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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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최하준은 여름이 차려 놓은 푸짐한 아침 식사를 보고 어리둥절했다.“이게⋯.”“쭌, 어제 고양이 푸딩을 먹게 해서 미안해요. 사과의 의미로 아침 식사는 제대로 했어요.” 여름은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국을 떠 주었다.“흠⋯⋯ 됐습니다. 어제 저녁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습니다.”최하준의 표정이 살짝 경직되었다.“고, 고양이 사료를 먹어보니 공감이 되더라고요.”여름은 캑캑거리며 말을 더듬었다.여름의 반응에 상대는 대꾸하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관을 나설 때였다.“출근합니까? 역까지 태워줄까요?”최하준이 먼저 말을 걸었다.여름은 움찔했다. “저 잘렸어요.”고개를 저으며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최하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 집안 회사에 근무하는 거 아니었나? 가족과 갈등이 심한가 보군.’“그렇군요. 그럼 지오를 잘 부탁합니다.”‘흥, 나도 나름 고급 인력인데 집에서 고양이 밥만 해줄 수는 없지.’“구직활동해야죠. 지오는 걱정 마세요. 먹이는 제때 줄 테니까.”“그러십시오.” 최하준은 무심하게 나가버렸다.******그 후 이틀 동안 여름은 직장을 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인테리어나 건축 설계에 관련된 일자리는 차고 넘쳤지만, 배경을 드러낼 수는 없어 화려한 경력을 숨겨야 했다. 게다가 나이까지 어리다 보니 어지간한 회사에서는 단순 보조 사원으로만 채용하려고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신주인테리어’라는 작은 중소기업을 선택했다. 워낙 작은 회사인 데다 디자이너가 둘 뿐이라 디자인을 하다가도 일손이 부족하면 회사 밖에서 전단을 돌려야 했다. 여름은 이런 일이 난생 처음이라 너무 부끄러웠지만, 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다. 전단지를 잘 받아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귀찮아서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 시간 넘게 길바닥에 서 있었더니 얼굴은 땀 범벅이 되고 피부는 붉게 달아올랐다. 가을인데도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다. 또 한 사람이 여름의 전단지를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검은 스포츠카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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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여름이 난처한 듯 얼굴을 붉혔다.“동성대극장이랑 국제공항까지 설계하고 프로젝트 책임자까지 맡았던 경력자인데 나이가 어리다고 다들 믿어주질 않아요. TH그룹 딸이라는 것도 밝혀지면 안 되고. 신분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대기업에서 보조직을 하거나 중소기업에서 디자이너를 하거나 둘 중 선택해야 했어요.”여름은 전단지를 주우면서 말했다.“보조가 되긴 싫어요. 잡일이나 하게 되고 좋은 디자인 컨셉이 있으면 다른 메인 디자이너가 가져가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요. 작은 회사지만 여기에서 일하면 전부 내 경력이 되고 프로젝트에 대한 보람도 있고요. 돈 좀 모으면 회사를 차릴 거예요. 지금은 고생이지만, 곧 좋아지겠죠.”“TH로 돌아갈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여름은 침울한 듯 고개를 저었다. “TH그룹은 제 것이 아니에요. 내 손으로 이루어 내야 진짜 내 것이죠.”열심히 전단지를 줍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최하준은 여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줍지 말아요.”“안 돼요.” 여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렇게 전단지가 많이 없어진 걸 알면 대표님이 난리 칠 거예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게으름 피우면 안 돼요. 게다가 환경미화원들이 이걸 언제 다 치워요?”기다란 손이 여름의 앞에 떨어진 전단지를 잡았다.“같이 하죠.” 최하준이 몸을 굽히고 손을 뻗을 때 보니 소매 안으로 보이는 시계는 여름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브랜드였다. 브라운 컬러의 가죽 밴드에 사파이어 베젤이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손목시계다. 최하준이 하고 있으니 잡지 속 모델들이 차고 나오는 어떤 시계보다도 우아하게 빛났다. 여름의 시선이 하준의 다리로 옮겨갔다. 꿇어앉아 있어 짙은 네이비 슬랙스 속 근육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목욕 타월이 떨어진 날 기억이 순간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으아아아, 내 머리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멈춰!’“왜 그럽니까? 얼굴이 너무 빨간데!” 최하준이 여름을 쳐다보았다. “그, 그게,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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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좋아요. 여름 씨. 파이팅! 