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111 - 챕터 120

916 챕터

제111화

백채영과 오미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VVIP 병동까지 걸어갔다.병실 밖에 숨어 훔쳐보던 뚱보 아줌마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서둘러 핸드폰을 끄고 화장실로 숨었다.백채영은 재빨리 병실 문을 열어 오미란을 데리고 들어왔다.병실 문을 열어보니 옷차림이 단정해야 할 이성준이 상반신을 벗고 있었고 그 앞에는 백아영이 앉아 있었다.‘치료가 아직 안 끝났나?!’백채영은 너무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긴장됐다. 그러나 모든 걸 직접 목격한 오미란에게 변명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어쩔 줄 몰라 하던 백채영은 황급히 핑계를 대려고 했다.“어머님, 제가 다 설명할게요...”“너희 지금 뭐 하는 짓이야!”백채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미란은 화가 나서 호통을 쳤고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백아영, 넌 정말 뻔뻔하구나. 병원까지 와서 성준이한테 치근덕대고 싶니?”백채영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한참 서 있더니 순간 눈빛이 악독하게 변했다.그녀는 그제야 침을 뽑고 상처를 싸맨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백아영이 이성준에게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모습은 마치 미심쩍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장면이었다.백채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꼈다.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 화가 치밀어오른 오미란은 달려가 백아영을 침대 곁에서 끌어 내리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넌 왜 이렇게 염치가 없니? 이혼한 마당에 성준이한테 매달리고 싶어? 부끄럽지도 않니? 성준이는 채영이랑 결혼할 사람이고 곧 아이 아빠가 될 사람이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야만 속이 후련하니?”오미란은 네일아트를 한 긴 손톱으로 백아영을 잡았고 너무 세게 잡은 나머지 피부가 찢길 정도였다.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붓는 그녀의 모습에 백아영은 울화가 치밀었다.“사모님, 자초지종을 정확히 알고 말씀하세요. 전 치료를 해주고 있었을 뿐이고 생각하시는 그런 일 따윈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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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성준은 침대에서 내려왔다.마침 뚱보 아줌마가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백아영을 부축하며 오미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사모님, 정말 아영 씨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도련님한테 침놓는 걸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오미란은 노발대발하며 입을 열었다.“아주머니까지 이제 절 속이시는 거예요?”“제가 어떻게 감히 사모님을 속이겠어요.”뚱보 아줌마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백아영을 보며 이를 악물더니 핸드폰을 오미란에게 건네줬다.“직접 확인해 보세요.”핸드폰에서는 동영상이 재생됐고 그 안에는 방금 백아영이 이성준에게 침을 놓는 모습이 담겨있었다.충격에 빠진 오미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백채영한테 물었다.“네가 직접 성준이한테 침을 놓아주고 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백채영은 정신이 혼미했다. 뚱보 아줌마가 몰래 영상을 찍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오미란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 일의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니까 사고 당시 성준이를 구해준 사람이 네가 아니라 백아영이란 말이지! 넌 그저 자신이 한 것처럼 속이고 있었고!”오미란은 그녀를 이성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며 고마워하고 있었다. 싸늘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미안하게 생각했고 그 쌓인 감정을 풀어주려 애썼지만, 결과는 이러했다.“백채영, 내가 널 잘못 봤어. 이렇게 독한 애인 줄도 모르고 고쳐주길 바라고 있었다니!”질책과 혐오의 눈빛은 백채영을 난감하게 만들었고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도 좌불안석이었다.“저도 사정이 있는데...”“사정이 있으면 거짓말해도 돼? 백아영을 대신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더니 넌 양심에 찔리지도 않니?”억울해하는 백채영의 모습을 보고 짜증이 난 오미란은 문을 가리키며 내쫓았다.“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던 백채영은 증오의 감정이 가득한 채로 초라하게 자리를 떴다.백채영을 쫓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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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치료를 마친 백아영이 자리를 뜨려던 순간 뚱보 아줌마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고 그 모습에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사모님,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뚱보 아줌마는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영 씨가 도련님 치료해 주려고 어쩔 수 없이 선우 일가의 의술을 배웠는데 이걸 선우 일가에서 알게 된다면 분명히 벌을 받게 될 겁니다. 이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해도 될까요? 제가 마음대로 이 일을 털어놓았으니 저는 그 어떤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영 씨만은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이성준을 구하려다 백채영한테 꼬투리 잡인 채 그저 묵묵히 모든 억울함을 참고 있는 백아영의 모습에 오미란은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이 일은 선우 일가에 비밀로 할게요.”오미란은 뚱보 아줌마를 땅에서 일으켜 세웠고 한껏 부드럽고 상냥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성준을 구해준 은혜는 앞으로 평생 잊지 않고 갚을게. 나중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줘.”