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이현무는 흥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아줌마, 설마 승구 형도 여기 다녀요? 정말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앞으로 매일매일 볼 수 있겠네요!”물론 그렇긴 하다만...이현무를 만나게 되어서 백아영은 진심으로 기뻤다.그러나 머뭇거리며 이성준의 눈치를 살폈다. 며칠 만에 보는 남자는 주위에 마치 보이지 않은 얼음벽으로 둘러싸인 듯 유난히 낯설었다.두 사람의 관계는 우주의 행성처럼 멀게만 느껴졌다.한참을 망설이다가 백아영은 어색하게 입을 열고 횡설수설했다.“성준아, 정말 현무를 여기로 전학시키려는 거야?”어쨌거나 평범한 유치원에 불과한지라 귀족 학교와 비교할 바가 안 되었다.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쌀쌀맞게 말했다.“안 돼?”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말투에 백아영은 오싹한 느낌이 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안, 안 될 건 없지?”이성준은 무심한 눈빛으로 백아영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이현무를 힐긋 쳐다보더니 인내심이 바닥난 듯 말했다.“혼자 갈 수 있지?”말을 마치고는 긴 다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걸어갔다.백아영은 어이가 없었다. 이현무는 오늘 등원 첫날일 텐데 고작 세 살짜리 아이한테 혼자서 교실을 찾아가라니?역시 아버지한테 육아를 맡기면 믿을 만한 게 안 되었다.“현무야, 네가 어느 반에 다니는지 알아?”백아영은 이현무를 데려다주려고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그는 야무진 얼굴로 대답했다.“유아반 하얀반이요!”“승구랑 같은 반이네?”백아영은 깜짝 놀라면서 속으로 이런 우연이 있냐고 생각했다.“앞으로 둘이 같은 반 친구가 되겠구나!”“아줌마, 이제부터 승구 형이랑 친하게 지낼게요. 형을 지켜주고 챙겨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이현무는 진지한 얼굴로 호언장담했다. 유치원에 오기 전부터 아빠는 백승구가 몸이 불편하니 잘 돌보라고 하지 않았는가?이현무의 듬직한 모습에 백아영은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이내 다정한 손길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현무는 왜 이렇게 착해? 승구야, 너도 현무랑 잘 지내면서 서로 챙겨줘야 해.”
찢긴 교복은 이현무의 몸에 걸려있었고 예쁘고 하얀 얼굴에는 피 묻은 손톱자국과 멍이 남아있었다.“현무야...”목이 메인 백아영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현무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붙잡고 물었다.“아파?”이현무는 백아영을 바라보며 서러움을 삼키고는 씩씩하게 고개를 저었다.“안 아파요.”그의 모습에 더 괴로워진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현무야, 미안해. 내가 승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네가 이런 괴롭힘을 당한 것 같네.”말을 이어가던 백아영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백승구를 바라봤다.교복이 지저분한 것 외에는 무표정한 모습이 평소와 다름없었고 사람을 때린 것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백아영은 화가 치밀어올랐다.“백승구, 현무 왜 때렸어?”그는 입술을 깨문 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치 감정을 못 느끼는 목각인형이라도 된 듯 자신의 세계에 잠겨 모든 사람을 적대시했다.그러나 지금 현무가 다쳤고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더 싫었던 백아영은 싸늘하고 단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말해! 당장!”백아영이 지금처럼 화내는 걸 처음 본 백승구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고 눈에서는 두려움이 느껴졌다.이내 몸을 돌려 모퉁이로 달려가더니 쪼그려 앉아 벌벌 떨며 경계에 찬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처음 만났을 때의 불쌍한 모습이 떠오른 그녀는 순간 심장이 뭔가에 찔린 듯 아팠다.“아영 씨, 너무 혼내지는 마요.”민우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재빨리 달려왔다.“이제야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는데 이렇게 혼낸다면 모든 게 무용지물로 돌아갈 거예요. 또 다시 아영 씨를 두려워할 수도 있어요.”민씨 가문의 새 약국은 바로 옆 거리에 있었다. 두 곳은 서로 사이가 좋았고 사적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던 덕분에 백아영이 휴가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따라올 수 있었다.민우진의 말에 백아영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3년 동안 제갈연준에게 학대당하며 많은 고통을 겪은 백승구한테 빚졌다는 생각에 사랑으로
