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881 - 챕터 890

1699 챕터

882화

꽤나 떨어져 있는 데도 여름은 하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서 잔인한 기운이 뻗쳐 나오는 게 느껴졌다.병원에서 오는 길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백지안이 하준을 도발하는 소리를 했겠구나 싶었다.“회장님, 강 대표님께서 육민관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전성이 말했다.하준의 얇은 입술의 한쪽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육민관을 보고 싶다? 그러던지.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나올 생각은 마.”여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이제 진정이 좀 됐을까 싶어서 차분하게 당신이랑 얘기 좀 하려고 왔어. 정말 우리 사이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하준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당신이 총으로 날 겨눌 때 내 기분이 어땠는 줄 알아? 지안이에게 그런 미친 짓을 하다니. 정말 지안이를 그렇게까지 바닥까지 끌어내려야 했어?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악독한 마음을 품을 수가 있나?”여름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시간이 지나 진정된 마음으로 찾아왔던 여름은 하준과 말을 할수록 화가 올라왔다.헛웃음이 나왔다.“민관이를 만나서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고 싶어. 사람을 죽인 살인범도 조사를 받고 법정에서 변호 받을 권리가 있어. 당신이 뭔데 민관이가 내 지시를 받아서 사람을 납치했다고 단정을 지어? 영 나를 못 믿겠다면 이따가 같이 들어가던지.”하준이 싸늘하게 비웃었다.“좋아. 만나게 해 주지. 하지만 당신도 나올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하준은 말은 마치더니 무표정하게 전성에게 명령했다.“보호실로 데리고 가.”“회장님.”차윤이 걱정스러운 듯 일어섰다.“시끄러워. 강여름을 경찰에 넘기지 않는 것만 해도 많이 봐준 거야.”하준은 싸늘하게 여름을 노려봤다.“안에서 반성하고 인간이 되어서 나오도록 해.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잘 생각하고 그 악독한 마음을 잘 수습해서 나중에 지안이를 증오하고 해치려는 마음이 안 들겠구나 싶으면 내보내 줄지 고려해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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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화

하준의 몸이 떨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무슨 소리야?”“회장님, 누가 내 가족의 손가락을 잘랐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보십시오.”그러더니 차윤은 괴로운 듯 입을 다물었다. 그저 허리를 숙여 봉투를 집더니 병원으로 향했다.하준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밖에는 해가 쨍쨍한데도 온몸에 한기가 스며들었다.‘아니, 아니야. 놈은 그냥 일개 보디가드라고.그리고 강여름도 고통을 당해 봐야 해. 그래야 지안이의 고통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셈이지.’----지룡 보호실.문이 열리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구석에는 마대자루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육민관이 보였다. 이미 기절한 듯 보였다.사납던 얼굴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온몸은 멍투성이였다.육민관을 살피던 여름의 눈이 마침내 손으로 향하더니 눈이 확 커졌다.“애 손이….”“방금 전 회장님께서 하신 일입니다.”지룡 멤버가 그렇게 말하더니 문을 잠그고 나가버렸다.‘방금 전이라니….’여름의 머리가 윙윙 울렸다.‘내가 기다리는 동안 최하준은 여기서….’떨리던 여름의 손가락이 주먹을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던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데도 몰랐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지?’눈물이 떨어졌다. 이제 여름의 눈에 온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원한만이 가득했다.“민관아… 민관아….”여름은 가볍게 육민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여름에게 민관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겨우 두 살 아래인 민관을 여름은 언제나 동생처럼 여겼다.“누님….”육민관이 힘겹게 눈을 떴다.“왜…왜 누님이 여기 있어요? 최…최하준 그놈이 누님을 가뒀나요? 이… 죽일 놈이….”“괜찮아. 다 나갈 방법이 있어서 들어온 거니까.”여름은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얘, 네 손이….”“괜찮아요. 그…그냥 손가락 하나잖아요.”육민관은 통증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잠시 후 육민관의 몸이 심하게 수축되더니 눈꺼풀이 뒤집히는 등 이상한 증상을 보였다.“왜, 왜 그래?”여름이 너무나 놀라서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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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화

