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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사랑한 여인의 모든 챕터: 챕터 1751 - 챕터 1760

2479 챕터

1751장

발소리를 듣자마자 남연풍은 고승겸이 올라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녀도 더 이상 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자신이 우러러보고 사모하는 남자 앞에서 자신의 못난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다.남연풍은 고승겸이 나타난 순간 몸을 돌려 칼자국이 남아 있는 오른쪽 뺨을 고승겸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돌려 여전히 섬세하고 고운 그녀의 왼쪽 얼굴만을 드러내었다.장애인이 된 두 다리를 숨기는 유일한 선택은 침대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모습뿐이었다.고승겸은 침대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 남연풍을 보며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는 심드렁한 남연풍의 얼굴을 관찰하듯 가만히 바라보았다.“내가 시킨 일 벌써 잊어버렸어?”고승겸은 차갑게 물었다.그가 물었는데도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남연풍을 보고 고승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남연풍.”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말속에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초요는 남연풍을 보다가 고승겸이 남연풍에게 다가가려 하자 고승겸의 앞을 가로막았다.“고 선생님. 남연풍 씨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니 그만 남연풍 씨의 뜻을 존중해 주시죠.”고승겸의 발걸음이 어쩔 수 없이 멈추었고 불쾌한 그의 눈빛은 집어삼킬 듯 초요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꿈쩍도 하지 않는 초요의 표정을 보며 그의 불쾌한 눈빛도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그때 산비아 칼리지에서는 너한테 이런 패기가 있었는지 몰랐어. 산비아에 오래 있어 봐서 나에 대해 잘 알 텐데, 그지? 지금 내 권위에 도전하는 거, 진심이야?”고승겸의 말에는 경고의 의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그러나 초요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물러서지도 않았다.그녀는 고승겸의 차갑고 가시 돋친 시선을 당당하게 받으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고 선생님. 여기는 산비아가 아니라 경도라는 걸 확실히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당신 집이 아니에요.”“허, 참 재미있군.”고승겸은 야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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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장

남연풍의 말투는 어느 때보다도 더 단호하게 들렸다.고승겸은 어리둥절한 듯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남연풍, 지금 당신 무슨 말하는지 알고 있어?”“알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남연풍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나 이미 다 알아차렸어. 바보처럼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 나와 고 선생은 원래 서로 이용하는 사이였잖아. 당신은 날 이용해서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고 사실 나도 당신을 이용했던 것뿐이야.”이 말을 듣고 고승겸은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나를 이용했다고?”그는 헛웃음이 나왔다.“당신이 날 어떻게 이용했는데?”“내가 당신을 이용했다는 걸 아직도 눈치 못 챘어?”남연풍이 되물으며 창백해 보이는 한쪽 입술을 경멸 섞인 웃음으로 살며시 끌어당겼다.“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날 호사스럽게 생활하게 해주고 가장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 줄 알았어요.”“난 줄곧 불쌍한 척하며 당신과 여지경의 동정이나 얻었지. 난 당신들이 계속 날 그 집에 머물게 하길 바랬어.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게 만들어서 여지경에게 직접 요구하게 만들었어. 날 계속 당신의 친구로, 공부 파트너로 옆에 있게 해 달라고.”“흥.”남연풍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고승겸, 나 연기 잘했지? 나라는 사람은 항상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 당신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렇지만 틀렸어. 우린 그냥 서로를 이용하는 사이였어. 당신 앞에서 보였던 내 모습은 전부 다 꾸며낸 거였어. 지금 이 모습이야말로 나 남연풍의 가장 진실한 모습이야.”남연풍의 말을 들은 고승겸의 얼굴에 순간 노기가 사라졌다.그는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남연풍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지금 당신이 한 말 모두 사실이야? 정말이냐구?”“사실이 아니면?”남연풍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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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장

초요와 남사택은 소리를 듣고 동시에 달려갔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남연풍이 침대에서 떨어져 있었다. 보아하니 일부러 그런 것 같았다.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걸을 수 없었던 남연풍은 기어서 발코니 쪽으로 갔다.남사택은 마음이 아팠다. 이런 남연풍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아무리 밉고 악랄해도 그에게는 하나뿐인 친누나였다.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할 수가 없었다.그는 하반신을 질질 끌며 기어가는 남연풍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당겼다.“남연풍, 뭐 하는 거야! 당신 미쳤어!”남사택은 노발대발했다.그는 화가 나서 흥분을 참지 못하고 폭발했지만 이런 남사택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남연풍을 걱정하고 신경 쓰는지를 보여 주었다.하지만 남연풍은 남사택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며 남사택의 손을 힘껏 뿌리쳤고 어느새 붉어진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놔! 남사택. 설마 방금 내가 한 말이 다 사실인 줄 아는 건 아니겠지? 난 너와 화해하지 않았고 여기를 내 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게다가 널 동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구! 당장 이 손 놔!”남연풍의 매정한 말에 남사택은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글썽이며 남연풍을 바라보았다.“당신은 그렇게도 저 남자가 좋아? 좋아서 자존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그래, 좋아. 갈 테면 가. 폐인처럼 기어서 그 남자 만나러 가!”남사택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남연풍의 매정한 말에 손을 놓아주었다.남연풍은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떨어졌다.초요는 남사택이 정말로 남연풍의 손을 놓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얼른 남연풍을 부축하려고 다가갔지만 이미 늦었다.바닥에 쓰러진 남연풍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을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베란다로 기어갔다.그녀의 단아하고 아름다운 두 눈에 영롱한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하지만 남연풍이 기어가는 속도가 어떻게 고승겸의 긴 다리보다 빠를 수 있겠는가.남연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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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장