오후에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 빨리 일이 끝나겠군요. 입사할 때 능력이 입증되면 정직원으로 올려준다고 한 거 기억하지요? 그러니까 열심히 영업해서 프로젝트 따 와요. 아무리 실력 있는 디자이너라도 프로젝트 못 따오면 무능한 겁니다.”“네, 열심히 하겠습니다.”여름이 천천히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최하준이 슬쩍 그녀를 쳐다보았다. 차 안이 조용해서 핸드폰을 통해 염 대표의 목소리가 밖으로 다 들렸다.“다른 회사로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어디나 똑같아요. 뭐든 처음은 다 힘들죠.” 여름이 쓴웃음을 지었다.최하준은 핸들을 두드리며 침묵했다. 창문 밖으로 특이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보였다.“저기는 뭐 하는 곳입니까?”하준은 별생각 없이 물었다.“동성과학문화거점센터요.” 갑자기 생각이 떠오른 듯 여름이 말을 이었다. “완공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TH에서 건축 설계를 따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다른 회사에 밀렸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인테리어라도 따내려고 했는데, 이젠 생각할 필요도 없네요.”“왜요?”“공개 입찰이거든요. 우리 회사 같은 작은 중소기업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죠.”여름이 아쉬운 듯 말했다.“입찰 자격이 있어도 그 회사가 프로젝트를 따내기는 어렵겠지.”“무슨 소릴! 국제디자인건축대상에서 내가 대상을 받은 적도 있다고요. 그때 여러 회사에서 러브콜을 받았죠. 그걸 다 물리치고 TH로 돌아왔어요. 그 땐 내가 가업을 물려받을 줄 알았거든요.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동성 시에서 디자인으로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을 걸요?” 여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최하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뻔뻔한 데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군.'“좋습니다. 입찰할 기회를 만들어 드리죠.”순간 그녀가 몸을 꼿꼿이 세웠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믿을 수 없다는 듯 도톰한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다만 프로젝트를 따내는 건 강여름 씨 몫입니다. 실력이 진짜인지 허풍인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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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냉정하잖나, 이 친구야.’이지훈은 당연히 이 말을 속으로 삼켰다.“내가 센터장하고 잘 아니까 그냥 강여름 씨에게 공사를 맡기라고 할까? 이번 입찰에 TH도 참여한다고 한다던데 경쟁이 치열할걸?”“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냥 기회만 주면 돼. 능력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건 할 수 없지. 입찰 기회만 공평하게 만들어 주면 돼.”‘역시 최하준, 와이프에게 조차 얄짤없네!’“좋아, 하라는 대로 하지.”잠시 후, 여름이 삼겹살을 사 들고 돌아왔다. “센터에 말은 넣어놨습니다.”여름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쉽게 일을 성사시키다니, 역시 잘 나가는 외삼촌인가 싶었다.“고마워요.” 여름은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최하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자, 그럼 고추장 돼지 불고기 먹으러 갑시다.”“고추장 돼지 불고기 아닌데. 삼겹살이랑 버섯 구울 건데.”여름은 일부러 놀라는 척했다.“......”최하준은 대답이 없었다.순식간에 얼굴이 싸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여름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장난이에요, 장난. 고추장 돼지불고기 하려고 준비했어요.”“강, 여, 름, 씨” 이름 석자를 힘주어 부르며 약 오른 감정을 억눌렀다.‘나를 놀려? 조금 잘 대해줬더니 금방 바보 취급을 하고 말이야.’화가 난 걸 보고 여름은 메롱으로 약을 올리더니 말했다.“좋으면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지, 뭐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래요?”최하준은 괜시리 화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나 이런 거 좋아하니까 해줘~ 라고 말하는 거 낯간지럽다고!’“그럼, 난 뭘 좋아하는지 맞춰 봐요”여름이 살짝 웃으며 물었다. “고양이 사료.” 하준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헐~”어이가 없었다.젠장, 오늘 저녁은 다 먹었구나 싶어서 최하준은 바로 후회했다.“쭌이죠.”여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놀렸다.최하준이 여름을 흘끗 쳐다봤다.“차 안에서 남자를 도발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까?그의 말에 여름은 살짝 긴장했다. ‘차에서⋯ 남자를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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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프로젝트 매니저가 말했다.“그렇게 말처럼 쉽진 않아요. 이번 경쟁에 참가한 업체 중 상장사만 해도 두 곳. 