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581 - Chapter 590

916 Chapters

제581화

다음 날.재무팀장은 일찌감치 직원들을 회사로 불러 모아 기세등등하게 사무실로 향했다.그녀는 한태윤이 본체를 수리하지 못했을 거로 확신했다.아니나 다를까 재무팀에 들어서는 순간 아직도 본체와 씨름하고 있는 한태윤을 발견했다.설령 붙잡고 있다고 한들 약속 시간이 다가왔기에 결국 부질없는 짓이었다.“어차피 수리하지도 못하는데 굳이 발버둥 칠 필요 있나요? 나중에 몸까지 망가지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지 않겠어요?”재무팀장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이제 출근 시간이 됐거든요? 부대표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시죠? 아영 씨는 알아서 제 발로 경찰서에 갈래요? 아니면 경찰서까지 끌고 가줘요?”꼬박 밤을 새운 백아영은 마음이 사뭇 무거웠다. 눈동자는 새빨갛게 충혈되었고, 머리가 띵 해냈다.하지만 재무팀장의 잘난 척하는 표정을 보자 저절로 치가 떨렸다.“다 됐어요.”이성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유유히 울려 퍼졌고, 손가락으로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본체에 전원이 들어왔다.재무팀장은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새된 비명을 질렀다.“이럴 수가!”아무리 능력 있는 해커라도 해도 고작 하룻밤 사이에 본체를 수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한태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녀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제 자리에 넋을 잃고 말았다.이성준은 힘들게 노트북을 내려놓았다. 밤새 강도 높은 작업 때문에 일어서면서 저도 모르게 비틀거렸다.“태윤 씨!”백아영은 서둘러 그를 부축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괜찮아요?”말을 마치고 나서 컨디션을 확인하기 위해 맥박을 짚으려고 했지만 그에게 제지당했다.“아영 씨도 밤새 못 잤잖아요. 전 괜찮으니까 애먼 데 정력 소모하지 마요.”“하지만...”“그런데 졸리긴 하네요. 우리 집에 가서 잠이나 자요.”이성준은 그녀를 끌어안다시피 하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입구에 모여서 백아영을 붙잡기만 기다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멍하니 길을 비켜주었다.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재무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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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겁에 질린 한태성은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이성준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백아영을 안은 채 그대로 스쳐 지나가 당당하게 별장으로 들어섰다.이성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한태성은 오싹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젠장, 저런 못난 놈한테 겁을 먹다니!”한태성은 화가 나서 발만 동동 굴렀다.그러나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씩 웃으며 음흉한 눈빛으로 이성준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백아영이 그렇게 좋다면 선물 하나 해줘야지.”이내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했다.“임소미가 아직도 집에 갇혀 있나? 이제 그만 풀어줘.”...한태성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태윤을 골탕 먹일 생각뿐인지라 누군가 재무팀장의 노트북을 몰래 가져가서 잠금 해제까지 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한원그룹의 탈세와 불법 거래에 대한 진짜 보고서는 이미 경찰의 손에 넘어갔다.이 사실을 알게 된 한건우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정신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궁지에 몰린 한태성은 칼을 들고 두말없이 한태윤의 별장으로 쳐들어가 죽여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외쳤다.이미 예상한 선우철은 손쉽게 그를 때려눕혔다.비록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지만, 한태성은 억울함과 분노가 차올라 목놓아 울부짖었다.“한태윤, 네가 한 짓이냐? 이 짐승보다 못한 놈아! 젠장! 어떻게 자기 집을 망하게 할 생각해? 한씨 일가가 무너지면 너도 빠져나가지 못할 줄 알아. 너 때문에 나도 망했어! 모든 걸 잃게 되었다고. 당장 기어 나오지 못해? 널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야!”악을 쓰며 외친 나머지 한태성의 목이 서서히 쉬어갔고, 이성준은 그제야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이내 반짝이는 구두가 코앞에 나타났는데, 딱 떨어진 슈트 바지를 따라 고개를 들자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싸늘한 눈빛은 저승사자보다 더 섬뜩했다.이성준은 눈을 내리깔고 마치 벌레 보듯 쳐다보며 서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한씨 일가처럼 더러운 곳은 진작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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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상남자 선우철마저 눈치챈 일을 백아영이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서로 사랑하는 소꿉친구 약혼녀가 있다고 했어요.”