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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장

기모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그는 일부러 몸을 사리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과 옷차림을 했다.절제된 모습을 보이며 최대한 남들의 관심을 끌지 않으려고 했다.그런데 정말 이렇게 쉽게 일을 성사시킬 수 있을까?기모진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려 안나에게 말했다.“고마워요.”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얼른 위층으로 올라갔다.안나는 기모진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고승겸에게 전화를 걸었다.“기모진이 올라갔어.”전화기 너머에서 안나의 말을 들은 고승겸은 입꼬리를 살짝 잡아당기며 일어났다.그는 서재를 나와 안나가 기모진에게 가리켰던 방으로 향했다.그러나 문을 밀고 들어가니 텅 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소만리가 이 방에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기모진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그는 좀체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며 핸드폰을 꺼내 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기모진은?”안나는 고승겸이 묻는 말에 영문을 모른 채 대답했다.“방금 내가 가르쳐 준 방으로 들어갔는데. 기모진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내가 봤단 말이야.”“기모진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고? 그럼 이 방에 들어가는 것도 봤어?”“...”안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고개를 들어 위층에 있는 방들을 바라보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차가운 고승겸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바깥을 바라보며 서 있는 고승겸의 안색이 몹시 좋지 않아 보였다.그는 기모진이 그를 따라 산비아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스스로 적진에 들어온 기모진을 난처하게 만들려고 모든 계획을 세워둔 터였다.그러나 지금 그의 계획을 비웃듯 기모진은 이 방에 나타나지 않았다.고승겸은 기모진이 소만리가 있는 방을 찾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달려가 보았지만 몇몇 시중이 소만리의 화장을 고쳐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모진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깊어졌다.기모진은 분명히 위층으로 올라왔는데 갑자기 증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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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장

고승겸은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방문 쪽으로 갔다.기모진은 점점 자신을 향해 엄습해 오는 고승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이미 고승겸이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승겸.”그때 갑자기 소만리가 등장했다.그녀의 등장에 고승겸은 방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승겸, 나 이제 준비 다 됐어. 이제 내려가서 친척들과 친구들을 만나러 갈까?”소만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다가 서재에 서 있는 안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안나도 와 있었네.”고승겸은 덤덤한 눈빛으로 안나를 흘겨보더니 소만리를 향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방에 가서 좀 쉬어.”소만리는 난처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당신 나랑 같이 있어 줄래? 나 좀 긴장돼서 그래.”고승겸의 눈이 서재 문을 한번 쓱 훑어내렸다. 이윽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같이 있어 줄게.”“응. 고마워.”소만리는 달콤한 보조개를 뺨에 드리우며 손을 뻗어 고승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고승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만리의 발걸음을 따라가기 시작했다.안나는 이런 고승겸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듯 바라보다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리며 서재를 떠났다.기모진은 소만리가 그런 타이밍에 나타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등장으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한숨을 크게 내쉰 기모진은 곧바로 서재를 떠났고 소만리와 고승겸이 어디로 갔는지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갑자기 먼발치에서 고승겸이 급하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았다.고승겸은 아마도 서재로 돌아가 자신이 문 뒤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기모진은 생각했다.그는 얼른 사람 없는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고승겸이 서재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기모진도 재빨리 고승겸이 지나온 쪽으로 달려갔다.기모진은 복도로 달려가다가 문득 곁눈으로 방안에 앉아 있는 소만리의 모습을 힐끗 보고는 주저하지 않고 쏜살같이 그 방으로 뛰어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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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장

고승겸은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수정구를 들고 소만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그는 소만리의 시선을 단번에 제압한 후 입을 열었다.“소만리, 이 수정구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당신은 온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거지. 한 가지만 명심해. 지금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고승겸이야.”이 말을 들은 기모진은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와 고승겸의 멱살을 잡아당기더니 수정구를 확 낚아챘다.“고승겸, 네가 이렇게 해서 내 아내에게 최면을 걸었군! 소만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인데 네가 그녀를 이렇게 속이고 평생 우롱할 수 있을 것 같아!”기모진은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에 화를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포효가 이마와 손등의 핏줄을 터트리며 고승겸에게 전해졌다.만약 가능하다면 그는 정말 눈앞의 이 남자를 목 졸라 죽일 기세였다.그러나 고승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기모진, 당장 이 멱살부터 놓는 게 좋을 거야. 최면이 진행 중에 방해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최악의 결과를 보고 싶어?”고승겸의 득의양양한 눈빛을 바라보며 기모진의 손가락이 의기소침한 듯 하나둘 잡고 있던 멱살에서 떨어져 나갔다.기모진은 소만리를 두고 그녀를 모험의 대상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고승겸은 기모진이 멱살을 놓자 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찡긋 비틀어 웃으며 기모진의 손을 뿌리쳐 자신의 옷매무새를 단정히 정리한 다음 유유히 입을 열었다.“최면 중에 누군가의 방해를 받는다면 최악의 경우 최면에 걸린 사람이 평생 최면에 걸린 채 살 수도 있어. 그게 아니면 반쯤 미쳐버린 바보가 될 수도 있어. 왜냐하면 그녀는 모든 사고력을 상실해 버리게 되거든.”이 말을 듣고 기모진의 마음이 얼음 호수에 가라앉은 것같이 온몸이 차가운 기운으로 둘러싸였다.그는 소만리를 올려다보았다.그녀의 초점 없는 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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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장

