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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사랑한 여인의 모든 챕터: 챕터 1381 - 챕터 1390

2479 챕터

1381장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소만리도 많이 당황스러웠다.그녀가 눈을 들어 보니 도둑놈 같은 남자 기자가 편지를 빼앗아 들쳐 보려고 했다.하지만 이 내용이 대중에게 발표된다면 경 씨 집안 명성에 손상이 적지 않을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돌아가신 경 씨 어르신의 혼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소만리는 그 남자 기자가 편지의 내용을 제멋대로 공표하려고 하자 급히 다가가서 다시 가져오려고 했다.그녀가 손을 뻗으려고 하는 찰나 경연의 아버지는 마치 격노한 야생 사자처럼 달려들어 그 남자 기자의 멱살을 잡아당겨 포효하며 명령했다.“편지 돌려줘!”그 남자 기자는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중요한 뉴스거리가 될 거라는 냄새를 맡고 절대 놓으려 하지 않았다.“돌려줘!”기모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성난 표범처럼 울렸다.그의 말투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 남자 기자를 쏘아붙였고 기모진의 기세는 이미 남자 기자를 압도하고도 남았다.특히 지금 기모진의 눈빛은 마치 매처럼 섬뜩한 한기마저 배어 있었다.“어떻게? 아직 안 돌려줘? 내가 직접 가져가라는 뜻이지?”기모진의 말투는 물 흐르듯 부드럽고 유려했지만 그가 표현하는 논리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남자 기자는 입가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서둘러 조심조심 전전긍긍하며 그 편지를 경연의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경연의 아버지는 보물을 대하듯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챙겼다.그는 편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더니 얼굴빛이 더욱 창백해졌다.그는 기모진과 소만리를 바라보다가 잠시 뒤 그 편지를 쥐고 기자들의 카메라를 향했다.“여러분, 오늘 이참에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경연의 아버지는 간곡하고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그동안 나와 내 아내는 줄곧 기 씨 집안사람이 15년 전에 내 아버지를 죽였고 내 아들을 해치려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이런 말을 한 것에 진심으로 깊이 사과드립니다. 사실 모함이나 음모론 따위는 전혀 없었고 이 두 가지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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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장

소만리는 경연을 보면 자신이 참혹하게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소만리, 우리 돌아가자.”소만리는 기모진의 손을 잡았다.“그래.”그들이 막 돌아서려 했을 때 경연의 엄마가 갑자기 소만리의 팔을 덥석 잡아당겼다.“소만리!”경연의 엄마는 긴장한 듯 소만리를 끌어당기며 간곡함과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소만리, 제발. 들어가서 경연을 좀 만나줘!”소만리는 경연의 엄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정말이지 경연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소만리, 내가 전에 너한테 심한 말 한 거 알고 있어. 우리들이 한때 고부 사이였던 것을 봐서 한 번만 봐 줘. 이전에 내가 잘못한 것들은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어.”“경연도 잘못했어. 너한테 그렇게 상처 주면 안 되는 거였어. 경연이 이런 벌을 받은 것도 다 인과응보지. 하지만 소만리, 우선 지금은 경연한테 목숨이라도 지키라고 말 좀 해줘. 꼭 부탁할게.”경연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소만리의 손을 놓지 않았다.“소만리, 마음이 넓은 네가 제발 우리 경연이 좀 살려줘. 다시 한번 이렇게 부탁할게. 진심이야. 진심으로 부탁할게!”경연의 엄마가 거듭 부탁하자 소만리의 태도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정말로 그들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소만리, 제발. 들어가서 경연이 좀 만나주면 안 되겠어?”“소만리, 나도 부탁할게. 제발 내 아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희망을 줘.”경연의 아버지도 다가와 간청했다.소만리는 약간 동요했다. 문득 그녀와 경연 사이에도 결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기모진을 보고 막 입을 열려고 하자 남자는 이미 미소를 띠고 있었다.“가봐.”기모진은 살며시 소만리의 손을 놓아주었고 다정하고 그윽한 눈으로 그녀에게 말없이 격려를 보냈다.소만리는 빙그레 웃으며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병실로 향했다.병상에 누운 경연의 희미한 눈동자 속에 갑자기 소만리의 모습이 비쳤고 그의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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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3장

