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541 - 챕터 550

916 챕터

제541화

“싫어요!”앤니는 울먹이며 애원했지만 이성준은 안중에도 없었고,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백아영은 서둘러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남자가 묵고 있는 VIP룸을 찾아갔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순간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안을 들여다보니 방을 청소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저기요, 여기 묵고 있던 사람 혹시 퇴실했어요?”“네.”손님이 퇴실했으니 직원이 들어와서 청소하지 않겠는가? 이건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직원의 대답을 듣자 백아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남자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가?“언제 퇴실했대요?”백아영이 포기하지 않고 캐묻자 다행히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답변해줬다.“얼만 안 되었어요. 아마 지금쯤 1층에 계시지 않을까요?”‘방금 갔다고?’휠체어를 타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인지라 남들보다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으니 아직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었다.백아영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갔다.1층에 도착하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뛰쳐나온 그녀는 호텔 로비에서 두리번거리며 휠체어를 탄 남자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자 다시 밖으로 달려 나갔다.호텔 밖에는 행인과 차들이 오고 갔지만, 남자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다.출입구에 서 있는 백아영은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과 차를 바라보며 속상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또 놓치다니.그를 찾을 기회를 코앞에서 놓쳐버렸다.이 세상에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정녕 인연이 닿지 않아서 구해주지 못한다는 건가?백아영은 호텔 입구의 기둥에 털썩 기대더니 슬픈 기색이 역력했다.호텔을 나선 남자는 이원을 떠나기 마련이기에 앞으로 80억 인구 중에서 다시 만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백아영은 한참을 멍하니 입구에 서 있었고, 마음이 텅 빈 듯 공허했다.“손님, 아직도 못 찾으셨어요?”VIP룸을 청소하던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들고 내려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왔다.백아영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넋을 잃은 백아영의 모습을 보자 남자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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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백아영이 제경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은 시간이라 불쑥 방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므로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찾아갔다.통성명을 마치고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한씨 일가의 가주인 한건우를 만나게 되었다.“아영 씨께서 우리 아들의 병을 치료해주겠다고요?”한건우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았다.“선우 의가 의술이 뛰어난 건 알고 있지만, 병세가 워낙 위중해서 아영 씨일지언정 치료가 불가능할 지도 몰라요. 괜히 정력이나 낭비하지 마세요.”백아영도 그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만약 혈삼을 얻지 못했더라면 그녀도 포기했을 것이다.“친구로서 아드님을 도와주고 싶어요.”“그렇다면 마음대로 하세요.”한건우는 도우미를 불러서 말했다.“아영 씨를 셋째 도련님 방으로 안내해.”백아영은 곧바로 도우미를 따라 그의 방으로 향했다.한편, 남원.앤니를 강제로 돌려보낸 이성준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공식적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옆에 서 있는 위정은 산만 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사장님, 다른 방법은 어떠신가요? 교통사고는 너무... 끔찍하잖아요.”차에 치여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친 이성준이 고통과 피바다 속에서 허덕이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정은 가슴이 찢어졌고, 차라리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본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성준은 슬프지만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이내 다리를 내려다보며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낫지.”적어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킬 수 있으니까.결국에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반신불수의 상태로 침대에 누워 존엄 따위 찾아보기 힘든 식물인간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비록 교통사고 자체는 끔찍하지만, 모두가 납득할 만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위정아, 엄마랑 현무를 잘 부탁해.”이성준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고, 속으로는 미련과 아쉬움이 가득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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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게다가 선우경진은 그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는데 왜 이제 와서 훼방을 놓냐는 말이다.선우경진은 이성준을 재빨리 일으켜 세웠고,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그나마 늦지 않게 도착해서 천만다행이었다.“성준 씨, 아직 죽으면 안 돼요. 아영이가 한씨 일가 셋째 도련님 찾으러 갔거든요.”만약 백아영이 한씨 일가 셋째 도련님을 만나게 된다면 휠체어를 탄 남자가 이성준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즉, 바보가 아닌 이상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마련이다.그때가 되면 여태껏 이성준이 저질렀던 몹쓸 짓과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 이유도 그녀의 의심을 사게 된다.따라서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 전부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이성준이 죽고 나면 백아영은 고통 속에서 허덕일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둘이 만나게 해서는 안 돼요!”반면, 백아영은 한씨 일가 셋째 도련님의 방문 앞에 이르렀다.도우미가 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말했다.“도련님, 아영 씨가 도련님을 뵙고 싶답니다.”“누구?”방 안에서 중년 여성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우미는 재빨리 대답했다.“선우 의가에서 온 백아영 씨라고 합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딸칵 열리면서 40대처럼 보이는 아리따운 여성이 나타났다.그녀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백아영을 바라보았다.“아영 씨가 우리 아들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죠?”도우미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셋째 도련님의 어머니인 이나연이라고 귀띔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백아영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아드님을 치료해줄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도움을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정말요?”깜짝 놀란 이나연이 서둘러 백아영의 손을 붙잡았다.“우리 아들을 치료해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과 다름없죠. 자, 어서 들어와요.”이나연을 따라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강한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거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옷장 옆에 서서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곧이어 그가 천천히 돌아섰고,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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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4화

