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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사랑한 여인의 모든 챕터: 챕터 1921 - 챕터 1930

2479 챕터

1921장

고승겸은 갑자기 하던 동작을 멈추고 문 쪽을 쳐다보았다.뜻밖에 남연풍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당신 정말 소만리한테 손을 쓸 생각이군.”휠체어를 조종하며 천천히 들어오는 남연풍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를 놓아줘.”“난 소만리를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고승겸은 스스럼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남연풍, 당신은 우리의 아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난 내 아이를 이런 식으로 기모진의 손안에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아. 난 내 아이를 위해 복수하고 말 거야.”고승겸은 자신의 결심을 말하면서 눈에서 증오의 불꽃이 타올랐다.“고승겸, 내가 몇 번이나 말해야 정신을 차리겠어? 그 아이의 죽음은 기모진과는 아무 상관 없어. 소만리와는 더더욱 무관하다구.”“남연풍,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당신이야.”고승겸은 남연풍 앞으로 다가와서 말을 이었다.“기모진이 당신한테 AXT69 독소를 투여하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허, 허허.”고승겸의 말을 듣고 남연풍은 어이없어 하며 냉소를 날렸다.고승겸은 남연풍의 얼굴에 비꼬는 듯한 웃음이 흘러나오자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웃어?”남연풍은 웃음을 그치고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고승겸을 바라보았다.“설마 당신 잊었어? AXT69 독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잊었냐구?”이 말을 듣고 고승겸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남연풍은 또다시 웃으며 말했다.“사람의 정서와 사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 독소는 당신 고승겸의 명령에 의해 개발되었고 당신의 목표는 소만리였어.”“...”“소만리는 AXT69 독소가 든 와인을 마시고 난 후 독소에 감염되었고 마지막 네 번째 단계의 고통까지 모두 겪었어. 소만리를 그토록 사랑하는 기모진이 사랑하는 여자가 이런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했어?”남연풍은 또박또박 따졌고 마지막에는 넋을 잃은 듯한 고승겸의 눈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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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장

”소만리, 나예요.”남연풍은 손을 들어 소만리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남연풍?”소만리는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나예요.”남연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소만리, 여기는 산비아예요.”“산비아?”소만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정신을 잃기 전에 일어난 일들을 떠올렸다.소만리는 고승겸이 복수를 계획한 과정 속에 설정된 첫 번째 목표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천천히 생각을 가다듬고 있던 소만리의 귀에 자신을 도우려고 귀띔하는 남연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만리, 당장이라도 여기를 떠나고 싶겠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난 기모진이 당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당신한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여기는 산비아예요. 산비아에서 고승겸의 신분은 어마어마해요. 전에는 기모진이 사람이 많은 틈을 타서 어찌어찌 이곳에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잘 안 될 수도 있어요.”남연풍의 말을 듣고 소만리는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소만리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당연히 기모진의 안위였다.“남연풍, 핸드폰 있어요? 나 기모진한테 전화 좀 걸고 싶어요.”남연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나한테 핸드폰 없어진 지 오래예요.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 처지에 누구한테 연락할 수 있겠어요?”남연풍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고 이내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미안해요. 모두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에요. AXT69 독소는 내가 개발한 거예요. 기모진을 포함해 당신까지도 나 때문에 오랫동안 독소에 시달려 왔는데 지금은 또 내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당신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이 고통을 감당하고 있네요. 미안해요.”소만리는 남연풍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남연풍도 최선을 다해 잘못을 만회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소만리는 더 이상 지나간 일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소만리는 주위를 살피며 의문을 드러내었다.“여기가 고승겸의 서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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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장

