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231 - 챕터 240

916 챕터

제231화

“도련님, 연구 결과가 달라요.”리사는 믿기 힘들다는 듯 입을 열었고 제갈연준은 공개된 연구 결과를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강이나가 연구실에서 본 그 결과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건 제갈 일가의 연구를 업그레이드한 버전이었다!“이성준, 감히 내 연구 결과를 훔쳐?”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제갈연준은 이성준을 보며 화풀이했다.“훔쳤다고?”이성준은 비웃었다.“우리 연구실에 스파이를 보내 결과 빼돌린 건 제갈연준 당신이잖아!”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 표정이 바뀌었다.“알고 있었구나?”“이상한 가죽 하나 뒤집어쓰면 다 백아영이 되는 줄 알아?”어젯밤 그는 ‘백아영’의 목소리와 얼굴에 깜짝 놀란 것도 맞고, 그녀가 돌아왔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접근하자 ‘백아영’이 내뱉은 말과 그녀의 행동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엑스는 온갖 수모를 참으면서도 아이를 위해 제갈연준 곁에 남아있는 그런 사람이다. 정말 목숨이 위태로워져서 도망쳤다면 그를 처음 본 순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안전부터 확인했을 것이다.이상하다는 생각에 이성준은 ‘백아영’의 피를 뽑아 선우경진에게 건네줬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백아영이 아니었다!기쁨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가짜 백아영을 죽이고 싶었지만,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고 받은 만큼 돌려주기로 계략을 세웠다.제갈 일가로 하여금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착각하게끔 했고, 동시에 연구 결과를 수정해 뇌 연구 프로젝트를 따냈다.“백아영이 가짜라는 건 그렇다고 쳐, 연구 결과는 도대체 어떻게 빼돌린 거야?”제갈연준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지금껏 목숨을 바칠 정도의 충성심을 보이는 사람들로만 선별했고, 목숨이든 치명적인 약점이든 모두 제갈연준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연구실 안의 그 누구도 감히 배신할 수 없었다.“내가 줬어.”백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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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그의 말에 이성준은 손목을 들어 자신의 시계를 확인했고 동시에 백아영이 차고 있던 은색의 팔찌에서 ‘띠딕’ 소리가 들려왔다. 폭탄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날 배신한 대가는 죽음이야!”백아영은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시한 폭탄에는 4:59이라고 떠 있었다.이제 5분도 안 남았다.잠깐의 두려움을 끝으로 그녀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 대회장에서 민우진을 보지 못했을 때 백아영은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다.“성준아.”백아영은 간절한 눈빛으로 이성준을 바라봤다.“난 얼마 못 살 것 같으니까 내 아이 좀 돌봐줄 수 있어? 정말 말도 안 되는 부탁이긴 하지만 나도 이제 어쩔 수가 없네.”이제 다른 사람인 척 연기를 안 해도 되니 백아영은 마음 편히 말했다. 예전과는 다른 요염하고 매혹적인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 속에서는 여전히 청순함과 순수함이 느껴졌다.이성준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고 설렘을 느끼는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백아영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팔찌를 바라보며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처리해!”이성준이 내뱉은 말에서 싸늘함이 느껴졌다.“죽여!”곧바로 대회장 사방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이 수백 명이 몰려오더니 제갈연준을 향해 사납게 돌진했고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제갈연준은 이성준이 뇌 연구 프로젝트의 규칙을 무시한 채 이곳에서 손을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기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입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그러나 경호원들은 일찌감치 입구를 막았고 그렇게 양측을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혼란스러운 장면을 지켜보던 백아영은 마음이 착잡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제갈연준같이 세상에 해로운 존재는 죽는 게 맞아.”그녀는 말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창가로 걸어갔다.13층에 달하는 아득한 높이에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곧 터질듯한 시한 폭탄을 보며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죄없는 사람까지 해칠 수는 없었기에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성준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내 아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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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이성준이 폭탄을 제거할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백아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놀라움과 별개로 걱정이 더 앞섰다.“4분밖에 안 남았어.”팔찌로 만들어진 폭탄은 일반 폭탄에 비해 훨씬 정교했기에 해체하는 것도 수십 배 어려웠다. 그것도 짧은 시간에 해체하는 건...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이성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엄숙한 표정으로 직접 손을 쓰기 시작하더니 재빨리 팔찌 표면을 떼어냈고 곧이어 안에 들어있던 폭탄이 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폭탄을 이대로 제거하는 순간 터질 게 분명했다.“그거 한번 작동하면 제거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특수 제작한 폭탄이야. 폭발이 유일한 방법이지.”제갈연준은 경호원에게 이끌려 가는 와중에도 비아냥을 멈출 수가 없었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며 원망했다.“백아영, 내가 말했지! 날 배신하는 순간 죽음뿐이라고!”그녀는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지난 몇 년간 제갈연준과 함께 지내면서 그가 얼마나 변태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악마인지 알고 있었기에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게 의외는 아니었다.