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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사랑한 여인의 모든 챕터: 챕터 2091 - 챕터 2100

2479 챕터

2091장

”띠리리링...”벨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고 남연풍과 강자풍은 유선전화기를 바라보며 서로 눈빛을 마주쳤다.잠시 후 남연풍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전화기를 들었다.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연풍 바꿔줘.”고승겸은 명령하듯 말했다. 전화기를 쥐고 있던 남연풍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내 말 안 들려? 남연풍 바꾸라니까. 남연풍이 거기에 있는 거 다 알아.”고승겸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재촉했다.순간 고승겸도 뭔가 눈치를 챈 듯 조심스럽게 내뱉었다.“남연풍?”“그래, 나야.”남연풍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답했다.“고승겸,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내가 말하고 싶은 말이야. 내가 곧 우리 아이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를 하게 될 거라는 거야.”고승겸의 음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투에는 뭔가 음침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남연풍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고승겸,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조금 있으면 다 알게 되겠지만 그전에 당신 나를 잠깐 만나야겠어.”고승겸에게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고승겸이 먼저 만나자는 제안을 하자 남연풍은 서슴지 않고 바로 응했다.그러나 만나기로 한 장소와 시간을 말한 뒤 남연풍의 마음이 왠지 씁쓸하고 공허했다.그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이 모두 사라진 상실감 때문인지 그녀의 마음은 온통 공허함에 사로잡혔다.고승겸은 남연풍과의 통화를 마친 후 다시 기모진과 소만리가 갇혀 있는 지하실로 돌아갔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빵과 물을 수조 속에 던졌고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승에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두 부부가 배불리 먹고 저승길 갈 수 있도록은 해 줘야지.”이 말인즉슨 결국 고승겸은 기모진과 소만리의 목숨을 끊겠다는 것이었다.그러나 기모진과 소만리는 당황하거나 겁먹거나 하지 않았다.고승겸도 그들이 이런 일로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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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2장

권세를 상징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 그는 일찌감치 물밑으로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사람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이 그를 멸망하게 만들지.”고승겸은 소만리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소만리는 지금까지도 저런 말을 내뱉는 고승겸에게 경멸하는 시선을 퍼부었다.“고승겸,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싸울 수는 있지만 결코 부당한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어.”“왜 안 되는데? 과정 따위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것은 결과야.”고승겸은 자신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았다.“그러니까 남연풍이 뭘 느끼는지 그녀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당신이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야. 맞지?”이 말에 고승겸의 얼굴빛이 싹 변했다.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소만리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쏘아붙였다.“소만리,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못 알아듣겠어? 그러니까 남연풍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느니 하는 말 따위는 집어치우라고!”“...”“당신이 진심으로 남연풍을 좋아한다면 그녀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 곁에 묶어두면서 이것저것 당신이 원하는 것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을 거야. 사실 남연풍은 당신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단지 당신이라는 사람을 맹목적으로 사랑해서 자아를 잃어버리면서까지 당신을 따랐던 거야. 그런데 당신은 어땠어? 오직 결과만을 쫓아 승리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지.”소만리의 송곳 같은 거침없는 말이 고승겸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찔렀다.“고승겸,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야.”“그만! 입 다물어!”고승겸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벌떡 일어서서 소만리를 노려보았다.“소만리, 여기서 나한테 가르치려 하지 마. 애초에 기모진이 당신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 잊었어? 기모진이 당신 기분을 신경 쓴 적 있었어? 지금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날 비난하는 거야? 오히려 그런 면에서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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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3장

흑강당 건물을 빠져나온 고승겸은 남의 눈을 피해 약국으로 가서 상처를 소독할 수 있는 재료들을 샀고 상가 화장실에 몰래 숨어들어 다친 팔과 다리를 소독했다.총상은 다른 외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고승겸은 아픈 건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총상은 사람을 참 애먹게 만들었다.산비아에서 파견된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화장실에 조심스럽게 몸을 숨겼던 고승겸은 남연풍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렸다가 상가를 빠져나왔다.날이 점점 어두워졌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이 시간에 서쪽 교외 부두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남연풍은 택시에서 내려 운전기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넨 뒤 휠체어를 타고 약속된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강자풍은 남연풍에게 자신도 함께 고승겸을 만나러 나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남연풍은 거절하고 혼자 나섰다.석양 아래 가로등이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었다.고승겸은 해안가에 서 있었고 그 모습이 그리 멀리 있지 않았지만 남연풍은 마치 천지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승겸은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을 듣고 마음속으로 누가 왔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고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연풍은 그해 초여름 그가 길거리에서 만났던 그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다.그들은 모두 변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승겸, 당신이 요구하는 대로 왔으니 이제 소만리와 기모진의 행방을 알려줘도 되지 않아?”남연풍의 첫마디에 고승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도 겉으로는 철저히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기모진과 소만리를 위해 날 만나러 온 거야?”남연풍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래, 맞아. 기모진과 소만리를 위해서 나왔어. 안 그러면 내가 왜 당신을 보고 싶어 하겠어?”이 말을 듣고 그의 입가를 맴돌던 자조 섞인 미소가 한층 더 깊어졌다.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남연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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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4장

