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 Chapter 271 - Chapter 280

All Chapters of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Chapter 271 - Chapter 280

1699 Chapters

271화

여름은 약간 놀랐다. 아버지가 달리 보였다.“그런 거, 귀찮지… 않으시겠어요?”“그쯤 별일 아니다.”서경주는 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혹시나 결혼을 물리게 되더라도 그 사람한테 빚지는 기분은 남지 않을 테니.”“아버지….”정말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이 단어가 튀어나왔다.서경주가 매우 기뻐했다.“한 번 더 불러주겠니?”여름은 난처함에 얼굴을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경주가 웃었다.“나도 뜨겁게 사랑해 보았단다. 네 엄마랑 잠깐이라도 떨어지게 되면 정말이지 정신을 잃을 정도로 힘들었어. 그런데 너희들은… 그 사람이 널 좋아하는 건 분명히 느껴지는데, 너는… 아까보다 지금이 훨씬 편해 보이는구나.”여름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나를 이렇게 세심하게 관찰할 정도로 관심을 두는구나.’강태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나도 좋은 분이었다.이번에 동성에 가면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아버지의 정을 느껴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도착 후 서경주는 바로 여름을 데리고 서명산에 있는 집으로 데리고 갔다.서명산 위에는 큰 정원을 갖춘 저택이 많이 있었다. 크건 작건 모두 진정 파워있는 집안이나 전국에서 손꼽는 재벌들이 사는 곳이었다. 여름이 뭔가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처음 봐서 서경주는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저기가 최하준의 본가란다.”'FTT라….'여름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최하준과 다시는 부딪힐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사람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게 될 날이 있을 줄은!‘최하준도 저 집에 사는 걸까? 그 사람은 저 집안에서 어떤 위치일까? 우리가 만나게 될까?관두자, 그만 생각해. 이미 다 지난 일이야.’집에 도착해 차가 멈추자 현관에서 단아하고 우아한 용모의 부인이 나왔다. “왔어요, 여보? 얘가 강여름이군요. 이렇게 예쁠 줄 몰랐네요.”“이쪽은 내 와이프다. “서경주가 온화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여름은 약간 의외였다. 위자영이 차
Read more

272화

“네가 이해심이 많구나.”서경주가 대견스럽다는 듯 말했다.여름은 화가 나 죽을 것 같은 서유인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너무 우스웠다. 강여경이 자신에게 쓰던 내숭 수법을 자신이 쓰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꽤 유용하잖아?’“뒤늦게야 찾은 딸이라고 너무 미안해 하거나 제 편만 들고고 그러지 마세요. 유인이가 편하지 않으면 자매 관계에도 좋지 않을 거고 가족도 화목해질 수가 없잖아요. 제가 왔다고 이미 있는 가정을 흔들고 싶진 않아요.”서경주는 이 말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어리광 피우며 자란 유인과 달리 여름은 사람 마음을 잘 헤아렸다.“가자, 네 방 보여주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뭐든 말하려무나.”부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서유인은 약이 올라 죽을 것 같았다.“완전 가증스럽네?”위자영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니 맘대로 주무를 수 있겠지 했었다.‘제 어미 똑 닮았네. 만만하지 않겠어.”그때 그 여자를 처치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딸을 지킬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됐다. 진정해. 엄마가 안 겪어본 사람이 있겠니? 저쯤은 아무것도 아니다.”위자영이 서유인을 꽉 붙잡았다.“오늘 최 회장네 파티 준비는 어떻게 됐니?”파티 얘기에 서유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핑크색 드레스랑 목걸이 최고급으로 맞춰놨고 케이한테 방문 메이크업도 예약해 놨어요. 오늘 밤에 내 미모로 다 쓸어버려야지. 그 집 큰아들이 나보고 한눈에 반하게.” 위자영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알아봤는데 그 댁 어르신께서 집이 너무 썰렁하다고 돌려 말하는데 오늘 밤 사실은 큰 손주며느리감 찾으려는 것 같다더라. 서울에 내로라하는 집안에서 미혼인 아가씨들만 불렀다나 봐. 최 회장이 한동안 일 그만두고 여행 좀 갔다가 연말에 돌아왔대. 올해 결혼시킬 생각인가 보더라.”“엄마, 저 그 사람 좋아요.”서유인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내가 본 사람 중에 그 사람이 제일 잘 생겼어요.
Read more

