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Chapter 1681 - Chapter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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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1화

얼마 후, 한성우는 집을 나섰다.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진 차미주의 마음속에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왔다. 그녀의 기분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분노로부터 지금의 막연함으로 변했다. 차미주는 휴대폰을 들어 한현진에게 전화했다. 그 시각, 주강운과 연주회를 본 한현진은 막 공연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해외의 유명한 연주단이라며 주강운이 설명해 주었지만 한현진은 팀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주강운은 그들이 연주한 모든 곡에 대해 손금 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지만 한현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좋은 연주였고 공연장의 음향효과도 귀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면 한현진은 특별히 다른 점을 들어내지는 못했다. 흥미진진하게 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던 주강운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해 주는 한현진의 모습에 드디어 이상함을 감지했다. 주강운이 나지막이 물었다. “듣기 싫어요?” 한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아요, 싫다 할 것도 없어요. 전 단지 감상할 줄 몰라서 그래요. 강운 씨처럼 좋은 곡과 나쁜 곡을 구별할 줄도 모르거든요.”멈칫하던 주강운이 속삭이듯 말했다. “죄송해요. 피아노 칠 줄 아셔서 이런 거 좋아할 줄 알았어요.”“피아노는 집안 강요로 억지로 배운 거예요. 전 사실 피아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렸을 땐 자주 꾀병을 부리고 땡땡이쳤어요. 저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걸 포기하게 하려고 일부러 손을 다치게 하고는 피아노 연습하다가 그런 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는 학교 피아노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해 차를 사려고 모았던 돈으로 저에게 2000만 원짜리 피아노를 사주셨어요. 판매원이 엄마께 어느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그 피아노로 하루에 열몇 시간씩 연습해 손가락이 점점 더 민첩해졌다고 했거든요. 엄마는 그 말을 믿었고 그렇게 전 성공적으로 하루 두 시간이던 피아노 레슨이 네 시간으로 연장됐었어요.”주강운이 참지 못하고 살풋 소리 내 웃었다. 한현진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웃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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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2화

주강운이 소리 내 웃었다. “만약 적은 돈으로 현진 씨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한현진은 주강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눈을 피하며 피아노로 시선을 옮겼다. “제가 칠 수 있는 거 몇 곡 없어요.”“‘별밤’ 알아요?”“조금요.”주강운이 휴대폰으로 악보를 찾아 거치대 위에 올려놓았다. “한 번 쳐봐요.”한현진은 무대 아래를 오가는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더니 피아노를 지나쳐 자리에 앉았다. 잠시 악보를 보고 나서야 손을 올려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다채로운 곡조가 순식간에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한현진은 늦은 속도로 건반을 눌렀다. 처음엔 그래도 어영부영 이어갈 수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손에 익지 않아 곡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세계 명곡이 그녀의 손에서 들어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한현진은 조금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기 전에 옆 건반에 뼈마디가 뚜렷하게 보이는 손 한 쌍이 올려졌다. 그 손은 피부가 하얗고 손가락도 가늘고 길었다. 손등의 핏줄은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보일 듯 말듯 해 조금 고고한 분위기를 풍겼다. 춤추듯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주강운이 고개를 돌려 한현진을 바라보았다. “같이 쳐요.”다시 피아노에 집중한 한현진은 천천히 음을 찾아 그다지 능숙하지는 않은 솜씨로 주강운의 페이스를 따라갔다. 조금 더 치자 한현진은 서서히 느낌을 찾았고 곡도 저점 더 유창해졌다. 한 곡을 마치고 한현진은 주강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피아노 칠 줄 아셨네요.”주강운이 말했다. “한동안 피아노를 좋아했던 적이 있어서 조금 배웠어요. 잘하는 건 아니고 그저 조금 다룰 줄만 아는 정도예요.”주강운의 말에 한현진은 침묵했다. 역시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법이었다. 한현진은 그런 형편 없는 실력으로도 사람들 앞에 나섰다. 주강운은 능숙하게 피아노를 치면서 그저 다룰 줄 아는 수준이라고 했다. 한현진이 몸을 일으키려는데 주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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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3화

