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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Chapter 1481 - Chapter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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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화

“일단 잘 쉬어. 나정 씨 여기 남겨 놓을게. 난 네 일 처리 해야 해서 가봐야겠다. 밖이 지금 기자들로 꽉 찼어.”조현희가 말했다.“아참, 너희 아버지 일은 어떻게 처리할까?”“여론 분위기는 어떤데요?”원연수가 물었다.“다행히도 사람들이 원지균 일가 세 명의 상황을 다 조사한 데다 예전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적잖이 나와서 그 집 식구들 세 명이 흡혈귀나 다름없다는 걸 알아서 너에게 동정적이야.”원연수는 잠깐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원지균이 사는 단지와 아들의 회사를 폭로하고, 변호사를 찾아가서 제가 이전에 원지균에게 뜯겼던 돈을 되찾아 주세요. 그리고 원지균을 고소하죠. 사람이 다쳤는데 감옥 보내야죠.”조현희가 놀란 눈으로 연수를 쳐다봤다.“왜요?”원연수가 물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야.”조현희가 심란한 듯 답했다.“지금은 네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에는 마음에 약해서 그 희박한 부녀의 정에 끌려다니는 것 같았거든. 그때 너무 약해 보였어.”“이제는 안 그럴 거예요.”“나한테 못되게 하는 인간은 나에게서 뭔가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그래.”조현희가 떠났다.이나정이 연수에게 죽을 먹였다.얼마 뒤 다시 문이 열렸다.이번에는 이주혁이었다.하얀 가운을 입은 이주혁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살짝 근실 일할 때는 보통 안경을 썼다. 안경은 이주혁의 미모를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우아함과 품격을 더해주는 느낌이었다.이나정은 백의에 안경을 쓴 이주혁이 엄청 근사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원연수의 가벼운 헛기침 소리를 듣고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민망했다.다만 이주혁은 그렇게 쓰레기로 유명한데 겉모습은 이렇게 맑고 위풍당당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역시 남자는 겉모습만 봐서는 안 돼.’“잠깐 자리 좀 비워주죠.”이주혁이 이나정에게 대놓고 말했다.이나정은 곤란해했다.“대표님, 연수 씨가 다쳤으니까 제발….”“내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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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화

원연수가 가볍게 웃었다.이주혁은 원연수가 즐거워서 웃는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왜 웃지?”“전에 출연했던 작품에 나오던 파워 카리스마의 실장님 같은 말씀을 하셔서요. 모모 씨, 당신에게 흥미가 생겼소. 모모 씨, 당신이 마음에 들어.”핏기가 많이 가신 입술에 살짝 웃음기가 돌았다.“하지만 드라마의 실장님은 결국 결혼에 골인했는데 대표님은 불륜을 하고 싶으신 거잖아요. 그것도 이렇게 대놓고.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 얼굴이 두껍다고 해야 할까?”이주혁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원연수, 난 기껏 도와준 사람에게 이렇게 모욕을 주나? 대체 이게 당신에게 몇 번째 당하는 모욕인지 셀 수도 없군.”이렇게 주혁에게 모욕을 주어 주춤거리고 뒤로 물러서게 한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모욕을 준 게 아닌데요. 그냥 팩트를 말한 것뿐이에요.”원연수가 어깨를 으쓱했다.“내가 팩트를 말하는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신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내가 정말 널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원연수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 그러나 움직이자마자 연수의 입에서 ‘앗!’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움츠러들어서 이주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놓아버렸다.한참을 숨까지 참으며 고통이 가시길 기다렸다가 원연수가 입을 열었다.“무슨 주치의가 이 모양이지? 담당 의사 바꿔주실 수 있나요?”“일부러 나에게 치료를 받고 싶어서 줄 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이주혁이 콧방귀를 뀌었다.“어쨌든 이번에 나한테 빚진 거야.”연수가 귓가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사실 대표님 도움은 굳이 필요 없었는데 대표님이 끼어든 거잖아요. 대표님이 없었어도 그냥 경찰에 전화하고 구급차가 왔으면 저는 치료도 받았을 거거든요. 오히려 대표님 때문에 팀장님이 경찰에 일부러 찾아가서 대표님이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는 말 나지 않게 단속해야 했다고요.”이주혁은 정말 화가 났다. 병원에 데려와서 직접 손을 써서 구해줬더니 사족 취급을 받다니….“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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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화