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베테랑 기업도 여러 곳인 데다 제법 탄탄한 협력사도 수십 곳입니다. TH디자인그룹이 가장 유력한 것 같습니다.”이 말을 들으니 여름은 기운이 쭉 빠졌다.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는 이윤도 명예도 걸려있으니 당연히 TH도 참여하겠지. 디자이너가 누구일지 궁금했다.그렇지만 여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TH디자이너 중에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들 경력은 있어도 창의적이진 않았다.잠시 생각하더니 여름이 입을 열었다.“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죠! 과감하게 나가 보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과학문화센터라면 향후 대중들에게 개방이 될 겁니다. 문화와 과학기술 접목이 관건입니다. 이런 미래지향적인 컨셉이 대중들에게 잘 먹힐 겁니다.”“일리가 있군.”염 대표가 이에 동의했다.“이번 과학문화센터에 관련된 일은 강여름가 정해천 디자이너와 잘 협의해서 추진해 보도록 하세요. 6개월 밖에 시간이 없으니 이 프로젝트에만 올인하도록!”대표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 정해천은 두 살이 많다고 능력도 없으면서 이래라저래라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제까지 정해천의 업무 역량을 보면 도면에 이미지나 입히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실내 공간 디자인이야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투입되기에는 현저히 실력이 부족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여름이 둘러 말했다.“대표님, 각자 작업하는 게 좋겠습니다. 컨셉도 상이할 텐데 협업이 오히려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어요. 저희는 젊은 디자이너라 서로 경쟁하는 편이 결과물 면에서 훨씬 이득이 될 겁니다.”염 대표는 망설였다. 정해천은 그 소릴 듣고 기분이 나빴다.“그러니까… 당신이 나보다 낫다는 말로 들리는데….”“그게 아니라 양질의 결과를 위해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겁니다.”“나이도 어린 사회 초년생이 선배한테 배울 생각은 안하고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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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네, 이게 제 디자인 기획안이에요. 한번 보실래요? 수정할 곳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여름이 노트북을 들고 왔다. 그 안에는 그동안 노력한 결실이 들어 있었다. 최하준은 디자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짙은 푸른색이 우주를 의미하는 컨셉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과학 기술을 극대화하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었다. 여름이 설명했다.“내 디자인에 “광활한 눈”이라는 이름을 지어봤어요. 보세요. 이렇게 무수히 많은 별은 하나하나가 눈 같지 않나요? 우주는 계속해서 탐구해야 하는 미지의 세계잖아요. 이쪽 “4D World”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풍으로….”여름의 설명은 또박또박 차분하게 이어졌다. 최하준은 설명을 듣는 내내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 정도 아이디어라면 센터의 인테리어와 딱 맞아 떨어질 것이다. 굉장한 창의력이 돋보였다.이제까지 여름을 과소평가했던 자신이 슬쩍 부끄러워졌다. 디자인을 공부했으면 얼마나 했을까 생각했는데,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졌다. 오히려 예전에 교류했던 거물급 디자이너들보다도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군’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더욱 매력적이었다.“어떻게 생각해요?”한바탕 설명을 듣고 나서 바라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눈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빨리 칭찬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런대로, 뭐.” 최하준은 속마음을 숨기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실망한 듯 입이 샐쭉해졌다. 어딜 봐서 ‘그런대로 뭐’ 수준이냐, 분명 대단하지 않느냐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프로젝트는 딸 수 있을까요?”여름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너무 자만하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최하준이 찬물을 끼얹었다.“......”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답답한 소리만 들었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난 반드시 해낼 거야.”여름은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한껏 올려 묶은 포니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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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저 회사가 당신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겁니까?”