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991 - 챕터 1000

1699 챕터

992화

다시는 그 귀찮은 남자의 품에서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니 여름은 하루를 편안히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뒤척거리기만 할 뿐 잠을 이룰 수 없었다.마음이 불안한 것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어제 하준이 떠날 때 보여준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그렇게 다급히 떠난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그러나 지금 하준의 지위로 생각해 봤을 때 누구도 하준에게 위협이 되겠는가?아침 8시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쉐프는 맛있는 식사를 잔뜩 준비해 주었지만 영 입맛이 돌지를 않았다.아침 식사를 끝내고 산책을 나갔다. 점심때가 되니 멀리서 헬기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하준이 돌아오는 줄 알았다.‘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이야.’그러나 착륙한 헬기에서 튀어나온 것은 양유진이었다. 하얀 셔츠에 검은 머리를 휘날렸다. 검은 두 눈이 여름의 몸에 떨어질 때는 매우 복잡한 심경이 스치는가 싶었지만 곧 기쁨으로 가득 찼다.“여름 씨! 마침내 찾았군요.”양유진이 여름을 향해 달려왔다.여름은 멍하니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닌가 싶었다.이곳에 처음 끌려왔을 때부터 양유진이 자신을 찾으러 오는 꿈을 꾸고는 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름은 그런 희망을 버리고 있었는데 정말 양유진이 온 것이다.그러나 양유진이 다가서기도 전에 집사가 여름의 앞을 막아섰다.“거기 서. 이분은 우리 사모님이시다. 관계자 외에는 접근할 수 없다.”집사가 매서운 눈으로 양유진을 노려보았다.“사모님?”그 말을 들은 양유진은 주먹을 꽉 쥐더니 냉소를 지었다.“저 사람은 내 아내요. 당장 비키는 게 좋을 거야. 당신들 고용주인 최하준은 이미 잡혀갔어.”집사는 흠칫했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양유진이 데려온 사람들이 달려들어 제압해 버렸다.“너무 보고 싶었어요.”양유진이 여름에게 뛰어오더니 다정하게 여름이 뺨을 어루만졌다.꼬박 한 달을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아픈 심장을 달랠 방법은 술로 마비시키는 것뿐이었다.그러나 여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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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화

“그런 게 아니에요.”여름은 양유진의 싸늘한 눈빛에 흠칫했다. 그런 눈빛의 양유진은 처음이었다.“미안해요, 놀랐나 보네요.”양유진은 자신이 너무 감정적으로 반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다시 여름을 안았다. 말투에 괴로움이 묻어 있었다.“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한 달 동안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몰라요. 최하준이 당신을 데려가는 걸 보고만 있었던 내 무능함이 너무 싫었어요.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최하준과 사랑에 빠져나와 이혼하겠다는 건 아닐까 두려웠어요.”양유진의 말을 들을수록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아팠다.“아니에요, 내가 미안하죠. 난….”최하준과 보낸 한 달을 되돌이켜 보니 여름은 양유진을 볼 면목이 없었다. 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특히나 두 사람의 신혼 첫날 밤마저도 최하준과 보내지 않았던가?생각할수록 여름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우리 일단 여기를 떠납시다. 아버님이 무척 걱정하셨어요.”양유진은 여름을 감싸 안고 헬기에 올랐다.헬기가 이륙했는데도 여름은 아직 이게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잘 안됐다.결국 진짜로 양유진에게 구출되기는 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 다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아갈 수는 없었다.“아, 유진 씨.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없어요?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요? 그리고 난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여름은 멍하니 물었다.“태평양의 어느 섬입니다. 최하준이 해외에 사두었던 섬이라고 해요. 차명으로 사두었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해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경찰에 최하준이 내 아내를 납치했다고 신고를 해서 찾을 수 있었던 겁니다.”양유진은 참을성 있게 여름에게 설명해 주었다.“애진작부터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최하준이 당신을 데려갈 때 경찰에 신고하면 가족을 풍비박산 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나 하나 살자고 그런 게 아니라 부모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여름은 헉하고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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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FTT가 너무 갑작스럽게 무너졌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노린 것처럼.“그러면… 이제 FTT의 위세가 예전 같지는 않겠네요.”저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그렇게 물었다.“네. 이제 FTT 그룹 전체의 가치가 우리 회사보다도 낮습니다.”양유진이 말을 이었다.“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요. 최하준이 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FTT의 명예는 땅바닥에 떨어질 테고 앞으로 누구도 FTT와 손잡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그렇다고 그 많은 금액을 다 배상하자면 자금이 동나겠죠. 그러면 앞으로 개발할 여력도 없을 테니 새 제품을 내놓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도태될 테고요.”이제야 상황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어쨌든 최하준이 걸어갈 길은 이제 절망의 길 한 줄기 뿐이었다.그 높던 위세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앞으로는 최하준이 우리를 협박할 수 없을 겁니다.”양유진이 갑자기 손을 뻗어 여름을 품에 안았다.“내 아내를 빼앗아 갔던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갈 생각이 없습니다.”여름이 고개를 들었다. 양유진의 눈에 어린 증오심을 보고 흠칫했다.“유진 씨….”“복수를 안 했으면 하는 건 아니겠지요?”양유진이 고개를 숙여 복잡한 눈으로 여름을 바라보았다.“결혼식장에서 모두가 뻔히 보는 가운데 아내를 빼앗겼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름 씨도 섬에 갇혀서 고생을 엄청 했을 텐데, 이제 빚 갚을 때가 되었죠.”여름의 속눈썹이 살짝 아래로 내리깔렸다. 양유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여름도 어제까지만 해도 최하준을 죽도록 증오했다. 하준이 모든 것을 잃었으면 좋겠다고 저주했었다.그런 막상 그런 순간이 오자 이게 기분이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아무래도… 사실은… 그렇게 하준에게 보수하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도 모른다.‘내가 왜 이럴까?이제는 최하준의 괴롭힘에 익숙해졌나? 내가 M성향이었을까?’여름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당황스러웠다.“그래서 어떻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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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화

