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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윤서는 그 가슴팍을 보고 움찔했다. 남자가 턱을 매만졌다. 섹시한 눈에서 매혹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흥, 여자를 불렀나? 이 정도면 반반한데?” 윤서는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그러나 안에서 흘러나오는 카드 치는 소리를 듣고 떠보듯 물었다.“최하준 씨 찾아왔는데, 안에 있어요?”남자는 흠칫 놀라더니 안을 향해 외쳤다.“별일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풍류남이 되셨어?”“최하준 씨 와이프 친구예요.”윤서는 기분 나쁘다는 듯 문을 가로막은 사람을 밀치고 들어갔다.안에는 남자 셋이 앉아 있었는데 다들 아우라가 보통이 아니었다. 담배를 문 남자가 말했다.“영식아, 잘 지키랬더니 사람을 막 들여보내면 어떡해?”“내 잘못이 아니지.”송영식이 빈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며 흥미롭다는 듯 윤서를 위아래로 훑었다. 주빈석에 앉은 최하준은 손에 카드를 들고 아무렇지 않게 윤서를 한 번 보더니, 테이블에 카드를 한 장 던졌다.“저 사람 치워.”“잠깐만요.”이거저거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윤서가 바로 앞으로 나섰다.“여름이가 부모님에게 모함을 당해서 지금 경찰서에 잡혀 있어요. 하준 씨가 아니면 아무도 못 꺼내요. 경찰한테 들었는데 3일이면 사건 처리해서 형을 받을 거래요”“나랑 무슨 상관입니까?”최하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뱉었다.”“당신 와이프잖아요.”최하준이 갑자기 입 한 쪽 끝을 올리고 웃었다.“뭘 잘못 아셨나 본데, 그 사람은 양유진 씨 여자친구입니다. 죽든 살든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서 나가주시죠.”그런 양심도 없는 쓰레기 같은 여자를 떠올리니 최하준은 미칠 듯이 화가 났다.“뭐, 나가라네. 그만 나가시죠.”영식이 다시 윤서를 끌고 나갔다.윤서는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을 두 손으로 꽉 붙들었다.“아니에요. 우리 여름이는 양 대표랑 사귄 적이 없어요. 그날 양 대표가 상황 빠져나가느라고 그냥 기자 앞에서 그렇게 말한 것 뿐이라고요. 여름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에요. 걔 마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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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크흡, 미안하다, 여름. 널 구하려니 어쩔 수가 없구나. 이 모든 헛소리를 용서해 주렴.일단 풀려나고 보자. 그다음에 네 살길은 네가 찾아가려무나.’왁자지껄하던 룸에 정적이 흘렀다. 툭 하고 담배 떨어지는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릴 지경이었다.하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놓인 카드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누구도 하준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파도가 일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여름이 날 포기한 적이 없다? 하긴 날 사랑한다면서 자존심마저도 버렸던 사람이지. 그렇게 쉽게 날 포기했을 리가 없어.’마음이란 이렇게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었다.더 사랑할수록 아프다고 하지 않던가.그러나 여름은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자유자재로 흘릴 수 있다는 점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일단 가보십시오.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100년은 족히 지난 듯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뒤에야 최하준의 무거운 입이 천천히 열렸다.“무슨 생각을 더 해요? 여름이가 벌써 8시간을 갇혀있었어요.”“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8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입니까?” 최하준이 다시 카드를 손에 쥐었다.“안 나가겠다면 강여름 씨는 80년을 갇혀 있게 될지도 모르지.”윤서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최하준의 말 속에 일말의 희망이 비치는 것 같았다.윤서는 깨끗하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 나왔다.문이 닫히자 이주혁이 화려한 손기술로 카드를 섞었다. 흥미진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정말로 구하러 가게?”하준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무 말이 없었다.송영식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아까 그 사람 영악해 보이던데 거짓말일지도 몰라.”“그럼 그 사람이 했던 말 중 어떤 부분이 거짓인 것 같아?”최하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은근히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송영식은 알 수 없는 싸늘함을 느꼈다. 말문이 막혔다. 