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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Chapter 1461 - Chapter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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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2화

‘이렇게 재미있는 여자는 정말 오랜만이야.’“자기야, 문은 왜 닫았어?”이때 갑자기 밖에서 이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아, 짜증 나. 메이크업아티스트 찾으러 갔었는데 다들 바쁘대. 그래서 분장팀장한테 갔는데 자기들 다 바쁘고 우리가 너무 늦어서…”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나정은 칼같이 다려 입은 양복 차림의 남자를 보고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대… 대표님….”“응”이주혁이 매혹적인 저음으로 답하더니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이나정은 이주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원연수를 쳐다보았다.원연수는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오해하지 말고…”“당연히 오해 안 하지. 오해할 게 뭐 있어? 늦었다고 이 대표가 와서 한 소리 하디?”이나정이 씩씩거리며 물었다.“그래서, 얘기는 잘했어?”“……”원연수는 고개를 숙이고 큭큭 웃었다.‘나 참, 나정 씨는 날 너무 잘 안단 말이야. 딱히 그 상황을 해명할 필요도 없었네.’“어머, 자기 머리 누가 한 거야? 예쁘네?”이나정이 갑자기 감탄했다.“너무 예쁘잖아.”“내가 했지.”원연수가 말했다.“잊어버렸어? 전에 스타일리스트 없을 때 내가 혼자 배웠잖아.”“어머, 생각난다. 그게 벌써 언제 적 얘기야? 아직까지 안 잊어버리고 있었나 보네.”이나정이 감탄했다.******원연수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한 씬은 이미 촬영이 끝났다.구 감독이 버럭 했다.“원연수 씨는 왜 아직도 안 나오나? 오전 내내 메이크업하고 옷 갈아입을 생각인가? 우리가 지금 원연수 씨 메이크업하라고 돈을 뿌려야 하냐고?”“원연수 씨 메이크업은 1시간 전에 제가 끝냈습니다.”스타일리스트가 말했다.“그런데 왜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나? 이럴 거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구 감독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원연수가 다가왔다. 환한 의상에 잘 올려 빗은 머리는 동그란 이마와 작은 얼굴을 잘 드러내 빛이 나는 듯했다. 많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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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화

조감독의 말인즉슨, 조연의 미모가 주연을 압도해 영화에서 표현하려는 주제를 흐트렸다는 뜻이였다.구 감독은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기분이 언짢아졌다.“그래요, 지금 조연 캐릭터가 좀 그런 캐릭터죠. 원연수씨는 예쁘게 보이고 특징적인 캐릭터를 맡아서 눈에 띄고 싶다면 아무래도 작품을 잘못 찾아온 것 같군요. 아직 촬영 시작도 안 했으니 그만두고 싶다면 오늘 바로 떠나도 좋습니다. 다만 촬영팀이 시간을 끌어서 본 손해는 배상해야 할 겁니다.”“감독님, 연수 씨가 이런 큰 작품은 처음이라 잘 몰랐나 봐요.”시아가 얼른 나서서 말을 보탰다.“연수 씨, 스타일리스트 의견 따라주세요. 난 내일 말에서 떨어지는 씬이 있는데 감독님이 원래 이미지는 싹 포기하고 맨 얼굴로 찍자고 하시더라고. 감독님의 연기 지도는 이런 데서 빛나는 거니까, 감독님을 따르자고요.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사람이 발전도 하는 거니까.”구 감독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가 그래도 분위기 파악도 잘 하고 이 대표 약혼녀라고 딱히 거들먹거리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다들 바쁘니까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남자 주인공인 강우진은 영화계의 황제다. 그러니 원연수처럼 이제 막 뜬 배우 따위에게 그렇게 큰 인내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옆에서 보고 있던 이나정은 다들 이구동성으로 원연수를 비난하는 꼴을 보고 울컥해서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원연수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잘 봐주세요. 제가 아이라인이라도 그렸나요? 그냥 립글로즈 조금 바르고, 조금 더 사극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내려고 눈썹을 정돈해서 그렸을 뿐입니다. 머리에 뭐 남들보다 특별한 가채를 얹지도 않았고요.”다들 깜짝 놀랐다. 다시 보니 정말 별다른 메이크업이 없었다.드라마를 찍으면서 이 정도로 메이크업을 얹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현장에 있던 배우들이 질투에 어린 시선을 보냈다.원연수가 휴대 전화를 꺼냈다.“아까 스타일리스트가 해줬을 때 모습입니다. 솔직히 제가 조연이지, 조연 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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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4화