양유진의 말은 폭탄처럼 한 마디 한 마디가 여름이 머리를 때려왔다.‘그래.최하준은 범죄를 저질렀고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니지.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 게 당연한 거야.그런데 왜 이렇게 모순적인 기분이 드는 거지?최하준이 감옥에 가고, FTT가 망해도 나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잖아.’“경찰에게 그런 이야기를 진술한다는 게 내키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나도 이렇게 괴로운걸요.”양유진이 괴로운 듯 말했다.“하지만 장차 우리 둘이 함께 이겨 나가면 돼요. 나 양유진은 평생 당신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을 겁니다.”양유진의 말을 들으니 여름은 더욱더 죄책감이 느껴졌다.양유진이 잘해줄수록 여름은 더 큰 돌덩어리가 심장을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5시간 뒤.헬기는 서경주의 집 잔디밭에 내렸다. 서경주와 하늘이가 기다리고 있었다.특히나 이렇게 오래도록 여름과 연락이 안 된 적이 없었던 하늘이는 마구 달려와 그대로 여름의 품 안에 안겼다.“엄마….”하늘은 있는 힘껏 여름을 껴안았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보고 싶었어요.”“하늘아, 엄마 걱정 많이 했지?”여름이 마음 아픈 듯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엄마는 괜찮아. 이제 돌아왔어. 앞으로 다시는 하늘이를 떠나는 일은 없을 거야.”“아빠가 너무 미워요.”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 미움이 그득했다.하늘은 하준이 엄마를 기절시켜 자신의 세계에서 데리고 나가던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하늘은 어른들이 뒤에서 여름이 최하준에게 납치되어 갔으니 양유진이 이혼을 요구할 것이라며 수군대는 이야기까지 들었었다.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그저 엄마가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살기를 바랐을 뿐인데 모든 것을 아빠가 망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여름은 아들 눈 속의 미움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하늘아….”여름의 입이 달싹거렸다. 자신은 하준을 증오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자기 친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자신과 하준의 일로 아이들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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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화