고승겸은 성큼성큼 베란다로 달려가 기모진의 모습이 이미 손님들 사이를 빠져나가 무사히 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승겸은 기모진이 이런 운동 신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로서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그는 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갔고 여전히 잠들어 있는 소만리를 보다가 손에 든 수정구를 보고 천천히 침대 곁으로 걸어가 소만리를 깨웠다.눈을 뜬 소만리는 잠시 멍한 눈빛을 보이더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온몸에 천진난만한 분위기를 풍겼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완전히 깨어났다.“방금 기모진이 여기 온 걸 본 것 같아.”소만리는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의혹을 털어놓았다.고승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방금 왔었어. 기모진이 당신을 데리고 가려고 시도하다가 나한테 들켜서 도망갔어.”소만리는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귀찮은 사람이야.”“다시는 기모진이 당신을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할 거야.”고승겸이 소만리에게 다짐하듯 약속했다.“우리 결혼식이 끝나면 다시 경도로 돌아가자. 그러면 당신 마음이 안심이 될 거야.”“경도로 돌아가?”소만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되물었다.“왜 경도로 돌아가? 여기서 사는 게 좋지 않아?”“여기서 사는 게 당연히 좋지.”고승겸은 천천히 몸을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렇지만 경도로 돌아가는 것은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소만리는 고승겸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살짝 흔들리는 눈빛으로 물었다.“왜 그런 말을 해?”이 말이 떨어지자 고승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소만리에게 눈을 돌려 웃는 듯 마는 듯 소만리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마주 보았다.“그 얘기는 그만하고 어서 준비해. 이따가 손님들한테 인사해야 하니까. 그때 데리러 올게.”고승겸은 애써 말머리를 돌렸고 소만리도 별다른 추궁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승겸을 향해 미소를 지은 뒤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고승겸이 소만리의 방을 나온 후 제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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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장

일이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터라 고승겸도 적잖이 당황했다.이런 순간은 고승겸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는 급히 침대 곁으로 달려가 손을 뻗어 소만리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고승겸은 몇 번이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소만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승겸은 소만리가 어떤 이유로 실신했는지 알 수가 없어 주치의를 불렀다.여지경은 고승겸이 소만리를 데리고 내려오길 한참을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소만리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녀는 부랴부랴 소만리의 침실로 올라왔다.마침 의사가 소만리에게 이것저것 검사를 끝내고 있는 중이었다.“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쓰러졌냐구?”여지경이 다급하게 물었다.의사는 여러 검사를 마친 뒤 난감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검사를 해보니 신부가 다른 방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혈압도 정상이고. 아마도 저혈당에 일시적으로 산소가 부족해서 쓰러진 것 같아요.”“저혈당?”여지경은 얼굴을 찡그렸다.“그럼 얼마나 있으면 소만리가 깨어날까요?”“곧 깨어날 겁니다.”여지경은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승겸아, 넌 우선 여기 소만리랑 같이 있어. 저쪽 손님들은 내가 상대하마.”그녀는 고개를 돌려 의사와 시중들에게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가세요.”의사와 시중들은 즉시 여지경의 말에 따라 소만리의 방을 나왔다.몸도 마음도 분위기는 이내 찬물을 뿌린 듯 가라앉았고 고승겸은 침대 옆에 서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소만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수정구를 살며시 꺼냈다.최면 때문에 그런가?그는 스스로에게 물으며 시선을 소만리의 얼굴에 떨어뜨렸다.고승겸은 손을 뻗어 소만리의 눈썹을 살짝 건드렸다.“당신은 정말 좀 특별한 것 같아. 아무래도 당신이 스스로 내 최면술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그는 얇은 입술 한 귀퉁이를 천천히 끌어당기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좋아. 자꾸 날 자극해 도전하게 만드니까.”아래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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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장