그 사람은 애초에 널 사랑한 적이 없다든지, 네 와이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든지 하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죄다 매를 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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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조심스럽게 여름을 뒷좌석에 태우고 최하준은 얼른 젖은 옷을 벗겨냈다.여름은 무의식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눈에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했다.“가만있어요. 조용! 좀 봅시다.”최하준은 한 손으로 여름의 어깨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 옷을 젖혔다. 뽀얗게 빛나던 우윳빛 피부가 온통 울긋불긋 피멍투성이였다. 보기에도 참혹했다.최하준의 얼굴이 극도로 험악해졌다.여름은 그저 부끄러워서 이거저거 생각할 처지가 아닌 데다 보여줄 만한 몸 상태도 아니었다.“아직 다 못 봤어요?”여름이 부끄러워서 몸을 틀었다. 그러나 상처 부위에 자극이 가면서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졌다.“가만히 좀 있어요.”최하준은 그대로 여름의 젖은 옷을 다 벗겨내더니 자신의 스웨터를 입히고 코트로 여름을 감쌌다.최하준이 움직이면서 상처가 건드려질 때마다 여름은 ‘스읍’하면서 급히 숨을 들이켰다.“많이 아픕니까?”최하준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그 아픔 하나하나가 깊이 새겨져서 교훈을 좀 얻었길 바랍니다.”다음부터는 함부로 곁을 떠나지 않도록, 자신의 곁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뇌리에 각인시켜주고 싶었다.여름은 남한테 당하고 다니는 수치를 기억하라는 줄 알고 이를 악물면서 속으로 분을 삭였다.최하준은 여름이 말귀를 알아들은 것 같아서 적잖이 안심되었다.뒷문을 열고 나가면서 윤서에게 말했다.“친구가 잘 살펴줘요. 난 이제부터 운전해야 하니까.”******차는 번화한 도시의 새벽길을 달렸다.여름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윤서에게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왜 하필 저 인간을 끌고 왔어?”윤서가 여름을 흘겨봤다.“야, 너 이번에 주화그룹 건드린 거 알아, 몰라? 온 동성에 양 대표고 선우 오빠고 널 보석 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없더라. 그러니 어떡해? 최하준 씨 찾아갈 수밖에.”“그러니까 하준 씨가 지훈 씨를 찾아가서 도와달라 그랬어?”그제야 무슨 일인지 파악이 됐다.“지훈 씨도 널 위해서 주화그룹이랑 맞설 정도는 아니야, 알겠냐? 네가 지훈 씨 마누라도 아닌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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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그러니까 최하준의 마음속에 나는 매일매일 최하준 때문에 울고불고하는 여자가 되어 있단 말이지?최하준을 너무 사랑해서 평생 함께 밥을 먹고 싶고, 진짜 아내가 되고 싶은 여자라고?’여름은 너무 놀라서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나는 대체 전생에 임윤서에게 무슨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길래,처음에는 최하준이라는 진흙 구덩이에 뛰어들더니, 거기서 이제 간신히 기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최하준에게 홀라당 빠진 바보가 되어 있는 걸까?’이제 목숨까지 구해줬으니 윤서가 한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매몰차게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또 그 험난한 연기의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 걸까?’“나한테 너무 뭐라 그러지 마라. 다 널 꺼내오느라고 그런 거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안에서 큰일 났을 지도 모르잖아.”윤서가 여름의 귀에 대고 소곤댔다.“절대로 하준 씨 앞에서 내가 거짓말했다고 까발릴 생각하지 마라. 우리 둘 다 죽을 수 있어. 엄청난 변호사니까 절대로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게다가 너 지금 보석으로 빼낸 거라서 주화그룹이 언제든 다시 널 고소할 수도 있는데 거기서 제대로 몸 빼고 싶으면 하준 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여름은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그래서 돌고 돌아 또다시 돌아가서 최하준 비위를 맞추고 살아야 한다고?’여름은 정말이지 다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최하준에게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윤서가 말했다.“잘 들어. 최하준 말고는 지금 동성에서 널 도와줄 사람 아무도 없어. 하준 씨가 안 나섰으면 너 몇 년 형은 받았을걸. 수십억 원이 걸렸으면 최소 10년 이상 판결 나와. 심하면 20~30년도 나올 수 있어. 게다가 너 평생 횡령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되는 거야.”무거운 돌에 눌린 것처럼 답답한 마음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래, 그런 더러운 오명을 쓰고 살아갈 수는 없지. 반드시 결백을 밝히고 말겠어!’