여름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가져온 선물을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았다.“이주혁은 친구로서는 좋은 사람인지 몰라도 남편이나 남친으로는 아닌 것 같아. 어느 한 여자에게 정착하는 타입이 아니야.”윤서가 덧붙였다.“하지만 시아랑은 결혼한다잖아?”“넌… 시아가 이주혁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니?”여름이 눈썹을 까딱해 보였다.“시아가 이주혁을 꽉 잡고 있다면 이주혁이 절대 시아랑 결혼 안 할걸.”“걱정하지 마. 난 이주혁이랑 사귀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원연수가 희미하게 웃었다.“그냥 잠깐 나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뿐이야. 손에 넣고 나면 금방 흥미를 잃을걸. 그리고 난 애초에 이주혁을 좋아하지도 않아.”“연수는 이성적인 친구니까 난 믿어. 전에 밥 먹을 때 이주혁이 왜 그렇게 연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가 싶었는데 이제야 왜 그런지 알겠네. 널 손에 넣지 못해서 기분이 나빴던 거구나?”윤서가 씩 웃었다.연수는 어이없다는 듯 눈알을 굴리더니 화제를 바꿨다.“너희들이 날 보러 올 줄 몰랐다. 사실은…”“우린 친구잖아.”윤서가 말을 끊었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 널 봤을 때, 친근한 느낌이 드는 거야. 응, 마치 원래 알았던 사람인 것처럼. 이주혁에 너에 대해서 그렇게 안 좋은 말을 했지만, 그러면 뭐 해? 친구라는 건 자기가 만나는 거니까 그 사람이 사귈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제일 잘 아는 거지.”“정말 고맙다.”원연수의 눈이 한결 부드러워졌다.지금 가장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연수는 망설이지 않고 눈앞의 두 사람을 꼽을 것 같았다.물론 예전의 친구이기도 했고.“도와줘야 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여름도 덧붙였다.“혹시 이번 건으로 고소하게 되면 하준 씨 친구 중에 실력 굉장한 변호사가 있다니까 소개해줄게. 언제든 연락만 해.”“그래.원연수가 입을 열었다.“사실 너희들에게는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아. 이 상처는 사실은 내가 일부러 낸 거야. 원지균이 매달 나에게서 돈을 뜯어내려고 협박을 하는데 내가 이제는 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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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화

“내가 구한 환자라서요. 저는 한 번 치료한 환자는 끝까지 책임지는 편입니다.”이주혁이 평온한 눈으로 답했다.윤서가 비꼬았다.“우리 수연이의 병세만 책임져 주시면 고맙겠네요.”“두 분도 원연수를 안 지 얼마 안 되면서 간섭 작작 하시죠.”이주혁이 아무렇지도 않은 눈으로 둘을 쳐다봤다.윤서는 화를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안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연수는 우리 친구라고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시아랑 결혼할 거면서 연수는 건드리지 말아요. 연수는 착한 애라고요. 이주혁 씨가 전에 데리고 놀던 애들하고는 차원이 달라요.”“연수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여름도 나섰다.“연수는 주혁 씨의 배경 같은 걸 노리는 애가 아닐 거예요. 놀고 싶다면 주혁 씨가 가진 것을 노리는 사람이랑 놀아요. 그리고 시아를 잘못 건드리면 안 돼요. 걔가 알았다가는 연수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시아는 내가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이주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윤서가 비웃었다.“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까 시아를 전혀 모르시는구나. 시아가 얼마나 무서운 애인데요. 처음에는 티도 안 날 거예요. 참을 줄 아는 애니까. 하지만 일단 방심했다가는 완전히 뼈도 추리지 못하게 다 씹어 삼킬 걸요.”여름도 덧붙였다.“너무 심하게 말한다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도 주혁 씨가 변덕스러워서 그렇지 쓰레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아니오. 난 내내 쓰레기 같은 놈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쓰레기인지 아닌지는 두 분하고는 상관이 없죠.”그러더니 이주혁은 성큼성큼 걸어 자리를 떠 버렸다.윤서가 이주혁의 뒷모습을 보면서 발을 굴렀다.“아오, 짜증나! 난 송영식이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이주혁이 더 짜증나네.”여름이 미간을 찌푸렸다.“어쨌든 이주혁이 비열한 수단을 쓴다면 우리는 연수를 도와줘야 해.”“당연하지. 연수를 불륜 상대로 만들 수는 없어. 이주혁은 상관 없는지 몰라도 연수는 배우인데 그 사실이 알려졌다가는 평생 끝장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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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화

