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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사랑한 여인의 모든 챕터: 챕터 1441 - 챕터 1450

2479 챕터

1441장

분명 자신이 좋아하고 설레던 목소리인데 이 순간만큼은 기모진에게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기모진은 몸을 일으켰다.눈을 들어보니 눈앞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잠옷을 입은 그녀가 서 있었다.잠옷이 어찌나 얇은지 몸매가 다 비치며 섹시한 기운을 자아내고 있었다.기모진은 이런 모습을 보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칠 줄 알았는데 어쩐지 짜증이 나서 눈을 돌려버렸다.그런 충동은커녕 소만리를 다정하게 안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소만리, 나 볼일이 좀 있으니까 먼저 자고 있어.”기모진은 얼버무리며 책상으로 걸어갔다.여자는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기모진의 떡 벌어진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기모진의 반응을 이상하게 여기며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보았다.일부러 왼쪽 가슴 위에 소만리와 똑같은 점도 찍었다.얼굴부터 전신까지 모두 완벽하게 소만리를 복원한 모습이었다.기모진이 소만리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이런 모습의 그녀를 못 본 척할 수 있지?여자는 기모진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기모진이 서류 몇 개를 들고 방을 나서려 할 때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따라붙어 간들어지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모진, 어디 가는 거야?”기모진은 방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서재에 가려고. 당신 요즘 너무 피곤하잖아. 당신 쉬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그런데 난 당신이 같이 있어야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있어.”여자는 기모진에게 다가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기모진에게 애교를 부렸다.“모진, 내 옆에 있어줄 수 있어? 당신도 알다시피 그동안 우리한테 많은 일이 있었잖아. 나 혼자 자는 게 너무 무서워. 혼자 있으면 경연이 날 방에 가두고 괴롭혔던 게 생각이 나. 날 밖에 못 나가게 감금하고 상처에 피가 철철 나기도 했어. 그 상처들이 아직도 조금 아파.”이 말을 듣고 기모진의 가슴이 욱신거렸다.그는 소만리를 경연으로부터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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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장

기모진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소만리, 내가 문 열게. 엄마가 무슨 볼 일이 있으신가 봐.”“그래.”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자리를 일어서는 기모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점차 사라졌다.하마터면 성공할 타이밍이었는데 하필 그때 방해를 놓다니 여자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하지만 기모진에게 있어 위청재의 노크는 구원의 손길과도 같았다.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소만리와 함께 있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졌다.지금까지 기모진은 이런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그 이전에도 전혀 이런 적이 없었다.기모진이 방문을 열자 위청재의 품에 안긴 막내가 보였다.“무슨 일 있어요? 막내가 불편하다고 칭얼거려요?”“아니.”위청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네 장인이 회사에서 야근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자꾸 막내가 안아달라고 보채잖아. 지금 안사돈이 혼자 있는데 혹시 소만리가 아직 안 자면 소만리가 가서 안사돈과 함께 좀 있으라고 해.”“저 아직 안 자니까 제가 가서 엄마 곁에 있을게요.”여자가 먼저 입을 열고 외투를 몸에 걸치고 기모진에게 다가왔다.“모진, 그럼 먼저 자고 있어. 내가 엄마랑 같이 있을게.”“응. 그래.”기모진은 왠지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니 위청재를 따라 사화정이 있는 방으로 갔다.기모진도 그 여자를 따라가서 방에 들어간 후 사화정을 보았다.혼자 침대 옆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화정이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여자는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시치미를 뚝 떼고 사화정의 곁으로 다가갔다.“엄마, 아빠 오늘밤 늦을 것 같아. 내가 같이 잘게.”여자는 일부러 사화정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사화정 곁으로 다가갔다.이미 소만리와 사화정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선 숙지하고 있던 그녀였다.비록 예전에 이들 모녀 사이에 오해와 균열이 있었지만 지금은 화해한 상태였다.여자는 잠자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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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장