*****차가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 입구에는 이미 의사가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주치의가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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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최하준이 병실로 들어서는 걸 보고 윤서가 벌떡 일어났다.“전 나가서 여름이 먹을만한 게 있는지 좀 보고 올게요.”“아닙니다.” 최하준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이 근처 가게 비위생적입니다. 제가 호텔에 얘기해서 식사 배달하도록 해놨습니다.”‘병원에 입원해서 7성급 호텔 요리라니 우리 여름이 호강하네.’윤서는 침대에 있는 여름에게 눈짓을 해 보이고는 스르륵 빠져나갔다.여름도 최하준의 배려에 내심 놀랐다. 이렇게 잘해주다니.... 최하준의 눈에 한 줄기 따사로운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그냥 아무거나 먹어도 되는데요.”여름이 안절부절하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무 거나요? 진단서 못 봤습니까?”최하준의 목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났다.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여름은 당황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직 못 봤다.최하준이 싸늘하게 뱉었다.“바보 같으니라고. 그런 몸을 해 가지고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습니까? 의사가 그러는데 평생 불임이 될 수도 있답니다.”이번에는 여름도 깜짝 놀랐다.아직 젊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생리 주기도 불규칙하고 양도 적어진 것 같았다.“경고하는데, 난 아픈 사람은 싫습니다.”최하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경고했다. 자신과 살고 싶다면 제발 자기 몸을 잘 돌보라는 말을 알아들었으면 했다.여름은 입을 삐죽거리며 받아쳤다.“아픈 걸 어쩌라고!”“아직 입은 살았군요.”최하준이 다가왔다.여름은 놀라서 이불로 쏙 들어갔다. 그러다가 상처가 건드려지는 바람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최하준은 여름이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자기가 무슨 괴물도 아닌데 이럴 일인가 싶은 마음도 드는 것이었다.“나와요. 사인하십시오.”손에 든 서류를 이불에 던졌다. 여름은 위에 ‘혼인 동거 협의’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내키지 않았지만 열어보았다. 대략 앞으로 강여름은 최하준과 함께 살아야 하며 강여름은 식사와 청소, 고양이를 돌봄, 최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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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네. 이민수죠.”최하준이 곁눈질로 여름을 흘끗 봤다.“얌전히 입을 제일 잘 다물고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죠, 알겠습니까?”여름은 한기가 든 듯 몸을 떨었다.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이민수, 이 인간 말종 같으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사촌인데….’“저기… 조건을 좀 수정해도 될까요?”잠시 진정한 뒤 여름이 쭈뼛거리며 물었다.정말이지 다시는 최하준의 돌보미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건 무기한 계약이었다. 너무 가혹하다.“좋습니다.”최하준이 씩 웃었다.“그러면 공정한 마켓 프라이스대로 가죠. 제 수임료는 최소 600억입니다. 그리고 강여름 씨 사건은 난이도가 상당합니다. 동성 최고 세력가라는 주화그룹를 상대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합시다. 그래도 아는 분인데 20% 할인해서, 480억으로 합시다.”“480억이오? 날강도잖아?”여름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얼마나 운이 좋은지도 모르시는군. 밖에 나가면 더 주고라도 날 소송에 데려가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압니까?”최하준이 일어섰다.“싫으면 그만두시죠. 나도 요즘 스케줄이 빡빡했는데.”최하준은 말을 마치고 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열 받게도 강여름이 자기를 불러 세우지 않는 것이었다.‘이 멍청이가, 내 옆에 있을 기회를 대놓고 줬는데도 안 잡아?좋아, 애걸복걸할 때까지 내가 기다려 주지.’최하준은 힘껏 문을 밀치고 나갔다.******20분 뒤 윤서가 돌아왔다.얘기를 듣더니 복잡한 심경으로 상황을 정리했다.“내가 보기에 하준 씨가 너한테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야. 아니면 잠자리 얘기는 왜 꺼냈겠어? 게다가 다른 남자랑 둘이 밥도 먹지 말라는 거 봐라. 질투하는 거라니까?”여름은 한사코 부정했다.“아니야. 아무래도 날 평생 무료 도우미로 곁에 묶어두려는 것 같아. 나 그거 정말 너무 하기 싫어. 전에 같이 살 때 내가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는지 아니?”“어쩔 수 없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지금 정말 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하준 씨밖에 없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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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응’ 하면서 최하준은 심히 통쾌한 기분이었다.