현장을 조작할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결코 이런 방식으로 백아영에게 상처를 주거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다.이성준은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극도로 차갑고 지독하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앤니를 노려보았다.“제멋대로 행동했으니 대가는 치러야지.”...백아영은 비틀거리며 선우 일가로 돌아갔다.정원에 들어서자 예쁘게 꾸며진 대문, 그리고 곳곳에 걸려있는 형형색색의 가랜드와 풍선 때문에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모레면 그녀는 이성준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오늘은 이성준이 자신을 위해 맞춤 제작한 웨딩드레스를 피팅해보는 날이자 드디어 화해하는 날이기도 했다.하지만 지금은...백아영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결국 천천히 다가가 대문의 장식품을 하나하나씩 뜯었다.덕분에 그녀의 머릿속을 차지한 남자의 존재도 점점 잊히는 것 같았다.“아영아, 지금 뭐 하는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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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종일 울더니 아직 나올 기미가 안 보이네요.”선우경진의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았고, 걱정이 가득했다.옆에 서 있던 이성준의 잘생긴 얼굴도 창백하고 초췌했으며, 입가에 수염이 덥수룩했다.사실 어제는 그에게도 힘든 하루였다.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백아영의 방을 바라보았고, 갈라진 목소리는 귀에 거슬릴 지경이었다.“아영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더 매몰차게 대해줘요.”선우경진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작별 인사라고 생각하고...”오늘은 백아영과 이성준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또한, 이성준에게 남은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이성준의 두 눈에 고통으로 가득했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나지막이 대답했다.“그래요.”“똑똑똑.”조심스레 노크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선우경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영아, 성준 씨가 왔는데 너한테 할 말이 있대.”불이 꺼진 방 안에 앉아 있는 백아영은 소파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두 눈은 호두처럼 퉁퉁 부었는데, 겨우 멈춘 눈물이 이성준이라는 이름을 듣자 또다시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이내 심장이 뜯기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그녀는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귀를 틀어막았다.“가라고 해요!”“알았어, 오빠가 돌려보내고 올게.”선우경진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다시 들려오더니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아영아, 나야. 문 열어!”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백아영은 더욱 괴로운 나머지 귀를 꽉 틀어막았다.두 사람 사이에 무슨 할 말이 필요하다고 굳이 찾아온단 말이지?이성준은 문을 한참 두드리고 나서야 멈추었다. 하지만 순순히 돌아갈 줄 알았던 백아영의 예상과 달리 곧이어 ‘쾅’하는 굉음과 함께 문을 박차고 방으로 들어섰다.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짜증이 제대로 난 듯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겼다.깜짝 놀란 백아영은 화가 나서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호통쳤다.“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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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고작 술에 취해 실수한 거라니?어떻게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하지?백아영은 어이가 없었다.“그래, 내가 고집이 세서 생떼 부린다고 생각해. 결혼식은 취소하고 더는 찾아오지 마.”“백아영!”이성준도 화가 난 듯 목소리가 짐짓 엄해졌다.“네가 민우진과 한 침대에서 뒹굴며 꼭 껴안고 하룻밤을 잤을 때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도 뭐라 하지 않았잖아. 굳이...”짝!뺨을 때리는 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허공에 멈춘 백아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끝내 흘러내리지 않았다.수치심과 분노가 뒤섞이면서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성준을 바라보았다. 상식을 뛰어넘는 말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그날 밤 민우진에게 겁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런 식으로 생각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겉으로는 쿨한 척해도 사실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니?“이성준.”백아영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가냘픈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온통 절망으로 가득했다.“우린 정말... 아니야.”고개가 돌아간 이성준의 눈에 분노가 이글이글 타올랐다.워낙 신분이 높은 사람인지라 태어나서 뺨을 맞아본 적이 없었다.다정하던 표정은 점점 굳어지더니 인내심도 완전히 바닥났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 이성준은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백아영, 후회하지 마.”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심하고 소외감이 들었으며, 낯설었다.순간 전신을 감싼 냉기 때문에 백아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눈앞의 남자는 분명 미친 듯이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생소하게만 느껴졌다.그나마 가슴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애틋함마저 한순간에 사라졌다.이성준을 바라보는 백아영은 이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다시는 만나지 말자.”이성준은 이 한마디를 끝으로 미련 없이 뒤돌아서 떠났다.커다란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고, 매정할 정도로 단호했다.