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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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장

오후가 되어 휴대 전화를 개통하고 났더니 부재중 전화가 열 개도 넘게 떴다.윤서부터 아버지, 어머니까지 여기저기서 많이도 왔다.‘혹시 다들 그날 일을 알고 그러나?일말의 기대감을 감추고 발신을 눌러보았다.“엄마….”“드디어 전화했구나.”날카로운 이정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밖으로 돌아다닐 거니? 당장 집으로 돌아와!”‘집으로’라는 말에 여름은 씁쓸해졌다. “거기가 아직 저에게 집이긴 한가요?”“강여름,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영원히 못 돌아올 줄 알아라. 우리도 딸 하나 없는 셈 치면 그만 아니겠니?”이정희는 이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잠시 고민하다가 여름은 집에 일단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어쨌든 이제껏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들이다. 정해천의 녹취 파일을 가져가 강여경의 실체도 밝혀야 했다.******한 시간 후, 차를 몰아 집에 도착했다.고작 한 달여만인데도 어쩐지 많은 게 달라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집으로 들어서니 거실에 강태환과 이정희, 강여경이 모두 있었다.강여경의 얼굴을 보자 가슴 속 깊은 데부터 증오가 치밀어 올랐다. “강여경이 제 작품을 훔친 거 알….”“여름아, 밖에서 날 욕하고 다니는 건 그냥 넘어갈게. 하지만 집에서까지 이래야 하니?”강여경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적 없다고 했잖아.” 이정희도 정색하며 거들었다.“오자마자 시비니? 언제까지 이럴래?”“증거가 있어요.”여름은 핸드폰을 꺼내 녹음된 음성을 틀었다.정해천의 목소리가 나오자 강여경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러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더니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대체 누굴 시켜 조작한 거니? 정해천이 누군데? 난 모르는 사람이야.”여름은 고개를 돌려 붉어진 눈시울로 강태환을 바라보았다.“강여경이 정해천이란 사람 계좌로 1억을 입금했어요. 조사해 보시면 금방 나올 거예요.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랐고 나중에 아빠가 찾으신 다음에야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벌써 그렇게 복잡한 디자인을 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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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

“다 네가 자초한 거다.”이정희가 쌀쌀맞게 답했다.“저러니 선우한테도 차였지.”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약간의 기대마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바보같이…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어.’강태환과 이정희에게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 부부에게 강여경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핸드폰 돌려주세요”자포자기한 듯 여름은 힘없이 손을 내밀었다.“갈게요. 집안 망신이나 시키는 딸, 이제 다시 이 집에 발 들이는 일 없을 거예요.”“흥, 나가서 계속 우리 얼굴에 먹칠하고 사고나 치고 다니려고?” 이정희가 쏘아붙였다.“얌전히 집에서 반성하고 있어. 언제 내보내 줄지는 너 하는 거 봐서 결정하마.”‘탁탁’ 손뼉 소리와 함께 보디가드 몇이 달려와 여름을 붙들었다.“무슨 짓이에요, 이건 감금이라구요!”미칠 것 같았다. 가족이 자신에게 이 정도로 심하게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내 딸 제대로 교육하려는 거다. 2층으로 데려가 문 잠가!”강여경이 거들었다.“아빠, 이러지 마세요. 철이 없어 그런 건데요. 그리고 우리 집은 손님도 많이 오잖아요. 2층에서 소리 지르고 그럼 어떡해요.”그 말에 강태환도 흔들렸다.“하긴 그렇구나. 아예… 평안리에 있는 집으로 보내야겠다.”완전히 멘붕이었다. 평안리 집은 예전에 제사 때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5, 6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집이다. 한 번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마을 자체가 워낙 외지고 삭막한 곳이었다.강여경이 거드는 척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강여경, 이 나쁜….”이정희가 소리 질렀다.“도와주려고 애쓰는 애에게 욕을 해? 어째 그렇게 못 돼먹었니!”“당장 데리고 가.”강태환이 손을 내저었다. 여름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형편없어진 걸까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다.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로 차를 타고 얼마나 갔을까, 여름은 시골집에 버려졌다.현관은 보디가드들이 재빨리 걸어 잠갔고 창문마저 못으로 단단히 박아버렸다. 더 황당한 건 전기도 물도,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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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장