고승겸의 싸늘한 시선이 안나의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갔다.“너도 이제 돌아가도 돼.”“...”안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내키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그저 얌전한 척 억울한 척 쭈뼛거리며 여지경에게 관심을 기울였다.“어머니, 그럼 저 먼저 가 볼게요. 오늘은 많이 바쁘고 정신없으셨을 테니 푹 쉬세요.”여지경은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그래, 들어가 쉬어라.”안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금방 그 자리를 떠났다.“소만리는 아직도 안 깨어났니?”여지경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고승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요즘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것 같아요.”“소만리랑 그 기모진인가 하는 사람 사이에 아이가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 너 아니?”여지경은 갑자기 화제를 돌려 고승겸에게 물었지만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녀에게 몇 명의 아이가 있는지 전 신경 쓰지 않아요.”“너, 신경 쓰지 않는다고?”여지경은 기함을 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승겸아, 너 소만리를 그 정도로 많이 좋아한다는 거냐?”“좋아한다...”고승겸은 이 단어를 읊조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 쉬세요. 내일도 바쁘니까요.”“...”여지경이 뭔가를 말하려는 조짐이 보이자 고승겸은 아예 돌아서 버렸다.그런 고승겸의 뒷모습을 보고 여지경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밤이 깊었다.집안 식구들은 이미 모두 잠들어 있었다.한 줄기 기다란 그림자가 조용히 누군가의 침실로 들어섰다.침대에 누워 있던 소만리는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듣고 눈을 번쩍 떴다.어둠 속이었지만 그녀는 익숙한 실루엣이 그녀에게 빠르게 접근해 오는 것을 보았다.“소만리.”기모진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소만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소만리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당신 어떻게 또 왔어?”“소만리, 내가 당신을 집으로 데려다줄게.”기모진은 소만리의 손목을 덥석 잡아당겼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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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장

소만리는 곧바로 불을 켰다.기모진의 왼쪽 발목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그는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리고 그 부상이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기모진은 눈을 내리깔고 피가 배어 나오는 발목을 보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통을 참아가며 소만리에게 돌아갔다.“소만리, 난 당신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꼴을 절대 지켜볼 수 없어. 난 지금 당신을 여기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소만리의 눈길은 기모진의 다친 발목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강인한 빛을 머금고 기모진을 향했다.“난 가지 않을 거야.”그녀는 여전히 단호했다.“기모진, 그동안 부부 사이의 정을 생각해서 지금 당신에게 떠날 기회를 줄 테니 어서 가. 당신 스스로 그물에 뛰어드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알겠어?”그녀는 점점 쓸쓸한 빛을 더해가는 그의 깊은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당장 꺼져.”기모진은 소만리의 단호한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갑자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당장 꺼져 줄게.”“방 안에서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있는 거 같아요.”문밖에서 갑자기 의문에 가득 찬 시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방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니까. 정말 누군가가 몰래 들어오는 것 같았어.”“얼마나 배짱이 두둑한 도둑이길래 감히 고 씨 집안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려고 해, 글쎄!”여러 말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이윽고 방문이 벌컥 열렸다.침대 옆에 서 있던 소만리는 놀란 얼굴로 눈을 들어 보았다.두 시중은 소만리가 깨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황급히 사과했다.“죄송해요, 방에서 소리가 들려서 들어왔어요. 난 아직 못 깨어난 줄 알고 누군가가 몰래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서 그만...”시중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 방 안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죄송해요. 소만리, 내가 잠을 깨워버렸네요. 암튼 깨어나셔서 다행이에요. 겸이 도련님이 많이 걱정하셨거든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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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장

그를 신경 쓰는 듯한 소만리의 모습은 기모진에게 있어 상처를 치유하는 더없이 좋은 약이었다.기모진은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오르는 듯 아무리 아파도 참아낼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소만리의 뺨에 따뜻한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소만리는 잠시 멈칫했지만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고 더 빨리 그의 상처에 거즈를 감아 동여맨 다음 약 상자를 정리하였다.“당신 나 좀 따라와.”그녀는 일어서서 어두컴컴한 달빛 아래서 방문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냈다.기모진은 소만리가 한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그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려는 것이었다.지금 겉으로 보기에 소만리의 표정은 매우 냉담해 보였지만 기모진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소만리는 아직 잠들지 않은 시중들이 지나갈 수도 있는 길을 피해 빙빙 돌아서 기모진을 뒷문으로 안내했다.“당장 여길 떠나. 어서 가라고.”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차갑고 단호했다.이번에는 기모진도 거역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 이제 갈게. 하지만 소만리, 난 당신 혼자 계속 이곳에 머물게 하지 않을 거야.”소만리는 기모진의 말을 듣고는 말문이 막힌 채 기모진을 쳐다보았다.기모진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더욱 깊이 미소 지었다.“소만리, 기다려.”이 말을 끝으로 기모진은 마침내 단호하게 고 씨 집안에서 벗어나 그곳을 떠났다.소만리는 눈을 들어 기모진이 떠나는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멀어지는 기모진의 모습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소만리는 그제야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 들었는지 몸을 돌리려고 했다.그러나 그녀가 돌아서자마자 어딘가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바위처럼 멈춰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천천히 아름다운 눈을 들어 올렸다.어스름 달빛 아래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고승겸의 그윽한 검은 눈동자와 부딪혔다.그는 2층 거실 베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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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장