백아영은 소파에 앉아 활짝 열린 방문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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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이원의 오프라인 경매는 6개월마다 한 번씩 열린다.개최 위치가 매번 다르고 경매품도 정해진 건 아니지만 항상 좋은 물건들이 올라온 탓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늘 분위기가 후끈했다.이번 경매는 바다 위의 크루즈에서 개최되었고 인원 제한이 걸려있어 표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막판에 가기로 결정한 백아영은 수많은 인맥을 동원하여 거액의 돈을 지불하면서 겨우 입장권 티켓 하나를 손에 넣었다.선우경진은 유일한 티켓을 바라봤다.“아영아, 오프라인 경매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어서 너무 위험하니까 내가 갈게.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백아영은 고개를 저었다.“경매품이 뭔지도 모르고 어떤 연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제가 가는 게 훨씬 나아요. 오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선우경진의 의술은 백아영만큼 뛰어나지 않았기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그는 결심한 듯 걱정스레 백아영을 바라보며 당부했다.“은침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고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 내가 바로 달려갈게. 그리고 이번 크루즈 담당자 문성훈은 토박이 지역 건달이래. 규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자비한 인간이니까 기분 나쁜 일 있어도 최대한 꾹 참고 될수록 엮이지 마.”백아영은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제가 말썽꾸러기처럼 보여요? 오프라인 경매일뿐이잖아요. 알겠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3일 후에 무사히 돌아올게요.”백아영은 티켓을 손에 들고 부두를 향해 걸어갔다.그시각 부두는 이미 줄을 서서 인산인해를 이루며 떠들썩했다.백아영도 자연스레 합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티켓을 건넸지만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남자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그들은 의미심장하게 백아영을 바라보더니 경박한 시선으로 위아래 마구 훑어보았다.“청순하네. 역시 보스가 한눈에 반한 데는 이유가 있었어.”“아가씨는 참 운이 좋네요. 이쪽으로 가서 저희 보스랑 술 한잔해요.”말을 마친 그들은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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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말하던 그들은 갑자기 백아영을 내쫓기 시작했다.티켓을 받았으면서 시종일관 모르쇠를 주장하는 그들의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노심초사해서 겨우 얻은 티켓인데 이대로 입구에 가로막혀 헛걸음할 수는 없었다.50조의 빚더미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지만 애써 정신을 붙잡고 논리정연하게 반박했다.“CCTV 돌려봐요. 그럼 줬는지 안 줬는지 알겠죠.”“우리가 티켓을 받고 모른척할 리가 없잖아. 당신 소란 피우러 온 거지?”“보스 구역에서 말썽을 피우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어? 당장 꺼져. 안 그러면 바다에 던져버릴 거야.”억지 부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백아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바로 그때 그녀의 뒤에서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분 티켓 저한테 있어요.”처음 들어보는 낯선 목소리였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휠체어에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얼굴 전체를 가리는 ‘악마’ 가면에 검은 수트를 입은 그는 휠체어에 앉아 범접할 수 없는 강한 아우라와 카리스마를 풍겼다.그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는 티켓 두 장이 있었다.“이제 들어가도 되죠?”노란 머리 문지기는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그러나 가면 아래 남자의 싸늘한 시선을 보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며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다.이 바닥에서 긴 시간 지내다 보면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긴다. 건드릴 수 없는 상대인 걸 알아차린 순간 한발 물러서는 게 상책이다.“됩니다.”노란 머리는 기분 나쁜 듯 백아영을 째려보며 문을 열었고 남자도 휠체어를 움직여 안으로 들어갔다.뒤따라 들어간 백아영은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후에야 감사 인사를 전했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티켓값은 계좌로 이체해 드릴까요?”‘악마’ 가면을 쓴 남자는 깊은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더니 곧바로 싸늘하게 변했다.그는 진지하게 말했다.“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티켓이 아니죠. 백아영 씨, 전 등가 교환을 원합니다.”남자는 백아영을 알고 있다. 하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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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남자는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더니 곧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차가운 모습으로 변했다.“괜찮습니다. 장애가 있는 건 맞지만 충분히 혼자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약재 감식이 필요할 때 찾아올 테니 다른 시간에는 서로 마주치지 않았으면 합니다.”말을 마친 남자는 휠체어를 움직이며 방으로 들어갔다.방문이 닫히자 백아영은 세상과 단절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마치 주인에게 버림받은 듯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우두커니 밖에 서 있었다.서로 모르는 사이에 싸늘하게 대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같은 시각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문이 닫히자마자 가면을 벗었고 ‘쿨럭’하며 피를 토했다.정신이 피폐해지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고통에 사로잡힌 남자는 휠체어에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가면에 감춰진 그의 창백한 얼굴은 유난히 잘생겼는데 이성준이다! 