원연수는 평온한 얼굴로 줄줄 읊어댔다.구 감독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원연수가 촬영장에서 30km나 떨어진 호텔에 묵었던 것도 고물차를 타고 오다 주간에 퍼졌다는 것도 몰랐을 거시다.게다가 제작팀에서 원연수에게 촬영 관련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원연수 씨 말이 사실인가?”구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이 제작팀 스텝에게로 향했다.“전달을 안 했을 리가 있습니까?”제작팀의 오 팀장이 벌떡 일어섰다.“어제 원 배우님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내라고 했는데요. 자기가 지각한 핑계를 저희에게 대는 겁니다. 그리고 본인이 시아 씨랑 같은 숙소에 있기 싫다고 해서 저희가 일부러 떨어진 곳에 배정한 거고요. 여기는 시골이라서 괜찮은 호텔이 많지 않습니다.”“나랑 같은 숙소에 있는 것도 싫었니?”시아는 깜짝 놀란 척했다.“왜? 내가 주인공이라서 불편하니…?”원연수는 시아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직장에서도 연기를 해야 하는데 넌 평소에도 연기를 하면서 살다니 참 피곤하겠다.’“감독님, 시작해도 될까요?”구 감독은 원연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너무 성격이 드세다는 생각이 들었다.보통 그렇게 성격이 드센 사람은 통제가 힘들기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나랑 촬영하면서 한 번에 OK 사인 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너무 자신하지 말아요.”원연수가 웃었다.“어쩔 수 없네요. 정말 그렇게 추리한 노인 분장을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러니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제가 NG를 낸 게 아니라면 무효예요.”“당연하지.”구 감독이 끄덕이더니 시아를 한번 쳐다봤다.“준비합시다. 5번 씬.”시아는 당황했다.“그건 오후 4시에 찍기로 했잖아요?”“난이도를 높여서 누구누구의 기를 좀 꺾어놓으려고요.”구 감독이 담담히 말했다.시아는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 5번 씬은 조연의 연기가 가장 까다로운 씬이면서 조연이 주연을 독살하려는 살기 가득한 장면이기 때문이었다.곧 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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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화

“미쳤어? 독을 탔지? 안 마실 거야!”시아가 외쳤다.“단아, 우리 친구였잖아? 우리 둘이 함께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되자고 했었잖아….”“이름은 날려야지. 언니 말고, 내가 날릴 거야. 난 이제 참을 만큼 참았어.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그분은 영원히 언니만 쳐다볼 거야. 그분 마음 속에, 그분 눈 속에는 오로지 언니뿐이니까.”내내 더없이 평온한 말투였지만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살기와 독기가 주변을 온통 압도했다.“언니, 죽어줘.”그러더니 갑자기 시아의 아래턱을 와락 움켜쥐었다.구 감독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 예쁘장하고 청순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와 광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심지어 원연수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눈을 크게 뜨지도 않았다.마치… 천생 그렇게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듯한 모습이었다.그에 비해 시아의 표정은 너무 과장되어 자연스럽지 않았다.비명, 눈 부릅뜨기 말고는 공포와 절망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시아의 연기가 완전히 원연수의 연기에 압도된 상황이었다.“강 배우, 들어가!”구 감동이 남자 주인공을 보고 말했다.강우진은 당황했다.“저는 6번 씬에 들어가는데요, 지금 바로 이어서 가나요?”“원연수의 연기 집중력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보자고.”구 감독이 말을 이었다.“저 감정선 그대로 받아줬으면 해.”강우진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까지 인간적으로는 비호감이었지만 연기자로서 원연수의 연기는 경탄스러운 수준이었다.“멈춰라!”강우진이 뛰어 들어갔다.시아의 입에 막 약을 들이붓는 원연수를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거칠게 잡아 끌어냈다.“뭘 먹이는 것이냐?”살기 등등하던 원연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의 가련한 얼굴로 변했다. “언니의 병세가 너무 심해서 약을 먹이고 있었습니다.”“……”천막 안. 이주혁이 마시던 커피는 이제 거의 끝나가는 참이었다. 한 모금을 꿀꺽 삼키고 나서 코에서 매혹적인 저음으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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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6화

