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421 - 챕터 430

916 챕터

제421화

바쁜 하루를 보낸 뒤 지친 몸으로 공장을 나오던 백아영은 길가에 멈춰선 은회색 스포츠카를 발견했다.성무열은 장미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보닛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멋진 포즈를 취했는데 양아치 느낌이 물씬 났다.“아영아.”이내 그녀를 향해 윙크를 날리더니 요염한 눈으로 끼를 부리기 바빴다.그러고 나서 장미꽃을 그녀에게 건넸다.“미인에게 장미꽃을 바칠게.”매력 발산하는 모습은 어제 그녀와 싸우고 억지 부리던 사람과 전혀 달랐고,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백아영도 굳이 다시 언급하기 귀찮은 듯 장미꽃을 무심하게 건네받았다.“바쁘다면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대?”성씨 일가가 국내로 복귀하면서 성무열이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므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성무열은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아무리 바빠도 널 소홀히 하면 안 되지. 여자친구가 퇴근할 때 픽업 와서 집까지 데려다주는 건 기본 아니겠어?”역시 그는 입만 살았다.백아영도 이제 익숙한 듯 태연하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출발해.”성무열은 그녀를 힐긋 바라보았다.“기분이 좋은가 보네?”“응.”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내가 픽업 오는 게 꽤 좋나 봐? 앞으로 매일매일 데리러 올게.”성무열이 뿌듯한 얼굴로 말하자 백아영은 어이가 없었다.물론 설명하기도 귀찮았다.‘본인이 그렇다는데 뭐.’그 뒤로 매일 아침 백아영은 아름다운 장미꽃을 받았는데,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그리고 오후가 되면 공장에 이성준이 보낸 차가 도착했고, 때로는 음료수와 디저트, 때로는 과일과 쿠키를 보냈는데 겹치는 날이 한 번도 없었다.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는 듯싶었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한창 서류에 사인하느라 정신없던 성무열은 그동안 이성준이 매일 오후 공장에 음식을 가져다줬다는 사실을 문득 전해 듣게 되었다.“젠장! 왜 이제야 알려 주는 거야?”성무열은 화가 나서 서류를 내팽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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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눈앞의 아름다운 경치까지 더해 얼어붙었던 백아영의 마음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결국, 바다 위의 장관에 흠뻑 빠져들었다.그녀는 소파에 몸을 파묻고 탁 트인 바다를 보며 기분이 한결 편안하고 좋아졌다.그동안 쌓였던 피로도 말끔히 사라졌다.백아영의 시선은 바다로 향했고, 이성준은 태양보다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마음에 들어?”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백아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이성준이 피식 웃었다.“다음에 또 오자.”다음...성무열과 한 약속을 문득 떠올린 백아영은 머리가 지끈거렸고,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성준아, 바다도 봤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자.”퇴근 시간이 곧 다가오는지라 공장까지 픽업하러 온 성무열이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또 말썽을 부리기 마련이다.그녀의 생각을 단번에 꿰뚫어 본 이성준은 눈빛이 어두워졌다.다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저기 봐!”백아영은 이성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 핑크 돌고래 떼가 그들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었다.고래 떼가 수면 위를 드나들며 앞다투어 헤엄치는 장면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가까이 다가온 녀석들은 요트 주변을 여러 바퀴 맴돌다가 멀지 않은 곳에 모여서 함께 퍼덕거렸다.이를 본 백아영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귀엽잖아!”“만져볼래?”이성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만져봐도 돼?”백아영은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성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외투를 벗고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백아영은 아연실색하며 서둘러 외쳤다.“이성준, 지금 뭐 하는 거야? 위험해! 얼른 올라와.”돌고래 한 마리가 이성준을 등에 업고 바다 위로 떠 올랐다.그는 돌고래를 팔로 감싸고 요트에 다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자, 만져봐.”돌고래와 이성준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황홀경이 따로 없는 아름다운 장면에 백아영의 심장이 쿵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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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지금부터 이 망망대해 위에서 모든 책임과 복잡한 관계를 훌훌 털어버리고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 아영아, 솔직히 대답해줘. 