백승구가 현무를 다치게 했으니 그 어떤 벌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현무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잖아. 때리든 벌을 주든 마음대로 해.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자.”“현무는 내 아들이야. 상처를 치료하든 말든 너랑 아무 상관 없다고!”백채영은 무자비하게 이현무를 끌어갔고 그는 몸부림치며 저항했다.“저 안 갈래요...”아직 키가 작고 어린 탓에 몸부림쳐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그 모습이 백채영을 화나게 만들었다.“야, 맞고 싶어?”험악한 표정인 백채영한테서 모성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잔인함과 공포가 가득했다.겁에 질린 이현무는 몸을 벌벌 떨었지만 백채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를 번쩍 안아 올렸고 가엾은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하게 밖으로 나갔다.“현무야!”백아영은 걱정이 되어 막으려고 쫓아갔지만, 학교 경비원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그녀를 막았다. 어찌 됐든 이현무는 백채영의 아이이고 그녀는 ‘가해자’의 부모였다.민우진은 그녀를 위로했다.“짐승도 제 새끼 귀한 줄 안다고 그래도 현무 엄마인데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마음이 심란해진 백아영은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백채영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에요.”백채영이 그동안 이현무에게 가했던 학대들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이대로 이현무를 다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백아영은 재빨리 이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회의실.이성준은 메인석에 앉아있었다. 순간 옆에 놓인 핸드폰이 켜지더니 백아영의 전화가 걸려 왔고 백아영이라는 세글자를 본 그는 동공이 흔들렸다.그동안 백아영한테서 먼저 전화가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알 수 없는 감정이 스친 이성준은 재빨리 손을 들어 업무 보고하던 임원들을 제지했고, 쥐 죽은 듯 조용해진 현장에 수백 명의 직원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성준을 바라봤다.‘무슨 일 있나? 왜 갑자기 회의를 멈추신 거지?’직원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핸드폰을 손에 넣은 이성준은 허스키하고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백채영은 피를 흘리는 이현무를 데리고 돌아와 눈물을 흘리더니 과장하며 말했다.이영철과 오미란이 화를 내며 당장 백아영을 잡아 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이영철은 그저 소파에 앉아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평소에 잘 챙겨주던 오미란마저도 지금은 이현무의 상처에만 관심을 두고 백아영에 대한 처벌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그들의 모습에 백채영은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백아영이 일부러 아들 시켜서 현무 때린 게 틀림없어요. 현무가 이렇게 다쳤는데 이번 일은 절대 넘어가면 안 돼요!”오미란은 붕대를 감은 이현무를 품에 안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백채영을 바라봤다.“넘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당연히 지금 바로 잡아 와야죠! 현무가 당한 10배 아니 100배를 돌려줄 거예요! 자식 잘못 가르친 건 백아영이니 이 또한 전부 감당해야죠!”백아영이 벌을 받는 것보다 이씨 가문에서 그녀를 증오하게 만들고 싶었던 백채영은 흥분하며 말했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이현무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승구 형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영 아줌마 절대 다치게 하지 마세요. 제발요.”백채영은 죽일듯한 눈빛으로 이현무를 노려봤다.“닥쳐!”“닥쳐야 하는 건 너야!”오미란은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현무도 백아영의 보살핌에 감사할 줄 알고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데 너는 어쩜 이러니? 질투로 가득 차서 어떻게 백아영을 괴롭힐지만 생각하고 4년 전에 널 구해준 사람이 누군지는 잊었나 봐? 백아영 아니었으면 네가 지금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모두 백아영한테 목숨 하나 빚지고 있어! 오늘 일은 백아영이 의도적으로 사주한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생명의 은인을 절대 해치지 않을 거야!”백아영의 편을 들어주며 그녀를 감싸는 오미란의 모습에 백채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던 그때 이성준이 밖에서 걸어왔고 그녀는 갑자기 눈이 번