“그리고 이 사건은 백지안과 반드시.. 관련이 있어요.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백지안의 배후에 있는 인물입니다.”육민관이 간신히 말을 이었다.“놈은 이미… 우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여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그 얘기를 최하준에게도 다 했어?“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더군요.”육민관이 피식 웃었다.“누님 남자 보는 눈은 왜 그렇게 후졌어요? 내가… 훨씬 나은 것 같은데.”“내가 너에게 정말 면목이 없다. 어떻게, 조금 더 버틸 수 있겠어?”여름이 걱정스럽게 민관을 바라보았다.“약 기운 때문에 힘들어서 그렇지….”민관이 헐떡거렸다.“하지만… 통증이 정신을 깨어있게 해줘요. 오히려 그래서 버틸 수 있네요. 그리고 누님, 제가 죽으면 죽는 거죠. 어쨌거나… 제 목숨은 어차피 누님께 빚졌던 것인걸요.”“그런 소리 마. 어쨌든 내가 널 데리고 나갈 거니까.”여름이 새빨갛게 부은 눈을 하고 민관의 손을 잡으며 맹세했다.이때 철문이 열리더니 하준이 들어왔다.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하준의 눈이 번뜩했다.“손가락뿐 아니라 손까지도 잃어버리고 싶은 모양이지?”하준이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여름을 확 잡아챘다.“그만 해!”여름은 결국 주먹을 날렸다.생각지 못한 일격에 전혀 방비가 없던 하준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몸의 고통은 마음의 고통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다른 남자 때문에 내게 주먹질을 하다니.”하준은 폭주하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여름을 노려보았다.“이렇게 감싸고 도는 꼴을 보니 살려둘 수가 없군그래.”“민관이에게 앞으로 손가락 하나라도 까닥해 봐. 당신 눈앞에서 내가 죽어버리겠어.”여름이 협박했다.“이놈을 사랑하나?”하준이 눈이 악마처럼 번득였다.“이 아이는 내 가족이야.”여름이 붉어진 눈으로 하준을 노려보았다.“나랑 윤서가 타향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지내는 동안 민관이가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린 애진작에 죽었을 거야. 내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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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화

최하준의 안색이 확 변했다. 여름을 죽어라 노려봤다.여름의 눈은 물결치지 않는 호수처럼 평온했다.“민관이 말이 맞아. 우리가 사귀었던 거라면 이제 정식으로 헤어지자고 말할게. 최하준, 우리 헤어져. 다시는 당신과 만나고 싶지 않아. 영원히. 그러니까 이제 당신이 날 용서하든 말든 난 아무 상관이 없어.”결연하면서도 평온한 여름의 얼굴을 보면서 하준은 심장이 바들바들 떨렸다.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가 온몸을 덮친 것만 같았다.여름이 코앞에 있는 데도 너무나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하준은 여름과 헤어질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송영식이 무릎을 꿇으며 지안과 결혼해 달라고 애원할 때도, 여름이 백지안을 납치하라고 명령했다고 생각했을 때조차도….하준은 죄는 일단 육민관에게 뒤집어씌우고 여름은 반성하는 기미만 있으면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어떻게 당신이….”하준은 한동안 입이 굳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애 손가락을 자르는 짓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지.”여름의 눈에 원한이 가득했다.“민관이는 내 동생이야. 가족의 손가락이 잘렸을 때 기분이 어떤지 알아? 뼈가 부러지면 다시 접합하면 되고, 피부가 찢어졌으면 치료하면 되지.하지만 손가락을 자르는 건 얘기가 달라. 잘린 손가락은 다시 자라지 않는다고! 당신은 악마야! 당신 같은 인간은 백지안과 어울리니, 가, 가서 둘이 천년만년 잘살아 보라고!”“시끄러워!”하준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질렀다.“내가 백지안과 결혼을 하더라도 당신은 내 곁에 붙어 있어! 내가 죽을 때까지 못 놓아줘!”“그럼 죽어! 당신처럼 후안무치한 인간은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 안 되니까.”이제 여름은 대놓고 욕을 퍼부었다.“당신 같은 인간이야말로 정신병원에서 평생토록 나오지 말았어야 해!”“……”보호실은 갑자기 죽음과도 같은 적막에 싸였다.하준은 핏발 가득한 눈으로 여름을 노려보았다.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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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화