최하준이 일을 마치고 귀가했다. 저녁에 국제 금융사기 건으로 술을 좀 마셨더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불을 켜자 지오가 ‘냐아옹’하며 달려와 그의 다리를 잡고 계속 울었다.“녀석,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니?”최하준은 부드럽게 지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곧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지오가 코를 텅 빈 밥그릇에 비비는 걸 보고서야 분명히 깨달았다.‘굶은 건가?’ ‘강여름이 밥을 안 준 거야?’얼른 사료를 담아 주니 지오는 무척 배가 고팠던지 허겁지겁 달려들었다.최하준은 방을 한 번 둘러봤다. 여름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얼굴이 어두워졌다.‘이 사람이 대체, 입원했을 땐 그렇다 치고 이제 퇴원도 했겠다, 지오 좀 잘 챙겨달라니까.’‘게다가 지금이 몇 시야? 아직도 안 오다니.’휴대 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최하준은 핸드폰을 꺼내 위치를 추적해 보았다. 마침 오늘 여름에게 핸드폰을 줄 때 어젯밤과 같은 상황이 있을까 봐 위치 추적 앱을 깔아 놓았었다.위치를 찾은 후 김상혁에게 톡을 보냈다.—여기가 어딘지 알아봐.곧 김상혁에게서 전화가 왔다.“강여름 씨 부모님이 사는 집입니다.”“알았어.”전화를 끊고 나니 화가 치밀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좀 잘해줬더니 이제 막 나가는군. 전화 한 통 없이 그냥 가면 끝인가? 핸드폰까지 꺼버리고.’‘오전에 가져간 녹취 파일로 용서 받은 건가? 그러니까 이제 돌아올 필요 없다 이거지?’‘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이제 다 써먹었으니 버리시겠다?’‘잘났군, 영원히 돌아오지 마. 이젠 죽는 시늉을 해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테니.’ 하지만 여름이 이렇게까지 칼같이 연락을 끊은 건 너무 의외였다. 3일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니. 더욱 환장할 일은 3일 동안 자신이 밥을 잘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지훈이 극찬하는 동성 최고의 맛집을 가도 맛이 없게 느껴졌다. 가끔 무슨 일 있나 싶기도 해 위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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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장

“그건 모르지. 윤서 씨 말로는 그 집 편애가 장난 아니라던데”“됐어, 내가 조사해 보지.”최하준은 황급히 김상혁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강여름 행적 다시 추적해 봐. 마지막 위치가 어디인지.”한 시간 후, 김상혁에게 연락이 왔다.“3일 전에 집으로 갔는데 들어가고 얼마 후 차 한 대가 나왔습니다. 그 차가 곧바로 평안리의 어느 시골집으로 향한 걸 보니 아마 거기 있을 것 같습니다.”“그 말은 그러니까, 갇혔다고?”“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 댁은 제사 때 말고는 거기에 안 갑니다. 워낙 외진 깡촌이거든요. 핸드폰을 쥔 최하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와서 나 픽업해줘.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평안리는 꽤 멀었다. 김상혁은 세 시간을 꼬박 운전했다.도착했을 때는 새벽이었다. 최하준은 차에 내려서야 이곳이 얼마나 외진 곳인가를 깨닫고는 무척 놀랐다. 주위는 온통 산인 데다 불빛 하나 없었다.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대문도 수십 년은 족히 되어 보였다.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최하준은 그냥 담을 넘었다. 착지하는 순간 등불 하나가 다가왔다.“뭐 하는 사람인데 이 밤중에 남의 집에 들어오는 거유.”돌아보니 한 노인이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 “사람을 찾습니다. 아까는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도 안 나오시길래….”“여긴 나뿐이우. 얼른 나가슈.”노인이 최하준을 밀치며 말했다.최하준은 노인을 밀치고 손전등을 낚아챈 뒤 집 쪽을 비춰 보고는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일 층이고 이 층이고 창문마다 못이 박혀 있었고 현관은 잠겨 있었다.“빨리 나가요. 안 그럼 경찰을 부를 테니.” 노인은 더욱더 세차게 밀었다.“그러시죠. 아니면 불법감금죄로 되려 잡혀갈 겁니다.”당황하는 노인의 기색을 보자 최하준은 더욱더 확신이 생겼다.성큼성큼 걸어가 세게 문을 걷어찼다. 한참을 차도 열리지 않자 한쪽 옆에 놓여있던 도끼로 창문을 뜯었다.들어가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기조차 안 들어오는 집이었다. 최하준은 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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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장