“만약 가짜면 어떡하려고요?”선우철은 본능적으로 말했다. 백아영을 향한 한태윤의 마음이 진심이란 생각이 들었고, 한태윤이라는 사람 자체가 겉과 속이 다른 듯싶었다.“그동안 한씨 일가에서 억압받으며 본모습을 숨기고 살아온 거 같은데, 무능하고 나약한 느낌과 180도 다르잖아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꼭꼭 숨겨놓을 정도면 약혼녀가 있다는 것도 지어냈을 가능성이 커요.”백아영은 흠칫 놀랐다. 그동안 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단 말이지?하지만 곰곰이 돌이켜보니 갈수록 확신이 들었다. 한태윤의 감쪽같은 연기는 이미 목격한 적이 있지 않은가?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 뭐든지 능청스럽게 연기할 것이다.물론 감정도 제외는 아니었다.애써 억누르고 있던 마음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행여나 싶은 생각에 백아영은 머릿속이 뒤죽박죽 했다.한씨 일가가 무너지자 관련 범죄자들은 전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썩어도 준치라고 한씨 일가가 있는 한 뒤처리는 한태윤이 직접 해결해야만 했다.온종일 바쁘게 보내고 돌아온 이성준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손에는 먹음직스러운 족발을 들고 있었는데 역시나 백아영이 제일 좋아하는 야식 중 하나였다.“어디서 샀어요? 남원에서 먹던 김가네 족발 맛이랑 똑같아요.”백아영은 족발을 뜯어 먹으며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제경과 남원은 입맛 자체가 달라서 백아영은 남원 음식이 감칠맛이 훨씬 더 깊었고, 맛도 있었다.이성준이 우아한 손짓으로 살코기를 바르면서 말했다.“김가네 족발의 주방장을 모셔 왔어요.”“네?”백아영은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손에 든 족발마저 툭 떨어뜨렸다. 주방장을 모셔 오다니?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닌가?이내 넋이 나간 얼굴로 물었다.“설마 날 위해 모셔 온 건 아니죠?”“아니면 제가 먹고 싶어서 모셔 왔겠어요?”이성준은 뼈와 분리한 살코기 한 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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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백아영은 오늘 저녁에 직접 만나서 한태윤의 약혼녀에 관해 묻고 싶었다.한태윤에 대한 호감이 저도 모르게 커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 모든 건 한태윤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소문이 가짜라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저녁이 되자 백아영은 한씨 일가를 떠나 한원그룹으로 향했다.그리고 한태윤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레스토랑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한편, 이성준은 급한 일을 우선 미루고 뜬금없이 선포했다.“퇴근합시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정호와 직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다들 충격받은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쿨하게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이성준을 바라보았다.찬바람을 쌩하니 일으키고 떠난 이성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백아영이 먼저 외식하자고 제안한 건 두 사람 사이에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의미했고, 그가 오매불망 바라왔던 일이기도 했다.오늘 밤 반드시 기회를 붙잡아 한층 더 돈독한 관계로 발전하리라 마음먹었다.이성준이 빠른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와 백아영을 데리러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안색이 창백한 여자가 불쑥 나타나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태윤 오빠!”이성준이 잽싸게 몸을 피하는 바람에 여자는 차에 철퍼덕 부딪혔다.이내 혐오감이 담긴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꺼져.”“태윤 오빠, 저 소미예요.”임소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성준을 바라보았고, 초췌한 얼굴에 속상함이 가득했다.“그동안 태윤 오빠 보러 안 왔다고 화난 거예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아빠가 저를 집에 가둬두는 바람에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오빠 만나러 보내주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도망도 쳐보고, 단식도 해보고, 자해도 했지만 결국 집을 벗어나는 데 실패했죠.”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손목에 선명한 칼자국이 보였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제발 화내지 마요, 네? 전 오빠를 잊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어요. 온종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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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이성준의 차는 제경에서 꽤 멀리 떨어진 어느 한 주택 앞에 멈추어 섰다.