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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황제가 사랑한 여인: Chapter 211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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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1장

소만영은 간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뭐든 다 사실대로 대답할게.”“좋아.”기모진은 검은 눈으로 소만영을 들여다 보았다.“정말로 육정 그 건달 놈하고 소만리가 사귀었어?”“그럼!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소만영은 즉각 대답했다.기모진의 검은 눈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눈에서 싸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는 걸 느끼고 소만영은 당황했다. 그러나 여전히 또박또박 대답했다. “진짜야! 자기야, 날 믿어줘……”“믿어달라……”그 말을 내뱉는 기모진의 눈에 조롱하는 빛이 떠올랐다.“만리도 나에게 그랬었지. 믿어달라고.”“……뭐라고?”소만영은 당황해서 비웃음을 띠고 있는 기모진을 쳐다봤다.“자기야……”“난 기회를 줬어.”얇은 입술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쌩 하니 몸을 돌렸다.그녀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소만영은 발을 삔 척하고 있었던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기모진을 따라갔다. 뒤에서 그를 꽉 끌어안았다.“모진 씨!”그녀는 기모진의 등에 얼굴을 꼭 붙였다.“자기를 몇 년을 따라다녔는데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해! 내가 하는 말은 다 사실이야. 만리는 정말 육정이랑 사귀었다고! 육정뿐인가, 소군년도 있고! 그리고 그 기묵비도! 만리는 그 남자들하고 다 얽혀서……”“됐어!”기모진은 화가 나서 말을 끊었다. 싸늘한 얼굴에는 화난 기색이 만연했다.소만영은 놀라서 입을 확 다물었다.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소만영은 불안에 몸을 떨었다.더욱 힘주어 기모진을 껴안았으나 갑자기 기모진의 입에서 명령이 흘러나왔다.“놔!”소만영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렇게 자신을 거부하는 기모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싫어! 못 놔! 사랑해. 난 자기하고 영원히 함께 있을 거야.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때문에 우리가 왜 이래야 돼?”소만영은 울먹이며 더욱 세게 기모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그러나 다음 순간 기모진이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곧 그녀의 품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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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2장

“날 믿어! 그 미친 놈의 헛소리를 듣고 날 판단하면 안 돼! 바닷가에서의 그 날을 잊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순수하고 제일 착한 애라고 했잖아. 영원히 함께 하자고, 날 신부로 삼겠다고 했잖아. 날 지켜주겠다고, 영원히 믿어주겠다고 했잖아. 모진 씨, 모진 씨!”기모진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무시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멀어져 가는 스포츠카를 보며 소만영은 그 자리에서 발을 구를 뿐이었다.“소만리 년! 죽어서도 날 가만 두지 않다니!”그녀는 화가 나서 별장으로 들어갔다. 기란군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려는 게 보였다. 소만영은 아주머니더러 시장에 다녀오라며 내보냈다. 이제 집에는 그녀와 기란군만 남게 되었다.소만영을 보는 까만 눈동자에 방어와 거부의 빛이 떠올랐다. 작은 손은 책가방 끈을 꼭 쥐었다.‘정말이지 볼수록 더 꼴 보기 싫어!’소만영은 짜증이 극에 달해 두어 번 노려보더니 갑자기 기란군의 작은 어깨를 와락 움켜쥐었다.기란군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몸은 벌써 반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겨우 다섯 살 짜리가 어른의 힘을 당해내기는 역부족이었다.소만영은 그를 창고방으로 끌고가 설명도 없이 그를 밀어 넣더니 문을 잠궜다. “쾅쾅쾅!”기란군은 힘껏 문을 두드렸다.소만영은 발로 문을 쾅 찼다.“닥쳐! 이 짜증나는 녀석아! 넌 소만리의 뱃속에 있을 때 죽었어야 해!”화가 나서 욕을 하며 분노를 기란군에게 퍼부었다.기란군은 도와달라며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컴컴한 방 구석에서 제 몸을 꼭 끌어안았다.미랍 누나……”어둠 속에서 이 이름을 불러야 빛을 찾을 수 있는 듯 나직이 읊조렸다.소만영은 예전 납치 사건은 절대로 기모진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안 그랬다가는 기 씨 가문 작은 사모님이 될 수 없을뿐더러 기모진이 어떤 벌을 내릴지 알 수 없었다.생각해 보면 그때의 진상을 아는 것은 육정뿐이다.소만리는 이미 죽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그러니 이제 육정만 해결하면 된다!어쨌든 무슨 수를 쓰던 다시는 육정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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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장