“무슨 생각해?”이주혁이 원연수를 보더니 동공에 웃음기가 스치고 지나갔다.“생각은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빨리해주세요.”원연수가 쌩그라니 얼굴을 돌렸다.“이런 일은 빨리하는 게 아니야.”이주혁이 말했다.“……”옆에 있던 이나정도 얼굴이 온통 새빨갰다. 아무리 순수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보니 순수해질 수가 없었다.결국 원연수가 폭발했다.“병원에 간호사 없나요? 링거 꽂는 일을 왜 닥터가 직접 하죠?”“내가 간호사들보다 훨씬 덜 아프게 해줄 수 있거든.”이주혁의 입술이 섹시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숨 막힐 정도로 매혹적이었다.그러나 원연수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상관없어요. 아픈 건 무섭지 않거든요.”“하지만 그러면 내가 마음이 아프거든.”이주혁이 싱글싱글 웃었다.원연수는 속으로 싸늘하게 웃었다. 익숙했다. 이주혁은 원하는 상대가 생기면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질려버린 뒤에는 누구보다도 빨리 얼굴을 바꾸는 사람이었다.예전의 백소영도 그랬다. 그때는 아직 학생이었다. 이주혁의 미모와 따스함에 아무리 자기 마음을 단단히 걸어 잠근 소영이었지만 주혁에게 마음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뒤에 이주혁이 얼마나 쌀쌀맞게 얼굴을 바꾸었던지 소영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똑같은 말을 대체 얼마나 많이 하셨을까? 소영이도 들어봤겠죠?”원연수가 문득 물었다.이주혁의 웃음기가 그대로 굳어버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원연수가 말을 이었다.“경찰에서 소영이는 무죄라고 발표했대요. 소영이는 모함을 당한 거예요. 그때 법정에서 다투던 사람은 대표님이 변호사 중에서 가자 실력 좋은 사람이었겠죠. 직접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은 기분이 어때요?”이주혁의 얼굴의 선이 하나하나 굳어졌다. 한참 만에야 저음이 흘러나왔다.“내가 소영이에게 빚을 졌어.”“빚이라고요?”원연수가 비웃었다.“안타깝네요. 소영이는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본인도 저세상으로 가고. 이제는 대표님의 ‘빚을 졌다’는 한 마디 말고는 아무것도 돌이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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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화

“나 보고 싶었어?”하준이 가느다란 여름의 허리를 안았다. 눈빛이 사뭇 부드러웠다.“요즘 일이 많아서 퇴근 시간이라는 게 없네.”“매일 보니까 딱히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얏!”여름이 말하다가 허리를 꼬집혔다.여름이 하준을 노려보았다.“뭐야!”“내가 안 보고 싶다고 말하다니.”하준은 일부러 화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밤이면 볼 텐데 보고 싶기는, 뭘.”여름이 입을 비죽거렸다. 지금 여름은 거의 하준의 본가로 이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워낙 넓어서 여름과 아이들은 한 동을 쓰고 있어서 이혼도 안 한 상대로 종일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민망함이 없었다.“하지만 난 매일 당신을 볼 수 있어도 당신이 보고 싶은데.”그렇게 말하면서 하준이 여름의 턱을 들어 키스했다.여름은 얼른 몸을 뺐다.“아니, 나 할 얘기 있어서 왔단 말이야.”“응?”“오늘 병원에 연수 병문안을 갔었거든. 사고를 당했어.”하준은 잠깐 일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원연수가 누군지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아졌어?”“지난번에 밥 먹고 나서는 그렇게 자주 연락을 하지는 못했는데 오늘 윤서가 끌고 가서 한참 얘기했지. 난 연수가 꽤 마음에 들거든.”여름이 솔직하게 말했다.“나 서울 와서 얼마 안 됐을 때 친구도 없었을 때 소영이가 있어 주었잖아….”여름의 입에서 백소영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하준의 몸이 순간적으로 긴장했다.여름은 하준을 흘깃 보았지만 딱히 그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연수는 정말 괜찮은 애야. 연예계에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어. 난… 걔가 아주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야.”“친구는 많으면 좋지.”하준이 맞장구를 쳤다.“그런데…”여름이 잠시 망설였다.“주혁 씨가 좀 이상해. 보니까 주혁 씨가 연수 담당 의사더라고. 원래 암 병동 담당이었잖아? 연수는 자창인데 아무리 심각하대도 주혁 씨가 담당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아?”하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주혁이가 연수 씨에게 마음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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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화