나랑 같이 있고 싶어?”달콤한 사랑의 고백에 매료당한 백아영은 점점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드넓은 바다와 귀여운 돌고래, 그리고 이성준의 숨결까지 느껴지는 로맨틱한 상황 속에서 이성의 끈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도시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바다에서는 모든 구속과 번뇌가 말끔히 사라지는 듯싶었다.그녀는 도저히 당해낼 힘이 없어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이내 이성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가 놓은 사랑의 덫에 기꺼이 걸려들기로 했다.지금 이 순간 그녀의 눈에는 이성준밖에 없고,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성준의 생각으로 가득했다.백아영은 돌고래 입에서 반지를 집어 들고 그에게 보여주면서 햇살처럼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예쁘네.”가슴이 조마조마하던 이성준도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그는 드디어 백아영의 마음을 확인했다.“아영아!”이성준은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키스하려고 입술을 가까이 댔다.핑크 돌고래들이 수면 위로 팔딱팔딱 뛰어올랐고, 하늘과 바다가 이어진 듯한 망망대해에서 로맨틱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은 모두가 그리는 소망일 것이다.그러나 이때.쿵!바다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물보라가 10여 미터 높이까지 치솟았다.파도가 일렁이자 돌고래들은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도망쳤다.백아영과 이성준도 파도의 여파에 출렁이다가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고 방금 어뢰가 터진 곳을 살폈다.이내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요트 한 대를 발견했다.요트 갑판에는 화가 잔뜩 난 성무열의 모습이 보였다.백아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바람피우다 들킨 사람처럼 죄책감마저 들었다.이성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싸늘한 기운은 성무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싶었다.“할 말도 있고 마침 잘 왔네.”그는 백아영을 안고 요트에 태우더니 타올로 포근하게 감싸줬다.곧이어 성무열의 요트도 도착했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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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백아영은 한발 물러나 성무열의 곁에 서더니 힘들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아까는 오해였어. 반지는 돌려줄게.”이내 반지를 빼서 이성준에게 건넸다.이성준의 동공이 커지더니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태도가 바뀌어도 이렇게 빨리 바뀔 줄은 몰랐다.이건 그가 알던 백아영이 아니었다.“오해라고?”이성준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방금 나한테 마음이 흔들렸잖아.”그 순간, 애틋하던 감정은 결코 거짓일 수가 없었다.백아영의 기분이 점점 가라앉았다. 옆에 있던 성무열이 손을 덥석 붙잡더니 점점 힘이 들어갔는데 눈에 보이지 않은 압박감으로 다가왔다.결국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었다.“성준아, 네 외모를 너무 과소평가한 거 아니야? 너한테 마음이 있든 말든 그런 상황에서 과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진심 어린 고백과 힘들게 준비한 이벤트가 고작 외모를 내세운 유혹으로 변질하다니!그렇다면 백아영은 유혹에 넘어간 쉬운 여자에 불과하다는 말이지 않은가?“백아영, 넌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성무열이 나타난 이후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당최 납득이 안 갔다.애써 유지한 백아영의 가식적인 모습은 이성준 앞에서 낱낱이 까밝혀 지는 듯싶었고,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라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아직 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쳐.”그러고 나서 반지를 이성준의 손에 쥐여주고 허둥지둥 뒤돌아서 성무열의 요트에 올라타 얼른 출발하라고 재촉했다.이성준과 몇 초만 더 붙어있다가는 들통날까 봐 조마조마했다.백아영의 마음을 눈치챈 성무열은 속으로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차마 분출하지는 못하고 마치 승자가 된 듯 우쭐거리며 말했다.“이성준 씨, 마음을 사로잡는 게 아니라 단지 외모를 내세워 유혹하는 건 무의미해요. 다음부터 괜히 헛수고하지 마세요. 시간만 낭비하고 웃음거리가 되는 신세밖에 더 있겠어요?”이성준은 손에 쥔 반지를 으스러뜨릴 기세로 꽉 쥐었다.안색은 극도로 차가웠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멀어져가는 성무열의 요트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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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심은아는 조바심이 나서 손까지 떨었다.