”경연이라는 이름 당신 잊었어?”고승겸이 웃으며 되물었다. 남연풍은 물론 잊지 않았다.그 당시 고승겸이 경연을 처리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그를 막지 않았다.그러고 보니 그녀도 진작에 이 살인에 발을 담그고 있던 셈이었다.남연풍이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본 고승겸은 손을 들어 찬바람에 싸늘해진 남연풍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그녀의 얼굴에 난 흉터가 황혼 빛에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살았어. 이전에는 열정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너무 지쳤어.”고승겸의 눈빛이 점점 부드러워졌다.“당신 이번에는 산비아에서 온 사람들에게 내 행적을 신고하지 않은 것 같아, 그렇지?”고승겸은 탐색하듯 물었다.사실 그는 남연풍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며 긴장하던 모습을 본 순간부터 그녀가 무장 경찰들을 불러 그를 잡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남연풍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고승겸은 입꼬리를 잡아당겼다.잘생기고 영민한 얼굴에 오랜만에 부드럽고 애틋한 미소가 떠올랐다.“연풍, 우리에게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난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간다 하더라도 우리 사이는 예전처럼 될 수 없어. 그래서 오늘 밤만이라도 우리의 마지막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고승겸의 말에 남연풍은 그의 단호함을 엿볼 수 있었다.지금 그의 눈빛은 너무나 온화했지만 그 온화함은 사랑과 우정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복잡한 감정을 실은 것 같았다.남연풍의 마음이 지금처럼 안절부절못한 적은 없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승겸, 당신 돌아올 수 있어.”남연풍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고승겸은 단호하게 부정했다.“나도 더 이상 도망 다니고 싶지 않아. 이젠 너무 지쳤어.”그는 지쳤다고 말했다. 그녀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래서 어쩌려고? 오늘 밤이 지나면 당신 경찰에 자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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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5장

남연풍이 묻는 말에 휠체어를 끌고 가던 고승겸의 발걸음이 흠칫 멈추었다.석양에 반짝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고승겸의 눈에는 더 이상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세상을 해탈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 세상에 만약이란 없어.”그는 공허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남연풍에게 되물었다.“만약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로 돌아간다면 내가 또다시 당신에게 손을 내밀 것 같아? 어떨 것 같아?”남연풍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안타까운 듯 자조 섞인 미소를 띠었다.그녀는 고승겸이 여전히 그녀에게 손을 내밀 것이라고 믿는다.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미 일어난 일은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남연풍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고승겸은 다시 휠체어를 밀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석양이 부서진 바닷가에 어둠이 잔잔히 깔리더니 순식간에 눈앞의 모든 것이 칠흑 같은 적막 속으로 뒤덮였다.겨울밤 매서운 찬바람이 뺨을 할퀴고 지나가자 남연풍은 자신의 마음도 조금씩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비록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어떤 따뜻함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가서 자수해.”남연풍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내뱉었다.고승겸은 못 들은 척하며 남연풍의 휠체어만 계속 밀었다.고승겸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남연풍은 말을 이었다.“당신이 여기까지 온 데에는 내 잘못도 커. 난 지금까지 당신을 막은 적이 없어. 옳지 못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맹목적으로 당신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된 거야.”“이 길은 내가 선택한 거야. 당신 스스로 당신을 탓할 필요가 없어.”고승겸은 남연풍의 말을 일축했다.“연풍, 당신은 틀리지 않았어. 당신은 그저 날 끔찍하게 사랑하고 또 사랑했을 뿐이야. 그러니 내가 이 꼴이 되었어도 난 충분히 만족해.”“...”고승겸의 말에 남연풍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을 말없이 걷던 고승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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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6장

