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진은 말이 없었다. 대답을 듣지 못한 여운초도 같이 침묵했다.여운초는 전이진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음식을 가져왔다.“먹어 얼른.”전이진이 드디어 입을 열었지만, 여운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었다.여운초는 보이지 않았기에 전이진이 국을 한 그릇 떠서 그녀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먼저 국부터 마셔. 국을 다 마시면 밥을 떠줄게.”“고마워.”“괜찮아.”전이진은 자신에게도 국을 한 그릇 뜨고 한 술 마신 뒤 음식을 집어 먹었다. 가끔 공용 젓가락으로 여운초에게 음식을 집어주기도 했다.여운초는 평소에 즉석식을 시켜 먹었는데 밥과 음식이 같이 나와서 천천히 먹으면 됐다. 지금 전이진과 식사를 하면서 여운초는 음식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젓가락을 뻗어서 음식을 집으려 해도 무슨 음식을 집었는지 감이 안 잡혔다.하여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전이진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만약 피할 수 있다면 여운초는 평생 전이진과 함께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새우 좋아해?”전이진은 국을 다 마시고 그릇을 놓고 여운초에게 물었다. 여운초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이진은 일회용 장갑을 끼고는 새우를 몇 개 집어서 껍질을 까서는 새우살을 소스에 찍어 여운초의 앞접시에 놓았다.“새우껍질 다 까서 소스 찍어뒀어. 바로 먹으면 돼.”할머니가 만약 현장에서 전이진이 하는 행동을 보았다면 다정하다고 칭찬했을 것이다. 전태윤 그때보다 훨씬 나았다.전태윤은 그때 할머니가 눈치를 줘서도 도도하게 굴면서 하예정에게 다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우빈을 핑계로 댔다. 그때 할머니는 정말 전태윤한테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싶었다.“고마워.”여운초는 감사의 뜻을 표했다.전에 그녀가 새우를 먹을 때에는 껍질도 같이 먹었고 소스도 불편해서 묻히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서는 거의 해산물을 먹지 못했다. 그들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들이 주는 음식은 백반에 청경채 몇 가닥이 전부였다. 새 아버지가 계실 때는 고기를 몇 조각 줬었다.그
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호텔을 나와서도 다정하게 꽃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고맙지만 괜찮아. 우리 꽃집까지 가는 버스에 태워주면 돼.”전이진은 여운초가 앞으로도 자주 외출할 것을 생각하면 혼자서 버스를 타는 것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이렇게 말했다.“좋아. 그럼 밖에 있는 정거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자.”“고마워.”여운초는 다시 감사를 표했다.이 사람이랑 함께하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고맙다는 말일 것이다.두 사람이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6번 버스가 한 대 도착했고 전이진은 여운초를 도와서 버스에 앉혔다. 여운초가 버스에 오른 것을 보고 그는 뒤돌아서 호텔로 갔다. 호텔 문 앞의 작은 주차장에서 그는 또 금실이 좋은 형네 부부와 마주쳤다.“이진 씨, 운초 씨는요?”하예정은 시숙만 있고 여운초가 없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물어봤다. 하예정은 전이진과 여운초가 함께 식사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꽃가게로 갔어요.”전이진은 멈춰서서 형네 부부와 얘기를 하면서 형에게 물었다.“형수님 바래다주려고?”“응.”전태윤은 덤덤하게 응답했다. 하예정은 전이진에게 물었다.“운초 씨는 보이지 않아서 외출이 불편한데 이진 씨는 왜 꽃집에 바래다주지 않고 혼자 버스를 타게 했어요?”“제가 버스까지 태워줬어요. 바래다주지 말래요.”...‘여운초가 데려다주지 말라고 정말 안 데려다줬단 말인가? 여운초가 버스를 타고 돌아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되지도 않는가?’전이진은 형네 부부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운초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익숙한 환경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요. 꽃필무렵에서 우리 회사까지의 길은 습관이 돼서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요. 앞으로 내가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회사로 와서 나를 찾을 수 있죠.”“...”전태윤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동생을 핀잔했다.“네가 보고 싶어도 운초 씨가 널 보고 싶어 하는 일은 없을걸.”여운초는 지금 전이진이 자기를 접근하는 이유가 감정을 쌓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예