병원 응급실 앞.밖에서 기다리는 최하준의 두 주먹이 굳게 쥐어져 있다. 반 시간쯤 지났을까, 의사가 응급실에서 나왔다.“한 시간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태로울 뻔했습니다.”“생명엔 지장 없습니까?”휴우… 최하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동안 긴장을 늦추지 못하던 심장도 이제야 좀 정상적으로 뛰는 것 같았다.“네, 하지만 신체 기능이 매우 저하된 상태라 열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의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아마 최소한 사흘은 물을 못 마셨을 겁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상한 음식을 먹였나 봅니다. 보름쯤은 푹 쉬어야 회복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김상혁도 놀라 혀를 끌끌 찼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최하준의 얼굴에 살기가 스쳤다.“오늘 일 기자들에게 알려. 그 집안 사람들의 실체를 알려주자고.”“알겠습니다.”******여름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곧 죽을 것 같던 찰나, 누군가의 뜨거운 품 안에 안겼다. 그 사람이 자신을 꼭 안아 붙들어 주었다. 너무나도 따스한 느낌, 마치 생명의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다. 정신이 들어보니… 아직 살아있다.‘아직 살아있네.’눈을 떴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몸엔 따뜻한 이불이 덮여 있고 작은 나이트 스탠드가 켜진 병실엔 히터도 돌아가고 있었다.그 음산한 폐가가 아니다. “드디어 깼니!”눈물이 그렁그렁한 윤서가 와락 안기며 울먹였다.“왜 자꾸 병원에 들락거리고 그래! 상태도 점점 더 심각하고, 아주 심장 떨어지겠어.”“네가 날 찾은 거야?”머리가 무척 어지러웠고 열이 심하게 났던 것 같다. 배도 뒤틀리듯이 아팠고…. 그게 기억나는 전부다. 여름은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배고프고 춥고 목마르고….“아냐, 하준 씨가 널 살렸어. 너희 집으로 찾아갔는데 네가 없는 거야. 바로 너희 남편에게 연락했지. 밤에 널 구해 나왔어. 이제까지 그 동네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안정되었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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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장

“알면 됐습니다. 그런데 강여름 씨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요?”종잇장처럼 삐쩍 마른 그녀를 보자 최하준은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혼인 신고한 이래로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잖습니까! 강여름 씨가 죽으면 경찰이 가장 먼저 심문할 사람이 나라는 건 압니까?”“앞으로 이런 일 없을 거예요.”여름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참으려고 창백한 입술을 꽉 깨물었다.최하준도 마음이 불편했다. 윽박 지르려던 건 아니지만 그래야 여름이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을 것 같았다.“내가 사준 핸드폰은 어째서 그 집에 둔 겁니까?”“엄마한테 속아서 뺏겼어요.”“바봅니까?”“…맞아요, 이제부터 강바부탱이라고 부르시면 되겠네요.”“…….”이지훈이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금세 병실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졌다.“됐어, 그만 자극하라고. 부모님한테 그런 일을 당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여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최하준이 인상을 풀었다.“죽기 싫으면 이제 그 집 사람들한테서 멀리 떨어지십시오.”“하긴.” 이지훈이 끄덕였다.“앞으로 우리 하준이 밥 좀 부탁합니다. 보세요, 며칠 제수씨가 해주는 밥을 못 먹으니 성질이 점점 괴팍해지고 있지 않습니까?”“이지훈”최하준이 노려보자 지훈은 말을 멈췄다.여름이 참지 못하고 살짝 웃었다.“얼른 돌아가서 해줄게요.”“됐습니다. 본인 몸조리부터 합시다.”내내 딱딱한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쭌,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한주그룹.한선우가 인터넷에서 그 뉴스를 본 지도 이틀이 지났다. 포털엔 이미 전문의의 진단서까지 공개돼 있었다.충격에 한동안 멍해 있던 한선우는 차를 몰아 강여경의 집으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분노를 억누르며 따져 물었다.“여름이를 폐가에 두고 물도 없이 쉰 밥만 주셨다는 게 사실입니까?”“그게 말이 되나? 자넨 어려서부터 우리를 봐 왔잖나, 우리가 그런 사람인가, 어디?강태환은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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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장

