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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황제가 사랑한 여인: Chapter 1691 - Chapter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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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장

수첩을 쥔 남연풍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낯익은 글씨체를 보자 매서운 찬바람에도 그녀의 눈가는 순식간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얼마나 지났을까.남연풍은 빨간 입술을 깨물고 작은 수첩 한 귀퉁이를 움켜쥐며 싸늘한 표정으로 일어섰다.눈가에 자욱하게 드리운 안개가 그녀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눈앞의 묘비에 새겨진 글씨를 한없이 바라보다가 마침내 돌아섰다.며칠 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기묵비가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소식이었다.기묵비의 사진, 학력, 배경, 모든 신상 자료가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사형을 두고 쾌재를 불렀다.죄를 지은 사람은 동정과 안타까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초요도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 소식을 본 순간 그녀는 온몸이 얼음 저장고에 고립된 사람처럼 차갑게 굳어 버렸다.역시나 그는 항소하지 않고 기꺼이 사형을 받아들였다.사형 집행 날짜도 앞당겨졌다.초요는 거실에서 도우미와 놀고 있는 두 아이를 보고 생각 끝에 외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그녀가 현관에 이르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매달렸다.“엄마, 어디 가?”어린 녀석이 천진난만한 눈망울에 호기심을 가득 채운 채 초요를 바라보았다.초요는 몸을 구부리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엄마 지금 아저씨 잠깐 보러 갔다 올게.”“아저씨? 그때 나 풍선 주워 준 잘생긴 아저씨 아니야?”아이가 작은 입을 열심히 움직이며 물었다. 비록 말이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초요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녀는 아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나도 가고 싶어.”아이가 작고 귀여운 손을 흔들었다. 초요는 잠시 망설인 뒤 아이에게 되물었다.“서일이도 정말 가고 싶어?”“응!”아이는 단번에 대답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초요는 잠시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서일이도 같이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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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장

초요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감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손을 맞잡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조금도 따스함을 가져다주지 못했다.초요가 들어간 후 교도관에게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지금 기묵비의 상황이 특수한 관계로 교도관은 초요에게 밖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기다리는 동안 초요의 마음은 타들어갔다.그녀는 대기실을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한 표정으로 교도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관이 다시 돌아왔지만 초요의 마음을 차갑게 하는 답을 가져왔다.“기묵비는 지금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당신은 더더욱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초요가 놀라서 멍하니 교도관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지금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였군요.그녀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고맙습니다.”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초요는 바로 돌아섰지만 두 걸음 걷다가 다시 돌아섰다.“그 사람, 정말 곧 사형 집행되나요?”교도관은 초요의 두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교도관의 눈빛을 마주한 초요는 눈앞이 그야말로 캄캄해졌고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계속 밖에서 초요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더욱 오래 기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초요가 기묵비를 만났다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결국 초요의 모습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정말 숙부님이 결심을 하신 모양이야.”소만리와 기모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숙부님도 많이 고심하시고 한 결정일 거야.”“그럼 숙부님의 뜻을 존중해 드리자고. 마지막 소원이시라면 들어드려야지.”“그래.”소만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갑자기 차가운 겨울 햇살에 한 줄기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초요는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을 줄곧 넋을 잃고 집에 틀어박혔다.외출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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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장

몇 마디 되지 않는 기모진의 말이 초요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그가 떠났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초요는 바로 알 수 있었다.“초요, 듣고 있어?”기모진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초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듣고 있어요.”감정을 자제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그녀의 목소리 속에 떨림은 감출 수가 없었다.“고마워요. 모진 오빠. 다른 할 말이 없으면 전화 이만 끊을게요.”이 말과 거의 동시에 초요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무슨 말을 할 용기도 나지 않아서 잠자코 듣기만 했지만 다른 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눈앞의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거세게 내리는 비는 마치 그녀의 심장을 적셔버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내리쳤다.품에 안긴 노란 장미도 한순간에 본래의 빛을 잃은 듯했다.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그녀의 시야에는 흐릿하게 흔들리는 모습들뿐이었다.기묵비, 다음 생에 우리가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생에 당신과 다시 만날 날은 없겠군요....그날 독소가 발작한 후 소만리도 기 씨 본가로 거처를 옮겼다.원래는 소만리의 몸속에 독소가 발작을 일으키면 그 틈을 타 남연풍이 준 시약을 열어 샘플을 채취하려고 했었지만 당시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서 남사택은 결국 시약 샘플을 채취하지 못했다.이 점에 대해 남사택은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소만리를 이사 오게 한 목적이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그러나 남사택은 여기서 낙담하지 않고 남연풍이 개발한 독소를 다각도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소만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기모진은 더욱 걱정이 되었다.그는 남연풍이 소만리에게 어떤 독소를 썼는지 또 소만리의 다음 발작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그는 자신의 몸에서 독소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를 떠올렸다.자신이 겪은 고통보다 몇 배나 더 깊은 고통을 소만리가 겪을 생각을 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런 걱정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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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장