태블릿을 받아든 고승겸은 화면에 뜬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저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그러니까 이 여자랑 결혼하라구요?”고승겸은 의혹에 가득 찬 눈으로 여지경을 바라보았다.여지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지금 너한테 가장 적합한 사람이야. 승겸아, 넌 큰일을 할 사람이야. 엄마는 네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한 여자 때문에 네 창창한 앞길을 그르치면 안 되잖니.”고승겸은 화면 속 사진을 보며 혐오감을 감추지 못하다가 얼마 전 남연풍이 한 말이 생각나서 웃음을 터트렸다.“걱정 마세요. 앞으로 제 마음은 온통 사업에만 전념할 거니까요. 어떤 여자도 저의 이런 의지에 방해가 될 순 없어요.”“그럼 다행이구나.”여지경은 몸을 일으켜 옆에 있던 집사에게 지시를 내렸다.“당장 혼례를 준비하도록 해. 반드시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러야 한다는 거 명심하고. 산비아의 모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게 말이야.”“알겠습니다, 부인.”집사가 즉각 대답했고 계획을 세우려고 바삐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잠깐만.”고승겸이 집사를 멈추어 세웠다.여지경은 고승겸을 쳐다보며 물었다.“내가 지시한 말에 무슨 더 할 말이나 불만 있니?”“결혼식은 경도에서 했으면 좋겠어요.”고승겸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여기서?”“경도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에서요.”“그렇지만 넌 산비아에서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야. 결혼식은 단순한 혼례식이 아니라 대결의 서막이기도 해.”여지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승겸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강요하는 말투는 아니었고 완곡하게 일깨워주듯 말을 이었다.“이유나 한 번 들어보자꾸나. 이유가 뭐니?”“기모진.”고승겸은 별로 깊은 고민 없이 이 세 글자를 말했다.여지경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럼 네 뜻대로 경도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자꾸나.”그녀는 말을 마치고 집사를 바라보았다.“어서 가서 알아봐.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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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장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간호사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자신이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려던 순간 계좌이체가 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간호사는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가방을 살 수 있겠다 싶어 기뻐했다.계좌이체가 된 것을 확인한 간호사는 그동안 기여온이 받아온 진료 기록과 자료들을 모두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병실 문을 닫았다.간호사가 나간 지 1분도 되지 않아 크고 훤칠한 그림자가 병실 입구에 나타났다.남자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문을 밀고 병실로 들어갔다.소만리가 의사를 만난다고 나간 후 기여온은 병실 안의 상황은 신경 쓰지 않고 베란다 소파에 앉아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바로 앞의 경치만 바라보고 있었다.그런데 누군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기여온은 몸을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기여온을 향해 다가오던 강자풍의 발걸음은 기여온의 시선을 느끼자 천천히 멈추었다.그는 갈색 외투에 마스크를 쓰고 분홍빛 안개꽃 다발을 들고 있었다.다른 한 손에는 알록달록한 사탕이 든 투명한 유리병이 쥐어 있었다.기여온은 강자풍을 보자 큰 눈을 깜박거렸다.작은 손으로 소파를 짚고 일어서려 했지만 매일 꽂아대는 주사 때문에 체력이 바닥나 있어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기여온이 뭘 하려는지 눈치챈 강자풍은 얼른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빠른 걸음으로 기여온에게 다가갔다.갑자기 눈앞에 다가온 강자풍에게 기여온은 작은 머리를 들고 강자풍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기여온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강자풍은 눈썹을 찌푸린 채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앉아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기여온 앞에 내밀었다.기여온은 안개꽃을 가장 좋아했다. 그녀는 작은 손을 천천히 들어 꽃다발을 감싸 안았다.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한 마디조차 내기 어려웠다.기여온은 자신의 처지가 속상한 듯 눈을 내리깔았고 그녀의 곱슬곱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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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장