한현진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주강운을 이용해 확실하지 않은 스캔들을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러나 염치도 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볼모로 삼아 그에게 협조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현진은 주강운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고 자기를 원망하게 할지언정 그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았다. 주강운은 손바닥에 놓였던 목걸이를 쥐고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걸어줄게요. 연인의 목걸이 선물, 아마 내일 헤드라인도 핫하겠어요.”한현진은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주강운은 선을 잘 지키던 전과는 달리 가볍게 한현진의 어깨를 잡았다.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미 찍고 있어요. 만약 현진 씨가 거절한다면 그동안 퍼진 소문을 믿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한현진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주강운은 두 손으로 목걸이를 쥐고 가녀린 한현진의 목을 감싸 조심스레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무대 아래에서 보면 두 사람이 목을 껴안고 있는 것 같았고 그 모습은 정말이지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현진은 고개를 돌려 주강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가까웠던지라 한현진은 여전히 주강운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한현진은 그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견디기 어려웠다. 주강운이 손을 놓고 조금 떨어져서야 한현진은 점차 긴장을 풀었다. 한현진은 손을 들어 가슴 쪽에 닿은, 강한서의 사진이 들어있는 사진을 만지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얼마예요? 계좌이체 해드릴게요.”주강운이 말했다. “18000원이요. 사진 인쇄하는 값까지 더하면 19000원. 계좌 이체는 됐어요. 야식이라도 사주실래요?”한현진이 멈칫하자 주강운이 웃으며 말했다. “최대한 19000원을 넘기지 않을게요.”그 말에 한현진이 조금 어색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런 게 아니라, 단지…”한현진은 단지 이 목걸이의 가격이 이렇게 쌀 줄은 몰랐다. 전혀 주강운이 살만한 물건 같지 않았다. 주강운도 당연히 그만의 생각이 있었다. 너무 비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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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4화

차미주가 중얼거렸다. “가까이에서 살고 싶지 않아.”두 사람 사이엔 아마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차미주가 말하기를 원치 않으니 한현진도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러면 내일 같이 방 알아보러 다니자.”“응.”대답한 차미주는 또 전에 한성우가 싸웠던 화제를 떠올리고는 나지막이 물었다. “현진아. 너 주강운 씨와는 어떻게 된 거야? 다들 너희 둘이 사귄다고 하는데, 진짜야?”한현진은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에서 관리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주강운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주강운이 고개를 들어 한현진과 눈을 맞추었다.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이었다. 한현진이 갑자기 두서없이 질문을 내뱉었다. “해리증이 정말 사람을 다치게 할까?”“뭐?”“아무것도 아니야.”한현진이 시선을 거두며 덤덤하게 말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강한서만 돌아오면 돼.”차미주가 한현진의 ‘어떤 대가를 치르든'이라는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한현진이 내일 보자며 뚝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공연장 키스'라는 검색어가 실검에 올랐다. 근거가 없는 추측에 불과하던 전과는 달리 이번에 공개된 영상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똑똑하게 찍혀있었다. 한현진은 상대방과 함께 피아노를 쳤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사람이 직접 목걸이 걸어주도록 허락했다. 동영상이 찍힌 각도에서 보면 두 사람은 마치 키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브랜드 뉴 엔터의 전화는 쉴 틈 없이 울려댔다. 송민준의 휴대폰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전부 송씨 가문과 주씨 가문의 결혼 문제에 관해 묻는 전화였다. 심지어 송병천도 참지 못하고 몰래 송민준에게 한현진과 주강운은 대체 어떻게 된 인지 물었다. 송민준도 자기 동생님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길이 없었다. 강한서에게 사고가 난 후 한현진은 줄곧 이상한 짓을 해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송병천에게 대충 둘러댔다. “언론사에서 사진만 보고 아무렇게 쓴 거예요. 걔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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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5화