제갈연준은 자신이 갖지 못하는 건 무조건 파괴하는 미친놈이었다.1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보며 백아영은 애써 웃음 지으며 이성준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겼다.“성준아, 고마운데 이제 그만해. 얼른 가, 너까지 다치게 만들고 싶지 않아.”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며 이성준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제갈연준의 말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그의 손은 멈출 줄 몰랐고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성준아.”그런 이성준의 모습에 백아영도 당황하기 시작했다.지난 몇 년 동안의 삶은 죽는 것보다 더 고달팠고, 이제 죽음이라는 결말을 맺어야 할 때가 왔다. 비록 두렵고 겁났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특히나 이성준한테는 더 싫었다.“폭탄은 제거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이제 포기하고 그만해. 얼른 가라고, 진짜 시간 얼마 안 남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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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민우진은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고함을 질렀고, 폭탄의 카운트다운 소리는 마치 머리 위에 매달린 작두처럼 느껴져 금방이라도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았다.눈물로 눈앞이 흐려진 백아영은 가슴이 쓰라렸다.“성준아! 얼른 가!”백아영의 말투는 단호했다.“우리 아무 사이 아니잖아. 굳이 나랑 같이 죽을 필요 없어.”이성준의 진심이 듣고 싶었지만 더 이상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이성준을 밀어냈다.폭탄 제거에 집중하고 있었던 이성준은 방심한 채로 뒤로 물러났고 그 틈을 타 백아영은 재빨리 창가로 달려가 한쪽 발을 내디뎠다.이제 5초밖에 안 남았다.“성준아, 안녕.”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백아영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창밖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중심을 잃으려던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끌어당기며 품 안에 안았다.백아영은 쇠붙이처럼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고 눈을 떠보니 이성준이 싸늘한 시선과 분노에 찬 얼굴이 보였다.“너 미쳤어? 왜 같이 죽으려고 하는 건데!”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이성준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손을 뻗어 백아영을 잡았다.머릿속에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더 이상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띠익-카운트다운 소리는 더 날카롭게 들려왔고 이제 3초밖에 안 남았다.두려움에 질린 백아영은 격렬한 몸부림을 치며 이성준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백아영을 꽉 껴안았다.정말로 미친 것 같았다!“백아영, 이대로 떠날 생각 하지 마. 나한테 빚진 거 갚아야지!”이제 2초밖에 안 남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안더니 대회장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의 행동에 깜짝 놀란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사람 많은 대회장으로 향하는 이성준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죽으려면 혼자 죽지! 정말 미쳤어!’띠익-마지막 1초를 남긴 백아영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눈을 감았고, 순간 바로 앞에서 끙끙대는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이성준이 누군가를 걷어차 넘어뜨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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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백아영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이성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설명했다.“아까 널 끌어당기면서 제갈연준이랑 가까워졌는데 그때 카운트다운이 조금 느려지는 걸 발견했어. 예전에 폭탄을 제거했던 경험이 있어서 확신할 수 있었지.”백아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정신없는 와중에 카운트다운이 느려져봤자 고작 0.001초일 텐데, 그걸 발견한 이성준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감탄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백아영의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우리 이제 돌아가자.”백아영은 이 상황이 믿지 않아 주춤했다. 4년 동안 감금을 당하면서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고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마침내 악마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그래!”백아영은 행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이성준과 함께 떠나려던 찰나 경호원에게 붙잡혀 있던 제갈연준이 손을 썼다.그를 잡고 있던 경호원은 순식간에 중독되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았고 제갈연준은 날카로운 칼을 든 채 이성준을 향해 달려왔다.“죽어!”그는 독사처럼 악랄하고 사악했다.이성준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백아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막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그러나 이성준은 백아영보다 훨씬 빨랐고 앞을 가로막았을 때 다시 그녀를 끌어안으며 반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날카로운 칼은 그의 등을 찔렀다.백아영은 순간 온몸이 저렸고 폭탄이 터질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숨막혔다.“이성준!”얼굴이 하얗게 질린 와중에도 그는 백아영을 위로하고 있었다.“괜찮아.”“제갈연준!”분노하는 소리와 함께 선우경진이 달려들었고 그들은 제갈연준을 바닥에 눕힌 채 기절할 정도로 사정없이 때렸다. “아영 씨, 괜찮아요?”민우진은 재빨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고 걱정되는 듯 물었다.다행히 백아영은 다치지 않았지만 이성준은...너무 걱정된 나머지 백아영은 목소리마저 떨고 있었다.“일단 좀 봐봐.”제갈연준이 직접 손을 썼다는 건 100% 맹독이다.이성준은 창백해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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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벗겨낼 수 있는 거야?”