“자기랑 말하기 싫어.”여름이 화를 냈다.“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당신 친구를 모르는 거야. 가서 잘 얘기해 봐. 곧 결혼할 거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시아랑 해결해야지 괜히 연수 건드리지 말라고.”그렇게 말하더니 여름은 홱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다.하준은 뒷골이 당겼다.‘그야말로 여름날 날씨 같네. 종잡을 수가 없어.’하준은 할 수 없이 쫓아갔다.“알겠어. 자기야. 화내지 마. 내가 실수했어. 조금 있다가 주혁이한테 가서 어떤 상황인지 한 번 알아볼게, 응? 그리고 난 싸잡아서 욕하는데 넣지 말아줘.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다고.”여름이 하준을 흘겨 보았다.“당신은 당신 나름의 생각하는 방식이 있겠지만, 어쨌든 연수는 그런 애가 아니라는데 나는 다 걸겠어. 그리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짓 하지 않지. 지금 한창 뜨는 중인데 연수가 누군가의 바람 상대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배우 일은 망하는 거라고. 더구나 시아 같은 애는 건드리면 안 돼. 솔직히 주혁 씨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자기 욕구에만 집중하다가는 한 사람의 미래를 날려 버릴 수 있는데, 소영이에게 그런 짓을 한 걸로 충분하지 않나?”“…그래. 자기 말이 맞네.”하준이 얌전히 맞장구를 쳤다. 괜히 여름의 기분을 거르게 될까 봐 두려웠다.“난 간다. 가서 주혁 씨를 완전히 설득한 다음에 와.”그러더니 여름은 백을 들고 나가 버렸다.하준은 여름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여름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주혁이 잘못된 길을 걷는 것 같았다.******하던 일을 마치고 하준은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이 시간에 당직이야?”진찰실에 들어선 하준은 가운을 입은 주혁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이주혁은 다른 의사들과 달랐다. 주민그룹의 가장 젊은 권력자이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의사로 환자들이 전 세계에서 돈을 싸 짊어지고 와서 치료를 받기 원하는 부류였다. 그래서 지금은 수술이 잡히거나 긴급한 환자가 있지 않은 한 당직은 기본적으로 하지 않았다.“여름 씨가 뭐라고 했어?”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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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9화

“알아.”이주혁이 손에 든 볼펜을 빙글빙글 돌렸다. 하준이 한 얘기는 자신도 다 아는 얘기였다. 이미 몇 번이나 원연수에게 대차게 까이기도 했다.게다가 백소영을 생각하면 원연수와는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머리로는 생각했다.그러나 사람이란 때로는 정말 알 수가 없다.심지어 오늘 아침에 왜 원연수네 집에 갔는지도 이해가 안 됐다.원연수가 원지균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 것을 두 눈으로 봤는데도 연수가 표리부동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오히려 묘하게 즐기는 기분까지 들었다.주혁은 질질 짜는 연약한 사람은 싫었다. 원연수가 자기 등을 찌를 때는 자기가 뭔가에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분명 속이 계략으로 찬 사람인 게 분명했고, 주혁은 그렇게 속에 꿍꿍이가 가득한 사람은 싫어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연수는 예외였다.처음 키스했을 때는 연수의 눈에 반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연수의 성격에 끌렸다.“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지는 마라.”이주혁이 내내 아무 말이 없자 하준이 묘한 눈빛으로 물었다.“사랑?”이주혁은 움찔했다. 빙글빙글 돌리던 볼펜이 책상에 떨어졌다. 주혁이 웃었다.“침대에서 마음이 동했다면 모를까, 침대도 아닌데….”그때 뭔가가 뇌리를 탁 치고 지나갔다. 아주 오래전 소영이와 사귀던 때의 기억이었다.“넌 몰라.”이주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아무래도 난 원연수를 꼭 손에 넣어야 할 것 같아.”“넌 한 번도 누굴 손에 넣어야 한다는 마음이 든 적이 없잖아. 네 사전에 ‘억지로’는 없으니까.”하준이 일어서서 이주혁의 어깨를 두드렸다.“시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결혼할 필요 없잖아. 결혼을 한다면 그렇게 보기만 해도 짜증 나는 사람이랑 매일 어떻게 보고 살아? 원연수를 얻고 싶다면 일단 결혼부터 취소해. 이대로 가서 대시하다가는 멀쩡한 사람 하나 망친다.”“일이 여기까지 진행되었는데 우리 부모님이 시아랑 결혼을 취소하게 둘 것 같냐? 청첩장까지 다 만들었는데.”이주혁이 덤덤히 말했다.“그러면 연수 씨에게서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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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화

