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초는 하예정이 하는 말을 차분하게 들었다. 그녀는 기억력이 좋아 하예정이 한번 말하면 바로 기억한다.“운초 씨, 방금 말한 노선 기억할 수 있겠어요?”하예정이 관심 조로 묻자 여운초가 온화하게 대답했다.“고마워요, 예정 씨. 다 기억했어요.”“그럼 나 먼저 가요?”하예정은 맨 위층에 올라가 전태윤을 만나야 해서 여운초와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네, 이만 가보세요. 제가 천천히 찾아갈게요. 이진 씨가 딴 사람 도움 받지 말고 무조건 혼자 사무실까지 오라고 했어요.”‘도련님 진짜! 운초 씨 너무 모질게 구는 거 아니야?!’물론 여운초도 똑같은 생각이겠지.대체 전이진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벌을 받는 것인지...전이진은 또 하필 그녀를 모질게 굴면서도 영악하게 미끼를 내던졌다.여운초의 꽃가게 장사가 요즘 줄곧 별로였다. 그날 누군가가 찾아와서 가게의 모든 장미꽃을 싹쓸이해 간 것 외엔 평상시 꽃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전이진이 공씨 일가의 연회 장소 배치를 여운초의 가게에 맡기겠다고 하니 그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관성 호텔은 규모가 큰 호텔이고 공씨 일가가 그곳에서 연회를 열면 관성 상업계 거물들이 다 참석할 터라 현장에 쓰일 화초가 꽤 많이 필요할 것이다.여운초가 이 주문을 성사하면 이번 달 매출도 달성하고 집세와 두 직원의 월급도 지급할 수 있으며 본인한테도 용돈이 남게 된다.바로 이 때문에 전이진이 아무리 까다로운 요구를 제기해도 앞이 안 보이는 여운초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은 채 바로 대답했다.아침에 외출할 때마다 전이진과 자주 마주치는데 그는 항상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가게까지 실어다 준다.여운초는 그런 그가 나쁜 사람인 것만은 같지 않았다. 하지만 꽃 배달 요구를 들었을 땐 대체 왜 이러는지, 일부러 그녀를 모질게 굴 작정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회의심이 들었다.“그럼 나 먼저 가요. 조심히 와요, 운초 씨. 노선이 생각나지 않으면 멈춰서서 주변 사람들한테 여쭤봐요.
Last Updated : 2024-10-2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