하고 싶었던 말이 뭐냐고?경연은 눈앞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이 여인을 바라보았다.창밖에서 넘어온 햇살이 그녀의 몸에 빛을 드리웠고 햇살을 등진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초월한 존재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그렇지만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초월한 듯한 그녀는 이미 그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사실 그 말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저 당신한테 삶의 희망을 주고 싶었을 뿐이야.”소만리의 말에 경연의 눈 속에서 빛이 하나둘 사라졌다.“아니야. 당신은 날 속이고 있어. 분명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야.”그의 눈 속에는 기대의 빛으로 가득했다.그 옛날 신사의 온화하고 우아한 모습에는 불안감이 가득해 보였다.소만리는 침대로 다가가서 경연의 잿빛 얼굴을 보면서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소만리의 복잡한 심경 속에는 그를 향한 일말의 연민도 있었다.그녀는 기대로 가득 찬 경연의 눈을 보면서 가볍게 입을 열었다.“그날 당신은 아무런 다른 조건은 없다고 했어. 오직 나만 당신에게 순종하고 당신과 함께 이 마지막 일만 해주면 충분하다고 했어. 그 일은 내가 당신과 함께 불꽃놀이를 끝까지 다 보는 거였어. 불꽃놀이를 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은 오로지 날 소유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였지. 그렇지?”소만리에게 자신의 모든 마음을 간파당한 경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당신이 총에 맞기 전에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내가 정신이 나가도록 해칠 생각은 없었고 단지 내가 당신 곁에 있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하지만 경연, 감정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야. 당신이 날 통제하고 내 기억을 조작한다고 해도 그건 가짜야. 진짜가 아니라고.”소만리의 이 말이 경연의 정곡을 찔렀다.소만리가 말한 이치를 그도 이제야 깨달았다.그는 이미 더 이상 그녀에게 말도 안 되는 욕심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경연, 원래는 나 정말 당신 미워하고 당신이 죽기를 바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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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4장

더는 여한이 없는 듯 그는 마지막으로 후련하게 소만리에게 한 마디 남겼다.“기모진과 부디 행복해.”“고마워. 행복하게 잘 살게.”소만리는 담담하게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치고 돌아섰으나 두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경연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 세웠다.“소만리.”소만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어? 무슨 할 말 또 있어?”경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이혼 수속 일은 변호사에게 맡길게. 지금부터 우리는 더 이상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야. 당신 이제 기모진에게 돌아가도 돼. 이제 명실상부하게 그의 부인이 되는 거야.”소만리도 경연과의 이혼 협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먼저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문 손잡이를 돌렸다.문이 열리고 기모진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경연의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그때 호텔에서 당신과 내가 한 침대에 누웠던 일은 내가 계획적으로 벌인 거야. 사실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어.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기모진의 여자였어. 처음부터 끝까지.”비록 소만리는 그때 경연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진작에 짐작하고 있었지만 지금 경연이 솔직하게 고백해 주니 소만리의 마음속 가시가 완전히 뽑히는 것 같았다.병실 문 앞에 서 있던 기모진도 경연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큰 동요는 없었다.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오직 소만리이기만 하다면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그는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오랜 세월 그 많은 비바람을 겪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는 소만리가 유일무이한 사랑이고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소만리가 병실에서 나오자 경연은 의사의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경연은 이제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회복에는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몸조리를 할 것이다. 단 그의 몸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소만리가 기모진을 따라 병원을 나설 때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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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5장

노란 장미?소만리의 머릿속에는 그날 길가에서 보았던 그 여인이 떠올랐다.노란 장미를 들고 두 아이를 데리고 있던 그 여인.그런데 지금 소만리가 놀란 것은 이 여자의 목소리 때문이었다.이건 분명히 초요의 목소리였다!소만리는 몸을 홱 돌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았다.마침 한 젊은 여인이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꽃집 입구를 나서고 있었다.이 수척한 모습의 여인은 바로 그날 꽃집 앞에서 소만리가 보았던 그 여자였다.이 사람은, 초요?믿을 수 없는 생각들이 소만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초요!”소만리는 여자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지만 여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꽃집 문을 나섰다.소만리가 쫓아가려고 발길을 돌리자 꽃 가게 직원이 급히 그녀를 불렀다.“손님, 꽃 안 가지고 가셨는데요.”“고마워요!”소만리는 포장된 안개꽃 다발을 받아들고 서둘러 꽃집을 뛰쳐나갔다.기모진은 소만리가 꽃 가게로 들어간 후 줄곧 꽃집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침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 통화를 하고 나서 눈을 들어 보니 소만리가 급하게 꽃집에서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망설임없이 바로 차에서 내려 소만리를 향해 달려갔다.“소만리, 왜 그래?”소만리는 꽃집 양옆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모진, 내가 나오기 전에 방금 꽃집에서 나온 젊은 여자 못 봤어?”기모진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방금 집에서 전화가 와서 뭘 물어보는 바람에 내가 그쪽을 못 봤어. 왜 그래?”“나 초요를 본 것 같아.”“초요?”“응!”소만리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 여자가 노란 장미꽃을 사고 바로 갔어.”“소만리, 정말 초요인 것 같았어?”“내가 그 여자 얼굴은 못 봐서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 목소리, 그 목소리는 분명히 초요야!”소만리는 매우 침착하게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시선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여인에게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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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6장