“여울이 어디 있는지 전화 한 번 해보지 그래?”여름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암시를 주었다.하준은 떨리는 가슴을 안고 급히 여울의 키즈폰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대체 여울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하준의 두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곧 여름을 잡아먹을 기세였다.“나는 여울이와 영상통화를 할 방법이 있지. 그렇지만 일단은 내 휴대폰을 돌려주셔야겠어.”여름이 하준에게 손을 뻗었다.하준은 바로 사람을 보내 여름의 휴대 전화를 가져오도록 했다. 여름은 양우형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 건너편에 마스크를 쓴 사내가 나타났다.“찾으셨습니까?”“꼬맹이 좀 보여줘.”여름이 명령했다.양우혁은 곧 여울을 바꿔 주었다.“큰아빠!”여울이 방글방글 웃었다.하준은 서둘러 배경을 살펴보았다. 성운빌이 아니었다. 완전히 낯선 곳인데 장소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여울아, 오늘은 유치원에 안 갔어?”하준이 다급히 물었다.“여름이 이모가 오늘 같이 놀러 가자고 이 삼촌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큰아빠, 여름이 이모한테 언제 오는지 물어봐 주세요.”여울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나 이제 심심한데.”“여울아, 거기가 어딘지 알겠어?”“몰라요. 처음 온 데인데….”“이제 그만 휴대폰은 삼촌에게 줘.”양우형이 전화기를 빼앗아 가더니 카메라를 보고 웃어 보였다.“빨리 좀 와주십시오. 저는 애를 본 적이 없어서 이제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려고 합니다”그러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준이 여름의 팔을 와락 잡았다.“이봐! 당신을 온전히 믿는 어린애에게까지 손을 대다니 이러고도 당신이 사람이야! 내가 미쳤지, 이런 사람을 사랑하다니….”팔을 잡고 마구 흔들어 대는 통에 여름은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다. 얼마나 세게 잡혔는지 피가 안 통했다.“내가 인간도 아니라고? 그래, 10분 내로 우리를 풀어주지 않으면 인간 같지도 않은 내가 꼬맹이를 어떻게 하라고 했을 것 같아?”여름은 침착하게 협박을 이어 나갔다.“날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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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화

육민관이 경찰에 넘겨지자 정상적인 프로토콜에 따라 일단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이송될 것이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야 심문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 육민관이 경찰 손에 들어갔으니 최하준은 사적으로 육민관을 건드릴 방법이 없었다. “나도 신고할 것이 있습니다.”하준이 후다닥 뛰어오더니 여름을 가리켰다.“이 사람이 내 조카를 납치했습니다. 아이를 해칠지도 모르니 당장 구속하고 조사해 주십시오.”“좋습니다. 두 분은 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경찰이 말했다.곧 육민관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여름은 경찰차에 타고 하준은 뒤에서 다른 차를 타고 경찰서로 이동했다.경찰서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최양하가 여울이를 데리고 왔다.“안녕하세요? 경찰 아저씨네?”여울은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발랄하게 인사를 했다.“꼬마 아가씨, 안녕!”경찰이 여울의 통통한 볼을 쓰다듬더니 매우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하준을 돌아보았다.“저기… 조카분이 납치됐다고 하지 않으셨나요?”“……”하준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최양하를 쏘아보았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여울이가 왜 너랑 같이 돌아와? 그 마스크 쓴 남자는?”“양우형 씨 말하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 여울이랑 놀아주다가 갔는데.”최양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형님, 왜 여울이가 납치됐다고 그랬습니까?”“너 지금 강여름이랑 짜고 날 가지고 논 거냐?”최하준은 분기탱천해서 최양하의 멱살을 잡았다.“너 같은 놈은 여울이 아빠가 될 자격이 없어!”“이모, 팔이 왜 이래요?”갑자기 여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울은 어느새 여름에게 다가가 팔목의 멍을 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잘못해서 어디 부딪혔어. 아무것도 아니야.”여름이 여울이를 안아주려고 팔을 뻗는데 하준이 후다닥 여울을 안아버렸다. “당신은 여울이를 안을 자격이 없어. 비켜!”여울은 이렇게 험악한 하준의 모습을 처음 보아서 놀란 나머지 흠칫했다가 곧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여름이 이모한테 왜 무섭게 말해요. 큰아빠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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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화