273화

3층 서재.최하준이 한 손에 담배를 끼고 또 한 손은 서류를 넘기며 읽고 있었다. 탁상등의 밝은 불빛이 그의 완벽하기 그지없는 얼굴 위로 번지고 있었다. 주위의 그 모든 떠들썩함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콰당하고 문이 열렸다.장춘자 여사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여기 있었구나. 네 와이프 될 사람 찾으라고 특별히 신경 써서 파티를 열었는데 참 잘하는 짓이다. 방구석에 숨어 있기나 하고, 대체 결혼할 생각이 있니, 없니?”“없습니다.”하준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하준의 할머니는 화가 나 쓰러질 지경이었다.“싫어도 가라. 누가 이 집안 장손으로 태어나랬어? 결혼은 해야 할 거 아니냐? 지안이는 죽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허송세월하고 있을 작정이야?”서류를 넘기던 하준의 기다란 손가락이 잠시 주춤했다.장춘자가 서류를 한쪽으로 치워버렸다.“일이야 나중에 하면 되지. 오늘 밤에 마음에 드는 아가씨 안 골라 온다면 내가 그냥 죽어버릴란다.”“할머니….”하준이 맨손 세수를 했다. 이래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었다. 서른이 다 된 사람에게 아침저녁으로 결혼 이야기라니!‘그래서 여름과 결혼을 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나 했었는데….’여름이 떠오르자 하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차피 결혼을 해야 한다면 일찍 하든 늦게 하든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냥 할머니가 하란 대로 따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알겠습니다.”하준은 일어나 장춘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장춘자는 매우 기뻐하며 하준과 함께 이층에서 아래에 있는 아가씨들을 관찰했다. “잘 보렴. 어느 집 딸이 마음에 드니?”하준은 아래를 내려다보자마자 골치가 아팠다. 거기 있는 여자들은 모두 떡칠을 하고 있었다. 화장을 지우고 난 맨얼굴은 분명히 다를 것이었다.여름은 달랐다. 메이크업을 했든 안 했든 깨끗하고 맑았다.하준의 시선이 갑자기 어떤 여인의 얼굴에서 멈췄다.장춘자도 하준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벨레스 서경주 회장 딸
Read more

274화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 분위기가 뭔가 달랐다.서경주는 소파에 앉은 채 꼼짝 않고 있었고 서유인이 서경주의 팔에 매달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아빠, 어젯밤에 최 회장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모를걸요? 그 많은 사람 중에 날 딱 찍어서 춤추자고 했다고요. 저녁에 어르신도 저한테 한참 말 거시고… 그 사람 여자친구 하래요.”위자영도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유인이가 복이 있어요. 얘 미모에 재능이면 당연히 괜찮은 신랑감을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FTT가 장손과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우리나라 재벌 중의 재벌이잖아요. FTT도 곧 그 사람 소유가 될 거고요.”“그 집에 최양하도 있잖아.”서경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두 모녀에게 주의를 주었다.“그 사람이 뭐요? 장손이 잠시 떠나있긴 했었지만, 최양하가 FTT를 장악하긴 무리죠.”서유인이 핏대를 세우고 말했다.“그 사람이 FTT 대표가 못 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전 그 사람 아니면 결혼 안 할래요.”위자영이 웃었다.“아유, 서로 눈맞는다는 게 이런 거지 뭐니? 선남선녀가 만났어.”서경주는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었다.“그러니까 어젯밤 한나절을 공들여 그 집 파티에 간 거냐? 어제 왜 날 속인 거냐? 내가 여름이도 가라고 할까 봐? 참 대단한 모녀군.”서유인이 입을 삐죽였다.“걔는 가라 그래서 뭐 하게요? 그런 데 가본 적도 없을 텐데요. 우리 집 망신이나 시킬까 봐 겁나네요. 그리고 걔는 약혼자 있잖아요? 괜히 잘난 서울 재벌들 만났다가 맘 변해서 약혼자 차버리면 어떡해요?”“뭐라고!”서경주는 화가 나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났다. 그러다 계단 위에 서 있는 여름을 보고는 멈칫했다.“여름아….”“어머, 오해하지 말거라!”위자영이 얼른 웃으며 말했다.“유인이 말은 네가 막 동성에서 와서 그런 파티에 가는 게 익숙하지 않을까 봐 그런 거지. 게다가 그 집안 파티는 또 일반적인 파티랑은 달라서 말이다.”여름의 눈
Read more