고승겸은 잠시 말을 멈추었고 얼굴색이 갑자기 변한 남연풍을 바라보았다.“내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해? 예전 같으면 내가 이렇게 해도 당신은 날 지지했겠지?”“글쎄. 그랬겠지. 예전 같았으면 심지어 난 당신을 도왔을 거야.”남연풍은 자조하며 말했다. 마음이 복잡하게 엉켜서 생각할수록 괴롭고 또 괴로웠다.그녀는 자신이 마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인 것 같았다.그래서 결국 그녀 자신도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남연풍은 그를 쳐다보았다.“당신 언제 기여온한테 주사를 놓았어?”“당연히 당신과 그 아이가 깊이 잠들었을 때지.”고승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고 돌덩어리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남연풍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그 아이가 마음에 든 모양이야. 그렇지? 만약 우리 아이에게 아무 일이 없었으면 곧 세상에 나와서 우리 곁에 있었을 거야.”순간 고승겸의 눈빛이 아련하게 부서지는 것 같다가 이내 원한으로 휩싸인 눈빛으로 돌변했다.“기모진이 우리 아이를 죽였고 소만리가 내 미래를 무참히 짓밟았어.”“당신은 아직도 잘못을 고집하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어.”남연풍이 쓴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고승겸을 응시했다.“마지막으로 물을게. 자수할 거야?”“자수의 끝이 뭔 줄 알아?”고승겸이 되묻고는 스스로 대답했다.“죽는 길뿐이야.”남연풍이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당신이 아까 지쳤다고 한 건 무슨 뜻이야?”고승겸은 천천히 일어나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았다.“난 절대 되돌아갈 수 없어. 앞으로 나가든 뒤로 물러서든 결과는 똑같아. 그러니 차라리 나 혼자 끝내는 게 나아.”“...”고승겸의 말에 남연풍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찬바람이 뺨을 사정없이 때렸고 숨 쉴 때마다 가슴 시린 바람이 그녀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무슨 말이야? 고승겸, 지금 뭘 하려는 거야?”남연풍이 다급하게 추궁하며 고승겸을 끌어당기려 해도 모든 힘을 상실한 두 다리는 아무 도움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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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7장

고승겸의 말을 듣던 남연풍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다.뜨거운 눈물이 고승겸의 손등에 떨어졌고 그의 가슴을 단숨에 태워 버렸다.고승겸은 남연풍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남연풍의 심정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을 느끼며 고승겸은 울먹거렸다.그는 있는 힘을 다해 비통함을 억눌러 보려고 했다.“연풍, 내 평생 당신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 내가 너무 옹졸해서 당신이 말없이 내 곁을 떠난 걸 원망하며 가슴속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집착했어. 그런 집착이 날 이렇게 못나게 만들었지. 결국 난 되돌아갈 길이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어.”고승겸은 슬픔을 참으며 남연풍의 손을 잡고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당신도 마음속에서 날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거 알아. 서로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나 같은 사람에게 사랑은 사치일지도 몰라.”“연풍, 인간에게 정말 다음 생이 있다고 생각해?”고승겸이 갑자기 엉뚱한 말을 물었지만 그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 차올랐다.“만약 있다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서도 날 만나 주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남연풍은 이 말을 듣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떨렸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썼다.“고승겸, 잘 들어. 사람에게 다음 생이란 없어.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고승겸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그녀는 그가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모든 업보를 내려놓으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렇게 한다고 모든 원한과 업보가 다 해결되겠는가.기모진과 소만리의 죽음은 고승겸이 죽었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남연풍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하지만 고승겸은 결연했다.그는 손을 들어 남연풍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살짝 닦아내었고 가로등 아래 그의 준수한 얼굴에는 마침내 예전에 보였던 그의 온화한 모습이 떠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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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8장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달콤한 세 글자가 남연풍의 심장을 후벼팠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고승겸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승겸은 이미 굳게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갈기갈기 찢겨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남연풍을 뒤로 한 채 고승겸의 발걸음은 점점 더 바다를 향해 갔다.매서운 칼바람이 찢겨진 그녀의 심장을 아프게 스쳤다.“안 돼! 승겸, 제발 그러지 마! 승겸!”남연풍이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고승겸을 잡으려다가 휠체어에서 넘어졌다.고승겸은 뒤에서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그는 차가운 모래 바닥에 넘어진 남연풍을 보았다.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부여잡고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향해 힘껏 손을 뻗었다.고승겸은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안 돼, 안 돼. 승겸, 안 돼...”남연풍은 고승겸이 몸을 돌려 자신의 떨리는 손을 잡기를 바랐지만 그는 좀체 돌아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지척을 사이에 두고도 두 사람은 이승과 저승에 있는 것처럼 닿을 수 없었다.그녀가 아무리 팔을 뻗어 보아도 그와의 거리는 한 치도 좁혀지지 않았다.“연풍, 당신은 똑똑한 사람이니까 나 같은 사람 잊고 이 번뇌와 고통스러운 과거를 잊어.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사는 거야.”고승겸은 마지막으로 말을 남기며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 바다를 향했다.남연풍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눈앞이 컴컴해졌다.“승겸, 안 돼!”남연풍의 감정이 무너졌다.그때 그녀의 뒤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겹겹이 들려왔다.남연풍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고승겸은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바로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고승겸, 지금 여기서 뛰어든다고 당신이 한 짓이 모두 깨끗이 지워질 것 같아?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아!”고승겸의 발걸음이 멈칫했고 도저히 그 목소리가 믿기지가 않았다.가로등 불빛이 이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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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9장