차 안.여울은 여름의 품에서 울먹였다.“엄마, 아파? 난 이제 아빠가 안 좋아. 엄마도 이제 아빠 만나지 말아요.”“엄마는 괜찮아.”여름이 보드라운 여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늘 여울이가 아주 잘해주었어. 미안하다, 엄마가 여울이를 이용해서.”여름도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자기 자식을 이런 일에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다.“괜찮아요. 민관이 삼촌을 구하려고 그런 거잖아. 그리고 우형이 삼촌이 잘 놀아줬어요.”여울이 속삭였다.“이따가 여울이는 작은삼촌하고 조금 더 놀자. 엄마는 민관이 삼촌을 구할 증거를 조금 더 찾아봐야 하거든.”여름이 여울의 이마에 뽀뽀를 쪽 해주었다.“일 마치면 엄마가 여울이 보러 갈게. 알겠지?”“알았어요. 여울이는 착하니까 기다릴게.”여울이 코를 훌쩍이며 끄덕였다.“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최양하가 물었다.“괜찮아요. 우리 여울이만 잘 돌봐주면 돼요.”여름이 고개를 저었다. 일이 워낙 복잡해서 괜히 최양하가 끼어들었다가 다칠까 봐 두려웠다.“내가 너무 쓸모없는 인간이라 미안하네요.”최양하가 씁쓸하게 웃었다.“그런 소리 말아요. 양하 씨는 충분히 현명한 사람이라고요. 최소한 형님보다는 낫잖아.”여름이 진심에서 나오는 말을 했다.“뭐, 그러네요. 대체 백지안이 우리 형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니까요.”최양하가 한숨을 쉬었다.최양하와 헤어지고 나서 여름은 바로 양우형에게 연락했다. 여름은 양우형에게 사건이 벌어진 동굴에 가보도록 하고 자신은 육민관이 지내던 아파트로 향했다.그리고 여름은 CCTV를 뒤져 당시 배달원이 육민관에게 식사를 배달했던 당시 영상이 모두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저녁 8시부터 8시 반 사이의 모든 영상이 싹 다 사라져 있었다.----다음날, FTT그룹.사무실에서 하준은 한껏 무거운 얼굴로 중역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며칠 출근을 하지 않았던 탓에 하준에게 보고할 내용이 많았다.그러나 얼마 안 가서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분노한 최양하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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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화

최양하는 주먹을 꽉 쥐더니 영 내키지 않는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어쨌든 지금은 아무 데도 못 갑니다. 여울이는 너무 어려요. 이 임무는 다른 사람에게….”“여울이를 돌볼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그리고, 넌 그 악독한 강여름과 너무 가까이 지낸다고. 그런 녀석에게 여울이를 맡길 수는 없어. 다시는 여울이가 인질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어린애야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너는 애비가 되서 다른 사람이 날 협박하도록 애를 내주다니?강여름이 진심으로 나와서 여울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본 거냐?”하준은 최양하를 노려보았다.“가장으로서 난 너희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어.”“형님은 정말 너무나 오만하고 멋대로라고요.”최양하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대체 왜 여름 씨를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단정 짓습니까? 어쩌다가 그 순진한 사람이 형님 같은 사람에게 사랑받게 되었는지 정말 너무 안 됐어.”“사랑이라고?”하준이 싸늘하게 웃었다.“그런 인간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전에는 내가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랬지만 이제 더는 절대 여울이가 강여름을 만나는 꼴은 못 봐.”“난 어쨌든 Y국에는 절대 못 갑니다.”최양하가 강경하게 나왔다. 여울이를 혼자 본가에 두다니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여름에게 반드시 여울이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두 모녀를 종종 만나게 해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는데…“가기 싫다면 부회장 자리 내놓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하준이 싸늘하게 뱉었다.“해보자 이겁니까?”울컥 치솟는 원한과 치욕을 안고 최양하는 사무실에서 나갔다.입구까지 걸어가서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나는 강여름을 그저 친구로만 생각하지만 무조건 믿을 수 있어요. 하지만 형님은 밤낮으로 잠자리를 함께한 사이면서도 내 반도 믿어주지 않죠.심지어 경찰이 정상적인 육민관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도 형님만이 눈곱만큼도 강여름이 결백을 밝힐 기회도 주지 않았어요. 정말 너무합니다. 조만간 땅을 치며 후회할 날이 올 겁니다.”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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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직접 법정에 나설 테니”하준이 가라앉은 소리로 답했다.“잘됐다. 세상에 우리 준만큼 확실한 변호사는 없으니까.”백지안이 고개를 들고 빙그레 웃었다.----밤이 내린 최하준의 본가.모처럼 만에 돌아온 하준을 보고 장춘자는 못마땅한 듯했다.“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네가 집을 다 오고. 손에 든 건 뭐니?”“신상 인형요.”하준은 인형을 들고 여울에게 다가갔다.“여울아, 큰아빠가 선물 사 왔다.”하준은 평생 꼬맹이의 기분이나 살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제 여울의 말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었다.왜 최양하의 딸에게 이렇게 자신이 쩔쩔매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싫어요.”여울이 고개를 돌리더니 장춘자의 뒤로 숨었다.장춘자가 못마땅한 눈으로 하준을 노려보았다.“여울이 애비를 평사원으로 강등시켰다며? 애 꼴을 그렇게 우습게 만들어 놓고도 뻔뻔하게 여울이를 보러 오다니?”“양하가 벌써 여울이에게 그런 소리를 다 했습니까?”하준이 얼굴이 무거워졌다.“아니거든요.”여울이가 고개를 들었다. 한껏 겁먹은 눈이었지만 그래도 큰 소리로 외쳤다.“작은할아버지랑 작은할머니가 그러는데 우리 아빠가 뭘 잘못해서 큰아빠가 혼내줬다고 그랬어요.”하준은 말문이 막혔다. 도무지 어린애에게 마땅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정말로 지안이 이모 말처럼 큰아빠는 다른 아빠에게서 태어나서 우리 아빠를 미워하는구나.”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여울이 말했다.“백지안이 그런 소리를 하디?”장춘자의 얼굴이 확 변했다.“어떻게 된 물건이 어린애에게 그따위 소리를 지껄인다니? 정말 너무하구나.”“할머니….”최하준은 매우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장춘자가 호통을 쳤다.“요즘 날마다 병원에 들락거리며 백지안이를 돌보고 있다며? 어디 여자가 없어서 널 두고 바람이 난 애에게 그러고 목을 맨다니? 온 나라가 그 물건 천박한 것을 두고 난리가 났는데 너만 모르는구나.”하준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이때 최대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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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화