소만리는 앞에 있는 그윽한 눈동자를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무슨 일이에요?”“진상을 조사해 주셨으면 합니다.”가만히 이 말을 하는 기무진의 눈빛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기대가 담겨 있었다.소만리는 도와야 할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는 놀랐다.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도와드리겠어요.”“고맙습니다.”기모진이 인사했다.그 순간 기모진의 눈에 기쁨의 웃음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 했으나 금방 사라져 버렸다.소만리는 다시 자신으로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기모진은 그녀를 데리고 헤어샵을 갔다. 기모진이 헤어 디자이너에게 사진을 한 장 보여주자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소만리는 기모진이 헤어 디자이너에게 무슨 사진을 보여주었는지 몰랐다. 1시간 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검고 윤기 나는 긴 머리가 단아해 보였다. 뭔가 완전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그리고 나서 기모진은 소만리를 자신의 별장으로 데리고 갔다.한 때는 자신들의 신혼 집이었던 별장에 들어서자 마음이 복잡했다.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떠올랐다.그녀는 기모진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3년이 흘렀다.다시 이 방을 들어오게 될 지 몰랐다. 그와 공유했던 이 침실을.방에 들어서자 옅지만 독특한 향이 났다. 익숙한 향이었다. 그녀가 직접 조향한 배합이었기 때문이었다.‘부활’한 뒤로 그녀는 자신의 후각이 특별히 예민하다는 것을 알았다. 디자인을 하다가 답답할 때면 향료를 공부했다. 그렇게 새로운 지식을 쌓고 창조력의 저변을 넓혀갔다.더 이상은 예전처럼 그저 맹목적으로 사랑을 쫓는 바보이고 싶지 않았다.기모진은 그녀를 옷장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가 옷장을 열자 가지런히 정리된 원피스가 보였다. 소만리는 적잖이 놀랐다.방금 침실을 들어서면서 방 배치가 하나도 안 변한 것을 보고도 좀 뜻밖이었는데, 3년 전 자신의 옷이 모두 있는 걸 보고는 더 놀랐다. “미립 씨 적당한 걸로 골라 입어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기모진은 말을 마치고 걸어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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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장

‘결국 그녀는 아니라고.’ “잘 됐네요.”소만리는 만족스럽게 웃었다.“기모진 씨는 소만리 씨를 굉장히 싫어했다던데 죽은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집에 아직도 옷을 다 가지고 있네요?”그 말을 듣더니 기모진의 시선이 소만리의 얼굴에 고정되었다.“그게 전처의 옷이란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소만리는 미소를 띠었다.“그런 건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 알겠죠, 안 그래요?”그 말을 듣고 기모진도 웃었다.“그도 그렇네요.”이때 소만영은 병원에서 나오는 육정에게 연락을 했다.육정은 어젯밤 재미나 보려고 갔다가 갑자기 나타난 귀신에 놀란데다가 기모진에게 맞아 이까지 부러졌으니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었다.치아를 새로 해 넣는데 수백만 원 이라는 얘기를 듣고 병원에서 나왔다.육정 같은 건달이 어디 그렇게 큰 돈이 있겠는가. 이런 참에 소만영의 전화를 받았다. 기회가 온 것이다.소만영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육정에게 계좌이체를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기모진에게 흔적을 들킬 수도 있는 것이다.그녀는 가발에 선글라스를 끼고 전혀 다른 스타일로 차려 입고 구석진 커피숍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만나자마자 소만영은 2천만 원을 현금으로 턱 내놓았다.큰 돈을 보고 육정은 두 눈을 번뜩이더니 대뜸 제 따귀를 철썩철썩 올려 붙였다.“우리 사업 하루 이틀도 아닌데 다 나한테 맡겨만 두셔!”“아오, 어젯밤에는 내가 너무 취해서 그랬지. 그렇지만 거 뭐시기? 그 뭐 천……”“천미랍”소만영이 짜증난다는 듯 뱉었다.“잊지 마! 소만리가 아니라고! 소만리 그년은 3년 전에 죽었어. 요즘 같은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 그게 진짜 귀신이라고 해도 내가 처리해 버릴 수 있어!”귀신이란 소리를 듣자 육정은 은근히 움츠러들었다.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너무 하다 보니 당당할 수 없었다.“이 돈은 받아 둬. 그 납치 건에 대해서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평생 먹고 사는 걱정은 없게 해 줄게!”“걱정 마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내가 잘 안다니까.”육정은 연신 대답했다.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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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장