증오하는 사람을 대할 땐 한없이 차갑다가 은혜를 갚을 때는 진실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얘기하는 오미란이었다.백아영은 웃으며 인사를 나고선 자리를 떴다.그녀가 떠난 후에야 조용하던 이성준이 입을 열었다.“옥팔찌는 채영 씨한테 줬어요?”이 얘기를 꺼내자, 오미란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나 다름없었고 진정한 며느리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물려줄 정말 귀중한 물건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백채영에게 속아 넘어갔다.“넌 구해준 사람이 백아영인 걸 알면서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엄마가 속아서 쩔쩔매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었던 거야?”이성준은 그녀의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한마디도 다투지 않았다.“위정시켜서 가져오라고 할게요.”그의 행동에 오미란은 깜짝 놀라 몇 초 동안 멍해있었다.“이미 준 물건을 다시 돌려받겠다고? 설마 백채영이랑 결혼 안 할 생각이야?”이성준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그 사람은 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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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먼지털이개를 가져와 열심히 치웠다.화를 삼키며 일하는 백아영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좀 풀렸다.소파가 깨끗하게 정리되면 기름을 수영장에 부어 죽을 때까지 치우게 할 생각이었다!바로 그때 위정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예전에는 이씨 가문의 사람을 마주치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는데, 지금은 지은 죄가 있으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그러나 거짓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뱃속에 이성준의 아이를 임신했으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걸 예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되찾은 자신감으로 득의양양하게 위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위정은 소파를 치우고 있는 백아영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빛이 어두워졌다.‘어쩐지 사장님이 이곳으로 보내더라... 아영 씨 선우 일가에서 이런 괴롭힘을 당하며 지내고 계셨구나...’백채영에 대한 인상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채영 씨, 팔찌 가지러 왔습니다.”그녀는 깜짝 놀랐고 손목에 차고 있던 귀중한 팔찌를 보더니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이건 어머님이 저한테 주신 거예요. 이미 준 물건을 다시 돌려받으려는 게 무안하지도 않나 봐요?”“사모님이 팔찌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고 며느리로 인정된 사람에게만 물려줄 소중한 물건인데, 채영 씨는 며느리로 인정해 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위정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고 난감해진 백채영은 몸 둘 바를 몰랐다.위정은 계속하여 재촉했다.“채영 씨, 팔찌 돌려주세요.”물건을 돌려달라고 재촉하자 백채영은 점점 화가 났고 난처한 듯 괴로워하며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팔찌를 빼내 위정에게 던졌다.“이깟 물건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러는지. 저도 필요 없으니까 갖고 꺼져요!”눈치 빠른 위정은 재빨리 달려가 옥팔찌를 잡았다. 이씨 가문의 대물림 보물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는데 쉽게 부서지는 옥팔찌를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백채영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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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채영아, 이성준이 널 이렇게까지 속상하게 만들었는데 이 결혼 취소하는 게 어떄? 넌 선우 일가의 보물이란걸 잊지 마. 앞으로 좋은 남자 훨씬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야.”정말로 선우 일가의 핏줄이 맞다면 진지하게 선우경진의 제안을 고려해 봤을 텐데 하지만 그녀는 가짜였다.만약 이성준과 결혼하지 못한다면 선우 일가의 구성원으로도 남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게 뻔하다.“아무리 좋은 남자도 성준 씨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성준 씨와 결혼할 거예요.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빠 없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아요.”선우경진은 한숨을 내쉬었고 가슴이 아파졌다.“네가 기어코 결혼하고 싶다면 오빠도 말리지는 않을게. 우리 선우 일가 공주님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줘야지.”그는 싸늘한 눈길로 백아영을 바라봤다.“다른 사람은 오빠한테 맡기고 넌 마음 편히 신부가 될 준비해. 백아영이 너희 사이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내가 잘 처리할게.”선우경진은 겉보기에 상냥하고 부드러웠으나 선우소훈만큼 마음이 약하고 자비롭지 못했다.그가 손을 쓰게 된다면 백아영은 틀림없이 큰 고통을 받게 된다!백채영의 마음속은 고약한 심보로 가득 차 있었지만, 무고하다는 표정은 사람의 마음을 녹였다.“오빠, 정말 고마워요. 오빠 덕분에 마음이 좀 놓이네요.”그가 저지른 일들이 이성준한테 들킨다고 할지라도 그건 자신과 상관없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성준이 그걸 핑계 삼아 파혼을 주장하지도 못한다.그녀는 높은 곳에서 백아영이 한없이 처량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다음날 아침 백아영은 일찌감치 선우경진과 함께 집을 나섰다.비록 선우 일가의 도련님이지만, 그동안 의사 생활을 하며 여러 정보를 수집했고 웬만하면 외출할 때 혼자 운전하는 편이었다.그는 백아영과 함께 시내를 벗어나 외진 곳으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유럽식 캐슬이 보였다.불이 모두 켜져 있고 식물이 잘 가꿔진 거로 봤을 때 사람이 지내는 것 같았지만, 바닥에는 낙엽이 수두룩하게 쌓여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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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선우경진은 같은 의사로서 그녀의 이런 인품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더욱 잘 알 수 있었다.