”그래.”소만리는 강자풍을 꼭 만나고 싶었다.결정을 내리자마자 소만리의 핸드폰이 울렸다.초요에게서 온 전화임을 알고 소만리는 기모진을 보았다.“소만리, 숙부님이 마지막으로 당부한 일을 잊지 마.”“알고 있어.”소만리는 다짐을 하고서야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에서 초요의 목소리 대신 추적추적 빗소리만이 들렸다.“초요.”소만리가 정적을 깨뜨리고 초요를 불렀다. 초요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저예요, 소만리 언니.”초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소만리 언니, 그 사람 어디에 묻혔는지 알고 싶어요.”소만리는 기모진과 눈을 마주치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보러 가려고?”“그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날 보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이제는 내가 직접 마지막으로 그 사람 한 번 보고 싶어요.”초요는 애써 감정을 억누른 채 말을 했지만 그녀의 말속에 묻어나는 침통한 심정은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소만리도 많은 말은 접어두고 간결하게 말했다.“이따가 주소 보내줄게.”“고마워요, 소만리 언니. 그럼 이만 끊을게요.”“초요.”소만리가 초요를 불러 세웠다.“아직도 숙부님이 원망스러워?”이 말이 떨어지자 전화기 너머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소만리도 대충 초요의 대답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다시 묻지 않았다.“주소 보내줄게. 비가 좀 그친 뒤에 가. 비 오는 날은 좀 불편해.”“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소만리 언니. 잘 지낼게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게요.”“그래, 그럼 좋겠어.”소만리는 마음을 놓으며 전화를 끊었지만 자신이 초요에게 주소를 알려주면 바로 지금 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소만리의 예상대로 주소를 받은 초요는 바로 우산을 쓴 채 외출했다.찬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는 겨울 아침.묘지 안에서 부는 비바람 소리는 세상의 모든 고요를 다 불러 모은 듯 유난히 고요하게 들렸다.초요는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며 그의 이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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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장

초요는 경계하며 뒤로 두어 발짝 물러섰다.전에 기묵비를 괴롭혔던 건달들이 아닐까 짐작했지만 보아하니 행세가 건달들같지는 않았다.“당신들 누구세요?”그녀는 다시 추궁하면서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내 긴급 전화를 걸려고 했다.“초요 아가씨, 겁내지 마. 악의는 없어. 다만 우리 선생님이 당신한테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을 뿐이야.”“당신이 말하는 선생님이 누구예요?”초요는 건달들에게 물어보며 한 손으로는 비상연락처를 눌렀다.“가보면 누군지 알 수 있을 테니 우리가 야만적으로 당신을 차에 끌어다 태우지 않도록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건달들 중 점잖게 보이는 남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초요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그러나 그녀가 전화기에 대고 뭐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경호원 몇 명이 그녀에게 달려왔다.“초요 아가씨, 순순히 따르시죠.”경호원들과 건달들의 행동을 보고 초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당신들이 말하는 그 선생이 누구예요? 뭣 때문에 날 이렇게 끌고 가려는 거예요?”남자는 초요가 협조적이지 않자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었다.“초요 아가씨가 협조하지 않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우리 방식으로 당신을 차에 태울 수밖에 없어.”남자는 말하면서 주변에 있던 경호원에게 눈짓을 했다.두 경호원은 초요의 양쪽으로 가서 그녀의 팔을 꽉 잡아 제압했다.“뭐하는 거야! 이거 놔!”초요는 있는 힘껏 발버둥쳤지만 건장한 두 남자에게 제압당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강제로 차에 태워졌다. 차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이런 상황에서 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초요는 그들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남사택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조금 전 초요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가 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초요의 핸드폰은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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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장