강자풍의 놀란 모습을 보고 기여온은 눈을 내리깔고 강자풍의 시선을 피하며 허공에 들려 있던 모자를 집어 들어 살며시 썼다.강자풍이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여온아.”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고 그의 진지한 눈이 빛을 잃은 듯 시무룩해진 기여온의 눈을 에워쌌다.“여온아, 오빠랑 같이 갈래?”강자풍은 다정하게 물었다. 어조는 다정했지만 말속에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그는 소만리가 돌아올까 봐 걱정되었다.기여온은 강자풍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이며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여온아, 오빠는 여온이 병을 고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거야. 여온이가 병이 나으면 예전처럼 말도 할 수 있을 거야.”이번에는 강자풍의 말귀를 어렴풋이 알아듣는 듯 기여온의 수정 같은 눈이 반짝거렸고 기여온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엄마, 아빠.”엄마, 아빠.이것은 기여온이 현재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강자풍은 기여온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기여온은 엄마 아빠랑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이었다.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기여온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졌다.“여온아, 오빠는 여온이의 엄마 아빠처럼 영원히 여온이를 사랑하고 돌봐줄 거야. 오빠 믿어.”“오빠 믿어.”강자풍은 굳게 약속했고 갑자기 두 팔을 벌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 기여온을 번쩍 안아 올렸다.기여온은 어렸지만 강자풍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기여온은 이 오빠가 자신에게 아주 호의적이었고 괴롭힌 적도 없으며 때때로 나타나 자신을 보호해 주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기여온으로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었다.소만리는 의사의 진료실을 나오면서 의심스러운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의사는 소만리에게 자신은 기여온의 보호자를 찾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기여온의 병세는 현재 호전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악화되지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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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장

기여온과 강자풍 모두 소만리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그들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보니 소만리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기여온의 몸이 소만리를 향해 기울어졌지만 강자풍은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내 딸 내려놔!”소만리는 강자풍을 향해 소리치면서 여온을 안심시켰다.“여온아, 괜찮아. 겁내지 마. 엄마 곧 여온이 데리러 갈게.”그러나 강자풍은 소만리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앞에 있던 차 문을 열고 기여온을 안고 재빨리 올라탔다.“여온아, 여온아!”소만리는 연거푸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떠난 차를 막을 수는 없었다.위치 추적 장치로 기여온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만리는 얼른 주차장으로 달려가 자신의 차를 몰고 따라갔다.그녀는 평생 이렇게 험하게 차를 몰아본 적이 없었지만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기여온이 탄 차를 따라갔다.기여온을 안고 뒤 칸에 앉아 있던 강자풍은 백미러를 통해 소만리의 차가 바짝 뒤따라오는 것을 보았다.“안전하게 차를 몰되 최대한 빨리 가 줘.”강자풍이 차를 운전하는 기사에게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 도련님.”강자풍의 수행원이 말했다.“엄마.”갑자기 기여온이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불렀다. 강자풍은 옆으로 얼굴을 돌렸다.기여온이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차 뒤쪽 유리창 너머로 소만리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알고 보니 여온은 자기 엄마의 차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강자풍은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미 벌어진 일 마음속 결정은 확고했다.그는 손을 들어 모자를 쓴 기여온의 작은 머리를 다정하게 어루만졌다.“여온아, 오빠 믿어. 오빠는 반드시 여온이 병 고칠 거야. 병이 다 나으면 오빠가 엄마랑 아빠랑 오빠 만날 수 있게 여온이를 집에 다시 데려다줄게.”기여온은 강자풍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었지만 수정같이 맑은 눈동자에는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강자풍이 슬쩍 뒤를 돌아보니 소만리의 차가 아직도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는 수행원에게 방향을 틀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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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8장