와락 달라드는 육정을 보면서 소만리는 그에게 맞았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반격하려고 했다. 이때 뒤에서 휙 하고 바람이 불어왔다.기모진의 따스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안아서 한 쪽으로 비키도록 했다.소만리는 일순 익숙하고도 낯선 온기에 둘러 싸였다. 미처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육정이 붕 날아 나무에 부딪히더니 곧바로 기모진의 손이 그의 팔을 비틀었다.육정이 ‘으어으어’ 소리를 질러댔지만 기모진은 전혀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육정의 무릎을 차 꿇어 앉히더니 한 방 시원하게 걷어찼다.소만리는 기모진이 이어서 육정을 두드려 팰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더 없이 걱정스러운 듯 그녀를 감싸 안았다.“두려워 말아요. 내가 있으니까. 다시는 누구도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해주겠습니다.”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감겨왔다. 비현실적으로 따스하면서도 긴장한 것이 그녀가 어딜 다치기라도 했을까 봐 진짜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소만리는 멍하니 눈을 뜨고 점점 더 꽉 안아 드는 기모진을 느끼고 있었다.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여름 끝의 밤바람과 만나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그러나 바짝 붙은 그의 가슴에서 체온이 전해졌다. 얇은 옷을 뚫고 그녀의 피부에 닿는 그 체온은 뜨거웠다.너무나 가까워서 그녀는 지금 두근대는 것이 자신의 심장인지 기모진의 심장인지도 알 수 없었다. 심장이 두근댈 때마다 생각이 흩어졌다.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에야 보이지 않는 상처에서 전해지는 날카로운 아픔이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기모진 씨, 한 번만 더 이러시면 화낼 거예요.”가볍지만 분명한 거절의 뜻이 담겨 있었다..기모진의 시선이 움찔하더니 그제서야 꿈에서 깨어나는 듯 했다.“아, 미안합니다.”그는 그녀의 귓가에 이렇게 가만히 속삭이고는 그녀를 풀어주었다.그는 도망치려던 육정을 잡아채 나무 옆으로 밀어붙였다. 검은 눈은 날카로운 칼 마냥 육정에게 꽂혔다.“잘 들어.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기모진의 얇은 입술에서 싸늘한 말이 흘러 나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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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장

분명 소만영이 그를 찾아간 거겠지.소만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모진은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내내 소만영을 무한정 믿어 주었다.그리고 번번이 제멋대로 구는 소만영을 내버려 두어 그녀에게 그렇게나 깊은 고통을 준 것이다.그러나 그가 정말로 소만영을 감싸려고 든다면왜 쓸데없이 자신에게 소만리로 꾸미고 가서 육정을 만나달라고 했을까?기모진이 그대로 갈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소만리의 아파트까지 따라왔다.“잠깐 들어가도 됩니까?”기모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살짝 부탁하는 듯한 느낌이었다.밤 늦은 시간이라 거절할 생각이었으나 아직도 피가 줄줄 흐르는 손을 보고는 문을 열었다.“들어오세요.”다친 것이 마음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그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어내려는 것이었다.소만리는 구급상자를 가져와 소파에 앉은 무표정한 남자를 보았다.기모진은 손을 늘어뜨리고 푹신한 소파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깊은 시름에 잠겨 의기소침해 있었다.소만리는 아무 말 없이 알코올솜을 꺼내 기모진 손등의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살살 감았다.“한 번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기모진이 대뜸 한 마디 했다.소만리는 붕대를 감던 손을 멈췄다. 이어서 그녀는 태연히 웃으며 물었다.“누굴 말씀하시는 거예요?”기모진은 대답 없이 그저 가볍게 훗 하고 웃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정말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내내 너무나 그 여자를 믿었어요.”소만리는 앞서 말한 것은 예전의 자신이고, 나중에 이른 것은 소만영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렇지만 기모진 당신이 생각도 못한 건 그것뿐이 아니야. 당신이 본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소만리는 다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물었다.“기모진 씨 말씀은 전처가 아들을 납치한 사건이 사실은 누가 한 건지는 아는데 믿고 싶지 않다는 말씀인가요?그의 섹시한 눈이 갑자기 몽롱해지는 듯 하더니 묵직한 시선이 복잡한 심정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맑은 눈을 바라봤다.기모진은 한참 만에야 천천히 손을 들었다. 체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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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장