눈앞의 광경이 믿을 수 없었던 사람은 고승겸 뿐만이 아니었다.남연풍도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착각했다.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사람의 얼굴과 피부를 본 순간 남연풍은 자신이 착각한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소만리? 정말 당신이에요?”소만리는 자신을 보며 놀라워하는 남연풍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나예요. 어서 일어나세요.”“살아 있어서, 너무 다행이에요!”남연풍은 감격에 겨운 듯 눈시울이 붉어졌고 흐릿한 시선에 또 한 사람이 보였다.“기모진? 기모진 당신도 살아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정말 너무 다행이에요!”소만리는 남연풍이 진심으로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남연풍과는 반대로 고승겸은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고 멀쩡한 두 부부를 보더니 분노와 의문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며 고승겸은 담담한 척하며 가볍게 웃었다.“기모진, 당신 목숨 하나는 정말 질기군.”고승겸은 비꼬는 말투로 말하며 소만리를 힐끔 쳐다보았다.“두 사람이 함께 이 세상의 마지막을 맞이했으면 해서 당신을 끌어들였는데 오히려 당신은 기모진을 구했나 보군.”기모진은 다정한 눈길로 소만리를 쳐다보았고 의기양양하게 매서운 눈매를 들어 올려 고승겸에게 시선을 던졌다.“그래, 맞아. 아내를 내 곁으로 보내줘서 정말 고맙군. 내 아내만 내 곁에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어. 난 내 여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은 결코 눈 뜨고 볼 수 없거든.”기모진의 말을 들은 고승겸의 눈에는 점점 사악한 빛이 감돌았다.소만리는 기모진과 함께 힘을 합쳐 남연풍을 휠체어에 앉혔다.남연풍은 휠체어에 앉자마자 제일 먼저 고승겸 곁으로 다가가 맹렬하게 고승겸의 손을 잡았고 더 이상 그가 기모진을 향해 다가가지 못하도록 했다.“승겸,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내 말 들어. 우리 자수하러 가자.”남연풍은 혹시나 고승겸이 기모진과 소만리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까 봐 온 힘을 다해 고승겸의 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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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장

기모진의 대답에 고승겸은 가슴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잠시 후 고승겸은 간교하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자, 이제 당신과 나 사이에 사생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자, 어디 끝까지 가 보자구!”고승겸은 갑자기 어디선가 총을 꺼내 기모진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미리부터 그는 총을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고승겸,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마.”순간 저 앞쪽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자풍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왔다.강자풍의 뒤를 이어 그날 고승겸을 잡으러 온 무장 경찰들이 줄지어 따라왔다.고승겸은 순식간에 그들에게 빙 둘러싸였다.“고승겸,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만 총 내려놓으세요!”총을 든 무장 경찰이 경고했다.“우리는 상부의 명령을 따라 당신을 체포해 산비아로 데려갈 거예요. 만약 당신이 다시 폭력적으로 저항한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겁니다. 상황을 잘 판단하길 바랍니다!”“상황을 잘 판단하라고?”고승겸은 비웃으며 무장 경찰의 말을 반복했다.“당신들이 감히 나한테 그런 경고를 해?”“고승겸, 아직도 당신이 산비아의 자작 공자인 줄 아십니까? 당신은 이제 죄를 지은 탈주범일 뿐입니다.”“허, 허허...”고승겸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전락할 줄 몰랐다.평소 같았으면 그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사람들조차 이렇게 자신에게 큰소리치며 위협하다니.남연풍은 이를 보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승겸에게 다가왔다.“승겸, 제발 이 사람들을 자극하지 마. 내 말 들어줘. 제발, 이번 한 번만 내 말 듣고 저 사람들이랑 돌아가. 당신이 귀족 신분이니까 저 사람들도 감히 당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야.”남연풍은 떨리는 손으로 고승겸의 손을 잡았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저 사람들에게 신고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승겸, 제발 더 이상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 알았지?”애원하는 남연풍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고승겸은 눈살을 찌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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