275화

여름은 사실 벨레스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 그냥 갔다.오후 5시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회사에서 돌아왔다. 집은 이미 화려하게 조명이 밝혀져 있었고 정원은 귀한 식물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청소도 안팎으로 깔끔하게 마친 상태였다.위자영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기도요.’, ‘저기도요,’ 하며 청소를 지시하고 있었다.서유인은 또 올 시즌 가장 비싼 트위드 재킷에 아래는 치마를 받쳐입고 어깨에는 숄을 걸치고 있었다. 긴 머리도 매우 신경 써서 스타일링했다. 앞머리는 웨이브를 주고 뒤쪽은 머리를 땋아서 그야말로 공주 같았다.“여보, 오늘 여름이 데리고 회사 갔었다면서요?”위자영이 올라와 속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했다.“내가 내 딸 데리고 회사 견학도 못 하나?”서경주가 얼굴을 찡그렸다.“그럴 리가요.”위자영이 짜증을 꾹 참고 웃으며 말했다.“오늘 너 입으라고 명품으로 많이 사 왔다. 동성에서는 못 사는 브랜드일 거야. 올라가 입어보렴. 좀 이따 네 제부 될 사람도 올 텐데 너무 대충 입고 있으면 안 되지.”“가보렴.”그제야 아내를 보는 서경주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여름은 올라가 옷장 문을 열어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명품 좋아하시네. 다 몇 년 전 재고 아냐? 컬러도 너무 노티 나고. 이런 걸 입고 나갔다간 웃음거리만 되겠네.’하지만 상관없었다. 여름은 자신의 외모에 자신 있었다.20분 후, 여름이 내려갔다.노티 나는 촌뜨기 꼴로 내려올 걸 기대하던 두 모녀는 순간 넋이 나갔다. 여름은 위자영이 사 온 긴 회색 패딩을 입고 있었다. 워낙 루즈한 핏이라 보통 사람이 입었다면 거적때기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은 지퍼를 연 채 안에 아이보리색 스웨터를 받쳐 입고 아래는 흰색 캐주얼 바지를 입고 있었다.얼굴엔 완전히 민낯에 붉은 립스틱만 살짝 발랐을 뿐인데 열일곱 소녀마냥 맑고 청순해서 너무나 예뻤다.잔뜩 치장한 채 옆에 서 있는 유인이 되레 촌스러워 보였다.여름은 눈웃음을 치며 일부러 이렇게 말
Read more

276화

여름은 얼굴빛이 점점 파랗게 질렸다.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욱신거리는 통증이 시작되었다. 가능한 한 평생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하준 씨, 여기에요!”서유인이 얼른 뛰어가 하준의 팔에 착 감겼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열애 중인 커플의 모습이었다.“아!”하준은 보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뭐야? 어제 춤 한 번 췄다고 애인 행세를 할 셈인가?’ 살짝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서경주와 위자영이 부랴부랴 다가왔다.“어서 오게”서경주가 온화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하준에게 악수를 청했다.“안녕하십니까? 댁에서 뵙는 것은 처음이네요.”서경주에게 하준은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대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거만하거나 체면을 깎아 내리는 태도가 아니었다.“무슨 소리예요. 최 회장이 이렇게 와주니 우리가 영광이죠.”위자영이 주름이 생길 지경으로 활짝 웃으며 끼어들었다.서경주는 한껏 오버하는 아내가 민망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예의를 갖췄다.“안으로 들어와요. 날이 춥지요?”부부가 하준을 위해 길을 터주면서 여름은 얼떨결에 하준과 마주하게 되었다.둘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눈빛이 순식간에 엉키고 있었다. 그 강렬한 눈빛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계속 시선을 마주칠 용기가 나질 않아 여름은 애써 눈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여름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하준도 여름을 보고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짙은 눈동자가 순간 움찔했다. 하준의 두 눈에는 폭풍우 같은 거센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그러나 하준이 워낙 잘 숨기는 바람에 그 눈빛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지만, 시선은 시종일관 여름을 향했다.서유인은 그 모습에 속이 뒤집혔다. 질투심에 얼른 하준의 팔을 잡아당겨 애교를 떨었다.“하준 씨, 뭘 봐요? 여기는 얼마 전에 우리 아빠가 밖에서 데리고 온 언니에요.”말 속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이제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강여름이 강신희의 딸인 것은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
Read more