백아영은 본가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성준이 이현무를 데리고 떠났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재빨리 이성준의 별장으로 향했다.경비원과 경호원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고 뚱보 아줌마는 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다.“사모님, 오셨네요.”매번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어색함에 백아영은 몸 둘 바를 몰랐다. “현무는요?”“잠들었어.”뚱보 아줌마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남자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왔다.이성준은 회색 셔츠를 입고 계단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잘생긴 얼굴에는 서늘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그의 모습에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고 현무가 맞았다는 사실에 무조건 화가 났을 이성준을 보며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내가 좀 봐도 될까?”이성준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안을 뒤덮은 정적에 백아영은 마음이 조급해서 몸 둘 바를 몰랐고 초조한 듯 손을 뜯었다.“미안해... 내가 승구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현무가 다쳤어. 내일 승구 데리고 전학 갈게.”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전학 보내는 게 네가 이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야?”이거 외에는 이현무의 마음을 달랠 방법을 찾지 못했다.“현무가 뭘 원하는지 정말 몰라?”이성준은 긴 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왔고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함과 분노로 가득했다.“백아영, 넌 도망칠 줄밖에 모르지?”백아영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고 순간 머릿속에는 기쁨으로 가득 찬 이현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현무는 그녀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가슴이 쓰라린 듯 코끝이 찡해진 백아영은 목이 메여 괴로워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때 이성준이 옆으로 다가와 절제된 목소리로 속삭였다.“정말 죄책감이 든다면 오늘 밤 나 대신 현무랑 있어 줘. 아마 제대로 못 잘 거야.”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현무가 다친 게 나랑 연관 있을 수도 있는데 오늘 밤에 같이 자라고? 이 정도로 날 믿는 거야?’“성준아...”
그것은 백아영에게 다시 용기를 주었고 현실은 도망치는 것보다 마주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성준은 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차를 멈췄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별장을 바라봤다.위정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사장님, 사모님이 모처럼 돌아왔는데 왜 별장에 함께 머물지 않는 거죠?”조용하고 깊은 밤에 함께 있는 건 감정을 북돋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다.이성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불편해하잖아.”이성준 앞에서 백아영은 줄곧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백승구 한번 조사해 봐. 보통 아이가 아니야.”...백씨 일가.돌아온 백채영은 테이블을 뒤집으며 화를 냈고 분이 풀리기도 전에 리사가 나와서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힘이 너무 센 탓에 백채영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리사, 네가 감히 날 때려?! 미쳤어?”백채영은 분노의 고함을 지르며 리사를 때리려고 했지만, 일어나기도 전에 리사에게 어깨를 짓밟혔고 뼈를 부러뜨릴 기세로 힘을 주자 백채영은 고통에 몸부림쳤다.리사는 거만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백채영을 내려봤다.“백채영, 너 죽고 싶어?”소름 끼치는 공포감에 모골이 송연해진 백채영은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겁에 질린 눈으로 리사를 바라봤고 그녀는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누가 유치원에 가래? 너 때문에 계획을 망칠뻔했잖아! 다시 한번 내 일을 망치면 죽여버릴 거야.”백채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몸을 벌벌 떨었고 리사를 남겨두고 그녀를 건드린 걸 후회했다.“유치원에 간 건 백아영을 괴롭히려고 했던 것뿐인데 어떻게 계획에 영향을 줬다는 거야? 무슨 계획을 하고 있는 건데?”“알 필요 없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다시 한번 마음대로 행동하면...”리사는 있는 힘껏 그녀의 어깨를 짓밟았다.“아!”백채영은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질렀다....백아영은 이현무와 함께 하룻밤을 보냈고 날이 밝을 무렵에 이성준이 돌아오자 자리를 떴다.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거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민우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렸을 때부터 안 좋은 환경에서 자란 탓에 모든 것에 경계심이 있어요. 아영 씨는 유일하게 잘 대해주는 사람이고 심지어 혈연관계까지 있으니 아마 의지하고 소유하고 싶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뺏길까 봐 무서운 거죠.”