고승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초요도 따라 일어섰다.“고승겸.”그녀가 소리를 질렀지만 고승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초요도 쫓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눈앞에 남연풍과 고승겸이 스쳐 지나가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아름답고 우아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초요의 기억이 점점 떠올랐다.“당신 사택 선배 누나 아니에요?”남연풍은 붉은 입술을 구부리며 웃었고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는 말했다.“사택 선배? 난 당신이 내 동생 아내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에요.”남연풍의 말뜻을 알아들은 초요는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당신과 고승겸 아는 사이예요? 당신들이 왜 날 여기로 데려왔죠?”남연풍은 초요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기묵비 맞죠?”갑자기 여기서 기묵비의 이름이 거론되자 초요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연풍을 바라보는 초요의 눈빛은 이미 넋을 잃은 듯했다.넋이 나간 듯한 초요의 모습을 보며 남연풍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가셨다.“내 동생은 당신을 진심으로 대했고 당신을 위해 어린 두 아이를 키웠는데 당신은 마음속에 늘 기묵비라는 남자를 품고 있었죠. 이 세상에 인정과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불공평해. 안 그래요?”“하지만 하늘은 늘 공평해요. 그 기묵비라는 남자는 이미 죽었죠. 이것이 당신이 내 동생을 저버린 업보 아니겠어요?”업보라는 말을 듣고 초요는 갑자기 정신이 번뜩했다.초요는 남연풍에게 경멸의 눈빛을 쏘아붙이며 말했다.“만약 이 세상에 정말 업보라는 게 있다면 가장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악행을 저지르고 하늘의 뜻을 저버리는 사람들이죠. ““지금 그 말, 날 두고 하는 말이죠?”남연풍은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는 듯 초요를 노려보며 말했다.“여기 당분간 좀 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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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장

매정하게 내뱉은 남연풍의 말이 차갑게 들려왔다.남사택은 남연풍을 흘끔 바라보고는 초요의 손을 잡고 계속 문 쪽으로 걸어갔다.그러나 두어 발짝도 못 가 남연풍의 목소리가 유유히 등 뒤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남사택, 그녀를 여기 데려온 것은 네가 편히 지내라고 그런 거니까 섣불리 이 문을 나서려고 하지 마.”이 말을 듣고 초요는 단번에 깨달았다.알고 보니 초요는 미끼였던 셈이다.남사택을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초요를 이용해 그를 유인한 것이었다.남사택은 주먹을 불끈 쥐며 돌아섰다.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배를 피워 대는 남연풍의 모습을 보고 그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남연풍, 아빠 수첩도 봤으면서 왜 그래? 왜 자꾸 이러는 거야?”남연풍은 남사택에게 다가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남사택, 나 이미 어른이야. 설마 네가 이렇게 하면 내 마음속 오랜 앙금이 다 풀릴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그건 절대 안 돼!”마지막 말을 내뱉을 때 그녀는 악다구니를 쓰며 이를 갈았다.남사택도 몰인정한 남연풍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지금 초요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만약 날 여기에 가둬두고 싶다면 날 남겨두고 초요는 보내줘.”남사택이 단호하게 요구했다.하지만 남연풍은 예상대로 남사택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한 명도 여기서 나갈 생각하지 마.”그녀는 냉혹하게 말하고는 주변에 있던 시중에게 몇 마디 이르고는 위층으로 훌쩍 올라갔다.단호하게 자리를 떠나는 남연풍의 뒷모습을 보며 남사택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초요는 괴로워하는 남사택의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그럼 여기 있어요. 휴가 받았다 생각하자구요. 당신은 남연풍의 친동생인데 설마 무슨 짓을 하려구요. 그러지는 못할 거예요.”남사택은 초요의 말을 듣고 말없이 한숨만 내쉬었다.그는 미안한 눈빛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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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장

”그런 것 같아요.”초요가 고승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초요는 문득 남연풍에게서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예전에 자신도 기묵비를 위해 충실한 개처럼 일했었다.무슨 일이든 기묵비를 위한 일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했던 그녀였다.심지어 기묵비를 위해 기모진에게 최면까지 걸었었는데...그러나 그런 시절은 이미 멀리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졌다.그런 시절만 그녀의 기억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마저도 이미 그녀로부터 아주 먼 곳으로 가 버렸다.초요가 더 이상 아무 소용없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그때 갑자기 남사택의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기모진이야.”남사택은 초요에게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초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남사택이 기모진의 전화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걱정 마세요. 가능한 한 빨리 해독제를 개발하려고 연구하고 있어요. 요즘 실험실에 쳐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요. 혹시 연락이 안 되더라도 조급해하지 마시구요. 무슨 소식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초요는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남사택의 뜻을 이해했다.남사택은 기모진에게 그들이 지금 갇혀 있다는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그녀는 갑자기 이 남자가 너무 안쓰러웠다.매사에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은 늘 뒷전인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남사택의 노력으로 다행히 기모진도 지금 남사택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하긴 요즘 기모진이 한창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바로 강자풍의 동향이다.기모진이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강자풍은 이틀 후에 경도에 도착한다는 것이다.이를 알게 된 소만리는 가장 먼저 자신의 소중한 딸 여온을 걱정했다.그녀는 여온이 마음속으로 강자풍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어린아이의 순수하고 여린 마음에 강자풍은 뭔가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그러나 그녀는 기여온에게 강자풍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여느 때와 같이 소만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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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장