“당신이 주는 건 풀 한 포기라도 다 좋을 거야.”하예정은 장난스레 말했다.“그럼 오늘은 별장으로 돌아갈 때 풀 한 포기를 베어서 당신한테 선물로 줄게요.”전태윤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녀의 코를 꼬집었다. 하예정이 정말로 선물한다면 전태윤도 받을 의향이 있다. 전태윤이 한 말도 사실이다. 하예정이 선물한 것이라면 뭐든 좋다. 꽃필무렵까지 가는 길에서 전태윤이 갑자기 말했다.“예정아, 며칠 뒤에 나랑 함께 공씨 어르신이 여는 연회에 가자. 연회장소는 관성 호텔이야.”하예정은 고개를 까닥하고 그를 보면서 웃었다.“웬일이에요. 웬일로 전 씨 도련님이 연회를 다 가고. 듣기로는 전 씨 도련님은 한 번도 연회에 참가한 적이 없는데 이런 분을 오게 할 수 있는 가문이라면 당신네 전씨 가문과도 관계가 깊은 것 같네요.”전태윤은 아프지 않게 하예정의 이마를 치며 정정해줬다.“앞으론 여보네 전씨 가문이기도 해. 여보는 우리 전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 될 사람이야. 이후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무슨 의문이 있으면 직접 이 남편한테 물어보면 돼. 연회를 여는 가문은 공씨 가문이야. 공씨 어르신이 관성의 상업계에서는 지위가 아주 높아서 사람들의 존중을 받아. 어르신은 매년 관성 호텔에서 한 번씩 상업 연회를 열어서 여기 상업계의 크고 작은 대표들한테 초대장을 보내곤 해. 교류인 것도 있겠지만 실력이 있고 규모가 아직 크지 않는 작은 회사들이 큰 비즈니스를 할 기회를 주는 자리기도 해. 공씨 가문과 우리 전씨 가문은 대대로 교제가 있어서 왕래가 밀접하고 관계가 아주 깊어.”“공씨 가문은 관성에서 사업을 아주 넓게 하는데 집안의 사람들이 다 알려지지 않은 편이야. 우리 전씨 가문은 대외로 알려진 게 많아서 공씨 가문을 위해 많이 막아줬어. 공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우리 엄마와 단짝이야. 작년에 공씨 가문의 연회 시간은 10월이었어. 그때 우리가 금방 혼인신고를 하고 당신이랑 효진 씨가 이 사모님을 따라 참가한 연회, 당신 기억나? 연회에 참가하고 집에 와서
하예정은 오늘 주로 본가에 일을 보러 갔기에 아직 심효진의 약혼날짜를 묻지 않았는데 전태윤은 알고 있었다. 그는 하예정에게 알려주었다.“효진 씨와 소정남의 약혼날짜는 3월 20일이야. 빨라, 오늘이 벌써 십몇 일인데. 두 사람의 약혼식도 아마 성대하게 치를 거야. 소씨 가문의 친척과 친구들이 아주 많아.”소정남 가문이랑 감정이 깊지 않은 사람들도 소씨 가문의 가주와 도련님을 봐서라도 선물을 보내올 것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소씨 가문의 정보망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두 사람의 결혼식 날짜도 우리 앞에 있을 거야.”전태윤이 계속 말했다.“아마 5월 1일 전에 혹은 후에 결혼식을 올릴 거야. 소정남이 말하길 약혼식이 끝나면 혼인신고를 한다고 해. 아주 다급하더라고.”전태윤과 하예정은 먼저 혼인신고를 하고 좋은 날짜를 골라서 결혼식을 올릴 거라 전태윤은 다급하지 않았는데 소정남과 심효진은 절차대로 진행하였기에 소정남은 당연히 다급했다.하예정은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부부는 말하면서 금방 꽃필무렵에 도착했다.“일구 씨, 따라오지 않아도 돼요.”하예정은 강일구한테 얘기하고는 전태윤과 단둘이 차에서 내려 가게로 들어갔는데 여운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예정은 알바생한테 남편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운초를 기다렸다.알바생이 하예정이 주문한 꽃다발을 다 만들었을 때 여운초가 돌아왔다,“운초 씨.”하예정이 여운초를 불렀다. 여운초는 하예정의 소리를 듣고 반가운 미소를 띠었다.“예정 씨네요. 차에서 내리니 가게 문 앞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았는데 왜 그런가 했어요.”하예정이 온 것이다. 아마 전 씨 도련님도 함께 왔을 것이다.“다른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 인기척까지 알았어요?”여운초는 웃으며 말했다.“다들 저 보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분들 시선을 느낄 수 있어요.”하예정이 웃었다. 이 여자애는 정말 세심했다.“예정 씨, 꽃 사시게요?”“네, 우리 남편한테 주려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전태윤은 도도하고 차가웠다. 온몸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는 꽃가게 안의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눌러놓았다. 