소만리가 그 말을 하는 동시에 기모진의 품은 텅 비었다.삽시간에 그의 심장으로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그는 그제서야 꿈에서 깬 듯 했다.눈 앞에 있는 그 얼굴을 보고서야 기모진은 방금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을 뿐 아니라 그녀를 탐욕스럽게 안았다. 심지어 그녀도 마음 아파하며 자신을 꽉 안아주기를 바라기까지 했다.전례가 없던 일이었다.그러나 이게 다 순전히 그 얼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잘 알았다.예전의 그녀와 똑같은 그 얼굴.“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왔어요?”반기는 듯한 소만리의 목소리에 모진은 정신을 차렸다.그러고 보니 그녀가 했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약혼자가 왔어요.”‘약혼자?’“손님이 오셨나?”남자의 목소리가 저만치서부터 다가왔다.기모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 목소리가 아주 익숙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낯선 목소리도 아니었다.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천미랍의 약혼자라면 정말이지 깜짝 놀랄 노릇이었다.“모진이, 너냐?”기모진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검은 양복을 입은 기묵비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어깨는 밖에 내리는 비로 점점이 젖어 있었지만 신사적인 그의 풍모를 해치지는 않을 정도였다.두 쌍의 검은 눈동자가 마주쳤다.깊은 밤의 그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일순 불꽃이 이는 것 같았다. 기모진의 눈에서 한 줄기 불길이 타오르는 듯 했다.“누구신가 했더니......”기모진이 천천히 일어섰다.이때 소만리가 미소를 띠고 기묵비의 옆으로 다가가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껴안았다.“제 약혼자 기묵비 씨에요.”웃으며 소개를 하더니 의문에 찬 눈동자가 기묵비의 온화한 얼굴로 향했다.“방금 ‘모진이’라고 하던데 두 분 아는 사이에요? 아, 이제 보니 두 분 다 기 씨……”“내가 전에 말했던 조카가 바로 모진이야.”기묵비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창 밖의 밤처럼 부드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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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장

소만리는 고개를 저었다.“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어요. 아니었으면 기모진이 그렇게 번번이 날 ‘그 죽일 놈의 전처’라고 의심하진 않았을 텐데.”소만리는 치가 떨리도록 분한 마음을 실어 이 말을 뱉었다. 그러나 기묵비를 보더니 곧 웃었다.“걱정 하세요. 더 이상은 그 바보 같던 소만리가 아니에요. 제게 주신 ‘부활’의 기회를 절대 헛되이 버리지 않을 거예요.”기묵비는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 은은히 신비로운 느낌이 감돌았다.소만리는 비에 젖은 기묵비의 외투를 벗기고 새 목욕용품을 건넸다.그는 목욕을 하고 하얀 가운을 걸치고 수건으로 머리에 남은 물기를 털며 나왔다.그는 자연스럽게 소만리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귀염둥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기묵비는 천천히 몸을 기울여 사랑스럽다는 듯 염염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방 치워놨어요.”소만리가 가만히 방으로 들어왔다.기묵비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며칠 있다가 본가에 한 번 가야 하는데 같이 갑시다.”“네.”소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얼른 쉬어요. 잘 자요.”기묵비는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담담한 입술이 소만리의 이마에 닿더니 얼마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휙 돌아서서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소만리는 약간 얼이 빠진 듯 제자리에 서 있었다. 복잡한 기분이었다.그녀도 바보는 아니다. 기묵비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도와주는 데는 그녀를 향한 남자로서의 마음이 있을 터였다.6년 전 소만영이 목걸이 사건으로 모함을 할 때도 그녀가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영상을 찍어 은근슬쩍 그녀를 도와주었다.그러나 기묵비와 함께한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 그는 너무나 신비했다. 도저히 속을 알 수 없었다.그는 내내 신사적이었다.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듯 했다.쓸데 없는 생각을 털어내려고 소만리는 고개를 흔들었다.기모진은 나가서는 차에 앉아 있었다. 소만리 네 아파트 불이 꺼졌다.“기묵비”그의 입에서 기묵비의 이름이 터져 나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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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장