“여태껏 연락이 안 닿은 적은 없는데... 아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이도하와 심은아는 선우 일가에 잠시 머물러 있는 상황이지만, 사생활과 자유를 누리게 관여하지 않은 편이라 평소 식사도 각자 해결했다.백아영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지라 심은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며칠째 이도하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은아 씨, 일단 전정하세요. 도하 도련님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서 사고당할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찾아보라고 할게요.”백아영은 재빨리 인력을 동원하여 이도하를 찾으러 나섰다.결국 이것저것 처리하다 보니 오전이 후딱 지나갔다.가까스로 심은아를 달래고 이도하를 찾기 위해 사람을 보낸 뒤 그녀는 공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공장에 도착하는 순간 허둥지둥 달려 나오는 난초를 발견했다.그녀의 이마에는 핏자국이 있고 몸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었는데, 누가 봐도 위험에 처한 모습이다.“대표님, 큰일 났어요! 누군가 공장에 쳐들어와 저희 기계를 몽땅 부숴버렸어요.”백아영은 아연실색하며 다급하게 물었다.“직원들은 괜찮아?”“뜯어말리려고 노력했는데 싸움으로 상대가 안 되어서 대부분 다쳤어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상처를 치료하는 중입니다.”난초는 백아영이 직원들의 안위부터 걱정했다는 점에 감동하여 더더욱 속상한 듯 말했다.“이미 완성한 회복약도 지키지 못하고 전부 망가졌어요.”이는 정부에 납품하는 것으로 아주 중요한 상품이며, 반드시 납품기한에 맞춰야만 했다.백아영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괜찮아, 인원을 더 많이 배치하면 시간상 아직 여유 있어. 얼른 가서 새로운 기계와 약재를 구해.”그러나 백아영은 상대방을 과소평가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선우 일가이자 회복약이다.남원은 물론 주변 도시에서 회복약의 제작과 관련된 기계는 누군가에 매수당하거나 한밤중에 도둑을 맞아 모두 파손되었다.그동안 열심히 수소문했지만, 결국 급하게라도 사용할 수 있는 기계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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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백아영이 미소를 지었다.“뭔데요?”“혹시 성무열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나요?”민우진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사실대로 얘기해주세요.”민우진은 유일한 친구로서 백아영도 그에게 숨기는 일이 거의 없고, 또한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성무열과 두 달 동안 연인 사이로 유지하겠다는 약속은 그녀가 승낙한 것이자 제약이기도 했다.백아영은 속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좋아해요.”‘좋아요’라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지만, 민우진은 생각보다 속상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는 흔들리는 백아영의 눈동자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이는 누가 봐도 거짓말하는 모습이지 않은가?적어도 단호하게 좋다고 확신하는 건 아닌 듯싶었다.그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무언가를 떠올렸다.“아영 씨, 지금 나도 속이려 하는 거예요? 거짓말이잖아요. 성무열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있기로 약속한 거죠?” 민우진은 말을 이어갈수록 확신에 찼고,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성무열과 만나기로 한 이유는 보답 때문인가요? 아니면 협박 때문인가요?”백아영은 깜짝 놀란 반면 찔리기도 했다. 민우진은 역시나 그녀의 오랜 친구답게 모든 걸 간파했다.하지만 그가 괜히 걱정할까 봐 백아영은 태연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우진 씨. 선우 일가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와준 무열한테 고마운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물론 무열을 향한 감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알고 보면 꽤 괜찮은 남자이거든요. 딱히 현재 상황에 불만은 없어요.”“그래요?”민우진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은 마치 그녀의 가식적인 모습을 꿰뚫어 본 듯싶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캐묻는 대신 화제를 바꿨다.“시간도 늦었으니 제가 데려다줄게요.”백아영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민우진의 차를 가로막더니 심유미가 느긋하게 차에 올라탔다.그녀는 쌀쌀맞은 얼굴로 민우진을 바라보았다.“비밀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별도의 제약 공장까지 가동하고 대체 무슨 수로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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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사유지라서 외부인 출입 금지입니다. 