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v, 이 가게를 보고 있노라니 백아영은 좋아졌던 기분마저 또 한 번 먹구름이 끼었다.“왜 그래? 여기 마음에 안들어?”성무열은 예리하게 백아영의 감정을 알아챘다.백아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가자.”부적절한 감정, 부적합한 사람이라면 응당 놓아줘야 한다는 생각에 백아영은 영향받지 않으려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이성준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지만 뜻밖에도 그곳엔 백아영이 없었다.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백아영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연결됐다.“태윤 씨, 무슨 일 있어요?”이성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언제쯤 돌아와요?”백아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들이 찾아와서 당분간은 옆에서 돌봐야 해요. 앞으로 한씨 일가로 가는 건 불편할 것 같네요. 저희 오빠가 태윤 씨를 챙겨줄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게다가 병세가 많이 호전돼서 제가 없어도 별일 없을 거예요.”이성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이현무의 외출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그래도 이현무를 만나 기뻐하는 백아영의 모습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저도 현무 보고 싶은데 지금 어디 있어요? 제가 그쪽으로...”말을 마치기도 전에 핸드폰 너머로 성무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영아, 욕실에 물 받아놨어.”“태윤 씨,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끊을게요. 중요한 건 저희 오빠한테 잘 설명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백아영은 할 말만 하고 깔끔하게 전화를 끊었다.꺼진 핸드폰의 검은 화면을 보고 있던 이성준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방 안의 온도는 따뜻한 봄날에서 섣달 추운 겨울로 바뀌면서 오직 싸늘함만 맴돌았다.‘성무열? 그 자식이 왜 찾아온 거지? 욕실에 물을 받아놨다고? 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강한 위기감이 몰려온 이성준은 잔뜩 어두운 얼굴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더니 차에 타자마자 명령했다.“5분 내로 백아영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이성준은
이성준은 그제야 이현무가 벌거벗은 채로 거품이 가득한 욕조에 앉아 있는 걸 보았고 백아영의 손도 거품으로 가득했다.“...”세상이 갑자기 멈춘 듯한 정적이 찾아오자 백아영은 민망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발이라도... 일단 떼는 게...”“쿨럭.”이성준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고선 발을 뗐다.그 시각 바닥에서 일어난 성무열은 입에 고인 피를 내뱉으며 화를 냈다.“백아영, 이 사람이 네가 말한 환자야? 허약해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다던 그 사람?”이 정도의 힘을 허약하다고 표현한다면 성무열은 반신불수나 다름없다.백아영도 자신이 생각했던 무기력과는 차원이 다른 그의 강력함을 발견했다.“마음이 급해서 너무 무리한 것 같네요.”말을 마친 이성준은 한순간에 힘을 너무 주어 몸의 정력을 다 쓴 사람처럼 갑자기 폐를 토해낼 정도로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곧이어 몸을 가눌 수 없다는 듯 휘청거리더니 벽을 짚어 간신히 중심을 유지했다.이를 본 백아영은 의심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제가 부축할 테니까 일단 소파에서 쉬고 있어요.”이성준은 여세를 몰아 백아영의 몸에 기대어 힘없이 거실로 걸어갔다.피를 닦고 있던 성무열은 할 말을 잃었다. 그 순간 입안은 또 피로 가득했다. 성무열은 분노가 치밀어올라 몸을 떨고 있었고 남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확신했다.이현무는 욕조에서 일어나더니 동정하듯 성무열의 팔을 토닥였다.“아저씨도 기침해요. 제가 부축할게요.”성무열은 험상궂게 이현무를 째려보고선 짜증 내며 그의 몸에 묻은 거품을 씻어내고 타월로 감싼 채 끌어안고 나갔다.거실로 나가니 백아영과 한태윤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있었고 백아영은 그의 등에 손을 얹은 채 천천히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이제 좀 괜찮아요?”한태윤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목소리는 허약하기 그지없었다.“가슴 쪽이 아직도 아파요.”“기침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아플 수 있어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선우경진은 어물쩍거리며 전화를 받더니 허약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영아, 내가 작은 교통사고를 당해서 팔을 다쳤어. 