기모진은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화정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그의 잘생긴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장모님, 이렇게 말할 힘이 생기신 거예요?”그러나 사화정은 기모진이 자신한테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소리쳤다.“소만리, 소만리 어디 있어!”기모진이 의심할까 봐 여자는 사화정을 달래러 다가갔다.어느새 여자의 얼굴에 초조함과 불안히 밀려오기 시작했다.“엄마, 소만리 여기 있잖아. 내가 바로 엄마가 찾는 소만리잖아.”사화정은 고개를 들어 한참 동안 여자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여자의 손을 홱 밀어내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넌 소만리가 아니야! 넌 내 딸 소만리가 아니야!”“...”여자는 온몸이 굳어지면서 얼굴빛이 삽시간에 바뀌었다.그녀의 계획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뗐을 뿐인데 이렇게 빨리 자신의 계획이 실패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여자는 마침 사화정의 병이 다시 도진 거라고 핑계를 대려고 기모진에게 눈을 돌리려는 순간 기모진이 그녀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장모님, 자, 진정하세요. 장모님. 이러다 몸 상하세요.”기모진은 감정이 격해진 사화정을 부드럽게 달래었다.“여기 있는 소만리는 진짜예요. 자세히 보세요. 장모님이 찾으시던 소중한 딸 소만리예요. 항상 장모님 곁에 있어요. 자세히 한번 보세요.”기모진의 말에 여자는 다시 위선적인 웃음을 만면에 띠며 말했다.“엄마, 나 정말 소만리야.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날 못 알아보겠어? 소만리 너무 섭섭해.”여자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을 보고 있는 사화정의 표정을 살피며 애써 눈물을 짜내었고 급기야는 상심한 듯 울먹이는 시늉을 했다.“아니, 이건 내 딸 소만리가 아니야.”사화정은 여전히 부정하며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나 우리 딸 소만리 찾으러 갈 거야! 우리 딸 소만리 찾아야 한다고!”기모진은 서둘러 사화정을 말렸다.“장모님, 진정하세요. 그래요. 여기는 소만리가 아니에요. 제가 소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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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4장

사실 기모진에게 딱히 처리해야 될 급한 일은 없었다.단지 아무 이유 없이 지금 소만리와 단둘이 있는 것이 너무나 불편할 뿐이었다.소만리,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걸까?아니야.기모진은 얼른 부정했다.그녀를 향한 기모진의 감정은 동요할 만한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그런데 왜, 도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기모진은 그런 자신이 너무나 낯설고 이해되지 않았다.그저 자신이 지금 너무 피곤하고 지친 상태여서 이런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소만리는 이름 없는 섬에서 며칠을 보냈다.요 며칠 경연은 항상 낮에 나타났다가 밤에 사라졌다.그의 말에 따라 유추해 보면 경도의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같았다.돈으로 자유를 샀다고는 했지만 완전한 자유는 아닌 모양이었다.그도 결국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없는 존재였다.그러나 지난밤 소만리는 잠결에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희미한 불빛 아래 경연의 부드러운 눈매를 포착했고 소만리는 경계하며 일어나 앉았다.“두려워하지 마. 다시는 당신을 해치지 않겠다고 했잖아.”“당신 말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소만리는 경연의 말을 일축하며 부정했다.“애초에 당신을 너무 믿었기 때문에 내가 당신의 올가미에 한 발짝씩 들어간 거야.”소만리의 원망과 경계를 느끼며 경연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당신한테 줄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 일어나 봐.”선물?소만리는 경연이 말한 선물이 좋은 선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경연이 방을 나간 뒤에야 소만리는 어슬렁어슬렁 침대에서 내려왔다.이 작은 섬에서는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제한하지 않았다.하긴 떠나고 싶어 발버둥을 쳐봤자 절대 불가능한 곳, 여기는 섬이다.그래서 경연은 안심하고 소만리에게 자유롭게 드나들며 행동하게 했다.소만리가 침실을 나서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고 상쾌한 공기가 꽃향기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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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장