남연풍은 소만리의 눈을 긴장한 듯 바라보았다.고승겸이 갑자기 돌아와 소만리를 도울 수 없을까 봐 남연풍은 전전긍긍했다.소만리는 서재 안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보았다.그녀는 이 서재에 CCTV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남연풍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고승겸의 시선 아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역시나 소만리의 예상대로 고승겸은 핸드폰으로 서재 안을 한눈에 보고 있었다.그때 소만리가 갑자기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고 책상에서 메모지 한 장을 뽑아 펜을 들고 그 위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고승겸은 화면을 확대시켜 소만리가 종이 위에 쓴 글씨를 똑똑히 보았다.: 만약 고승겸이 정말로 나에게 깊은 최면을 걸려고 한다면 이 종이를 기모진에게 줄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종이에 적힌 말을 보며 고승겸은 미간을 찌푸렸다.소만리가 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소만리는 똑똑한 여자였다. 이런 말을 쓴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고승겸은 핸드폰 화면을 쓸어 올리고는 바로 서재로 향했다.이때 소만리는 펜을 내려놓고 손에 든 메모지를 남연풍에게 건넸다.“만약 그가 정말 찾아온다면 기회를 봐서 이 메모지를 꼭 기모진에게 전해주세요.”남연풍은 메모지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지도 않고 조심스레 받으며 말했다.“걱정마세요. 꼭 기모진에게 전해줄게요. 나도 고승겸한테 가서 기모진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핸드폰 좀 달라고 해 볼게요.”“고마워요.”소만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승겸의 싸늘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고승겸은 여전히 무심한 듯 당당한 귀공자의 자태 그 자체였다.그러나 이전에 소만리를 대할 때 보였던 상냥하고 온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고승겸은 원래부터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매우 철저하고 지략이 깊었던 사람이었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다만 소만리에게 접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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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장

”그만해.”고승겸은 갑자기 소만리의 말을 끊었고 그의 얼굴은 노여움으로 가득 차올랐다.“소만리, 당신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럴 수 없어.”“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으니까 나한테 최면 걸고 싶으면 어서 해 봐.”소만리는 두려움 하나 없는 얼굴로 고승겸을 바라보았고 마음속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고승겸은 소만리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좋아. 당신이 그렇게도 강하게 원하고 있으니 내가 곧 당신을 만족시켜주지.”고승겸은 말을 마치자마자 양복 주머니에서 낡아 보이는 회중시계를 꺼냈다.소만리도 전혀 피하지 않고 그 회중시계를 바라보았다.소만리가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걸 보고 고승겸은 바로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이를 지켜보던 남연풍은 곧장 말리기 시작했다.“소만리, 당신 정말 미쳤어?”남연풍은 소만리가 이미 고승겸의 최면에 걸린 줄 알고 소만리를 깨우려고 시도했고 동시에 화를 내며 고승겸을 노려보았다.“만약 당신이 소만리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난 당장 당신 눈앞에서 죽어 버릴 거야!”고승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틈을 타 남연풍은 고승겸의 손에 있던 회중시계를 낚아챘다.“이리 줘.”고승겸은 남연풍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남연풍은 단호하게 말했다.“소만리 풀어줄 수 있어?”고승겸은 남연풍의 말을 듣더니 얼굴빛이 변하기 시작했다.“이리 줘.”그는 이 말만 계속 반복하면서 눈에는 점점 조바심이 일고 있었다.하지만 남연풍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는 휠체어를 움직이며 소만리의 곁으로 다가갔고 한 손으로는 소만리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나랑 같이 가요.”소만리는 잠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새 남연풍에게 이끌려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이 순간 소만리는 남연풍이 얼마나 자신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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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장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소만리는 깜짝 놀란 눈을 하고 여지경을 보았다.소만리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사님은 제가 왜 여기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여사님 아들이 날 여기로 특별히 데리고 왔기 때문 아니겠어요?”“...”잠시 침묵을 지키던 여지경은 소만리의 말뜻을 알아차렸다.고승겸이 강제로 소만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 분명했다.여지경이 소만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자 남연풍이 갑자기 손을 뻗어 여지경의 손을 덥석 잡았다.“여사님, 제가 예전에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린 행동 때문에 여사님께 상처 드린 건 알지만 예전의 정을 봐서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여사님이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요.”남연풍은 여지경의 손을 꼭 잡았다.“소만리를 놓아주세요.”여지경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지만 바로 거절하지 않고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여지경은 소만리를 보고 이미 마음이 흔들린 상태였다.“여사님, 소만리는 아무 죄가 없어요. 더 이상 나와 고승겸의 감정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도와주세요.”남연풍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나와 고승겸의 아이는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거예요. 기모진과 소만리와는 아예 아무 상관도 없어요. 여사님도 고승겸이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잖아요.’남연풍의 말이 여지경의 마음에 와닿았다. 당연히 자신의 아들인 고승겸이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길 원하지 않는다.고승겸이 지금 왕실 계승권을 쟁취하려고 하는 시점에 무슨 착오가 생겨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무엇보다 여지경은 남연풍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 그럼 내가 직접 이 집에서 나가게 해 주마.”여지경은 남연풍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돌아서서 소만리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고승겸의 모습이 유유히 나타났다.“누구도 소만리를 여기서 나가게 할 수 없어요.”고승겸의 말투는 유려했지만 말 사이사이에 비치는 그의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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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장