그러더니 구 감독은 가버렸다.원연수도 자리를 떴다.다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원연수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진짜 구 감독에게서 한 큐에 OK 사인을 받는 배우를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심지어 영화계의 황제라는 강우진이 갑자기 씬에 투입되었는데도 원연수는 일말의 동요하는 기색 없이 연기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여주라는 시아는 종이인형마냥 씬에 전혀 어우러지지 못했다.매니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시아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원연수의 연기가 그 정도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이번 작품에서 원연수를 내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상영관에 걸려버리면 시아의 연기는 완전히 원연수의 연기에 압도당한 것을 모두에게 보일 판이었다.갑자기 뭔가가 뇌리를 팍 스쳤다.시아는 다급히 천막 쪽을 훑어보았다. 이주혁이 언제인지 모르게 자리를 떠서 보이지 않았다.안도의 한숨을 쉬던 시아는 방금 그 연기를 이주혁도 다 보았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다시 걱정이 와락 몰려왔다.*******이주혁이 차에 타자 기사가 물었다.“서울로 돌아갈까요?”“아니. 우선 어디 가서 점심이나 먹지.”이주혁은 두 눈을 감고 뒤로 기댔다.기사가 어느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식사가 끝나가 권현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뭐 하십니까?”“밥 먹는데, 무슨 일입니까?”이주혁이 심드렁하게 물었다.“큰일입니다. 방금 구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상당히 곤란한 목소리였다.“원연수를 주연으로 할 수 없겠냐고 묻던데요. 저희 쪽에서만 동의하면 내년에 바미 엔터 소속 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영화를 한 편 찍어주겠답니다. 출연할 배우는 저희가 정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요.”이주혁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자신이 구 감독이라도 그런 제의를 할 것 같았다.원연수는 분장 등이 도움 없이 연기만으로 완벽하게 악녀 연기를 완성했다.이대로 촬영하다 보면 시아는 연기에서도 밀릴 뿐 아니라 미모에서도 압도당할 것이 뻔히 보였다.그러면 영화가 상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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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화