성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그렇습니다. 제 노트북 안에 증거가 있어요. 모든 시뮬레이션도 제가 직접 했던 것들입니다. 저 평면 설계도도 물론 제가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손으로 하나하나 그린 것이고요. 여기 초안이 있습니다.”여름은 최대한 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한번 볼까요.”여름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어야 할 문건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심지어 가방 속에 있던 디자인 초안도 없어졌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정해천을 쏘아 보았다.“당신이 손댔어요?”이 사람 말고는 없다.“미친 거 아냐? 우리는 같은 회사 동료라고!” 정해천이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무대 위에 있던 강여경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그만해.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사석에서 해결하면 될 것이지…. 지금 이시간이 TH디자인그룹에 얼마나 중요한데, 굳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날 모함하고 난처하게 만들어야겠어?”성 회장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아는 사이입니까?”여름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여경이 말을 가로챘다.“제 자매입니다. 저희가 최근에 불화가 있었던지라…”이민수가 책상을 탕 치며 일어났다.“여경아, 더 이상 인정 베풀 거 없다. 네 명예를 더럽혀서 자기가 회사를 빼앗으려는 의도가 뻔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네 디자인까지 몰래 훔쳐본 모양이다.”“절대 아닙니다.”여름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어쩔 줄 몰랐다.“그럼 증거를 가져와. 증거도 없이 사람을 무고하다니. 여경이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아? 네가 남 지적할 자격이나 있어!”이때 정해천이 몸을 일으켰다. “아,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어쩐지 내 디자인보다 더 좋다 했더니…. 다른 사람 것을 표절한 것이었네요. TH그룹의 사람이었군! 염 대표님, 이거 완전 우리가 놀아난 것 아닙니까?” 염 대표의 표정이 어두웠다.“강여름 씨, 저 사람들 얘기가 모두 진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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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얼마나 주저앉아 있었을까? 문이 천천히 열렸다. 강여경이 우산을 들고 와 앞에 섰다. 우산 아래에서 강여경은 기세등등했다.“정말 고맙다. 덕분에 내가 이 프로젝트를 땄네. 넌 정말 천재야.”여름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강여경을 노려보았다. 강여경이 깔깔거렸다.“그렇게 노려볼 거 없어. 네 디자인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나에게 올 프로젝트였어. 선우 오빠가 외삼촌에게 따로 말을 넣어뒀었거든. 너 그거 모르지? 오빠 외삼촌하고 성 회장하고 오래된 친구 사이래. 네 작품은 그저 구색 맞추기였을 뿐이야.”외삼촌이라니…… 최하준…?여름은 자신의 가슴이 예리하게 난도질 당하는 고통을 느꼈다. 숨도 쉬기 힘들었다.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최하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었다. 그런데 최하준은 진작에 결과를 조작해 놓고 있었다니....'도대체 왜 나를 속였을까? 그 사람은 내가 이번 입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다 알고 있잖아?'배신감에 눈물이 흘렀다. 얼굴은 온통 젖어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여름이 참담해 할수록 강여경은 더욱 통쾌했다.“애석하게도 모든 사람이 너에 대해 알아버렸으니 이 바닥에서 너는 퇴출이야. 정말 안됐다, 얘. 걱정하지 말고 앞가림이나 잘해. 엄마 아빠는 내가 모실 테니. TH디자인그룹과 선우 오빠도 곧 내 것이 될 거야.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사실은 말이야, 오빠 눈에는 네가 안 차. 전단이나 돌리고 너무 부끄럽대. 넌 오빠에게 어울리지 않아.”“강여경!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이성의 끈이 툭 끊어져 버렸다. 여름은 실성한 사람처럼 강여경을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있는 힘껏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강여경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나쁘게 웃었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여름을 잡더니 거칠게 진흙탕에 집어 던졌다.한선우가 강여경을 끌어안더니 자신의 외투로 꼭 감싸주는 게 보였다.“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요. 여름이가 오늘 입찰에 실패해서 상심이 클 거예요.”강여경은 한선우의 품에 안겨 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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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한선우는 강여경을 안아 차에 태웠다. 