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511 - Chapter 520

916 Chapters

제511화

백아영은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손가락으로 컵을 만지작거렸다.한참이 지나서야 마침내 결심을 내리고 고개를 들어 허우정을 바라보았다.“허씨 일가에서 약물 연구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지금까지 선우 일가의 의술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도 연구가 한계에 다다라 돌파구를 찾지 못해서이죠? 물론 우정 씨도 제가 선우 일가의 후계자로 지명받기 전에 이미 제갈 일가의 맹독을 해독하는 방법을 스스로 고안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전 선우 일가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의술을 뛰어넘는 건 몰라도 최소한 뒤지지 않는 의술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해요.”백아영은 컵을 내려놓았다.“허씨 일가가 원하는 약을 2년 안에 개발해낸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 건 어때요? 만약 실패한다면 5조의 10배인 50조를 배상해드릴게요.”투자를 아무리 잘해도 2년 동안 10배로 불어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사실 두 가지 제안은 모두 허우정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아영 씨 본인을 팔아넘기겠다는 거예요?”허우정은 의미심장하게 백아영을 바라보았다.“약혼자분과 상의하고 내린 결론 맞아요?”백아영이 성무열을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은 뻔하므로 이성준이 반대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그녀가 여기까지 온 이상 이성준의 의견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다만 허우정은 왜 그를 언급한단 말인지?어쩌면 자신이 모르는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아영 씨가 제안한 조건과 우리의 협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영 씨이죠.”허우정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커피가 참 맛있네요. 잘 마셨습니다.”멀어져가는 허우정의 뒷모습을 보며 백아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이게 당최 무슨 상황이란 말이지?허우정이 이성준을 언급한 이상 어쩌면 그에게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곧이어 이씨 가문 본가로 향한 그녀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도우미에게 이성준이 돌아왔는지 물었다.두 사람이 다툰 이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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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할머니, 혹시 제경의 허씨 일가인가요?”백아영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순간 김경옥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씩씩거렸다.“당연하지! 아니면 감히 우리 집안에 도전장을 내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아영아, 넌 허씨 일가와 오씨 일가가 얼마나 원한이 깊은지 모를 거야.”김경옥은 백아영의 손을 잡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네 외할아버지와 허씨 일가 어르신 허용재는 젊었을 때부터 라이벌 관계였어. 허용재는 항상 비열한 수법으로 외할아버지를 모함했고, 사업을 가로채는 일은 부지기수였지. 이렇게 파렴치한 사람이 과연 또 있을까? 심지어 한 번은 약품 대행 사업을 손에 넣으려고 사람을 고용해 교통사고를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어. 결국...”김경옥이 왼쪽 바짓가랑이를 천천히 들어 올리자 싸늘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의족이 드러났다.“대행 프로젝트를 빼앗아 간 덕분에 허씨 일가는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했고, 우리 가문을 얼마나 얕잡아 봤는지 알아? 비록 나중에 성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오씨 일가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허씨 일가를 따라잡았지만, 의약 면에서는 훨씬 뒤처졌어. 여태껏 억압받아 날개를 펼칠 수가 없었지.”이씨 가문은 거의 모든 분야를 주름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쩐지 유독 의약 산업에만 발을 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제경은 무려 중심지가 되는 곳이다. 허씨 일가에서 의약 산업을 꽉 잡고 있으니 이씨 가문이 얼마나 많은 제약과 탄압을 받는지 안 봐도 뻔했다. 아마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할머니를 다치게 한 범인은 붙잡혔나요?”김경옥은 고개를 저으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사주받은 증거를 찾지 못해서 애꿎은 사람만 대신 감옥에 갔어.”백아영의 손가락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아영아.”김경옥은 백아영의 손을 다시 잡아당기며 자상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괜히 부담 갖지 마. 할머니는 너한테 오씨 일가를 대신하여 의약 산업을 발전시켜달라는 뜻이 아니야. 단지 너무 기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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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백아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기어코 외할머니의 심기를 건드릴 거야?”쌀쌀맞은 이성준의 모습은 마치 얼음 같았다.“외할머니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너 아니야? 백아영, 넌 이미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랑 사이가 틀어졌는데 외할머니 가족과도 담을 쌓고 싶어?”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은 사뭇 강압적이었다.“이쯤에서 물러나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말고, 내 신부가 될 준비나 제대로 해.”“넌 왜 물러서지 않는데?!”백아영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이성준이 돌아온 이후로 줄곧 양보한 사람은 그녀였다. 설령 본인이 손해를 볼지언정 절대로 양심을 속이고 성무열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다른 일은 양보한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절대 안 돼. 이성준! 나도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마지노선이 있어.”백아영은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이상 그냥 원칙적으로 처리하자. 누구의 능력이 더 뛰어난지에 따라 승패를 결정해.”이성준은 입을 꾹 닫았다.