백아영의 손가락이 맥박에 닿기 직전 남자가 갑자기 손을 뒤로 빼냈다.“필요 없다고 했잖아요.”이내 버럭 화를 내며 호통쳤다.“전 이미 죽음이라는 결말을 받아들였으니까 괜히 저한테 헛된 희망을 심어주지 마세요. 아영 씨, 그럼 멀리 나가지는 않겠습니다.”그는 쉴새 없이 말을 내뱉은 탓에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고,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이내 가면 아래로 검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이를 본 이나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들의 등을 두들겨주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아영 씨는 우선 나가주시겠어요?”“전...”의사로서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당연히 치료해주는 게 맞지만, 그녀는 갑자기 들이닥친 도우미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백아영이 방을 나가고 나서 남자는 비로소 가면을 벗었다. 이내 준수하면서 훈훈한 얼굴이 드러났지만,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그는 티슈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침대에 털썩 기댔다.이나연은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아들, 선우 일가의 의술은 소문이 자자할 정도란다. 그중에서도 아영 씨는 유독 능력이 뛰어난데, 그런 사람이 제 발로 찾아왔다는 건 치료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아니겠어? 대체 왜 거절하는 거야?”이나연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동안 아들은 치료를 기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뒤 수많은 의사가 찾아와서 치료해주겠다고 했을 때 설령 눈곱만큼의 희망일지라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사람이었다.따라서 백아영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엄마, 그분은 절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니에요.”방금 그는 이성준과 통화하던 중이었다.백아영의 방문 목적을 전해 듣고 나서 잽싸게 예전에 여행하면서 샀던 가면을 찾아 얼굴을 가렸다.이나연에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신신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얼른 아영 씨를 설득해서 돌려보내요. 그래도 안 된다면 내 방만큼은 절대 들여보내지 마세요.”이성준이 선우경진에게 치료를 부탁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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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5화