“나도 다 알아요.”여울이 허리에 손을 얹었다.“여기서는 큰아빠랑, 큰아빠 집에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할아버지가 날 좋아해요. 그런데 친할아버지랑 고모할머니랑 우리 아빠네 집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는 다 날 안 좋아해.” 하준은 깜짝 놀랐다. 한참 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친할아버지라는 게 네 아빠의 아빠를 말하는 거지? 그쪽 삼촌이랑 이모들도 다 널 안 예뻐한다고?”“응. 아빠랑 친할아버지네 가면 아무도 안 놀아줘요. 그리고 거기 나 괴롭히는 오빠도 있거든요.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친할아버지가 만날 나더러 사과하래.”여울이 입을 비죽거렸다.“왜 날 그렇게 미워하는 걸까?”왜인지 모르지만 하준은 심장이 욱신하니 너무나 아팠다. “앞으로는 친할아버지네 가지 마. 심심하면 언제든 큰아빠가 놀아줄게.”“싫어요. 난 지안이 이모랑은 놀기 싫은걸. 지안이 이모도 날 안 좋아한단 말이야.”여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니 손을 흔들었다.“큰아빠, 안녕~”그러더니 여울은 깡총깡총 뛰어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하준은 여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갑자기 휴대 전화를 꺼내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최양하를 계속 부회장 자리에 두도록 해.”인사팀 팀장은 황당했다“그러면 Y국 공장 건설 현장에는 파견하지 않습니까?”“됐어. 다른 사람으로 보내도록 하지.”하준은 한숨을 쉬었다.‘하필 양하 녀석이 저런 깜찍하고 귀여운 딸을 둬가지고. 양하가 일반 사원이 되어 버리면 여울이까지 같이 무시당할 거 아냐? 우리 여울이가 남들에게 무시당하면 안 되지.아니 그런데, 추동현이 여울이를 예뻐하지 않다니 좀 의외군 여울이는 친손녀인데, 손녀를 귀여워 하지 않는 할아버지가 있단 말이야? 하여간 추신 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하다니까.’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이진숙이 웃으며 맞아주었다.“회장님, 사모님은 언제 돌아오세요?”“……”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진숙은 미처 안색이 바뀌는 것은 보지 못하고 웃으며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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