하예정은 오래 머물지 않고 꽃다발을 전태윤에게 건네준 후 바로 작별을 고했다.가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졌다.하예정은 언니에게 전화 한 통을 걸었고 조카와 잠시 잡담을 나눈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주우빈은 하예정과 통화를 마친 후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엄마가 그 휴대폰을 가져가 버렸다.“엄마, 나 애니메이션 보고 싶어요.”하예진은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으면 엄마가 텔레비전을 켜줄게. 휴대폰으로 보면 눈에 안 좋아. 텔레비전도 딱 30분이야.”주우빈은 그 말을 듣고 입이 한발이나 나왔지만 엄마가 이미 리모컨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순순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알았어요.”아들에게 텔레비전을 켜준 후 하예진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식재료들을 준비했다. 준비한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내일 아침에 쓸 예산이었다.이때 초인종이 울렸다.“엄마, 내가 가서 열게요.”주우빈은 초인종이 울리는 것을 듣고 바로 엄마에게 말하고는 작은 의자를 들고 가 문을 열었다.하예진은 아들이 문을 열도록 내버려두었고, 누가 왔는지 궁금해 부엌칼도 내려놓지 않은 채 부엌을 나섰다.집 앞에 서 있는 주형인과 서현주를 보고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아들이 문을 열어준 것을 보고 기뻐하며 아들을 안으려던 주형인은 그녀가 시퍼런 식칼을 들고 아들 뒤에 서 있자 쭈뼛대며 말했다.“예진아, 우... 우린 우빈이 보러 올 겸 청첩장을 주러 온 거야.”집의 인테리어도 반쯤 진행되었는지라 완공 날짜를 얻은 다음 서현주와 결혼식을 치를 날짜를 정했다.서현주는 빨리 사람을 청해 청첩장을 써달라고 재촉했다. 하예진에게 청첩장을 같이 보내러 오자고 강요한 것도 그녀의 뜻이었다.주형인은 하예진이 이미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현주와의 결혼 청첩장
“동명 아저씨가 무슨 블록을 줬는지 꺼내서 아빠한테 보여줘봐봐. 아빠가 조립해 줄게.”주우빈은 곧 주형인의 품에서 나와 장난감이 가득 놓여 있는 선반으로 달아가 계속 조립하지 못했던 블록 상자를 가져왔다.주형인은 그 블록을 보고 속으로 노동명을 음흉하다고 욕했다.‘우빈이가 겨우 몇 살인데, 아직 3살도 안 되는 아이한테 이런 블록을 선물해? 아무리 우빈이가 똑똑하다고 해도 이런 고난도 블록을 어떻게 맞춰낼 수 있겠어?’노동명은 일부러 고난도 블록을 주우빈에게 준 것이 분명했다.‘우빈이에게 블록을 맞추는 법을 가르치는 기회를 통해 예진에게 접근하려는 게 아니야? 참 염치없기도! 우빈이를 이용해 예진에게 접근하려 하다니.’주형인은 마음속으로 노동명을 수천수만 번 욕했다.하예진은 부부에게 자리를 권하고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따라준 뒤 말했다.“지금 바쁘니까 청첩장은 여기에 두면 돼. 그날 시간이 나면 우빈이까지 데리고 갈게.”그들이 그녀가 결혼식을 망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감히 청첩장을 줄 담이 있다면 그녀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물론, 그녀도 결혼식을 망칠 생각은 없었다.마음에 한이 맺힌 사람이면 몰라도 한이 맺히기는커녕 오히려 주형인과 이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주씨 같은 쓰레기 가문은 서현주 혼자서 잘 즐기라고 해.’하예진은 서현주도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거라 감히 말할 수 있다.김은희나 주서인 같은 사람이 있는데, 그런 가정에서 참을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다만 모두 서현주가 내연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주형인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서현주는 항상 승리자의 자태로 주형인과 하예진의 이혼을 내려다보았다.주형인과 결혼하지 않으면 승자가 될 수 없다는 듯이.“예진 씨, 지금 뭘 하는 거야?”서현주는 하예진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내가 뭐 도와줄 거라도 없어?”“없어.”하예진은 그녀의 도움을 거절했다.서현주는 여전히 뻔뻔하게 하예진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지만,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