휠체어에 앉은 주진철은 비록 마른 몸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쳐 흘렀다. 그는 찻잔에 떠오른 찻잎을 건져내며 덤덤하게 말했다. “예로부터 정략결혼은 부모들이 중매를 서 맺어진 약속이었어. 애들의 의사를 묻는 경우는 없었지. 병천이 자넨 아이들을 너무 감싸고 돌아.”송병천이 웃으며 말했다. “현진이는 올해 스물여섯이에요. 제가 그 아이와 상봉한 지 이제 겨우 몇 개월이고요. 현진이에겐 갚아야 할 키워준 은혜도 없는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의 결혼에 간섭한다면, 제 죽은 아내가 알게 되면 그럴 거면 차라리 집에 데려오지 말라고 할 거예요.”“차라리 현진이가 저의 마음에 안 드는 사윗감을 데려오는 것이 낫지, 결혼 문제 때문에 저와 멀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주진철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는 ‘대역부도'한 송병천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주진철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 자기중심적이었다. 게다가 주씨 가문은 정계에 몸담은 집안이라 주진철은 송씨 가문이나 강씨 가문 같은 집안엔 정중하게 대하는 듯 보이나 사실은 그다지 마음에 차지 않아 했다. 만약 당시 주강운이 치료 때문에 해외에 가 있은 데다 건강상의 이유로 결혼이 늦어지지만 않았다면 그는 절대 주강운이 재벌과 결혼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강운이 주씨 가문에서 정해준 대로 정치에 입문하지 않은 것은 주진철에게는 늘 마음의 걸림돌이었다. 그가 송병천에게 정략결혼 얘기를 꺼낸 것은 한현진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결혼에서부터 시작해 주강운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주진철은 식사를 대접한다는 명분으로 송병천과 약속을 잡았지만 사실은 이 기회를 빌어 두 가문의 정략결혼을 성사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하게 될 줄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주진철의 입장에선, 주씨 가문에서 이혼 경험이 있는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송씨 가문에서는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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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6화

서해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여지는 둬야죠. 방금 들은 소식인데 강씨 가문에서 모든 인양팀을 철수시켰대요. 얼마 안 가 한서가 사고당한 사실을 공개할 거예요.”송병천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렇게 빨리?”“곧 있으면 1달이에요. 집안 전부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텐데 이젠 장례를 치를 때가 되긴 했어요.”송병천은 애처로운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현진은 강한서가 나타났다는 소식 대신 강씨 가문에서 부고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강씨 가문은 대외적으로 강한서가 사고를 당한 소식을 공표했고 그의 추모식은 이틀 후로 정해졌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뜬 글을 빤히 쳐다보았다. 숨통이 꽉 막히는 느낌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목이 억눌린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모든 글자가 눈앞을 맴돌았지만 아무리 조합해 봐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한현진은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를 붙잡고 헛구역질했다. 노파심에 따라온 차미주가 한현진의 등을 토닥이며 걱정된다는 말투로 물었다. “현진아, 왜 그래?”입을 헹군 한현진은 두 손으로 세면대를 짚고 서 있었다. 눈이 시큰거렸다. 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들어 다시 한번 정인월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통화연결음 후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진씨의 목소리였다. “한현진 씨, 무슨 일이에요?”진씨는 선을 긋는 사람처럼 차갑고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얼마 전 기사 때문에 한현진에 대한 친밀감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한현진이 잔뜩 쉰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강한서 아직 죽지 않았어요. 할머니께 말씀 좀 전해주세요. 장례식 하면 안 돼요.”잠시 말이 없던 진씨가 덤덤하게 얘기했다. “한현진 씨. 그건 강씨 가문의 일이에요. 어떻게 처리하든 큰사모님께서 알아서 하실 겁니다.”한현진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녀는 주강운을 이용해 스캔들을 터뜨려 기사를 냈을 때부터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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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7화