”그날 밤 내가 전화로 들은 그 여자의 목소리는 정말 초요와 같았어. 그런데 지금 남사택이 저 여자 곁에 나타났어. 저 둘은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초요라면 초요는 왜 남사택과 함께 있는 걸까?”소만리의 심장 박동이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고 이 젊은 여자의 정면을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이때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었고 소만리와 기모진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지만 공교롭게도 남사택은 그 여자와 두 아이를 데리고 바로 옆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소만리와 기모진이 쫓아갔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자 소만리는 더욱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남사택과 함께 있던 그 여자가 초요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초요가 그 후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살아있는 한 소만리는 그것만으로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다.기 씨 본가로 돌아온 후에도 소만리와 기모진은 이 사실을 기묵비에게 알리지 않았다.뭔가 확실해지기 전에 그에게 헛된 희망을 줄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이때 기란군과 기여온 두 남매가 방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소만리는 하늘하늘 우주를 품은 듯한 안개꽃 다발을 뒤로 숨긴 채 방으로 들어갔다.“기란군, 여온아"기란군과 기여온 두 남매가 소만리의 목소리를 듣고 동시에 눈을 들어 소만리를 쳐다보았다.이 녀석들은 모두 엄마의 태도에 대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왜냐하면 한동안 소만리가 집을 비운 후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그들 남매에게 차갑고 낯선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자신의 정신이 온전치 못해 아이들에게 냉대했다는 것을 깨달은 소만리는 자애로운 미소를 만면에 띠우며 두 아이를 향해 팔을 벌렸다.“기란군, 기여온. 왜 그래? 엄마 몰라?”기란군과 기여온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두 남매는 펜을 놓고 약속이나 한 듯 작은 다리를 내디디며 소만리를 향해 달려갔다.“엄마!”기란군은 소만리의 다리를 끌어안고 큰 눈을 말똥거리며 말했다.“엄마, 나 알아보겠어?”“미안해, 기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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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장

기묵비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눈물이 그렁그렁한 그의 눈에 나타난 그 얼굴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초요. 초요.”그는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눈 속을 가득 채우던 눈물을 닦아내었다.눈앞을 스쳐가던 그 낯익은 모습이 다른 방향으로 돌아섰다.기묵비는 얼른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지만 지금은 한창 퇴근 시간이라 인파 속에 묻히고 말았다.그가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반대편으로 달려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초요. 초요!”기묵비는 젊은 여인의 뒷모습을 향해 연신 소리쳤지만 먼 거리를 두고 여인은 묵묵히 제 갈 길로 가버렸다.기묵비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초요’라는 말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기묵비는 반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그저 건너편 길에서 나란히 그녀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돌아서서 길 끝 모퉁이로 들어갔다.“초요!”기묵비는 그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안절부절못했다.결국 그는 오가는 차량에도 불구하고 곧장 길 건너편으로 돌진했다.많은 운전자들이 창문을 내리고 머리를 내밀어 기묵비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화를 냈다.“죽을 셈이야! 이렇게 함부로 건너다니, 죽어도 싸!”기묵비는 이 사람들과 말싸움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그는 자신이 밤낮으로 오매불망 그리던 이 사람이 다시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그는 정말 무서웠다.하지만 기묵비가 모퉁이를 돌아 따라갔을 때 방금 그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초요. 초요!”기묵비는 당황하며 주변을 향해 그녀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으나 지나는 행인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만 보일 뿐 낯익은 그 모습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초요.”기묵비는 낙담한 듯 어둡게 눈을 내리깔았다. 가슴 전체가 텅 빈 것 같았다.설마 그가 너무 그녀를 그리워한 나머지 방금 환영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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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장