“태윤 오빠, 여기에는 왜 왔어요?”임소미의 얼굴은 의혹으로 가득했고, 떨리는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작 한 달밖에 못 봤지만, 눈앞의 남자는 더는 그녀가 사랑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싸늘하며 위험천만하고 두려운 느낌은 오로지 공포와 낯섦으로 다가왔고, 다정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이성준은 그녀를 무시하고 혼자 차에서 내려 주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임소미는 낯선 집을 바라보며 두려움이 밀려왔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하지만 한태윤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한 발자국도 꼼짝하지 못했다.설령 한태윤이 변했다고 해도 이대로 도망쳐서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았다. 죽는다 한들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임소미는 이를 악물고 벌벌 떨며 뒤를 따랐다.남자를 따라 거실에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는 또 다른 한태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태윤 오빠?”깜짝 놀란 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성준과 한태윤을 번갈아 보았다.“왜 똑같은 사람이 두 명이나 있죠?”이성준은 시계를 흘끔 보더니 싸늘한 말투로 한태윤에게 말했다.“자기 여자는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않겠어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며칠 뒤면 돌아갈 예정이라 한씨 일가 뒤처리는 직접 돌아가서 하세요.”말을 마친 이성준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백아영과 저녁을 같이 먹기 위해 픽업하러 한씨 일가로 향했다.그러나 도착하기도 전에 그녀의 문자를 받았다.「저녁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백아영은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마침 앞을 스쳐 지나가는 커플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먹먹했다.마치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한 느낌에 숨이 턱 막혔다.이성준과 헤어지고 나서 상처받은 적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한태윤에게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을 가졌다는 생각에 스스로 비웃고 원망했다.아직 상처를 덜 받고, 교훈을 덜 얻어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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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slov, 이 가게를 보고 있노라니 백아영은 좋아졌던 기분마저 또 한 번 먹구름이 끼었다.“왜 그래? 여기 마음에 안들어?”성무열은 예리하게 백아영의 감정을 알아챘다.백아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가자.”부적절한 감정, 부적합한 사람이라면 응당 놓아줘야 한다는 생각에 백아영은 영향받지 않으려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이성준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지만 뜻밖에도 그곳엔 백아영이 없었다.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백아영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연결됐다.“태윤 씨, 무슨 일 있어요?”이성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언제쯤 돌아와요?”백아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들이 찾아와서 당분간은 옆에서 돌봐야 해요. 앞으로 한씨 일가로 가는 건 불편할 것 같네요. 저희 오빠가 태윤 씨를 챙겨줄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게다가 병세가 많이 호전돼서 제가 없어도 별일 없을 거예요.”이성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이현무의 외출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그래도 이현무를 만나 기뻐하는 백아영의 모습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저도 현무 보고 싶은데 지금 어디 있어요? 제가 그쪽으로...”말을 마치기도 전에 핸드폰 너머로 성무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영아, 욕실에 물 받아놨어.”“태윤 씨,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끊을게요. 중요한 건 저희 오빠한테 잘 설명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백아영은 할 말만 하고 깔끔하게 전화를 끊었다.꺼진 핸드폰의 검은 화면을 보고 있던 이성준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방 안의 온도는 따뜻한 봄날에서 섣달 추운 겨울로 바뀌면서 오직 싸늘함만 맴돌았다.‘성무열? 그 자식이 왜 찾아온 거지? 욕실에 물을 받아놨다고? 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강한 위기감이 몰려온 이성준은 잔뜩 어두운 얼굴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더니 차에 타자마자 명령했다.