소만리는 경연이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보며 냉담하게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경도 방향의 랜드마크를 바라보며 자신의 집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했다.소만리가 자신을 무시하자 경연은 손을 뻗어 소만리의 손목을 덥석 잡아당겼다.“당신 또 뭘 하려고 그래?”“싫어도 할 건 해야지.”“...”소만리가 몸부림치려 할 때 경연은 이미 완강하게 그녀를 강제로 끌고 섬 반대편으로 갔다.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밤바다는 서늘한 기운과 함께 까만 파도가 해안을 향해 내리치는 파도 소리가 더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경연, 이거 놔.”소만리가 호통을 치며 명령했다.경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그는 소만리를 끌고 곧장 앞으로 가더니 한참을 지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그 틈을 타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려던 소만리는 경연이 천천히 입을 떼며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그날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제야 이룰 수 있게 되었어.”경연은 시선을 돌려 소만리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매는 달빛에 비쳐 더욱 부드럽게 보였고 그 웃음은 순수해 보이기까지 했다.지금 경연의 태도는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경연이 말하는 뜻을 알아듣지 못한 소만리는 혼자 앞으로 걸어가다 쭈그리고 앉는 경연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소만리는 뭔가가 불에 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몇 초 후 경연은 일어나 그녀에게로 돌아왔고 바로 그 순간 소만리는 불꽃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머리 위 장엄한 밤하늘 아래에서 송이송이마다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났다.소만리는 그제야 경연이 방금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알고 보니 그는 그날 이루지 못한 불꽃의 향연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좋아하는 사람과 불꽃놀이를 보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경연이 가만히 중얼거리듯 감탄하는 말을 내뱉었다.“그럼 강제로 끌려와 당신과 같이 불꽃놀이를 보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도 알겠네?”소만리는 돌아서며 비꼬아 되물었다.불꽃이 밤하늘에 계속 피어올랐고 그 휘황찬란한 색채가 섬 전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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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장

소만리는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아서 이 말을 끝으로 그곳을 떠났다.그런데 막 두어 걸음 내디뎠는데 경연이 갑자기 또 그녀를 붙잡았다.소만리는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고 경연이 갑자기 앞으로 나와 그녀를 덥석 안았다.“무서워하지 마. 난 당신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야.”경연은 소만리가 또 극단적인 저항을 할까 봐 다독였다.그는 소만리를 침실로 데리고 와 침대에 앉혔다.소만리가 일어나려고 하자 그는 그녀의 양어깨를 눌러 그녀를 다시 앉혔다.“소만리, 난 더 이상 당신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당신이 잠자코 있으면 당신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라고.”경연은 정색을 하며 소만리의 날카롭고 고집스러운 두 눈을 마주 보았다.“사랑하는 여자가 하룻밤, 딱 하룻밤만 잠자코 있어줬으면 좋겠어. 다른 거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냥 내 곁에 있어만 줬으면 좋겠어.”“경연, 넌 여전히 이기적이야.”소만리는 비아냥거렸지만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만큼 수많은 아픔을 겪은 그녀였다.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어떤 상처도 입히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무사히 무탈하게 기모진의 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경연은 소만리의 눈빛이 점차 부드러워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침대 반대편에 안심하고 누웠다.소만리는 몸을 옆으로 돌려 경연에게 등을 지고 누웠다.경연은 소만리의 뒷모습을 향해 옆으로 누워 천천히 손을 뻗었다.그의 손이 소만리의 머리카락에 닿으려 하던 순간 그는 손을 거두어들였다.“사랑이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거 알지?”경연은 소만리의 뒷모습에 대고 담담하게 말했다.“기모진이 당신을 저버린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어?”“내가 느낀 감정과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고 생각해. 적어도 난 당신처럼 강요하지는 않았어.”소만리가 냉담하게 대답했지만 더 깊이 이치를 따지지는 않았다.경연은 그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소만리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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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7장