백아영과 헤어진 후 그는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었고 깨어나서는 서 있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져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했다.오래 버티지 못할듯하다.이성준은 손수건으로 천천히 입가의 피를 닦은 후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불안에 떨며 걱정하는 위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장님, 지금 괜찮으십니까? 몸은 어때요? 버틸만합니까?”위정은 이성준과 함께 크루즈에 올라 시시각각 그를 돌볼 계획이었다.그러나 탑승 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고, 백아영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지켜볼 수 없었던 이성준은 망설임 없이 위정의 표를 건네줬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이성준은 목이 잠긴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문성훈한테 경고해. 다시 한번 백아영 건드린 순간 죽여버릴 거라고!”이 지경에 이르러도 온통 백아영 걱정뿐인 그의 모습에 위정은 기분이 착잡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몸은...”“괜찮아.”전화를 끊은 이성준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위정이 전화를 끊자마자 앤니가 급히 달려오며 소리쳤다.“어떻게 성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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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크루즈에서 하룻밤을 잔 백아영은 경매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그녀는 문을 열고 무의식적으로 옆방을 바라봤다.휠체어를 탄 남자...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무뚝뚝하게 거절하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자리에 얼어붙었다.거동이 불편하더라도 굳이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싸늘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뒤숭숭한 마음을 억누른 후, 백아영은 마침내 걸음을 옮겼다.경매는 총 3일간 진행되는데 첫날과 둘째 날의 경매품은 비교적 평범하고 간혹 좋은 물건이 나타난다.백아영은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켰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며 방으로 걸어가다가 익숙한 노란 머리에게 가로막혔는데 크루즈 탑승 전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던 문지기 두 명이었다.백아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잔뜩 경계하며 은침을 만졌다.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는다.“백아영 씨, 해치려는 의도는 없으니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어깨에 호랑이 문신을 한 중년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자 노란 머리 문지기 두 명은 그에게 길을 비켜주며 깍듯하게 뒤로 물러섰다.“부하들이 절 위해서 이쁜 여자를 찾고 있었는데 아영 씨가 대단하신 분인 줄도 모르고 무례하게 행동한 것 같네요.”중년 남성이 세게 걷어차자 노란 머리 문지기들은 찍소리도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사과하러 왔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보아하니 이 중년 남성이 문성훈인 듯하다.백아영은 이해가 안 되는듯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봤다. 선우 일가 후계자 신분이 대단한 건 맞지만 지역 건달에게 먹힐 만큼 위압적인 존재가 아니라서 갑작스러운 그들의 태세 전환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러나 백아영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말했다.“이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게요.”“너그럽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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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저기요!”백아영은 황급히 그를 향해 돌진했다.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어렴풋이 보인 옆태는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는데...‘달칵!’남자는 리모컨으로 방안의 모든 조명을 껐다.“나가요.”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어둠 속에서 남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온몸으로 반항하고 있었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했다.순간 정신이 번쩍 든 백아영은 다른 사람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다시 한번 되새겼다.그런데...방안을 가득 채운 피비린내를 맡으며 심장이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하는 건 남자의 허약한 모습과 바닥을 가득 채운 피뿐이다.“저 의사입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백아영은 기억을 더듬으며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선 능숙하게 남자의 맥박을 짚었고 곧이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당신...”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이성준은 어둠 속에서 애틋하게 백아영을 바라봤고 피로 물든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저 곧 죽어요.”쉰 듯한 그의 목소리에서 무기력함과 절망감이 느껴졌다.의사에게 죽음은 흔한 일이고 백아영의 손에서 목숨 잃은 환자들도 많았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목이 밧줄에 조여진 것처럼 숨이 막혀왔고 괴로움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남자는 심각한 부상으로 장기가 크게 손상되었고 몸이 너무 허약해진 탓에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치료할 약도, 치료할 방법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 백아영은 자신이 왜 이리 슬퍼하는지 알지 못했다.백아영은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제가 침을 놔드릴게요. 그러면...”“소용없어요.”이성준이 손을 잡자 백아영의 살결이 느껴졌다. 익숙한 부드러움에 미련이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그녀의 손을 내쳤다.“쉬고 싶어요. 아영 씨, 이만 돌아가 주세요.”백아영은 넋을 잃은 채로 방으로 돌아왔고 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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