“5분 내로 백아영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이성준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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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이성준은 그제야 이현무가 벌거벗은 채로 거품이 가득한 욕조에 앉아 있는 걸 보았고 백아영의 손도 거품으로 가득했다.“...”세상이 갑자기 멈춘 듯한 정적이 찾아오자 백아영은 민망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발이라도... 일단 떼는 게...”“쿨럭.”이성준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고선 발을 뗐다.그 시각 바닥에서 일어난 성무열은 입에 고인 피를 내뱉으며 화를 냈다.“백아영, 이 사람이 네가 말한 환자야? 허약해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다던 그 사람?”이 정도의 힘을 허약하다고 표현한다면 성무열은 반신불수나 다름없다.백아영도 자신이 생각했던 무기력과는 차원이 다른 그의 강력함을 발견했다.“마음이 급해서 너무 무리한 것 같네요.”말을 마친 이성준은 한순간에 힘을 너무 주어 몸의 정력을 다 쓴 사람처럼 갑자기 폐를 토해낼 정도로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곧이어 몸을 가눌 수 없다는 듯 휘청거리더니 벽을 짚어 간신히 중심을 유지했다.이를 본 백아영은 의심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제가 부축할 테니까 일단 소파에서 쉬고 있어요.”이성준은 여세를 몰아 백아영의 몸에 기대어 힘없이 거실로 걸어갔다.피를 닦고 있던 성무열은 할 말을 잃었다. 그 순간 입안은 또 피로 가득했다. 성무열은 분노가 치밀어올라 몸을 떨고 있었고 남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확신했다.이현무는 욕조에서 일어나더니 동정하듯 성무열의 팔을 토닥였다.“아저씨도 기침해요. 제가 부축할게요.”성무열은 험상궂게 이현무를 째려보고선 짜증 내며 그의 몸에 묻은 거품을 씻어내고 타월로 감싼 채 끌어안고 나갔다.거실로 나가니 백아영과 한태윤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있었고 백아영은 그의 등에 손을 얹은 채 천천히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이제 좀 괜찮아요?”한태윤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목소리는 허약하기 그지없었다.“가슴 쪽이 아직도 아파요.”“기침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아플 수 있어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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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선우경진은 어물쩍거리며 전화를 받더니 허약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영아, 내가 작은 교통사고를 당해서 팔을 다쳤어. 후유증 안 남게 하려면 지금 바로 남원으로 돌아가서 치료받아야 할 것 같아. 태윤 씨 일은 나도 도와줄 수 없게 됐네.”전화를 끊은 백아영은 소파에 앉아있는 연약한 남자를 보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밀려왔지만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현무가 왔으니 한씨 일가에서 지내는 건 불편해요...”“아영 씨는 생명의 은인이니까 아영 씨의 아들은 제 아들이나 다름없어요.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한씨 일가에서 지내도 돼요.”이성준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분위기를 뿜어냈다.그러나 성무열은 그의 가식적인 웃음에 몸서리쳤고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았다.“의사와 환자의 관계일 뿐인데 가족까지 데려가서 한씨 일가에서 지내는 건 민폐잖아요. 더군다나 저랑 현무는 다른 사람 집에서 지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태윤 씨, 아무래도 혼자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진찰은 제가 매일 아영이랑 함께 갈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성무열을 바라봤다.“엄마가 있는 곳에 아이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도대체 뭐가 익숙하지 않다는 거죠? 무열 씨야말로 스스로 남원에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외부인 주제에 아영 씨와 현무랑 같이 지내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이성준이 야망을 드러내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자 성무열은 현무를 꼭 껴안으며 티를 냈다.“현무는 제 양아들이에요. 저희는 가족이라고요. 지금으로선 태윤 씨가 외부인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양아들?’이성준의 눈빛은 극도로 차가워지더니 이현무를 보며 호통쳤다.“양아버지? 누가 함부로 이렇게 행동하라고 했어?”한동안 내버려두었더니 어느새 성무열 같은 자식을 양아버지로 받아들였다. 이성준은 당장이라도 이현무를 혼쭐내고 싶었으나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한태윤의 사나운 모습에 놀란 이현무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고 예전에 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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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한 시간 전 slov에서 식사하기도 전에 다른 테이블 손님이 실수로 쏟은 국물에 이현무의 옷이 더러워졌고 어쩔 수 없이 돌아와 그를 씻겼다.