차가 저 멀리 사라지자, 이제는 정말 한선우와 끝이 났음을 직감했다. 한선우에 대한 사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움과 증오만이 가득했다.“불쌍해서 어쩌나….” 우산을 쓴 이민수가 실실 웃으며 걸어왔다.“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네.”여름은 녹초가 되어 더 이상 이민수를 상대할 힘이 없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자신의 차 방향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이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일은 이모와 이모부 귀에도 들어갈걸. 그분들은 원래도 너보다 여경이를 유난히 아꼈는데 이제 집에 발 디딜 생각은 하지도 마라.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탁”여름은 차 문을 세게 닫고 시동을 걸었다.다 아는 일이었다. 이제 아무 상관 없다. 어쨌든 여름의 인생은 이미 충분히 비참했다. 어쨌든 이 세상에 진심으로 여름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다.******저녁 6시 반.최하준이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이 조용했다. 전에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집안 모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문을 열면 음식 냄새가 가득했었다. 주방에서 분주한 모습으로 요리를 하는 모습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오늘은, 온 집안이 칠흑같이 깜깜하고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거실 등을 켰다. 여름이 소파 모서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머리도 엉망이고 두 눈은 초점을 잃었다. 지오를 품에 꼭 껴안고 턱을 고양이 머리 위에 파묻은 채 꺼져가는 불씨처럼 생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여름은 늘 생기 넘치고 밝은 모습만 보여줬다. 이렇게까지 생기를 잃고 어두운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입찰에서 떨어졌습니까?”최하준이 무심하게 재킷을 소파 위로 휙 던지며 물었다.“실패 한 번 한 것 가지고 너무 실망할 것 없어요. 아직 어리니까….”“사람들은 나이가 어리면 놀리거나 무시하죠.” 여름이 발끈하여 최하준을 바라보았다. 벌게진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당신 같은 사람들에게는 사람 감정이 그렇게 우스워요?”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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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누군데?”“강여름.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데 완전 꽐라야. 쯧쯧…. 근데 여전히 예쁘네.”“그 나쁜 년!”진가은이 버럭 화를 냈다. 여름 덕분에 지난번 사람들 앞에서 완전 망신을 당했다. 그 일로 동성 사교계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낮에 있었던 사건을 전해 듣고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흥,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지. 더 짓밟고 싶었는데, 절호의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너 아직 여름이 좋아하지?”“좋아하면 뭐 하냐? 학교 다닐 때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잖아. 난 좀 놀아보고 싶었는데….” 오성재가 비열하게 웃었다.“확 괴롭혀보고 싶네.”“오케이! 네 소원 내가 들어줄게.”진가은이 은밀한 계획을 들려주었다.오성재는 진가은이 알려준 놀라운 계략에 완전히 흥분했다.“그래도 괜찮을까?”“나만 믿고 하라는 대로 해. 강여름 옆에는 지금 아무도 없거든. 일이 터지면 집에서 더 나 몰라라 할걸.”“좋아, 한 번 놀아 볼까!”오성재가 여름을 보며 실실거렸다.******너무 마셨나? 여름은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테이블 위에 칵테일 한 잔이 놓여 있었다.주문을 했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했지만, 술도 떨어졌겠다 고민 없이 그냥 들고 마셔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은 정신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비즈니스 클럽 특실.지오는 푹신한 의자에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최하준이 주는 생선 조각을 슬며시 맛보더니 이내 머리를 저으며 뒤로 물러앉았다. 이지훈은 ‘쯧’ 혀를 차며 말했다.“너희 집 고양이는 왜 이 모양이야? 까다로운 입맛으로는 고양이 중에 최고일 거다. 그거 이 집에서 제일 좋은 생선인데….”“주방장 솜씨가 영 별로인가 보지.”최하준은 치킨 요리를 깨작거리고 있었다. 요즘 여름이 만들어 주는 가정식을 먹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다른 요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런데 …. 왜 집에서 안 먹고 여기서 이래?”이지훈이 부루퉁해서 물었다.“여름 씨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며…. 가서 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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