그러나 그런 인품이 백아영한테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비열하고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혼란스러워진 선우경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충고했다.“백아영, 잘 생각해 봐. 지금이 네가 도망갈 유일한 기회야.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런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거야.”의사로서의 사명감이 있더라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지금 도망가는 게 그녀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백아영은 고개를 저었다.“지금 도망간다면 없는 죄를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어요.”그녀는 이성준이 포대기의 진상을 조사하여 결백을 밝혀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선우경진은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백아영이 도우미로 일했던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죽기 살기로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그녀의 훌륭한 인품에 감동받은 것도 한순간 지금은 고집불통인 성격 때문에 화가 났다.“난 분명히 기회를 줬어. 들어가서 병에 걸려 죽더라도 날 탓하면 안 돼.”말을 마친 선우경진은 성큼성큼 캐슬을 향해 걸어갔고 백아영은 구급상자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은 캐슬안으로 들어갔고 안에서는 지독한 약 냄새가 풍겨왔다.캐슬안에는 수많은 방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방은 환자가 사망해 비어 있었다.생존한 사람들은 병약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약에 의지하며 간신히 목숨을 매달고 있었다. 명확한 치료법이 없는 한, 그들은 그저 죽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수년의 의사 생활을 했지만, 이런 잔혹한 상황을 마주하는 건 그녀 역시도 처음이었다.긴장된 백아영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런 병에 걸리게 된 거죠?”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키지 않으려고 모두 캐슬안에 남아 외부와는 단절된 그들의 모습에 의문이 생겼다.선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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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캐슬에서 나온 선우경진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돌아가는 길 내내 주춤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차를 별장 앞에 세우고서야 참지 못해 입을 열었다.“백아영, 넌 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어. 열심히 배운다면 앞으로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야.”선우경진은 그녀가 잘못된 길로 가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에 측은한 마음을 느꼈다.“네가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면 내가 할아버지께 사정해서 용서해 달라고 할 수 있어.”이전의 태도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다. 그의 도움이 필요 없었지만, 그녀를 도와 사정하겠다는 말에 예의상 정중하게 인사했다.“고마워요.”별장에 들어선 선우경진은 서재로 들어가 선우소훈을 찾았다.그는 캐슬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말했고, 전과 다른 태도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백아영이 전에 사칭했던 건 잠깐 눈이 멀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이제 그만 용서해 주시고 기회 한번 주는 건 어떨까요? 정말 보기 드문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인재입니다. 집에 갇혀 도우미 생활하는 건 인재를 낭비하는 거나 다름없고 계속된 채찍질로 손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면 큰일이에요.”선우소훈을 미간을 찌푸렸다.“그냥 내보내자는 뜻이야?”선우경진은 이 부탁이 사실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용서해도 저희한테는 아무런 손해가 없을 겁니다.”“경진아, 백아영이 채영이랑 어떤 관계인지 잊지 마. 그냥 이렇게 내보내면 채영이가 좋아하지 않을 거야.”선우소훈도 인재를 아끼는 편이었지만 그마저도 손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이 일은 내가 좀 더 생각해 볼 테니까 넌 이만 나가봐.”비록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지만 선우소훈도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더는 원래 방법으로 백아영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돌아서 서재를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 잔뜩 난 채로 백채영이 그를 찾아왔다.“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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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곧바로 그윽한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그건 마치 산속의 호수가 소용돌이치면서 사람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곳으로 끌어들인 것과 같았다.백아영은 마음이 심란했다.이성준은 그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며 잡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잡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손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그는 주춤거리며 망설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중에 아이한테 아빠 찾아줄 거야?”그의 질문에 놀란 백아영은 어안이 벙벙했고 그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가 관심 가질 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백아영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했다.“아니.”