고승겸의 말을 들은 소만리의 눈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녀는 눈앞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웃고 있는 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온몸에 솟구쳤다.이 남자는 그녀를 꿰뚫어 보았지만 좀처럼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소만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변명할 기미도 보이지 않자 고승겸의 눈에는 오히려 그녀의 표정을 감상하는 듯한 빛이 감돌았다.“언제부터인지 말해줄 수 있어?”고승겸은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언제부터 최면이 풀린 거야?”온순하던 소만리의 태도가 갑자기 예리한 눈빛으로 바뀌며 그녀는 한층 굳어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그럼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왜 내 남편을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했어? 그리고 왜 나한테 최면을 걸고 거짓 정보를 심어주려고 했던 거야? 여긴 왜 데려온 거야?”소만리는 마음속에 품었던 의혹들을 털어놓았다.소만리가 묻는 말에 고승겸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그는 들고 있던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아무런 목적 없이 하는 행동이 재미가 있는 법이야.”이 말을 듣자마자 고승겸이 무언가를 숨기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고승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눈치 없는 그녀가 아니었다.“고승겸, 당신이 나를 구해준 것은 고맙지만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가 당신과 무슨 혼인을 맺었다고 속일 수는 없어.”“난 당신에게서 성가신 안나를 떼어내는 걸 돕는 줄 알았고 당신이 말한 약혼 계약서도 단지 형식일 뿐이라고 믿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사실 혼인 서약서였던 거야.”고승겸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맞아, 산비아 결혼 제도상 당신은 지금 나의 합법적인 아내인 거야. 그와 동시에 기모진과 혼인을 맺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당신은 지금 중혼죄를 범하고 있는 거지.”“그래서 그때 당신이 이걸 무기로 기모진을 위협했기 때문에 그가 순순히 당신에게 날 데리고 가라고 한 거로군.”“당신 말 대로야. 딱 그대로 내가 기모진한테 말했지.”고승겸은 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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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장

”네, 겸이 도련님.”시중은 재빨리 대답하고 소만리의 곁으로 다가갔다.소만리는 여전히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고승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건장한 경호원들을 보았다.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방으로 돌아간 후 소만리는 바닥에 남아 있는 핏자국을 보면서 기모진이 방금 아파하며 피를 흘렸던 모습을 떠올렸다.마음이 쓰리고 욱신거렸다.“모진...”소만리는 약지의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기모진에 대한 자신의 나쁜 행동들을 떠올렸다.죄책감이 밀려와 그녀의 마음이 찢어지도록 괴로웠다.“딸깍.”방문이 갑자기 열렸다.소만리가 눈을 들어 보니 고승겸이 문고리를 잡고 문 앞에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내일 결혼식은 예정대로 거행될 거야. 당신이 계속 잘 협조해 주길 바래. 당신도 기모진이 산비아에서 무사히 떠나는 것을 보고 싶을 거 아냐.”고승겸은 말을 마치자 단호하게 방문을 닫았다.소만리는 손가락을 꽉 움켜쥐고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았다.모진, 이번에는 내가 발을 잘못 들인 것 같아.그렇게 제멋대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소만리는 죄책감에 밤을 새웠는데 다음날 날이 어슴푸레 밝아올 때 시중이 들어와 옷을 갈아입혀주겠다고 했다.어젯밤 고승겸이 협박이 가득 담긴 경고의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거의 30분 동안 옷을 갈아입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을 때 여지경이 왔다.여지경은 어제보다 더 화려하고 우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여지경은 어제 소만리가 왜 기절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소만리의 안색이 좋은 것을 보고 일단 그녀는 매우 만족스럽고 안심이 되었다.“또 갑자기 쓰러지면 안 된다. 오늘은 너랑 승겸이한테 좋은 날이잖니.”소만리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벌떡 일어섰다.화장을 해주고 있던 시중은 놀란 표정으로 소만리를 쳐다보았다.“소만리...”“어머니, 부탁이 하나 있어요.”도움을 청하는 소만리의 눈길이 여지경의 얼굴에 떨어졌다.여지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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