“소영이 얘기는 꺼내지 마.”여름이 화를 냈다.“소영이도 그냥 데리고 논 거잖아. 다 놀고 나서는 얼굴 싹 바꾸고 돌아섰으면서.”“그런 거 아니야.”하준이 중얼거렸다.“걔가 소영이랑 사귈 때는 얼마나 인내심이 있었다고. 주혁이는 여자에게 인내심을 발휘하는 애가 아니야. 소영이만큼은 끝까지 기다렸다니까. 나중에 헤어지고 나서는 소영이가 지안이를 괴롭혔던 것 말고 둘 사이에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것 같아.”“소영이가 무슨 백지안을 괴롭혀? 백지안이 일부러 불쌍한 척하고 그랬던 거지. 마치 남들 보기에는 소영이가 백지안을 엄청 괴롭힌 것처럼 보이게.”여름이 우울하게 말했다.“그때는 우리가 몰랐잖아.”하준이 얼른 여름의 손을 잡았다.“우리 옛날얘기는 그만 하자. 자기야. 저녁 먹었어? 난 배고픈데.”“배고프면 알아서 가서 찾아 먹어. 내가 주방 아줌마도 아니고.”여름은 하준의 손을 뿌리쳤다.“백지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지금 바빠서 가만둔다고 이러고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두고두고 복수할 거야.”그렇게 말하더니 여름은 하준은 쳐다도 보지 않고 가버렸다.여울과 하늘이 한껏 궁금한 얼굴로 다가왔다.“왜 엄마를 화나게 했어요?”하준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동성.해외에서 온 비행기가 동성의 공항에 착륙했다.차민우가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차진욱이 강신희를 안고 함께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은 결혼한 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애인 사이 같았다. 특히 차진욱은 한시라도 강신희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강여경은 뒤에서 따라왔다. 강여경 뒤로는 경호원과 직원이 짐을 가지고 줄줄이 따라 나왔다.“어서 오세요!”차민우가 걸어갔다.“민우야.”강여경이 환하게 웃었다.“왜 우리랑 같이 안 오고 혼자서 먼저 왔어? 엄마랑 같이 있는 것만 아니면 나도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다고.”“먼저 와서 외삼촌이랑 외숙모 꺼내드리고 하느라고요.”차민우가 웃으며 강신희를 바라보았다.“엄마, 삼촌 뵈러 가요. 원래는 공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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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화

차진욱의 얼굴이 그제야 살짝 좋아지더니 강신희의 귀에 속삭였다.“이따가 집에 가서 사랑한다고 해줘.”“……”‘다 큰 남자가 어쩜 저렇게 유치할까?’차민우는 아무것도 못 본 체했다. 어쨌든 부모님의 꽁냥꽁냥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부모님에게 차민우는 부록이나 마찬가지였다.강여경은 머릿속이 웅웅거려서 그런 데 쓸 신경이 없었다. 강신희가 동성에 도착하자마자 기억이 회복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기억을 전혀 회복하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익숙한 곳에 가지 못해서였던 모양이다. 익숙한 곳에서 한동안 살다 보면 기억이 돌아오고 그러면 자기 딸 이름이 강여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강신희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하지만 어떻게 해?’******집에 도착하니 강태환과 이정희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카리스마가 넘치는 차민우가 내리고 이어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서 내려주었는데 여자는 관리를 잘 해서 서른 정도로 보였다.강태환은 그 여자를 잠깐 보더니 눈시울을 붉혔다. “신희야….”이름을 부르면서 튀어 나가는데 차민우의 우악스러운 손에 잡혔다.“아빠, 이쪽이 외삼촌하고 외숙모예요.”괜히 아빠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차민우가 미리 한 김을 뺐다.“딱 보니 알겠구나.”차진욱이 담담히 말했다. 어쨌거나 모르는 남자가 강신희에게 손 대는 것이 싫었을 뿐이었다.“오빠시구나.”강신희가 강태환을 보며 말했다. 어떤 사람은 딱 보는 순간 기억 속에 익숙한 느낌이 있기 마련이다.“오랜만이에요. 여전히 곱네.”이정희가 감격한 듯 말했다.“나랑 오빠는 팍삭 늙어서 회갑이래도 사람들이 믿을 판인데….”“삼촌이랑 외숙모 감옥에서 고생하셨죠?”강여경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강신희에게 강태환 내외가 이 꼴이 된 것이 강여름 탓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강태환은 ‘삼촌’ 소리를 듣고 움찔했으나 이정희가 눈치 빠르게 말을 받았다.“아유, 그런 얘기는 뭐 하려고 하니? 일단 들어가자.”“수십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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