277화

하준이 매끈한 입술을 살짝 비틀며 나지막이 웃었다.“제가 별로 반갑지 않으신 것 같군요.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하준이 돌아가려고 하자 모두들 당황하여 술렁거렸다. 서유인은 필사적으로 팔에 매달려서 소리를 높였다.“아빠, 얼른 사과하세요.”서경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하준이 이곳을 나간다면 서경주가 최하준에게 큰 무례를 범했다는 소문은 금새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벨레스의 입지가 사라지는 건 보나마나 뻔 한 일이었다.“여, 여름아, 사과 드리겠니?”서경주가 어쩔 수 없이 쓴 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여름은 분노에 파르르 떨었다. 두 주먹만 꼭 쥘 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한없이 매력적으로 보이던 그 얼굴이 오늘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인간을 사랑했을까?’여름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답은 하나였다. 져 줄 수밖에 없었다.“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이쪽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해서 실수가 있었습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하준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뻔뻔스럽게 잘도 둘러대는군.’“우리 들어가요, 네?”서유인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화제를 돌렸다. 하준이 더는 여름과 엮이지 않기를 바랬다.옆에는 시종일관 서유인이 껌처럼 딱 붙어 있었다. 하준은 그런 서유인을 떼어버리고 싶었지만 여름의 넋 나간 얼굴을 보고는 그냥 좀 참기로 했다. 하준이 소파에 앉자 서유인은 하준의 어깨에 더욱 더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보고 있는 여름은 매우 불편했다. 하준의 옆은 한때 자신의 자리였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의 자리가 되어 있었다.‘이 남자는 정말 날 사랑하긴 한 걸까? 나에 대한 마음이 정말 하나도 남아있지 않나?’“어머! 그냥 몸만 오면 되는데 어쩜 이렇게 귀한 선물까지 가져왔어요?”위자영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돌아보니 기사가 엄청난 양의 선물을 집안으로 나르고 있었다. 하나하나 모두 시중에서 보기 드문 물건에다 굉장히 값나가는 것들이었다.선물들을 보고 하준은 하마터면
Read more

278화

서유인과 하준 옆에서 손 아프게 과일이나 까고 있으려니 울컥했다.‘어쩌다가 난 이런 사람을 사랑했을까? 서유인이랑 수준이 딱 맞는 천박한 인간이었어…’ 불편한 자리가 계속되고 시간은 어느새 식사시간이 되었다. 여름이 대놓고 말했다.“저는 여기에서 같이 식사할 자격이 없으니 주방에서 따로 식사하겠습니다.”이번에는 허락도 들을 것 없다는 듯이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하준의 얼굴빛이 금새 굳어버렸다. “주제 파악은 잘하네, 시키니까 얌전히 과일도 까고.”서유인은 거만한 말투로 고개를 까딱했다.서경주는 남몰래 이를 꽉 깨물었다. 할 말도 없었다.저녁 식사는 위자영이 하루종일 공을 들여 준비시킨 음식들이었는데, 하준은 두 세 젓가락 맛을 보더니 입맛이 없는지 수저를 놓았다.강여름과 헤어지고 나서는 한 끼도 제대로 먹은 적이 없었다. 속이 늘 헛헛했다.“음식이 입에 안 맞나 보네요.”위자영이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물어보았다.“방금 과일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봅니다. 어서 드십시오. 저는 손 좀 씻고 오겠습니다.”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화장실로 가는 길에 주방을 지나야 했다. 하준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 주방 안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주방 한켠에는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 여름이 눈에 들어왔다.‘내가 다른 여자랑 있는 걸 보고도 밥이 넘어가?’괜히 심술이 나서 저도 모르게 성큼성큼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여름 앞에 멈춰 서서 차갑게 조롱하기 시작했다.“동성에는 여기처럼 맛있는 음식이 없었나 봅니다. 누가 보면 굶은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갑자기 툭 던지는 악의로 가득찬 말에 여름은 입에 든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처!음 먹어봐요, 처!음. 재료도 특!이하고, 참! 맛있네요”여름이 말을 하자 입 안에 씹고 있던 음식이 그의 얼굴에 '파바박 튀었다. 다분히 고의적이었다.“아니, 이게 대체! ” 하준은 화가 나서 얼굴은 벌게지고 목은 완전히 잠겨버렸다. 매끈한 얼굴, 완벽한 수트에는 여름의 입에서 튄
Read more