이현무를 좋아하는 백아영의 모습에 백승구는 질투심이 생겨 그를 때렸다. 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인데 극도로 불안한 상태인 백승구는 더할 나위 없었다.백아영은 설명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꼈다. 지금껏 이현무와 백승구가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길 원했지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줄은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그녀의 소홀함으로 두 아이가 동시에 상처받았다.“아영 씨, 승구를 위해서라도 이현무는 멀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백아영이 이현무를 멀리한다면 최대의 라이벌인 이성준도 멀리할 수 있기에 민우진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조언을 건넸다.그녀 역시도 같은 생각이 들었고, 상처 주지 않도록 백승구를 전학시키려고 했으나 어젯밤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자는 이현무의 모습이 떠올라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백아영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고개를 저었고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지금은 상대가 현무겠지만 나중에는 제 주변의 누구라도 될 수 있어요.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승구가 깨달을 수 있게 교육해야죠. 현무를 받아들일 수 있게 타이르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가르쳐줄 거예요.”이건 백승구를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드는 첫 걸음이기도 하다.백아영은 그의 방으로 다가갔고 백승구는 이미 일어나 스스로 씻은 뒤 교복을 입고 있었다.그녀를 본 백승구는 뒤로 물러나더니 작은 몸을 벽에 기댔고 눈빛에서는 두려움과 불안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어제 호통친 탓에 겁을 먹은 듯싶다.백아영은 괴로웠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단호한 표정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은 채 그의 두 눈을 바라봤다.“승구야, 뭘 잘못했는지 알겠어?”백승구는 입술을 깨물고 꼿꼿이 선 채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돌아온
이현무의 얼굴에는 여전히 반창고가 붙어있었지만 어젯밤보다 한결 좋아진 모습이었다.여전히 반짝이는 두 눈으로 환하게 웃는 백아영의 모습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녀의 허벅지를 껴안고 싶었으나 백승구가 생각났던 이현무는 다시 주눅 들어 자리에 멈춰 섰다.다가가고 싶은데 차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백아영은 백승구의 손은 잡고 그들 앞으로 갔다.“승구도 이제 잘못을 깨달았어. 앞으로 현무랑 사이좋게 지내기로 나랑 약속했어.”“정말요?”이현무는 기뻐하며 백승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승구 형.”백승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작은 손을 보며 표정이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고 이현무의 기대에 찬 모습도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자신의 아들이 무던한 성격이란 걸 백아영도 알고 있었다. 잘 지내겠다고 약속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을 걸 예상하고 설명을 덧붙이려던 그때 백승구가 손을 내밀었다!그렇게 두 손을 맞잡았다!이현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승구 형이 드디어 저랑 친구 한대요.”조마조마했던 백아영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녀는 백승구가 친구를 사귀었다는 게 너무 뿌듯했고 점점 나아지는 모습에 위로를 얻었다.이 모습이 지속된다면 이제 유치원과 친구들에게 녹아들 것이고 평범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면서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게 된다.백아영은 두 아이를 교실로 보냈고 아이들을 타이른 뒤 곧바로 유치원 담임 선생님이 밖으로 나왔다.“승구 어머니, 두 아이를 화해시킬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요. 과묵한 승구한테 어쩌면 활발한 현무가 마음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담임 선생님은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이성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작은 제안이 있는데... 여건이 허락한다면 두 아이가 사적으로도 많이 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을 거예요.”고개를 들자 이성준과 시선이 마주쳤고 불편한 마음에 거절하려고 입을 열려던 찰나 이성준이 침착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뭘 알았다는 거지?’그 시각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