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가소롭기도 하고 괴롭기도 했다.“도대체 몇 번이나 이런 수작을 더 부려야 해? 억지로라도 함께 있으면 행복해?”그녀가 되물었다. 보아하니 경연은 이미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과연 경연의 대답은 소만리의 예상대로였다.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달빛 아래에서 보아도 화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래. 행복해.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게 내 인생 마지막 꿈이자 사치야.”경연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반드시 이 일을 하고야 말 것 같은 의지가 엿보였다.그럼 그의 제안에 응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란 말인가?소만리는 잠시 망설였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경연, 내가 이기면 꼭 돌려보내줘.”“넌 이길 수가 없어.”경연이 웃었다.소만리는 흉악스럽게 변해버린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그보다 더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어디 도대체 무슨 게임인지 들어나 보자구.”“너무 늦었어. 우선 좀 자자구. 내일 아침에 게임 규칙을 알려줄게.”경연은 그제야 소만리의 팔을 풀었다.“하지만 게임을 시작하는 전제는 오늘밤 당신이 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거야.”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소만리를 바라보다가 말을 마치고 먼저 돌아섰다.소만리는 약지의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침착하게 경연의 발걸음을 따라갔다.침실로 돌아온 그녀는 경연이 원래 누웠던 자리에 다시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다.소만리는 반대편으로 가서 경연과의 간격을 최대한 벌린 채 침대 가장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옆으로 누웠다.달빛을 받으며 소만리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모진, 난 꼭 당신 곁으로 돌아갈 거야. 절대 그 여자한테 속지 말고 우리 아이들 잘 보호해 줘.하룻밤이 지났다.기모진은 서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자신을 서재 한구석에 가둔 지난밤, 그는 소만리를 더없이 그리워했다.그러나 소만리를 안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을 때 그의 발걸음은 이상하게 다시 멈추어졌다.그는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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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장

”내 생각엔 아빠가 엄마를 뭔가 화나게 한 것 같아.”“...”기모진은 기란군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문득 불안감이 밀려왔다.“아빠, 혹시 특별한 날 엄마한테 선물하는 거 까먹은 거 아니야?”특별한 날?아들이 이렇게 일깨워주니 기모진은 정말 뭔가 떠올랐다.그러나 내가 중요한 날을 잊었다고 해서 소만리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태도를 바꿀 사람 같은가?기모진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니 합리적인 이유 같기도 했다.여자는 뭔가 자잘한 것에 가끔 삐치는 모습이 귀여울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이렇게 생각하니 갑갑했던 기모진의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기모진은 특별한 기념일 선물을 사러 가려고 했다.기모진이 막 유치원 입구를 벗어나려고 할 때 입구에 사람 그림자 하나가 서성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남자는 들어가려 하지 않고 담장 밖에 서서 유치원 안의 교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유치원이 끝나갈 무렵 그 남자는 기여온의 작은 그림자가 교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이윽고 기여온 곁으로 다가오는 기란군의 모습도 보였다.두 아이는 은행나무 아래로 가서 조용히 놀기 시작했다.강자풍은 두 남매가 다정하게 노는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그는 은행나무 뒤편 울타리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예전에 기여온이 자신을 보고도 피하며 심지어 울기까지 했던 모습을 떠올리자 그는 아직도 괴로운 심정이 울컥 솟아올랐다.강자풍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방해할 생각이 없어서 숨어서 보고 있는데 역시나 관찰력이 좋은 기란군에게 들키고 말았다.“여온이 친구 아저씨 맞죠?”기란군이 강자풍을 보며 말했다.말을 못 하는 기여온은 기란군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다가 강자풍을 발견하고서는 갑자기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강자풍은 반가움에 여온을 불렀다.“여온아.”그는 다정한 말투로 귀여운 여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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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9장