279화

여름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하준을 노려보았다. 눈에는 음흉한 웃음기가 가득했고 오히려 신이 난 표정이었다.이를 꽉 깨물고 울분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유감스럽게도 분명 우리 엄마랑 아빠가 더 일찍 만나셨으니까 몇 달이라도 내가 너보다 언니야. 손윗사람에게 말 조심해. 그리고 난 저 사람 잡은 적 없어.”“야, 그럼 하준 씨가 널 모함한다는 거야?”서유인이 화를 내며 독설을 내뱉었다.“최하준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너는 감히 눈도 못 마주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너같은 게 언감생심 말이나 붙여볼 수 있는 줄 알아? 어떻게든 팔자 한 번 고쳐보겠다고 주제 파악 못하는 것들 내가 많이 봐서 알지.”하준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하는 말들을 듣다 보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서유인에게는 처음부터 관심 따윈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교양없는 모습을 보니 재벌가 규수같지가 않았다. “무슨 일로 여기 이러고 있는 건가?”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서경주와 위자영이 부리나케 달려왔다.“마침 잘 오셨어요. 강여름이 하준 씨한테 꼬리 치다가 딱 걸렸지 뭐예요.”서유인이 주저하지 않고 부모에게 일러바쳤다.“게다가 엄마가 굴러온 돌이라는데요?”위자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남편 서경주가 자신과 결혼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위자영만은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질까 늘 노심초사 해 왔다.“강여름, 네가 이젠 선을 넘는구나. 여기 들어올 때부터 잘 대해줬더니 뭐? 지금 걸치고 있는 것도 모두 내가 명품으로 사다 준 것들인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 이 배은망덕한 것!”“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서경주는 죽을 맛이었다.“오해는 무슨 오해예요? 하준 씨가 직접 말 한 건데요.”서유인이 발을 탕탕 굴렀다.“약혼자도 있으면서 남의 남자까지 넘보고! 뻔뻔한 거 봐.”“약혼자가 있습니까?”하준이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 눈빛은 그를 잘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서늘함이었다.“네.
Read more

280화

“시끄러워. 여름이는 내가 20년 동안이나 돌보지 못했던 내 딸이야. 여긴 내 집이니 여름이가 지내고 싶은 만큼 지낼 수 있어. 불만 있으면 당신이 유인이를 데리고 나가던지.”서경주가 인정사정 없이 응대했다.위자영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 “좋아요. 만약 유인이 혼사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쟤는 내가 가만히 안 둬요.”무서운 얼굴로 한참 여름을 노려보더니 휙 나가버렸다.“저는 최 회장을 잡은 적 없습니다.”여름이 진지하게 말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경주마저도 저들이 하는 말을 믿는다면 친아버지에 대한 실망이 클 것 같았다.서경주가 한숨을 푹 쉬었다.“난 너를 믿는다. 최 회장이 내가 불륜으로 널 낳은 줄 아는 모양이구나. 그런 걸 아주 싫어하거든.”여름이 애매한 표정을 짓자 서경주가 찬찬히 이야기 해주었다.“최하준 회장도 알고 보면 가엽단 말이지. 그 사람 어머니인 최란은 어려서부터 애지중지 자란데다 아주 똑똑했거든. 그래서 그 집안 사업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거야. 당시에 내로라하는 남자들은 모두 최란에게 어찌 해보려고 혈안이 되었었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병후에게 걸려들어서 덜컥 임신을 했지 뭐냐. 임신한 마당에 결혼할 수 밖에.”여름은 깜짝 놀랐다. ‘어쩐지 하준에게 약을 써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을 때 심하게 난리다 싶었어. 본인이 그렇게 해서 태어났기 때문이었어?’서경주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태생부터 최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자기 자식인데도 최하준을 아주 싫어했단다.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 이혼하고서는 대학시절 옛 사랑이었던 남자와 결혼해서 최양하를 낳았어.”“그 사람… 불쌍한 어린 시절을 보냈겠어요.”여름은 작게 중얼거렸다. 마음이 너무나 복잡하고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그랬겠지. 이혼하고 나서 한병후는 매일 술에 쩔어 살았고, 최란은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최양하는 끔찍이도 아꼈지. 다만 하준이 눈에는 최양하와 새 아버지가 눈에 거슬렸겠지. 그들이 자기 가정을 파탄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래서 너를 저렇게 싫
Read more
PREV
1
...
2627282930
...
17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