후유증 안 남게 하려면 지금 바로 남원으로 돌아가서 치료받아야 할 것 같아. 태윤 씨 일은 나도 도와줄 수 없게 됐네.”전화를 끊은 백아영은 소파에 앉아있는 연약한 남자를 보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밀려왔지만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현무가 왔으니 한씨 일가에서 지내는 건 불편해요...”“아영 씨는 생명의 은인이니까 아영 씨의 아들은 제 아들이나 다름없어요.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한씨 일가에서 지내도 돼요.”이성준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분위기를 뿜어냈다.그러나 성무열은 그의 가식적인 웃음에 몸서리쳤고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았다.“의사와 환자의 관계일 뿐인데 가족까지 데려가서 한씨 일가에서 지내는 건 민폐잖아요. 더군다나 저랑 현무는 다른 사람 집에서 지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태윤 씨, 아무래도 혼자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진찰은 제가 매일 아영이랑 함께 갈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성무열을 바라봤다.“엄마가 있는 곳에 아이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도대체 뭐가 익숙하지 않다는 거죠? 무열 씨야말로 스스로 남원에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외부인 주제에 아영 씨와 현무랑 같이 지내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이성준이 야망을 드러내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자 성무열은 현무를 꼭 껴안으며 티를 냈다.“현무는 제 양아들이에요. 저희는 가족이라고요. 지금으로선 태윤 씨가 외부인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양아들?’이성준의 눈빛은 극도로 차가워지더니 이현무를 보며 호통쳤다.“양아버지? 누가 함부로 이렇게 행동하라고 했어?”한동안 내버려두었더니 어느새 성무열 같은 자식을 양아버지로 받아들였다. 이성준은 당장이라도 이현무를 혼쭐내고 싶었으나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한태윤의 사나운 모습에 놀란 이현무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고 예전에 아
한 시간 전 slov에서 식사하기도 전에 다른 테이블 손님이 실수로 쏟은 국물에 이현무의 옷이 더러워졌고 어쩔 수 없이 돌아와 그를 씻겼다.씻고 나니 배가 고픈지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백아영은 그에게 옷을 입혀주고 사랑스럽게 그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밥 먹으러 가자.”이현무가 즐겁게 외출하려던 그때 키즈폰이 울렸다.「발신자: 아빠」아빠라는 두 글자를 본 순간 백아영의 잔잔하던 마음에 작은 돌멩이가 던져진 듯 파도가 일렁였다.백아영은 헤어지고 나서 한 달이 넘도록 그에 관한 어떤 일도 접하지 못했다.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 그녀는 애써 시선을 회피했다.“밖에서 기다릴게.”이현무가 마음 편히 통화할 수 있도록 백아영은 거실로 나가 자리를 피했고 침대에 앉은 그는 한참 우물쭈물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아빠.”성무열과 함께 몰래 제경에 온 일이 이성준에게 들켰다는 확신이 들어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전화를 받았으나 이성준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성무열을 양아버지로 삼았어?”이현무는 깜짝 놀랐다. 성무열과 사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간직했던 작은 비밀을 이성준이 어떻게 알고 있냐는 말이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성준은 지금까지 늘 모든 일을 알고 있었기에 변명해도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체념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정했다.“네...”이성준은 호통치며 그를 꾸짖었다.“내 허락 없이 절대 아무 사람이나 양아버지로 삼으면 안 돼. 알겠지?”이현무는 고개를 숙였다.“알겠어요.”이성준은 말투는 한결 온화해졌다.“잘못한 걸 알면 됐어. 이제 성무열을 찾아가서 네가 직접 얘기해. 그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 거라고.”“그건 안 돼요!”이현무는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이미 약속했으니까 앞으로도 양아버지가 맞아요. 엄마도 허락했어요.”방금 전까지 기뻐하던 이성준은 또다시 기분이 착잡해졌고 옆방에서 당장이라도 달려가 이현무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그는 심호흡을 한 후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참을성 있게 말했다.