훤칠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여자의 머릿속이 갑자기 먼 옛날로 훅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엄마, 엄마.”아들이 부르는 소리에 여인은 그제야 멀어져 가던 정신을 붙잡았다.“엄마, 집에 가. 집에 가자구.”“그래.”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을 안고 다시 돌아섰다.몸을 돌린 후에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기묵비를 향해 고개가 돌아가서 몇 번을 쳐다보았다.기 씨 본가.저녁을 먹은 후 온 가족이 거실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다.소만리는 앞으로 자신의 삶이 무척 바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지금 그녀는 세 아이와 그리고 약간 기억을 잃은 엄마에게 둘러싸여 그동안 풀어내지 못한 애틋한 얘기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다행히 기란군과 기여온 두 아이는 철이 들어서 소만리가 그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마음을 위로해 줘야 할 사람은 사화정이다.그리고 막내아들도 아직 많이 어려서 소만리에게 달라붙어 뽀뽀를 하고 높이 들어 올려달라고 조르고 있었다.“우르르르, 까꿍!”막내아들은 큰 눈망울을 굴리며 천진난만하게 웃었고 계속 재미있는 놀이처럼 안아달라고 했다.소만리가 다시 손을 뻗어 막내아들을 안아올리려 하자 기모진이 다가와 막내를 안아갔다.“아빠가 안아줄게.”막내는 완강하게 짧은 다리를 뻗으며 작은 손을 소만리에게 뻗쳤다.역시나 아직은 기모진이 생소한 모양이었다.기모진도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녀석과의 관계 형성을 잘 맺어야 했다.자신의 행동에 충격을 받아 조산까지 하게 된 소만리를 생각하면 그는 더더욱 이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아껴주고 싶었다.기모진의 각종 장난감과 간식 공세에 어린 막내아들은 어느새 점점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소만리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기모진이 아이를 보는 동안 소만리는 편안하게 사화정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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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장

모현의 말을 듣자 기모진의 무거운 눈길에는 다행스러운 빛이 흘렀다.강연이 그에게 준 담배 때문에 읽어버렸던 중요한 기억들이 이제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그때의 화재는 제가 저지른 것이 아니에요.”기모진은 마침내 사실을 말할 기회가 생겼고 모현과 소만리는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모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 일에 대해서는 나한테 말했잖아. 비록 자네가 그때 강연에게 이용당해 기억을 잃었지만 이 불은.”“강연이 사람을 시켜 미리 불을 질러놓았고 나한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게 만들어 날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했어요. 강연의 목적은 이 불을 내가 지른 것이라고 소만리가 오해하게 만들어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었어요.”기모진의 대답에 모현과 소만리는 깜짝 놀랐다.그들은 물론 지금 기모진이 한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강연이라는 여자는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여자이기 때문이다.“모진,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소만리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쓰린 심정으로 안타깝게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갑자기 소만리는 죄책감이 느껴졌다.기모진은 지금까지 이런 억울함을 혼자 속으로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심지어 그 일로 인해 그녀를 잃고 그들의 결혼 생활도 파탄이 났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다.“그동안 강연이 준 특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운 까닭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었어.”기모진의 말을 들으며 소만리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그 당시 그녀의 눈앞에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타오르는 불길을 본 순간 그녀는 모든 이성을 잃었다.강연에게 다른 속셈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소만리는 오직 강연이 기억을 잃은 기모진을 이용해 그에게 불을 지르게 했다고만 생각했다.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얼마 전 비행기를 타고 Y국으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난기류 때문에 머리를 부딪히고 나서야 모든 일이 생각났어.”기모진은 눈앞의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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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장

사화정은 그곳에서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찾았는지 손에 들고 감격에 겨워 바라보고 있었다.“찾았다! 여보! 이리 와 봐. 소만리!”사화정은 모현을 돌아보며 검게 그을린 가족사진 한 장을 펄럭이며 들어 올렸다.모현은 빠른 걸음으로 사화정의 곁으로 다가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사화정을 일으켜 세웠다.“여보, 얼른 일어나.”“여보, 이거 봐. 우리 딸 소만리야.”사화정은 사진 속에 거의 흐릿하게 보이는 인물을 가리키며 말했다.“소만리가 여기 있었어.”소만리는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그녀는 사화정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사화정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엄마, 소만리 여기 있잖아.”사화정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소만리의 말을 듣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어? 이 소만리 우리 딸 소만리랑 많이 닮았네.”“...”사화정은 진지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 말은 소만리의 심장을 사정없이 아프게 찔렀다.그녀가 바로 사화정이 그렇게도 그리던 바로 그 소중한 딸이건만 사화정은 그녀를 다른 사람으로만 여기고 있었다.“여보, 그렇지 않아? 정말 우리 딸 소만리랑 많이 닮았지?”사화정은 소만리를 가리켰다. 아름다운 사화정의 큰 눈에 천진난만한 놀라움이 가득했다.모현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그러네. 정말 많이 닮았어. 여보, 이 소만리를 우리 딸 소만리라고 생각하면 돼.”“어떻게 그래?”사화정은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부정했다.“우리한테는 하나뿐인 소중한 우리 딸 소만리가 있는데. 더구나 이 소만리한테도 부모가 있을 거 아냐? 그렇지?”사화정은 말을 마친 뒤 진지하게 소만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소만리는 말없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오늘 여기 온 목적은 잃어버린 사화정의 기억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소만리의 상실과 슬픔을 지켜보던 기모진은 그녀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며 위로했다.“소만리 그리고 자네, 지금 봤지? 이제 어떡하면 좋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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