이내 주변에 서서히 냉기가 감돌더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한참이 지나서야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런 결혼 생활이 과연 행복할 거로 생각해?”끊임없는 불만과 분쟁, 갈등...사람은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동물이라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백아영의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나랑 결혼한 거 후회하는 거야?”이성준은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긍정도 부정도 없었지만, 이 침묵의 순간은 백아영의 마음에 마치 비수를 꽂은 듯 묵직한 통증을 안겨주었다....백아영은 약속을 잡고 허우정을 다시 만났다.허우정은 계약서 내용을 훑어내리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아영 씨, 정말 저희랑 협력하기로 한 거예요? 행여나 파혼이라도 당할까 봐 두렵지 않아요?”백아영은 주먹을 꽉 쥐고 이내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약혼자분도 아영 씨와 같은 생각이길 바랄게요.”허우정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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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위층에서 내려오던 이성준이 마침 이 광경을 목격했다.백아영의 이마가 찢겨 하얀 피부를 따라 흘러내리는 선혈이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이내 안색이 돌변하면서 화가 치밀어 올라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었다.그는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었지만, 다리를 옮기는 찰나 발밑에 마치 초강력 접착제라도 바른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폭주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이성준의 뒤를 따라 나온 위정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사장님! 아영 씨 이마에서 피가 나요.”이성준은 화가 나면서도 가슴이 아픈 나머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지만 겉으로는 매정한 척 싸늘한 얼굴로 무심하게 말했다.“자업자득이야.”이 말을 듣자 백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었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의아함이 가득했다.이성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이마를 다친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지?그녀를 감싸주기는커녕 걱정하는 티도 없었다.그렇다고 마치 잘못을 저지른 죄인처럼 거실에 무릎을 꿇고 모두의 심문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그만해.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조카며느리에게 손찌검하면 쓰겠어? 혹시라도 소문이 돈다면 남들이 비웃을지도 몰라.”김경옥은 오태식을 붙잡더니 앞으로 나서면서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외할머니는 아영이가 착한 아이라는 걸 알아. 잘못은 저질러도 바로 잡을 수 있잖아? 당장 계약을 파기하고 허씨 일가와 더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없던 일로 치고 외손자 며느리로서 인정해줄게.”백아영은 뒤돌아보는 대신 이성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계단에 서 있는 남자는 여전히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 우아한 기품과 완벽한 비율은 몇 번을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고 소외감이 느껴졌다.분명 그의 예비 신부이자 사랑하는 여자로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마땅한데, 지금 이 순간 나 홀로 외로이 거실에 서서 아무한테도 환대받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허씨 일가에서 2년 동안 오씨 일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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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성준아, 이제 저 사람들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지? 이참에 결혼도 없던 일로 하고 그냥 파혼해.”김경옥도 눈살을 찌푸리며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백아영도 결국 백채영과 같은 부류인가 봐. 둘 다 좋은 사람은 아닌 듯싶은데 굳이 결혼해야 하겠어?”이 말을 듣자 백아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분노와 억울함이 치밀어 오르는 반면 두려움도 몰려와 불안한 눈빛으로 이성준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대로 파혼하는 건가?‘아니, 아닐 거야.’그녀를 구하기 위해 이성준은 자신의 안위와 목숨까지 안중에도 없었다. 한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가 고작 이런 일로 파혼하고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아마도 지금은 화가 났을 뿐, 나중에 잘만 달래준다면...“참 웃기는 사람들이네요. 멀쩡한 혼사를 왜 당신들이 무르는 거죠?”선우경진은 백아영을 끌어안고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파혼해도 우리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하지 않겠어요?”“아영아, 가자! 오빠랑 같이 집에 돌아가자. 성준 씨가 직접 사과하러 찾아오지 않은 한 이 결혼은 없던 거로 해.”말을 마친 그는 씩씩거리며 백아영을 끌고 나갔다.강제로 끌려간 백아영은 심란한 마음으로 이성준을 돌아봤지만, 싸늘하면서 무심한 눈동자를 마주쳤다.그동안 애틋하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가슴이 찢어질 듯한 차가운 분노만 가득했다.백아영은 문득 두 사람의 사이가 아득히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선우경진이 백아영을 끌고 가고 나서도 오태식은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이내 노기등등한 얼굴로 말했다.“봐봐, 성준아, 정녕 저런 여자랑 결혼할 거야? 이런 사람을 집안으로 들여서는 절대로 안 돼.”이성준의 서늘한 시선은 마치 차갑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오태식에게 향했다.“저희 집안일에 외삼촌이 끼어들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요?”오태식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성준을 바라보았다. 아까만 해도 분명 우호적인 태도였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만약 다음번에도 백아영을 다치게 한다면 삼촌을...”이성준의 말투가 얼음장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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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화면을 가리기 위해 휴대폰을 뺏어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백아영은 통화 내역을 터치했다. 