소만리는 앞에 있는 골목을 지나 강자풍의 차를 막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핸드폰 화면에 기여온의 위치를 알려주던 빨간 점이 이상해졌다.분명히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었는데 뒤로 가더니 이내 그 자리에 멈추었다.잠시 동안 소만리는 자신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핸들을 돌려 빨간 점이 멈춘 곳으로 차를 몰았다.그러나 빨간 점이 멈춘 것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 한복판이었다.눈앞에서 차들이 서로 엇갈리며 지나갔고 빨간 점은 움직이지 않았다.소만리는 기여온의 몸에 있던 위치 추적 장치를 누군가가 버렸음을 깨달았다.차들이 오가는 도로를 바라보며 화창한 겨울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만리의 눈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는 것 같이 눈앞이 캄캄해졌다.“여온아.”소만리는 기여온의 이름을 부르며 깊은 무기력감에 빠져들었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전화를 받고 쏜살같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소만리는 기여온의 위치 추적 장치가 멈춘 도로 근처 화단에 앉아 넋이 나간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런 소만리를 보니 기모진은 덜컥 걱정이 앞섰다.“소만리.”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고 그녀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위로해 주었다.“소만리, 너무 걱정하지 마. 여온이를 잡아간 사람은 반드시 목적이 있을 거야. 당분간 여온이를 해치지는 않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당분간이 아니라 절대로 여온이한테 아무 일 없어야 해. 꼭 그럴 거야.”소만리는 결연하게 말했다.“여온이를 잡아간 사람은 강자풍이야.”“강자풍이라고?”“응. 확실해. 강자풍이야.”소만리의 말투는 매우 확고했다.소만리는 기여온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그때 조급하긴 했지만 당황하지 않았고 소파에 놓인 분홍빛 안개꽃 다발과 사탕을 보고 알아차렸다.이렇게 몰래 와서 꽃다발과 사탕을 선물하는 사람은 강자풍밖에 없다.“정말 강자풍이라면 걱정하지 마. 강자풍은 절대 여온이를 해치지 않을 거야.”기모진은 마음이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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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장

소만리는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정말 예상대로 강자풍의 전화였다.강자풍은 원래 차단해 두었던 그녀의 전화번호를 차단에서 해제해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소만리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강자풍, 여온이 어디로 데려간 거야? 어서 우리 여온이 돌려줘.”소만리의 말투가 다급했다. 그녀가 얼마나 애를 태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강자풍도 소만리의 초조한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의 말투는 차분했다.“부인, 전 당신이 지금 당신의 소중한 딸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제가 전화한 건 당신에게 여온이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예요. 안심하셔도 됩니다. 당신의 소중한 딸은 괜찮아요.”강자풍는 평소 소만리에게 하는 말투와는 다른 말투로 말했다.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런 말투로 여온이의 안부를 전하니 소만리는 더욱 불안해졌다.“강자풍, 무사하다는 말 따윈 필요 없어. 난 내 딸을 직접 보고 싶어. 내 딸은 내 곁에 있어야 안심이야.”전화기 너머 강자풍은 잠시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이렇게 나온다면 당신을 실망시키는 수밖에 없죠.”소만리는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멍해졌다.“강자풍, 그게 무슨 말이야?”“내 말이 이해가 안 돼?”강자풍은 의미심장한 말투로 되물었고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두 글자를 내뱉었다.“누나.”“...”소만리는 잠시 정신이 얼떨떨했다.처음 강자풍을 만나고 친해졌을 때 그는 줄곧 소만리를 누나라고 불렀다.소만리에게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호칭이었지만 지금 강자풍이 이렇게 부르는 것은 뭔가 꺼림직했다.“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있어? 누나? 말해 봐. 되돌릴 수 있냐구?”강자풍은 마음 깊숙이 품었던 말을 내뱉듯 소만리에게 물었다.이윽고 강자풍은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 대답했다.“이미 일어난 일도, 이미 죽은 사람도 모두 다시 되돌릴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고설켰다.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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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장

강자풍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경도 공항이었다.아까 전화에서 강자풍이 말했을 때 그가 기여온을 데리고 경도를 떠날지도 모른다고 기모진은 생각했다.아니나 다를까 항공편을 알아본 결과 강자풍은 경도에서 F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비행기는 불과 5분 전에 이륙했다.비행기를 가로막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기모진은 가장 빠른 F국행 비행기 표를 바로 예매한 후 F국에 있는 IBCI의 동료들에게 연락해 강자풍을 막으라고 요청했다.소만리도 이 사실을 안 후 기모진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F국으로 가고 싶었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함께 공항에서 출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장 빠른 비행기는 3시간 뒤여서 그들이 공항에서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그러나 2시간 뒤 기모진은 F국에 있는 IBCI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 동료가 말하길 기모진이 말한 비행기는 F국에 도착했지만 강자풍 자신은 그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강자풍은 아예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F국에도 가지 않았다!속임수였다!소만리와 기모진은 한순간에 방향을 잃어버렸다.강자풍이 그들에게 이런 수법을 쓸 줄은 정말 몰랐다.그 후 며칠 동안 기모진은 여전히 강자풍의 행방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쫓아다녔지만 강자풍은 어디 깊숙이 숨었는지 좀처럼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겨울이 가고 봄이 왔지만 강자풍과 기여온에 대한 소식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오후, 소만리는 마당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들을 보고 있었다.분명 아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기뻐해야 하는데 아직도 찾지 못한 어린 딸아이를 생각하면 자신의 심장에 구멍이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소만리, 여기 앉아서 뭘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냐?”사화정이 갑자기 뒤에서 다가왔다.소만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아직 정신이 완전히 완쾌되지 않은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다.마음속에서 울컥했다. 사화정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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