“이상하네. 현무가 양아버지 삼은 걸 이성준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이현무는 재빨리 손을 들었다.“제가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나도 아니야.”성무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우리를 제외하고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태윤 씨뿐인데...”백아영은 믿기지 않았다. 비록 알고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한태윤은 절대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니었고 이성준에게 이런 얘기를 전해줄 사람도 아니었다.더군다나 이성준과 한태윤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다른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직은 함부로 의심하지 말자.”성무열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비록 한태윤을 방에서 쫓아냈지만 조금 전의 백아영은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그를 감싸고 있었다.백아영과 한태윤, 정말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불과한 걸까?레스토랑으로 갈 준비를 마친 세 사람은 방에서 나왔다.이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옆방의 문이 열렸고 그곳에서는 이성준이 매우 자연스럽게 나왔다.“어디 가요?”“레스토랑이요.”백아영은 자연스레 답하고 나서야 이성준이 옆방에서 나온 걸 발견했다.‘뭐지? 옆방에서 나온 거야?’그녀가 묻기도 전에 이성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도 레스토랑 가려던 참이었는데 같이 가요.”말을 마친 그는 긴 다리를 내디디며 엘리베이터로 우아하게 걸어갔다.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그를 마주하니 거절하면 왠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레스토랑.이성준과 성무열은 서로 마주 앉았고 백아영과 이현무는 둘 사이에 앉았다.어색하고 딱딱한 분위기에 성무열은 더는 참지 못하고 불편한 티를 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태윤 씨는 왜 아직도 한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으신 거죠?”이성준은 우아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과 달리 얼굴은 병적으로 하얗게 질려있었고 목소리는 여전히 허약했다.“몸이 많이 안 좋아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까 봐 못 갔어요.
백아영은 버려진 음식 더미와 텅 빈 자신의 그릇을 번갈아 보더니 참다못해 젓가락을 든 손으로 테이블에 내리치며 말했다.“그만해! 안 먹을 거면 둘 다 나가!”젓가락 싸움과 두 사람 사이의 신경전은 그제서야 일단락났다.백아영은 마침내 평화로운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와 달리 이성준과 성무열은 전혀 식욕이 없었고 ‘죽일듯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없이 싸웠다.식사가 끝난 후 성무열이 입을 열었다.“아영아,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내가 네 방으로 가서 현무랑 놀아줄게.”말을 하던 그는 이현무에게 눈치를 줬다. 오는 길에 이미 입을 맞췄던 터라 이현무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저 양아버지랑 같이 게임하고 싶어요.”백아영은 현무의 작고 귀여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래.”성무열은 자신이 이 싸움의 승자라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득의양양하게 이성준을 훑어봤다.이성준은 음침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선 곧바로 실수로 잔을 떨어뜨렸고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컵은 바닥에서 산산조각났다.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백아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쓰러져있는 한태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달려가 그를 부축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왜 그래요? 괜찮아요?”이성준은 내친김에 그녀에게 몸을 기댔다.“조금 불편한데 괜찮아요. 시간 지나면 좋아지겠죠... 얼른 방으로 돌아가서 현무랑 같이 게임해요.”성무열은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게임을 할 수 있냐는 말이다!일부러 쓰러진 듯한 그의 뻔뻔스러운 행동을 보고 성무열은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으나 그전에 백아영에게 가로막혔다.“무열아, 일단 현무랑 먼저 방으로 돌아가. 난 태윤 씨 치료하고 나서 갈게.”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성무열은 의사가 아닌 자신을 원망하며 이성준의 꾀병을 들출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탓했다.백아영은 조심스럽게 이성준을 방까지 부축했고 맥을 짚으며 물었다.“어디가 불편해요?”침대에 누운 이성준은 그윽한