잠시 멍해 있던 한선우는 여름이 한 짓을 생각하자 금세 냉정함을 되찾았다.분명 여름이를 매우 좋아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전혀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내가 방법을 모색해 보겠네.”강태환이 말했다.******여름은 입원한 지 3일 만에 퇴원했다. 요즘 병원에 너무 자주 입원했기 때문에 이제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컨피티움으로 돌아와 보니, 그동안 보살핌을 못 받아 야위었을 거라 예상했던 지오가 뜻밖에도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저녁에 돌아온 최하준은 여름이 지오에게 먹이를 주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지오야. 다이어트 좀 하자. 네 배 좀 보라고, 임신한 것 같잖아.”최하준은 뜨끔했다.‘후우, 지오 배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네. 곧 알게 되겠어.’어쨌든 집에 사람이 있으니 집에 돌아왔을 때 썰렁하지 않아서 좋았다.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여름이 이미 밥상을 다 차려 놓고 있었다.구해준 데 대한 보답인지 모두 최하준이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최하준은 한 번 쓱 보더니 찌푸리며 말했다.“찜이나 볶음 말고 이제 가끔 국물 있는 걸 하면 안 되겠습니까?”여름은 당황스러웠다. 전에 찌개를 끓여준 적이 있지만, 많이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자주 하지 않았던 건데 오해였던가 보다.“알았어요, 특별히 먹고 싶은 거라도?”“사골국이나 삼계탕, 오리탕도 좋습니다. 인삼, 소꼬리, 동충하초, 이런 몸에 좋다는 거 좀 사 오십시오. 내 카드 쓰면 됩니다.”몸 보양 잘 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남을 거라는 의사 얘기를 대체 들은 건지 만 건지 답답했다. ‘아직 젊은 거 하나 믿고 이렇게 철이 없어서야.' “네.”여름은 순순히 대답했다.최하준이 말한 식재료는 모두 몸보신에 쓰는 것들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원래 몸에 좋다는 건 죄다 사다 먹는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뭔가 이상했다.식탁을 치우며 최하준이 오늘 반찬을 다 먹은 걸 보고서 그제야 깨달았다. 반찬이 지겨웠던 게 아니란 걸.‘맞다, 몸보신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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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장

말 하는 중에 커다란 손이 여름의 입을 막았다.최하준의 손에서 마른 소나무 향기가 시원하게 났다. 그윽하니 좋았다.하지만 너무 뜨거웠다, 으아!“그만.”안경 렌즈 뒤, 남자의 눈 밑으로 빛이 반짝였다.여름은 얼굴이 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하준이 손을 치우자 그제야 죽을 책상에 놓고는 말했다.“오래 일하길래 배고플 것 같아서요.”다진 쪽파가 송송 뿌려진 죽이 최하준의 식욕을 당겼다.“강여름 씨, 날 찌워서 잡아먹을 계획입니까?”“아뇨, 몸매는 지금 딱 좋은데요.”여름이 혼잣말처럼 말했다.“하지만 쪄도 난 상관없어요. 쭌 좋다는 여자가 없어지면 나한테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최하준은 여름을 한 번 쳐다보더니 입가에 싫은 티 역력한 웃음을 지었다.“됐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입원하는 여자는 못 데리고 삽니다.”“뭐 상관없어요. 내가 곧 돈 벌어서 부양할 테니.”여름이 큰소리를 쳤다.“내가 눈감기 전에 그런 날이 오려나….”최하준은 숟가락을 들어 죽을 저었다.완전히 무시당한 여름은 찝찝한 기분으로 서재를 나왔다.‘날 무시했어? 두고 봐, 증명해 보일 테니.’******새벽 1시.여름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얼른 등을 켰다. 등불의 따뜻한 기운에 차츰 마음이 안정됐다.또 그 어두컴컴한 폐가에 갇히는 꿈을 꿨다. 오싹한 소리가 들려오는 밤이었다. 여름은 두려움에 몸을 웅크렸다. 도저히 혼자 잠이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한참을 망설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가 초조하게 안방 문을 두드렸다.“누구야?”한밤중에 깬 최하준의 목소리에는 심한 짜증이 베여있었다.“나예요.”안에선 한참 적막이 흘렀다. 여름이 거의 포기하려고 할 때쯤 방문이 휙 열렸다.머리에 까치집이 진 최하준이 문에 서 있었다.“날 설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여름은 눈을 깜빡이며 잘못 채워진 최하준의 잠옷 단추를 보고 있었다. 급하게 입고 나왔음이 분명했다.“무서워서….”힘없이 눈을 드는 여름의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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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장