기여온이 천천히 걸음을 멈추자 담임 선생님은 문밖에 서 있는 남자를 의아한 듯 쳐다보더니 몸을 구부리고 기여온에게 다정하게 물었다.“여온아, 저 오빠 알아? 아는 오빠라면 고개를 끄덕이고 모르는 오빠라면 고개를 가로저어서 선생님한테 알려줘.”담임 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십여 초가 지나도록 기여온은 고개를 가로젓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담임 선생님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여겼다.기여온이 비록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 기초적인 말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걸 선생님은 분명 알고 있었다.담임 선생님은 문밖에서 기다리는 남자를 보고는 기여온의 손을 놓고 혼자 그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여온이 친척이라고 하셨는데 여온이는 모르는 것 같아요.”담임 선생님은 자신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을 말했다.“내 성은 강 씨예요.”남자는 입을 열었고 그 자리에서 멀리 서 있는 기여온을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냈다.기여온은 사탕을 보자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는 듯 맑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작은 손을 주머니에 넣어 비슷하게 생긴 사탕 하나를 꺼냈다.문밖에 서 있던 남자는 여온이의 작은 손에 쥐여진 사탕을 보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여온아, 오랜만이야.”남자 강자풍은 인사를 건네며 기여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기여온은 강자풍의 다정한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담임 선생님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는 듯 기여온에게 다시 물었다.“여온아, 너 정말 이 오빠 알아?”기여온이 이번에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기여온은 강자풍에게 다가가 작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강자풍은 미소를 지으며 기여온 앞에 몸을 구부렸다.기여온의 맑고 큰 눈동자에 한 줄기 찬란한 빛이 반짝거렸다.어린아이는 희고 부드러운 손을 뻗어 강자풍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해 온 사탕을 강자풍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남자에게 꽉 쥐라고 손짓했다.강자풍의 눈빛이 반짝거렸고 기여온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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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장

낯선 사람이 되었다 치더라도 그들의 어린 딸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기여온을 찾으러 갈 수 있을까?유치원 부근의 어린이 공원.겨울인데다 평일이어서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였지만 이 따스한 햇빛으로도 그의 온몸을 따뜻하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강자풍은 펜스 밖에 서서 회전목마를 신나게 타고 있는 기여온을 보았다.그의 얼굴에는 이전에 보였던 그 온화한 미소가 사라졌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손바닥 안에 있는 사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사탕의 겉포장은 이미 퇴색되었고 안에 싸여 있던 사탕도 지난 2년 동안 변질된 것처럼 기분 나쁘게 끈적거렸다.그러나 사탕은 퇴색되고 유통기한이 지났더라도 그들의 특별한 관계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핸드폰은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분명 소만리와 기모진이 연락을 하려고 안달이 나 있을 거라는 걸 그는 짐작하고 있었다.강자풍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전목마가 곧 멈추려고 하는 것을 보고 다가가 기여온을 기다렸다.회전목마가 멈추자 그는 손을 뻗어 기여온을 살며시 품에 안았다.따뜻하고 보드라운 아이의 감촉이 닿자 강자풍은 마음이 꽉 찬 것처럼 든든했다.그는 기여온을 안고 이곳저곳 놀이 기구를 찾아다니며 그녀가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러는 동안 그는 기여온에게 풍선, 인형, 달콤한 솜사탕을 사주었다.분명 어린아이들은 사람을 귀찮게 하는 구석이 있지만 그에게 여온은 조금도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다.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도 기여온이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기여온이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친누나 강연 때문이었다.허, 강연.그녀는 죽었다. 다 죽었다.이 세상에 있던 그의 가족은 모두 다 죽었다.“철퍼덕!”강자풍이 딴 데 정신이 팔린 사이 어디선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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