하예진은 서현주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유용한 소식을 물어내지 못한 서현주는 속으로 화를 내며 주형인의 옆으로 돌아갔다.동시에 그녀는 하예진의 셋집 환경을 살펴보았다.셋집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하예진의 손을 걸쳐 깔끔하게 정돈되었고 아늑했다.그녀는 집안 살림에 있어서는 하예진이 자신보다 훨씬 낫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주형인은 아들에게 블록 조립을 가르쳤는데 평소 아들과 거의 함께 있지 않던 그는 흩어져 있는 작은 블록 더미와 설명서를 보면서 조립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더러 이걸 조립하라고 하면 분명 인내심이 바닥나 금방 포기하였을지도 모른다.“조립할 줄 알기나 해요?”서현주가 그에게 물었다.“그러는 현주 넌 할 줄 알아?”가득이나 골머리를 앓고 있던 주형인은 아내의 말을 듣자 퉁명스럽게 한마디 쏘았다.주우빈은 고개를 들어 서현주와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마음속 깊이 묻었던 의문을 물었다.“아빠, 이 아줌마는 왜 항상 아빠를 따라다녀요?”주형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현주는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난 네 아빠의 아내야. 그러니까 날 엄마라고 불러도 돼.”“난 엄마가 있어요, 아줌마는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주우빈은 이내 화를 내며 서현주의 말에 반박했다. 하예진도 서현주의 말을 듣고 주방에서 나왔다.“엄마.”주우빈은 얼른 일어나 하예진의 곁으로 달려가 다리를 잡았다. 그는 작은 얼굴을 들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엄마가 내 엄마예요. 저 아줌마는 내 엄마가 아니에요!”하예진은 아들을 안으며 차가운 얼굴로 서현주에게 말했다.“우빈이에게는 친엄마 하나로도 충분하니 새엄마는 필요 없어. 주형인! 당신 아내 데리고 당장 나가.”주형인은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하예진과 아들을 바라보았다.이때 서현주가 말했다.“난 우빈이의 새엄마야. 새엄마도 엄마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게 뭐가 잘못됐어? 우빈이는 오빠의 친아들이고 나는 오빠 마누라야. 우리 셋이 한 가족이라고
방금 주형인이 함께 조립하려 했지만 도통 조립되지 않았다.그래서 우빈은 역시 동명 아저씨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처음으로 동명 아저씨가 그리워 났다.만약 노동명이 우빈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기뻐서 날뛸지도 모른다.하예진은 주형인이 아들에게 사준 장난감과 옷들을 찬찬히 본 뒤 아들에게 스스로 포장을 뜯어 놀게 했다.하예진은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일을 계속했지만, 서현주의 태도가 자꾸 떠올랐다.‘서현주가 우빈이를 좋아할 리가 없어. 우빈이는 나의 아들이니까.’예전에도 주씨 집안 사람들이 우빈을 보러 왔었는데 서현주는 그걸 알고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었다.‘최근에 왜 태도가 바뀐 거지?’주씨 일가 사람들이 우빈을 보러 오는 것을 막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형인과 함께 와서 우빈에게 새 옷까지 사주다니... 수상할 따름이었다.‘주씨 일가가 우빈의 양육권을 다시 쟁취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미리 감정을 쌓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그럼 양육권을 가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우빈이와의 감정을 키워도 늦지 않을 텐데.’서현주는 동물원 사건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만약 주형인이 물어본 거였다면 그녀도 따로 의심하지 않았겠지만, 서현주가 물어본 거라 자꾸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휴대폰을 꺼내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은 전화를 곧 받았다.“처형.”전태윤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다. 하예진이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일 테니까. 그는 표정까지 엄숙해졌다.“제부, 바빠요? 내가 방해하지는 않았죠?”“괜찮아요. 저랑 예정이는 이미 집에 돌아왔어요. 오늘 저녁 시간이 비어서요. 무슨 일이죠?”그녀는 바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수상하게 느낀 점을 그에게 말했다.“제부, 나 요즘 서현주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돼요. 혹시 그 사건, 서현주가 계획한 게 아닐까요? 우빈이를 납치해 팔려고요. 그러면 앞으로 아이를 낳아도 주씨 일가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테니까요.”그녀는 그저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