성무열 씨는 이만 돌아가 주시죠?”비록 선우 일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지만, 민씨 가문의 소유지인 건 사실이다.따라서 사유지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하지만 고의가 다분한 태클이 분명했다.성무열이 민우진을 힘껏 노려보았다.“뭐가 잘났다고 나대는 거죠? 단 몇 분 안에 이 땅 인수해버릴지도 몰라요.”성씨 일가가 남원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여전히 이씨 가문에 버금가는 부유하고 강력한 집안임은 사실이다. 공장을 강제로 인수하는 건 둘째 치고 민씨 가문 자체를 손아귀에 넣는 것조차 식은 죽 먹기였다.압도적인 자본 차이에 민우진은 주먹을 살짝 쥐었다.그러나 이제 그는 예전처럼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 아닌지라 당당하게 말했다.“어디 한번 해보시던가요?”성무열은 눈을 가늘게 떴다. 민우진한테서 그동안과 사뭇 다른 강인함이 느껴졌고 비열한 모습도 얼핏 보였다.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백아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성무열은 골칫거리가 따로 없었다. 이성준이든 민우진이든 만나기만 하면 싸움을 일으키다니!그녀가 서둘러 나섰다.“무열아, 회사에 일이 많아서 바쁘다며?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출근이나 해.”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무열의 비서가 급히 다가왔다.그러고 나서 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태오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성무열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두 눈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성태오는 당숙의 아들로서 상속권은 없지만 성씨 일가의 주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비겁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나타나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성무열은 민우진을 째려보았다.“운이 좋은 줄 알아요. 오늘은 일단 봐줄 테니까 괜히 나쁜 속셈 갖지 말고 조용히 있어요. 아니면 후회란 뭔지 똑똑히 보여주죠!”성무열은 으름장을 놓고 서둘러 떠났다.차에 탄 그는 비서에게 말했다.“민우진의 최근 행적을 조사하고 감시해.”비록 백아영 앞에서는 익살스럽고 진중하지 못한 모습을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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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이내 민우진은 공장으로 들어섰다.선우 일가 사람들은 그의 도움을 고맙게 여겨 딱히 경계하지 않았고, 모든 공정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민우진이 무심코 훑어보고는 바로 기억했다.그러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작업은 별도로 떨어진 작은 방에서 진행했는데 당장은 확인이 불가능했다.“마지막 프로세스는 수작업으로 진행하죠. 기계 인증을 구실로 염탐하는 게 과연 소용이 있을까요?”심유미가 기둥에 기대면서 비아냥거렸다.민우진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물론 그의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긴 했다.순수 수작업과 별도의 방, 그곳을 드나들 명분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심유미는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새빨간 입술을 끌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우진 씨, 저에게 좋은 방법이 있어요. 같은 방법을 반복하는 거죠. 제가 사람을 보내 공장에서 소란을 피우라고 할 테니 대부분 사람의 주의를 이끈 틈을 타서 우진 씨는 방에 들어가서 조제법을 염탐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민우진을 바라보았다.“다만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정체가 폭로될 가능성이 크겠죠? 만약 우진 씨라는 사실을 들킨다면 백아영과 유지했던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이어가기 힘들겠죠.”민우진은 백아영한테서 모든 걸 빼앗을 생각이지만, 자기가 한 짓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결국 큰마음 먹고 결정을 내렸다.“오늘 밤 움직이죠.”현재 선우 일가에서는 공장에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한 상황이다. 특수한 시기인 만큼 2교대를 실시하면서 야간 근무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백아영은 낮에만 공장에 있고, 매일 저녁 7시가 땡하면 성무열이 그녀를 데리고 퇴근했다.따라서 밤에 움직이면 실수로 그녀를 다치게 하거나 제지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민우진은 나름 주도면밀하게 계획했지만, 예상 밖의 일이 터질 줄은 몰랐다.성태오 때문에 발목이 잡힌 성무열은 백아영에게 연락해서 오늘 저녁 데리러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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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우진 씨?”백아영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지금 뭐 하는 거죠?”