이성준의 질문에 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이성준은 갑자기 손을 내밀었고 백아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뭐 하는 거야?”“이 얼굴은 너무 못생겨서 거슬려.”그의 말에 백아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얼굴이 훨씬 정교하고 예쁜 미인상에 가까웠는데 못생겼다는 이성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눈이 잘못된 건가? 이게 안 예쁘다고?’백아영이 생각에 잠긴 틈을 타 이성준은 그녀의 가짜 얼굴을 조금씩 떼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아영은 진짜 본모습을 드러냈다.혈색 없이 창백한 얼굴에서는 여전히 청순함이 느껴졌고 심쿵한 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게 웃는 이성준의 모습에 백아영은 정신을 못 차렸다.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왜 웃어?”이성준은 그녀를 바라봤다.“좋아서.”다쳤는데도 기분이 좋다는 이성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설마 머리를 다친 건가?’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백아영은 곧바로 물었다.“성준아, 내 아들은 지금 어딨어?”“오는 중이야. 내일이면 도착할 거야.”3년 동안 가슴에만 품고 있었던 아들을 드디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백아영은 코끝이 찡해졌고 손꼽아 내일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차는 어느덧 이성준과 백아영이 살았던 별장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백아영은 멍하니 낯익은 집을 바라봤고 추억이 마치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드디어 인간 세상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감개무량하면서 긴장이 풀렸다.백아영은 이성준을 부축한 채 별장에 들어섰고, 선우경진은 정신 잃은 제갈연준을 등에 업고 뒤를 바짝 따라갔다.별장에 들어서자 익숙한 인테리어와 함께 뚱보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아줌마는 여전히 인자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고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사모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사모님이라는 호칭에 백아영을 몸 둘 바를 몰랐다.하지만 오랜만에 만나 눈물을 글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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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이성준은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그윽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입술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백아영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민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영 씨!”백아영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고 수줍은 듯 얼굴이 붉어졌다.“우... 우진 도련님.”백아영은 부끄러워 차마 이성준을 바라볼 수 없었다.“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방금 일어난 일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민우진은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 찼지만, 꾹 참고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그는 성큼성큼 백아영에게 다가가더니 부드럽게 말했다.“걱정돼서 따라왔어요. 이성준한테 약 발라주려고요?”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남녀 사이에 그러는 건 불편하니까 제가 대신 할게요.”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한 백아영은 심장이 진정될 줄 몰랐고, 민우진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성준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귀찮게 그럴 필요 없어. 난 다른 사람이 해주는 건 불편하거든.”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민우진의 표정도 좋지만은 않았다.부상을 명분으로 백아영에게 접근하려는 그의 모습이 달갑지 않았던 민우진은 시선을 돌려 선우경진을 바라봤다.“선우 도련님처럼 친분 있고 의술 좋은 사람이 치료해 주는 건 싫어하지 않겠지?”마침 제갈연준에게 수갑을 다 채운 선우경진은 고개를 들어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알아챘다.민우진 뿐만 아니라 그 역시도 이성준과 백아영이 가까워지는 게 신경 쓰였기에 곧바로 앞으로 나가 약을 들었다.“제가 할게요.”이성준의 표정은 또다시 어두워졌고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이 진정된 백아영은 몰래 이성준을 훔쳐봤고 표정이 안 좋은 그의 모습에 상처가 많이 아픈가 싶어 걱정이 앞섰다.민우진은 일부러 그녀와 이성준 사이에 끼어들어 시선을 차단했고, 고개를 숙인 채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영 씨,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며칠 동안 많은 일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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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화가 난 민우진은 표정이 일그러졌다.이성준이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당장 백아영을 데려갈 수 없었던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아영 씨, 폭탄 제거하는 방법을 제가 꼭 찾을게요. 이건 제 핸드폰이에요.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요.”이성준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곳까지 매번 찾으러 올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백아영은 핸드폰을 건네받았고 이성준은 그녀의 손에 있는 핸드폰을 한참 노려보다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졸려.”그는 곧바로 손을 들어 불을 껐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방안에서 백아영은 그저 멍하니 침대 옆에 서 있었다.혼자라면 어둠 속에서도 밖으로 나갈 수 있었겠지만 제갈연준과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 되는 상황에 하필 그는 정신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어떡하지?’망설이는 동안 이성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침대 위로 끌어당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자.”