이성준은 이를 악문 채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어디로 갔어?”이현무는 위기의식이 전혀 없었고 되레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둘만의 데이트니까 양아버지가 절대 얘기해주면 안된다고 했어요.”둘만의 데이트?이성준은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었고 반항적인 아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정말로 얘기 안 할 거니?”이현무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절대 얘기 안 할 거예요!”이성준은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선 후 천둥소리에 버금갈 정도로 문을 쾅 하고 닫았다.선우철은 겁에 질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몸을 떨었고 그는 자신이 왜 눈앞의 남자에게서 공포감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위정은 가면을 쓴 채 이성준의 새로운 비서인척하며 줄곧 곁을 지켰다. 그는 방에서 나온 이성준을 보더니 재빨리 물었다.“사람 시켜서 아영 씨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까요?”“그럴 필요 없어.”이성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고 손에 벨트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간 무서운 게 아니다.“이 자식 혼날 때 됐어.”말을 마친 이성준은 가면을 벗고 그의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병으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지만 잘생김은 여전했고 이성준 특유의 싸늘함도 변함없었다.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위정은 이현무가 무사하기를 속으로 기도했다.몇 분 후.888번 문에서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이현무는 기분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저 사람은 왜 계속 찾아와요? 당장 쫓아낼 거예요!”이현무는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씩씩거리며 문으로 돌진했고 문을 열면서 태연하게 말했다.“양아버지와 우리 엄마는 둘 다 선남선녀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요. 하늘이 맺어준 운명적인 사랑이라고요. 저의 새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도 양아버지가 유일하고 당신이랑 우리 엄마는 희망이 없으니까 더 이상...”쉴 틈 없이 팩폭을 날리던 이현무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선 목이 막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곧이어 겁에 질린 채 몇 걸음 뒤로
같은 시각 백가 골목.이곳은 재벌들이 보물을 찾는 장터이자 일반인이 시야를 넓히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기도 했기에 밤만 되면 인파가 몰려 떠들썩했다.백아영과 성무열은 사람들 속을 거닐며 조양각을 향해 걸어갔다.그들은 최근 조양각에서 혈옥을 입수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혈옥은 백 년에 한 번 나타나기도 어려운 희귀종으로 소장 가치가 극히 높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약효까지 가지고 있어 모두가 탐내고 있다.혈삼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그 수는 혈삼보다 많으니 연구하기에는 아주 적합했다. 혈옥의 약효를 연구해 낸다면 50조의 빚을 청산할 기회가 생긴 거나 다름없다.“조양각 사람들과 이미 얘기가 끝났으니까 이변이 없는 한, 네가 제일 먼저 살 수 있을 거야.”혈옥에 관한 정보를 백아영에게 알려준 사람은 바로 성무열이다.그는 혈옥 구매를 주선했을 뿐만 아니라 촛불 만찬과 낭만적인 불꽃놀이까지 준비했다.이성준과 한태윤 두 장애물이 없으니 모든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만 같았고 혈옥을 산 후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면 백아영도 마음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다.“고마워.”성무열의 도움에 그녀는 감격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렇게 두 사람이 목적지에 다가갔을 때 백아영은 문득 이성준과 매우 흡사한 사람이 조양각으로 들어선 걸 발견했다.‘이성준?’백아영은 그 사람이 이성준이라고 확신했다.한 달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존재만으로 백아영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그에게 다가가려 걸음을 재촉했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 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백아영은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었다.“왜 그래?”성무열은 의아하게 백아영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상증세를 보이니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다.백아영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으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억눌렀다.“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가자.”조양각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무성하게 핀 꽃과 사람들로 둘러싸인 넓은 정원이었다.백아영은 성무열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