민우진이 우뚝 멈춰서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백아영과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숨기려고 했으나 손발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는 이 지경이 된 이상 아무리 변명해도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도 결코 변명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민우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씁쓸하게 웃었다.“우린 어쩌면 인연도 이리 얄팍할 수가 있죠?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딱 아영 씨에게 들키다니.”아직도 믿기지 않아 괴로워하던 백아영은 민우진의 자조적인 말에 마치 사형을 선고받은 듯싶었다.이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니 고개를 연신 저었다.“왜...”민우진은 가족을 제외하고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민우진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백아영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충격을 감추지 못했고, 더욱이 터무니없는 악몽 같았다.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우진 씨, 혹시 누가 억지로 시켰어요?”이는 백아영이 머리를 쥐어짜 내서 생각한 결론이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녀는 민우진의 됨됨이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백아영의 모습을 본 민우진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단지 찰나에 불과했을 뿐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그는 주먹을 꽉 쥔 채 비장한 얼굴로 백아영을 향한 집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범인은 다름 아닌 아영 씨에요.”그러고 나서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벌써 몇 년째인데 그동안 아영 씨의 마음에는 항상 다른 사람만 있을 뿐, 여태껏 저한테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나요? 제가 아영 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죠? 그거 알아요? 사실 전 4년 전부터 아영 씨가 좋았어요. 민씨 가문의 모든 걸 포기하고 아영 씨와 남원을 떠나고 싶을 만큼 사랑했다고요. 제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둘이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했으면 뭐해요? 아영 씨의 인연에 저라는 사람이 나타난 적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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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백아영은 마음이 괴로운 탓에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 했다.민우진에게 결코 상처를 안겨 줄 생각은 없었다. 미안함과 자책, 고통이 밀려왔지만 어떻게 해야 만회할 수 있을지 몰라서 속수무책이었다.“하, 죄책감 때문이라도 안 되겠어요?”민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주변의 공기가 점점 싸늘해졌고, 마치 지워지지 않은 그림자에 휩싸인 듯 스산했다.“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나중에 괜히 저를 탓하지 마세요.”그의 손에 마지막 프로세스에 필요한 데이터 시트가 들려 있었다.“선우 일가 회복약의 조제법은 이미 제 손에 있어요. 만약 외부로 누설한다면 선우 일가는 큰 타격을 입겠죠? 물론 약까지 생산한다면 선우 일가 회복약의 명예도 실추될 거예요. 어쨌거나 선우 일가에게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겠죠. 아영 씨는 당연히 선우 일가를 지키고 싶겠죠? 그렇다면 지금 선택권을 줄 테니까 저랑 함께한다면 절대로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백아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눈앞의 민우진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낯설었다.그동안 친한 줄 알았던 친구가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 같았다.그녀는 고통에 목이 메었다.“우진 씨, 왜 그래요? 정녕 거래로 감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이유 불문하고 억지로 함께한다고 해도 행복하기는커녕 오로지 고통뿐이죠. 우린 친구잖아요? 우진 씨에게 상처 줄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우선 진정해볼래요?”그를 배려하는 백아영의 모습을 보자 민우진은 왠지 모르게 더 화가 났다.성무열도 협박해서 그녀를 얻게 된 셈인데 왜 자신과 함께하면 오로지 고통뿐이라고 하는 거지?결국은 그녀에게 너무 잘해줘서 마음이 약한 본인 탓이지 않은가!“싫다는 거네요. 그렇다면 저도 행동을 개시할 수밖에 없어요.”민우진은 굳은 얼굴로 손을 뻗어 백아영을 붙잡으려고 했다.이 지경이 된 이상 만약 백아영이 함께하기로 한다면 그는 모든 걸 포기할 의향이 있었다. 그러나 거절한다면 무력을 행사해야만 했다.눈앞의 남자는 점점 더 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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