기란군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철문 너머로 던졌다.올망졸망 귀여운 큰 눈을 깜박이며 경비실 문으로 다가가 옹골차게 입을 열었다.“아저씨.”그는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경비실에 있던 중년 남자가 밖으로 나와 상냥하게 물었다.“꼬마야, 무슨 일이야?”“아저씨, 제 여동생이 준 사탕이 밖으로 떨어졌어요.”기란군은 맑은 눈을 반짝이며 귀여운 손가락을 철문 밖으로 가리켰다.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기여온에게 눈길을 돌렸다.“내가 사탕을 잃어버리면 내 동생이 기분이 좋지 않을 거예요. 동생이 슬퍼할까 봐 걱정이에요. 아저씨 좀 주워주시면 안 돼요?”경비 아저씨는 이것이 기란군의 작전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아이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다정하게 위로해 주었다.“아저씨가 사탕 주워다 줄 테니 걱정 마. 동생이 너한테 화내지 않을 거야.”“고맙습니다. 아저씨.”기란군은 예의 바르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경비 아저씨는 철문을 열어젖히고 사탕을 주웠다.그 틈을 타 기란군은 재빨리 철문 옆을 빠져나갔다.경비 아저씨가 사탕을 주워들고 돌아보니 기란군이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여 얼른 쫓아갔다.“꼬마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서 돌아와!”“죄송해요. 아저씨. 저 친구 잠깐 찾아봐야 해요. 금방 올게요.”기란군은 사과를 하는 동시에 강자풍이 떠난 방향으로 계속 달려갔다.경비 아저씨는 불안한 마음으로 달려가는 기란군을 보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어느새 기란군이 동생이라고 가리킨 여자아이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이 아이까지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곤란했기 때문에 경비 아저씨는 돌아보며 기여온을 붙잡았다.기란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거리까지 달려갔고 강자풍이 길을 건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기란군은 작은 손을 내저으며 강자풍을 불렀다.“헤이!”강자풍은 뭔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기란군이 도로 반대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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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장

”꼬마야, 속지 마. 요새는 나쁜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처럼 생겼어. 너랑 동생은 아직 어려서 잘 몰라. 낯선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으면 안 돼.”경비 아저씨는 진지하게 훈육을 하고 기여온을 안은 채 돌아서며 기란군에게 주의를 주었다.“꼬마야, 얼른 따라와. 곧 수업 시작할 거야.”기란군도 더 이상 경비 아저씨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자풍에게 다가가 작은 얼굴을 들었다.“이거, 돌려줄게요. 내 여동생이 싫대요.”기란군은 손을 뻗어 건네주었다.강자풍은 기란군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상자를 보고 실망한 듯 웃으며 상자를 받아들었다.이렇게 거부하며 자신을 피하려는 기여온을 돌아보며 강자풍은 상자를 손에 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여온아, 오빠가 찾아오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오빠는 네가 클 때까지 기다릴 면목도 없고 네가 잘 크는 걸 바라볼 자격도 없어. 여온아, 건강하게 잘 지내. 나중에 혹시 우리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네가 아주 말을 잘 할 수 있게 되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강자풍은 작은 상자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여온이는 오빠한테 너무나 큰 기쁨을 주었어. 이제 그 기쁨을 여온이한테 돌려줄게. 영원히 행복하고 기쁜 하루하루를 살길 바래.”강자풍은 작은 상자를 기여온의 손에 쥐여주었다.기여온은 유리처럼 큰 눈을 들어 갑자기 강자풍을 바라보았다.강자풍은 봄날의 햇살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여온아, 잘 있어.”그는 말을 마치고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훌쩍 돌아섰다.기란군은 한발 앞서 강자풍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정말 가는 거예요?”강자풍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기란군을 한번 슬쩍 돌아보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걸어갔다.기여온은 강자풍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왕방울만 한 눈에 어느새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그녀는 눈을 찡그리며 작은 손으로 상자를 살짝 열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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