권현규가 이어서 말했다.“역시나 훌륭한 배우라는 건 경험을 통해서 길러지는 모양입니다. 아, 대표님께서 따로 말씀이 없으시면 제가… 시아를 불러들이면서 대표님 뜻이라고 전하겠습니다.”“나한테 뒤집어씌우겠다 이거군.”이주혁이 꼬집었다.“아니,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다들 시아가 대표님 애인인 걸 아는데 제가 그렇게 말 안하고 누를 방법이 있겠습니까?”권현규가 민망한 듯 말했다.“아니면 직접 말씀하시겠습니까?”“됐습니다. 난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는 타입이니까 빠지겠습니다.”이주혁은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촬영 현장. 원연수는 점심을 먹더니 느른하게 소파에 누워 쉬고 있었다.이나정이 다급하게 말했다.“지금 이러고 쉬고 있을 시간 없다니까? 곧 오후 촬영 시작이야. 자기가 오전에 연기로 눌러놨지만 구 감독이 시건방진 배우를 얼마나 싫어하는데.”“아니야. 내 생각인데… 오후에는 촬영 안 할 거야.”원연수가 천천히 생수를 들어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이나정이 흠칫했다.“왜?”원연수의 입술이 서서히 올라갔다.이때 누군가가 쾅 하고 분장실 문을 걷어찼다.화가 잔뜩 난 시아가 들어왔다.“원연수, 아주 수단이 보통이 아니네?”“무슨 말씀이신지?”원연수가 고개를 외로 꼬고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모르는 척하지 마!”시아가 외쳤다.“오전에 일부러 예쁘게 하고 나와서 투 샷 찍었지? 그러면서 연기며 미모며 ‘내가 이 정도다!’라고 과시해서 감독님이 아무래도 주연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거잖아! 회사에서 들어오래. 이 영화 주인공은 너라고!”이나정의 눈이 커지더니 원연수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아까 원연수가 오후에 촬영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지 알았다.원연수는 피식 웃었다.“누가 자기더러 나보다 연기를 잘하지 말랬나, 나보다 예쁘지를 말랬나?”“이게…”시아가 눈을 희번득 뜨고 쳐다보더니 한참 만에야 싸늘하게 웃었다.“이번 작품에서 주연 자리 가져갔다고 너무 의기양양하지 말라고. 나는 엔터 산업을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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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화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시아의 분노한 얼굴을 보고 시아의 화를 살까 겁이 나서 우르르 도망갔다.이나정은 뒷목을 잡고 원연수를 쳐다보았다.“저기요, 시아가 싫은 건 알겠는데 너무 하얗게 닦아세운 거 아니니? 나중에 이주혁 대표 사모가 될 걸고 권 사장도 함부로 못 하는데….”“괜찮아. 배우 못하면 자기랑 나랑 나가서 장사하자.”원연수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난 원래 연기보다 사업 마인드가 더 강해.”이나정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난 빼주셔. 네가 언제 사업을 해봤다고 그래? 게다가 이주혁 대표 쪽에서 사람 손보려고 들면 진짜 쉽지 않을걸.”“알아.”원연수가 웃었다. 어느 정도는 조롱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그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내가 바로 그거 때문에 죽은 사람이거든.”곧 구 감독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시아 씨는 연말에 결혼 준비로 바빠서 아무래도 촬영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회사랑 상의를 한 끝에 주연을 원연수 씨로 교체하고 조연을 내일모레 새로 투입하기로 했으니 촬영은 며칠 쉽시다. 원연수 씨는 그동안 주연 대사 익혀주고.”“알겠습니다.”원연수는 놀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새 대본을 받아 갔다.시아가 결혼 준비 때문에 바빠서 하차한다는 말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원연수가 연기를 너무 잘하니까 결국은 탈탈 털릴까 봐 빠지는 거지. 아까 점심시간에도 그래서 싸운 거고.’그러나 다들 눈치껏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오후 촬영이 취소되었다.원연수는 그대로 호텔로 돌아갔다. 우선 샤워를 좀 하고 오후에는 서울로 돌아가 며칠 쉬다 올 생각이었다.목욕을 마친 원연수는 수건을 두르고 나왔다.그런데 욕실 문을 열고 나서서 나오다가 소파에 앉은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전에 봤던 고급스러운 차림 그대로 이주혁이 모델처럼 앉아 있었다.세상에 노크도 없이 남의 방에 들어와 앉아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어떻게 들어오신 거죠?”원연수가 당황해서 물었다.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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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화

‘그래, 그때 내가 그랬지.그때라니, 얼마나 되었지?’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원연수는 살짝 몸을 떨었지만, 곧 평온을 되찾았다. 후다닥 침대로 가서 위에 놓여 있던 옷을 집어 들었다.이주혁은 수건 아래로 드러난 원연수의 가느다란 두 다리를 노골적으로 탐욕스러운 눈을 훑었다.원연수는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옷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그러나 수건을 감고 있어 걸음을 크게 못 걷고 종종거리는 모습이 도리어 귀여웠다.원연수는 잔뜩 긴장해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이주혁이 다시 또 강제로 키스라도 해올까 싶어 두려웠다.전에는 옷이라도 입고 있었지, 지금은 이주혁이 마수를 뻗쳐오면 절대 벗어날 수 없을 상황이었다.그러나 다행히도 이주혁은 내내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일어서지 않았다.원연수는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뒤에야 한숨을 돌렸다.이주혁은 카드 키를 손에 들고 빙글빙글 돌렸다.길게 심호흡을 하며 한창 성을 내는 자신의 남성을 느끼면서 낮을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나 잔뜩 성을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너무 오래 여자를 안지 못해서 그래.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굴욕적인데.’곧 다시 욕실 문이 열리더니 원연수가 평범한 분홍색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왔다. 완전히 신입생 같은 모습이었다.“핑크색을 입을 줄은 몰랐는데?”이주혁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난 뭐 핑크색 입으면 안 되나요?”원연수가 반박의 말로 이주혁의 입을 막았다. 원연수가 평소 핑크색 옷을 입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입은 티셔츠는 명품 브랜드의 모델로서 협찬을 받은 옷이라 입지 않을 수 없었다.이주혁은 흠칫하더니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그림자를 드리웠다.‘그래, 원연수도 핑크색 옷을 입을 수 있지. 처음 봤을 때부터 백소영을 닮은 저 눈동자 때문에 내가 너무 백소영의 캐릭터를 원연수에게 과도하게 투영하고 있는지도 몰라.’이주혁이 기억하는 백소영은 결코 분홍색을 입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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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화