씻고 나니 배가 고픈지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백아영은 그에게 옷을 입혀주고 사랑스럽게 그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밥 먹으러 가자.”이현무가 즐겁게 외출하려던 그때 키즈폰이 울렸다.「발신자: 아빠」아빠라는 두 글자를 본 순간 백아영의 잔잔하던 마음에 작은 돌멩이가 던져진 듯 파도가 일렁였다.백아영은 헤어지고 나서 한 달이 넘도록 그에 관한 어떤 일도 접하지 못했다.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 그녀는 애써 시선을 회피했다.“밖에서 기다릴게.”이현무가 마음 편히 통화할 수 있도록 백아영은 거실로 나가 자리를 피했고 침대에 앉은 그는 한참 우물쭈물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아빠.”성무열과 함께 몰래 제경에 온 일이 이성준에게 들켰다는 확신이 들어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전화를 받았으나 이성준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성무열을 양아버지로 삼았어?”이현무는 깜짝 놀랐다. 성무열과 사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간직했던 작은 비밀을 이성준이 어떻게 알고 있냐는 말이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성준은 지금까지 늘 모든 일을 알고 있었기에 변명해도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체념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정했다.“네...”이성준은 호통치며 그를 꾸짖었다.“내 허락 없이 절대 아무 사람이나 양아버지로 삼으면 안 돼. 알겠지?”이현무는 고개를 숙였다.“알겠어요.”이성준은 말투는 한결 온화해졌다.“잘못한 걸 알면 됐어. 이제 성무열을 찾아가서 네가 직접 얘기해. 그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 거라고.”“그건 안 돼요!”이현무는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이미 약속했으니까 앞으로도 양아버지가 맞아요. 엄마도 허락했어요.”방금 전까지 기뻐하던 이성준은 또다시 기분이 착잡해졌고 옆방에서 당장이라도 달려가 이현무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그는 심호흡을 한 후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참을성 있게 말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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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이상하네. 현무가 양아버지 삼은 걸 이성준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이현무는 재빨리 손을 들었다.“제가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나도 아니야.”성무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우리를 제외하고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태윤 씨뿐인데...”백아영은 믿기지 않았다. 비록 알고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한태윤은 절대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니었고 이성준에게 이런 얘기를 전해줄 사람도 아니었다.더군다나 이성준과 한태윤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다른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직은 함부로 의심하지 말자.”성무열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비록 한태윤을 방에서 쫓아냈지만 조금 전의 백아영은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그를 감싸고 있었다.백아영과 한태윤, 정말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불과한 걸까?레스토랑으로 갈 준비를 마친 세 사람은 방에서 나왔다.이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옆방의 문이 열렸고 그곳에서는 이성준이 매우 자연스럽게 나왔다.“어디 가요?”“레스토랑이요.”백아영은 자연스레 답하고 나서야 이성준이 옆방에서 나온 걸 발견했다.‘뭐지? 옆방에서 나온 거야?’그녀가 묻기도 전에 이성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도 레스토랑 가려던 참이었는데 같이 가요.”말을 마친 그는 긴 다리를 내디디며 엘리베이터로 우아하게 걸어갔다.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그를 마주하니 거절하면 왠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레스토랑.이성준과 성무열은 서로 마주 앉았고 백아영과 이현무는 둘 사이에 앉았다.어색하고 딱딱한 분위기에 성무열은 더는 참지 못하고 불편한 티를 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태윤 씨는 왜 아직도 한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으신 거죠?”이성준은 우아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과 달리 얼굴은 병적으로 하얗게 질려있었고 목소리는 여전히 허약했다.“몸이 많이 안 좋아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까 봐 못 갔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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