“설마… 최하준의 아이를 가진 건 아니지?”윤서가 갑자기 잔뜩 긴장해서 물었다.“아니야.”여름이 황당한 듯 답했다. 휴대 전화를 들고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하긴 했니?”윤서가 추궁을 이어 나갔다.“……”여름은 적잖이 당황했다.“진쯔 이를래? 다른 얘기나 흐자(진짜 이럴래? 다른 얘기나 하자).”“난 그런 애기가 재미있던데, 뭔가 찌릿찌릿하잖아?”윤서가 헤헤거렸다.“찌릿찌릿 같은 소리 하네.”여름이 참지 못하고 받아 쳤다.“아주 한 달 내내 밤낮으로 내 양심이 고통받았거든.”“뭘 그렇게 양심에 가책을 받아? 너도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윤서가 위로했다.“네가 작정을 하고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그 입 다물어라.”‘바람’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거슬렸다.“알겠어.”윤서가 화제를 바꾸었다.“어쨌든 이제 앞으로 최하준이 널 어쩌지는 못할 거야.”여름은 입술을 축이며 복잡한 심경으로 물었다.“FTT 상황이 진짜로 그렇게 심각해?”“심각하지. 그런데 송영식 말로는 최하준이 계약했던 업체에 배상을 해줘야 한대. 배상을 안 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나 보더라. 다들 글로벌 그룹이라 소송할 비용 정도는 다들 있대.그렇다고 다 배상하자면 FTT 자금이 바닥날 거고. 뭐, 이제 최하준은 끝장이야. 어쩔 수 없지. 최양하가 배신을 해버려서.”“최양하가 배신했다고?”여름은 갑자기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몰랐어?”윤서가 말을 이었다.“나도 오슬란 중역한테 들은 얘기긴 한데, 랜들에서 새로 출시한 신제품이 FTT 신제품을 베낀 거래. 완전 똑같다더라. 게다가 FTT 실험실에 내부 스파이가 있어서 모든 자료를 싹 다 지웠대. 그래서 랜들에서 표절했다고 말할 증거도 없다고 하더라고.아, 그리고 절묘하게도 랜들에서 신제품 아시아 사용권을 모두 추신에게 줬다지 뭐야?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추신이 일약 우리나라 최고의 그룹이 되어 버린 거야. 솔직히 추신이랑 랜들에서 손잡고 FTT 물 먹인 거지, 뭐.”여름은 완전히 깜짝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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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화

여름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섬에서 나오게 된 것만 해도 큰일이었는데 너무 놀라운 뉴스가 마구 쏟아져 들어오니 다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그 집 어르신이 연세가 높으시긴 해도 여름도 만나본 적이 있지만 건강은 상당히 좋으신 편이셨다.최윤형은 예전에 동성에서 여름과 안 좋은 기억이 있기는 해도 화장실에서 발가벗겨진 이후로는 화해를 해서 그리 관계가 나쁘지 않았었다.심지어 처음 하준의 본가에 갔었을 때 최윤형이 도와주기도 했었는데 그런 큰일을 당하다니 충격적이었다.“그 집에서 경찰에 신고 안 했어?”여름이 그렇게 묻고 말았다.“신고는 무슨, 최윤형이 추익현이 와이프를 희롱하려고 했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자기에 별장으로 잡아간 거라던데. 최하준이 도착했을 때는 너무 늦었대. 추익현이 돈뭉치를 던져주면서 치료비에 쓰라고 했대. 고소해도 그냥 돈이나 몇 푼 보상하고 끝나게 될 거라던데?뭐, 그런데 추신아고 FTT고 그까짓 돈이 문제겠니? 그러고 나서 유진 씨가 최하준이 납치했다고 경찰에 신고해서 최하준도 잡혀 들어간 거잖아. 최하준이 이제 자기 몸 하나도 어떻게 하지 못해서 이주혁이랑 송영식이 뒤에서 엄청 애쓴 끝에 겨우 보석으로 꺼냈대.”여름은 한참을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한 끝에야 겨우 입을 뗐다.“추신 정말 너무 하네. FTT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추신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건데.”“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렇게 한도 끝도 없는 거더라. 추동현은 그렇게 꽁꽁 자기 신분을 숨기고 있다가 드러내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이제 이용 가치가 떨어진 조강치저를 버리는 거더라. 아주 안중에도 없어.”임윤서가 한탄했다.“나도 최하준이 꼴 보기 싫어서 지금 그런 꼴이 된 게 고소하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면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그렇게 뒤통수를 치고 그러는 거 좀 아니지 싶더라.”“나도 그렇게 생각해.”여름은 완전히 동감이었다.통화를 끝내자 여름은 바로 최양하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을 울리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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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화