“방금 잠이 들었어요.”이나연은 백아영을 바라보더니 머뭇거리다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말을 이어갔다.“아영 씨, 우리 아들을 치료해주러 찾아와서 너무 고마워요. 다만 우리 아들의 상태를 직접 봐서 알겠지만, 고통에 허덕이고 있죠. 이미 희망을 잃고 그 어떤 치료도 받지 않으려고 해요.”백아영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절 돌려보내려는 건가요?”이나연은 제 발 저린 듯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러나 눈 딱 감고 말을 이어갔다.“태윤이가 하루에도 기분이 몇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하니 나도 설득할 방법이 없네요. 아영 씨, 미안하지만 혹시 며칠 뒤에 다시 찾아오면 안 될까요?”백아영은 눈살을 찌푸렸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두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한태윤의 병세는 심각한 수준이며,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며칠은커녕 한시라도 지체하면 위험할 지경인데 나중에 찾아오라는 이나연의 말이 이상하게 들리기 마련이다.한태윤의 변화와 치료 거부, 그리고 이나연의 말도 안 되는 설득까지 더해 백아영은 점점 더 의심이 들었다.심지어 크루즈에서 만났던 남자와 한씨 일가 셋째 도련님이 동일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이 속에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단 말인지?백아영은 낱낱이 파헤치기로 마음먹었다.“사모님,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백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다. 이나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갑자기 방향을 틀어 한태윤의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아영 씨!”이나연이 아연실색하며 서둘러 쫓아갔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거기 서요!”한태윤은 절대로 백아영을 방에 들여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녀가 이대로 뛰어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들통나기 마련이다.하지만 악을 쓰고 뛰어가는 사람을, 그것도 한 템포 늦게 출발한 탓에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백아영은 단숨에 그의 방까지 달려가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침대에 앉아 있던 한태윤은 갑자기 들이닥친 백아영을 발견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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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6화

백아영을 뒤따라 계단을 올라가던 이나연은 복도에 도착하자마자 키가 훤칠한 낯선 남자에게 덥석 붙잡혔다.“누구야? 이거 놔... 읍!”남자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방으로 끌고 가서 찰칵하고 방문을 잠갔다.“읍읍읍!”이나연은 겁에 질린 얼굴로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이곳은 무려 한씨 일가인데, 어찌 도둑이 들어 그녀를 해치느냔 말이다.설마 또 한태성이 벌인 짓인가?“엄마.”방에 휠체어를 탄 한태윤이 나타났고, 힘없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조용히 해주세요.”한태윤을 발견한 이나연은 아연실색했다. 곧이어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오랜만에 보는 기분 좋은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이지?“이성준 씨가 왔어요.”한태윤이 설명을 보탰다.“이 분은 성준 씨 비서입니다.”위정은 그제야 이나연을 풀어주며 정중하게 사과했다.“사모님, 아까 너무 급해서 그만 실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양해해주세요.”이나연은 원망하기는커녕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성준 씨가 오셨다고요? 너무 잘됐네요! 우리 아들도 임무를 완수한 셈이네요? 그럼 우리 아들을 치료해주는 일도...”위정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미 준비를 마쳤죠. 도련님께서 지금 저와 함께 떠나시면 됩니다. 나중에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올 거라고 장담하죠. 그전까지 사모님께서 저희 사장님을 잘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이나연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시울이 붉어졌다.“당연하죠. 적극적으로 협조할게요.”...백아영은 한씨 일가 셋째 도련님의 병세를 대략 짐작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꼼꼼히 맥박을 짚고 진찰하고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탓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상황이다. 비록 혈삼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나 자칫 잘못 사용하면 사망에 이르게 할지도 모른다.“오늘 저녁부터 약을 지을 테니까 최대한 빨리 드실 수 있도록 할게요.”진정한 수명 연장 효과를 얻으려면 다른 약물의 도움을 받아 약효를 보완해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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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7화

