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영은 백승구를 데리고 이씨 가문을 떠났다.별장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급차 한 대가 그녀의 곁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자 민우진이 안에서 내렸다.연회색 슈트를 차려입은 그는 얼굴이 초췌하고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는데, 누가 봐도 그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모습이었다.그러나 백아영을 발견한 순간 눈빛이 반짝이더니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아영 씨, 드디어 나왔군요!”민우진은 남원에 있는 백아영의 유일한 친구였다. 무일푼으로 백승구까지 데리고 이씨 가문에서 나온 이상 한밤중에 길거리를 떠돌 수 없는지라 민우진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청했다.“이 아이가 승구예요? 너무 귀여운데요?”민우진이 다정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깜짝 놀란 백승구는 잽싸게 백아영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백아영이 서둘러 말했다.“저랑도 친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낯선 사람을 두려워해요.”민우진은 허공에 멈춰선 팔을 다시 내리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며칠 지나면 금방 친해질 거예요.”그동안 백아영이 가끔 민우진과 문자를 주고받은 덕분에 그는 백아영의 근황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민우진은 모자를 데리고 한 아파트로 향했다.“며칠 전에 내가 대신 계약한 집인데 환경도 좋고 조용하고 월세도 비싸지 않아서 두 사람이 살기 딱 좋죠.”원래 그는 백아영을 자신이 사는 별장으로 데려가거나 그가 살던 집에서 지내게 하려고 했지만, 백아영의 성격으로 너무 많이 퍼주면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해서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나름대로 배려한다고 그가 대신 계약했다고 말했다.덕분에 백아영도 심리적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우진 도련님,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정말 고마워요.”“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이 필요할까요?”민우진은 백아영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집은 거실이 달린 투룸 구조로서 인테리어도 깔끔했고, 아기자기한 장식품과 어린이 장난감이 가득했는데 마치 평범한 가정집처럼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
Last Updated : 2023-10-0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