최양하는 불콰한 얼굴로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까지 흘렸다.“우리 집? 우리 집이 어디야? 나한테 우리 집이 어디 있어”‘본가에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고, 추신에는 아버지의 아들과 아내가 따로 있고.난 이제 어딜 가도 낄 수가 없어.’“일단 여기서 나가서 호텔을 좀 잡아주죠.”양유진이 최양하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최양하는 뒷좌석에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차가 토사물 냄새로 가득했다.양유진의 차가 엉망이 되자 민망해진 여름은 얼른 창문을 열었다.“유진 씨, 정말 미안해요….”“당신은 내 아내예요. 사과할 것 없어요.”양유진이 나무라듯 여름을 흘끗 쳐다봤다.“솔직히 양하 씨는 전에 나랑 같이 여름 씨를 구해준 적이 있기 때문에 내가 많이 좋게 봤어요.”의아해진 여름이 물었다.“윤서에게 FTT 일을 좀 들었는데 유진 씨는 양하 씨가….”“어떤 일은 한 쪽 말만 들어서는 모르는 거예요. 최양하가 자료를 빼돌렸는지 아닌지는 최양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함께 지내봐야 판단할 수 있는 거죠.”양유진이 말을 끊더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그리고 어쨌든 지금 여울이의 명목상 아버지인데, 이러나저러나 우리가 최양하를 본체만체할 수는 없죠.”여름은 매우 감동했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양유진은 여전히 현명해서 여울이 일까지도 마음에 담아주고 있었던 것이다.여름은 정말 양유진과의 결혼 생활을 잘 이끌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 되돌이킬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져 버렸다.최양하를 어느 5성급 호텔에 눕혀놓고 여름은 양유진과 바로 나왔다.내일 오전에 양유진이 깨어나면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양하와 여울이의 앞으로 거취도 논의해볼 생각이었다. 여울이가 너무 보고 싶기도 했다.양유진이 다시 차를 몰아 서경주의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9시가 넘어 있었다.서경주가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두 사람이 먹을 분량을 데워 나왔다. 식사가 끝나자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자네도 오늘 여기서 묵고 가지 그러나?”여름은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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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화

양유진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물을 마시며 동공에 어리는 어둠을 감추었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양유진의 온화한 눈에는 아픔이 담겨 있었다.“여름 씨, 한 가지만 물어보죠. 여름 씨가 원해서 관계가 이루어졌나요?”“당연히 그건 아니죠.”여름이 단호히 답했다.“그러면 됐습니다.”양유진은 여름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전에 그런 질문을 본 적이 있어요. 아내가 납치되었다면 아내가 목숨을 걸고 반항하기를 원하는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고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가? 저는요, 두 번째를 골랐습니다. 아내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어요.”“유진 씨….”여름의 심장이 떨렸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난 반드시 상대의 첫 경험을 원하지는 않아요. 당신과 결혼할 때부터 그 점은 잘 알고 있었어요.”양유진이 말을 이었다.“결혼 당일에 최하준에게 끌려간 것으로 당신을 탓해서 뭐 해요? 다 내가 무능해서 벌어진 일인걸. 가족을 위해 경찰에 신고도 못 했잖아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전전긍긍했다고요. 당신이 돌아와서 내 무능을 탓할까 봐 두려웠어요.”“아니에요.”여름이 고개를 저었다.“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최하준이 너무 비열했던 거예요.”“네. 너무 비열했죠. 당신을 강제로라도 취하면 구출해 내더라도 내가 당신을 싫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나 양유진을 잘못 봤어요.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당신이 돌아왔으니 그걸로 족합니다.”양유진의 눈에 고통이 넘쳤다.“왜 당신과 함께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요? 그 숱한 좌절을 겪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마침내 청혼을 받아주었는데 또 일이 벌어지고…. 정말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앞으로 제게 잘해주세요.”들을수록 감동적이었다.돌아오는 길에 양유진과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양유진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흔들렸다.양유진이 이렇게 깊은 마음을 보여주었는데 한사코 헤어지겠다고 한다면 도리어 상처를 주는 셈이었다. 게다가 최하준이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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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화