소만리는 발코니로 나갔다.그녀는 손을 들어 습관적으로 약지에 있는 결혼반지를 만지려고 했다.그러나 손가락이 휑했다.기모진을 위해 단서로 남겨 두려고 일부러 호텔 방 카펫 위에 떨어뜨린 걸 그녀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아마도 반지는 지금 기모진의 손에 있을 것이다.그녀는 자신이 남긴 단서를 기모진이 꼭 봤을 것이라고 믿는다.“모진, 우리가 또 이런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상황에 놓일 줄은 몰랐네.”“하지만 이번에는 고승겸이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을 완전히 씻어 버리고 내 생각과 기억을 최면으로 세뇌시켜 버릴지도 몰라.”“그렇데 되더라도 날 제발 이해해 줘, 모진. 난 알아. 당신이 날 이해해 줄 거라는 걸.”소만리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딸칵.”문이 열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고 소만리는 이 발자국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 것 같았다.“당신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고승겸의 무심한 말투가 소만리의 귀에 꽂혔다.소만리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고승겸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잠자코 서 있었다.고승겸은 소만리의 외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에게 다가왔다.“당신한테 한 가지 말해 줄 소식이 있어. 기모진이 산비아에 왔다는군.”고승겸은 소만리를 바라보았고 그녀가 강하게 반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고승겸은 그런 소만리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듯 물었다.“왜 이제 신경도 안 쓰여?”소만리는 그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구부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내 남편은 날 꼭 찾아낼 거야. 원래 예상했던 일인데 뭐가 놀랄 게 있어.”소만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그제야 맑고 깨끗한 눈망울을 들어 올려 고승겸의 희미한 시선을 마주했다.고승겸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담담한 그녀의 미소를 지금 또다시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소만리, 당신은 정말 특별해.”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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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장

고승겸은 최면 상태에 빠져 있는 소만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가 잘못 듣지 않았다. 소만리는 방금 누군가의 이름을 확실히 말하기는 했다.그러나 그 이름은 뜻밖에도 기모진이 아니었다.고승겸이 계획한 최면 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었다.그는 소만리를 보면서 그녀의 마음을 자신이 이끄는 대로 끌어오려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소만리, 다시 한번 더 물어볼게. 이 수정구 안에 누가 보여?”눈을 감고 있던 소만리는 고승겸의 물음에 자연스럽게 말했다.“여온이, 우리 딸 여온이가 보여.”고승겸은 같은 이름을 말하는 소만리의 대답을 듣고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딸 기여온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기여온은 지금 F국에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황이라 그녀가 이렇게 마음 졸이며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소만리의 반응에 고승겸의 최면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그는 임기응변이 빠른 사람이었다.그는 항상 자신의 최면술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데에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심리학에도 조예가 깊은 그에게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었다.그는 눈앞에서 이미 최면 상태에 빠진 소만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최면을 건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고승겸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아래층으로 내려오려던 남연풍은 마침 고승겸이 소만리의 방에서 나오자 시중에게 휠체어 방향을 바꾸어 달라고 부탁하며 고승겸을 향해 소리쳤다.“고승겸, 거기 서!”고승겸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처음에는 남연풍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다가 남연풍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고승겸은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연풍을 바라보았다.“나한테 또 뭘 가르치려고 그러셔?”그가 차가운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비꼬았다.남연풍은 손가락을 들어 소만리의 방을 가리켰다.“뭐 하러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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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장

”그런 거야.”고승겸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눈빛만은 부드러웠다.“연풍, 당신은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어. 당신은 치료만 잘 하면 돼. 걱정하지 마. 돈이 얼마나 들든 마음에 두지 마. 내가 당신 다친 거 다 고쳐줄 거야. 내가 당신을 다시 일으켜줄 거라고.”고승겸은 결연하게 다짐하며 일어나 남연풍의 뒤로 다가가 휠체어를 천천히 밀었다.남연풍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지금의 고승겸이 마치 무언가에 최면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복수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승겸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연풍의 휠체어를 밀고 갔다.고승겸이 밀어준 휠체어를 타고 자신의 방으로 옮겨진 남연풍은 시종일관 마음을 놓지 못했다.아무래도 고승겸의 행동이 수상했다.그녀는 소만리가 지금 분명 고승겸에 의해 깊은 최면에 걸렸다고 확신했지만 깊은 최면에 걸린 소만리가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는 알지 못했다.남연풍이 방문을 나서려는데 시중이 그녀를 막았다.고승겸이 당분간은 아무데도 못 나가게 했다고 시중은 털어놓았다.결국 남연풍은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고승겸이 이런 지시를 내린 것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로부터 이틀 후 남연풍도 뭔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밖이 매우 떠들썩했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남연풍은 때때로 누군가의 웃음소리도 들었다.의아해하던 남연풍이 시중에게 물었고 시중은 그제야 대답해 주었다.“겸 도련님 곧 결혼하실 거예요.”결혼?!남연풍은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미동도 하지 못했다.“딸깍.”이때 방 문이 갑자기 열렸다. 여지경이 들어와 시중을 밖으로 내보낸 후 남연풍의 곁으로 다가왔다.여지경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남연풍을 바라보며 남연풍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승겸이가 곧 소만리와 결혼하게 될 거야. 그냥 형식적인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여지경은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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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장