백아영이 혈삼을 손에 넣은 이상 생명 연장은 물론 어쩌면 진짜 기적이 일어나 구사일생할지도 모른다.만약 그날이 온다면... 다시 백아영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며, 헤어지거나 생이별당할 필요도 없다.방을 나선 백아영은 마침 이나연관 마주쳤고, 그녀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안에 말다툼하는 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혹시 우리 아들을 설득했나요?”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사모님, 댁에 한약 있나요?”한태윤이 벌써 두 달 남짓 병 치료를 했고, 방안에 진동하는 약 냄새까지 더해 약을 달고 산다는 건 안 봐도 뻔했기에 갖은 약재를 갖췄을 거로 예상했다.약을 짓기 위해서는 한씨 일가에 있는 걸 사용하는 게 가장 편했다.그러나 이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없어요, 필요한 약재를 말해주면 사 오라고 할게요.”백아영은 의아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그럼 이따가 처방전 드릴게요.”“나한테 주면 돼요.”이때, 중년 여성이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을 가로챘다.곧이어 빅사이즈 도우미 유니폼을 입은 중년 여성이 거실 중앙으로 성큼성큼 들어서더니 예의란 찾아보기 힘든 말투로 말했다.“사모님, 회장님께서 식사하시라고 합니다.”이나연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네.” “회장님께서 아영 씨도 멀리서 찾아온 손님이시니 본채로 이동하셔서 함께 식사하자고 하셨습니다.”머릿속에 빨리 약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백아영은 완곡하게 거절했다.“초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배가 고픈 게 아니라서 굳이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아영 씨, 셋째 도련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회장님께 치료법을 설명해 드려야 안심하지 않겠어요? 아니면...”중년 여성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회장님도 아무나 지은 약을 셋째 도련님께 함부로 먹이지 않을 거예요.”백아영이 처음 한씨 일가를 찾았을 때 한건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한태윤을 치료하는 걸 찬성하는 분위기였다.하지만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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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8화

백아영은 이나연을 따라 본채로 향했고, 결국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한씨 일가 큰 도련님인 한태성이 뒤늦게 나타났다.그는 백아영을 보자마자 입꼬리를 올리면서 빈정거렸다.“선우 일가의 귀한 공주님이 태윤의 병을 치료해주겠다고 찾아왔다는 게 사실인가 보네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자신감이 얼마나 넘쳤으면 죽기 직전까지 간 사람을 살린다는 거예요? 물론 자신감이 있는 건 좋은 일이죠. 다만 주제 파악도 못 하고 큰소리만 떵떵거리다가 결국 실패한다면 선우 의가의 명성에 먹칠하는 사달이 날 텐데, 결국은 득보다 실이 많지 않겠어요?”비아냥거리는 그의 말투에 백아영은 치료는 개뿔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이는 한태성의 적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백아영은 문득 한태윤이 한씨 일가에서의 처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치료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시도해봐야 알겠죠.”그녀가 태연하게 되받아치자 한태성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럼 태윤이가 선우 일가의 명성에 어떻게 먹칠하는지 두고 볼게요.”백아영이 발끈했다.“어떻게 자기 동생한테 저주를 퍼부을 수 있죠?”“굳이 저주할 필요 있나요? 단명할 운명인데, 남 탓할 것도 없죠.”“뭐라고요?!”그녀가 반박하려던 찰나 이나연이 또다시 끌어당기며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모습으로 참으라고 눈짓했다.백아영은 당최 납득이 안 갔다. 무려 한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분이 어찌 이토록 비천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한건우도 나타났다.무심한 얼굴로 걸어가 상석에 앉은 그와 달리 이나연은 잽싸게 따라가서 식기를 세팅했다.“아영 씨, 앉아요.”백아영이 자리에 앉자 한건우는 밥을 먹기 시작했고, 이나연은 옆에 얌전히 서서 언제든지 시중들 수 있도록 대기했다.이 광경을 본 백아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나연이 식사를 같이 못 한다는 건가? 무려 한씨 일가 사모님인데?"한씨 일가에서 여자들은 겸상할 자격이 없죠. 특히 저 사람은 더더욱.”한태성은 신랄한 눈빛으로 비꼬듯 말했고, 어른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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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9화