전수현이 두려운 척 목소리를 낮췄다.“사람들이 그러는데 그렇게 오래 최하준이랑 같이 있었는데 그 사람 아이라도 가진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양유진의 검은 눈에 핏빛 한기가 돌았다. 전수현의 턱을 움켜쥐었다. 우아하던 얼굴이 일그러졌다.“너도 내 마음을 가지고 놀겠다는 거야?”전수현이 깜짝 놀라서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대, 대표님. 저는 그냥 있는 사실만 말씀드린 거예요.”“사실이긴 하지. 그러나 내 앞에 와서 떠들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양유진이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냈다.전수현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이성적이고 침착하던 양유진이 이렇게 악마 같은 눈을 할 줄은 몰랐다.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비서로서 전수현은 양유진이 추신과 얼마나 밀접하게 협력하는지 보아 왔다. 양유진이 추동현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예측 불허의 인물인지는 전수현이 가장 잘 알았다.“얌전히 시키는 일이나 잘해. 괜히 나한테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말고.”양유진이 전수현의 볼을 톡톡 두들겼다. “분수를 알고 지내면 내 아이를 가지게 해줄지도 모르지. 사모님이 자리를 줄 수는 없어도 평생 줄 수 있는 건 모두 주겠다.”“… 고마워요.”전수현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사실 사모님 자리 따위 그리 원하지도 않았다. 양유진 그리고 양유진의 권력만 있으면 족했다.“그럼 오늘 밤 잘 해봐.”그러더니 양유진은 전수현을 안고 위로 올라갔다.양유진은 침대에서 한껏 난폭함을 드러냈다. 낮에 섬에서 여름을 보았을 때 양유진은 완전히 질투에 집어삼켜졌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외부적으로 양유진은 성인군자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러나 여기서는 거짓된 모습으로 꾸미지 않아도 된다. 양유진은 자신의 모습을 한껏 드러냈다.******일을 치르고 나자 전수현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침대 한구석에 박혀있었다. 오늘 밤의 양유진은 신혼 첫날 밤처럼 무서웠다. 완전히 화풀이 대상이 된 듯했다.그러나 샤워를 하고 나오는 양유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매력에 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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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화

전성은 담담히 최양하를 바라보았다.“가지 않으시겠다면 살아남기 힘드실 겁니다.”최양하는 힘없이 피식 웃었다.‘뭐, 형님이 대충 넘어갈 리가 없지. 다 알고 있었잖아?’사실 최양하도 형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는 했다. 회사 기밀을 빼돌렸다는 누명을 쓰고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았다.곧 전성이 최양하를 데리고 지룡의 사당으로 갔다. 사당에는 최 씨 가문 조상의 위패가 놓여 있었다.하준은 한 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담담한 표정이었다.“모셔왔습니다.”전성이 최양하의 뒷무릎에 발길질을 했다.전혀 방비하지 못했던 최양하는 무릎을 꿇게 되었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전성이 어깨를 꾹 눌렀다.최양하는 오기에 하준을 노려보았다.“난 잘못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자료를 빼돌리지도 않았다고. 보십시오, 추신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아버지와는 관계는 완전히 끊겼다고요.”“관계는 끊었다지만 말끝마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하는구나. 추동현에게 다른 여자와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속았다고 생각해서 안 따라간 거 아니고?”최하준이 최양하의 면전으로 다가와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최양하가 울분에 차서 답했다.“그렇게 멋대로 추측하지 마시죠. 진작부터 혼외 자식이 있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솔직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자식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FTT를 배신할 마음 같은 건 철저히 접었습니다. 형님은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그 사람은 저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본가에 가도 아무도 절 사람 취급도 안 한다고요. 저도 그 사람이 우리 어머니를 배신한 데는 이가 갈립니다.”“널 신경도 안 쓴다면서 왜 경찰서 잡혀갔을 때는 그렇게 후다닥 달려와서 보석을 해주었을까?”하준이 조롱하듯 물었다.“아, 대놓고 네 성도 바꾸겠다던데? 이제부터는 추양하라고 부를 거라고.”“저와 식구들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그런 겁니다.”최양하가 소리 질렀다.“그렇게 음험한 사람이라고요.”“그 자가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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