백아영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거절할 겨를도 없이 이성준은 말을 이었다.“새벽에 혹시라도 아프면 어떡해. 지금은 널 찾으러 갈 힘조차 없어.”자신을 위해 칼을 맞은 이성준을 생각하며 그녀는 죄책감을 느꼈고 마음이 약해졌다.“그래. 오늘 밤은 여기 있을게.”그때 선우경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남녀 단둘이 같이 자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제갈 연준은 사람이 아닌가요?”이성준은 그의 말에 반박했고 마음 같아서는 그들 모두 내쫓아 백아영과 단둘이 있고 싶었다.“그래도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안 되죠.”어렵게 찾은 선우 일가의 보물이었기에 쉽사리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럼 밤새 여기 앉아있으라고 할까요?”선우경진은 말문이 막혔다. 뇌 연구 프로젝트 때문에 5일동안 맘 편히 쉬지도 못하고 고생했을 백아영을 생각하면 밤새 앉아있으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고 선우경진도 그걸 원하지는 않았다.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그럼, 저도 오늘 여기 있을게요.”이성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그러시든가.”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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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백아영은 순식간에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고 막 일어나려던 순간에 이성준이 눈을 떴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듯한 어색한 분위기를 풍겼다.백아영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그게,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좋은 아침.”이성준은 목이 잠긴 듯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고 마치 첼로의 G 음율처럼 짙고 감미로웠다.순간 정신이 멍해진 백아영은 심장이 마구 뛰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운 이성준의 모습에 비하면 그녀의 당황스러움은 터무니없어 보였다.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간신히 입을 열었고 뻣뻣하게 몸을 일으켰다.“좋은 아침.”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성준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아침 뭐 먹고 싶어?”자연스러운 그의 말투는 마치 신혼부부를 연상케 했고 백아영은 어색한 듯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아무거나.”얼마 지나지 않아 뚱보 아줌마는 아침을 가져다주었고, 소파에서 하룻밤을 잤던 선우경진도 눈을 떴다.그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더니 그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식사하던 중 선우경진은 착잡한 눈빛으로 줄곧 백아영을 응시했고 불편함을 느낀 그녀는 입을 열었다.“도련님, 저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는 건가요?”눈이 반짝였던 선우경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비로소 천천히 입을 열었다.“신분과 관련된 일이야.”백아영은 멈칫했다. 4년 전, 그녀는 가족을 찾으려다가 선우 일가를 건드리게 되었고 그러다가 ‘가짜 엄마’ 허수빈까지 등장했다.결국 제갈연준에게 붙잡혀 4년 동안 고문당한 것도 모두 이 일 때문이었고, 그녀가 만약 가족을 찾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백아영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허수빈이 친엄마가 아닌 건 저도 알고 있어요. 이제 더 이상 가족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네요. 저에게는 아들이라는 가족 한 명이면 충분하고 그냥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도련님의 호의는 너무 고마운데 제 신분에 대해서는 말씀 안 하셔도 돼요.”백채영을 착각하지 않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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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더 이상 선우 가문의 인재를 찾는 건 큰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일은 못 들은 거로 할게요.”생각지도 못한 백아영의 반응에 선우경진은 자리에 얼어붙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백아영의 차분함은 예상을 뛰어넘었고 그 어떤 불평불만 심지어 기대조차 없는 모습은 신우 일가를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백아영은 이 혈연 관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아영아, 미안해. 다 우리 잘못이야.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 매달리지는 않을게.”선우경진은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할아버지가 맹독에 중독된 후부터 몸이 쇠약해지고 있어. 날이 갈수록 증상도 심해져서 이제 약들은 전부 무용지물이야.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선우경진은 울먹이며 애원했다.“널 만나고 싶다는 게 할아버지의 소원이었어. 아영아, 한 번만 만나주면 안 될까?”물처럼 잔잔하던 마음이라는 호수에 갑자기 파도가 일었다.물론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은 단 하나도 없었다. 기억 속의 선우소훈은 백채영을 편애하는 노인이었고 그녀에게 수많은 억울함을 안겨다 준 사람에 불과했다.하지만 그가 인자한 마음으로 처벌을 미룬 덕분에 아이를 지킬 수 있게 되어 백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이 일이 끝나면 한번 찾아뵐게요. 그런데...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요.”소원을 들어주는 백아영의 모습에 선우경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마워, 아영아!”...이성준의 부탁으로 백아영은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채 그를 돌봤고 이성준도 틈만 나면 폭탄 제거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비록 목숨이 아직 손목에 달려있었지만 홀가분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적어도 백채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백채영이 나타났을 때 백아영은 이성준에게 약을 먹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백채영은 미친 듯이 달려들더니 그릇과 수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쿵’하는 소리와 함께 약은 바닥에 전부 쏟아졌다.“백아영, 너일 줄 알았어! 이 천한 년아! 돌아오자마자 내 남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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