강한서의 영정사진은 로비에 모셔두었다. 신미정은 검은색 한복을 입고 영정사진 옆에서 강민서와 함께 조문하러 온 손님을 맞이했다. 정인월은 휠체어에 앉아있었고 그녀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은 진씨였다. 엄숙한 표정을 한 정인월의 머리카락은 전보다 더 하얘졌다. 조금은 살집이 있던 얼굴엔 최근 많이 핼쑥해져 얼굴의 주름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강한서는 강씨 가문의 장손이었다. 자식도 없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으니 상복을입을 후손도 없어 장례식장은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이루 말로 표현 못 할 비통한 분위기가 풍겼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한현진의 눈에는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은 그녀와 강한서의 웨딩사진을 편집한 것이었다. 다만 채색이었던 사진이 흑백 사진으로 되어 있었다.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신미정은 한현진을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한현진을 향해 달려가 소리쳤다. “당장 나가. 한서 눈 더럽히지 말고!”정인월은 손에 쥔 염주를 돌리며 냉담한 태도로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현진을 바라보는 정인월의 눈빛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눈빛에 한현진의 마음이 욱신거리며 아파졌다. 한현진과 함께 온 송병천과 송민준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송병천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한서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려 온 겁니다. 말조심하세요.”한현진에 대한 원망이 진작 극에 달한 신미정은 송병천의 말에 냉소 지었다. “한서가 사고를 당한 지 이제 겨우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른 남자를 만났더군요. 그런 짓을 했으니 저도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불쌍한 우리 아들은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유서에 제1상속인으로 지정하기까지 했어요. 대체 저 여자가 무슨 낯짝으로 한서 추모회에 참가하는 거예요?”주강운이 차가운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어머님, 그 발언은 현진 씨의 명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말을 삼가시죠.”신미정이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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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8화

한현진이 신경 쓰는 것은 유산 재분할이 아니라 강단해 입에서 나온 직계 혈족이라는 말이었다. ‘신미정을 제외하고 강한서에게 직계 혈족이라니?‘강단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한서와 몇 년이나 결혼생활을 했으면서 한서에게 딸이 있는 것도 몰랐던 거야?”한현진은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부정했다. “말도 안 돼요.”강단해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강단해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현우가 상복을 입은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꼬마 숙녀는 그다지 하얗지는 않은 피부에 조금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눈은 큰 편이었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강현욱에게 이끌려 나오고 있었지만 아이의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차 주위의 낯선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이 한현진에게 다다랐고 아이는 순간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아이는 곧 눈빛을 거두고 잰걸음으로 사람을 지나쳐 영정 사진이 놓은 곳 가운데로 걸어가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신미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할머니.”순간 눈시울을 붉힌 신미정이 허리를 숙여 꼬마 숙녀를 안았다. “착한 우리 아기, 고생했어.”모든 사람이 충격에 휩싸인 채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 모습은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현장을 떠들썩하게 했다. 강한서에게 사생아가 있었다니, 너무도 꽁꽁 숨기고 있어 전혀 들은 적도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한성우조차도 충격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미주에게 서로 비밀을 은폐해 준 공범으로 오해받아 또 한 대 얻어맞았다. 오직 강씨 집안 사람들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그 누구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정인월마저도. 강단해가 소리 높여 말했다. “오늘은 한서의 추모회입니다. 그리고 저희의 증손녀를 강씨 가문으로 다시 데리고 온 날이기도 하죠.”한현진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그녀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말하며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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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9화