”소만리...”남연풍은 천천히 걸어오는 소만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분명히 눈앞에 있는 소만리에게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만리가 방 문을 들어서며 살짝 미소를 지었고 남연풍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당신이... 내 약혼자의 친구인가요?”“...”남연풍은 소만리의 말을 듣고 정신이 멍해졌다. 소만리가 최면에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지금의 소만리는 더 이상 남연풍이 알던 그 소만리가 아닌 것이었다.소만리가 말하는 모든 것은 다 고승겸의 지시에 따른 것이리라.남연풍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빤히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는 남연풍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잠시 후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난 당신을 기억해요. 당신은 남연풍이죠. 당신과 나 사이에 약간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승겸은 나에게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며 그가 곧 나와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 했어요. 우리 사이의 불미스러운 감정이 오늘 이 기쁜 결혼식을 계기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남연풍은 소만리의 말투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소만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고승겸은 소만리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성질과 기질을 모두 완전히 조작해 버렸다.눈앞에 있는 소만리는 전혀 원래의 소만리답지 않았다.눈앞의 그녀는 유순한 말투에 다정한 듯 사람을 대했다.누군가의 말에 아주 순종적인 온순한 소녀 같았다.소만리는 예전부터 그런 순종적인 소녀의 기질은 없었지만 지금의 표정과 얼굴은 시종일관 말갛고 온순해 보였다.남연풍은 고승겸이 소만리를 이런 성격으로 만들 줄은 몰랐지만 생각해 보니 고승겸이 이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성격의 소만리라야 고승겸은 그녀를 조종하기가 쉬웠을 것이다.예전의 소만리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잠시 후 남연풍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당신 말이 맞아요. 과거에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든 그건 다 지난 일이에요.”남연풍은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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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장

여지경의 귓가에 기뻐하는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지경은 이를 듣고 소만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았다.고승겸은 소만리의 의식에 깊은 최면을 걸었고 지금의 소만리의 머릿속에는 고승겸이 오랫동안 자신이 사랑했던 기모진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그녀의 사상, 눈빛 모두 허황된 허상에 가려져 버렸다.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기모진이다. 이 사실은 최면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그래서 고승겸이 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을 가려 버리는 것이었다.“그래,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구나. 축하해.”여지경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소만리는 이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눈을 들어 올렸다.순간 그녀의 눈동자 속에 환한 빛이 감돌았다.소만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는 고승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승겸.”소만리는 소리쳤다. 마주 오는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기모진의 모습이 비췄다.그녀가 외친 이름은 고승겸이었지만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는 여전히 기모진을 향한 말이었다.고승겸은 입술을 오므리며 소만리에게 향했다.여지경은 이 모습을 보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왜 더 자지 않고. 내일은 바쁠 텐데.”고승겸은 다정한 목소리로 소만리에게 말을 걸었다.소만리에게 있어 왕자는 고승겸이었고 그녀의 눈 속에는 애정이 흘러넘쳤다.그녀의 얼굴에는 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와 함께 발그레한 홍조가 번졌다.그야말로 풋풋한 소녀의 모습이었다.“당신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기뻐요.”소만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고승겸은 그런 소만리를 보며 그녀가 얼마나 기모진을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그가 지금 바라본 그녀의 사랑과 수줍음, 기쁨은 모두 기모진에게서 나온 그녀의 감정이지 자신에게서 비롯된 감정은 아니었다.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그는 기모진이 부러워졌다.이런 감정은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아낄 때만 나오는 모습이기 때문이다.기모진을 생각하며 말할 때 소만리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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