이주혁이 다리를 꼬았다.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도록 깊었다.“원연수, 아주 대단해. 다들 보고 있는 앞에서 구 감독에게 그런 도박을 걸다니 말이야. 멋진 연기를 보여주면서 시아는 물론이고 영화계의 황제라는 남주까지 압도해 버렸어.네가 완벽한 연기자라는 것을 보여주어서 감독이 내칠 수 없게 만들었지. 그렇다고 계속 같이 촬영을 하려니 주연인 시아가 당신 연기에 가릴 것 같으니 감독으로서는 시아를 빼버리는 수밖에 없었지. 시아도 상영 후에 조연에게 연기에서 밀렸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니 빠지기 싫어도 빠지는 수밖에 없어단 말이야.”“어쩔 수 없죠. 저는 원래 얌전히 조연을 맡아서 연기할 생각이었다고요. 대표님 약혼녀가 첫날부터 그렇게 제작팀에 분장팀까지 매수해서 날 너무 괴롭혔잖아요.”원연수는 느긋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방을 빼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대표님의 약혼녀로서 시아는 날 싫어한다고요. 지난번에 대표님 사무실에서 뛰쳐나오던 날부터 시아에게 찍혔거든요. 다들 평화롭게 촬영에 임하면 난 그냥 조연으로 맞춰서 연기할 생각이었지만 시아는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원연수가 고개를 들어 평온한 눈으로 이주혁을 바라보았다.“미안하지만, 난 억울해도 꾹 참고 물러나는 거 못해요. 뒤로 물러설수록 갑질 하는 사람은 더 신나 하거든요. 그리고 시아가 연기를 못하는 게 내 잘못인가요?”“지금 내 앞에서 내 약혼녀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폄하하는 건가?”이주혁이 언짢은 듯 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다.“팩트잖아요. 대표님 앞에서 거짓말로 알랑거리는 말이 듣고 싶으면 다른 사람이나 알아보세요.”원연수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시아가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닐지도 모르죠. 침대 위에서는 굉장할지도? 아니면 대표님이 그 하고많은 사람 다 두고 시아를 골랐을 리가 없으니까요.”“내가 아랫도리의 즐거움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고 비웃는 건가?”이주혁이 일어서서 다가와 원연수의 턱을 잡았다.새삼 원연수의 턱 아래 피부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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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화

“게다가… 난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원연수가 팔을 들어 시계를 풀었다. 안에 깊은 흉터가 있었다.“보이세요? 이게 내 지난번 연애의 끝이에요. 남들은 내가 배민교의 배경을 보고 덤볐다고 하지만 난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그런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난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지 못했죠. 결국에는 내가 자살을 위장해서 동정을 사려고 했다는 비난이나 들어야 했어요.”손목의 상처를 보며 이주혁은 흉터가 매우 깊은데 살짝 놀랐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다니 대체 사랑에 대한 배신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대체 그 쓰레기 같은 놈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던 거야?’“난 배민교가 아니야.”이주혁인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배민교는 여자에게서 마음도 바라고 몸도 바랐는지 모르겠지만 난 네 몸만 원해.”원연수는 흠칫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그 웃음이라는 것이 살짝 처량한 느낌이었다. “정말 제대로 쓰레기네요. 그러니까 난 인간적인 매력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내 몸만 있으면 된다는 말인가요?”이주혁의 깊은 눈이 의미심장한 눈빛이 지나갔다.“아마도….”“됐어요. 물론 이 바닥에 지름길 가고 싶은 사람이 없진 않겠죠. 하지만 오늘 내가 대표님 앞에서 속옷을 내리면 내일은 다른 남자 앞에서 내리게 될 거예요.”원연수가 고개를 저었다.“그런 삶을 사느니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로 이 바닥을 뜨고 말겠어요.”“연예계를 떠난 스타가 얼마나 손가락질을 받는지 아나?”이주혁이 찔렀다.“알아요. 누구는 선생이 되기도 하고 누구는 장사꾼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도 다 엄연한 직업이에요.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으면 뭘 해서 먹고살아도 되죠”원연수가 담담하게 답했다.이주혁은 원연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지금 하는 말에 일말의 거짓도 없다는 것이 읽혔다.이주혁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다들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시아는 가장 탐욕스럽게 최고의 자리를 탐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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