그제야 한건우는 고개를 들어 백아영을 바라보았고, 기쁜 건지 화난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다만 입을 꾹 닫고 허락하지도, 그렇다고 막지도 않았다.백아영은 묵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리를 떴다.이내 등 뒤로 낮게 가라앉은 한태성의 쌀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만약 정말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선우 의가의 실력이 꽤 대단한걸요?”이를 악물고 말하는 말투는 귀에 거슬릴 지경이었다.순간, 백아영은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결국,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한태윤이 지내는 별장으로 돌아온 백아영은 방에 틀어박혀 약재 비율 연구에 전념했다. 무려 몇 시간이 지나서야 마침내 최상의 비율을 찾아냈다.그러고 나서 얼른 나정숙에게 처방전을 건네며 약재를 사 오라고 부탁했다.이를 본 나정숙은 경멸이 가득한 얼굴로 비아냥거렸다.“아영 씨도 결국은 돈을 노리고 찾아온 사기꾼에 불과했네요. 어차피 죽은 목숨인데, 그만큼 떼먹기도 쉽겠죠?”백아영은 울컥하는 마음에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사기꾼인지 아닌지 며칠 뒤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도우미면 도우미답게 본분을 지켰으면 좋겠네요. 얼른 가서 약재나 사 오세요.”오랜만에 대놓고 핀잔을 들어서 그런지 나정숙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더니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백아영을 노려보았다.하지만 도우미 신분을 떠올리자 차마 심기는 건드리지 못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떠났다.그 뒤로 백아영은 거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하지만 세월아 네월아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지만 나정숙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백아영은 초조한 마음에 한태윤을 찾으러 방으로 들어갔고, 그는 마침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잠옷 단추를 풀어 헤친 탓에 하얀 속살이 훤히 드러났고, 초췌한 모습은 마치 톡 하고 손대면 깨질 듯한 유리처럼 위태해 보여 안쓰러울 지경이었다.그녀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와중에 이성준이 나지막이 물었다.“무슨 일이죠?”“이모님한테 약재를 사 오라고 했더니 한 시간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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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0화

결국, 백아영은 직접 약재를 사러 나갔다가 한약이 완성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나정숙은 그제야 멀리서 느릿느릿 걸어왔다.이내 주방에 있는 백아영을 보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영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백아영은 한약을 그릇에 담고 나서 대답했다.“약을 달이고 있잖아요.”“셋째 도련님에게 주려고요?”순간, 나정숙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봉지를 내밀었다.“약재가 있는데 왜 저한테 사 오라는 거죠?”어쩌다 자신의 탓이 되어버렸단 말인가?백아영은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쳐다보았다.“제가 약재를 사 오고 한약을 달일 때까지 이모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잖아요. 약재를 구해오는 게 무려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 일인데 한시라도 지체하면 큰일 나는 거 몰라요?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렇게 늦게 돌아오신 거죠?”나정숙은 제 발 저린 듯 눈빛이 흔들렸고, 이를 악물고 변명했다.“그, 그게...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서...”“과연 도련님의 병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어, 어...”그녀의 얼굴이 점점 벌게졌고, 그럴싸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자 말까지 더듬거렸다. 결국 되레 화를 참지 못하고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호통쳤다.“아영 씨가 뭔데 절 몰아세우는 거죠? 전 한씨 일가의 고용인이자 도련님을 돌봐주는 사람인데, 고용주를 해칠 이유가 없잖아요. 따지고 보면 외부인은 아영 씨이며, 처방만 잘 내리면 되지 않나요? 설령 내가 늦게 돌아와서 잘못했다고 쳐도 아영 씨가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보는데요?”고용인 주제에 간사하기까지 하다니.백아영은 적당히 식은 그릇 온도를 체크하더니, 그녀와 괜한 시간을 낭비하기 싫은 듯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면서 말했다.“외부인으로서 이모님에게 일을 시킬 자격이 없는 건 사실이죠. 앞으로 약재에 대해서는 굳이 신경 안 써주셔도 돼요.”나정숙은 그동안 한태윤이 먹는 약을 조금씩 빼돌리거나 했는데, 갑작스러운 접근금지령에 손을 쓸 기회가 아예 사라지게 되었다.울컥하는 마음에 그녀는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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