“호텔 건 자료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전부 착착 준비 중입니다.”김상혁은 속으로만 웃었다.‘사실 애진작부터 소송 준비는 다 하고 계셨으면서 아닌 척하시기는…그런데 이렇게 하셔도 사모님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걸 우리 변호사님이 알기는 아실까?’한편 전화를 끊고 난 여름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후회막심이었다. 그날 그냥 눈을 딱 감고 합의서에 사인을 했어야 했다.최하준의 도우미가 되는 것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아유, 얼른 이거 입고 가서 부탁해 봐.”윤서가 새로 산 하얀 꽃무늬 원피스를 던지며 말했다.여름이 열어보니 깊이 파인 V넥이었다.“한겨울에 이런 걸 입고 가서 퍽도 유혹이 되겠다. 최하준이 날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이런 거 입고 갔다가는 죽도록 미움만 살 거라고.”“잠자리 얘기까지 꺼낸 거 보면 그쪽으로도 너한테 생각이 있는 거라니까. 일단 해 봐. 어쨌든 최선은 다해봐야지.”윤서는 이놈의 절친이 어쩌다가 최하준에게만 이렇게 꽉 막혔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이게 최하준 씨 법률 사무소 주소야. 지훈 씨한테 물어봤어.”여름은 손에 든 주소를 보며 숨을 한번 길게 들이쉬었다.운명이 손에 들려졌다. 어쨌든 한번 노력은 해봐야 했다.출발하기 전에 여름은 최하준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도시락에 넣어 챙겨서 차를 몰아 로율 법률사무소로 갔다.최하준이 일하는 곳에는 처음 와보는 것이었다. 프런트에서 여름은 누구를 찾아왔는지 간단히 설명했다.안내원은 전화를 한 통화 하더니 말했다.“지금 손님이 오셨으니까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그 잠시가 장장 30분이었다.******한편 사무실에서는 이지훈이 최하준과 당구를 치면서 5분에 한 번씩 벽에 걸린 벽시계를 보고 있었다.결국 이지훈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냥 올라오라고 하지 그래?”“안 돼. 단단히 교훈을 줘야 정신을 차리지.”최하준은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어보더니 차가운 바깥 공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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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일이 있어서 왔는데 방해될까 봐요.”그따위 소리를 듣고 상당히 거북했지만 생각해보면 결국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 울고 싶었다.“확실히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만.”최하준이 팔짱을 끼며 ‘나 바쁘다, 아주 바쁘다고’를 시전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김상혁은 최하준의 츤데레력에 손발이 다 오그라들었다.‘며칠 동안 안절부절 기다리셨으면서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하시나요?’분위기를 좀 누그러뜨려 보려고 김상혁이 웃으며 말했다.“변호사님 드리려고 선물 들고 오셨나 봅니다?”“맞다, 아, 선물은 아니고 점심을 좀 만들어 왔는데요.”여름이 급히 도시락을 꺼냈다.최하준은 테이블에 있는 볼펜을 들고 돌리면서 조롱하는 시선을 보냈다.“다시는 나한테 밥 안 해주겠다고 하신 분이 누구시더라.”여름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재빨리 억지로 웃는 표정을 만들어 냈다.“최 변호사님, 전에는 제가 뭘 잘 몰라서….”“지금 절 뭐라고 부르셨습니까?”최하준이 사뭇 싸늘하게 볼펜으로 테이블을 탁탁 치면서 물었다.여름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최하준 씨?”하준은 여전히 기분이 별로였다.여름은 멘붕이 왔다. 남자의 마음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속을 대체 누가 알겠는가?하나는 츤데레 질을 하고 하나는 바보짓을 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김상혁은 눈을 가리고 싶었다“전에 부르시던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아~ 쭌?”여름이 갑자기 알았다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최하준은 그 소릴 듣고 와락 몰려오는 부끄러움을 덮으려고 김상혁에게 눈을 부라리며 되레 화를 냈다. “자네는 할 일 있지 않았어? 나가보지.”“죄송합니다.”김상혁이 고개를 숙이고 후다닥 문을 열고 나갔다.“저분 잘못이 아니에요.”여름이 결국 착한 김상혁을 위해 한마디 거들었다.최하준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벌떡 일어나 여름을 쳐다봤다.“지금 내 앞에서 다른 남자를 감싸주는 겁니까?”“......”‘사람이 이렇게 쪼잔하다, 글쎄!’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여름은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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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최하준이 비꼬았다.“좋아요. 마지막 기회를 주겠습니다. 안에 가서 밥 좀 데워다 주십시오.”“그래요.”여름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더니 얼른 도시락을 들고 안쪽의 부엌으로 갔다.