인파 사이로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소민리의 심장이 훅 조여왔다.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그러나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이 기모진에게 다가갔다.“브런치를 사겠다고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건가요?”그녀는 웃었다. 비 온 뒤의 아침 햇살이 청순한 얼굴에 비쳐 밝게 빛났다.기모진은 어딘가를 휙 돌아보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예비 숙모께서 제가 체면 차릴 기회를 안 주시는 건가요, 아니면 삼촌이 질투할까봐 걱정 되십니까?”“무슨 이런 일로 질투를 하겠어요?”소만리는 침착하게 웃고 있었지만 심장은 두근대고 있었다.아직도 그 익숙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만리야~”그 목소리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점점 더 가까워졌다.그러나 그녀는 태연히 기모진을 따라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만리야!”카페에 들어서려는 순간에 그 사람이 소만리의 앞으로 뛰어들어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만리야! 진짜 만리잖아!예선은 한껏 흥분해서 소만리의 손을 잡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려 화장이 다 얼룩질 판이었다.“만리?”소만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소만리 씨 예전 친구이신가 보네요. 아가씨도 절 소만리라고 착각하셨나 봐요?”소만리의 대답을 듣고 예선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어리둥절해서 서있었다.“착각이라니? 만리야, 이게 무슨 일이야? 여긴 어떻게 왔어?”예선은 의문투성이인 채였지만 어쨌든 만리를 만났다는 기쁨을 감출 수는 없었다.그녀는 팔을 활짝 벌려 소만리를 껴안아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실체라는 느낌을 만끽했다. 예선의 목소리가 떨렸다.“만리야, 너구나! 정말 잘 됐다! 만리가 살아 있었어!”그녀는 흥분에 겨워 소만리의 손을 꼭 쥐고는 기모진을 쌩 하니 노려봤다.“근데, 왜 저 쓰레기랑 같이 있어? 저놈이 소만영이랑 널 거의 죽일 뻔 했잖아! 어떻게 용서를 할 수가 있어? 가자! 이런 쓰레기랑 같이 있지 말고!”예선은 울분에 차서 기모진을 노려보더니 소만리를 끌고 가려고 했다.그러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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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장

기모진의 눈이 소만리의 우아한 뒷모습을 보더니 조용히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정말 저 사람이 소만리라고 생각하나?”“당연히 만리지!”예선이 확신에 차서 내질렀다.“기모진, 경고하는데, 다시는 우리 만리 건드리지 마라. 한 번만 더 우리 만리 다치게 하면 이제는 너 죽고 나 죽는 거야!”예선의 경고를 들은 기모진의 입술이 자조적으로 올라갔다.‘친구 조차도 그녀를 위해서 이렇게 필사적인데남편이라는 나는 도대체 뭐였나?’기모진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소만리는 차에 앉아서 곁눈질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멀어져 가는 예선의 뒷모습을 봤다. 예선이 멀어져 가며 그녀의 마음도 찢어질 듯 아팠다.‘예선아, 미안해.나는 이제 네가 알던 소만리가 아니야.이 복수를 끝내면 그때 그 만리가 널 찾아가서 사과할게.’소만리는 시선을 거두었다. 차가 막 한 블록을 지났을 즈음 그녀가 입을 열었다.“차 세워요.”기모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안색이 사뭇 어두웠다.그는 차를 세웠다. 소만리는 차에서 내리더니 그대로 걸어갔다.기모진은 갑자기 다급해졌다. 차에서 내려 급히 쫓아갔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았다.“어디 갑니까?”손목을 잡히자 그녀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표정이 나타났다.“아까는 사람이 많은 데라서 체면 차려드린 줄 아세요. 이렇게 자꾸 내가 소만리가 아닌지 확인하려고 드는 거 정말 짜증나네요.”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매우 불쾌하다는 뜻을 한껏 드러냈다.“애초부터 나랑 브런치 따위 먹을 생각은 아니었을 걸요. 소만리 씨의 친구가 거기 지나다니는 걸 알고 있어서 일부러 날 데리고 간 거잖아요, 아닌가요?”“맞습니다”기모진이 깨끗하게 인정하더니 그윽한 눈으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내 처랑 완전히 똑같이 생긴 건 그렇다 칩시다. 그러나 내 전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기묵비의 예비신부다? 이건 의심이 안 들 수 없다 이겁니다.”소만리는 그 말을 듣더니 가볍게 웃었다.“이 넓은 세상에 별별 일 다 벌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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