제일 위에는 7분 전에 뚱보 아줌마한테서 걸려 온 전화가 있었다.‘뚱보 아줌마?’“나한테 알려준 사람은 뚱보 아줌마였어. 요즘 현무를 돌보기 위해 다시 본가로 돌아오셨잖아. 네가 괴롭힘당하는 걸 발견하고 결국 보다 못해 나한테 연락해서 얼른 오라고 했거든.”선우경진은 본인의 잔머리에 몰래 혀를 내둘렀다. 이성준의 연락처를 뚱보 아줌마라고 저장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백아영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 선우경진에게 전화를 다시 건네며 부루퉁하게 말했다.“전 파혼하지 않을 거예요.”사실 선우경진은 방금 백아영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일부러 집으로 데려갈 테니까 이성준이 직접 찾아와 사과하지 않은 이상 선우 일가에서 먼저 파혼하겠다고 말을 가로챈 것이다.즉, 이성준이 데리러 올 때까지 백아영의 발목을 잡아놓을 심산이었다.하지만 이성준은 절대로 그녀를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결혼식 날까지 버틴다면 두 사람의 혼사가 정말 무산될지도 모르기에 백아영도 단념할 거로 생각했다.“아영아, 잘 생각해. 이번에 일어난 일은 네 잘못이 아니야. 다만 이성준은 가족 편에 서서 적개심에 눈이 멀어 널 마구 몰아세웠잖아. 이성준과 결혼하게 된다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끊이질 않을 텐데, 정녕 감당할 수 있겠어? 자기 아내마저 지키지 못하는 남편과 결혼하는 건 절대 금물이야.”선우경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백아영의 가슴을 찔렀다.이런 남편과 결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어찌 모르겠는가?다만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그녀는 갈팡질팡했다. 머릿속에는 이성준의 자상함과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만이 가득했다.결국 이성준이 단지 이번에 실수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게 되었다....다음 날, 이성준은 백아영을 찾아오지 않았다.셋째 날은 물론, 결혼 날짜가 다가오는 넷째 날에도 그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백아영의 기분이 점점 가라앉더니 초조함이 스멀스멀 피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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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선우경진은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분출할 방법이 없었다.“이제 와서 재촉해봤자 무슨 소용 있어요?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설득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아영은 성준 씨 좋은 점만 기억하고 결혼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는데 제가 무슨 수로 말리겠어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아영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이나 하지 말지 그랬어요?”...제경에 도착한 백아영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결혼 날짜가 멀지 않았기에 그녀는 단지 업무 파악을 위해 제경을 찾았고, 허씨 일가의 연구실을 남원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왜냐하면 예전과 달리 더는 의지할 곳 없는 열혈 단신이 아니라 이성준의 예비 신부이자 이현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이제 그녀에게도 온전한 집이 생겼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샤워를 마친 백아영은 침대에 누워 이현무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이내 오동통한 아이의 얼굴이 화면이 나타나더니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현무야, 오늘 유치원에서 재밌게 놀았어?”“네! 선생님께서 상도 주셨어요.”이현무는 뿌듯한 얼굴로 가슴에 매달린 작은 빨간 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녀석이 일어서는 순간 백아영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이성준을 발견했다.그는 물 받으러 컵을 들고 이현무의 뒤를 걸어 지나갔다.이를 보자 백아영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큰 소리로 불렀다.“성준아!”이성준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발견한 순간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무시하고 물을 받은 뒤 자리를 떠났다.백아영은 무심하게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성준아! 이성준!”이성준은 아예 못 들은 척했다.이현무도 아빠라고 불렀지만, 똑같이 무시당했다.화면에서 사라진 이성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백아영의 기분은 마치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벌써 5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가 났단 말인가?“엄마, 아빠랑 싸웠어요?”이현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울하던 표정은 순식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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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이씨 가문 본가.이성준은 창가에 서서 차에서 내리는 백아영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불륜 기사를 본 게 확실해?”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이성준은 크게 심호흡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백아영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제야 의자로 걸어가 앉아서 허리를 꼿꼿이 폈다.마치 피바람이 부는 미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위정은 전전긍긍하며 서재를 나섰고, 무기력한 상황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백아영이 단념할 수 있도록 스스로 명예 훼손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은 사장님이 딱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고작 백아영 씨의 오해를 사기 위해서라니...’보아하니 이따가 대판 싸움이 벌어져 한바탕 난리 날 게 뻔했다.백아영이 본가에 들어서는 순간 도우미들은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는데, 불륜 기사 때문인 듯싶었다.그녀는 입을 꾹 닫고 아무 말 없이 짐을 자기 방에 놓고 서재를 찾아갔다.위정과 뚱보 아줌마는 복도에 서서 기웃거렸는데, 걱정한 기색이 역력했다.“아영 씨 안색이 별로 좋지 않네요.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도련님이랑 다투시려나요?”