뼛속까지 익숙한 그 목소리에 한현진은 바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차렸지만 겁이 나 차마 돌아볼 수가 없었다. 돌아본 후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강한서!”차미주가 문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며 놀란 마음에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강한서의 얼굴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한현진은 마치 모든 기력이 쭉 빠진 것 같았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굳은 몸을 돌렸다. 강한서는 휠체어에 앉아 안으로 들어왔다. 한 달 사이, 강한서는 많이 핼쑥해져 있었다. 머리도 짧게 잘라 이목구비가 더욱 날렵해 보였고 혈색은 오랜 병마에 시달린 사람처럼 창백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은, 바로 송가람이었다. 순식간에 분노가 한현진의 온몸을 휩쓸었다. 그녀는 자기 추측이 틀리지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 강한서가 사고를 당한 뒤의 송가람이 풍기던 이상한 기운은 전혀 한현진의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 송가람이 강한서를 숨기고 있었다. 한현진은 붉어진 눈으로 주강운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억울함, 분노와 그리운 감정을 가득 담은 채, 성큼성큼 강한서를 향해 걸어갔다. 강한서의 시선이 한현진에게 머물렀다. 덤덤한 눈빛으로 한현진을 쳐다보더니 곧 시선을 돌렸고 손을 돌려 휠체어의 핸들을 움직여 한현진을 피해 갔다. 멈칫, 한현진은 충격에 빠진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강한서는 안으로 들어서서야 영정 사진을 확인했다. 그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 오늘 여러분께서 헛걸음하신 것 같네요.”강한서는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정인월을 쳐다보더니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강한서가 정인월을 향해 말했다. “할머니, 저 돌아왔어요.”정인월이 염주를 꽉 움켜쥐었다. 혼탁하던 눈빛이 점점 흐릿해졌고 목소리도 잔뜩 잠겨 말이 아니었다. “돌아왔으면 됐어. 왔으면 됐어.”강민서도 드디어 참지 못하고 강한서에게 뛰어가 그의 품에 파고들더니 하염없이 흐느꼈다. “오빠, 정말 깜짝 놀랐잖아. 왜 이제야 돌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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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0화

주변에서 소란이 일었다. 상황 파악을 끝낸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오리무중인 사람도 있었다. 서로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경찰이 다시 한번 물었다. “강현우 씨 맞으세요?”강현우는 평정심을 되찾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네, 제가 강현우인데요.”“전해 아세요?”강현우가 말했다. “몰라요.”“모른다고요?”경찰이 강현우를 훑어보았다. “강현우 씨가 전에 모 클럽에서 술을 마실 때 전해 씨도 자리에 있었어요. 전해 씨가 누군지 모르신다면 그 사람이 왜 강현우 씨의 술자리에 있었던 거죠?”강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간 술자리는 모두 친구들이 부른 자리였어요. 누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저도 잘 몰라요. 전해가 누군데요?”경찰이 말했다. “강한서 씨 실종 사건의 납치범 중 한 명의 동생입니다.”말을 마친 경찰이 말머리를 돌렸다. “강현우 씨, 저희는 당신이 강한서 씨 납치 사건과 연관되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서로 가셔서 조사에 협조해 주시죠.”경찰의 말은 순식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강한서에게 사고가 난 후, 강단해는 빠른 속도로 회사의 주가를 조정했다. 각 부서에 있던 강한서의 사람은 하나둘 부서를 옮겼다. 그러나 유독 연구개발팀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듣기론 강한서가 연구개발팀을 위해 ‘부적'을 남겼다고 했다. 그 “부적”이 대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강한서가 죽으면 아마 그 부적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강단해가 한성을 손아귀에 넣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강단해의 외동아들인 강현우가 유일한 한성 그룹 미래 후계자임이 분명했다. 그러니 요즘 강현우는 그 바닥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 치며 지내고 있었다. 사람은 모두 현실적인 동물이었다. 강한서는 이미 죽었으니 자기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친구였다. 추모회를 마치고 장례가 끝나기만 하면 강단해 부자는 완전히 한성을 손에 넣을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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