주방에 전자레인지가 있어서 3분 만에 음식은 다 데워졌다.여름은 최하준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 불고기를 담아서 들고 왔다.돼지 불고기를 보자 최하준은 갑자기 식욕이 돋았다. 여름이 떠나고 나서 편하게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젓가락을 들자마자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릇이 싹싹 비워졌다. 여름은 옆에서 놀라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내가 한 음식은 이제 관심 없다더니?남자들은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죄다 거짓말이네.’“뭘 봅니까?”밥을 다 먹고 난 최하준은 여름의 시선을 느꼈다. 그제야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아니, 난, 나는 쭌이 내가 한 음식을 먹는 걸 보니까 기쁘네요.”여름은 더듬거리며 말을 마쳤다. 최하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테이블의 서류를 집어 들고 일할 준비를 했다.여름은 좀 초조해져서 태연한 척하면서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다.그 행동은 당연히 최하준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뜻밖에도 여름은 안에 작은 꽃무늬의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여름의 볼륨 있는 몸매를 잘 드러내 주고 있었다. “왜? 미인계를 쓸 생각입니까?”조롱하는 말투였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역시나 내게 마음이 남아 있잖아?’순식간에 탄로가 나자 여름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입으로는 여전히 연기를 계속했다.“아뇨. 더워서요. 여기 난방을 엄청 트나 보네요. 왜 이렇게 덥지?”“그렇게 더우면, 더 벗으시던가?”최하준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여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곧 조용히 다시 코트를 끼어 입었다. ‘됐다. 유혹은 무슨… 망신당하기 전에 그만두자.’“이리 와요.”최하준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여름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남자의 손이 손목을 잡나 했더니 확 당겨서 여름을 무릎에 앉혀버렸다.그 모든 일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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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그냥 가게 두기에는 귀여운 옷이 너무 아까운데.”최하준의 눈이 살짝 감기면서 오른손으로 여름의 뒷머리를 받쳤다. 최하준의 입술이 여름의 입술에 닿았다.바로 이 느낌이었다. 지난번 레스토랑에서 입 맞추고 나서 내내 잊을 수 없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뭘 발랐는지 여름의 입술은 너무나 달콤했다.여름은 당황스러웠다.‘날 싫어하지 않나? 왜, 왜 자꾸 입을 맞추는 거지?‘설마하니 이게 바로 ‘입으로는 아니라면서도 몸은 정직한 남자’의 전형인가?’그러나 여름은 최하준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저 욕망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처음에는 머릿속이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어지러웠지만, 곧최 하준의 키스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특히나 최하준에게서 나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여름은 저도 모르게 팔로 그의 목을 감고 말았다.“여름, 여름! 우리 여름 씨! 너무 오랜만이에요!”굳게 닫혀있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지훈이 신이 나서 뛰어들다가 눈앞의 광경을 보고 그대로 멈췄다.여름이 소스라치게 놀라 최하준을 팍 밀치고 무릎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귀까지 빨개진 채 어쩔 줄을 몰랐다.최하준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매우 상기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자다가 코털이 뽑힌 사자라도 되는 양 두 눈에 분노가 타올랐다.“미, 미안! 난 아무것도 못 봤어. 계속해!”이지훈이 놀라서 얼른 문을 닫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다. 이지훈이 원래 이렇게 남의 일에 나서는 사람은 아니었는데최 최하준의 그 성질머리에 혹여라도 여름과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서 분위기를 풀어볼까 하고 왔는데 세상에 이런…‘나 참, 내가 하준이를 너무 얕잡아 봤군.’사무실 안.여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돌돌 말고 있었다.‘부끄러워. 창피해서 이제 얼굴을 못 들겠어.’ 중간에 흥이 깨져 버려서 있는 대로 기분이 상했던 최하준은 여름이 한창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감상 중이었다.‘귀엽잖아.’“이리 와요.”최하준이 다시 아까처럼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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