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요.”사장님이 일부러 불륜 기사를 터뜨린 것도 사실 백아영의 심기를 건드려 화를 돋우어 결국은 실망하게 하기 위해서인지라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뚱보 아줌마는 초조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굴렀다.“아니면 들어가서 말려볼까요?”“손찌검만 하지 않는다면 저희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위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비록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현재 사장님에게 필요한 상황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다. 백아영이 서재에 들어서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성준을 발견했다. 팔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지만, 이제 서류를 뒤적이고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듯싶었다.이를 본 백아영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상처는 다 나았어?”예상치 못한 질문에 이성준은 고개를 번쩍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속으로 약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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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난 널 믿어.”백아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가 일부러 네 품에 안긴 거지? 완전 아무렇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고, 이름 알려주면 찾아가서 아주 호되게 혼낼 거야.”이성준은 깜짝 놀랐다. 야심 차게 준비한 불륜 뉴스가 논란의 파문조차 일으키지 못할 줄이야!그는 백아영의 믿음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비록 속으로 감동을 금치 못했지만, 골치가 점점 아팠다. 맑고 아름다운 여자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그녀를 단념시킬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치료를 마친 백아영은 아직도 죽상을 하는 이성준을 보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허씨 일가와 협력하겠다고 해서 화가 안 풀린 거야?”“그래.”이성준은 화가 난 이유에 그럴듯한 핑계를 찾았다.불륜 기사가 타격이 없는 이상 허씨 일가 사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태클을 걸어도 나쁘지 않았다.“백아영, 만약 나랑 결혼하고 싶다면 큰 그림을 봐야지 않겠어? 허씨 일가와...”“성준아.”백아영은 갑자기 이성준의 말을 끊더니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이내 머뭇거림과 초조함이 뒤엉킨 표정으로 소매를 꼭 움켜쥐었다.“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우리가 결혼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아주 중요한 일이야.”어떻게든 결혼을 무산시키려던 이성준이 오히려 침묵을 유지했다.곧이어 묵직한 어조로 물었다.“무슨 일인데?”무의식중으로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백아영은 이성준의 본심이 무엇인지 똑똑히 느꼈다.아무리 속상하더라도 그녀가 먼저 양보하는 게 무의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내 이를 악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지금... 빚을 졌는데, 50조야.”제경에 도착해서 그녀는 허씨 일가 연구실에 찾아갔다. 또한, 그들이 유전학 분야에서 새로운 종류의 약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만약 연구에 성공한다면 의학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며, 허씨 일가는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다.이는 허씨 일가에게 정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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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프라이빗 클럽.선우경진이 어둑한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룸을 열고 들어서자 알싸한 술 냄새를 코를 찔렀다.방 안에는 빈 술병이 테이블과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한편, 옷까지 흐트러진 이성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는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렸다.“당신, 죽고 싶어요?”선우경진은 버럭 화를 내며 얼른 뛰어가서 이성준의 손에 든 술병을 빼앗아 갔다.“지금 몸 상태가 어떤지 몰라요? 무슨 생각으로 술 마시는 거죠?!”술이 빼앗기자 이성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술병을 집어 들고 벌컥벌컥 마시더니 흐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술 안 마신다고 몸이 회복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다시금 술병을 빼앗으려는 선우경진의 손이 우뚝 멈췄다.이성준의 눈빛에는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비아냥거렸다.“망망대해에서 미친 듯이 날 찾아 헤매던 아영을 보고 당장이라도 뛰어가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고 들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죠.”이내 술을 한 모금 들이키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아영을 붙잡을 자격이 없으니까... 차라리 돌아오지 말걸... 이대로 바닷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야 했었는데...”사실 이성준은 맨빌 아일랜드에서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대폭발에서 목숨을 잃고 바다에 빠져 끝없은 심연 속으로 사라져 이대로 자취를 감추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야 마땅했다.하지만 백아영은 끝까지 그를 찾기로 마음먹고, 찾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결국 그녀가 인생까지 걸고 자신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고통과 자책 속에서 영원히 괴로워하는 모습을 마냥 지켜볼 수가 없어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백아영을 구하려고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야만 했다.따라서 그녀도 죄책감과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아영한테 쌀쌀맞게 대하고, 갈등과 다툼이 잦아지면 사랑이 식을 줄 알았어요. 저한테 실망해서 헤어지고 나면 더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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