“지금 한 말 잊지 마십시오.”최하준은 무표정하게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다.여름은 쪼르르 달려가 최하준의 침대 옆에 이불을 깔았다.최하준은 처음엔 잠깐 경계했으나 여름에게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걸 보고는 곧 잠들었다.그러다 얼마나 잤을까,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열어줘요… 제발… 문 좀… 너무 추워… 무서워… 무서워.”최하준은 일어나 앉았다.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와 비추고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누워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름의 모습이 달빛에 어렴풋이 보였다.“일어나요, 꿈입니다.”최하준이 침대에서 내려와 여름의 손을 귀에서 뗐다.그러나 여름은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웅얼거렸다. 조그만 얼굴이 핏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창백했다.별수 없이 최하준은 여름을 품에 안고 어깨를 도닥였다.“걱정 말아요. 괜찮아요….”부드럽고 따뜻한 남자의 목소리에 잔뜩 긴장해 있던 여름의 몸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어깨와 뺨에 검은 머리카락을 흐트리고 품에 폭 안긴 작디 작은 얼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몸에선 화려하진 않지만 좋은 향기가 났다. 향수는 아니었다. 집에서 쓰는 샴푸 향이다.전에는 그 샴푸 향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었다.향기에 취한 채 최하준은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원래는 여름이 잠이 들면 내려놓을 생각이었으나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두 사람은 베개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여름은 몸 반쪽을 최하준의 가슴에 기대고 달게 자고 있었다, 평온한 웃음을 띤 채.최하준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달달한 신혼부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잠시 후, 그는 이불을 살살 걷어냈다.그리고 여름의 잠옷 앞 섶이 거의 다 풀려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침 그때, 여름이 스르르 눈을 떴다.서로 눈이 마주치자 여름의 동공이 확장됐다.자신이 최하준의 품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은 여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쪽으로 피했다.“아니, 왜 남이 침대에 들어와 있어요?”“…….”최하준은 어이가 없어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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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장

“됐어요. 나한테 뭐라고 할 순 있지만 여자라서 그런 걸 가지고 뭐라 하면 안 되죠.”“좀 하면 어떻습니까?최하준의 말투에 화가 가득했다.“아 진짜….”여름은 열이 확 뻗쳤다. 갑자기 최하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최하준은 깜짝 놀랐다.‘설마 강제로 키스라도 하려는 거야?’머릿속은 젤리처럼 도톰한 여름의 입술로 가득했다. 그런데 더 생각할 새도 없이 뺨에서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이럴 수가… 꼬집었다.최하준은 여름을 힘껏 밀쳐냈다. 꼬집힌 자리를 문질렀다.젠장, 정말 아팠다.“강여름 씨! 내가 당신을 어쩌지 못할 줄 알고 이러시나 본데?”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제정신이 돌아온 여름은 몸이 떨렸다. 어쩌자고 이런 황당한 짓을 저질렀을까?“어… 내 얘기 좀 들어봐요, 그러니까… 내가 너무 쭌을 사랑해서….”여름은 더듬거리며 변명거리를 찾았다.“그런 말도 있잖아요.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고.”최하준이 다가와 이를 꽉 물며 말했다.“누굴 바보로 아는 겁니까?”“그럼 쭌도 한 번 꼬집어요.”여름은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날 사랑하는 만큼 꼬집어요. 사랑하는 만큼 세게 꼬집기!”“…….”최하준은 30년 인생 처음으로 욕이 나오려 했다.‘진짜 이런 식으로 도발해도 내가 어쩌지 못할 줄 아나 본데?’최하준이 왼손으로 여름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여름의 뺨을 꽉 꼬집었다. 핑크빛 뺨은 찹쌀 모찌처럼 부드러웠다. 그대로 놓고 싶지 않았다.아악!최하준은 보드라운 얼굴이 빨갛게 된 걸 확인하고서야 놓아주었다.“이제 잊지 마십시오. 벌입니다.”여름은 아픔을 참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아뇨, 이건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증거죠.”“꿈 깨시죠.”차가운 웃음과 함께 최하준은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얼굴에 벌건 자국이 거울에 비췄다. 당장 나가서 어떻게 해주고 싶었다.망할.평상시라면 마스크를 써도 된다. 하지만 오늘은 재판에 출정해야 한다. 어느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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