백씨 일가에 입양된 그녀는 친자식이 아니면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다는 걸 느꼈고 혼자 키우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한테 그런 일을 겪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답에 기분이 좋아진 이성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그럼 됐어.”줄곧 싸늘하고 무뚝뚝한 모습을 유지하던 사람이 갑자기 웃음을 짓자 백아영은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봤다.그의 말은 깃털처럼 가볍게 심장을 건드렸고 싱숭생숭한 느낌에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선우 일가로 돌아오는 길 내내 백아영은 심장이 두근거렸고 머릿속에는 이성준의 얼굴과 그의 말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넋을 잃은 채 방으로 향하던 그녀를 백채영이 불러세웠다.“백아영, 내 방으로 와서 선물 상자 뜯어줘.”백채영의 방엔 수많은 선물 상자가 놓여있었고 하나같이 귀중해 보였다. 아마도 선우소훈이 선물해 준 것 같았다.다가가 상자를 뜯자 아기옷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마치 꿈을 꾸다 뺨 한 대를 맞고 벌떡 깨어난 듯 백채영이 이성준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그런데 지금껏 오는 길 내내 이성준을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약혼자를, 곧 아이 아빠가 될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백채영은 선물 상자 속의 유아복을 가져다가 보고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괜찮네. 넌 무슨 생각하는 거야, 계속 뜯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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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선우 일가로 돌아간 그녀는 마치 차가운 창고에 들어선 것처럼 싸늘하고 냉정한 모습으로 아무 생각 없이 인테리어를 했다.신혼 방을 다 꾸미니 이제는 별장 전체를 꾸미라고 시켰다.백아영은 하루 종일 ‘축’이 쓰인 스티커를 별장 곳곳에 붙였다.백채영은 일부러 트집을 잡았고 의자도 없는데 더 높은 곳에 붙이라며 그녀를 난감하게 만들었다.어쩔 줄 몰라 난처해하던 그때 웬 길고 가는 손이 나타나 스티커를 백채영이 원하는 곳에 붙였다.백아영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려고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선우경진을 발견했다.“사람 시켜서 사다리 가져오라고 할게.”백아영은 고마움에 감격했다.“고마워요.”백아영을 돕는 걸 목격한 백채영은 기분이 언짢았다.“오빠, 왜 도와주는 거예요?”선우경진은 그녀가 백아영을 괴롭히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참다 못해 다가온 것이었다.“잠깐 나 따라와.”그는 백채영을 데리고 옆 복도로 나가서 나지막하게 물었다.“이성준이 너한테 했던 말 까먹었어?”백채영은 순간 안색이 변하더니 변명을 늘어놓았다.“고작 스티커 붙이는 거로 제가 어떻게 괴롭혀요. 성준 씨도 이런 사소한 일로 저와 싸우지는 않을 거예요. 더군다나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제 편인데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성준 씨가 알 리가 없죠.”치료가 끝났고 이제 더 이상 병원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마주칠 수 없다는 생각에 백채영은 더 건방지게 행동했다.선우경진은 그녀의 속셈을 알아챈 지 오래였고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도발하는 백채영의 행동이 못마땅했다.백채영이 시비 걸지 않고 조용하게만 지낸다면 이성준도 순순히 약속 지켜 결혼할 텐데, 그는 문득 문제가 백채영한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채영아, 조용하게 지내면 안 돼? 너한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결혼이랑 해독 침술이야. 어디까지 배웠어?”갑자기 ‘숙제’를 묻자, 백채영은 눈도 깜빡 안 한 채 거짓말을 했다.“이미 절반 배웠어요.”이 말을 듣고 선우경진은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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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이렇게 하면 백채영한테 문제가 생기더라도 선우 일가는 더 이상 그녀에게 속지 않게 된다.하지만 선우 일가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를 봤을 때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게 뻔했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방법을 고민하던 중 화초 관리하는 도우미가 밥을 먹으면서 불편한 듯 기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병든 기색이 역력했다.백아영은 일부러 그녀에게 다가가 무심하게 맥을 짚으며 병세를 확인했다.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못하는 고질병이었다.이러한 병은 약을 먹고 통증을 완화할 수는 있으나 완치할 수 없는 난치병의 일종으로 백아영은 일찌감치 접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법을 연구했다.한 가지 독성 약물로 상태를 악화시켜 다른 바이러스를 만든 뒤 원래 있던 독을 해독하면 병도 완치되는 방법이다.지금이야말로 그 독을 바이러스로 진화시킬 최적화 시기였고 이제 백채영의 실력을 밝힐 일만 남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백아영은 백채영이 집에 있는 틈을 타 도우미의 상태를 악화시켰다.도우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바닥에 쓰러져 거품을 내뱉고 있었고 깜짝 놀란 다른 도우미들은 다급하게 달려가 선우 일가네 사람을 불렀다.곧 선우경진과 백채영이 함께 도착했다.선우경진은 도우미의 상태를 살폈고 중독이 확인되자 침을 꺼냈다.그때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백아영이 입을 열었다.“백채영이 요즘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연습 삼아 한번 맡겨보는 게 어때요?”그 말을 들은 선우경진은 침을 놓으려던 손을 멈췄다.강 건너 불구경하듯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는 죽일 듯이 백아영을 째려봤고 백아영은 침착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왜? 설마 도우미라서 구하기 싫은 건 아니지?”어렵게 생각한 핑곗거리를 입 밖에 내기도 전에 반박당하자, 백채영은 구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어찌할 바를 모르던 백채영은 선우경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오빠, 제가 구하기 싫은 게 아니라 아직 완벽하게 해독 침술을 익힌게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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